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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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의 코끼리 ㅡ 띠삐따까에 대한 직역

 

원문: Elephants in the Room 섹션의 ‘“Elephant in the Room” – Direct Translation of the Tipiṭaka’ 포스트

- 2022년 2월 28일 작성; 2022년 3월 1일 개정; 2022년 10월 16일 개정 

 

띠삐따까 숫따에 대해서 낱말별로 그대로 대응시겨 직역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관행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모순에 의해 혼란스러워합니다.

 

‘방 안의 코끼리’ 

 

1. 위키피디아에서 인용하면, ‘방 안의 코끼리(the elephant in the room, 또는 the elephant in the living room)’라는 표현은 명백하거나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적어도 일부는 불편하고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당혹스럽거나 논란이 되거나 선동적이거나 위험하기 때문에 아무도 언급하거나 논의하고 싶어하지 않는 중요하거나 거대한 주제, 질문, 또는 논란 문제에 대한 은유적인 영어 관용구입니다. ‘Elephant in the room’를 참조하세요.

 

  • * 비록 빠알리 띠삐따까(Pāli Tipiṭaka)가 온전하게 남아 있지만, 오늘날 부처님의 가르침은 올바르게 전달되지 않고 있습니다. 붓다 담마에 관한 영어 웹사이트를 작성하고 토론 포럼에 참여한 지 여러 해가 지난 후, 그 근본원인이 서서히 필자에게 떠올랐습니다. 주된 문제는 숫따(sutta)를 낱말별로 그대로 대응시켜 직역하는 것입니다.

 

2. 필자는 지난 몇 달 동안 여러 포스트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에서 빠알리 핵심어의 왜곡’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분명한 증거를 제시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방 안의 코끼리’를 무시합니다. 그 다음, 필자는 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를 보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코끼리를 보지 못합니다. 따라서 이런 일련의 포스트가 필요합니다.

  • * 띠삐따까(Tipiṭaka)는 1800년대까지 어떤 언어로도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그 [번역] 관행은 1800년대에 유럽 학자들이 인도, 스리랑카, 그리고 많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 발견된 방대한 양의 빠알리어 및 산스크리트어 문헌들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3. 예를 들어, 띠삐따까(Tipiṭaka)를 싱할라어로 직접 번역한 것은 2005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습니다. 띠삐따까(Tipiṭaka)는 기원전 29년(2000여년 전)에 처음 기록된 이후로 빠알리어(싱할라 문자로 작성)로 남아 있었습니다.

 

  • * 그 시기 중에, 빅쿠들은 긴 설법이나 서면 주석을 통해 핵심 개념을 명확히 했습니다. 띠삐따까(Tipiṭaka)의 많은 숫따들은 구두 전승에 적합한 고도로 축약된 형태(‘웃데사_uddesa’ 버전)로 되어 있습니다(참고 자료 1). 그것은 삐따까(Tipiṭaka)가 부처님의 반열반 후에 초기 500여년 동안 구두로 전승되었기 때문에 필요했습니다.

  • * 빅쿠들은 그 숫따들의 깊은 개념을 그들의 모국어로 일반 대중에게 설명했습니다. 더욱이, 붓다 시대 중에 빠알리어로 세 편의 주석이 작성되었습니다. 그 세 주석의 싱할라어 버전에 따르면, 하나는 사리뿟따 존자께서 작성한 것이고, 다른 두 개는 마하-깟짜-나(Mahākaccāna 또는 Mahākaccāyana) 존자께서 작성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 * 붓다께서 반열반하신 지 약 200년 후(즉, 약 2300여년 전), 스리랑카의 마힌다(Mahinda) 존자께서 싱할라어로 주석(Sinhala Atthakathā)을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 * 약 2000년 전에 나뭇잎에 글을 쓰는 것이 더 널리 퍼졌을 때(그러나, 여전히 힘든/지루한), 아라한들의 모임은 빠알리 띠삐따까(Pāli Tipiṭaka)와 세 개의 원래 주석을 기록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약 60권의 띠삐따까(Tipiṭaka)를 구성합니다.

