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10가지 부도덕한 행위(다사 아꾸살라)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Ten Immoral Actions (Dasa Akusala)’ 포스트
부도덕한 행위의 기본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즉 10가지 부도덕한 행위며, 이것이 40가지로 확장됩니다. 이 모두는 아빠-야-(사악처)에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의 끝(닙바-나)에 이르는 것은 이 번뇌의 제거에 달려 있습니다.
2016년 10월 6일; 2026년 8월 10일 최종 개정
소개
1. 먼저, ‘꾸살라(kusala)’라는 낱말은 ‘꾸(ku)’와 ‘살라(sala)’가 합쳐진 것으로, ‘꾸(ku)’는 낄레사 또는 오염(싱할라어로 ‘කුණු’)를 의미하고, ‘살라(sala)’는 ‘없애다’라는 뜻입니다. 아꾸살라(akusala)는 꾸살라(kusala)의 반대 개념으로, 마음에 오염(라-가, 도사, 모하)이 쌓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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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영어 번역에서 ‘깜마(kamma)는 ‘행위’ 또는 ‘행동’으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붓다 담마에서는 업적으로 중립인 행위를 끼리야(kriya)라고 부릅니다. 이는 단지 무엇가를 하고자 하는 ‘의도’에 기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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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붓다 담마에서 ‘깜마(kamma)’는 특별히 라-가, 도사, 모하에 기반한 행동, 말, 생각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깜마는 ‘아꾸살라 깜마’와 동일합니다. 이것들은 ‘오염된 의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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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꾸살라 깜마는 10가지가 있지만, 꾸살라 깜마의 목록은 없습니다. 아꾸살라 깜마를 삼가할 때 그것이 꾸살라(kusal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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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꾸살라 깜마는 자신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닙바-나를 향하여 이동시켜 모든 아꾸살라 깜마가 멈춰질 수 있는 그 행위(특히 사띠빳타-나/위빠사나-에 관여하는 행위)로 정의/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꾸살라/아꾸살라와 뿐냐/아뿐냐 깜마’를 참조하세요.
다사 아꾸살라
2. 열 가지 부도덕한 행위(다사 아꾸살라)는 많은 숫따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AN 10.167부터 AN 10.177까지 일련의 숫따가 그것을 논의합니다. ‘Cunda Sutta (AN 10.176)’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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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가지 유형은 육체 행위, 즉 육체를 사용하여 행해지며(‘까-야 깜마’라고 함), 빠-나-띠빠-따-(pānātipātā, 살생), 아딘나-다-나-(adinnādānā, 주지 않는 것을 가짐, 훔침), 및 까-메-수 밋차-짜-라-(kāmēsu micchācārā, 잘못된 성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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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가지 유형은 말로 행해지며(‘와찌 깜마’라고 함), 무사-와-다(musāvāda, 거짓말), 삐수나-와-짜-(pisunāvācā, 중상/비방), 빠루사-와-짜(parusāvācā, 거친말), 삼빱빨라-빠-(sampappalāpā, 잡담, 쓸데없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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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으로 행해지는 세 가지 유형의 깜마는 마노 깜마(mano kamma)라고 하며, 마음으로 행해지며, 아빗자-(abhijjā, 탐욕, 남의 소유물을 탐함), 브야-빠-다(vyāpāda, 악의, 증오), 밋차- 딧티(micchā ditthi, 그릇된 견해, 사견)입니다. 밋차- 딧티에 관하여, 표식 16.1에서는 ‘Micchā diṭṭhiko hoti viparīta dassano’ , 즉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그 견해가 왜곡되었다’고 한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3. 모든 육체 행위와 말은 생각에 기반하고, 생각은 견해에 기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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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정신적 오염(아빗자-, 브야-빠-다, 밋차- 딧티) 중의 하나 이상이 마음에 일어납니다. 이것들은 마노 상카-라(mano saṅkhāra)라고 합니다. 따라서, 마노 깜마는 마노 상카-라와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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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들에 기반하여, 마음은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할지를 심사숙고하기(위딱까/위짜-라) 시작합니다. 이것이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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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염된 말과 육체 행위(와찌 및 까-야 깜마)는 와찌 상카-라에서 비롯됩니다. 때때로 까-야 깜마(kāya kamma)는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에 기반한다고 하지만,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에서는 까-야 상카-라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일반적으로 까-야 깜마, 와찌 깜마, 마노 깜마는 까-야 상카-라, 와찌 상카-라, 및 마노 상카-라와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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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다사 아꾸살라를 묘사하는 데 서로 다른 용어가 사용되더라도, 그 근원은 모두 마음(마노)에 있습니다.
