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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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붓다 담마)의  현재 부흥 배경

 

원문: Historical Background 섹션의 'Background on the Current Revival of Buddha Dhamma’ 포스트

- 2017년 4월 29일 개정; 2020년 1월 27일 개정

 

영국 공무원의 결정적 역할

 

1. 모순적이게도 현재의 불교(Buddha Dhamma)의 부흥도 수백 년 동안 대부분의 불교 국가에서 붓다 담마가 쇠퇴하게 된 것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그 쇠퇴는 두 번째 천년기 후반, 즉 포르투갈에서 시작하여 영국으로 끝나는 서구 열강에 의한 아시아의 식민지화에 있었습니다.

 

  • * 영국 동인도회사의 공무원들은 1800년대에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고대 불교 문헌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이 문헌/문서의 중요성을 깨닫고 문헌/문서 자체를 해독하기 시작했습니다(예: Thomas W. Rhys Davids, 1843-1922). 그들은 의욕이 생겨서 빠알리어와 산스크리트어를 배웠습니다.

  • * 다른 사람들은 유럽의 대학에 문헌/문서를 보냈습니다. 그곳에서는 대부분 프랑스와 영국의 철학자(예: Eugene Burnouf, 1801-1852)가 그것들을 연구하고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역했습니다.

  • * Charles Allen은 그의 뛰어난 저서 ‘The Search for the Buddha’(2003년)에서 인도, 스리랑카, 및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 영국 공무원들이 ‘잃어버린 지식’을 찾기 위한 노력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 책은 또한 인도 내의 역사적 불교 유적지의 대한 복원도 다룹니다.

 

초기 유럽 학자들

 

2. 이 서양인들은 자신들이 창조주에 기초하지 않은 종교에 처음으로 접하게 된 이 고대 교리에 심오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 Thomas Huxley는 이 새로운 종교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훌륭하게 포착했습니다(Thomas H. Huxley, ‘Evolution and Ethics and Other Essays’, 1894, pp. 68-69). “그것은 서구 관점에서 신을 모르고, 인간의 영혼을 부정하고, 불멸에 대한 믿음은 과실이고 그것을 죄로 간주하고, 신에게 기도하고 제물을 바치는 것에 의한 어떤 효능을 거부하고, 인간에게 구원을 위한 자기 자신의 노력만을 지시하는 체계다. 그것은 그 원래의 순수함에서는 맹세(서약)과 순종을 몰랐고, 참지못함(불관용)을 싫어했고, 세간의 무기에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놀라운 속도로 옛 세계의 상당부분에 퍼져나갔고, 낯선(이질적) 미신이 아무리 기본적으로 혼합되어 있다하더라도 여전히 대다수의 인류의 지배적인 신조다.”

  • * 특히 티베트 불교와 선(Zen) 불교 수행의 신화적 측면에 대해 일부 혼란이 있었을 초기 단계에서도 Huxley가 붓다 담마의 본질을 표현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3. 불교와 힌두교에 관한 아시아 문헌/문서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Helena Petrovna Blavatsky 부인과 Henry Steel Olcott 대령은 1875년 뉴욕시에 신지학 협회(Theosophical Society)를 설립했습니다. 그들은 그 후 인도와 스리랑카를 여행했고 불교도가 되었습니다.

 

  • * Olcott은 1881년에 ‘A Buddhist Catechism’(불교 교리문답)을 펴냈습니다. 이 책은 1871년 Edwin Arnold의 ‘Light of Asia’(아시아의 빛)(100쇄를 거침)과 함께 유럽과 미국에서 불교에 대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Olcott 대령은 종교를 부활시키기 위해 스리랑카에 여러 불교 학교를 열었습니다. 필자(Lal)가 그 학교 중 하나에 다닐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 * 이 노력들은 이후에 Anagarika Dharmapala, G. P. Malasekara, K. N. Jayatilleke, Narada Thera, Walpola Rahula Thera, David Kalupahana와 같은 여러 스리랑카 지식인들과, 불교의 가르침에 깊은 인상을 받고 스리랑카에 와서 승려가 되었고 테라와다 불교에 관한 훌륭한 논문을 저술한 몇몇 서양인들에 의해 강화되었습니다. 이 서양인들에는 Nyanatiloka Thera, Nyanyaponika Thera, 및 Bhikkhu Bodhi가 포함됩니다.

