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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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밧사라 찟따, 빛나는 마음, 및 바왕가

 

원문: Abhidhamma 섹션의 ‘Pabhassara Citta, Radiant Mind, and Bhavaṅga’ 포스트

- 2017년 4월 13일 작성; 2018년 1월 19일 개정; 2021년 2월 14일 개정; 2023년 7월 28일 개정

 

정말 놀라운 속도로 빠른 생각(찟따)의 순간적 진화’ 포스트와 ‘윈냐-나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를 먼저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생각’은 수십억의(무수한) 찟따의 결과다

 

1. 1초에(순식간에) 수십억의 찟따(citta)가 흐르고,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수십억의(무수한) 찟따(citta)의 누적 효과이며, 이것을 우리는 ‘생각’이라고 부릅니다. 찟따(citta)(대략 ‘생각’이라고 번역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의 기본 상태에서 시작하겠습니다. 모든 마음에는 7가지 공통 쩨-따시까(cētasika, 정신요소)가 있습니다. 공통 쩨-따시까(universal cētasika)는 ‘생각(찟따) 안에 무엇이 있는가? 가띠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포스트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 * 그 7가지 공통 쩨-따시까(universal cētasika)는 팟사(phassa, 접촉), 산냐-(saññā, 지각), 웨다나-(vedanā, 느낌), 쩨따나-(cetanā, 의도), 에깍가따(ekaggata, 한 대상에 집중), 지위띤드리야(jivitindriya, 생명 기능), 및 마나시까-라(manasikāra, 기억/상기)입니다. 이것은 10억분의 1초밖에 지속되지 않으며, 찟따(citta)의 ‘기준(baseline)’ 상태입니다.

  • *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좋거나 나쁜) 다른 많은 쩨-따시까(cētasika)가 찟따(citta)에 추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쩨-따시까(cētasika)가 포함되지 않은 더 간단한 경우를 고려해 보겠습니다.

  • * 그런 단순한 마음이라도 그 짧은 시간의 끝에서는 여전히 오염되어 있습니다. 이 오염은 웨-다나-(vēdanā)와 산냐-(saññā) 쩨-따시까(cētasika)에서 나타납니다.

 

각 찟따는 9단계를 거친다!

 

2. 각 개별 찟따(citta)는 (10억분의 1초간 존재하는 동안)  9단계의 변화를 겪습니다! 그런 빠른 과정은 부처님 외에는 볼 수 없습니다. ‘찟따, 마노-, 윈냐-나’ - 생각(마음)의 9단계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9단계가 끝날 때쯤에, 그것은 진화했고 (과거의 ‘윈냐-나_viññāṇa’를 포함하여) 윈냐-낙칸다(viññāṇakkhandha)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됩니다.

  • * 찟따(citta)의 오염은 산냐-(saññā)와 웨-다나-(vēdanā)로 나타납니다. 오염된 찟따(citta)는 윈냐-나(viññāṇa)라고 합니다.

  • * 웨-다나-(vēdanā)는 기본 레벨에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파악(식별)하는 것입니다(싱할라어로 ‘veema’ + ‘danaveema’, ‘වීම දැනවීම’). 사건에 대한 실제 ‘느낌’은 아래의 논의와 같이, 찟따(citta)가 9단계로 진화함에 따라 통합됩니다.

 

첫 번째 찟따도 오염된다

 

3. 9단계로 진화하는 다른 중요한 공통 쩨-따시까(cētasika)는 산냐-(saññā)입니다. 비록 산냐-(saññā)로 쓰는 것이 표준이 되었지만, 그것은 ‘sangngā’로 발음되는 방식은 아닙니다.