깜마의 쩨따나-는 산쩨따나-(오염된 의도)다
4. ‘Nibbedhika Sutta (AN 6.63)’에서 붓다께서는 “cetanāhaṁ, bhikkhave, kammaṁ vadāmi.”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깜마의 유형을 결정하는 것은 쩨따나-(cetanā), 즉 ‘의도’입니다. 그러나, 깜마-는 ‘오염된 행위’를 의미하므로, 이는 아래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오염된 의도’, 즉 ‘산쩨따나-(sañcetan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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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bbedhika Sutta (AN 6.63)’의 다음 구절인 “Cetayitvā kammaṁ karoti—kāyena vācāya manasā,”에서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 구절은 “의도한 후에 몸, 말, 및 마음으로 행위(깜마)를 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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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사람은 먼저 아-람마나(ārammaṇa)가 마음에 떠오른 후에야 의도로 행합니다. 사람은 막 들어온 감각 입력에 어떻게 반응할지 결정합니다. 의도는 자신이 선택하는 행위에 따라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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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가지 감각 입력에 기반하여 여섯 가지 유형의 산쩨따나-(‘san’, 즉 라-가, 도사, 모하로 오염된 쩨따나-)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많은 숫따에서 ‘쩨따나-’는 ‘산쩨따나-’를 의미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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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Upādānaparipavatta Sutta (SN 22.56)’에 “Chayime, bhikkhave, cetanā kāyā—rūpa sañcetanā, sadda sañcetanā, gandha sañcetanā, rasa sañcetanā, phoṭṭhabba sañcetanā, dhamma sañcetanā. Ime vuccanti, bhikkhave, saṅkhārā.”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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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카-라-(saṅkhārā)는 산쩨따나-(sañcetanā)로 생성된다는 것이 위 구절로부터 또한 명백합니다.
다사 아꾸살라는 40가지로 늘어난다
5. 붓다 담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의도입니다. 그것에 기초하여, 각 다사 아꾸살라는 위에서 묘사한 바와 같이 40가지로 증가됩니다. 예를 들여, 아래 네 가지는 [모두] ‘빠-나-띠빠-따(pānātipātā, 살생)’에 포함됩니다.
i. 자신이 직접 죽이는 것
ii. 누군가에게 죽이도록 시키는 것
iii. 다른 이가 죽이도록 도우는 것.
iv. 다른 이가 죽이는 것을 칭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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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가지 유형 중에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아빠-야-(사악처)에 재탄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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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것은 ‘깜마의 세부사항 ㅡ 의도, 영향받는 자, 깜마 빠타’에 있는데, 이 포스트의 #7에서는 깜마의 강도가 피해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는 점도 다룹니다.
밋차- 딧티는 다사 아꾸살라 중 최악이다
6. (삭까-야 딧티를 포함하여) 밋차- 딧티는 소따-빤나 단계에서 제거되는 단 하나의 아꾸살라(열 가지 중에서)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9가지 아꾸살라의 강도를 감소시키므로, (축생계를 포함하여) 아빠-야-에 재탄생하는 것이 영구적으로 차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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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밋차- 딧티를 제거함으로써 상상할 수 없는 양의 오염이 소따-빤나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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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가 제거하는 헤아릴수 없는 오염(과 고통)의 양을 이해하기 위해 붓다께서 제시하신 비유와 함께 자세한 내용은 ‘소-따빤나가 제거한 유일한 아꾸살라는 무엇인가?’에서 논의됩니다.
