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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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마나는 감각 사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원문: Buddha Dhamma 섹션의 ‘Ārammaṇa Plays a Critical Role in a Sensory Event’ 포스트

- 2020년 10월 28일 작성; 2021년 10월 18일 개정

 

아-람마나(ārammaṇa)는 주어진 순간에 마음의 초점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감각 자극에 대한 반응에서 가띠/아누사야(gati/anusaya)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은 아-람마나(ārammaṇa)입니다. 여러분이 소리를 들을 때, 그 소리는 아-람마나(ārammaṇa)입니다.

 

가띠(성격/습관)과 아누사야(잠재된 오염원/번뇌)

 

1. 시작하기 위해서, 이전 포스트인 ‘감각 자극에 반응 ㅡ 가띠/아누사야의 역할’에서 논의한 내용을 복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포스트에서 우리는 감각 입력에 대한 찰나의 순간 내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다음 예를 사용했습니다.

 

A, B, C 세 사람이 작은 커피숍에 앉아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들은 모두 문을 향하고 있는데, 중년의 남성 X가 들어옵니다. 사람 X는 A의 절친한 친구이고 B의 가장 큰 적이며, C는 X를 전혀 모른다고 가정하겠습니다. 또한 그 사람들이 모두 남성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 * 자, 찰나의 순간 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겠습니다. A는 X를 친구로 인식하고 얼굴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B는 X를 적으로 인식하고 얼굴이 어두워집니다(표정이 일그러집니다).

  • * 반면에, C의 마음은 X에 대해 아무 감정도 나타내 보이지 않으며, 그에게 X는 그저 다른 한 사람입니다. X는 즉시 자신이 하던 것(일)으로 돌아갑니다.

  • * X는 위의 경우에 A, B, C에 대한 아-람마나(ārammaṇa)입니다.

 

2.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매우 중요한 관찰을 했습니다.

 

  • * 마나시까-라(manasikāra) 쩨따시까(cetasika)의 도움으로, A, B, C의 마음은 X와 관련된 과거 사건을 찰나의 순간 내에 회상(상기)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즉시 X를 각각 친구, 적 및 중립으로 식별했습니다.

  • * A의 그 ‘좋은’ 기억은 라-가 아누사야(rāga anusaya)를 촉발시키고 A는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B는 X에 대한 자신의 ‘나쁜 기억’을 회상(상기)하여 빠띠가 아누사야(paṭigha anusaya)를 촉발시킵니다. 물론, C는 다양한 유형의 아누사야(anusaya)를 지니고 있을 수 있지만, C는 X와 이전에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그리고 X는 모든 보통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 아누사야의 어떤 것도 촉발시키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특별한 교류가 없어도 아-람마나는 오염된 생각을 촉발시킬 수 있다

 

3. 이제, 또 다른 사람 Y가 커피숍에 들어오는 다른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Y는 B의 꽤 매력적인 여자친구라고 가정해 봅시다. A는 Y와 사이가 좋지 않고, C는 Y를 본 적이 없는 젊은 남성이라고 가정해 보세요. 이제 A, B, C의 아-람마나(ārammaṇa)는 매우 다를 것입니다(X는 보통의 중년 남성이었던 반면에, Y는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 * 이제, A와 B의 기분이 반전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A는 Y를 보고 즉시 기분이 나빠질 것이고, B는 Y를 보고 행복해 할 것입니다.

  • * C에 대해서도, 상황은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Y가 그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면, C는 순간적으로 욕정이 일어나는 마음 상태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 * C는 Y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C는 Y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욕정이 있는 감정을 형성했습니다. C에게 관심을 촉발시킨 것은 Y에 대한 기억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여성에게 끌린 것은 그 자신의 가띠/아누사야(gati/anusaya)였습니다. 물론 그는 다른 많은 여성들과 교류를 했고, 그의 마음은 그 기억들을 찰나의 순간 내에 비교했습니다!

