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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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굴리말라 이야기 - 붓다 담마에 대한 많은 통찰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Account of Angulimāla – Many Insights to Buddha Dhamma’ 포스트

-2019년 2월 17일 작성; 2020년 3월 7일 개정

 

소개

 

1. 앙굴리말라(Angulimāla)는 999명을 죽였지만, 부처님을 만난 후 몇 주 안에 아라한과(Arahanthood)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삶 이야기는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런 매우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위빠-까(vipāka, 과보)조차도 극복될 수 있는지 우리가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 * 비록 깜마(kamma, 업)의 법칙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런 매우 부도덕한 행위의 결과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과관계의 보다 근본적인 원리를 이해함에 의해서 가능합니다. ‘아윗자-(avijjā)와 딴하-(tanhā)(근본 원인)’를 제거함으로써 그런 모든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모든 미래 고통, 괴로움)’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 * 다음 두 포스트 또한 깜마(kamma)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에 대해 논의합니다. ‘깜마란 무엇인가? – 깜마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가?’ 포스트와 ‘다양한 깜마의 무게를 평가하는 방법’ 포스트입니다.

 

2. 앙굴리말라의 삶 이야기에 대해 ‘Angulimāla – A Murderer’s Road to Sainthood’ 제목으로 좋은 내용이 있으며, 필자는 적극 추천합니다.  

 

  • * 링크된 주소의 내용을 먼저 읽어 보면, 아래 논의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앙굴리말라의 삶에 대한 간략 요약

 

3. 앙굴리말라 이야기에서 중요한 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 그는 소년 시절에 아힘사까(Ahimsaka, ‘해롭지 않은’)라고 불리었고 뛰어난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당시에 딱까실라(Takkasila)(딱실라, Taxila)에 있는 최고 학습기관의 클래스(반)에서 최고였습니다. 그의 동료들은 질투심에 불타서 아힘사까가 스승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스승이 믿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 스승은 마침내 그 거짓 고발을 믿고 아힘사까를 죽이는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아힘사까가 학업을 마치고 그 교육에 대해 어떻게 경의를 표해야 하는지 물었을 때, 그 스승은 “사람의 오른손 새끼 손가락 천 개로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 그렇게 해서 아힘사까는 살인자가 되었고, 그는 ‘앙굴리말라(Angulimāla)’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름은 자른 손가락을 화환처럼 만들어 목에 걸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4. 붓다께서 개입하셨을 때, 앙굴리말라(Angulimāla)는 999명을 죽였고 마지막 손가락을 얻기 위해 그의 어머니를 죽이려고 할 때였습니다.

 

  • * 머리가 잘 돌아가는 앙굴리말라는 붓다께서 말씀하신 몇 구절을 이해할 수 있었고 바로 그 자리에서 붓다께 출가제자가 되기를 요청하였습니다.

  • * 앙굴리말라 존자는 그 후에 곧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 * 나중에, 붓다께서는 앙굴리말라(Angulimāla) 존자에게 그가 살인자였을 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자신이 아-리야(Āriya, 성자)로 ‘태어났음’을 상기시켰습니다. 주어진 존재 중에도 바와(bhava)를 바꾸는 이 개념은 아래에서 논의됩니다.

 

첫 번째 관찰 - 가띠와 환경의 중요성

 

5. 우리가 볼 수 있는 첫 번째 것은 순종적이고 잘 행동하는 아힘사까가 스승의 영향으로 살인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외부의 영향(가족, 친구 등)은 각자의 가띠(gati, ‘gathi’로 발음)(개략적으로 ‘성격’으로 번역됨)을 변화시키는 핵심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빠알리 낱말들은 ‘표준 영어’에서는 쓰여지지 않고, 채택된 ‘띠삐따까 영어’ 규약으로 쓰여진 것임에 주목하세요. ‘초기 유럽 학자들이 채택한 '띠삐따까 영어' 규약 ㅡ 제1부’ 및 ‘초기 유럽 학자들이 채택한 '띠삐따까 영어' 규약 ㅡ 제2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가 어떤 친구를 사귀는지 늘 경계해야 합니다. 친구는 아이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 * 이것은 어른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끌어들이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좋은 방향을 따라 새로운 교제를 해야 합니다. 

  • * 가띠(gati)는 이 사이트의 많은 포스트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오른쪽 상단의 ‘검색’ 상자에 ‘gati(가띠)’를 입력하여 관련 포스트의 목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관찰 - 불변하는 자아(자기)는 없음

 

6. 우리가 볼 수 있는 두 번째 것은 불변하는 자아(자기)는 없다는 것입니다.

 

  • * 해롭지 않은 아힘사까(Ahimsaka)는 앙굴리말-라(Angulimāla)로 폭력적인 살인자가 되어 거의 1000명을 죽였습니다..

