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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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담마의 보존

 

원문: Historical Background 섹션의 ‘Preservation of the Dhamma’ 포스트

- 2017년 10월 28일 개정; 2019년 1월 9일 개정; 2020년 1월 26일 개정; 2021년 6월 25일 재작성; 2022년 11월 19일 개정

 

띠삐따까 ㅡ 빠알리 캐논

 

1. 붓다께서 반열반에 드신 후, 그 가르침은 3~4백년에 걸쳐 구두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되었습니다. 기록 형태의 보존은 2000여년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 * 띠삐따까(Tipiṭaka)는 구두 전승이 용이한 형태로 구성되었으며, 많은 경우 요약 형태로 구성되었습니다. ‘숫따 해석 ㅡ 웃데-사, 닛데-사, 빠띠닛데-사’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것이 이 긴 기간 동안 내용상으로 거의 온전히 살아남은 이유입니다.

  • * 띠삐따까는 2000여년 전인 1세기 초에 스리랑카의 마탈레에서 [싱할라 문자로] 기록되었습니다. 띠삐따까(Tipiṭaka)를 문자로 기록한 장소에 대한 정보는 ‘Welcome to Aluvihāra Rock Cave Temple’를 참조하세요.

  • * 다른 것으로 가장 일찍 쓰여진 불교 문헌은 현대의 파키스탄 북서부에 있는 간다라(Gandhāra)에서 나온 것입니다. Richard Salomon의 ‘The Buddhist Literature of Ancient Gandhāra’(2018년)을 참조하세요. 그러나 그것들은 띠삐따까(Tipiṭaka)의 완전한 버전이 아닙니다. 그 책의 p. 83을 참조하세요.

  • * 중국어, 티베트어 등으로 된 다른 모든 문서는 이후 시대의 것이며 빠알리 띠삐따까(Pāli Tipitaka)에서 유래했습니다.

 

초기의 구두 전승

 

2. 부처님의 설법은 마가디(Māgadhi) 언어로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그 쓰여진 형태를 빠알리어(Pāli)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빠알리어(Pāli)는 그것의 문자가 없으므로 싱할라 문자로 기록되었습니다.

 

  • * 그것은 산스크리트어(Sanskrit)로 쓰여지고 빠알리어(Pāli)로 결코 쓰여지지 않은 마하-야-나(Mahāyāna, 대승) 문헌을 구별(분류)하는 직접적인 방법입니다. 대승 철학자들은 모든 산스크리트 숫따-(Sanskrit suttā)를 산스크리트어로 썼습니다.

  • * 첫 번째 천년기가 시작될 무렵에, 띠삐따까(Tipiṭaka)가 중국어와 티베트어로도 번역되었습니다. 빠알리어로 된 원본에는 붓다께서 전달하신  원래 설법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3. 오늘날, (특히 서양인의 경우에는) 구두로 전달된 자료가 그렇게 정확할 것이라고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 * 그러나, 우리는 원래 가르침의 대부분을 보존하는 것을 도운 수천년 동안의 ‘배경 전통(background tradition)’과 빅쿠들의 결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 * 오늘날에도, 일부 사람들, 특히 미얀마(이전의 버마)의 일부 사람들은 띠삐따까(Tipiṭaka)의 많은 섹션들을 암기하여 왔습니다. 미얀마에는 암기를 테스트하기 위한 특별 시험이 있습니다. ‘Tipitakadhara Sayadaws of Myanmar ( Burma ) in Five Decades’를 참조하세요. 또한, ‘Memorizing the Tipiṭaka’를 참조하세요.

  • * 구두로 전승되는 동안, 빅쿠 그룹들이 띠삐따까(Tipiṭaka)의 섹션들을 암기하였습니다(섹션들을 겹쳐서 암기함). 그 후, 상가-야나-(Sangāyanā)(불교 결집 회의) 중에, 그들은 모두 함께 모여 서로 버전들을 비교하여 그것들이 모두 호환/양립되는지(잘 맞는지) 확인했습니다.

