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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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 담마 ㅡ 소개

     

    원문 : Buddha Dhamma 섹션의 ‘Buddha Dhamma – Introduction

     

    이 포스트는 ‘붓다 담마’ 섹션(메인 메뉴의 두 번째 항목)에 대한 소개입니다. 필자는 이 섹션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본 레벨에서 시작하여 소개하고자 합니다. 

     

    2026년 1월 3일 작성

     

    머리말

     

    1. 지난 3년여 동안, 필자가 이해한 바를 기반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른) 산냐-에 대한 매우 심오한 내용을 나타내는 상급 레벨의 포스트를 작성했습니다. ‘붓다 담마’ 섹션에서 다른 주제에 대한 포스트를 작성하는 중에도, 그 포스트들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이나 질문을 [포럼에] 남겨주세요. 

     

    • * 이제는 그 부분을 제쳐두고 기본으로 돌아가 필요한 배경 지식에 대한 개요를 제공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 * 향후 몇 주에 걸쳐 ‘붓다 담마’ 섹션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포스트를 추가할 예정입니다.

    • * 필자는 또한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나머지 섹션들도 재정비하고 일부 예전 포스트들도 개정할 예정입니다.

    • * 또한, ‘드롭다운 메뉴(pull-down menu)’에서 특정 항목 아래의 모든 포스트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해 주세요. 웹사이트를 새로운 호스팅 업체로 이전한 후 드롭다운 메뉴가 고정되어 더 이상 수정할 수 없습니다. 해당 주제와 관련된 모든 최신 포스트들을 보려면 메인 메뉴 항목(예를 들면, 메인 메뉴의 두 번째의 ‘붓다 담마’)을 클릭하세요.

    • * 다음은 새로운 ‘붓다 담마’ 섹션의 개요입니다. 유용한 보조 정보로 시작하여 논의될 주제들을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필요에 따라, 특히 포럼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개요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배경 자료

     

    2. 이 웹사이트는 테라와다(Theravāda) 불교의 띠삐따까(Tipiṭaka, 삼장)를 기반으로 합니다. 

     

     

    3. 빠알리 낱말을 쓰고 발음하는 것은 붓다 담마를 배우는데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1800년대에 영국 학자들이 빠알리 낱말을 영어 알파벳으로 표기할 때 축약하기 위해 새로운 규약을 채택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anichcha’(싱할라어로는 අනිච්ච)는 ‘anicca’로 표기되며, 여기서 ‘c’는 ‘ch’음을 나타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영어 문헌이나 웹사이트에서) 이 규약(표기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규약(표기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c’를 ‘cat’의 ‘k’음처럼 발음하여 ‘anicca’를 ‘anikka’로 잘못 발음할 수 있습니다.

     

    • *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 웹사이트에 있는 많은 숫따의 영어 번역은 부정확하지만, 어떤 숫따를 논의할 때, 그 웹사이트에 링크를 거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i) (영어 알파벳 표기의) 빠알리 버전은 1800년대 후반에 빠알리 텍스트 협회에서 출판한 원본이므로 위에서 언급한 규약(표기법)에 따라 정확하며, (ii) 영어와 빠알리 구절이 나란히 있으므로, 누구나 특정 구절에 대한 자신의 번역과 쉽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4. 우리는 흔히 낱말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봅니다. 그러나, 빠알리-영어 사전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했던 초기 유럽 학자들이 편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전을 사용할 때에는 주의해야 합니다.

     

     

    호흡 명상이 일시적인 완화 효과만 주는 이유

     

    5. 붓다 담마를 조금이라도 접한 많은 사람들은 이 담마에 좋은 것이 있음을 압니다. 그들은 (보통 호흡 명상에 기반한) 명상 수련에 참여하여 호흡에 집중함으로써 얻게 되는 ‘쾌적한 마음 상태’에 매료됩니다.

     

    • *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붓다 담마에는 이 삶의 스트레스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는 것 이상의 훨씬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을 볼 수 있으려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부처님의 완전한 메시지를 배워야 합니다. 

