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소따-빤나 단계의 핵심 ㅡ 딧티와 위찌낏짜
원문: Abhidhamma 섹션의 ‘Key to Sotāpanna Stage – Diṭṭhi and Vicikicca’ 포스트
1.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 도달하는 것은 바웃다야(Bhauddhaya)의 첫 번째이자 최우선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며,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괴로움이 있는 사악처에 재탄생하는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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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충족되어야 하는 ‘요건’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분석했지만(그것들은 모두 동등함), 그 요건들을 쉽게 기억하는 한 가지 방법은 소따-빤나(Sotāpanna)는 두 가지 주요한 부도덕 제따시카(immoral cetasika)인 딧티(diṭṭhi, 잘못된 견해)와 위찌낏짜(vicikicca)를 제거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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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에서 자신의 ‘가띠(gati)’를 강조하는 정신 요소, 즉 쩨따시까의 유형에 대한 소개는 ‘Cetasika (Mental Factors)’ 및 ‘딧티(사견), 삼마 딧티(정견)’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2. 쩨따시까(cetasika)는 서로 관련이 있습니다. 좋은 예는 로-바(lōbha, 강한 탐욕)의 결과로 발생하는 도-사(dōsa, 강한 증오)입니다. 실제로 로-바(lōbha)는 도-사(dōsa)로 바뀌고, 그 둘은 함께 일어나지 않습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죽일 때, 그것은 도-사(dōsa) 때문입니다. 죽이는 순간에, 그 사람의 마음에는 도-사(dōsa)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도-사(dōsa)는 [그보다] 더 이른 때에 어떤 것에 강하게 들러붙는 로-바(lōbha)으로 인해 일어났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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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바(lōbha)는 딧티(diṭṭhi)가 강할 때 강합니다. 위의 예에서, 그 사람이 딧티(diṭṭhi)가 없었다면 그런 강한 로-바(lōbha)를 형성하지 못했을 것이고, 대신에 도덕적인 쩨따시카(cetasika)인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를 어느 정도 길렀을 것입니다(즉, 증오하고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는 그런 강한 들러붙음의 결과를 안다면, 그랬을 것입니다). 따라서 딧티(diṭṭhi)가 제거될 때, 로-바(lōbha)는 더 약한 강도의 라-가(rāga)(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들러붙음)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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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딧티(diṭṭhi)가 제거되면, 또한 도-사(dōsa, 강한 증오)는 빠띠가(paṭigha)(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경향)로 감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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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찌낏짜(vicikicca)는 모-하(mōha)와 관련이 있습니다. 위찌낏짜(vicikicca)가 제거될 때, 모-하(mōha)(도덕적으로 눈멈)는 아윗짜-(avijjā)(아닛짜, 둑카, 아낫따에 대한 무지) 수준으로 감소됩니다. 또 다른 포스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위찌낏짜(vicikicca)는 '덮인 마음', 즉 [세상/세상것의] 진정한 본질(특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결실없고 해로운 행을 하는 경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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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두 가지 점은 4가지 ‘딧티 사하가타 로-바 찟따(diṭṭhi sahagatha lōbha citta)’와 ‘위찌낏짜 찟따(vicikicca citta)가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서 제거된다고 말함으로써 또 다른 방식으로 언급됩니다(따라서, 12가지의 아꾸살라 찟따 중에서 5가지가 소따-빤나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이것은 ‘사람들은 왜 부도덕한 행을 즐기는가? ㅡ 딧티가 핵심이다’라는 포스트에서 논의되었습니다.
