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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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야따-(또는 순냐따-)(텅빔/공)는 무엇인가?

     

    원문: Historical Background 섹션의 ‘What is Sunyata or Sunnata (Emptiness)?’ 포스트

     

    순냐따-(Suññatā)(산스크리트어로 suñyatā)는 세상에 쓸모 있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실질적이거나 지속적인 행복을 준다고 믿고 있는데, 이는 그 마음이 단지 라-가(rāga), 도사(dosa), 및 모-하(mōha)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깨달으면 닙바-나(Nibbāna)를 얻습니다.

     

    2015년 12월 28일 개정; 2025년 11월 1일 재작성

     

    1. 대승불교에는 순야따-(suñyatā)(빠알리어로 ‘순냐따-_Suññatā’), 즉 텅빔/공(emptiness)에 대해 쓰여진 책이 있습니다. 대승불교는 순야따-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대승불교의 창시자들(대승불교 전통의 창시자들)이 닙바-나(Nibbāna)의 개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대승의 가르침만 접한(그리고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닙바-나(열반)는 추상적 개념이라고 믿습니다.

     

    • * 2014년에 온라인 토론 포럼에서, 공(emptiness)이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묘사한다고 말하는 댓글(코멘트)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빠띳짜 사뭅빠-다는 대승 문헌에 설명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 * 필자는 대승(Mahāyāna), 선(Zen), 금강승(Vajrayana)의 문헌에서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가 조금이라도 이치에 맞는 방식으로 설명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만약 그런 책을 알고 계시다면, 책 이름(또는 다른 출처)를 포럼에 코멘트로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그러나, 순수한 붓다 담마를 이해한다면 닙바-나(열반)은 매우 간단한(단순한) 개념입니다.  ‘닙바나는 이해하기 어려운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텅)빔/공이란 무엇인가?

     

    3. 개체 A에 개체 B가 없을 때, 개체 A에 B가 없거나 B가 텅비어 있다(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텅)빔 또는 순냐따-(suññatā)입니다.

     

    • 예를 들어, 물병을 가져다가 물을 쏟아내면, 우리는 병이 비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병에는 공기가 있으므로, 병에는 물만 비어 있습니다. 그것에는 공기가 비어 있지 않습니다.

    • (텅)빔/공은 상대적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무엇이 비어 있는지 말해야 합니다. 절대적인 ‘(텅)빔/공’은 없습니다. ‘이것은 (텅)비었다/공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예를 들어, 최근까지 과학자들은 심우주(지구에서 먼 우주 공간)가 ‘비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것이 에너지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심우주(deep space)에는 유형의 물질이 없다’고 근사적으로 타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순냐따-

     

    4. 붓다께서는 마음에 탐함(rāga), 성냄(dōsa), 미혹함(mōha)이 비워지면 그 오염(번뇌)들이 없어진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라-각카요- 닙바-난, 도삭카요- 닙바-난, 모학카요- 닙바-난(rāgakkhayō Nibbānan, dosakkhayaō Nibbānan, mohakkhayō Nibbānan)’이고, 그 마음은 닙바-나(Nibbāna)에 도달했습니다. 그것은 오염(번뇌)에 대해 (텅)빔, 순냐-따(suñyāta)입니다. 거기에 도달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간단한 설명입니다.

     

    • * 아라한과(Arahant phala)에 도달하면, 그 마음에는 라-가(rāga), 도-사(dōsa), 모-하(mōha)가 순야(suñya, 공)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여전히 산냐-(saññā, 지각/인식), 웨-다나-(vēdanā, 느낌) 등이 있으며, 죽을 때까지 보통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 * 그러나 그 마음에는 탐욕, 증오, 및 무지가 없고,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부도덕한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 * 아라한이 죽으면, 아라한의 나마 곳따(nama gotta)(이전 삶에 대한 기억 기록)를 제외하고는 그 아라한의 생명 흐름의 어떤 흔적도 없게 되는데, 더 이상 재탄생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또 다른 순냐따-(suññatā)입니다.