 

띠삐따까를 마무리하는데 3차례의 불교 회의가 있었다

 

4. 기원전 480년 경, 붓다께서 빠리닙바-나(반열반)에 드신지 석달 내에 제1차 불교 회의가 소집된 주된 이유는 방대한 자료를 정리/구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 다음 200여년 내에, 두 번의 불교 회의가 더 개최되어, 가르침을 암송하고 확인하여 띠삐따까(Tipiṭaka)를 세 가지 광범위한 범주(‘ti’ + ‘Pitaka’, ‘세 가지 바구니’)로 마무리하였습니다. 두 번째 불교 회의는 첫 번째 불교 회의 후, 약 100여년이 지나서 개최되었습니다.

  • * 세 번째 불교 회의는 기원전 250년에 아소카(Asoka) 왕의 후원 하에 파탈리푸트라(Pataliputra)에서 열렸습니다. 이 불교 회의에서 아비담마 삐따까(Abhidhamma Piṭaka)가 마무리되어 ‘세 바구니(삼장)’가 완성되었습니다. 아래 #15를 참조하세요.

  • * 이 완성된 띠삐따가(Tipiṭaka)는 기원전 29년 스리랑카의 마탈레에서 열린 제4차 불교 회의에서 기록/완료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라한만이 참석한 마지막 불교 회의였습니다. 따라서, 그 진실성이 보장(확신)될 수 있습니다. 빠알리어는 그것의 문자가 없기 때문에 싱할라 언어로 작성되었습니다.

 

띠삐따까의 진실성

 

5. 또 다른 중요한 점은 띠삐따까(Tipiṭaka)의 역사에 숨겨져 있습니다. 심지어 20세기까지, 전체 띠삐따까(Tipiṭaka)는 특별히 준비된 올-라(ōla)(야자나무) 잎에 기록되었습니다. 그것들은 보통 100년 정도 지나면 변질되어, 다시 작성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비록 그것이 매우 많은 노동력을 요하는 과정이었지만(띠삐따까의 현대 인쇄 버전에서는 약 60권의 대용량), 또 다른 본질적인 목적의 역할을 했습니다.

 

  • * 싱할라어(말과 글 모두)는 지난 2000년 동안 변했습니다. 100년 정도마다 그것을 다시 작성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싱할라 문자의 변경 사항을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빠알리(Pāli) 언어는 변경되지 않았습니다.

  • * 다음 비디오는 준비 과정과 작성에 사용되는 도구에 대해 설명합니다.

https://youtu.be/UrCQPoR3yAo

https://youtu.be/BAk9bzfdU04

 

대부분의 숫따는 설법의 응축(요약) 버전이다

 

6. 여기서 매우 중요한 점은 숫따(sutta)는 많은 경우에 설법의 응축(요약)된 버전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담마 짝까 빠왓따나 숫따(Dhamma Cakka Pavattana sutta)는 밤새 다섯 고행 수행자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만약 그대로 옮긴다면 얼마나 많은 페이지가 쓰여질지 상상해 보세요! 하지만, 그것은 몇 페이지로 요약되어 있습니다. 모든 중요한 숫따(sutta)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수천 개의 숫따를 모두 전승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 * 붓다께서는 설법의 대부분을 마-가디(māghadhi = ‘maga’ + ‘adhi’, 성스런 길) 언어로 전달하셨습니다. 띠삐따까(Tipiṭaka)는 싱할라 문자를 사용하여 빠알리어로 작성되었습니다. 빠알리어(Pāli)는 전승에 적합한 요약 형태로 구두 설법을 작성하는 데 적합한 마-가디어(Māghadhi) 버전입니다.

  • * 각 빠알리 낱말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으므로, 중요한 빠알리 낱말의 의미를 설명하고 숫따의 핵심 구절을 설명하기 위해 주석서(‘앗타 까타-’, ‘Attha Kathā’라고 함)가 작성되었습니다.