  • * 그 다음 그 폭력적인 앙굴리말라(Angulimāla) 살인자는 부처님를 만난 후 짧은 시간 내에 성자가 되었고, 몇 주 안에 앙굴리말라 존자(Ven. Angulimāla)는 아라한뜨(Arahant)도 되었습니다!

 

7. 세 가지 로-카(lōka, 세계)와 31영역의 더 큰 그림에서, 어떤 유정체의 생명흐름(lifestream)은 시작이 없는 재탄생 과정에서  ‘좋은 곳에서 나쁜 곳으로’, ‘나쁜 곳에서 좋은 곳으로’, 그리고 다시 ‘좋은 곳에서 나쁜 곳으로’ 등, 셀 수 없는 횟수에 걸쳐 바뀔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 * 우리 모두는 가장 높은 브라흐마(brahma) 영역과 가장 낮은 아빠-야(apāya, 악처)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그 시간의 대부분을 고통(괴로움)으로 가득한 아빠-야(apāya)에서 보냈습니다.

  • * 이 ‘재탄생 과정(상사-라, 윤회)의 그치지 않는 방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앙굴리말라 존자가 한 것처럼 아라한뜨(Arahant)가 되는 것입니다.

  • * 첫 번째 단계는 최소한 4가지 가장 낮은 영역(아빠-야, apāya)에 태어나지 않는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관찰 -  인과 연결(일종의 자아)이 있음

 

8. 그러나, 이전 포스트에서 논의했듯이, ‘자아(자기)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 * 이유나 원인 없이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적어도 하나의 원인이 있지만, 보통 여러 원인이 있습니다).

  • * 인간은 까닭이 있기에 동물이나 브라흐마(brahma, 범천)로 다시 태어납니다. 인접한 두 ‘바와(bhava, 존재)’ 사이에는 관련이 있습니다.

  • * 아힘사까는 원인없이 앙굴리말라(Angulimāla)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한 가지 원인은 그의 동료가 스승에게 미친 영향입니다. 그 다음 아힘사까는 스승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랐습니다.

  • * 그러나 그 후 부처님의 영향으로 인해 모든 것이 역전되었습니다.

 

9. 그렇기 때문에 ‘자아(자기)가 없다’고 말하는 것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미래에 그 ‘자아(자기)’가 어떻게 진전하는지에 대해 책임이 있는 자아(적어도 순간적으로 사는 자아)는 항상 있습니다.

 

  • * 그러나 그 ‘변하는 자아(자기)’는 여러가지 요인에 따라 ‘좋음’과 ‘나쁨’ 사이에서 변할 수 있고 또 바뀔 것입니다. 핵심 요인은 자아(자기)의 행위와 주어진 때에 그 자아(자기)에 대한 외부 영향입니다.

 

네 번째 관찰 - 두 가지 유형의 바와(존재)

 

10. 또 다른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이 생 중에 ‘임시 바와(bhava, 존재)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앙굴리말라(Angulimāla)는 ‘임시 바와’를 순진한 소년에서 살인자로 바꾸고, 그리고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로 다시 돌려 놓았습니다!

 

  • * 예를 들어,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은 항상 취해 있지는 않습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술취한 바와(존재)’에 있습니다. 다음날 그는 깨어 있는 상태이고, 다시 술을 마실 때까지 ‘술취한 바와(존재)’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 * 같은 방식으로, 어떤 여성이 화를 낼 때 ‘화내는 바와(존재)’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화가 가라앉은 후에는 더 이상 그 ‘화내는 바와(존재)’에 있지 않습니다.

  • * 이 ‘임시 바와(또는 일시적 존재)’는 ‘이답빳짜야-따- 빠띳짜 사뭅빠-다(Idapaccayātā Paticca Samuppāda, 삶 중의 연기)’ 과정을 통해 설명됩니다(그것은 주어진 삶 동안 작용함). 오늘날 교재 책에는 한 가지 유형의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만 나와 있지만, 다른 유형들이 있습니다.

 

11. 습관적으로 그런 ‘임시 바와(bhava)’에  반복적으로 들어가면, 그것은 육성된 가띠(gati) 또는 습관/성품이 됩니다.

 

  • * 그 경우, 그것은 새로운 웁빳띠 바와(uppatti bhava), 즉 재탄생과 관련된 바와(Bhava)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항상 화를 내고 어느날 다른 사람을 죽이면 그것은 아빠-야(apāya, 악처)에 재탄생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더 영구적인 바와(bhava)’입니다.

  • * 그것은 더 흔한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 사이클, 즉 웁빳띠 빠띳짜 사뭅빠-다(uppatti Paticca Samuppāda, 재생연결의 연기)입니다.

