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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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닛짜, 둑카, 아낫따 – 잘못된 해석


원문: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Anicca, Dukkha, Anatta – Wrong Interpretations’ 포스트

2016년 10월 25일; 2017년 4월 11일; 2017년 9월 13일; 2017년 11월 25일; 2018년 1월 26일; 2019년 5월 25일; 2019년 8월 6일 개정


소개


1. 과거 수백년 동안 닙바-나에 이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자로, 아닛짜(anicca)를 ‘무상(impermanence)’으로 잘못 해석하고 아낫따(anatta)를 ‘무아(no-self)’로 잘못 해석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번역된 빠알리 삼장(Pāli Tipitaka)이 아니라 빠알리 삼장(Pāli Tipitaka) 원본에서,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를 그런 식으로 기술하고 있는 곳을 하나라도 찾을 수 있다면, lal@puredhamma.net 로 저(필자)에게 알려 주세요. 띠삐따까(Tipitaka, 삼장)의 영어 번역문을 인용하기 전에 Misintepretation of Anicca and Anatta by Early European Scholars 포스트를 부디 읽어 보십시오.


  • * 필자는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에 관한 일련의 게시물을 이 웹 사이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배열된 순서대로 포스트(게시물)를 읽는 것이 바람직하며 매우 유익할 것이라고 봅니다..

  • * 붓다께서는 빠알리(Pāli) 어로 3 낱말과 8 글자를 드러내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합니다. 즉, ‘앗딱까라- 티-나빠다- 삼붓떼나 빠까-시타-, 나 히- 실-라 와딴 호뚜 웁빠짜띠 따타-가따(Attakkarā thīnapadā Sambuddhena pakāsithā,  na hī sīla vatan hotu uppajjati Tathāgatā)’라고 합니다. 이 문장의 의미는 ‘붓다(따타-가따)께서는 단지 도덕적인 삶을 사는 법을 보여주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8 글자로 된 3 낱말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오셨다’입니다. 지금까지 필자는 띠삐따까(Tipitaka, 삼장)에서는 이 구절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초기 주석서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 8 글자로 된 3 낱말은 로마자로 ‘anicca, dukkha, anatta’입니다. (싱할라 문자로 쓰여진 빠알리어 3 낱말은 අනිච්ච දුක්ඛ අනත්ත입니다. 하지만, 싱할라 문자의 고대 글자에서는 각 낱말에 있는 마지막 2 글자는 1 글자로 통합되었으므로, 글자의 수는 11 글자 대신에 8 글자입니다. 필자는 마지막 낱말인 අනත්ත에 대해서 අනත්ථ만 발견할 수 있었지만, 독자는 거기서 4 글자가 어떻게 3 글자로 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아닛짜(anicca)는 다음 음성파일과 같이, ‘picture’와 운이 맞게 ‘anichcha’로 발음됩니다.

https://puredhamma.net/wp-content/uploads/anicca.mp3


둑카(dukkha)는 다음 음성파일과 같이, ‘duk + kha’로 유사하게 발음됩니다.

https://puredhamma.net/wp-content/uploads/dukkha.mp3


아낫따(anatta)는 다음 음성파일과 같이, ‘anaththa’로 발음됩니다.

https://puredhamma.net/wp-content/uploads/anatta.mp3


더 많은 빠알리 용어의 의미와 발음 음성파일은 ‘Pali Glossary – (A-K)’와 ‘Pali Glossary – (L-Z)’를 보세요.



2. 아수바(asubha, ‘상서롭지 못한’ 또는 ‘결실없는’ 특성)는 자연의 또 다른 특성입니다. 그것은 예를 들어 ‘Vipallāsa Sutta (AN 4.49)’ 와 같은 여러 숫따에서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와 함께 나타납니다.


  • * 더구나, 필자가 알기로는  띨락카나(Tilakkhana, 삼법인)라는 말은 띠삐따까(Tipitaka, 삼장)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 * 그러나,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는 아래에서 논의하는 바와 같이 많은 숫따(sutta)에서 그룹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띨락카나(Tilakkhana)로 묶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틸락카나(Tilakkhana)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3. 붓다께서는 가장 먼저 설하신 경에서 ‘이 세상의 이 세가지 특성’을 명료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첫 번째 성스런 진리(제1성제)는 괴로움만 나타내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것들은 ‘이 세상’의 세 가지 주요 특성입니다. 붓다께서는 세상의 진정한 특성을 드러내기(알리기) 위해 세상에 옵니다. 