 

발음: [영어 원문 사이트에서 들을 수 있음’

 

  • * 어떤 사람들은 ‘sañña’로 표기하여 정확한 발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표기하든(‘sanna’, ‘sañña’, ‘sangnga’)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리빙 담마’ 섹션의 ‘나-마 & 루-빠에서 ‘나-마루-빠’로’ 서브섹션에 있는 ‘산냐(지각)란 무엇인가?(What is Saññā (Perception)?)’ 모음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산냐-(saññā)는 찟따의 발생으로 이어진 특정(주어진) 사건에 대한 인식(지각)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물체(대상)를 본다면 그 물체(대상)를 식별하는 것은 9단계를 거쳐 진행됩니다(그리고 ‘웨-다나-_vēdanā’는 그에 따라 진화합니다).

  • * 그럼, 산냐-(saññā)을 기본으로 사용하여 찟따(citta)가 진화하는 9단계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찟따의 오염은 아누사야로 인한 것이다

 

4. 각 찟따(citta)는 아누사야(anusaya)가 아-사와/아-사야(āsava/āsaya)로 표면에 올라오므로 그 9단계로 오염되는데, 그것은 또한 각자의 가띠(gati)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사이트에는 그 실체(entity)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담긴 포스트가 많이 있습니다.

 

  • * 찟따(citta) 자체의 수명(10억분의 1초 이내) 동안 발생하는 오염의 그 9단계는 찟따(citta), 마노(mano), 마-나상(mānasaṃ), 하다양(hadayaṃ), 빤다랑(paṇḍaraṃ), 마노(mano), 마나-야따낭(manāyatanaṃ), 마닌드리양(manindriyaṃ), 윈냐-낭(viññāṇaṃ), 윈냐-낙칸도(viññāṇakkhandho) 입니다.

  • * 마음의 이 급속한 오염은 ‘빠띳짜사뭅빠-다 위방가 (Paṭiccasamuppāda Vibhaṅga)’의 ‘섹션 2.5.1. 아꾸살라찟따(Akusalacitta)’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Tattha katamaṃ saṅkhāra paccayā viññāṇaṃ? Yaṃ cittaṃ mano mānasaṃ hadayaṃ paṇḍaraṃ mano manāyatanaṃ manindriyaṃ viññāṇaṃ viññāṇakkhandho tajjāmanoviññāṇadhātu—idaṃ vuccati ‘saṅkhārapaccayā viññāṇaṃ’ ”.

  • * 이 9단계는 원 주석서인  ‘빠띠삼비다막가빠까라나 (Patisambhidamaggapakarana)’의 ‘1.3. Ānāpānassatikathā’ 내에 ‘섹션 1.3.5.3. 따띠야짜뚝까닛데사(Tatiyacatukkaniddesa)’ (또는 ‘붓다 자야마띠 띠삐따까’의 Part 1, p. 360)에도 다음과 같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yaṃ cittaṃ mano mānasaṃ hadayaṃ pandaraṃ manomanāyatanaṃ manindriyaṃ viññāṇaṃ viññāṇakkhandho..”. 필자는 오직 세 개의 주석서인, 빠띠삼비다막가(Patisambhidamagga), 뻬따꼬빠데사(Petakopadesa), 및 넷띱빠까라나(Nettippakarana) 만을 신뢰하며, 세 개의 주석서는 모두 띠삐따까(Tipiṭaka, 삼장)에 있습니다.

  • * 오늘날 존재하는 다른 모든 주석서는 훨씬 나중에 작성되었으며 신뢰할 수 없습니다. ‘붓다고-사와 위숫디막가 ㅡ 역사적 배경’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윈냐-낙칸다(viññāṇakkhandha)입니다. 9단계를 거쳐도 그것은 여전히 편의상 찟따(citta)라고 불립니다. ‘찟따, 마노-, 윈냐-나 ㅡ 생각(마음)의 9단계’, 및 ‘정말 놀라운 속도로 빠른 생각(찟따)의 순간적 진화’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찟따의 9단계를 설명하는 간단한 예

 

5. 어머니를 보는 예를 고려해 보겠습니다. 초기 찟따(citta) 단계에서 유일한 인식은 사람이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노-(manō)’(‘다른 사람과 관련하여 보정/교정하는 것을 나타내며, 싱할라어로는 ‘maneema’임)라는 다음 단계에서 그 사람이 여성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 * ‘마-나상(mānasaṃ)’이라는 세 번째 단계에서 ‘산(san)’이 이미지에 나타나며 추가 정보(개인적 정보)가 추가/통합됩니다.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삼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제 그 사람을 자신의 어머니로 식별/인식합니다.

