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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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유럽 학자들의 아닛짜 및 아낫따에 대한 잘못된 해석

 

원문: Historical Background 섹션의 ‘Misinterpretation of Anicca and Anatta by Early European Scholars’ 포스트

- 2017년 4월 29일 작성; 2018년 8월 14일 개정; 2022년 2월 24일 개정; 2023년 5월 20일 개정

 

소개

 

1. 테라와다 붓다 담마(Thēravada Buddha Dhamma)의 타락(질적 저하)은 지난 1500여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급격한 왜곡이 일어났습니다.

 

  1. 1) 핵심 빠알리 낱말인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는 1500여년 전 붓다고사 시대 이전에도 아시아 불교 국가에서 산스크리트어 ‘아니트야(anitya)’와 ‘아나-트마(anātma)’의 의미를 주는 것으로 잘못 번역되었습니다. 그것은 테라와-다 불교(Theravāda Buddhism)에 대승(Mahāyāna)이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그 변화들은 1800년대 후반에 초기 유럽 학자와 인쇄기의 영향으로 뿌리를 내렸습니다.

  2. 2) 붓다고사는 1500여년 전, 그의 주석서인 위숫디막가(Visuddhimagga)에 힌두 명상 기법을 도입하였습니다.

 

2. 현재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섹션인 ‘역사적 배경’에 있는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지만, 최소한 ‘잘못된 테라와다 해석 ㅡ 역사 연대기’로 시작하는 포스트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 * 이 섹션의 이전 포스트들에서 설명했듯이, 대승(Mahāyāna), 선(Zen), 및 티베트(Vajrayāna)를 기반으로 한 여러 파에서 분파를 통해 붓다 담마에 대한 더 심한 왜곡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열반 후 약 500년 경, 즉 약 2000여년 전 인도에서 대승(Mahāyāna)이 부상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 * 지난 2000여년 동안 점차적으로 붓다 담마의 타락(질적 저하)이 일어났습니다. 그 기간 동안 두 가지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는데, (i) 마하-야-나(Mahāyāna)의 영향으로 인해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를 ‘아니트야(anitya)’와 ‘아나-트마(anātma)’로 잘못 해석한 것과, (ii) 1500여년 전 붓다고사(Buddhaghosa)가 힌두 명상 기법을 도입한 것이 그것입니다.

  • * 그것들은 유럽 학자들이 1800년대 후반에 띠삐따까(Tipiṭaka)와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모두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채택되어,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 논의의 배경

 

3. 현재 논의의 맥락을 세우려면, 다음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 * 빠알리어(Pāli)는 ‘음성 언어(구어)’(대부분의 경우에 소리가 의미를 나타내며, 특히 핵심어에 대해 그러함)입니다. 빠알리어는 붓다께서 사용하신 마-가디(Māgadhi, Maga Adhi, ‘성스런 길’을 의미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빠알리 문법을 발전(개발)하려는 시도는 약 1000여년 전에 이루어졌습니다.

  • * 또한, 빠알리어(Pāli)에는 문자(글자)가 없습니다. 2000여년 전에 작성된 원래의 띠삐따까(Tipiṭaka)는 싱할라 문자(글자)로 되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역사적 배경’에 있습니다.

 

4. 주어진 빠알리 낱말을 영어로 작성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1800년대 후반에 띠삐따까(Tipiṭaka)를 번역하는 어려운 일을 맡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학자들이 다루어야 할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 * 이제 두 가지 별도의 핵심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띠삐따까 영어(Tipiṭaka English)’ 규약은 빠알리 음을 보존하면서 텍스트를 짧게 하기 위해 1800년대에 채택되었습니다. ‘초기 유럽 학자들이 채택한 '띠삐따까 영어' 규약 ㅡ 제1부’을 참조하세요. 따라서 빠알리 낱말 ‘අත්ත’은 ‘표준 영어’에서는 ‘aththa’로 쓰지만, ‘띠삐따까 영어’에서는 ‘atta’로 씁니다. 이것은 좋은 단계(걸음)였습니다.

  • * 두 번째 문제는 훨씬 더 결정적입니다. 바로 핵심 빠알리 낱말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이 특별한 경우에, 그들(학자들)은 ‘atta(අත්ත)’라는 낱말을 ‘자아(self)’로 번역했습니다. 그 번역은 잘못된 것이지만, 위에서 간략하게 설명했듯이 그 당시에는 논리적인 단계이기도 했습니다.

