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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닙바나는 이해하기 어려운가?


원문 : Key Dhamma Concepts 섹션의 ‘Nibbana – Is it Difficult to Understand?’ 포스트

- 2016년 12월 6일; 2016년 12월 20일; 2018년 11월 22일; 2019년 1월 3일 개정


고민과 고난은 우리의 오염된 마음 때문입니다. 마음을 정화하면서, 사람은 닙바나(Nibbāna)를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 (이 사이트에서 공부할 때) 처음에는 링크한 포스트를 클릭하지 않고 포스트를 전체적으로 한 번 읽는 것이 좋습니다. 일단 주요 개념이 파악되면, 다른 관련된 주요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해 링크한 포스트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 닙바나(Nibbāna)는 달성하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는 쉽습니다. 텅빔(sunyātā, 순냐따)과 보디 찟따(Bōdhi citta , 깨달은 마음)와 같은 복잡한 개념은 닙바나(Nibbāna)를 설명하거나 이해하는 데 필요하지 않습니다.


1. 붓다께서는 탐함, 성냄, 미혹함 및 그로부터 생기는 다른 정신적 성품과 같은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오염 때문에 괴로움을 당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닙바나(Nibbāna)는 여러가지 용어로 표현되고 있으며 니와나(Nivana, 불이 사그라드는 것)는 위의 아이디어를 더 잘 전달하는 용어입니다. 니와나(Nivana)는 싱할라어로 니위마(niveema)( ~ )라고도 하며,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와 같은 아이디어를 전합니다.


* 성냄, 탐함 및 미혹함에서 벗어남에 따라, 자신 내부의 불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닙바나(Nibbāna)는 Nib과 bāna의 합성어이고, 여기서 bāna는 차꼬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닙바나(Nibbāna)는 자신을 31영역의 세상에 묶는 차꼬를 끊어 자유롭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 니와나(nivana)나 니위-마(niveema)라는 용어는 닙바나(Nibbāna)에서 완결될 때까지 점진적으로 불이 사그라드는 것을 맛보는 이익이 있으므로 필자는 더 좋아합니다. 'Three Kinds of Happiness – What is Nirāmisa Sukha?' 포스트, 'How to Taste Nibbāna' 포스트 및 ‘Learning Buddha Dhamma Leads to Nirāmisa Sukh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2. 불을 사그라들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불타 오르는 것(Pali어로 ‘tāpa’)’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탐함, 성냄, 미혹함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불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각하지도 못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Living Dhamma’ 카테고리, 이 중 특별히 ‘Satipatthāna Sutta – Relevance to Suffering in This Life’ 포스트를 보세요.


* 이 ‘불타 오르는 것’은 사악처에서는 정말 더 나쁩니다. 그래서 닙바나(Nibbāna)의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괴로움에 대한 첫 번째 성스런 진리를 정말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31영역 세상(31계)의 괴로움’으로 붓다(Buddha)께서 의미하셨던 것의 실제적이고 깊은 의미에 대해 다양한 수준의 포스트가 많이 있습니다.

* 우리의 괴로움은 지속되지 않으므로 보이는 감각적 즐거움에 의해 가려집니다. 수다원 성자는 보통 사람보다 괴로움을 더 잘 이해하며, 더 높은 단계(성자 단계)의 닙바나(Nibbāna)에 도달함에 따라 첫 번째 성스런 진리의 의미를 훨씬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3. 핵심은 지금 당장 니와나(nivana, 불이 사그라드는 것)를 느끼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니와나(nivana)는 10가지 오염원을 포기함으로써 경험됩니다( ‘Ten Immoral Actions (Dasa Akusal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한번에 10가지 오염원을 모두 제거하지는 않아도 되며, 그것은 또한 권장하지도 않습니다. 쉽게 제거할 수 있는 가장 큰 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 살생, 도둑질, 거짓말(잡담, 비방, 거친 말 포함), 잘못된 성행위, 도취(술이나 약물뿐만 아니라 재산이나 권력에 취하는 것도 포함)가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합니다.

* 단지 상대적으로 쉬운 것들을 몇 주 동안 먼저 단념하고, 그로부터 오는 ‘니와나(nivana, 불이 사그라드는 것)’, ‘마음의 홀가분함’, ‘내적 평화’를 경험해 보십시오. 그것이 길(팔정도)을 계속 가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자극제입니다.