  • * 그런데, 우리는 적어도 찟따(citta)의 ‘마-나상(mānasaṃ)’ 단계에 이르지 않고는 이 세상에서 살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군중 속에서 특정(주어진) 사람을 구별하지 못할 것입니다.

  • * 찟따(citta)의 실제 오염은 ‘하다양(hadayaṃ)’이라는 다음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이는 그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가까운지(친밀한지) 식별한 다음, 끌리거나 거부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예에서 우리는 그 사람을 ‘자신의 어머니’로 인식하고, 물론 그에 상응하는 들러붙음의 웨-다나-(vēdanā, 느낌)도 일어납니다.

 

아라한의 찟따는 ‘마나산’ 단계를 넘어서 오염되지는 않는다

 

6. 아라한의 찟따(citta)는 마-나상(mānasaṃ) 단계를 넘어 진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다른(다양한) 사람들을 식별(구별)할 수 있었지만, 그 식별(구별)을 바탕으로 어떤 애착(들러붙음)/혐오도 형성하지 않으셨습니다.

 

  • * 이것은 까라니야맛따 숫따(Karaniyamatta Sutta)에 “..mānasaṃbhāva ye aparimānaṃ..”으로 언급된 내용입니다. [그 의미는] ‘가능한 한 많이(아빠리마-나 또는 아빠리마-나, 즉 한계없이) 마-나상(mānasaṃ)을 길러야 하지만, 그것을 넘어 찟따(citta)가 오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입니다.

  • * 그것은 우리가 아래에서 논의하는 것처럼, 자신의 나쁜 가띠(gati), 아-사와(āsava), 및 아누사야(anusaya)를 줄이고 최종적으로 제거함으로써만 행해질 수 있습니다.

 

‘하다양’ 단계에서 들러붙게 됨

 

7. ‘하다야(hadayaṃ)’ 후의 다음 단계는 ‘빤다랑(paṇḍaraṃ)’이며, 이것은 ‘힘을 더 추가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자신의 마음이 과거 사건을 돌아보고(네, 10억분의 1초 이내에 그렇게 합니다.), 어머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상기하고, ‘더 애착하게(들러붙게)’ 됩니다. 그것은 마나시까-라 쩨-따시까(manasikāra cētasika)에 의해 자동으로 이루어집니다.

 

  • * 그래서, 찟따(citta)는 윈냐-나(viññāṇa) 단계로 올라갈수록 점점 더 오염됩니다. 따라서 윈냐-나(viññāṇa)는 사실은 자신의 아누사야(anusaya), 아-사와(āsava), 및 가띠(gati)로 인해 매우 오염된 찟따(citta)입니다.

  • * 마지막으로, 그것은 윈냐-낙칸다(viññāṇakkhandha)의 일부가 되는데, 윈냐-낙칸다는 과거, 현재, 미래, 가까움, 멈, 미세함(sukuma, 스꾸마), 거침(ōlārika, 올-라-리까), 좋아함(paneeta, 빠니따), 싫어함(appaneeta, 아빠니따), 내부(ajjatta, 앗잣따) , 및 외부(bahidda, 바힛다)라는 11가지 유형의 윈냐-나(viññāṇa)입니다.

  • * 윈냐-낙칸다(viññāṇakkhandha)에는 자신의 아누사야(anusaya), 아-사와(āsava), 및 가띠(gati)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억(메모리)와 미래 희망 등이 통합되었습니다. 

 

8. 이제 우리는 ‘빠밧사라 찟따(pabhassara citta)의 문제를 다룰 수 있습니다. 우선, 빠밧사라(pabhassara)는 무슨 의미일까요?