3. 다른 포스트들에서, 필자는 사람의 ‘가띠(gati)’가 마음 속에서 지배하는(우세한) 종류의 쩨따시까(cetasika)와 어떻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아빠-야가-미 가띠(apāyagāmi gati), 즉 사람이 아빠-야-(apāyā, 사악처)에 태어나기에 적합하게 하는 그 습관 또는 경향은 주로 로-바(lōbha), 도-사(dōsa), 딧티(diṭṭhi), 모-하(mōha), 및 위찌낏짜(vicikicca)라는 몇 가지 주요 부도덕한 쩨따시까(cetasika)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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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서 딧티(diṭṭhi)와 위찌낏짜(vicikicca)라는 쩨따시까(cetasika)가 제거됩니다. 그리고 로-바(lōbha)는 라-가(rāga)(까-마 라-가, 루빠 라-가, 아루빠 라-가로 분리될 수 있음)로 감소됩니다. 또한 도-사(dōsa)는 빠띠가(paṭigha)로 감소되고, 모-하(mōha)는 아윗짜-(avijjā)로 감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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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까다-가-미(Sakadāgāmi) 단계에서는 위의 남아 있는 것 중에서 까-마 라-가(kāma rāga)와 빠띠가(paṭigha)가 감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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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두 가지, 즉 까-마 라-가(kāma rāga)와 빠띠가(paṭigha)는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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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아라한 단계에서만 다른 모든 부도덕한 쩨따시까(cetasika)와 함께 로-바(lōbha)와 모-하(mōha)의 그 주요 부도덕한 쩨따시까(cetasika)의 남아 있는 힘이 제거됩니다.
4. 이 부도덕한 쩨따시까(immoral cetasika), 그래서 부도덕한 가띠(immoral gati)를 없앰에 따라, 사람은 자동적으로 도덕적인 제따시까(moral cetasika)로 도덕적인 가띠(moral gati)를 육성합니다(기릅니다). 우리는 위에서 딧티(diṭṭhi, 잘못된 견해)가 감소할 때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빤냐- 또는 지혜 쩨따시까와 동등)가 자란다(길러진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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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찬가지로, 위찌낏짜(vicikicca)가 줄어들면 삿다(saddha, 믿음) 쩨따시까(cetasika)가 자랍니다. 이 때문에 소따-빤나(Sotāpanna)는 붓다(Buddha), 담마(Dhamma), 및 상가(Saṅgha)에 대해 ‘깨지지 않는’ 믿음을 가집니다. 위찌낏짜(vicikicca)가 제거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삿다(saddha)는 맹목적인 믿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해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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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는 해도, 띠라따나 완다나(Tiratana vandana)를 통해 붓다(Buddha), 담마(Dhamma), 상가(Saṅgha)에 예경하거나 삐릿(pirith, 숫따 찬팅)을 듣는 것은 삿다(saddha, 믿음)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불자 찬팅 - 소개’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 때문에 삿다(saddha)와 빤냐-(paññā)를 함께 길러야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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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사항은 아로바(alobha, 탐욕 없음)와 아도사(adosa, 성냄 없음)는 로-바(lōbha)와 도-사(dōsa)에 반대되는 도덕적인 쩨따시까(moral cetasika)이지만 아모하(amoha)는 실제로 쩨따시까(cetasika)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로바(alobha)와 아도사(adosa)와는 달리 아모하(amoha)는 길러지지 않습니다. 아모하(amoha)는 단지 모-하(mōha)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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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에, 길러지는 것은 빤냐-(paññā, 지혜) 또는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 쩨따시까(cetasika)입니다. 그리고 그것에는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빤냐-(paññā, 지혜)는 '책 지식(book knowledge)'과 아무 상관이 없고, '31영역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 중요한 점에 대해서는 또 다른 포스트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5. 명확하게 이해시키는 또 다른 분석 방법은 각 단계에서 제거되는 아-사와(äsava)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네 가지 유형의 아-사와(äsava)는 딧타사와(ditthasava)(견해의 아-사와), 까-마사와(kāmasava)(감각적 즐거움의 아-사와로서, ‘까-마 라-가’와 거의 같음), 바와사와(bhavasava)(바와, 즉 존재의 아-사와로서, ‘루빠 라-가’와 ‘아루빠 라-가’를 합친 것과 거의 같음), 그리고 아윗자-사와(avijjāsava)(무지의 아-사와)입니다. 물론, ‘아사왁카야(asavakkhaya), 즉 모든 아-사와(āsava)의 제거가 닙바-나(Nibbāna, 열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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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볼 수 있듯이(위의 #3과 비교하여) 딧타사와(ditthasava)는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까-마사와(kāmasava)는 사까다-가-미(Sakadāgāmi) 단계에서 감소되고,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바와사와(bhavasava)와 아윗자-사와(avijjāsava)는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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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강한 탐욕(로-바, lōbha)과 강한 증오(도-사, dōsa)를 일으키는 것은 딧타사와(ditthasava)와 까-마사와(kāmasava)의 조합임을 우리는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의 참된 본질(특성)을 이해하여 딧따사와(ditthasava)를 잃으면, 로-바(lōbha)와 도-사(dōsa)는 (까-마사와(kāmasava)를 이루는) 까-마 라-가(kāma rāga)와 빠띠가(paṭigha)로 감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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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다양한 분석이 그것을 공부해온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지만, 이 모든 다양한 용어는 이런 용어들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용어들에 익숙해질 것이며, 장기적으로 (단순히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용어들을] 사용함에 따라 그것들은 익숙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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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시대에,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위방가와-디(vibhangavädi), 즉 ‘부분별로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교리’라고 불리었습니다. 의대생들이 시체를 해부하여 인체에 대해 배우는 것처럼, 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하여 살펴보는 것은 유익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유형의 분석들은 상호 일관성이 있습니다.