  • * ‘빠띳짜 사뭅빠다(연기)’ 섹션을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섯 번째 관찰 - 재탄생 과정에서 왔다 갔다 함

 

12. 그래서, 재탄생 과정에서 대부분 ‘선한 행위’를 하고, ‘좋은 가띠(gati)’를 길러서 ‘좋은 바와(bhava)’를 얻고, 그래서 ‘좋은 탄생(jāti)을 하는 일부 기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바와 및 자띠 - 존재 상태와 거기로 태어남’ 포스트에서 바와(bhava)와 자-띠(jāti) 사이의 차이를 논의했습니다.

 

  • * 그 후, 가띠(gati)가 나쁜 가띠(bad gati)로 바뀔 수 있는데, 특히 ‘나쁜 영향 및 교제’에 처할 때 그렇습니다. 그럴 경우, ‘아래[악처]로 향하는 길’을 가기 시작할 수 있으며 결국 자신의 가띠(gati)는 ‘나쁜 바와(bhava)’를 얻을 정도로 해로워질 수 있습니다.

  • * 주변에서 그러한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좋은 아이들이 마약 중독자가 되고 해악의 교제 때문에 살인자가 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그 반대도 일어나는데, 폭력적인 사람이 그런 나쁜 가띠를 바꾸고 올바른 영향 아래 ‘좋은 시민’이 될 때입니다.

  • * 그것은 우리 모두가 이 시작없는 재탄생 과정에서, (좋은 존재와 나쁜 존재 사이를 왔다 갔다 함을) 해왔던 것입니다.

 

여섯 번째 관찰 - 앙굴리말라의 깨달음

 

13. 앙굴리말라(Angulimāla)가 부처님을 쫓고 있을 때 가까이 따라 붙지도 못하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이야기에서 [그 상황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앙굴리말라는 멈춰서, “멈춰라, 중아!, 멈춰라, 중아!”라고 소리쳤고, 붓다께서는 “앙굴리말라여, 나는 멈췄다. 너도 멈춰라.”고 대답하셨습니다.

 

  • * 그것[대답]으로 인해 앙굴리말라(Angulimāla)는 생각하게 되었고, 왜 붓다께서 걷고 있음에도 멈췄다고 말씀하셨는지에 대해 묻기 시작했습니다. 붓다께서는 자신의 윤회 방랑(재탄생 과정)을 멈추었고 모든 고통(괴로움)을 극복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 * 그때 앙굴리말라(Angulimāla)는 통찰력을 얻고 ‘앙굴리말라 성자’가 되었습니다. 

 

14. 그러므로, 이해해야 할 중요한 점은 비록 ‘선행’을 하는 것이 필수적임에 불구하고 ‘선행’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 * 각자는 반드시 다른 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하며,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대부분) 고통(괴로움)으로 가득한 이 재탄생 과정(윤회)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 * 그 두 가지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에 대해 간략하게 논의해 보겠습니다. 

 

일곱 번째 관찰 - 부처님의 중요한 발견 

 

15. 첫째, 붓다께서 세상에 출현하실 때(한 사람이 마음을 최고도로 청정하게 함으로써 붓다의 깨달음을 얻는 것을 의미)까지, 사람들은 ‘3가지 유형의 로-까(lōka, 세계)’와 31영역으로 된 ‘광대(더 넓은) 세계관’을 알지 못합니다.

 

  • * 때때로 인간 영역 또는 그 위의 ‘좋은 영역’에 태어나기도 하지만, 유정체는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행해진 잘못된 행위로 인해 대부분 가장 낮은 4가지 영역(아빠-야, apāya)에 다시 태어납니다.

  • * 물론 어떤 영역에도 괴로움(고통)이 있지만 더 높은 영역에서는 그 괴로움(고통)이 적습니다.

  • * 그러므로, 대부분의 재탄생은 많은 괴로움(고통)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이 첫 번째 성스런 진리(제1성제)의 에센스(정수)입니다. 

 

16. 둘째, 붓다께서 세상에 출현하실 때까지, 괴로움(고통)으로 가득한 이 끝없는 재탄생 과정(윤회)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가 알려지지 않습니다.

 

  • * 잘못된 행위가 불행한 재탄생으로 이어지고 선한 행위가 좋은 재탄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스승들이 있어 왔고 항상 있을 것이며, 스승들은 그것을 다른 자들에게 가르칩니다.

  • * 그러나 선한 행위를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자는 붓다뿐입니다. 31영역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특성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자가 수십억 년의 긴 수명이 보장된 가장 높은 영역에 재탄생하더라도 절망과 결국 죽음으로 끝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그 후, 그 자는 그 전과 동일한 재탄생의 사이클로 돌아가게 되는데, 거기서 (갈망이나 감각 유혹으로 인한) 악한 행위를 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그리고 아빠-야(apāya)에 태어날 것입니다.