4. 동물과 사람을 다루는 것과 관련된 상대적 업(선업과 불선업)의 무게를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또한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업(선업과 불선업)의 무게도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사람에게(특히, 성자에게) 유해한 말을 하는 것조차 동물을 죽이는 것에 비해 수천 배나 되는 불선업의 무게가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How to Evaluate Weights of Different Kamm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또 다른 핵심 개념은 과거 깜마(kamma, 업)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깜마(kamma, 업)의 역할은 과장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What is Kamma? Is Everything Determined by Kamm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닙바나(Nibbana, 열반)는 깜마(kamma)를 제거하여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아사바(asava, 번뇌) 또는 갈망(craving)을 제거하여 달성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The Way to Nibbāna – Removal of Āsavas’를 보세요.

* 가장 중요한 것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10가지 오염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자동으로 더 쉽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고장난 차를 밀어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더 쉬워집니다.


5. 닙바나(Nibbana, 열반)는 마음에서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오염원만 제거하는 것입니다. 닙바나는 라각카야(ragakkhaya, 탐함 제거)이고, 닙바나는 도삭카야(dosakkhaya, 성냄 제거)이며, 닙바나는 모학카야(mohakkhaya, 미혹함 제거)입니다. 이 3 개는 닙바나(Nibbana)의 별칭이라고 해도 됩니다.


* 따라서 라가(raga, 탐함)와 도사(dosa, 성냄)와 모하(moha, 미혹함)가 없는 마음(citta, 찟따)으로 닙바나(Nibbana)를 봅니다(citta의 발음: ‘Pāli Glossary and Pronounciation’ 참조). 이 순수 마음은 31영역 세상(31계)에 있는 어떤 물질에 대해서도 짐을 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What are Rupa? Relation to Nibbāna’ 포스트를 보세요.


6. 괴로움은 마음이 물질적인 면(육체)에 관련되어 가지는 것의 직접적 결과입니다. 육체는 결국 늙고 죽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은 탐함, 성냄, 미혹함으로 몸에 달라붙어 집착하는 것으로 몸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31영역 세상(31계)의 괴로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The Grand Unified Theory of Dhamm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인간 영역(인간계)을 포함하여 가장 낮은 다섯 영역에는 탐함과 성냄과 미혹함이라는 세 가지가 모두 나타날 수 있으므로 괴로움이 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이 영역에 있는 유정체의 몸은 일반적으로 밀도가 높고 늙음과 질병의 대상이 됩니다. 물론 가장 낮은 4개의 영역(사악처)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괴로움이 있습니다.

* 그러나 인간계(영역 5)는 육체적 고통, 늙음 및 병을 겪을지라도 인간은 닙바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독특합니다.

* 천신계(데와 로까, deva loka, 영역 6-11)에서는 성냄이 일어나지 않으며 괴로움이 적습니다. 그리고 천신의 몸은 밀도가 낮고 육체적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물론 죽음에 이르기까지 육체적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 범천계(브라흐마 로까, Brahma loka, 영역 12-31)에서는 성냄과 탐함이 일어나지 않고 괴로움이 훨씬 적습니다. 범천은 아주 미세한 몸을 가지고 있으며 육체적 병이 없습니다.


7. 그러나 31영역 세상(31계)에는 모두 미혹함이 있으므로 31계 어느 곳에서도 완전한 행복 상태는 없습니다. 천신계나 범천계에 태어난다 할지라도 수다원 또는 그 이상의 닙바나 단계를 얻지 못한 상태라면 결국에는 4악처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 물론, 괴로움(고통)은 더 낮은 영역(악처)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합니다.

* 이것이 붓다께서 말씀하신 핵심 메시지입니다. 붓다께서는 ‘유정체가 죽을 때, (열반에 이르지 못하고) 31영역 세상에 돌아오는 윤회를 계속하는 한, 괴로움은 결코 끝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괴로움은 아라한 성자가 되어 입멸할 때(31영역의 이 세상에 더 이상 태어나지 않을 때) 완전히 끝납니다.

* 그러나, 사람들은 아라한 성자의 입멸(반열반)을 단멸로 생각하여 침울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오로지 (열반을 향한) 길을 단계적으로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 ‘Is It Necessary for a Buddhist to Eliminate Sensual Desires?’ 포스트와, ‘Mahā Cattārisaka Sutta (Discourse on the Great Forty)’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8. 그래서, 성냄, 탐함, 미혹함의 순서로 제거해 감에 따라 괴로움이 점진적으로 감소되는 것을 보아 갈 수 있습니다.


* 그리고 닙바나에 이르는 길의 모두에 걸쳐 이 인간의 삶 자체에서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라고 불리는 이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Three Kinds of Happiness – What is Niramisa Sukh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사람으로 탄생한 경우에 특별히 주어지는 것입니다.


9. 마음이 주어진 사고 대상(arammana, 아람마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할 때, 시각 대상을 예로 말하면 ‘그냥 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것이 최초 ‘찟따(citta) 단계'입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관심있는 대상이면, 극히 짧은 순간에 마음은 탐함, 성냄 및 미혹함에 바탕을 둔 오염원이 더해져 오염되기 시작합니다.