 

생각 대상(아-람마나)에 의존함

 

4. 우리는 왜 특정 사람이 영구적으로는 ‘좋은 마음 가짐(good mindset)’ 또는 ‘나쁜 마음 가짐(bad mindset)을 갖지 않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고정된(변하지 않는) 가띠/아누사야(gati/anusaya)도 없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위의 두 가지 예에서, A, B, C는 X와 Y를 보았을 때 각자 다른 전체적 마음 가짐을 생성했습니다.

 

  • * 어떤 마음 가짐(mindset)이 일어나는가는 그 사람의 가띠/아누사야(gati/anusaya)와 감각 대상(아-람마나, ārammaṇa)에 따라 다릅니다.

  • #1과 #3에서 두 가지 서로 다른 아-람마나(ārammaṇa)는 세 사람 A, B, C 모두에게 두 가지 매우 다른 가띠/아누사야(gati/anusaya)를 촉발시켰습니다.

 

아누사야와 아-람마나를 위한 두 가지 비유

 

5. 다음 비유를 통해 아누사야(anusaya)와 아-람마나(ārammaṇa)의 개념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누사야(anusaya)는 화약과 같습니다. 아-람마나(ārammaṇa)는 화염(불꽃)과 같습니다. 화약은 오랫동안 휴면 상태에 있을 수 있지만, 사람이 그것에 열을 가하면 점화됩니다.

 

  • * 오랫동안 감각적 끌림을 피했던 아나리야 수행자(anariya yogi, 세간/평범한 수행자)에게는 까-마 라-가 아누사야(kāma rāga anusaya)가 젖은 화약과 같을 수 있습니다. 작은 불꽃으로는 점화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꽃으로 충분한 열이 가해지면, 그런 잘 감춰진 아누사야(anusaya)도 점화될 수 있습니다. 띠삐따까(Tipiṭaka, 삼장)에는 매력적인 여성(강한 아-람마나_ārammaṇa)을 보고 욕정에 가득찬 생각이 아나리야(anariya) 수행자에게 일어나서, 잇디(iddhi, 신통) 능력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반면에, 아라한에게는 어떤 아-람마나(ārammaṇa)에 의해 촉발되는 까-마 라-가 아누사야(kāma rāga anusaya)가 없습니다. 아라한에게는 화약이 없습니다.

  • * 화를 내는 경향은 빠띠가 아누사야(paṭigha anusaya) 때문입니다. 빠띠가 아누사야(paṭigha anusaya) 레벨이 높은 사람은 아주 작은 자극이나 약한 아-람마나(ārammaṇa)에도 화를 낼 수 있습니다.

 

6. 또 다른 비유에서, 아누사야(anusaya)는 유리잔 바닥에 가라앉은 진흙과 같습니다. 그 유리잔에 담긴 물은 깨끗해 보입니다.

 

  • * 그러나 빨대 등을 사용하여 물을 휘저으면 그 진흙이 위로 올라옵니다. 이제 물은 더 이상 깨끗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빨대 등으로 휘젓는 것은 ‘안정된 마음(settled mind)’을 강한 아-람마나(ārammaṇa)로 교란(동요)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 * 아라한에게는 어떤 ‘진흙’, 즉 아누사야(anusaya)도 없습니다. 따라서 유리잔의 물은 아무리 휘저어도 맑을 것입니다.

  • * 그 ‘진흙’은 물리적 과정이 아니라 단지 지혜로 정화되었습니다. 즉, 이 세상의 근본적인 본성(사성제/삼특상/연기)을 단지 이해함으로써 정화되었습니다. 우리는 체계적으로 이 시리즈의 향후 포스트에서 그것에 이르게(그것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 * 붓다께서는 “마음을 다스려 정화하는 방법(사찟따 빠리요 다빠낭, Sacitta pariyo dapanaṃ)”을 가르치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삽바 빠-빳사 아까라낭....’를 참조하세요.

  • 아누사야(anusaya)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아-사와, 아누사야, 및 가띠’ 포스트에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좋고 나쁜 아누사야(및 가띠)를 모두 지닌다

 

7. 우리는 보통 누군가를 그 전반적인 성격에 따라 ‘좋은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즉, 그 사람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쁜 성격’보다 ‘좋은 성격’을 더 많이 나타내는 경우,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직 아라한만이 항상 100%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확실히 도덕적인 사람’입니다.