    • * 알-라-라 깔-라-마와 같은 고대 요기(수행자)들은 감각적 끌림을 피하고 마음을 호흡에 집중함으로써 자-나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미래 생에 아빠-야-에 태어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방식으로는 재탄생 과정의 정신적 결박(족쇄)(상요자나)을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 상요자나를 끊으려면 마음이 어떻게 ‘내장 산냐-’에 들러붙어 순식간에 자동적으로 오염되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 시리즈에서 이것을 더 다루겠습니다. 닙바-나에 이르는 길은 ‘마음의 오염 과정’을 이해하고 이를 역전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많은 불교 버전이 있는가?

     

    6. 붓다 담마는 ‘붑베 아나눗수떼수 담메수(pubbe ananussutesu dhammesu)’, 즉 ‘붓다께서 오시기 전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담마(또는 자연에 대한 이론)’라고 불립니다. 붓다께서는 첫 번째 숫따에서 이 구절을 여러 번 언급하셨습니다.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 ㅡ 소개’을 참조하세요.

     

    • * 그러나, 붓다 담마는 2500여년 전에 고따마 붓다께서 세상에 전한 이후로, 많은 다른 버전으로 바뀌어 왔습니다.

    • * 지난 2500년 동안, 많은 다른 버전의 불교가 나타났습니다. ‘역사적 배경 ㅡ 소개’를 참조하세요. 누구도 “이것은 붓다께서 가르치신 원래 버전이다.”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각자가 다양한 버전을 검토하고 어떤 버전이 합리적인지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 * 따라서, 시간을 들여 원본에 가장 가까운 버전을 찾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에는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 * 필자는 올바른 가르침이 산스크리트 수트라(sutra)나 붓다고사의 위숫디막가(청정도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빠알리 띠삐따까(Pāli Tipiṭaka)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필자는 마하-야-나(대승) 버전 뿐만 아니라 위숫디막가를 기반으로 하는 일부 테라와다(Theravada) 버전에서도 모순점을 지적했습니다. ‘역사적 배경’ 섹션을 참조하세요.

     

    불교는 비관적인가?

     

    7. 많은 사람들은 붓다 담마가 비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붓다 담마는 재탄생 과정(윤회)이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붓다께서는 이 세상의 숨겨진 고통을 드러내셨고, 그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첫번째 성스런 진리는 괴로움만 나타내는가?’을 참조하세요. 그러므로, 붓다 담마는 고통의 흔적도 남지 않는 ‘낙관적인 결과’를 제시합니다.  

     

    • * 붓다께서는 ‘이 세상’에서 벗어나 닙바-나로 나아갈수록 얻게 되는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라는 더 높은 형태의 행복이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세가지 유형의 행복 - '니라-미사 수카'란 무엇인가?’를 참조하세요.

    • * 이 니라-미사 수카는 성스런 팔정도를 걷기 시작하면서 점점 커지며, 닙바-나의 첫 단계인 수다원(소-따빤나) 단계에서 (짧은 시간에 중대한 성취의) 비약적인 도약을 이룹니다. 이후에 세 단계가 더 있으며, 마지막 단계인 아라한뜨에서 이 세상에서 벗어나 (더 이상 재탄생하지 않고) 닙바-나에 이릅니다.

    • * 따라서, 닙바-나는 단지 죽을 때 성취될 약속이 아니라, 바로 이 삶에서 경험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산딧티꼬 아깔-리꼬 에히빳시꼬(sandiṭṭhiko akāliko ehipassiko)’ 구절의 의미입니다. 반면에, 다른 종교나 철학은 죽음 이후에야 결과가 이루어진다고 약속합니다. 아라한뜨는 아라한과에 이른 순간부터 라-가, 도사, 모하에서 자유로워집니다(육체와 관련된 육체적 고통만이 죽을 때까지 남지만, 니로다 사마-빳띠에 들어갈 수 있는 아라한뜨는 이마저도 최대 7일 동안 피할 수 있습니다). 소따빤나도 그 단계의 닙바-나에 도달한 순간부터 아빠-야가-미 행위(사악처로 향하는 행위)에서 자유로워집니다.  

     

    부처님의 ‘중도’

     

    8. 부처님의 ‘중도’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두 극단은 현대 과학의 유물론(육체의 죽음과 함께 삶이 끝난다고 주장하는 것)과, 아브라함 계열 종교의 영원한 ‘영혼’과 힌두교의 ‘아트만’의 견해입니다.

