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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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야-따(또는 순냐-따)(텅빔/공)는 무엇인가?

 

원문: Historical Background 섹션의 ‘What is Sunyata or Sunnata (Emptiness)?’ 포스트

- 2015년 12월 28일 개정; 2017년 11월 26일 개정; 2017년 12월 16일 개정

 

1. 대승불교에는 순야-따(Suñyāta)(실제로는 빠알리어로 ‘순냐-따_Suññāta’), 즉 텅빔/공(emptiness)에 대해 쓰여진 책이 있습니다. 대승불교는 그들의 선조(대승 전통을 시작한 사람들)가 열반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순야-따(sunyāta, 공)를 크게 다루려고 합니다. 불행히도, 대승의 가르침만 접한(그리고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닙바-나(열반)은 추상적 개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2. (텅)빔/공이란 무엇인가?

 

  • * 개체 A에 개체 B가 없을 때, 개체 A에 B가 없거나 B가 텅비어 있다(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텅)빔 또는 순야-따(suñyāta, 공)입니다.

  • * 예를 들어, 물병을 가져다가 물을 쏟아내면, 우리는 빈(텅빈, 공) 병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병에는 공기가 있으므로, 병은 물에 대해서만 비어 있습니다. 그것은 공기에 대해서는 (텅)비어 있지 않습니다.

  • * (텅)빔/공은 상대적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무엇이 비어 있는지 말해야 합니다. 절대적인 ‘(텅)빔/공’은 없습니다. ‘이것은 (텅)비었다/공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 예를 들어, 최근까지 과학자들은 심우주(지구에서 먼 우주 공간)가 ‘비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것이 에너지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심우주(deep space)에는 유형의 물질이 없다’고 근사적으로 타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3. 붓다께서는 마음에 탐함(rāga), 성냄(dōsa), 미혹함(mōha)이 비워지면 그 오염(번뇌)들이 없어진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라-각카요- 닙바-난, 도삭카요- 닙바-난, 모학카요- 닙바-난(rāgakkhayō Nibbānan, dosakkhayaō Nibbānan, mohakkhayō Nibbānan)’이고, 그 마음은 닙바-나(Nibbāna)에 도달했습니다. 그것은 오염(번뇌)에 대해 (텅)빔, 순냐-따(suñyāta)이고, 또한 이 31영역 세상의 모든 물질에 대해 (텅)빔, 순냐-따(suñyāta)입니다. 아래를 참조하세요. 거기에 도달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매우 간단한 설명입니다.

 

  • * 아라한과(Arahant phala)에 도달하면, 그 마음에는 라-가(rāga), 도-사(dōsa), 모-하(mōha)가 순냐(sunya, 공)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여전히 산냐-(saññā, 지각/인식), 웨-다나-(vēdanā, 느낌) 등이 있으며, 죽을 때까지 보통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 * 그러나 그 마음에는 탐욕, 증오, 및 무지가 없고,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부도덕한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 * 아라한이 죽으면, 아라한의 나마 곳따(nama gotta)(이전 삶에 대한 마노- 각인, 즉 기억 기록, ‘담마-와 상카-라의 차이’ 참조)를 제외하고는 그 생명 흐름의 어떤 흔적도 없게 되는데, 더 이상 재탄생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또 다른 순야-따(suñyāta)입니다.

 

4. 띠삐따까(Tipiṭaka)에는 순냐-따(Suññāta, 공)에 관한 경전이 있는데, 그것은 붓다께서 설하신 것으로서, 쭐라ㅡ순냐-따(CulaㅡSuññāta) 숫따(경)라고 합니다. 필자는 사실 이 숫따에 대해 알기 전에 첫 포스트를 작성했습니다. 필자의 친구가 그 숫따에 대해 말했을 때, 그 숫따는 필자가 위에서 묘사한 방식과 매우 유사하게 빔/공(emptiness)을 묘사한 것을 보고 기뻤습니다. 이것은 담마가 내적으로 ‘자기 일관성(self-consistent)’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https://www.accesstoinsight.org/tipitaka/mn/mn.121.than.html에서 필자가 발췌한 쭐라-순냐-따(CulaㅡSuññāta) 숫따의 영어 번역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좋지 않고 심지어 오류가 있는 영어 번역을 많이 접하지만, 다행히 이 번역은 상당히 괜찮습니다.