  • * 이제 Rhys Davids, Eugene Burnouf, 및 Edward Muller와 같은 초기 번역자들이 그 의미를 선택한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띠삐따까는 최근까지 번역되지 않았다

 

5. 우리의 주요 논의로 돌아가겠습니다. 띠삐따까(Tipiṭaka)는 2005년까지 싱할라어로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기원전 29년(2000여년 전)에 처음 기록된 이후로 빠알리어(싱할라 문자로 작성)로 남아 있었습니다. 띠삐따까(Tipiṭaka)에 있는 숫따들을 낱말별로 그대로 대응시켜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관행은 아마도 아래에서 논의하는 것처럼 유럽인들과 함께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 * 2000여년 전에 기록되기 전에 띠삐따까(Tipiṭaka)는 500년 이상 동안 구두로 전해졌습니다. 그것은 암송하고 기억하기 쉽도록 특별하고 축약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 띠삐따까(Tipiṭaka)는 단지 낱말별로 그대로 대응시켜 번역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숫따 해석 ㅡ 웃데-사, 닛데-사, 빠띠닛데-사’ 포스트와 ‘띠삐따까에 대한 낱말별 번역(Word-for-Word Translation of the Tipiṭaka)’ 서브섹션의 포스트에 자세히 논의되어 있습니다.

  • * 띠빠따까(Tipiṭaka)를 싱할라어로 번역하는 대신, 스리랑카의 아라한들(마힌다 존자를 포함)은 띠삐따까(Tipiṭaka)에 있는 핵심 개념을 설명하는 싱할라 주석서(‘Sinhala Atthakathā’라고 함)을 썼습니다. 구두로 설법하는 동안, 빅쿠들은 이 개념들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 * 그러나 그 모든 싱할라 앗타까따(Sinhala Atthakathā)는 소실되었고, 우리는 (위숫디막가를 포함하여) 서기 500년경 이후에 작성된 주석서만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에는 많은 오류가 있습니다. ‘붓다고-사와 위숫디막가 ㅡ 역사적 배경’을 참조하세요. 이전 포스트인 ‘붓다고사의 위숫디막가 ㅡ 집중된 분석’에서 가리켜 보인 바와 같이,  붓다고사(Buddhaghosa)는 빠알리어(Pāli)(붓다고사는 스링랑카에 있는 동안 빠알리어를 배웠음)로 위숫디막가(Visuddhimagga)를 작성했다는 것을 주목하세요.

 

6. 붓다고사(Buddhaghosa)는 위숫디막가(Visuddhimagga)에서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라는 낱말을 사용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니트야(anitya)’와 ‘아나-트마(anātma)’라는 낱말이 빠알리어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싱할라어 문헌에서는 ‘아니트야(anitya, අනිත්ය)’와 ‘아나-트마(anātma, අනාත්ම)’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에 대한 싱할라 낱말은 අනිච්ච와 අනත්ත입니다(발음이 동일). 오늘날에도 빠알리 띠삐따까(Pāli Tipiṭaka)에는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라는 낱말이 있지만, 나란히 있는 싱할라 번역에 අනිත්ය과 අනාත්ම이 있습니다(낱말별로 번역한다고 해도 අනිච්ච와 අනත්ත로 해야 함에도)!

 

  • * 따라서, 냐나몰리(Nynamoli) 빅쿠는 위숫디막가(Visuddhimagga)를 영어로 번역할 때 그도 අනිත්ය(anitya) 및 අනාත්ම(anātma)에 해당하는 ‘impermanence’(무상)과 ‘no-self’(무아)라는 낱말을 사용했습니다.

  • * 이 포스트의 이전 버전에서, 필자는 유럽 학자들이 산스크리트어의 낱말 아니트야(anitya) 및 아나-트마(anātma)와 동일하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를 오역했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테라와다 불교도들도 이미 그 전환을 했습니다. 그것은 AD 100~200년쯤 인도에서 마하-야나(대승)불교가 절정을 이루고 있는 동안에 일어났을 것입니다. 

 

빠알리와 산스크리트 문헌으로 혼란

 

7. 그 유럽인들은 인도에서 산스크리트어 베다 문헌을 처음 접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스리랑카, 버마 및 기타 국가에서 빠알리 텍스트를 발견했습니다. 그 시간 순서는 주목해야 할 결정적인 것입니다.

 

  • * 영국인이 도착할 무렵에는 인도에서 불교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인도에는 부처님의 빠리닙바-나(반열반)로부터 약 300년 후에 아쇼카 황제가 만든 돌기둥인 ‘Pillars of Ashoka’에 새겨진 것을 제외하고는 빠알리 문헌이 없었습니다.