 

주석서의 중요성

 

7. 빠-알리 숫따(Pāli sutta)는 낱말별로 그대로 대응시켜 번역해서는 안 됩니다. ‘숫따 해석 ㅡ 웃데-사, 닛데-사, 빠띠닛데-사’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띠삐따까(Tipiṭaka)는 주석(서)과 함께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부처님 시대에 아라한들에 의해 작성된 주석서들은 여전히 띠삐따까와 함께 있는데, 빠띠삼비다막가(Patisambhidamagga), 뻬따꼬빠데사(Petakopadesa), 및 넷띱빠까라나(Nettippakarana)가 그것입니다. 마힌다 존자께서는 200여년 후에 싱할라 주석서를 편찬하기 시작했습니다. 

 

  • * 안타깝게도 그 싱할라 주석서는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시대에 소실되었습니다. ‘잘못된 테라와다 해석 ㅡ 역사 연대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다행히, 부처님 시대에 부처님의 상수 제자(사리뿟따 존자, 깟짜야나 존자, 등)들이 준비한 3편의 원래 주석서가 띠삐따까(Tipitaka)(쿳다까 니까-야, Khuddhaka Nikāya)에 포함되어 살아남았습니다. 스리랑카의 와하라까 테로(Waharaka Thero)님이 현재의 순수한 담마를 부활시킨 것은 부분적으로 이 세 문헌(Patisambhidamagga, Petakopadesa, 및 Nettippakarana)을 숙독했기 때문입니다.

 

8. 대부분의 주석서가 없어지고 위에서 언급된 살아남은 세 편의 주석이 부각(중시)되지 않게 되면서, 사람들은 띠삐따까(Tipiṭaka)를 낱말별로 그대로 대응시켜 번역하기 시작했고, 이 관행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방 안의 코끼리 ㅡ 띠삐따까에 대한 직역’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 문제는 기원후 1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어의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악화되었습니다.

 

  • * 예를 들어, ‘아닛짜(anicca)’는 먼저 산스크리트어 ‘anitya’로 번역되었고, 그다음 동일한 산스크리트어 낱말 ‘anitya’가 아닛짜(anicca)에 대한 싱할라 번역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유사하게, ‘아낫따(anatta)’는 산스크리트어 ‘anāthma’로 번역되었고 다시 ‘아낫따(anatta)’에 대한 싱할라 낱말로 채택되었습니다. 이것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 모든 세월 동안 닙바-나(열반)에 도달하는 것을 막아 왔습니다. ‘아닛짜, 둑카, 아낫따 – 잘못된 해석’을 참조하세요.

  • * 또 다른 좋은 예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산스크리트어 ‘Pratītyasamutpāda’로 번역한 것입니다. 빠띳짜 사뭅빠-다 ㅡ '빠띠+이치차' + '사마+웁빠-다' 및 위키피디아(Wikipedia) 기사 ‘Pratītyasamutpāda’를 참조하세요.

  • * 그 참된 의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부 결정적으로 중요한 빠알리 낱말을 산스크리트어, 영어, 또는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많은 경우에, 필자는 원래 낱말(예: anicca, anatta, taṇhā)들을 그대로 쓰고 그것들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붓다께서는 띠삐따까를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하는 것을 금지하셨다

 

9. 붓다께서는 이것을 예견하셨고 띠삐따까(Tipiṭaka)를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베다 경전의 전문가인 Yameḷa와 Kekuṭa라는 이름의 두 브라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빅쿠가 되어 붓다께 빠알리 숫따를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해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 * 붓다께서는 산스크리트어는 마음이 고양된 브라만에 의해 개발된 음악적 상음/배음을 가진 언어라고 훈계하셨습니다. 따라서, 산스크리트어로 마가디(Maghadhi)(빠알리) 낱말의 참된 의미를 전달할 수 없었습니다. Chulavagga 5.33를 참조하세요. 붓다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을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하지 말라고 훈계(경고)하셨습니다.