  • * 모든 도덕적인 사람은 도덕적인 삶을 사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종교는 도덕적인 삶을 사는 법을 가르칩니다.Buddha Dhamma – In a Chart’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붓다께서는 이 세 낱말로 요약된 ‘이 세상’의 진정한 특성을 정말로 이해한다면 닙바-나(Nibbāna)의 수다원(Sotāpanna,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Why is Correct Interpretation of Anicca, Dukkha, Anatta so Important?’ 포스트를 보세요.


4. 그래서,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라는 용어를 잘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세 용어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계속 고수하게 되면, 아무리 노력해도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도달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이 세 용어는 대부분의 테-라와다(Thēravada) 텍스트에서조차 흔히 무상(impermanence), 고(suffering), 그리고 무혼 (no-soul) 또는 무아(no-self)로 해석되어 있습니다.


  • * 올바른 의미는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자신을 만족스럽게 계속 유지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것에서] 그것을 달성하려고 애쓸 때,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부도덕한 행위로 행복을 얻으려고 애씀에 따라 아빠야(apaya, 사악처)에 태어나는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것이 정말로 무력하게 되는(어쩔 수 없게 되는) 방식입니다. 

  • * 불가능한 것을 성취하려고 애쓰면(즉, 세상 것들에서 행복을 구하면),  괴로움(고통)으로 끝날 뿐입니다.


5. 무상(impermanence)을 뜻하는 빠알리(Pāli) 낱말은 아닛짜(anicca)가 아니라, 아뚜완(adduwan) 또는 아니야땀(aniyatam)입니다. 예문을 들면, ‘지-위딴 아니야땅, 마라난 니야땅(Jeevitan aniyatam, maranan niyatam)’은 ‘삶은 영구하지 않으며, 죽음이 있습니다.’는 뜻입니다.


‘아뚜왕 지-위땅, 두완 마라남(adduwan jeevitam, duwan maranam)’은 위 예문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 * 그래서, 핵심적인 오류는 본래 빠알리 낱말인 아닛짜(anicca)를 산스크리트 낱말인 아니트야(anitya)로 번역한 것에 있습니다. 아니트야(anitya)는 무상(impermanence)을 뜻합니다.

  • * [영구(영원)를 뜻하는] 용어 ‘드후와(dhuva)’는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aya) 49번 경인 브라마니만따니까 숫따(Brahmanimantanika Sutta)에 나옵니다. 그곳에서 바까 범천(Baka Brahma)은 ‘자신의 존재가 영원하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 '아니닷사나 윈냐-나'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의 #12 부분을 보세요.


6. 이제 본래 빠알리 낱말인 아낫따(anatta)를 산스크리트 낱말인 아나-트마(anātma)로 번역함에 따라 입은 손상(가르침의 왜곡)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 * 붓다 재세시에도 ‘자아(self)’에 대한 생각으로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견해가 있었습니다. 한 쪽에서는 존재(유정체)와 관련된 변함없는 ‘영혼(ātma, 아-뜨마)’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한 쪽의 견해는 오늘날 세계의 주요 종교의 견해에 해당합니다. 즉,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개념입니다.