 

마하-야-나가 테라와-다에 영향을 주다

 

4. 붓다께서 반열반하신지 500여년 이내에, 인도의 대승교도(Mahāyānist)들은 테라와다 붓다 담마와는 이질적인 개념들을 다듬을 뿐만 아니라 추가/통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수정/개정 과정을 시작한 사람들은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를 대체하여 더 간단하고 혁신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들을 자신들의 용어(‘아니트야_anitya’ 및 ‘아나-트마_anātma’)로 정의한 다음, 더 많은 개념을 만들어 냄으로써 해당 용어를 설명하는 미끄러운 경사로(slippery slope)에 빠졌습니다. 그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많은 대승 문헌을 영어로 번역한 에드워드 콘즈(Edward Conze)의 말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참고 자료  2).

 

  • * “……기원전 약 100년(부처님의 빠리닙바-나로부터 약 400년 후)에, 인도의 많은 불교도들은 기존 교리가 진부하고 쓸모없게 되었다고 느꼈다. 담마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인구, 새로운 사회 환경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항상 새로운 재형성을 필요로 한다는 확신에서, 그들은 결국 대승불교로 알려지게 된 새로운 문헌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이 문헌의 창작은 인류 역사에 알려진 가장 중요한 창조적 에너지의 분출 중 하나이며, 약 4~5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그들은 [기존 교리의] 반복만으로는 종교를 활발하게 유지할 수 없다고 믿었다. 끊임없는 혁신으로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그 종교는] 화석화되고 생명력을 주는 자질을 잃게 될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1800년대에 불교의 빈약한 상황

 

5. 이 논의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을 완성하기 위해 1800년대 불교의 슬픈 상황을 간단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 * 포르투갈, 네덜란드,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국의 침략은 1498년부터 4세기에 걸쳐 계속되었습니다. ‘Portuguese presence in Asia’를 참조하세요. 그것은 모든 아시아 국가(스리랑카, 인도, 버마, 태국, 등)에서 붓다 담마의 급격한 쇠퇴로 이어졌습니다.

  • * 불교는 1800년대까지 인도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승불교(Mahāyāna Buddhism)는 부처님의 반열반으로부터 불과 500여년 후에 인도에서 일어나 여러 세기 동안 번성했습니다. 대승불교의 그 전성기는 스리랑카와 다른 아시아 국가의 테라와다 불교(Theravāda Buddhism)를 타락시켰습니다. 참고 자료 2를 참조하세요.

  • * 다음 비디오는 싱할라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스리랑카에서 가장 큰 불탑 중 하나인 Ruwanvalisāya의 복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 프로젝트는 수십 년이 걸렸고 당시 스리랑카에 있는 영국 총독의 도움으로 완료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복원되기 전의 1800년대 불교 사원과 불탑의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hLRv63nugyk 

  • * 1800년대 초반 Ruwanvalisāya의 사진은 재생시각 1분 10초 경에 있습니다. 1869년까지 빅쿠들을 위한 작은 집(꾸띠)이 지어졌습니다(재생시각 1분 30초 경). 1921년까지도 완전한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위키피디아(Wikipedia) 기사 ‘Ruwanwelisaya’를 참조하세요.

 

1800년대에 시작하여 불교가 부흥

 

6. 1800년대에 불교는 일부 영국 공무원의 노력으로 부흥기를 맞았습니다.

 

  • * 그들은 룸비니(Lumbini)와 같은 많은 주요 불교 유적지와 인도의 아소카 기둥까지 폐허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인도에서 많은 산스크리트어 문헌과, 스리랑카, 버마 등에서 빠알리어 문헌을 발견했습니다.