* 오염되기 시작한 마음은 사고 대상(arammana, 아람마나) 주위를 맴돌면서 탐함, 성냄 및 미혹함과 이들의 조합에 의해 오염된 생각들을 더 발전시키고, 자각하기도 전에 오염된 생각(윈냐-나, viññāna) 단계로 [순간적으로 마감되어] 끝납니다. ‘Amazingly Fast Time Evolution of a Thought (Citta)’ 포스트를 보세요.

* 이것은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ada, 연기)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Paticca Samuppāda – ‘Pati + ichcha’ + ‘Sama + uppada’ ”포스트와 그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윈냐-나(viññāna)는 라가(raga, 탐함), 도사(dosa, 성냄), 모하(moha, 미혹함)에 의해 오염된 찟따(citta)입니다.

* 붓다 담마(Buddha Dhamma, 붓다의 가르침)인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ada, 연기)는 ‘Paticca Samuppāda in Plain English’ 시리즈에 상세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10. 라가(raga, 탐함), 도사(dosa, 성냄), 모하(moha, 미혹함)가 마음에서 제거될 때, 찟따(citta)는 빠바스와라(pabhasvara, 밝은) 찟따가 됩니다. 빠바스와라(pabhasvara, 밝은) 찟따에서는 찟따(citta)를 흐리게 하는 더 이상의 오염원이 없습니다. 이 단계에서 ‘순수 찟따(citta)가 닙바-나(Nibbāna)를 본다’고 합니다.Pabhassara Citta, Radiant Mind, and Bhavanga’ 포스트를 보세요.


* [찟따의 연속적인 흐름인 삶에서] 하나의 찟따(citta)로 닙바-나(Nibbāna)에 도달 한 후, 찟따(citta)의 연속 흐름은 ‘정상 상태’로 돌아가고 그 사람(아라한)은 정상적인 인간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탐함, 성냄, 미혹함으로는 어떤 것도 하지 않고 그 현생을 시작한 ‘업 씨앗(kamma seed)의 업력이 소진될 때까지 살아갑니다.

* 죽을 때(빠리닙바나, Parinibbana라고 함), 많은 업 씨앗이 있을 것이지만 아라한(Arahant)의 마음은 새로운 삶을 계속되게 하는 다른 어떤 업 씨앗도 움켜잡지(집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의 재탄생은 없습니다. 아라한의 마음은 늙고 죽게 되어 있는 몸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자유롭습니다. 그것이 닙바-나(Nibbāna)이며, 완전한 니와나(Nivana)이며, 불이 완전히 꺼져 냉각된 상태입니다.


11. 우리는 기본적으로 아윗자(avijja, 무명)와 싼하(tanha, 갈애)라는 두 가지 원인 때문에 이 재탄생 과정에 묶여 있습니다. 싼하(tanha)의 첫 번째 버전(판)은 로바(lobha)이며, 이 버전은 누군가 그 길에 방해가 되면 쉽게 도사(dosa, 강한 미움)가 될 수 있는 강한 탐욕입니다. 그래서 아윗자(avijja, 무명)와 싼하(tanha, 갈애)라는 두 가지 원인은 실제로는 로바(lobha), 도사(dosa) 및 모하(moha)로 3가지가 됩니다.


* 도사(dosa, 성냄)가 비록 로바(lobha, 탐함)로 인해 일어나더라도, 도사(dosa, 성냄)는 최악의 위빠까(vipaka, 과보), 즉 괴로움만 있는 니라야(niraya, 지옥)에 재탄생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도사(dosa, 성냄)는 실제로 4가지 탐욕에 기반을 둔 ‘딧티 삼빠윳따 찟따(ditthi sampayutta citta, 사견이 결합된 마음)’에서 기인합니다.

*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서 딧티(ditthi, 사견)가 제거되면, 이 4가지 탐욕을 기반으로 하는 찟따(citta)의 일어남이 모두 중단됩니다. 따라서 그 단계에서 로바(lobha)와 도사(dosa)는 각각 강도가 약한 라가(raga)와 빠띠가(patigha)로 되고, 사까다가미(Sakadagami, 사다함)와 아나가미(Anagami, 아나함) 단계에서 순차적으로 제거된다. 아윗자(Avijja, 무명)는 닙바-나(Nibbāna)의 각 단계에서 계속 강도가 약해지고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12. 마음에 라가(raga), 도사(dosa) 및 모하(moha)가 없을 때, 마음(citta, 찟따)은 오염원이 공한(sunya, 순야) 상태가 됩니다. 그것은 아니다싸나 윈냐나(anidassana vinnana, 오염없는 의식) 또는 빤냐(panna, 지혜)의 상태이며, 찟따(citta)의 순수한 상태입니다. ‘Anidassana Viññāṇa – What It Really Means’ 포스트를 보세요.