     

    5. 또한 세상에는 (나마곳따, 즉 기억 기록 외에는) 실질적이거나 영구적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유정체와 그 주변 환경이 있는) 31영역의 세상은 그 유정체가 만들어내는 정신 에너지(또는 업 에너지)에 의해 유지됩니다.

    • * 그 정신 에너지는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고갈되고, 따라서 유정체들은 새롭게 태어나게 됩니다(그리고 그들의 환경 또한 오랜 기간에 걸쳐 새롭게 됩니다). 그 때문에 이 세상에는 자신의 만족대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노력하는 자들의 노력은 헛수고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아닛짜 본질’입니다

    • * (인간의 경우 뿌툿자나를 포함하여) 유정체는 내장된 왜곡된 산냐-로 인한 라-가(rāga), 도사(dosa), 및 모하/아윗자-(moha/avijjā)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행위에 기반한 업 에너지를 생성하는데, 이로 인해 세상에는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 있다는 타고난 느낌을 갖게 됩니다.

    • * 모든 유정체는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제자로부터 왜곡된 산냐-(인간의 경우에 까-마 산냐-)에 대해 배우기 전까지는 재탄생의 굴레에 갇혀 있습니다.

     

    쭐라 순냐따 숫따

     

    6. 띠삐따까(Tipiṭaka)에는 순냐따-(suññatā)에 관한 숫따가 있는데, 쭐라-순냐따 숫따(Cūḷasuññata Sutta) (MN 121)라고 합니다.

     

    • * 이 숫따는 세상과 관련된 다양한 유형의 왜곡된 산냐-를 극복하고 아라한과 또는 닙바-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 * 이것은 더 깊은 레벨의 숫따지만, 우리는 최근에 그 요지를 이해할 만큼 충분한 자료를 다루었습니다.

     

    7. ‘Cūḷasuññata Sutta (MN 121)’에서, 붓다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자신이 종종 ‘순냐따- 위하-라(suññatā vihāra)’ 상태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 여기서, 위하-라(vihāra)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셨는지를 나타내는데, 붓다께서 ‘순냐따- 위하-라(suññatā vihāra)’라고 하신 것은 자주 마음에 아무런 동요도 없이 시간을 보내셨다는 뜻입니다. 

    • *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부처님의 마음은 (라-가, 도사, 모하가 없기 때문에) 언제나 동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 (인간으로 태어나신) 부처님도 앞서 논의했듯이 ‘까-마 산냐-(kāma saññā)’를 느낍니다. 모든 마음은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에서 ‘자동 모드(auto mode)’로 작동하며, 특히 ‘까-마 다-뚜(kāma dhātu)’에서 그렇습니다. 부처님의 마음조차도 ‘까-마 산냐-’에 의해 ‘약간 동요’될 수 있습니다.

    • * ‘Nibbānadhātu Sutta (Iti 44)’에서, 붓다께서는 일상 생활에서 아라한의 마음 상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십니다. “그들의 다섯 감각 기능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들의 감각이 작동하는 한, 그들은 계속해서 유쾌하거나 불쾌한 것을 경험하고, 즐거움과 고통을 느낀다.” 결정적인 중요한 점은 그들이 ‘까-마 수카’(다채로운 세상, 맛있는 음식) 등)와 신체적 고통 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 또는 싫은 사람을 볼 때 쾌활하거나 우울한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 * 붓다께서 약카(정령/유령)를 접하신 것이 좋은 예입니다. 이 이야기는 ‘Sūciloma Sutta (Snp 2.5)’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붓다께서는 그 고약한 정령의 손길이 (스컹크에게 닿는 것처럼) 불쾌했기에 그 고약한 정령에게서 물러나셨습니다.