     

    • * 먼저 열 가지 잘못된 견해(밋차 딧티)를 제거함으로써 유물론을 버려야 합니다. 여기에는 육체의 죽음으로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며 라-가, 도사, 모하로 행한 행위에 결과가 따른다는 것(즉, 깜마가 위빠-까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지혜 또는 이성적인 사고로 보는 것’이 포함됩니다. 이 ‘유물론적 견해’를 ‘웃쩨다 딧티(uccheda diṭṭhi)’라고 합니다. ‘생명관 - 사견인 유물론’을 참조하세요.

    • * 다음으로, (영혼이나 아-트만을 믿는) 영원한 삶이라는 반대 견해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견인 창조론(및 미래 영생) - 제1부’ 및 ‘사견인 창조론(및 미래 영생) - 제2부’를 참조하세요. 또한 ‘Sassata Diṭṭhi Sutta (SN 24.9)’를 참조하세요.

     

    9. 부처님의 세계관은 위에서 언급한 잘못된 견해인 웃쩨다 딧티(uccheda diṭṭhi) 또는 삿사따 딧티(sassata diṭṭhi)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 * 그 대신에, 재탄생 과정이 있으며, 사람은 31가지 영역 중의 하나에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네 가지 영역(아빠-야-)에는 고통으로 가득차 있고, 가장 높은 26가지 영역(천상과 범천계 포함)에는 고통이 훨씬 적으며, 인간계에는 고통과 즐거움이 모두 있습니다. 그러나, 재탄생은 주로 아빠-야-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재탄생 과정이 고통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 * 육체가 죽은 후에도 삶은 계속될 수 있는데, 이는 그 지속을 위한 근본 원인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그 그본 원인은 여러 가지 형태로 기술되는데, (i) 라-가, 도사, 및 모하, (ii) 재탄생 과정의 열 가지 족쇄(상요자나), (iii) 네 가지 유형의 아-사와, (iv) 일곱 가지 유형의 아누사야 등입니다. ‘4단계의 닙바-나에 대한 조건’을 참조하세요.  

    • * 따라서, 붓다 담마와 ‘삿사따 딧티의 종교’ 사이의 핵심적 차이는 삿사따 딧티(상견)가 천상 영역에 영원한 존재를 가정한다는 점입니다. 붓다께서는 이 가정을 거부하셨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는 그 가정을 거부하신 이유를 설명합니다.   

     

    아윗자-는 까-마 산냐-에 기반하여 일어나며 잘못된 견해로 이어진다

     

    10. 붓다께서는 위 #8에서 언급된 두 가지 잘못된 견해를 빠-릴레이야 숫따(Pālileyya Sutta)에서 설명하셨습니다. 붓다께서는 ‘Pālileyya Sutta (SN 22.81)’의 마지막 부분에서 [불교의] 세계관(또는 올바른 견해)을 이해하는 핵심을 가리켜 보이셨는데, ‘Avijjāsamphassajena, bhikkhave, vedayitena phuṭṭhassa assutavato puthujjanassa uppannā taṇhā.’입니다. 번역: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이 무지로 접촉하여 생기는 느낌에 사로잡히면, 갈망이 일어난다.’ 이것이 빠띳짜 사뭅빠-다(또는 새로운 빤쭈빠-다-낙칸다 과정)가 아윗자-로 시작되는 방식입니다. 

     

    • * 그러므로, ‘둑카 사무다야(고통의 일어남)’가 촉발되는 것은 무지와 접촉에서 생긴 느낌 때문입니다. 그런 느낌은 ‘내재된 산냐-’에 기반하여 일어납니다. 이는 숫따의 마지막(표식 12.18)에서 암시되는데, ‘Sāpi avijjā aniccā saṅkhatā paṭiccasamuppannā’, 즉 ‘그리고 그 무지 또한 아닛짜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조건지어지고, 의존적으로 발생된다.’입니다. 여기서, 아윗자(무지)는 까-마 로까(욕계)에서 우리에게 ‘내재된 까-마 산냐-’에 대한 들러붙음에 기반하여 일어납니다.