 

아래 링크의 본문에서 강조 표시는 필자가 한 것이며, 필자는 약간의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Cula-Suññāta Sutta

 

무의미한 말들로 가득한 텅빔/공(emptiness)에 관한 책을 쓸 필요는 없다. 위의 숫따(경)가 [공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5. 2014년 온라인 토론 포럼에서, 필자는 텅빔/공(emptiness)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묘사한다는 코멘트를 보았습니다. 마하-야-나(Mahāyāna, 대승) 문헌에서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가 무엇인지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 * 필자는 대승 문헌, 선(Zen), 금강승(Vajrayana), 또는 어떤 다른 형태로든 조금이라도 합리적인 방식으로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가 설명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책을 아신다면, 그 책(또는 어떤 다른 출처)의 이름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6. 31영역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아윗자-(avijjā, 이 세상의 참된 본질을 알지 못함)로 인해 일어납니다. 이것이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바와 빳짜야- 자-띠(bhava paccayā jāti)’ 단계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빠띳짜 사뭅빠다(연기)’ 섹션을 참조하세요.

 

  • * 담마를 이해함으로써 탐욕, 증오, 무지의 제거를 통해 아윗자-(avijjā)가 제거될 때, 이 물질 세계의 어떤 것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두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로, 즉 아윗자-(avijjā)로 어떤 것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함으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 * 아라한의 깨달음(아라한과)에서는 31영역에 있는 어떤 물질에 아주 미미한 들러붙음도 버려지며, (더 깊은 레벨에서 괴로움의 원인인) 어떤 물질에 대한 모든 원인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진짜 텅빔/공, 즉 닙바-나(Nibbāna)입니다. 또한, ‘루-빠는 무엇인가?(닙바-나와 관련하여)’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7. “Yo Paṭicca samuppādam passati, so Dhammam passati”, 즉 “빠띳짜 사뭅빠-다를 이해하는 자는 담마를 이해한다”입니다.

 

  • * 대승(Mahāyāna) 교파는 붓다 담마에서 너무 멀어져 버렸는데, 필자는 왜 그들이 아직도 그것을 ‘붓다 담마’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 *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뒤에 있는 개념을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개념은 그 낱말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빠띳짜 사뭅빠-다 ㅡ 빠띠+이치차 + 사마+웁빠-다’ 포스트 및 후속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붓다 담마는 원인과 결과에 관한 모든 것이며, 그것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8. 순냐따(Suññata)를 분석하는 더 깊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자연의 세가지 특성(띨락카나, 즉 아닛짜, 둑카, 아낫따)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틸락카나(Tilakkhana, 즉 이 세상의 참된 본질)을 알지 않고서는 닙바-나(열반)를 얻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아닛짜, 둑카, 아낫따(Anicca, Dukkha, Anatta)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 * 아닛짜, 둑카, 아낫따(물론, 그것들은 상호 연관되어 있음)에 대해 숙고함으로써 닙바-나(또한 ‘위목카_vimokkha’라고 함)에 이를 수 있습니다. 아닛짜(anicca)에 대해 숙고하는 것은 아니밋따 위목카(animitta vimokkha)로 이어집니다. 둑카(dukkha)에 대해 숙고하는 것은 압빠니따 위목카(appanita vimokkha)로 이어집니다. 아낫따(anatta)에 대해 숙고하는 것은 순냐따 위목카(suññata vimokkha)로 이어집니다.

  • * 그러나, 어떤 길을 취하든, 최종 결과는 동일합니다. 닙바-나(Nibbāna)에 도달하면, 이 세상으로부터 해방됩니다(자유로워집니다).

 

9. 마지막으로, 가장 기본적인 레벨에서, 닙바-나(Nibbāna)은 탐욕,  증오, 무지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에는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즉 이 세상의 참된 본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 * 다른 방식으로 말하면, 탐욕, 증오, 무지는 아나-빠-나(Anāpāna)와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 명상을 통해 제거되어야 합니다. ‘사띠빳타-나 숫따 ㅡ 구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러나 그 명상은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에 대한 이해로 행해져야 합니다.

  • 이 명상의 올바른 버전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바와나(명상)’ 섹션 및 ‘숫따(경) 해석’ 섹션의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Maha Satipaṭṭhāna Sutta)’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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