 

  • * 이 낱말은 어근에서 세 가지 음으로부터 유래합니다. ‘빠(pa)’는 ‘반복해서’를 의미하고, ‘바(bha)’는 ‘바와(bhava)’와 관련되며, ‘사라(sara)’ 또는 ‘차라(chara)’는 ‘관여/참여하다’(싱할라어로 ‘සැරිසැරීම’)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 낱말에 ‘s’가 하나만 있는 ‘빠바사라(pabhasara) 찟따(citta)’ (‘pabhassara’가 아님)는 윤회 여정이나 재탄생 과정으로 이어지는 오염된 찟따(citta)입니다.

  • * ‘빠바 사라(pabha sara)’의 반대말은 ‘빠바 앗사라(pabha assara)’인데, 여기서 ‘앗사라(assara)’는 ‘참여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빠밧사라(pabhassara)’로 운이 맞춰집니다.

  • * 따라서, 마음을 정화하여 빠밧사라 찟따(pabhassara citta)를 생성한 사람은 31계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즉, 아라한은 ‘빠밧사라 찟따(pabhassara citta)’를 생성합니다. 

  • * 이 때문에 필자는 빠알리어(Pāli)가 음성 언어(구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음성 언어(구어)에서] 의미는 소리를 기반으로 합니다. 필자는 웹 사이트 도처에서 많은 예를 들었습니다.

 

빠밧사라 찟따는 9 단계의 시작에만 있다

 

9. 그러므로, ‘빠밧사라 찟따(pabhassara citta)’는 9단계의 오염을 거치기 전의 기본 상태, 즉 순수한 상태의 찟따(citta)입니다. 그것에는 오직 7가지 공통 쩨따시까(cetasika)만 있습니다.

 

  • * 주어진(특정) 사람의 각 찟따(citta)는 빠밧사라 찟따(pabhassara citta)로 시작하지만 각자의 성격이나 도[팔정도]를 따라 진보하는 정도에 따라 오염 정도가 달라집니다.

  • * 아라한(Arahant)의 찟따(citta)도 빠밧사라 찟따(pabhassara citta)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마-나상(mānasaṃ)’의 수준으로 오염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의 찟따(citta) 수명 동안만 지속되는 아라한뜨 팔라 찟따(Arahant phala citta)는 빠밧사라 찟따(pabhassara citta)입니다.

  • * 아라한(Arahant)이 아라한뜨 팔라 사마빳띠(Arahant phala samapatti)에 있을 때, 그 아라한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은 알지만, 외부 사건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아니밋따(animitta), 압빠니히따(appanihita), 순냐따(suññata) 사마디(samādhi)’라고 합니다. 그것은 찟따(citta)의 흐름이 멈추는 ‘니로-다 사마-빳띠(nirōdha samāpatti)’와는 다릅니다.

  • *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 오염은 ‘어두움’과 연관되고, 순수한 상태는 ‘밝음’ 또는 ‘빛남’과 연관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빠밧사라 찟따(pabhassara citta)를 ‘빛나는 찟따(citta)’라고 부를 수 있고, 그 상태에서 찟따(citta)를 생성하고 유지하는 마음을 ‘빛나는 마음’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 * 그런 빛나는/순수한 찟따(citta)의 흐름이 일어나는 때는 아라한(Arahant)이 아라한뜨 팔라 사마빳띠(Arahant phala samapatt)에 있을 때 뿐이며, 이때에는 아라한뜨 팔라 찟따(Arahant phala citta)가 연속하여 흐릅니다.

 

빠밧사라 숫따(AN 1.51)

 

10. 마음이 오염되는 이 과정은 ‘빠밧사라 숫따( ‘Pabhassara Sutta, AN 1.51’ )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Pabhassaramidaṃ, bhikkhave, cittaṃ. Tañca kho āgantukehi upakkilesehi upakkiliṭṭhaṃ. Taṃ assutavā puthujjano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Tasmā ‘assutavato puthujjanassa cittabhāvanā natthī’ti vadāmī ti”.