    • * 그 까-마 산냐-(kāma saññā)에 기반하여, 마음은 외부 루빠와는 매우 다른, 자신만의 외부 루빠의 버전을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외부 대상(또는 빛)에는 색깔이 없습니다. 대상의 색깔은 전적으로 마음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음이 만든 루빠’(루빠 우빠-다-낙칸다, 루빡칸다, 또는 숫따에서는 단순히 루빠라고도 함)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숫따에서는 ‘외부 루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외부 루빠’에 기반하여 ‘마음이 만든 루빠’에 대해서만 논합니다.

    • * 필자는 그것을 상세히 논의했으며, 최근의 관련된 포스트들은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다섯 무더기(빤짝칸다) ㅡ 새로운 시리즈(Five Aggregates (Pañcakkhandha)– New Series)’에 있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에서 '빳짜야-'는 무슨 의미인가?’도 참조하세요.

    • * 하지만 많은 분들이 이 부분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아서 ‘붓다 담마’의 새로운 섹션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이 핵심 개념들은 부처님 가르침의 ‘본질’ 또는 ‘핵심’을 이루기 때문에 계속해서 전달하고자 합니다.  

     

    재탄생과 닙바-나가 없는 불교는?

     

    11. #8부터 #10까지 논의를 통해, 재탄생이라는 개념이 붓다 담마의 핵심적인 측면이라는 점이 분명해졌을 것입니다. [재탄생에서] 두 가지 중요한 함의는 (i) 고통은 재탄생 과정의 최종 결과며, (ii) 재탄생 과정을 멈추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입니다.

     

    • * 필자의 목표는 붓다께서 명료하게 말씀하신 복잡한 세계관에 대해 최소한의 세부 사항이라도 제공하는 것인데, 이 세계관은 지난 2500년 동안 왜곡되고 혼란스럽게 되어 왔습니다

    • * 우리의 삶은 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재탄생 ㅡ 제1성제의 괴로움과 관련’과 ‘재탄생(윤회)의 증거’을 참조하세요.

    • * 이 두 가지 사실이 존재의 참된 본질의 근간을 이룹니다. 적어도 이 ‘큰 그림’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 못하면 부처님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 * 깜마, 도덕, 닙바-나와 같은 개념뿐만 아니라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또는 “세상은 왜 이런 모습인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 등 사람들이 갖는 많은 의문들은 이 더 넓은 틀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는 종합적인 세계관이지만, 그것이 타당한지 여부는 각자가 판단해야 할 몫입니다. 붓다께서 가리켜 보이셨듯이, 많은 것이 걸려 있으므로 시간을 들여 큰 그림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깜마 에너지는 재탄생 과정을 지속시킨다

     

    12. 붓다께서는 왜 우리에게 정신적 현상에 집중하라고 하셨을까요?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생성하는 업 에너지의 유형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 * ‘Nibbedhika Sutta (AN 6.63)’에 따르면, 깜마는 ‘쩨따나-’(의도)로 정의되는 데, ‘Cetanāhaṁ (Cetanā aham), bhikkhave, kammaṁ vadāmi’, 즉 ‘나는 의도를 깜마라고 부른다’입니다. 

    • * 그러나, 숫따의 많은 구절과 마찬가지로, 이는 단지 발화 발언(웃데사), 즉 ‘축약된’ 형태일 뿐입니다. 서술(닛데사, 간단한 설명) 형태에서, ‘쩨따나-(cetanā)’는 ‘Sattaṭṭhāna Sutta (SN 22.57)’에 명시된 바와 같이 ‘산쩨따나-(sañcetanā)’입니다. 거기서, ‘쩨따나-(cetanā)’는 닛데사(간단한 설명) 형태로 다음과 같이 표현됩니다. ‘Chayime, bhikkhave, cetanā kāyā—rūpa sañcetanā …pe…dhamma sañcetanā.’ 번역: ‘쩨따나-에는 루-빠 산쩨따나-부터 담마 산쩨따나까지 여섯 가지 유형이 있다.’

    • * 그러므로, 숫따에서 ‘쩨따나-’를 보게 되면, 그것은 ‘산쩨따나-’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알다시피, 산쩨따나-는 ‘오염된 쩨따나-’, 즉 ‘오염된 의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Cetanāhaṁ (Cetanā aham), bhikkhave, kammaṁ vadāmi’라는 구절은 ‘내가 깜마라고 부르는 것은 오염된 의도(라-가, 도사, 모하를 내포하는 의도)다’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13. 그러나, 단지 깜마(깜마 에너지)를 축적했다고 해서 그 결과(위빠-까)가 필연적인 것은 아닙니다.