  • * 그 공무원들은 아시아 국가들에서 방대한 역사적 문헌/문서를 수집하는데 협력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띠삐따까(Tipiṭaka) 문헌뿐만 아니라 마하-야나(Mahāyāna) 및 베다(Vedic) 문헌도 포함되었습니다. 유럽 국가의 학자들은 그것들을 분류하고 그 새로운 개념들을 파악(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 그러나, 테라와다 빅쿠들조차도 그 당시에 이미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를 산스크리트어 아니트야(anitya)와 아나-트마(anātma)와 동일한 것으로 잘못 번역하였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반열반 후 불과 500여년에 일어난 대승불교(Mahāyāna Buddhism)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위 #4 및 참고 자료 3을 참조하세요.

 

Charles Allen의 책 ‘In Search of the Buddha’

 

7. 그 유럽 선구자들이 어떻게 아쇼카 기둥에 새겨진 글들과 방대한 양의 빠알리 및 산스크리트 문헌을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자는 Charles Allen의 ‘The Search for the Buddha’(2003년) 책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그의 가족은 여러 세대 동안 영국 정부에서 일하며 인도에 있었고, 그는 인도에서 태어났습니다.

 

  • * 이 책에는 복원되기 전 인도의 많은 유적지에 대한 많은 정보와 사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1799년에 찍은 마하보디 사원의 사진이 p. 147에 있습니다.

  • * 붓다 담마를 밝히는데(발굴하는데) 일생을 바친 사람들의 노력에 대해 읽는 것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그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4의 비디오에서 보듯이 스리랑카를 비롯한 불교 국가들의 역사적 유적지도 황폐해졌습니다. Charles Allen의 책은 인도에 중점을 둡니다.

  • * 그 공무원/유럽 학자들은 현재 불교의 부흥에 주된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의도하지 않게 이전에 테라와-다 개념에 가해진 몇 가지 결정적 손상(특히 아닛짜와 아낫따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굳혔습니다.

 

2개의 외국어로 쓰여진 3가지 새로운 종교 개념을 해독하는 작업을 상상해 보세요! 

 

8. 인도에는 산스크리트어 문헌이 있었습니다. 인도에서는 테라와-다(Theravāda)에 관한 빠알리어 문헌이나 마하-야-나(Mahāyāna, 대승)에 관한 산스크리트어 문헌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 대부분, 테라와-다(Theravāda)에 관한 빠알리어 문헌은 스리랑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는 테라와-다(Theravāda)에 관한 빠알리어 문헌뿐만 아니라 마하-야-나(Mahāyāna)에 관한 산스크리트어 문헌이 발견되었습니다. ‘Sanskrit Buddhist Literature’를 참조하세요.

  • * 그 유럽 학자들이 직면한 과제의 중대함은 테라와-다(Theravāda), 마하야-나(Mahayāna,), 및 베다(Vedic) 문헌에 세 가지 다른 개념이 관련/수반되어 있음을 깨달을 때 분명해집니다.

  • * 그 후 유럽 대학의 많은 학자들이 띠삐따까(Tipiṭaka)를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현지 전문가’로부터 (빠알리어와 산스크리트어 뿐만 아니라) 불교의 개념을 배울 필요가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붓다 담마에 대한 깊은 앎을 지닌 빅쿠가 없었습니다.

  • * 그때부터 띠삐따까(Tipiṭaka)를 낱말별로 그대로 대응시겨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관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학문적 자격(학력)으로는 붓다 담마를 가르치기에 충분하지 않다

 

9. 그 유럽 학자들은 방대한 모음의 역사적 문서를 해석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노력들은 Charles Allen의 책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Rhys Davids 교수가 그 학자 중 한 사람이였으며, 대부분의 현재 해석은 그의 연구(물)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 * Rhys Davids, Eugene Burnouf 및 다른 사람들의 원본 번역에 따라, Malalasekara(Rhys Davids의 박사 과정 학생)와 같은 동시대 싱할라 학자들은 유럽인들로부터 불교를 ‘배웠고’ 잘못된 해석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 * Kalupahana 및 Jayathilake와 같은 다른 싱할라 학자들도 영국의 대학에서 ‘불교’를 배웠고(불교에 대한 박사 학위 취득) 영어와 싱할라어로 책을 저술했습니다.