  • *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 사이트의 영어 번역에서, ‘빠알리 낱말을 산스크리트어로 바꾸는(chandasa)’이 ‘metrical(운율의, 운문의)’로 오역되었습니다. ‘15. Minor matters (Khuddaka)’을 참조하세요. 관련된 빠알리 텍스트는 “Tena kho pana samayena yameḷakekuṭā nāma…”로 시작합니다. [역자주: 관련된 논의는 https://puredhamma.net/forums/topic/sanskrit-prohibited/ 참조]

 

10. 오늘날 한 가지 심각한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숫따(sutta)를 낱말별로 그대로 대응시켜 다른 언어로 번역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된 담마 짝까 빠왓따나 숫따(Dhamma Cakka Pavattana Sutta)는 몇 페이지로 번역됩니다.

 

 

붓다고사의 주석서

 

11. 마지막으로, 싱할라 주석서가 소실되기 조금 전에, 붓다고사는 그의 위숫디막가(Visuddhimagga)와 다른 책들을 사용하여 그 싱할라 주석서를 다시 빠알리어로 번역하고 편집했습니다.

 

  • * 비록 그가 (‘까시나_kasina’ 명상을 포함시키고 ‘아-나-빠나사띠 바-와나-_ānāpanasati bhāvanā’를 ‘호흡 명상’으로 대체하는 것과 같은) 많은 오류를 범했지만, 그는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청정도론)의 빠알리(Pāli) 버전에서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라는 낱말을 사용했습니다. ‘붓다고-사와 위숫디막가 ㅡ 역사적 배경’와 ‘붓다고-사의 위숫디막가 ㅡ 집중된 분석’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따라서 ‘아닛짜(anicca)’를 ‘무상(impermanence)’로 번역하고 ‘아낫따(anatta)’를 ‘무아(no-self)’로 잘못 번역한 것은 더 최근에 발생했을 수 있습니다. ‘초기 유럽 학자들의 아닛짜 및 아낫따에 대한 잘못된 해석’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제, 띠삐따까(Tipiṭaka)의 연대표를 체계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연대표 ㅡ 제1차 불교 (결집) 회의

 

12. 첫 번째 불교 회의는 마-가다(Māgadha)의 수도인 라-자가하(Rājagaha)에서 [부처님의] 빠리닙바-나(Parinibbāna) 3개월 후에 열렸습니다.

 

  • * 붓다께서 빠리닙바-나(Parinibbāna)에 드신 후 얼마되지 않아, 상가(Saṅgha)의 사실상의 수장(우두머리)인 마하깟사빠 존자(Ven. Mahakassapa)께서는 모두 아라한인 500명의 빅쿠를 선택하여 만나서 그 가르침의 권위 있는 버전을 편집하셨습니다.

 

13. 빠알리 위나야 삐따까(Pāli Vinaya Piṭaka) 중의 한 편인 쭐라왁가(Cullavagga)는 제1차 불교 회의에서 승인된 텍스트가 어떻게 편집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 * 우빨리 존자께서 위나야(Vinaya), 즉 위나야 삐따까(Vinaya Piṭaka)을 암송한 것을 기초로 규율 사항이 편집되었습니다.

  • * 그 다음 아난다 존자께서는 ‘담마(Dhamma), 즉 설법인 숫따 삐따까(Sutta Pitaka)를 암송하셨고, 이 암송을 기초로 숫따 삐따까(Sutta Pitaka), 즉 설법 모음집이 편집되었습니다. (아난다 존자께서는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셨고, 붓다께서 설하신 모든 숫따를 기억하셨다고 합니다.)

  • * 아비담마(Abhidhamma)는 불교 회의에 참석한 모든 아라한들이 암송했습니다. 비록 아라한들이 이 초기의 불교 회의에서 아비담마의 일부를 암송했지만, 제3차 불교 회의에 이르러, 그것이 캐논(Canon, 경전 전체)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삐따까(Piṭaka)로서 현재의 형태로 마무리(확정)되었습니다.