    • * 붓다께서 순냐따- 위하-라(suññatā vihāra)에서 생활하실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아라한-팔라 사마빳띠(Arahant-phala samāpatti), 니로다 사마빳띠(nirodha samāpatti), 또는 아-나-빠-나사띠 사마-디로 사띠빳타-나 부-미[역주: 팔라 찟따가 일어나지 않은 고뜨라부 찟따 상태로 사띠하는 상태의 생활로서, 까-마 산냐-가 일어나는 보통 일상생활의 끼리야 찟따가 일어나는 상태와는 다른 상태임]에서 생활하실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에는 까-마 산냐-(kāma saññā)가 없습니다

     

    쩨또위뭇띠를 통한 아라한과

     

    8. 까-마, 루빠, 및 아루빠 로까에 있는 유정체는 모두 특정한 유형의 왜곡된/위빠리따 산냐-를 지니고 태어나는데, 이를 ‘산냐- 위빨라-사(saññā vipallāsa)’라고도 합니다.

     

    • * 까-마 로까(kāma loka)의 11영역에 있는 로까 산냐-(loka saññā)의 수 또는 유형이 가장 많습니다.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 즉 맛, 냄새, 및 감촉(그리고 시각 대상 및 소리)과 밀접하게 접촉하는 ‘감각적 즐거움’은 까-마 로까에만 있으며, (성, 맛있는 음식, 매혹적인 시각 대상, 소리, 냄새를 위한) 가장 강력한 유형의 연관된 ‘로까 산냐-’를 갖습니다. 이를 나-낫따 산냐-(nānatta saññā), 즉 ‘폭넓게 다양한 산냐-’라고 합니다.

    • * 그 다음, ‘루빠 로까(rupa loka)’의 16가지 브라흐마 영역에서는 마음은 더 적은 수의 산냐-를 경험합니다. 이 영역들에는 자-나 산냐-(jhānic saññā)가 있으며, 사위딱까(savitakka), 사위짜-라(savicāra), 삐띠(piti), 수카(sukha), 및 에깍가따-(ekaggatā)가 그것입니다. 제4자-나에 이르면,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자-나 산냐가 제거되고 오직 에깍가따-(ekaggatā)만을 경험하게 됩니다.

    • * 그리고 요기(수행자)는 제4자-나를 초월하여 한 유형의 ‘왜곡된 산냐-’로 아루빠 로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나리야 요기(수행자)의 쩨또위뭇띠

     

    9. ‘아루빠 로까(arupa loka)(네 가지 아루빠 브라흐마 영역)에서는 오직 마음만이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에 마음은 오직 하나의 산냐-(saññā)에만 집중합니다. 예를 들어, 아-까-사-난짜야따나(Ākāsānancāyatana)와 윈냐-난짜-야따나(Viññāṇañcāyatana) 영역에서, 마음은 무한한 공간과 무한한 윈냐-나에 집중합니다. 이것이 가장 스트레스가 적은 ‘아루빠 로까 사마빳띠(arupa loka samāpatti)’입니다.

     

    • * 가장 적은 스트레스(고통)를 경험하는 곳은 가장 높은 브라흐마 영역입니다. 이곳에서는 ‘왜곡된 산냐-(distorted saññā)’의 흔적만 느낄 수 있습니다.

    • * 고대 요기들은 이것이 마음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궁극적인 해방/해탈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쩨또위뭇띠(cetovimutti)라고 불렀습니다.

    • *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열 가지 상요자나(saṁyojana)를 모두 지닌 채 재탄생 과정에 묶여 있습니다! 그 상요자나는 오직 빤냐-(지혜)로만 끊어질 수 있습니다.