 

  • * 첫 번째 문장에서, ‘빠밧사라미당(Pabhassaramidaṃ)’은 ‘빠밧사라 이당(Pabhassara idaṃ)’입니다. 필자가 계속 말하듯이, 낱말들은 숫따(sutta)들에서 때때로 결합되거나 운에 맞춰 약간 변경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첫 번째 문장은 “빅쿠들이여, 찟따(citta)(첫 번째 단계)는 빠밧사라(pabhassara)다. 즉, 재탄생 과정의 요인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 * 그 다음 문장은 그것이 어떻게 오염되는지를 말해줍니다. ‘아-간뚜까(āgantuka)’(또한 싱할라어로 ‘ආගන්තුක’)는 ‘도입된/들여온’을 의미합니다. 도입되는/들여오는 것은 ‘우빠낄레-사(upakilēsa)’, 즉 오염원(그것은 각자의 가띠, 아누사야, 아-사와에 있음)입니다. 그것은 ‘우빠낄릿따(upakilitta)’, 즉 오염으로 이어집니다. 다시 추가하면,  빠알리어와 싱할라어로 ‘낄리띠(kiliti)’는 ‘더러운’을 의미합니다.

  • * 그 다음 문장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 뿌툿자노(puthujjano)들은 실재(yathābhūta, ‘부-따’의 참된 본질)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뿌툿자나(puthujjana)는 붓다 담마를 접하지 못한 보통 사람, 즉 틸락카나(Tilakkhana, 삼특상/삼특성)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마지막 문장은 “그러므로, 나는 틸락카나(Tilakkhana, 삼특상/삼특성)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찟따 바와나(citta Bhavana)를 권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 * 또한,  ‘참된 행복은 괴로움이 없는 것이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아니닷사나 윈냐-나는 빠밧사라 찟따가 아니다

 

11. 디가 니까-야(Digha Nikāya)의 께왓따 숫따( ‘Kevaṭṭa Sutta, DN 11’ )로부터 인용된 또 다른 유명한 인용문으로, “Viññāṇaṃ anidassanaṃ anantaṃ sabbatō pabhaṃ..”이 있습니다. 이것은 ‘Viññāṇaṃ anidassanaṃ, anantaṃ, sabbatō pabhaṃ..’으로 세 가지 요소로 나누어 쓸 수 있습니다.

 

  • * 여기서, '아니닷사나(anidassana)'는 '보이지 않는다(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윈냐-나(viññāṇa)는 [단순한] 나-마 담마-(nāma dhammā) 이상이며 ‘업 에너지(kammic energy)’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이는 루-빠(rūpa)’ 아래 [레벨]에 있습니다. ‘깜마 윈냐-나 - 마음과 물질 사이의 연결고리’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리고, ‘아난따(ananta)’는 ‘무한하다’라는 의미이고, ‘윈냐-나 다뚜(viññāṇa dhatu)는 무한하다’는 의미입니다.

  • * ‘삽바또-(sabbatō)’는 ‘각 면에서/모든 면에서’를 의미합니다.

  • * 위의 #8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빠바(pabha)’는 ‘반복된 바와(bhava)’를 의미합니다(‘빠방_pabham’은 그것에서 유래함).

  • * 그러므로 위의 구절은 “ ‘윈냐-나_viññāṇa’는 보이지 않고, 무한하며, 모든 사람들을 재탄생 과정으로 이끈다(이어지게 한다). ”는 의미입니다.

  • * 강조하자면, 윈냐-나(viññāṇa)는 오염된 마음입니다. 우리 모두는 순수한 찟따(citta)가 아니라 윈냐-나(viññāṇa)를 경험합니다. 훨씬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는 윈냐-낙칸다(viññāṇakkhandha)(‘윈냐-나_viññāṇa’ 무더기)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개략적으로 ‘생각(thought)’을 찟따(citta)라고 부릅니다.