 

제3차 불교 회의에서 띠삐따까가 마무리되었다

 

14. 목갈리뿟따-띳사 테로께서는 제3차 불교 회의의 일련의 과정을 까타왓투(Kathavatthu)로 편집하셨으며, 까타왓투는 띠삐따까(Tipiṭaka, 삼장)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제3차 불교 회의 중에 아라한들은 (오늘날 이용가능한) 띠삐따까(Tipiṭaka)의 최종 버전을 편집했습니다. 제3차 불교 회의에서는 아비담마 삐따까(Abhidhamma Piṭaka)를 마무리(완성)하고 쿳다까 니까-야(Khuddhaka Nikāya)에 여러 편을 추가했으며 까타왓투(Kathavathu)를 추가하였습니다.

 

띠삐따까(Tipiṭaka, 삼장)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위나야 삐따까(Vinaya Piṭaka, 율장)는 크게 5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분별(Mahāvibhaṅga, 마하-위방가, 빅쿠계), 빅쿠니분별(Bhikkhunivibhanga, 빅쿠니위방가, 빅쿠니계), 대품(Maha-vagga, 마하왁가), 소품(Culla-vagga, 쭐라왁가), 및 부수(Parivara, 빠리와라, 규율의 전형)가 그것입니다. [역자주: 빅쿠계와 빅쿠니계는 중대한 범계(Prajika, 빠라지까), 경미한 범계(Pacittiya, 빠찟띠야), 등으로 나누어져 있음.]

 

2) 숫따 삐따까(Sutta Piṭaka)는 디가 니까-야(Digha Nikāya, 긴 설법 모음),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 중간 길이의 설법 모음), 상윳따 니까-야(Samyutta Nikāya, 관련 주제별 말씀 모음),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 Nikāya, 숫자로 배열된 설법 모음), 및 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āya, 그외 법문 모음)이라는 5가지 니까-야(Nikāya)로 구성됩니다.

 

3) 아비담마 삐따까(Abhidhamma Piṭaka)는 담마 상가니(Dhamma Saṅghani, 담마에 대한 분류/법집론), 위방가(Vibhanga, 분별론), 까타왓투(Kathavatthu, 논쟁 포인트/논사론), 뿍갈라 빤냣띠(Puggala Pannatthi, 개인에 대한 설명/인시설론), 다뚜까타(Dhatukatha(요소에 관한 논의/계설론), 야마까(Yamaka, 쌍대론), 및 빳타나(Patthana, 관계론/발취론)라는 범주로 구성됩니다. 목갈리뿟따 띳사 존자(Ven. Moggaliputta Tissa)께서는 제3차 불교 회의에서 까타왓투(Kathavatthu)를 편집하셨습니다.

 

  • * 그 모음은 오늘날 존재하는 띠삐따가(Tipiṭaka, 삼장), 즉 빠알리 캐논(Pāli Canon)입니다.

 

아비담마 삐따까는 제3차 회의에서 마무리되었다 

 

15. 부처님 시대에 사리뿟따 존자(Ven. Sariputta)에 의해 시작된 아비담마 삐따까(Abhidhamma Piṭaka)에 대한 결집 작업은 제3차 불교 회의가 되어서야 마무리(완성)되었습니다. 붓다께서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아비담마에 대한] 기본적인 틀만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시작된 빅쿠들의 계보에 의해 거의 250년에 걸쳐 완성되었습니다. 물론, 사리뿟따 존자는 부처님의 두 수석제자 중의 한 분이었습니다. 목갈라나 존자(Ven. Moggallana)는 신통력에 있어 탁월했고, 사리뿟따 존자(Ven. Sariputta)는 담마(Dhamma)에서 탁월했습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담마에 대한 앎(지혜)에서 부처님에 이어 두 번째였습니다.