     

    아리야는 쩨또위뭇띠를 통해 우바또위뭇띠 아라한이 될 수 있다

     

    10. 그러므로, 아나리야 요기(세간 수행자)가 까-마 로까(kāma loka)에서 루빠 로까(rupa loka)로, 그리고 마침내 아루빠 로까(arupa loka)로 체계적으로 올라가면, 경험되는 ‘왜곡된 산냐-(distorted saññā)’의 수는 줄어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나 경험이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 감각적 즐거움)보다 더 좋고, 아루빠 사마빳띠(arupa samāpatti)는 훨씬 더 좋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취는 일시적이며, 아빠-야-(apāyā)에 재탄생하는 것에서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 * 그러나, 소따빤나(Sotapanna)는  아나리야 요기처럼 루빠 로까와 아루빠 로까를 거쳐 같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가장 높은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네와산냐-나-산냐-야따나,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그때에 소따빤나는 네와산냐-나-산냐-야따나(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 )의 아닛짜 본질을 숙고하여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 * 이것은 ‘양면으로 해탈된’ 우바또위뭇띠 아라한(Ubhatovimutti Arahant)이 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삼마- 사마-디 ㅡ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의 #3을 참조하세요.

     

    쭐-라순냐따 숫따의 설명

     

    11. 붓다께서는 자신이 종종 ‘순냐따- 위하-라(suññatā vihāra)’ 상태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말씀하신 후, 아난다 존자에게 소따빤나가 어떻게 아나리야 요기와 같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네와산냐-나-산냐-야따나(nevasaññānāsaññāyatana)에 도달하고 그것의 아닛짜 본질을 숙고함으로써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는지 설명하셨습니다.

     

    • * 그 설명은 표식 4.1에서 시작되는데, “Seyyathāpi, ānanda, ayaṁ migāramātupāsādo suñño hatthigavassavaḷavena, suñño jātarūparajatena, suñño itthipurisasannipātena atthi cevidaṁ asuññataṁ yadidaṁ—bhikkhusaṅghaṁ paṭicca ekattaṁ.”로 시작됩니다.

    • * 번역: “미가-라마-뚜빠-사-다(붓다께서 당시 머물렀던 곳)에는 코끼리, 소, 말, 암말도 없고, 금과 은, 남녀의 모임도 없다. 오직 빅쿠들만 그곳에 살고 있다.” 

    • * 필자는 숫따의 나머지의 핵심 내용만 간략하게 영어로 설명하겠습니다. 링크에 있는 영어 번역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12. 마을에 있는 다양한 유형의 산냐-(재가자들이 경험하는 것)는 빅쿠들만 살았던 미가-라마-뚜빠-사-다(또한 ‘미가-라의 어머니’로 알려졌고 위사까가 세운 곳)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마을이나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인식(산냐-)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습니다(표식 4.6). 따라서, 빅쿠들은 오직 아란냐 산냐-(‘아란냐’는 ‘미가-라마-뚜빠-사-다’임)에만 노출됩니다. 

     

    • * 표식 4.10에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구절이 있는데, “Iti yañhi kho tattha na hoti tena taṁ suññaṁ samanupassati, yaṁ pana tattha avasiṭṭhaṁ hoti taṁ ‘santamidaṁ atthī’ti pajānāti. Evampissa esā, ānanda, yathābhuccā avipallatthā parisuddhā suññatāvakkanti bhavati.”입니다.

    • * 번역:소따빤나는 지혜로 깨달을(pajānāti) 수 있고, 마을에 있는 산냐-를 마음에서 없앨(suññatāvakkanti)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마음은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다.”  

     

    13. 다음으로, 빅쿠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무시하고(amanasikaritvā manussa saññaṁ) 그리고 아란냐에 대한 인식을 무시하고(amanasikaritvā arañña saññaṁ), 빠타위-에 대한 인식(pathavī saññā)에 따른 하나됨(또는 일체감)에 집중합니다.

     

    • * 그 다음, 표식 5.8에서, 그들의 마음은 빠타위- 산냐-에 기반하여 사마-디에 들어갑니다(pathavīsaññaṁ paṭicca ekattan’ti).

    • * 이것이 아나리야 요기들이 수행하는 까시나 명상입니다.

    • * 이로써, 빅쿠는 (숫따에 설명되어 있지 않은) 네 가지 자-나 상태를 모두 경험할 수 있습니다.