 

선(Zen) 불교의 급증

 

4. 1800년대 후반에 Rhys Davids, Arnold, Olcott의 초기 출판물은 주로 테라와다 불교에 관한 것이었으나, 1900년대 초반부터 선(Zen)불교는 서양에서 매혹의 대상이 되었고 계속해서 서양에서 중요한 불교로 남아 있습니다.

 

  • * 서양인이 (테라와다) 불교를 서양에 소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선불교는 엘리트 그룹의 일본 지식인, 특히 D. T. Suzuki의 노력을 통해 서양 의식에 스며들었습니다. 1897년 미국에 온 Suzuki는 ‘An Introduction to Zen Buddhism’(선불교 입문)을 비롯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이 책은 선(Zen)의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본질을 강조했습니다.

 

5. 다음은 Suzuki의 위 책에서 발췌한 것으로,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이 ‘원시적’이며 대승(Mahāyāna)이 필요한 개선을 했다는 대승 사상가들의 믿음을 분명히 명시한 것입니다(p. 1, 각주 1).

 

  • * “..정확히 말하면, 대승(Mahāyāna)의 기본 사상(개념)들은 반야바라밀(Prajnapāramitā) 그룹의 불교 문헌에 설명되었는데, 그 중 가장 이른 것은 늦어도 부처님 사후 300년 이내에 나타났을 것이다. 이른바 원시 불교에 속하는 저작물에 싹이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들의 전개만은, 즉, 창시자의 가르침에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서 그것들에 대한 의식적인 파악(이해)만은, 그의 추종자들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삶의 조건을 통해 한동안 실제로 가르침에 따라 생활하지 않고는 영향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경험이 풍부하고 성찰이 성숙된 인도의 불교도들은 원시적이거나 원래의 형태와 구별된 마하-야-나(대승) 형태의 불교를 갖게 되었다. 인도에는 Nagarjuna의 Madhyamika(중관)와, Asanga 및 Vasubandhu의 Vijnaptimatra(유식) 또는 Yogacara(유가)로 알려진 두 개의 파가 있다. 중국에는 Tendai(천태), Kegon(화엄), Jodo, Zen(선) 등 더 많은 파가 있다. 일본에는 이들 외에 Hokke, Shingon, Shin, Ji 등이 있다. 이 모든 학파 또는 종파는 불교의 대승(Mahāyāna)파에 속한다.”(강조 표시는 필자가 한 것임).

 

대승불교가 가진 문제

 

6. 이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자연법칙을 발견할 수 있고 그 가르침은 개선될 수 없다는 붓다 담마의 기본 가정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필자는 ‘묘법연화경(법화경) ㅡ 집중된 분석’와 ‘순야-따(또는 순냐-따)(텅빔/공)는 무엇인가?’ 포스트에서 대승(Mahāyāna) 가르침이 지닌 핵심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 * 자연법칙은 단 한 세트만 있으며 그것은 붓다께서 발견하신 것입니다. 이 웹사이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그 진술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담마와 과학 - 소개’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달라이 라-마의 역할

 

7. 더 최근에는 티베트 불교(Vajrayāna)가 서양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1953년 중국의 티베트 침공과 달라이 라마(Dalai Lāma)의 놀라운 개인적 카리스마에 대한 홍보의 결과입니다.

 

  • * 달라이 라마가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과학에 대한 나의 확신은 불교에서나 과학에서나, 현상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비판적인 조사를 통해 추구된다는 나의 기본적인 믿음에 있습니다. 과학적 분석이 결정적으로 불교의 특정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한다면, 우리는 과학의 발견을 받아들이고 그 주장들을 버려야 합니다.”(강조 표시는 필자가 한 것임) ㅡ ‘The Universe in a Single Atom: Convergence of Science and Spirituality’(2005년)에서 인용.

 

8. 대승(Mahāyāna)과 금강승(Vajrayāna) 교파는 이제 그 ‘불교’ 형태의 일부 개념이 과학의 새로운 발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테라와다 담마(Theravada Dhamma)에 언급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은 그런 개선이 ‘시대와 문화에 뒤떨어지지 않게’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도전받지 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 * 빠알리 띠삐따까(Pāli Tipiṭaka)는 2000여년 전에 쓰여진 이래로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현실은 2500여년 전에 붓다께서 말씀하신 많은 것들을 과학이 이제 겨우 확인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담마와 과학 - 소개’ 및 후속 링크를 참조하세요.