* 마하야나(Mahayana, 대승) 불교의 선조들은 닙바-나(Nibbāna)의 개념을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순야따(Sunyata, 공)의 개념을 포함하여 현혹시키는 서술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What is Sunyata or Sunnata (Emptiness)?’를 보세요.

* 현재 테라와다(Theravāda)불자들 중에도, 닙바-나(Nibbāna)가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13. 라-가(rāga), 도-사(dōsa), 모-하(mōha)가 제거되었을 때, 찟따(citta)는 주어진 사고 대상(ārammana, 아-람마나) 주위를 맴도는 것을 멈춥니다. 이 구르는 것(맴도는 것)은 윤회가 계속되게 하는 연료를 공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과정을 멈추는 것은 ‘윤회의 수레바퀴를 떼어내는(제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 수레를 빨리어 및 싱할라어로 ‘리야(riya)’라고 하고, ‘리야(riya)'를 멈추는 것을 ’아리야(ariya)'라고 합니다. 윤회의 수레바퀴를 제거한 자를 ‘아리야(Ariya)'라고 합니다. 그래서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달리, 성자를 지칭하는 용어는 '아르야(Arya)'가 아니라 ‘아리야(Ariya)'입니다.

* 그러므로, 아리야(Ariya)는 어떤 종족을 나타내는 ‘아르야(Ārya)'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 또한, 위리야(viriya)는 위(vi)와 리야(riya)의 합성어로서, 구르는 과정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그리고, 멀리 떨어지기 위한 노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위리야(viriya)는 실제로 사띠빳타-나(Satipatthāna) 수행 및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 수행을 적극적으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Satipatthāna Sutta – Relevance to Suffering in This Life’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4. 닙바-나(Nibbāna)의 첫번째 단계(Sōtapanna, 소-따빤나, 수다원)에 적어도 도달한 사람은 성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수다원 성자가 제거한 아-사와(āsava, 번뇌) 또는 깊이 자리 잡은 갈망이 미래의 삶에서도 영구적으로 제거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 모든 아-사와(āsava, 번뇌)는 닙바-나(Nibbāna)에서 제거됩니다. 따라서 아-사-와카야(Āsāvakkhaya, āsava의 제거)는 닙바-나(Nibbāna)의 또 다른 동의어입니다. 붓다 재세 당시에 사회 계급이 가장 낮았던 사람들도 아리야(ariya, 성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15. 닙바-나(Nibbāna)를 보았을 때, 마음은 31영역의 이 세상에서 어떤 것도 갈구하지 않습니다. 죽음 시점에서 이 삶의 마지막 찟따인 쭈띠 찟따(cuti citta)는 이 세상에서 새로운 생을 시작하게 하는 어떤 것도 움켜지지 않으며, 마음은 이 31영역의 세상에서 완전히 해방됩니다.


* 마음은 영원히 순수하게 되고, 조밀하거나 미세한(엷은) 육체에 관계없이 어떤 유형의 육체로부터도 영원히 떨어집니다.


16. 아라한(arahant)은 31영역의 이 물질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고, 빠리닙바-나(Parinibbāna, 완전한 열반)를 얻을 것입니다. 31영역의 세상에 대해서는 ‘The Grand Unified Theory of Dhamma’ 포스트를 보세요. 아라한은 단지 31영역의 이 세상에서 ‘열반’으로 건너갔습니다. 괴로움은 영원히 멈추었습니다.


* 따라서, 닙바-나(Nibbāna, 열반)가 무엇인지는 분명합니다. 닙바-나(Nibbāna, 열반)는 물질 세상(31영역의 모든 세상)에 재탄생하는 과정이 그치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왜 (유정체의) 재탄생 과정을 멈추는 것이 그 유정체가 모든 괴로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하는지?’ 그 이유입니다.

* 아무리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더라도 사람은 살기를 좋아합니다. 이것은 저급한 벌레 같은 삶을 사는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진실입니다. 또한, 모든 유정체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삶입니다. 붓다께서 보여주고자 했던 ‘큰 그림(31영역 세상을 돌고 도는 윤회 실상)’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이 끝없는 재탄생(윤회) 과정을 유지하는 위험성을 서서히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다른 포스트로서, ‘Nirodha and Vaya – Two Different Concepts’ 포스트, ‘Difference Between Giving up Valuables and Losing Interest in Worthless’ 포스트 등에서도 닙바-나(Nibbāna, 열반)에 대한 글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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