  • * 반대 쪽에서는 무아(anātma, 아나-뜨마, 영혼 없음)이고 사람이 죽으면 죽음에서 살아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견해는 오늘날 유물론적 견해에 해당합니다. 즉, 우리의 마음은 물질에서 나오고, 따라서 죽을 때 살아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 * 붓다께서는 [진실은] 어느 쪽의 견해도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정체와 연관된 영구적인 자아(self)는 없습니다. 마음과 몸은 모두 부단한 흐름 상태에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붓다 담마’ 섹션의 ‘대통합 이론인 담마’ 서브 섹션에 있는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따라서 ‘영혼’이나 ‘변함없는 자아’는 없습니다. 반면에, 인과 관계(paticca samuppāda, 빠띳짜 사뭅빠-다, 연기)에 기반하여 죽음에 계속되는 일어남이 있습니다. 연기에 대해서는 ‘Paticca samuppāda – Introduction’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러므로, ‘무영혼’ 또는 ‘무아’라고 하면서 ‘죽음이 그 유정체 삶의 끝’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릇된 것입니다. 노인이 아기에서 계속된 과정의 연속인 것과 같이, 새로운 존재가 이전 존재에서 계속하여 연속되는 것입니다. 매순간마다 변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인과 관계 법칙에 기초합니다. 새로운 것은 이전 것에 의존하여 일어납니다. 또한, ‘What Reincarnates? – Concept of a Lifestream’ 포스트도 보세요.

  • * 그것은 또한 아라한이 죽을 때(즉, 빠리닙바-나, Parinibbāna), 단멸한다고 말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는 이유입니다. ‘Yamaka Sutta (SN 22.85) – Arahanthood Is Not Annihilation but End of Suffering’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 세상의 세 가지 특성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7. 붓다께서는 ‘이 세상’의 세 가지 특성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야다닛짱 딴 둑캉, 얀 둑캉 따다낫따-(yadaniccam tan dukkham, yan dukkham tadanattā)’ 또는 ‘야드 아닛짱 딴 둑캉, 얀 둑캉 따드 아낫따-(yad aniccam tan dukkham, yan dukkham tad anattā)”

이 구절의 의미는 “무언가 아닛짜(anicca)이면, 둑카(dukkha)가 생기고, 그래서 무력하게 된다(아낫따, anatta)”입니다.



8. 이제는 우리가 아닛짜(anicca)를 무상(impermanent)으로 받아들이고 아낫따(anatta)를 무아 또는 무영혼(no-soul)으로 받아들일 때, 무슨 결과가 되는지 봅시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위 구절은 ‘무언가 영원하지 않다면, 고난 또는 괴로움이 생기고, 그 때문에 무아(자아가 없음)다’가 됩니다.


  • * 많은 사람들은 단지 인체만 그것으로 간주하여, 육체(인체)가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움(고통)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숫따(sutta)는 모든 여섯 가지 내부감각 (Ajjhattanicca 숫따에서, Ajjhatta + Anicca)과, 내부감각(기관)에 의해 인식된 외부의 모든 것(Bāhiranicca 숫따에서, Bāhira + Anicca)에 대해 이것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위 구절은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설명입니다.

  • * 따라서, ‘두통이 영원하지 않으면, 자기(자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 * 그러나, 세상에는 영구(영원)하게 되면 행복으로 이끄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즉, 건강, 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 싫어하는 사람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 등입니다.

  • * 다음 포스트들(‘ 아닛짜 - 진정한 의미’ 서브섹션의 포스트)에서 보겠지만, 올바른 번역(또는 해석)은 어떤 경우에도 진실(또는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9. 위 문장의 반대 기술(서술)도 타당해야 합니다. (수학 논리에서 이것은 일반적으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특별한 경우에는 올바른 것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 특별한 경우는 둑카(dukkha, 고통, 괴로움)는 닛짜(nicca)나 아닛짜(anicca)에만 의존하고 다른 인자(요인)는 없다고 하는 가정 때문입니다.)Logical Proof that Impermanence is Incorrect Translation of Anicc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잘못된 해석의 반대 기술은 다음과 같이, ‘무언가 영원하다면, 고난 또는 괴로움은 생기지 않으며, 그 때문에 자아가 있다(또는 자아를 포함한다)’가 됩니다.


  • * 영구적인 두통이나 병이 있는 경우, 어떻게 고난이나 괴로움이 멈춰질까요?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자아가 있다(또는 자아를 포함한다)는 것일까요?

  • * 이 세상에는 영구(영원)하게 되면 고통 또는 괴로움으로 이끄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즉, 질병, 빈곤,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떨어지는 것 등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가 무상(impermanence)과 무아(no-self)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이라도 무상하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10. 영속(Permanence)과 무상(Impermanence)은 유정체, 물체(무정체), 그리고 사건의 분리할 수 없는 속성입니다. 이에 반해, 닛짜(nicca)와 아닛짜(anicca)는 그것들에 대한 각 유정체 마음의 인식(지각)입니다.