  • * 또 다른 결정적인 점은 빠알리어(Pāli)는 인도에서 널리 사용된 언어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쇼카 황제의 통치를 포함하여 몇 세기 동안 불교가 번성하는 동안 인도에 잠깐 나타났습니다.

 

찰스 앨런의 책 ‘The Search for the Buddha’

 

8. 그 유럽 선구자들이 어떻게 아쇼카 기둥에 새겨진 글들을 해석하고 나중에 띠삐따까(Tipiṭaka) 자체를 번역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자는 Charles Allen의 ‘The Search for the Buddha’(2003년) 책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그의 가족은 여러 세대 동안 영국 정부에서 일하며 인도에 있었고, 그는 인도에서 태어났습니다.

 

  • * 이 책에는 복원되기 전 인도의 많은 유적지에 대한 많은 정보와 사진이 있습니다. 붓다 담마를 발굴하는 데 일생을 바친 사람들의 노력에 대해 읽는 것은 참으로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 책에는 나와 있지 않았지만 스리랑카와 다른 불교 국가의 유적지도 황폐해졌습니다. 또한, ‘방 안의 코끼리 ㅡ 띠삐따까에 대한 직역’ 포스트의 #5를 참조하세요. 

  • * 다음 동영상은 싱할라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스리랑카에서 가장 큰 불탑 중 하나인 Ruwanvalisāya의 복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 프로젝트는 50년이 넘게 걸렸고 스리랑카에 있는 영국 총독의 도움으로 완료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복원되기 전의 1800년대 불교 사원과 불탑의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hLRv63nugyk 

  • * 그 모든 아시아 국가(스리랑카, 인도, 버마, 태국 등)에서 불교 자체는 오늘날보다 훨씬 열악한 상태였습니다. 그 유럽 학자들은 현재의 불교 부흥에 굉장히 공헌하였습니다.

 

9. 그 유럽 선구자들은 산스크리트어와 빠알리어가 매우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들은 관련이 있지만 유용한 방식으로는 아닙니다. 산스크리트어는 많은 빠알리 용어를 채택했지만 ‘세련되게(정교하게) 들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참된 의미는 그렇게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 * 예를 들어, 빠알리어(Pāli)의 ‘pabhassara’는 산스크리트어(Sanskrit)에서 ‘prabhāsvara’가 되었습니다. 식견이 있는 사람은 빠알리(Pāli) 어원에서 ‘pabhassara’의 의미를 식별할 수 있지만( ‘빠밧사라 찟따, 빛나는 마음, 및 바왕가’ 참조), 산스크리트어 ‘prabhāsvara’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 * 또 다른 예는 Paṭicca Samuppāda( 빠띳짜 사뭅빠-다 ㅡ '빠띠+이치차' + '사마+웁빠-다' 참조)가 있는데, 산스크리트어 ‘Pratittyasamutpāda’로 개조(변형)된 것은 [낱말 자체가] 어떤 의미도 전달하지 않습니다.

 

1800년대의 불교 상황 

 

10. 이 논의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을 완성하기 위해, 1700년대에 시작된 불교의 ‘시간 진화(time evolution)’를 강조하겠습니다.

 

  • * 포르투갈, 네덜란드,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국의 침략은 1498년부터 4세기에 걸쳐 계속되었습니다. ‘Portuguese presence in Asia’를 참조하세요. 이것은 모든 아시아 국가에서 붓다 담마의 급격한 쇠퇴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경향은 1800년대에 일부 영국 공무원들의 통찰력으로 마침내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필자가 위 #8에서 Charles Allen의 책을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 * 그 공무원들과 유럽 국가에 있는 여러 학자들의 노력으로, 아시아 국가에서 발견된 방대한 역사적 문헌/문서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데 공동(협동) 노력이 착수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띠삐따까(Tipiṭaka) 문헌뿐만 아니라 마하-야-나(Mahāyāna) 및 베다(Vedic) 문헌도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테라와다 빅쿠들조차도 그 당시에 이미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를 산스크리트어 아니트야(anitya)와 아나-트마(anātma)와 동일한 것으로 잘못 번역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 * 그 당시에는 깊은 통찰력을 가진 참된 불교 학자가 없었습니다. 위의 #8의 동영상에서 불교 사찰의 상태를 통해, 우리는 당시 아시아 국가의 불교 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학력은 붓다 담마를 가르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11. 그 유럽 학자들은 방대한 모음의 역사적 문서를 해석하는 데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노력들은 Charles Allen의 책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Rhys Davids 교수가 그 학자 중 한 사람이였으며, 대부분의 현재 해석은 그의 연구(물)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 * Rhys Davids, Eugene Burnouf 및 다른 사람들의 원본 번역에 따라 Malalasekara(Rhys Davids의 박사 과정 학생)와 같은 동시대 싱할라 학자들은 유럽인들로부터 불교를 ‘배웠고’ 잘못된 해석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 * Kalupahana 및 Jayathilake와 같은 다른 싱할라 학자들도 영국의 대학에서 ‘불교’를 배웠고(불교에 대한 박사 학위 취득) 영어와 싱할라어로 책을 저술했습니다.