     

    • * 이 때문에 깜마/깜마 위빠-까가 아니라, 빠띳짜 사뭅빠-다가 붓다 담마의 기본입니다.

    • * 아빠-야-에 재탄생을 가져올 수 있는 많은 깜마 에너지를 축적했더라도, 해당하는 깜마에 대한 깜마 위빠-까를 가져올 수 있는 조건(빳짜야-)을 제거하면, 그 모든 깜마는 효력이 없게 됩니다.   

    • * 좋은 예로, 거의 천 명의 사람을 죽였지만, 부처님을 만난 후 짧은 시간 안에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한 앙굴리말라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앙굴리말라 이야기 - 붓다 담마에 대한 많은 통찰’을 참조하세요.

     

    14. (위 #12에서 언급된) 웃데사와 닛뎃사의 차이는 ‘숫따 해석 - 웃데-사, 닛데-사, 빠띠닛데-사’ 포스트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을 모르셨던 분들은 반드시 해당 포스트를 읽어 보세요.

     

    • *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많은 핵심 용어의 닛데사 버전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사성제와 성스런 길(팔정도)을 육성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Sattaṭṭhāna Sutta (SN 22.57)’에 대해 논의하고자 합니다.

    • * 이 숫따는 ‘사띠빳타-나 꾸살라를 육성하는 것’(표식 1.3), 즉 ‘닙바-나로 이끄는 7가지 유형의 꾸살라를 육성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 * 그러므로, 산쩨따나-(sañcetanā)로 행한 깜마-는 그 위빠-까(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깜마 에너지를 발생시킵니다. 강한 깜마는 내생에 위빠-까를 가져올 수 있으며, 이것이 재탄생의 기본입니다.

    • * 그러나, 깜마와 깜마 위빠-까만으로는 전체 그림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성스런 팔정도를 육성하여 아라한과에 도달하여 열 가지 상요자-나를 모두 제거하면, 축적된 깜마(더 정확하게는 깜마 에너지)는 어떤 영역에도 자신의 위빠-까로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소따빤나는 첫 세 가지 상요자나를 소멸시킴으로써, 가장 낮는 네 가지 영역(아빠-야-)에 재탄생하는 것이 그쳤습니다.

    • * 이것은 재탄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요약입니다.  

     

    감각적 즐거움은 외부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15. 불교도가 아닌 사람들은 감각적 즐거움이 외부 대상에 있으며, 우리는 그 외부적인 매력에 들러붙는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어떤 종교에서 여성에게 몸 전체를 가리도록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을 마음에서 제거할 수 있으며, 일단 제거되면 어떤 외부 대상도 자신에게 욕망을 일으킬 수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아나-가-미는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까-마 라-가)을 제거한 사람들이며, 아라한은 자-나와 아루빠 사마-빳띠에 대한 갈망도 제거했습니다.

     

    • * 따라서, ‘감각적 즐거움’은 외부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라한들도 외부 대상을 보지만, 그들의 마음은 그것들에 들러붙지 않습니다.

    • *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까-마 산냐-(kāma saññā)’가 어떻게 자동적으로 감각 입력에 기반하여 마음에 일어나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을 지혜로 볼’ 때, 다른 모든 정신적 실체(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가 가치없다는 것, 즉 빤쭈빠-다-낙칸다의 모든 다섯 가지 실체가 가치없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게 됩니다. 

    • * 그 때 사람은 잘못된 견해(삭까-야 딧티)를 제거함으로써 소따빤나가 됩니다. 그러나, 소따빤나는 여전히 까-마 라-가(kāma rāga)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까-마 산냐-에 들러붙어 있습니다. 소따빤나는 사띠빳타-나를 육성하여 까-마 라-가를 극복함으로써 아나-가-미가 됩니다.   