  • * 사람은 자신의 나쁜 가띠(gati), 아-사와(āsava), 및 아누사야(anusaya)를 제거하고 찟따(citta)가 마-나상(mānasaṃ) 단계를 넘어 오염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재탄생 과정을 중단시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니닷사나 윈냐-나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에 있습니다.

 

바왕가 찟따는 빠밧사라 찟따가 아니다

 

12. 어떤 주석서에서는 바왕가 찟따(bhavaṅga citta)가 빠밧사라 찟따(pabhassara citta)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모든 중생(유정체)은 자신의 바와에 따른 바왕가 찟따(bhavaṅga citta)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와와 바왕가 - 알기 쉽게 설명됨!’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바왕가(Bhavaṅga)는 ‘바와(bhava)’ + ‘앙가(anga)’에서 유래하는데, 여기서 ‘앙가(anga)’는 ‘부분/일부’입니다. 따라서 바왕가(bhavaṅga)는 ‘주어진(특정) 바와(bhava)와 연관된’을 의미합니다. 바왕가(bhavaṅga)는 다른 바와(bhava)에 대해 분명히 다릅니다.

  • * 동물도 바왕가(bhavaṅga) 상태에 들어갑니다(빠집니다). 그것은 동물이 바왕가(bhavaṅga) 상태에 있을 때 ‘빛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 * 게다가, 때때로 ‘아니닷사나 윈냐-나(anidassana viññāṇa)’는 윈냐-나(viññāṇa)의 기본(바탕) 레벨이라고 잘못 설명되기도 합니다. 위의 #11에 따르면, 아니닷사나 윈냐-나(anidassana viññāṇa)는 단지 윈냐-나(viññāṇa)를 ‘볼’ 수 없다고 설명할 뿐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13. 사실, 바왕가 찟따(bhavaṅga citta)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바왕가(bhavanga)는 마음의 상태이며, 바왕가(bhavaṅga) 동안에는 찟따 위티(citta vithi)가 실행되지 않습니다.

 

  • * 예를 들어, 아산냐(asañña) 영역에 있는 유정체(중생)는 어떤 생각도 경험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있는 전체 기간 동안에는 찟따 위티(citta vithi)는 절대 실행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몸은 그 바와(bhava)에 상응하는 바왕가(bhavaṅga)에 의해 유지됩니다.

 

아라한 단계 아래에서는 빠밧사라 찟따가 없다

 

14. 그러므로, 여기서 요점은 자신이 나쁜 가띠(gati)(또는 ‘아누사야-anusaya’, ‘아-사와_āsava’ 등, 이것들은 모두 연관되어 있으며 그냥 ‘아윗자-_avijjā’라고 부를 수 있음)를 지니고 있는 한, 자신의 생각이 일어남에 따라 오염된다는 것입니다.

 

  • *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이 일어날 때 그것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찟따(citta)는 10억 분의 1초 내에 윈냐-나(viññāṇa)까지 오염되는데, 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것입니다. 이 때문에 붓다께서는 찟따(citta)가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실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윈냐-낙칸다_viññāṇakkhandha’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생각’을 찟따라고 부릅니다).

  • * 담마를 배운 다음 아나-빠-나(Anāpāna)(호흡 명상이 아님)와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 명상을 실천함에 따라 아윗자-(avijjā)(그리고 그 관련된 실재인 가띠, 아-사와, 아누사야)를 줄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 * 길[팔정도]을 따라 나아감에 따라, 자신이 지닌 ‘가띠_gati’(그리고 ‘아-사바_āsava’와 ‘아누사야_anusaya’)가 감소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찟따(citta)는 ‘더 깨끗하고 밝은’ 경향을 띠게 될 것입니다.