 

  • * 비록 이것은 복잡한 주제이긴 하지만, 기본적인 특징은 위에서 언급한 것들입니다. 이 개념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상황을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실제로 위빠사나-(vipassanā) 명상입니다! 위빠사나-(vipassanā)라는 말은 세상의 참된 본성에 대한 ‘특별하고 명확한 비전(시각)’을 의미합니다.

  • * 도(길)에서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직 부처님만이 마음의 중요한 역할을 발견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 * 근본적인 것을 이해하면, 어떤 특정한 상황도 쉽게 분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가치가 있습니다.

 

가띠와 아누사야에서 핵심 포인트

 

8. 우리가 논의했듯이, 아누사야(anusaya)는 ‘잠재적’ 또는 ‘숨겨진’ 경향입니다. 일반적으로 ‘잠재 오염원/번뇌’라고 하지만, 그것들은 ‘숨겨진 도덕성’일 수도 있습니다.

 

  • * ‘나쁜 아누사야(anusaya)’가 촉발되면, 나쁜 가띠(성격/습관)가 나타납니다. 반면에 ‘숨겨진 도덕’이 활성화되어 좋은 가띠(gati)가 전면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 * 예를 들어, 우리는 누군가가 주로 ‘나쁜 가띠(gati)’를 완전히 나타내며 악한 행위를 하기 때문에 상습범이라는 딱지를 붙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 안에 있는 좋은 도덕성은 고통받는 어린이/노인을 보면 일깨워질 수 있고, 그 사람은 필요에 따라 그들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 * 아라한(Arahant)을 제외하고는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절대적으로 악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다른 사람들은 숨겨진 좋은 아누사야(good anusaya)와 나쁜 아누사야(bad anusaya)를 모두 다양한 정도로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나-가미(Anāgāmi) 성자에게는 ‘나쁜 아누사야(bad anusaya)’(따라서 ‘나쁜 가띠’)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람마나의 역할은 다른 식으로 일어날 수 있다

 

9. #3에서 논의한 내용은 문제의 아-람마나(ārammaṇa)는 이전에 특별히 만난 적이 결코 없었던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젊은 남성은 일반적으로 젊은 여성에게 끌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 * 아-람마나(ārammaṇa, 대상)가 자신의 가띠/아누사야(gati/anusaya)와 어울리면(매칭되면) 그것에 들러붙게 됩니다.

  • * 누군가 Z에게 한 번도 본 적도 맛 보지도 못한 과일을 준다고 가정해 보세요. Z는 과일을 보는 것만으로 이전에 먹었던 과일과 비슷해 보이지 않는 한, 그것에 관심이 없을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Z는 그것을 먹고 자신이 그 맛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면, Z는 그 과일 맛이 좋아서 그 과일에 빠집니다. 그는 그 이후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것을 먹고 싶어할 것입니다.

  • * 그 과일의 그 맛은 ‘까-마 구나(kāma guṇa)’입니다. 구나(guṇa)는 ‘품질’ 또는 ‘특성’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까-마(kāma)’라는 낱말을 ‘관능(sensuality 육감)’과 연관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까-마((kāma)는 ‘유혹’하거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향후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하다야 왓투, 육체, 뇌, 루빠 로까, 및 나-마 로카에 대한 요약

 

10. 지금까지 ‘붓다 담마 - 과학적 접근(Buddha Dhamma – A Scientific Approach)’ 라는 이 서브 섹션의 일련의 포스트에서 논의한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생명은 다음 실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포괄합니다(아우릅니다).

 

  • * (하다야 왓투와 5가지 빠사-다 루빠를 가진) 간답바(gandhabba)는 생각하는 실체입니다.

  • * 그러나, 그것은 육체 안에 갇혀 있어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외부 세계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 두 부분은 (1) 시각 대상, 소리, 냄새, 맛, 및 촉감이 있는 루빠 로까(rupa loka)와, (2) 기억(메모리)과 깜마 비자(kamma bija, 업 씨앗)가 있는 나-마 로까(nāma loka)입니다.