밋차- 딧티는 왜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
7. 사람이 잘못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면 부도덕한 행위를 하기 쉽습니다. 그들은 미래 재탄생에, 아빠-야(apāya, 사악처)에 재탄생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갖게 될 것입니다. 먼저 극복해야 할 10가지 그런 특정 잘못된 견해, 즉 밋차- 딧티, micchā ditthi)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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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시해도 이득이 없다. (2)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해 행한 것에 대해) 빚을 갚을 필요가 없다. (3) 성스런 자와 신통력을 가진 수행자를 존경해도 이득이 없다. (4) 업의 과보가 없다. (5) 어머니를 돌보아도 업적 이득이 없다. (6) 아버지를 돌보아도 업적 이득이 없다. (7) 이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natthi ayaṃ lōkō). (8) 빠라로와(paralowa)는 존재하지 않는다(natthi parō lōkō). (9) 오-빠빠-띠까(ōpapātika) 탄생(즉각 완전한 형태로 태어남, 화생)은 없다. (10) 전생을 볼 수 있는 성자나 수행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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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삭까-야 딧티(sakkaya ditthi)를 극복해야 합니다. 이는 세상에 감각적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붓다께서는 세상에는 ‘즐거움’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사과가 빨갛고 달콤하다고 느끼지만, 사과에는 색깔이나 맛이 없습니다. 둘 다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현대 과학은 뇌가 그런 환상을 만들어낸다고 말하지만, 비활성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진 뇌가 어떻게 그런 ‘환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아래를 참조하세요).
삭까야 딧티는 ‘왜곡된 인식(산냐-)를 통해 일어난다
8. 소따-빤나와 뿌툿자나의 사고방식에서 유일한 차이점은 소따-빤나가 밋차- 딧티(삭까-야 딧티 포함)를 제거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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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툿자나는 감각 경험이 외부 세계를 정확하게 나타낸다는 잘못된 ‘세간 관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색깔이 화려하고 맛있는 것들뿐 아니라 냄새, 즐거운 음악, 촉감을 주는 것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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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자는 그런 것이 외부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해하고 확신합니다. 이것이 ‘붓다의 세계관’입니다. 현대 과학은 최근 붓다의 세계관을 입증했습니다. ‘왜곡된 인식 ㅡ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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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서 논의한 바와 같이, 뿌툿자나의 잘못된 견해의 핵심 이유는 모든 유정체에게 내재된 ‘왜곡된 산냐-(왜곡된 인식)입니다. 이는 수백년 동안 감춰져 왔던 부처님 가르침의 심오한 측면입니다. 이 웹사이트를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이 부분에 대해 너무 염려하지 말고 #10으로 넘어 가셔도 됩니다.