6. 소따-빤나(Sotāpanna)는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어느 정도 이해함으로써 딧티(diṭṭhi)를 제거하고(즉, 딧티위숫디_diṭṭhivisuddhi를 달성함),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를 일정 수준까지 기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모-하 쩨따시까(mōha cetasika)의 강도는 단지 아윗자-(avijjā) 수준으로 줄어들고, 위찌낏짜 쩨따시까(vicikicca cetasika)도 제거됩니다. 동시에, 로-바(lōbha)는 라-가(rāga)로 감소되며, 그 다음 위의 #3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닙바-나(Nibbāna)의 더 높은 단계에서 단계적으로 제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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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구절은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서 일어나는 것을 간략하게 요약합니다. 간단해 보일 수 있지만, 그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마음을 수련하는 데는 대부분 담마를 배우고 숙고하는 것을 통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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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는 아무리 많은 재물이나 감각적 즐거움이 걸려 있어도 어떤 부도덕한 행위를 하지 않을 정도로 ‘세상 것’에 대한 들러붙음의 강도를 감소시켰습니다. 소따-빤나는 위찌낏짜(vicikicca)로 행하지 않는데, 그런 행위를 하지 않는 결정을 하는데 주저함이 없으며 그런 [부도덕한] 행위가 아빠-야-(apāyā)에 태어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결정)은 그 순간에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닙니다. [소-따빤나에게는] 그런 아빠-야가-미 가띠(apāyagāmi gati)가 영구적으로 제거되었기 때문에, 그것(결정 및 그에 따른 행위)이 자동으로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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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핵심 쩨따시까(cetasika)의 몇 가지 속성을 알게 됨으로써, 우리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왜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외부 영향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가띠(gati), 즉 지배적인 쩨따시까(cetasika)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7. 이제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딧티(diṭṭhi)가 선두에 있는 이유는 자신의 견해(관점)가 어떤 것에 익숙해지거나 어떤 것으로 편안해지는 것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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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어떤 강에서 목욕하면 자신의 죄를 씻을 수 있다고 말하는 딧티(diṭṭhi, 견해)를 취하면, 이것은 강한 딧티(diṭṭhi)로 보이지는 않지만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하루 종일 온갖 부도덕한 행위를 한 다음, 목욕을 하여 그 모든 죄를 ‘씻어 버리며’ 모든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딧티(diṭṭhi, 견해)는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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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은 “나는 부도덕한 일을 하지 않고 남을 도와주기도 하므로 나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딧티(diṭṭhi, 견해)입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이 전생에 셀 수 없이 많은 나쁜 행을 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딧티(diṭṭhi)는 재탄생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원인과 결과’는 타당한 논거이지만, 그 논거는 이 삶만이 우리의 유일한 삶이 아니라는 더 넓은 세계관 내에서만 타당합니다.