  • * 우리는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 자신의 몸을 포함하여) 어떤 것도 우리를 만족스럽게 유지시켜 줄 수 없으며, 그것이 바로 아닛짜(anicca)입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우리는 마음이 괴롭고 산란스럽게 되며, 그것이 둑카(dukkha)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연속되는 사건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볼 때 진정으로 무력하며 결국 실속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아낫따(anatta)입니다.

  • * 여기, 아닛짜(anicca)의 개념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비디오가 있습니다.


비디오 : 늙어가는 전성기의 스타들

https://youtu.be/4qILUJo4eLE


  • * 우리 모두는 나이가 들면서 피할 수 없는 변화를 겪을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애써 노력하더라도 어떤 것을 만족스럽게 계속 유지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것(만족스럽게 계속 유지시킬 수 없는 것)은 이 세상의 본질이며, 바로 아닛짜(anicca)입니다.

  • * 지금, 물론 비디오의 이 유명인들 (또는 그들의 팬) 중 누구라도 비교 화면을 보고 슬퍼질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육체를 만족스럽게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유명인들 중 누구와 사이가 나쁜 사람은 그 유명인에게 어떤 참혹한(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어할 것이므로, 화면을 보고 행복해 할 수 있습니다.


11. 따라서, 무상(Impermanence)은 피할 수 없으며, 그것은 이 세상 모든 것의 속성입니다. 그러나 아닛짜(anicca)는 누군가의 마음 속에 있는 인식(지각)입니다. 그 인식(지각)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괴로움(고통)을 없애는 방법입니다.


  • * 위의 경우에서, 유명인의 육체는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모두에게 괴로움을 초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늙어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만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유명인들에게 적들이 있다면, 그 적들은 유명인들의 용모가 나빠지는 것을 보게 되어 기쁠 것입니다.

  • * 무상(Impermanence)은 사실입니다( ‘붓다 담마’ 섹션의 ‘대통합 이론인 담마’ 서브 섹션에 있는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그러나 무상(Impermanence)은 아닛짜(anicca)의 의미가 아닙니다.

  • * 이 비디오의 화면은 우리가 평소 얻지 못하는 시각적 효과를 제공합니다. 변화가 점진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변화를 보지 못합니다.


12. ‘무상(Impermanence)이 우리 우주의 고유한 특성’이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 붓다께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과학자들은 무상(Impermanence)을 잘 알고 있지만, 닙바-나(Nibbāna)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아닛짜(anicca)는 여러 가지 면으로 설명될 수 있는 심오한 개념이며, 그 여러 가지 면은 모두 관련되어 있습니다. 다음 세 포스트에서 세 가지 면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13. 마지막으로, 붓다께서는 ‘삽베 담마 아낫따(Sabbe Dhamma anatta)’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낫따가 무아를 의미한다면) 그래서, ‘모든 담마(법)는 무아(no-self)’라는 뜻일까요? 담마(법)는 모든 것을 포함하며, 무정체(비활성체)도 담마에 포함됩니다. ‘나무는 무아다, 혹은 나무에는 자아가 없다’, 또는 ‘산은 무아다, 혹은 산에는 자아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반면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실속이 없으며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일시적 존재입니다. 실속이 없으며 도움이 되지 않는 이것이 아낫따(anatta) 특성입니다.



잘못 번역된 가능한 역사적 이유


14. 붓다 담마(Buddha Dhamma)가 오랜 기간에 걸쳐 어떻게 전해져 왔는가를 살펴보면, 이 잘못된 번역 중의 일부분이 시작된 기원을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 사건의 세부 사항은 ‘Historical Background’ 카테고리에서 언급합니다.