  • * 일단 어떤 레벨에 도달하면,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와 같은 그 핵심 개념을 숙고할 수 있고, 즉 위빠사나(vipassanā) 명상을 시작할 수 있고, 그리고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찟따의 오염은 아-람마나와 가띠에 따라 다르다

 

15. 모든 찟따(citta)가 같은 레벨로 오염되는 것은 아닙니다. 찟따(citta)는 우리의 여섯 감각 기능 중의 하나가 감각 접촉을 할 때 일어나며, 찟따(citta)의 오염 레벨은 그 감각 입력이 무엇인가에 따라 결정적으로 달라집니다.

 

  • *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맛보거나 멋진 물건을 보면 탐욕스런 생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모두가 주어진 물품/품목에 대해 같은 갈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갈망하는 어떤 음식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역겨울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특정 사람에 대해 어떤 사람은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은 싫어할 수 있습니다(유명한 정치인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 * 게다가, 우리는 많은 경우에 오염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차를 타고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볼 때 우리의 마음에는 수십억의 찟따(citta)가 흐릅니다. 그것들은 대부분 중립적이지만, 여전히 어떤 레벨까지 오염되어 있습니다.

  • * 그러나 시선을 사로잡는 대상(물체)을 볼 때는 오염 정도가 더 강해질 것입니다.

  • * 자세한 내용은 ‘아-람마나는 감각 사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신생아는 빠밧사라 찟따를 가지지 않는다

 

16.  필자는 아기에게 일어나는 찟따는 빠밧사라 찟따(pabhassara citta)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누사야(anusaya)는 아기이든, 동물이든, 브라흐마(Brahma, 범천)이든 관계없이, 그 유정체가 아라한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항상 생명흐름과 함께 남아 있습니다.

 

  • * 아기의 뇌는 아직 발달하지 않아서 우리처럼 세상을 경험할 수 없고 스스로 표현할(나타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기의 찟따(citta)도 아누사야(anusaya)가 거기에 있기 때문에 오염됩니다.

  • * 사람이 막가 팔라(magga phala)를 얻을 때에만, 자신의 아누사야(anusaya)(그리고 ‘아-사와_āsava’와 ‘상요자나_samyojana’)의 일부가 영구적으로 제거됩니다. ‘4단계의 닙바-나에 대한 조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빠밧사라 찟따를 얻는 방법

 

17. 사람이 닙바-나(Nibbāna, 열반)의 소-따빠나(Sōtapanna) 단계에서 시작하여,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아나-가-미(Anāgāmi) 단계를 거쳐, 아라한(Arahant) 단계로 나아갈 때, 그 사람의 아윗자-(avijjā)(따라서 나쁜 ‘가띠_gati’, ‘아누사야_anusaya’, ‘아-사와_āsava’, 등)는 영구적으로 감소합니다.

 

  • * 따라서 소-따빤나(Sōtapanna)의 생각은 어떤 레벨을 넘어서 오염되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소-따빠나(Sōtapanna)는 아빠-야-(apāyā)에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강한 아꾸살라 찟따(akusala citta)는 생성하지 않습니다.

  • *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 도달할 때에는, 모든 까-마-사와(kāmāsava, kāmā āsava)를 제거하므로 까-마- 로까(kāmā loka)에 있는 어떤 감각 대상에도 유혹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나-가-미(Anāgāmi)는 까-마- 로까(kāmā loka)(4가지 아빠야, 인간 영역, 및 6가지 데-와 영역)의 어느 곳에도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 * 아라한 단계에 이르면, 모든 아윗자-(avijjā) (그리고, 모든 나쁜 가띠, 아누사야, 아-사와 등)를 제거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닙바-나(Nibbāna)를 성취했으므로, 그 아라한 성자는 [육체가] 죽을 때 31 영역의 어디에도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 * 위의 모든 내용은 사이트의 많은 포스트에 자세히 논의되어 있습니다. 사이트 맵 (Pure Dhamma – Sitemap)을 사용하거나, 오른쪽 상단에 있는 ‘검색’ 상자를 사용하여 주어진(특정) 키워드로 관련 포스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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