     

    14. 다음 단계에서, 그들은 아-까-사-난짜-야따나(ākāsānañcāyatana)라는 첫 번째 아루빠 사마빳띠에 들어가는데(표식 6.1), “Puna caparaṁ, ānanda, bhikkhu amanasikaritvā araññasaññaṁ, amanasikaritvā pathavīsaññaṁ, ākāsānañcāyatana saññaṁ paṭicca manasi karoti ekattaṁ.”입니다.

     

    • * 그리고 (각 아루빠 산냐-를 연속적으로 버림으로써) 나머지 아루빠 사마빳띠를 거쳐 네와산냐-나-나산냐-야따나(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 )라는 네 번째 아루빠 사마빳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표식 9.7).

    • * 이제, 표식 10.1부터, 빅쿠가 어떻게 그 모든 상태의 아닛짜 본질을 숙고하여 왜곡된 산냐-를 가진 모든 니밋따에서 마음을 벗어나게 함으로써(표식 11.1), 까-마 로까, 루빠 로까, 및 아루빠 로까의 모든 존재를 극복할 수 있는지 설명되는데, “Puna caparaṁ, ānanda, bhikkhu amanasikaritvā ākiñcaññāyatanasaññaṁ, amanasikaritv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ññaṁ, animittaṁ cetosamādhiṁ paṭicca manasi karoti ekattaṁ.”입니다.

    • * 빠자-나-띠(pajānāti)라는 낱말이 자주 나타나는데, 이는 빅쿠가 ‘아리야’여야 함을 가리킵니다. ‘인지 모드 ㅡ 산자-나-띠, 위자-나-띠, 빠자-나-띠, 아비자-나-띠’를 참조하세요.

     

    15. 재탄생과 관련된 모든 상요자나를 제거한 후에도, 그들(유학성자)은 여전히 마나(mana), 웃닷짜(uddacca), 및 아윗자-(avijjā)라는 나머지 세 가지 상요자나를 제거해야 합니다.

     

    • * 이것이 완료되면(표식 11.6), “Tassa evaṁ jānato evaṁ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ṁ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ṁ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입니다.

    • * 번역: “이렇게 알고(jānato) 지혜로 보면(passato), 마음은 까-마 로까(까-마 아-사와)와, 루빠 및  아루빠 로까(바와 아-사와)와, 무지(아윗자- 아-사와)에서 자유로워진다. 자유로워졌을 때, 자신이 자유로워졌다(해방되었다)는 것을 안다.” 

    • * ‘자-나또 빳사또와 아-자-니야 ㅡ 기억해야 할 결정적인 말들’을 참조하세요.

     

    지혜로 다양한 산냐-를 극복함으로써 제거되는 재탄생의 굴레(상요자나)

     

    16. 표식 12.4: “So ‘suññamidaṁ saññāgataṁ kāmāsavenā’ti pajānāti, ‘suññamidaṁ saññāgataṁ bhavāsavenā’ti pajānāti, ‘suññamidaṁ saññāgataṁ avijjāsavenā’ti pajānāti, ‘atthi cevidaṁ asuññataṁ yadidaṁ—imameva kāyaṁ paṭicca saḷāyatanikaṁ jīvitapaccayā’ti.”

     

    • * 이것이 지혜로(pajānāti) 까-마 로까와 관련된 모든 유형의 산냐-를 극복하고(suññam idaṁ saññāgataṁ kāmāsavenā’ti pajānāti), 더 높은 두 가지 로까와 관련된 모든 유형의 산냐-를 극복하며(suññam idaṁ saññāgataṁ bhavāsavenā), 아윗자와 관련된 모든 유형의 산냐-를 극복하는(suññam idaṁ saññāgataṁ avijjāsavenā) 데 중요한 (연결) 관계입니다. 

    • * 또한 ‘까-마, 루빠, 및 아루빠 로까의 산냐-’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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