8. 불교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몇 가지 주요 딧티(diṭṭhi)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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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불자들’은 보름날에 8계를 받아 지키는 것으로 닙바-나(Nibbāna, 열반)에 도달하는 것이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스리랑카에는 보름날을 단 하루도 놓치지 않고 그 계를 받아 충실히 지키는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미혹함(어리석음/무지)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 중 일부는 대부분 하루 종일 모여서 잡담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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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계를 받아 지키고 마음챙기며 자신을 수련하고 하루 종일 명상하는 것은 훌륭한 수행 방법이지만, 명목상으로 계를 지킨다고 해서 마음이 정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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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와인 한 잔(또는 좀 순한 알코올 음료)을 마시는 것도 매우 부도덕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알코올 음료를 섭취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와인이나 맥주 한 잔을 마시는 것은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가 아닙니다. 물론 중독되거나 술에 취하면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을 짓게 될 수는 있습니다. 사실 담마를 배워 지혜를 얻게 되면 술이나 다른 것을 갈망하는 경향이 점차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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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불교 국가에서는 의례/의식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낮에 온갖 부도덕한 행위(잡담, 중상/비방, 거친말/험담, 낚시, 사냥 등이 몇가지 예임)을 하고, 하루가 끝나면 불상 앞에 등불을 밝히고 몇 구절(가타, gatha)을 암송/낭송하고, 그것이 그들이 해야 할 전부라고 믿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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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것이 세 가지 상요자나(sanyojana) 중 하나인 ‘실랍바따 빠라마사(silabbata paramasa) (의례/의식이나 정해진 지침을 따르면 ‘닙바-나’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딧티_diṭṭhi’)에 해당하며,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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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런 절차의 대부분은 마음을 정화하는 노력을 하면서 적절하게 행한다면,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삿다(saddha, 믿음)을 구축하는 데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불자 찬팅 - 소개’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9. 우리는 또한 깜마(kamma)/깜마 위빠-까(kamma vipāka)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모르고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위찌낏짜(vicikicca)(부적절한/부도덕한/위험한 행위를 하는 경향)도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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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의 영향이 위찌낏짜(vicikicca)가 강한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나쁜 행위를 하게 하기 쉽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무엇이 바르고 잘못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 마음을 조정하기/움직이기 쉽습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이 도덕적 행위에 도움이 되는 환경에서 자라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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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도덕한 행위의 결과를 인식하지 못하는 성인들도 높은 레벨의 위찌낏짜(vicikicca)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기 보다는 행위에 의한 즉각적인 만족만을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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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마(Dhamma)를 배우는 것은 위찌낏짜(vicikicca)를 제거하는 유일한 ‘보장된 방법’입니다.
10. 어떤 사람들은 나쁜 행위의 나쁜 결과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거나, 나쁜 행위가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배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런 우울/침울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한, 괜찮을 것이다’라고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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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법정에서 유효한/타당한 논거가 아닌 것처럼, 자연 법칙을 모른다는 것은 유효한/타당한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법을 어겼을 때, 때로는 더 많은 거짓말을 하여 배심원의 결정을 바꾸면 [법의 테두리에서] 빠져 나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법정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자기 마음이고, 사람은 자기 마음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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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문에 마음을 깨끗이 해야만 딧티(diṭṭhi)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먼저 깜마(kamma, 업)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업보)에 대해 배우고, 그 다음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에 대해 읽어 보고, 그런 다음 그 말(용어)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즉 이 세상의 참된 본질(특성)을 이해함으로써, 사람들은 마음을 깨끗이 할 수 있습니다. ‘Buddha Dhamma – In a Chart’, 및 ‘아닛짜 산냐를 계발하는 방법-1’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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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마음이 부도덕한 행위의 무익함을 깨달을 필요가 있는데, 그것이 단지 수천 배나 되는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감각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나 가치있는 것들을 소유하기 위해 나쁜 행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실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감각적 즐거움이나 가치있는 것들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나 그 [나쁜 행위의] 결과는 오래도록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11. ‘사람들은 왜 부도덕한 행을 즐기는가? ㅡ 딧티가 핵심이다’ 포스트에서 지적했듯이, 우리 모두는 문화, 사회, 종교에 따라 자란 환경에 의해 길러진 딧티(diṭṭhi)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교도(불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딧티(diṭṭhi)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어떤 것이 자신에게 나쁜지 가려낼 필요가 있습니다. 붓다께서는 어떤 딧티(diṭṭhi)가 나쁘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세가지 유형의 딧티, 팔도, 및 사마디’ 포스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