  • * 유감스럽게도, 띠삐따까(Tipiṭaka)의 번역 및 편집된 버전에는 아래에서 간략하게 논의되고 이 섹션의 뒷부분에 있는 포스트에서 자세히 설명하는 것처럼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과학자들의 역할 

 

9. 20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서구 과학자들의 여러 책을 기초로 서구에서 '불교'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 * 그것은 물리학자 Fritjof Capra의 ‘The Tao of Physics’(1975년)(번역판: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의 출판으로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그가 어떻게 어느 날 조용히 바다 옆에 앉아, 양자 역학의 미묘함과, 힌두교, 불교, 중국 사상, 도교, 및 선(Zen)를 포함하는 동양의 ‘신비주의’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깨달았는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양자역학이 기술하는 물질의 세계와 '동양의 신비주의'에서 지배적인 '마음'을 연결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5판(2010년)이 나올 때까지도 그는 선(Zen)이 불교의 한 분파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고 어떤 테라와다 문헌도 접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우려고 했던 연결은 분명히 서양 독자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이 추세가 계속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 * 서양에서 ‘불교’에 대한 최근의 관심에 기여한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Dalai Lāma(달라이 라마)의 ‘The Art of Happiness’(번역판: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과 다른 책들, Francisco Varela 외의 ‘The Embodied Mind’(번역판: 몸의 인지과학), Stephen Batchelor의 ‘Confession of a Buddhist Atheist(번역판: 어느 불교무신론자의 고백)’와 다른 책들이 몇 가지 예입니다.

  • * 그러나, ‘역사적 배경’이라는 이 섹션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이 책들은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에서 완전히 벗어난 대승불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이 책들의 대부분은 붓다 담마에 대한 해석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을 가려내기

 

10. 글의 시작 부분에서 언급한 책들과, Ven. Ledi Sayadaw, Ven. Bhikkhu Bodhi, Ven. Walpola Rahula, 및 다른 이들(아래 참고 문헌을 참조)의 여러 다른 책들은 비록 그것들이 두 가지 주된 ‘오염 문제’로 인해 일부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 독자들에게 대단히 필요한 불교 관련 자료를 주고 있습니다.

 

  • * 그 하나의 문제는 약 1500년 전에 붓다고사(Buddhaghosa)가 아-나빠-나 바와나(Ānapāna Bhavana)를 ‘호흡 명상’으로 왜곡하고 또한 그의 주석서인 위숫디막가(Visuddhimagga)에서 힌두 까시나 명상을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 도입했을 때 일어났습니다.

  • *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를 무상(impermanence)과 무아(no-self)로 잘못 해석하는 또 다른 문제는 띠삐따까(Tipiṭaka)를 영어로 번역한 그 초기 유럽 학자들이 행했습니다. ‘아닛짜, 둑카, 아낫따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왜 그렇게 중요할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 잘못된 해석들은 180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에서 채택되었습니다.

  • * 그러므로, 1800년대 후반 이후 모든 언어로 출판된 모든 불교 문헌은 이 두 가지 문제를 모두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입니다. ‘Misinterpretation of Anicca and Anatta by Early European Scholars’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우리는 여전히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빠알리 띠삐따까(Pāli Tipiṭaka)에 의지해야 하며, 이 웹사이트의 목표는 부처님의 이 원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참고 문헌

 

1.  Edwin Arnold의 ‘Light of Asia’(1871년).

2. H. S. Olcott의 ‘A Buddhist Catechism’(1881년).

3. T. H. Huxley의 ‘Evolution and Ethics and Other Essays’(1894년). (번역판: 진화와 윤리, 이종민 옮김, 산지니, 2021년)

4. D. T. Suzuki의 ‘An Introduction to Zen Buddhism’(1964년).

5. Walpola Rahula의 ‘What the Buddha Taught’(1974년). (번역판: 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 전재성 옮김, 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05년)

6. Fritjof Capra의 ‘The Tao of Physics’(1975년). (번역판: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이성범 옮김, 범양사, 2010년) 

7. Edward Conze의 ‘A Short History of Buddhism’(1980년).

8. David J. Kalupahana의 ‘A History of Buddhist Philosophy’(1992년). (번역판: 불교철학의 역사, 김종욱 옮김, 운주사, 2014년)

9. Ledi Sayadaw의 ‘The Manuals of Dhamma’(1999년).

10. C. Allen의 ‘The Search for the Buddha’(2003년).

11. Dalai Lāma의 ‘The Universe in a Single Atom: The Convergence of Science and Spirituality’(2005년). (번역판: 한 원자 속의 우주, 삼묵/이해심 옮김, 하늘북, 2007년)

12. Bhikkhu Bodhi 의 ‘In the Buddha’s Words’(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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