 

여덟 번째 관찰 - 괴로움(고통)의 근본 원인

 

17. 그러므로, 핵심은 감각 욕구에 의해 유혹되는 경향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 * 아닛짜(anicca) 특성, 즉 이 세상에서 행복을 구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것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의 행복)은 조만간 아빠-야(apāya, 악처)에 재탄생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입니다(둑카, dukkha). 그래서, 결국 아빠-야(apāya, 악처)에 태어났을 때, 무력하게(어쩔 수 없게) 됩니다(아낫따, anatta).

  • * ‘강한 감각 유혹’하에서 갈망을 억지로 누르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아닛짜(anicca)’ 특성을 볼 때, 갈망은 (닙바나(Nibbāna)의 네 단계에서) 자동적으로 제거됩니다.

  • * 그것이 미래 고통(괴로움)의 원인인 두 번째 성스런 진리(제2성제)입니다

 

아홉 번째 관찰 - 닙바나로 가는 길

 

18. 일단 31영역의 ‘큰 그림’이 ㅡ 각자의 행위(kamma, 깜마) 때문에 그 영역 중에 어떻게 태어나게 되는지와 함께 ㅡ 이해되면, 그 자는 10가지 유형의 밋짜- 딧티(micchā ditthi)를 제거했을 것입니다.

 

  • * 그것은 [31영역의] ‘완전한 그림’이 재탄생 과정, 깜마(kamma)의 법칙 등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19. 그러면, 그 자는 ‘31영역으로 된 광대(더 넓은) 세계’에서 충족되지 않고 위험한 본질’, 즉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 * 그 ‘아닛짜(anicca) 특성’은 둑카(dukkha, 고통, 괴로움)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설명하고, 각자는 재탄생 과정에서 무력하게(어쩔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것들은 띨락카나(Tilakkhana)라고 하는 3가지 주요 특성(아닛짜, 둑카, 아낫따)입니다(그것들은 서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 * 그때[아닛짜 특성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가 닙바나의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20. 그 때문에 아닛짜(anicca)는 무상(impermanence)과 관련이 없고 아낫따(anatta)는 ‘자아(self)’ 또는 ‘무아(non-self)’와 관련이 없습니다.

 

  • * 띨락카나(Tilakkhana) 또는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에 대한 그 앎은 오직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만 알 수 있습니다.

  • * 붓다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여 그 ‘더 큰 그림’을 발견하실 때까지, 아무도 그 ‘더 큰 그림’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괴로움(고통)으로 가득한 이 재탄생 순환 속에 남아 있는 위험들을 알 수 없습니다.

 

열 번째 관찰 - 깜마 위빠까는 [아라한의 육체적] 죽음 때까지 유효함

 

21. 비록 앙굴리말라 존자(Ven. Angulimāla)는 아라한과(Arahantood)에 도달했지만, ‘돌을 던지는 자들’에 의해 자주 부상을 입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를 향해 돌을 던지지 않았지만, 존자는 예상치 않게 그 돌에 맞고 있었습니다.

 

  • * 위에서 언급한 글(링크 글)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상처입은 머리에서 피가 흘러 나오고 발우가 손상되고 가사가 찢어진 채로 앙굴리말라 존자는 붓다께 가셨다. 붓다께서는 존자가 오는 것을 보셨고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브라-흐마나-여, 그것을 견디라, 브라흐마나여, 그것을 견디라! 그대는 깜마가 익어 수많은 년, 수많은 세기(백년 단위), 수많은 밀레니엄(천년 단위) 동안 지옥에서 경험했을 깜마의 익음을 지금 여기에서 경험했다.”

  • * 만약 앙굴리말-라(Angulimāla)가 부처님에 의해 구해지지 않고 죽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아빠-야( apāya)에서 고통(괴로움)을 당했을 것입니다!

 

22. 앞서 논의했듯이, 부처님이라도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의 일부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생의 육체는 과거 깜마로부터 생겼고, 그 육체와 관련된 많은 측면이 바뀔 수 없습니다.

 

  • * [아라한의] 육체가 죽으면, 31영역의 어느 곳에도 더 이상 재탄생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가 실현될 수 있는(결실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 때문에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의 육체적 죽음을 빠리닙바-나(Parinibbāna, 완전한 열반)라고 합니다.

  • * 빠리닙바-나(Parinibbāna) 이후에는 절대적으로 고통(괴로움)이 없습니다.

 

23. 그러므로, 우리는 띠삐따까(Tipitaka)에서 눈에 띄는 개성의 사람[앙굴리말라]에 대한 설명에 많은 통찰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핵심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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