  • * 붓다께서 빠리닙바-나(Parinibbåna, 반열반)에 드신 이후 약 500년 동안, 빠알리 띠삐따까(Pāli Tipitaka, 빠알리 삼장)는 빅쿠(bhikkhu, 출가 스님)들에 의해 대를 이어 구두로 전승되었으며, 빠알리 캐논(canon, 성전)은 대대로 정확히 전승되었습니다. 물론 캐논(성전)은 구두로 전승하기에 적합한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 * 이 측면에 대한 논의는 'Preservation of the Dhamm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붓다의 원래 가르침은 아직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15. 그 후, [빠알리 캐논은] 싱할라(sinhala) 문자로 스리랑카에서 기원전 29년에 처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빨리(Pāli)어는 자체 문자가 없는 구어(음성 언어)입니다.


  • * 띠삐따까(Tipitaka, 삼장)은 유럽인들이 1600년대 후반에 ‘불교(Buddhism)’을 발견할 때까지 다른 언어로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Background on the Current Revival of Buddha Dhamma’ 포스트를 보세요.

  • * 띠삐따까(Tipitaka, 삼장)는 2005년까지 싱할라(sinhala)어로도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16. 리즈 데이비스(Rhys Davis)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삼장을)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베다 문헌(Vedic literature)뿐만 아니라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대승경전(Mahayana sutra, 마하야나 수트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유럽인들이 모든 이 상이한 빠알리 문헌과 산스크리트 문헌을 처음 발견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그 복잡함(복잡한 특징들)에 압도당했을 것입니다.


  • * 그들은 불교 개념을 힌두교 개념에서 분리하는 데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개념들은 혼합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Misintepretation of Anicca and Anatta by Early European Scholars’ 포스트를 보세요.

  • * 예를 들면, 그들은 무아(no-self)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는 빠알리어 아낫따(anatta)를 산스크리트어 아나-트마(anātma)와 같다고 가정했습니다. 비슷하게, 그들은 빠알리어 아닛짜(anicca)를 무상(impermanent)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아니트야(anitya)와 동일한 의미라고 간주했습니다.


17. 최악의 상황은 리즈 데이비스(Rhys Davis)를 지도교수로 하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말라세카라(Malasekara)와 같은 현대의 싱할라(Sinhala) 학자들조차도 유럽인들에게서 불교를 배웠고, 따라서 잘못된 해석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칼루파하나(Kalupahana)와 자야띨라케(Jayathilake)와 같은 다른 싱할라 학자들은 영국의 대학에서 불교를 배웠습니다.


  • * 리즈 데이비스(Rhys Davis), 외진 뷔르누프(Eugene Burnouf), 올콧트(Olcott) 등의 원 번역에 이어, 위 싱할라 학자들은 영어와 싱할라어로 된 책들을 썼습니다. 물론, 다른 불교 국가의 학자들은 그들의 모국어로 번역 등을 했고, 잘못된 해석이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 * 이 중대한 (오역)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우리는 빠알리어(Pāli)로 된 띠삐따까(Tipitaka, 삼장)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검토하는) 과정을 시작해야 합니다.

  • * 빠알리 숫따(Pāli sutta, 빠알리 경)들은 단어(낱말)별로 번역되어서는 안됩니다. 대부분의 경들은 구두로 전승하기에 도움이 되는 형태로 요약되어 쓰여졌습니다. ‘Sutta – Introduction’ 을 보세요.

  • * 띠삐따까(Tipitaka, 삼장)에 있는 매우 중요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주석서가 쓰여졌는데, 그 원 주석서 중에서 [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된] 3개만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 3개의 주석서에 많이(크게) 의지하여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3개의 주석서는 빠띠삼비다막까(Patisambhidamagga), 뻬따꼬빠데사(Petakopadesa) 및 넷띱빠까라나(Nettippakarana)입니다.

  • * 이 대신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후대에 쓰여진 잘못된 논평, 특히 붓다고사(Buddhaghosa)의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청정도론)에 의지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Buddhaghosa and Visuddhimagga – Historical Background’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러나, 붓다고사(Buddhaghosa)스님은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용어의 의미를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이 용어에 대한 오역은] 위에서 설명된 것처럼 훨씬 더 후에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붓다고사 스님은 호흡 명상과 까시나 명상과 같은 많은 다른 힌두교 개념을 짜 넣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Buddhaghosa’s Visuddhimagga – A Focused Analysis’ 포스트를 보세요.