  • * 물론, 다른 불교 국가의 학자들도 자신들의 언어로 그렇게 했고 잘못된 해석이 전세계로 퍼졌습니다.

 

10. 필자는 '학자'들의 의견이 왜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잘못되기 쉬운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였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필자는 Rhys Davids, Burnouf, Muller 및 다른 사람들이 그 당시에 한 일을 존경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그들의 의도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왜곡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현재 학자들의 잘못도 아닙니다.

 

  • * 강조하자면, 붓다 담마는 최소한 소따빤나 단계에 이른 부처님의 참된 제자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 * 붓다 담마를 가르치는 것에 관한 한, 학문적 자격(학력)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 유럽 학자들에게는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들은 부처님의 핵심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메시지는 재탄생 과정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으며 참된 불교도의 목표는 재탄생 과정을 멈추고 닙바-나(열반)을 얻는 것입니다.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붓다 담마의 기본 틀(Basic Framework of Buddha Dhamma)’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요약 및 향후 포스트들

 

11. 위 서술은 필요한 역사적 배경을 제공합니다.

 

  • * 필자가 향후 포스트에서 집중하고자 하는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띠삐따까(Tipiṭaka)를 낱말별로 그대로 대응시켜 직역하는 것은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입니다. 다음 포스트에서 그것을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 * 물론, 그 관행을 시작한 그 유럽 학자들은 그것이 잘못된 접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 * 지난 20여년 동안, 띠삐따까(Tipiṭaka)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유포되기 시작했습니다. 와하라까 테로(Waharaka Thero)님의 설명은 처음에는 스리랑카에서, 그 다음에는 해당 국가에 거주하는 스리랑카인에 의해 다른 국가에 점점 더 널리 퍼졌습니다.

 

12. 와하라카 테로(Waharaka Thero)께서는 어떻게 그러한 정확한 해석을 할 수 있었을까요?

 

  • * 와하라카 테로(Waharaka Thero)님은 자신이 선언한 바와 같이 자-띠 소따빤나(jāti Sotapanna, 태어날 때부터 소따빤나)였습니다. 일단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면, 미래 생(삶)에 걸쳐 그 깊은 이해를 잃지 않습니다.

  • * 그러나, 와하라까 테로(Waharaka Thero)님은 단순한 자-띠 소따빤나(jāti Sotapanna) 그 이상이었습니다. 소따빤나(Sotapanna)는 자신이 그 개념들을 이해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그 개념을 설명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설명하는 능력)은 빠띠삼비다- 냐-나(Paṭisambhidā Ñāna)를 가진 사람만의 독특한 능력입니다.

 

13. 그러한 해석이 올바르다고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 * 현대 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궁극적인 테스트는 ‘자기 일관성(자기 모순없음)’입니다. 아라한들이 편집하고 작성한 띠삐따까(Tipiṭaka)는 완전히 자기 일관성(self-consistent, 자기 모순없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해석도 띠삐따까(Tipiṭaka) 안에서도 또한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 * 필자는 먼저 대부분의 현재 해석이 노골적으로 자기 모순적(self-contradictory)이라는 것을 보여주겠습니다. 어린 아이도 그러한 모순을 볼 수 있습니다. 필자는 먼저 그런 모순의 많은 예를 제시할 것입니다.

  • * 그 다음, 필자는 또한 와하라까 테로(Waharaka Thero)님의 해석이 완전히 자기 일관성(self-consistent, 자기 모순없음)이 있음을 보여줄 것입니다.

  • * 필자는 토론 포럼의 코멘트(의견)를 환영합니다

 

참고 자료

 

1. 웃데사, 닛데사, 및 빠띠닛데-사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숫따 해석 ㅡ 웃데-사, 닛데-사, 빠띠닛데-사’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2. 에드워드 콘즈(Edward Conze)의 ‘A Short History of Buddhism’ (1980년)

3. ‘초기 유럽 학자들의 아닛짜 및 아낫따에 대한 잘못된 해석’ 포스트의 그 분석을 이 시리즈에서 나중에  확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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