9. ‘평범한 세계관’을 거부하고(아-빠-나) ‘부처님의 세계관’을 파악하는 것(아-나)이 소따-빤나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아-나-빠-나 ㅡ 붓다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세간 견해를 버림’와, ‘아-나-빠-나사띠의 첫 단계 ㅡ '까-야'의 아닛짜 본질을 봄’ 및 ‘소따빤나의 독특한 세계관’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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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둑카마수카 웨다나’를 포함하여) 모든 웨다나-는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저는 이전에도 ‘까-마 앗사-다와 고통은 대부분 마음이 만든 것이다’에서 이 점을 논의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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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 때문에 ‘중립 웨다나-’, 즉 ‘아둑카마수카 웨다나-’도 극복되어야 합니다. 이는 사띠빳타-나 부-미에 들어갈 수 있다면, 이생에서도 가능하고 경험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닙바-나는 산딧티꼬(sandiṭṭhiko)라고 불립니다. ‘산딧티꼬 ㅡ 그 의미는 무엇인가?’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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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종교들과는 달리, ‘구원은 사후에 실현될 약속이 아니라 현생에서 경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깜마와 깜마 위빠-까에 대한 오해
10. 깜마(kamma)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에 관해 흔히 잘못 알려진 세 가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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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은 ‘깜마 니로다(kamma nirodha)’가 위빠-까를 가져올 수 있는 업적 에너지를 소멸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붓다께서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부처님과 동시대의 인물이며 그의 가르침이 오늘날 인도에서 자이나교로 이어지고 있는 마하-위-라(Mahāvīra)가 가르친 것입니다. 마하-위-라는 띠삐따까에서 니간타 나-따뿟따(nigaṇṭha nāṭaputta)로 언급됩니다. ‘Nigaṇṭhanāṭaputta Sutta (SN 41.8)’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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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사람들은 우리의 감각 경험이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때문이라고 잘못 생각합니다. 인체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감각 정보를 받습니다. 예를 들어, 거주지에 지진이 발생하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불편함을 겪게 됩니다. 모든 감각 경험이 (아-난따리까 깜마가 아니라면) 특정한 업에 의해 촉발되는 것은 아닙니다. ‘Girimānanda Sutta (AN 10.60)’을 참조하세요. 거기에 언급된 바와 같이, ‘kamma vipāka jā ābādhā’(깜마 위빠-까로 인해 일어나는 질병)은 감각 경험에서 수카/둑카를 유발하는 여러 가지 원인 중 하나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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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모든 깜마는 결과를 수반하여, 미래의 재탄생에 분명히 영향을 미칩니다. 업의 결과는 또한 부도덕한 행위의 대상이 된 생명체의 ‘의식 수준’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인간을 죽이는 것은 동물을 죽이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는 ‘다양한 깜마의 무게를 평가하는 방법’에서 논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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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은 또한 깜마를 축적하는 것이 다사 아꾸살라를 의도적으로 삼가함으로써 멈춰질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붓다께서는 마음이 감각 입력에 자동적으로 들러붙는 초기 깜마 축적 단계(뿌라-나 깜마)를 거친 후, 의식적으로 그것을 알고 ‘나와 깜마’ 단계의 아꾸살라 깜마에 관여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초기 뿌라-나 깜마 단계를 이해하여 멈출 수 있을 때까지는 참으로 다사 아꾸살라를 삼가할 수는 없으며, 결국 유혹에 굴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심오한 측면은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에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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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을 자세히 논의해 보겠습니다.
깜마 축적은 다사 아꾸살라를 의도적으로 삼가하는 것으로써 멈춰질 수 있는가?
11. 많은 사람들은 다사 아꾸살라를 의도적으로 삼가면 깜마 축적이 멈춰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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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밀히 말하면 맞습니다. 재탄생을 가져오는 업 에너지는 다사 아꾸살라, 즉 열 가지 유형의 아꾸살라 깜마를 통해 생성되는데, 세 가지는 몸에 의해, 네 가지는 말에 의해, 나머지 세 가지는 마음에 의해 각각 생성됩니다. 이는 까-야, 와찌, 마노 깜마입니다. 