 

  • * 수십억분의 1초보다 적은 시간 동안 지속되는 각 찟따(citta)로 17 생각(찟따/마음) 순간으로 이루어지는 찟따 위티(citta vithi, 찟따의 시리즈)의 구조에 대한 세부 사항은 오직 부처님만이 볼 수 있습니다. 붓다께서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기본 원리만 설명하셨습니다. 그 후, 사리뿟따 존자와 그 문하의 빅쿠 그룹(및 다음 세대로 이어진 그들의 계보 )은 궁극 실체(실재)부터 시작하여 아비담마(Abhidhamma)를 범주화하는 기념비적인 작업을 완료하였습니다.

  • * 빅쿠 보디(Bhikkhu Bodhi)는 그의 책 ‘Comprehensive_Manual_of_Abhidhamma’(2000년)에서 아비담마의 기원을 설명합니다. 책의 pp. 9-11를 참조하세요.

  • * 언급했듯이, (붓다께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요약 형태로 아비담마를 설명하신 후에) 아비담마 삐따까(Abhidhamma Piṭaka)를 편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그 작업을 끝내는 데 250년이 걸린 이유입니다.  아비담마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그것이 부처님의 작품임에 틀림없다고 깨달을 것입니다. 퓨어담마 웹 사이트의 ‘아비담마’ 섹션을 참조하세요.

  • * 아비담마 삐따까(Abhidhamma Piṭaka)는 숫따 삐따까(Sutta Piṭaka)와 완전히 일치합니다. 불일치(모순)되는 곳이 있다고 인식되면, 어떤 것이라도 필자는 그것에 대해 기꺼이 논의하겠습니다.

  • * 그러나,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를 얻기 위해 아비담마를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아비담마는 세세한 부분까지 파고 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추가 도구입니다. [세상] 현상이 어떻게 더 깊은 레벨에서 설명될 수 있는지 ‘본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경험입니다.

 

제4차 회의에서 띠삐따까가 기록(완료)되었다

 

16. 이 확대된 캐논(Canon, 경전)은 제3차 불교 회의에서 완성되었고, 그것은 기원전 1세기(기원전 29년)에 스리랑카의 알루위하라 사원(Aluvihara Monastery)에서 개최된 제4차 불교 회의에서 기록이 완료되었습니다. 빠알리(Pāli)의 자료는 싱할라(Sinhala) 언어로 기록되었습니다(‘빠알리_Pāli’는 그것의 문자가 없음).

 

  • * 빅쿠들은 뾰족한 철제 단검 같은 도구인 철필로 야자(종려)나무 잎에 글을 썼는데, 부드러운 잎에 글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베리(berry)로 만든 잉크를 전체 페이지에 문지르고, 잉크를 살살 제거하여 오목한 부분에만 잉크가 남아 있도록 했습니다. 띠삐따까(Tipiṭaka)는 또한 금박에도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이것들(금박에 기록된 것들)은 스투빠(stupā, 탑) 안에 묻을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Wikipedia) 기사 ‘Stupa’를 참조하세요.

 

띠삐따까를 다른 언어로 번역

 

17. 테라와다 불교는 기원후 1세기에 스리랑카에서 버마와 태국으로 전해졌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그 후 2세기에 걸쳐 라오스와 캄보디아 등 인접 국가로 확산되어 오늘날까지도 그 나라에서 순수하게 살아 남았습니다. (캄보디아에서는 1970년대 크메르 루즈 정권이 대부분의 빅쿠들을 학살했고, 붓다 담마는 사실상 소멸했습니다.)

 

  • * 그러나, 띠삐따까(Tipiṭaka)의 중국어/티베트어 버전은 인도에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티베트어 버전은 많은 수정/추가를 거친 것으로 보이며, 어떤 경우에는 원래 가르침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 * 스리랑카의 상가(Saṅgha)는 (대부분의 왕들의 도움으로) 가르침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데 자부심과 명예를 얻었지만, 불교는 인도와 중국, 일본, 티베트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원후 1200년경에 불교는 인도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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