  • * 물론, 다른 불교 국가의 학자들도 자신들의 언어로 그렇게 했고 잘못된 해석이 세계로 퍼졌습니다.

  • * 그래서, 필자는 '학자'들의 의견이 왜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잘못되기 쉬운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였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필자는 Rhys Davids, Burnouf, Muller 및 다른 사람들이 그 당시에 한 일을 존경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그들의 의도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왜곡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현재 학자들의 잘못도 아닙니다.

  • * 정말 강조하자면, 붓다 담마는 최소한 소따빤나 단계에 이른 부처님의 참된 제자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붓다 담마를 가르치는 것에 관한 한, 학력(학력 자격)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 유럽학자들에게는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들은 부처님의 핵심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메시지는 재탄생 과정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으며 참된 불교도의 목표는 재탄생 과정을 멈추고 닙바-나(열반)을 얻는 것입니다.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붓다 담마의 기본 틀(Basic Framework of Buddha Dhamma)’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띠삐따까는 야자(종려)나무 잎에 쓰여졌다

 

12. 대량 인쇄는 최근까지 가능하지 않았고 1800년대에야 보편화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Printing press’를 참조하세요.

 

  • * 초기에, 띠삐따까(Tipiṭaka)는 특별히 준비된 잎에 쓰여졌으며, 그것들이 퇴화하기 전에 100~200년마다 손으로 다시 쓰여져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의 2000년에 걸쳐 이 일을 충실하게 행한 스리랑카의 빅쿠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은 또 다른 중요한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그 과정은 2000여년 동안 싱할라 문자의 모든 변화를 자동적으로 고려했습니다!붓다 담마의 보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따라서 책의 대량 생산(인쇄)은 1800년대 중반에 새로운 회전식 인쇄기로만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 핵심 개념들이 잘못 번역되었을 때쯤에는 인쇄가 널리 퍼졌습니다.

  • * 빠알리 성전 협회(The Pāli Text Society)는 1881년 Rhys Davids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그 번역본을 인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왜곡된 영어 번역'이 전 세계에 퍼진 것은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 * 운좋게도, 우리는 여전히 원본 빠알리 띠삐따까(Pāli Tipiṭaka)와 3개의 원래 주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 * 이 3개의 원래 빠알리 주석의 도움으로, 와하라까 테로(Wahraka Thero)께서는 지난 25년 정도 동안에 부처님의 가르침(의 올바른 해석)을 ‘재발견’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불행히도, 와하라까 테로(Wahraka Thero)께서는 최근에 (안따라) 빠리닙바-나(Prinibbāna)에 드셨습니다. ‘와하라까 테로의 빠리닙바-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부처님은 띠삐따까를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하는 것을 금하셨다

 

13. 붓다께서는 띠삐따까(Tipiṭaka)의 직역 문제를 예견하셨습니다. 붓다께서는 띠삐따까(Tipiṭaka)를 모든 언어, 특히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베다 경전의 전문가인 Yameḷa와 Kekuṭa라는 이름의 두 브라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빅쿠가 되어 붓다께 빠알리 숫따를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해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 * 붓다께서는 산스크리트어는 마음이 고양된 브라만에 의해 개발된 음악적 상음/배음을 가진 언어라고 훈계하셨습니다. 따라서, 산스크리트어로 마가디(Maghadhi)(빠알리) 낱말의 참된 의미를 전달할 수 없었습니다. Chulavagga 5.33를 참조하세요.

  • *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 사이트의 영어 번역에서, ‘빠알리 낱말을 산스크리트어로 바꾸는(chandasa)’이 ‘metrical(운율의, 운문의)’로 오역되었습니다. ‘1. Khuddakavatthu’의 번역인 ‘15. Minor matters (Khuddaka)’을 참조하세요. 관련된 빠알리 텍스트는 끝 부분 가까이에 있으며  “Tena kho pana samayena yameḷakekuṭā nāma…”로 시작합니다. [역자주: 관련된 논의는 https://puredhamma.net/forums/topic/sanskrit-prohibited/ 참조]

 

띠삐따까에 대한 주석서의 역할

 

14. 그러므로, 스리랑카에서는 2000여년 동안 띠삐따까(Tipiṭaka)가 싱할라어로도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띠삐따까(Tipiṭaka)를 확장하고 설명하기 위해 싱할라어로 주석서가 작성되었습니다.