18. 또한, 대량 인쇄가 근래 19세기 초까지는 가능하지 않았으며 1800년대부터만 일반화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Printing press’를 클릭하여 참조하세요.


  • * 책의 대량 출판은 1800년대에 출현된 새로운 인쇄기에서만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주요(핵심) 개념이 오역되어 출판되었습니다.

  • * 초기에, 띠삐따까(Tipitaka, 삼장)는 특별하게 가공하여 준비된 잎에 쓰여졌고, 그 잎이 부패하기 전에 100 ~ 200년마다 손으로 다시 써야 했습니다. 따라서 거의 2000년 동안 이 일을 충실히 행했던 스리랑카 빅쿠(bhikkhu, 출가 스님)들에게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 * 싱할라어는 말(구어)과 글(문어) 모두 지난 2000년에 걸쳐 변했습니다. 100년 정도마다 그것을 다시 써야 할 필요성으로 인해 싱할라 글자의 모든 변경 사항이 고려되었습니다.


다른 관련 문제들


19. 최근 온라인 포럼(online forum)에서 또 다른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낫따_anatta’(싱할라어로 අනත්ත)와 ‘아낫타_anattha’(싱할라어로 අනත්ථ)의 의미에 대해 토론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같은 의미이지만, 후자에서는 글자를 추가하여 더 강조하였습니다.


  • *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낫따_anatta’라고 씁니다. 그것은 ‘무아(no-self)가 아니라 ‘피난처가 없다’ 또는 ‘실속이 없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한, 어떻게 쓰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20. 오늘날 우세하게 널리 퍼져 있는 주요한 오해가 두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들은 닙바-나(Nibbāna, 열반)로 가는 길을 차단할 뿐만 아니라 아빠-야(apāya, 악처)에 재탄생되게 할 수 있는 밋짜 딧티(micca ditthi, 사견)입니다. 누군가를 겁주고 두려워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마(adhamma, 비법, 붓다의 가르침이 아닌 것)를 담마(dhamma, 법, 붓다의 가르침)로 만드는 것은 중대하고 심각한 범죄입니다’.


  • * 잘못된 해석으로 호흡 명상(breath meditation)을 아나빠나사띠(Anapanasati)로 오해하는 것이 그 한 가지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Is Ānāpānasati Breath Meditation?’ 포스트를 참고하세요.

  • * 간답바(gandhabba, manomaya kaya)가 대승불교의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다른 한 가지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간답바 상태 – 삼장에 있는 증거’ 포스트를 참고하세요.

  • * 이 모든 오해들은 현재의 테라와다 불자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 오해들은 ‘Historical Background’ 섹션의 포스트들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수백년동안 계승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포스트들과 이 웹사이트의 많은 포스트들로, 그것들이 오해라고 하는 (중요성이) 상당한 증거가 제시되었을 때, 그러한 오해를 고수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 * 물론 ‘이것만이 진리(진실)이고, 다른 것은 어떤 것도 진리(진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진실)는 정밀하게 증거를 조사함에 따라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입증될 수 있습니다. 필자는 타당하고 유효한 반대 증거가 있다면 어떠한 것이라도 논의하기 위해 공개적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진리(진실)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21. 마지막으로,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즉각 이해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먼저 세간적 팔정도를 따르고 깜마(kamma)와 재탄생(윤회)와 같은 기본 개념을 배워야 합니다.


  • * 더 자세한 내용은 ‘리빙 담마’ 섹션의 ‘성스런 팔정도로 이행(변천)’ 서브 섹션에 있는 포스트들을 보세요.

  • * 체계적으로 담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리빙 담마’ 섹션에 있는 포스트들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보세요.


22.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는 영어 등으로 직접 번역될 수 없는 복잡한 빠알리 낱말입니다. 아닛짜(또는 아낫따)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영어 단어는 없습니다. 아래의 서브 섹션에서 이 두 개의 복잡한 빠알리 낱말에 대해 논의합니다.


*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아닛짜 - 진정한 의미’ 서브 섹션

*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아낫따 - 체계적 분석’ 서브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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