그러나 이 멈추는 것은 뿌라-나 깜마 단계의 깜마 생성의 근원을 이해하기 전에는 성취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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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이전의 고대 요기들(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 등)도 같은 생각(멈출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대부분의 아꾸살라 깜마가 감각적 욕망, 즉 마음을 즐겁게 하는 광경, 음악, 음식, 향기를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즐기고, 성행위와 다른 육체적 안락함에 몰두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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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그들은 그런 ‘감각적 끌림’이 최소화된 숲속에서 고독한 삶을 살았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중립 대상’(호흡이나 흙덩이 또는 불과 같은 까시나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는 데 보냈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의 마음은 ‘까-마 로까’(kāma loka)에서 벗어나 ‘루-빠 로까 브라흐마’의 정신 상태에 해당하는 자-나 상태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16가지 루-빠 로까 브라흐마 영역은 다양한 강도의 네 가지 자-나의 정신 상태에 상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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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내용을 다르게 표현하면, 그 요기들은 다양한 종류의 까-마 로까 산냐-를 일시적으로 극복하고, 루-빠 로까 브라흐마들이 경험하는 자-나 산냐-로 마음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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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성취는 그들이 다음 생에 브라흐마 영역에서 살게 해 주지만, 알-라-라 깔-라-마와 같은 요기들은 윤회의 족쇄(상요자나)를 끊지 못했기 때문에 미래에 아빠-야에 재탄생하는 것에서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다사 아꾸살라를 삼가는) 깜마 니로다에 이르기 위해서는 상요자나를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12. 재탄생 과정의 족쇄를 끊으려면 열 가지 상요자나를 제거해야 하는데, 이는 오직 마음의 오염과정을 완전히 이해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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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뿌라-나 깜마’ 단계를 포함하여 깜마 축적의 전체 과정에 대한 무지를 제거하지 않고는 (다사 아꾸살라에 관여하는 것으로 이끄는 근본 원인의 제거인) 깜마 니로다는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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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내용은 ‘깜마 니로다 ㅡ 이것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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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서 가리켜 보인 바와 같이, 깜마 축적 과정은 감각 경험과 함께 시작합니다.
닙바-나에 이르기 위한 청사진
13. 그러므로, 아꾸살라 깜마를 삼가는 것은 오직 어떤 ‘왜곡된 산냐-’에서도 해방되는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소따-빤나 단계 이상의 성자만이 사띠빳타-나를 수행하고 뿌라-나 깜마 단계를 멈출 수 있습니다. 이 배경은 ‘붓다 담마 ㅡ 체계화’ 섹션의 시작 부분에서 논의됩니다. 이 필요한 배경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해당 배경과 포스트들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소따-빤나 미만의 많은 사람들이 사띠빳타-나에 대해 읽고 실천하려고 애쓰면서 시간을 낭비합니다. 거기서 가리켜 보였듯이, 아라한에 이르는데 필요한 단계들을 요약한 것은 아-나-빠-나사띠 숫따입니다. 그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i. 부처님의 세계관을 이해함으로써 소따-빤나의 단계에 도달하세요. 이는 뿌툿자나가 감각 입력에 의해 마음이 어떻게 오염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유정체에게 내재된 ‘왜곡된 산냐-’(‘까-마 로까’에 있는 우리에게는 ‘까-마 로까 산냐-’)는 감각 입력과 함께 아윗자-를 유발시킵니다. 뿌툿자나는 이 사실과 그 마음의 오염이 빠띳짜 사뭅빠-다를 통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완전히 이해함으로써 소따-빤나가 됩니다.
ii. 그 다음, 소따-빤나는 사띠빳타-나를 육성하여 사띠빳타-나 부-미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iii. 사띠빳타-나 부-미에 있는 동안 소따-빤나는 삿따 봇장가를 육성하여 더 높은 막가 팔라를 얻고 아라한 단계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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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요약은 위 #9에서 논의한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14. 물론, 이 포스트를 읽는 분들 중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제 막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위의 배경 설명이 시간을 많이 절약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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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개요를 이해하고 나면, ‘붓다 담마 ㅡ 체계화’ 섹션의 다른 글들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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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해당 포스트들이 너무 어렵다면, ‘세 단계 실천’ 섹션, ‘리빙 담마’ 섹션, 및 다른 섹션의 글들을 읽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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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제 막 알아가기 시작한 사람이든, 이미 불교를 실천(수행)하기 시작한 사람이든, 숫따에서 부처님께서 설명하신 열 가지 아꾸살라 깜마를 이해하는 것은 유익합니다. 아꾸살라 깜마를 멀리하면 마음의 평온에 이를 수 있고, 이는 아-나-빠-나사띠와 사띠빳타-나와 같은, 붓다께서 가르치신 심오한 개념들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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