 

  • * 불행히도, 띠삐따까(Tipiṭaka)에 포함된 빠알리어로 된 세 개의 주석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실되었습니다. ‘붓다고-사와 위숫디막가 ㅡ 역사적 배경’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위의 설명으로, 우리는 1800년대 후반에 확립된 그 표준들이 왜 실제로는 붓다 담마를 왜곡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빠알리어는 독특한 언어다

 

15. 빠알리어가 어떤 다른 현대 언어와 다르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는 낱말을 발음하는 방식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다시 강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 빠알리어는 그 자체의 문자(글자)가 없습니다. 띠삐따까(Tipiṭaka)는 싱할라 문자를 사용하여 빠알리어로 기록되었습니다.

  • * 붓다께서 직접 훈계하셨듯이, 산스크리트 낱말은 빠알리 낱말의 의미를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많은 빠알리 낱말이 ‘산스크리트화’되었고 많은 혼란으로 이어진 이유입니다. 예를 들어, 산스크리트어에는 아낫따(anatta)에 해당하는 낱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산스크리트어 ‘아나-트마(anātma)’는 ‘아낫따(anatta)’의 번역으로 자주 사용됩니다. 아낫따(anatta)는 무아(no-self)를 의미하지 않지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나-트마(anātma)’는 그 의미를 갖습니다.

  • * 어떤 경우에는 빠알리어-영어 사전이 유용할 수 있지만, (anicca, anatta, pabha, 등) 잘못된 해석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빠알리 사전들 ㅡ 그것들은 믿을 만한가?’를 참조하세요.

 

‘산(san)’은 빠알리어에서 독특한 낱말이다

 

16. 수천 년 동안 그 의미가 숨겨져 있던 핵심 빠알리 낱말은 ‘산(san)’(영어 낱말 son 처럼 발음됨)입니다.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삼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7. 담마빠다(Dhammapada) 게송에, 

“Aneka jāti sansāram

sandā vissan anibbisan

gahakaram gavesan to

dukkhā jāti punappunam”이 있습니다.

 

  • * 위 게송에 ‘산(san)'이 들어가는 곳이 네 군데 있습니다. 이 게송은 붓다께서 깨달음을 이룬 순간에 느껴진 강렬한 기쁨을 담고 있습니다.

  • * ‘산(san)’이라는 낱말은 띠삐따까(Tipiṭaka)에 매우 자주 나타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삼사-라(saṁsāra)’, ‘삼빠-데따(sampādeta)’, ‘삼마(Samma)’와 같이 많은 낱말 조합에서 ‘삼/상(saṁ)’으로 운이 맞추어지는 사실로 인해 종종 가리워졌습니다.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삼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잘못된 해석이 널리 유포되는 데 있어 인쇄기의 중요한 역할 

 

18. 인쇄기는 1843년에 회전식 인쇄기가 발명된 후에야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Printing press’를 참조하세요. 위에서 지적했듯이, Rhys Davids는 1881년에 띠삐따까(Tipiṭaka)의 영어 번역판을 출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 초기 유럽 학자들의 잘못된 해석이 널리 퍼졌습니다!

 

  • * 그때까지, 빠알리 띠삐따까(Pāli Tipiṭaka)의 인쇄된 버전은 특별히 준비된 올라(야자나무) 잎에 있었습니다. ‘붓다 담마의 보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 포스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그 작업은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빅쿠들은 옛판이 퇴화하기 시작할 때 대략 100년마다 띠삐따까 자료들을 계속해서 다시 썼습니다.

  • * 결정적인 점은 원래 띠삐따까(Tipiṭaka) 버전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쇄기가 발명될 때까지는 널리 보급되지 않았으며, [그 발명으로] 잘못된 해석이 널리 유포되는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Rhys Davids는 1881년에 띠삐따까(Tipiṭaka)의 영어 번역판을 출판하기 시작했습니다.

  • * 이것이 싱할라에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와 같은 핵심어(키워드)에 대한 올바른 해석에 대한 기록이 없는 이유입니다. 그 해석들은 원래의 싱할라 주석서(Sinhala Atthkathā)에 있었습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 * 인쇄기의 발명은 초기 유럽 학자들이 (의도하지 않게) 생각해 낸 잘못된 해석을 퍼뜨리는 결정적인 요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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