     

    우리는 ‘정신적 현상’에 집중해야 한다

     

    16. 이제, 우리는 붓다께서 ‘물질 현상’을 탐구하지 말고 마음의 작용에 집중하라고 권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 * 구체적으로, 우리는 마음이 어떻게 모든 감각 입력에 반응하여 내재된 까-마 산냐에 자동적으로 들러붙음으로써 순식간에 오염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초기의 들러붙음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각 입력뿐 아니라 그런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즉 ‘중립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감각 입력에 대해서도 일어납니다.

    • * 이것이 소따빤나 아누가-미로서 성자(아리야)가 되는 열쇠입니다. 사람은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에서 이해하기(자-나또) 시작합니다. 그 이해는 소따빤나 아누가-미가 까-마 산냐-를 극복하여 처음으로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갈 때 확립됩니다(빳사또).  

     

    빠띳짜 사뭅빠-다와 빤쭈빠-다-낙칸다의 모든 실체는 정신적이다

     

    17. 위 논의를 통해, 빠띳짜 사뭅빠-다와 빤쭈빠-다-낙칸다의 모든 실체는 정신적인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져야 합니다.

     

     

    물질 세계와 관계

     

    18. 불교(붓다 담마)는 정신적 현상에 초점을 맞추지만, 물질 세계의 기원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악간냐 숫따 논의 ㅡ 소개’와 ‘불교와 진화 ㅡ 악간냐 숫따(DN 27)’ 포스트를 참고하면 기본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습니다.

     

    • * 우리 세상은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현대 과학 덕분에 우리는 태양계와 같은 무수한 행성계(짝까왈-라)를 포함하는 우주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담마와 과학 - 소개’를 참조하세요.

    • * 붓다 담마는 ‘이 세상’의 참된 본질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단순히 인간의 삶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상상할 수 없이 복잡합니다. 과학자들은 이 우주에 있는 것들의 단 4%만 알고 있다고 인정합니다. 리처드 파넥(Richard Panek)의 저서 “The 4 Percent Universe: Dark Matter, Dark Energy, and the Race to Discover the Rest of Reality”(2011년)을 참조하세요. 또한,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담마와 과학’  섹션을 참조하세요.  

     

    정신적 몸 = ‘마노마야 까-야’ = 간답바

     

    19.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 깊이 탐구하다 보면, 인간과 동물은 두 종류의 몸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육체고, 다른 하나는 육체 안에 갇혀 있는 보이지 않는 ‘정신적 몸’입니다.

     

    • * 그 정신적 몸은 ‘마노마야 까-야’ 또는 ‘간답바’라고 불립니다.

    • * 일부 외상적인 상황(특히 심장 수술)에서, ‘정신적 몸’이 육체에서 분리될 수 있습니다. ‘정신적 몸’이 육체에 대한 수술 과정을 위에서 지켜보는 사례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회복 후, 환자는 수술 중에 수술실에서 일어난 일을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임사 체험(NDE): 뇌는 마음이 아니다’를 참조하세요.

    • * 이것은 재탄생에 관한 이야기에서 재탄생 사이의 ‘시간 간격’을 설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계에서 두 번의 탄생 사이에는 ‘정신적 몸’이 그 자체로 존재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날 때, 그 ‘인간 존재’는 수천년 동안 지속될 수 있습니다. 같은 ‘인간 간답바’가 그 기간 동안에 여러 번 인간의 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파리는 수명이 며칠에 불과하지만, 그 ‘파리 존재’는 수천 년 또는 수백만 년 동안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인간 삶은 귀중하다

     

    20. 많은 사람들이 왜 재탄생이 나쁜지 궁금해 합니다. 이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확률이 극히 드물고, 대부분의 재탄생은 아빠-야-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재탄생 ㅡ 제1성제의 괴로움과 관련’을 참조하세요.

     

    • * 대부분은 인간계 아래 영역에 다시 태어나며, 그곳에서 고통은 더욱 심합니다. 과학자들은 지구상에는 언제든 1000조 마리의 개미가 살고 있다고 추정합니다. 이는 인간 한 명당 백만 마리의 개미가 있다는 뜻입니다. 약 70억 명의 인구와 비교해 보면, 이 행성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많은 다른 유정체가 살고 있습니다.

    • * 우리 몸에도 수많은 유정체가 깃들어 있습니다. ‘당신의 몸에는 지구상의 사람 수만큼 많은 생명체가 있다!’을 참조하세요.

    • * 그러므로 우리는 이 생에서 최소한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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