  • * 간답바(gandhabba)는 눈, 귀, 코, 혀, 몸의 도움으로 루빠 로까(rupa loka)의 시각 대상, 소리, 냄새, 맛, 촉감에 접근하는데, 여기서 뇌가 결정적인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 간답바는 뇌에 있는 송신기와 수신기의 도움으로 나-마 로까(nāma loka)에 있는 기억(메모리)과 깜마 비자(kamma bija, 업 씨앗)에 접근합니다. 뇌는 또한 외부에서 오는 그 모든 신호들을 처리하여 간답바에 전달합니다.

  • * 간답바(gandhabba)는 그런 감각 입력에 응답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합니다. 뇌는 (말하고 육체 행동을 하기 위한) 신체 부위를 움직임으로써 간답바의 명령을 실행합니다.

 

루빠 로까와 나-마 로까 ㅡ 우리 세상의 두 부분

 

11. 우리에게는 ‘물질 세계(루빠 로까, rupa loka)’뿐만 아니라 ‘정신 세계(나-마 로까, nāma loka)’가 있습니다. (1) ‘물질 세계’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합니다. (2) 그러나 각 사람은 그 ‘물질 세계’를 기반으로 자신의 ‘정신 세계’를 만듭니다.

 

  • * 마음은 그 두 세계를 모두 경험합니다. 마음은 5가지 육체 감각의 도움으로 물질 세계를 경험합니다. 마음은 정신 세계를 스스로 경험합니다.

  • * 정신 세계(메모리, 즉 ‘나-마곳따_nāmagotta’)에 있는 것들은 (상응하는 빠사-다 루빠가 없이) 직접 마음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뇌의 ‘송신기’와 ‘수신기’는 그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것들은 담마-(dhammā)로 마음에 들어오는데, 그것은 우리의 기억(메모리)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포함합니다. 그 후자(기대)에 대해서는 앞으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 반면에, 5가지 육체 감각(눈, 귀, 코, 혀, 몸)은 마음이 물질 세계에 있는 그것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나-마 로까는 루빠 로까와는 매우 다르다

 

12. 나-마 로까(nāma loka)에는 공간적 경계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억(메모리)이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가?’라고 물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루빠 로까(rupa loka, 물질계)에 대한 뿌리 깊은 인식을 바탕으로 잘못된 질문을 합니다.

 

  • * 루빠 로까(rupa loka, 물질계)에서는 모든 것이 공간적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 정원에 있는 나무는 집에서 아주 많은 피트로 떨어져 있습니다. 만리장성은 중국에 있고, 에펠탑은 프랑스 파리에 있습니다. 에펠탑을 [실제로] 보려면 파리로 가야 합니다.

  • *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우리 기억(메모리)에는 공간적 위치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기억(메모리)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 있든지, 프랑스에 있든지, 각자는 기억(메모리)을 회상(상기)할 수 있습니다.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이 달에 착륙했을 때도 그는 기억(메모리)을 회상(상기)할 수 있었습니다.

  • * 그러나 기억(메모리)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뇌의 수신기와 송신기가 모두 양호한 상태여야 합니다. 우리는 최근 포스트에서 클라이브 웨어링(Clive Wearing) 및 다른 몇 가지 불행한 사례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그들은 기억(메모리)의 일부 또는 전부를 회상(상기)할 수 없었습니다. ‘뇌와 간답바(Brain and the Gandhabba)’ 서브 섹션을 참조하세요.

  • * 우리의 기억(메모리)과 (미래에 ‘위빠-까_vipāka’를 가져올 수 있는) 깜마 비자(kamma bija, 업 씨앗)도 나-마 로까(nāma loka, 정신계)에 있습니다. (많은 생 전에 생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주어진 깜마 비자(kamma bija)는 어디에서든 위빠-까(vipāka)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중국에 있든지, 프랑스에 있든지 상관 없습니다. 조건이 맞으면, 깜마 비자(kamma bija, 업 씨앗)는 위빠-까(vipāka)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 * 그것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에서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관련 포스트들은 ‘붓다 담마’ 섹션의 이 서브 섹션 ‘붓다 담마 - 과학적 접근(Buddha Dhamma – A Scientific Approach)’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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