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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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따빤나가 제거한 유일한 아꾸살라는 무엇인가?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What is the only Akusala Removed by a Sotāpanna?’ 포스트

- 2017년 5월 10일 개정; 2017년 12월 1일 개정; 2018년 7월 7일 개정; 2019년 8월 16일 개정

 

1.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하면, 밋차- 딧티(닛짜, 수카, 앗따라는 잘못된 견해와 함께 10가지 유형의 밋차- 딧티)가 완전히 제거됩니다. 그것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중에서 하나의 아꾸살라(akusala)입니다. 그러나 다른 9가지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의 아빠-야가-미 힘(apāyagāmi strength, 악처에 태어나게 하는 행위를 하게 하는 힘)도 없어지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마음에서 아꾸살라(오염물)의 99% 이상을 차지합니다.

 

  • * 그것은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제거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필자가 그에 대해 그렇게 많은 포스트를 쓴 이유입니다. 또한, ‘존재의 3가지 특성 – 영어 법문’ 의 첫번째 법문을 참조하세요.

  • * 어떤 사람들은 기히 숫따(‘Gihi Sutta, AN 5.179’)를 잘못 번역한 것에 따라 소-따빤나(Sōtapanna)는 오계를 어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련 구절은 “..아리야사-와꼬 빠-나-띠빠-따- 빠띠위라또- 호띠, 아딘나-다-나- 빠띠위라또- 호띠, 까-메수밋차-짜-라- 빠띠위라또- 호띠, 무사-와-다- 빠띠위라또- 호띠,  수라-메라야맛자빠마-닷타-나- 빠띠위라또- 호-띠(..ariyasāvako pāṇātipātā paṭiviratō hoti, adinnādānā paṭiviratō hoti, kāmesumicchācārā paṭiviratō hoti, musāvādā paṭiviratō hoti, surāmerayamajjapamādaṭṭhānā paṭiviratō hōti)”입니다.

  • * 그러나, ‘빠띠위라또- 호-띠(pativiratō hōti)”는 많은 온라인 사이트에서 번역된 ‘~을 삼가다(절제하다)’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좋아함으로(좋아하면서) 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소-따빤나(Sōtapanna)는 어떤 조건에서는 오계를 어길 수도 있습니다. 아라한(Arahant, 아라한뜨)만이 오계를 어기지 않고 어떤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도 행하지 않습니다.

  • * 오계에는 더 깊은 의미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오계 – 붓다께서 의미하신 바’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2. 바후다-뚜까 숫따(‘Bahudhātuka Sutta, MN 115’)에는 소-따빤나(Sōtapanna) 성자가 하지 않는(할 수 없는) 6가지로 다음을 들고 있습니다.  

 

  • * 자신의 어머니를 죽임

  • * 자신의 아버지를 죽임

  • * 아라한 성자를 죽임

  • * 붓다께 상처를 입힘

  • * 상가 분열을 일으킴(잘못된 담마를 퍼뜨리는 것은 여기에 포함됨) 

  • * 붓다 외에 다른 이에게 귀의함(즉, 다른 방식의 구원을 믿음)

 

3. 나카시카 숫따(‘Nakhasikha Sutta, SN 13.1’)에서는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서 방대한 양의 오염물이 제거되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 한 때 붓다께서는 손톱 끝에 약간의 흙을 묻혀 올리시고 빅쿠들에게 물었습니다. “빅쿠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손톱 끝에 묻혀 올린 이 약간의 흙이 많은가, 아니면 이 대지에 있는 흙이 많은가?”

  • * 물론, 빅쿠들은 이 대지에 있는 흙의 양이 손톱 끝에 묻힌 약간의 흙보다 엄청나게 더 많다고 대답했습니다. 

  • * 그러자 붓다께서는 빅쿠들에게 소-따빤나(Sōtapanna)가 제거한 오염물의 양을 대지 전체에 있는 흙의 양에 비유할 수 있고, 소-따빤나(Sōtapanna)가 제거해야 할 남아 있는 오염물은 손톱 끝에 묻은 흙의 양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 따라서, 소-따빤나가 미래 재탄생에 남겨진 고통(괴로움, 시달림)의 양은 미미할 정도로 적습니다.

  • * 온라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 경에 대한 적절한 설명은  http://www.accesstoinsight.org/tipitaka/sn/sn13/sn13.001.than.html 에서 볼 수 있습니다.

 

4. 또 다른 비유는 상윳따 니까-야(Samyutta Nikāya)의 시네루 경(Sineru sutta)에 있습니다. “소-따빤나(Sōtapanna)가 [앞으로] 견뎌야 하는 고통(괴로움, 시달림)의 양은 시네 루 산 꼭대기에 있는 모래알 7개에 비유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보통 사람이 [앞으로] 견뎌야 할 고통(괴로움, 시달림)의 양은 산 전체의 모래다.”

 

  • * 물론, 그것은 니라야(niraya, 지옥)에서 겪는 고통이 결코 그치지 않기 때문에 논리적입니다. 니라야(niraya, 지옥)에 한 번 태어나면, 인간계 이상의 영역에 수천, 수백만 번 태어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 * 소-따빤나(Sōtapanna)는 사악처에는 결코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미래에 7번의 바와(bhava)만 남아 있으며, 그 재탄생 바와(bhava)는 인간계 이상의 영역입니다.

 

5.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를 얻으려면 자-나-(jhāna)들, 모든 종류의 아빈냐-(abhiññā, 신통)력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중 어느 것도 소-따빤나 단계를 얻는데 필수 요건은 아닙니다.

 

  • * 그러나 소-따빤나가 되려면 적어도 10가지 악(dasa akusala, 다사 아꾸살라)의 절반을 제거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소-따빤나(Sōtapanna)는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중의 하나, 즉 니야따 밋차- 딧티(niyata micchā diṭṭhi)만 제거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물론, 그것을 달성함에 있어, 소-따빤나는 다른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의 대부분의 ‘아빠-야가-미 력(apāyagāmi strength, 사악처로 향하게 하는 힘)을 줄였을 것입니다. 그것이 이해해야 할 핵심입니다. 특히, 아빗자(abhijja) 또는 로바(lōbha)는 라-가(rāga) 수준으로 감소하고, 브야-빠-다(vyāpāda) 또는 도-사(dōsa)는 빠띠가(paṭigha) 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로-바, 도-사, 모-하’ 대 ‘라-가, 빠띠가, 아윗자-’ ”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에 대한 논의는 ‘10가지 부도덕한 행위(다사 아꾸살라)’ 포스트를 보세요. 그 포스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니야따 밋차- 딧티(niyata micchā diṭṭhi, 견고하게 확립된 사견)는 마음으로 행해진 아꾸살라(akusala)입니다.

  • * 소-따빤나(Sōtapanna)는 닷사네-나 빠하-땁바(dassanēna pahātabba, 올바른 시각을 통해 오염을 제거)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소-따빤나(Sōtapanna)는 밋차- 딧티(micchā dihihi)를 제거, 즉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의 첫 단계를 얻음으로써,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악(낄레-사, keles, kilēsa, klēsha)을 제거했습니다.

  • * 소-따빤나(Sōtapanna)가 어떻게 아빠-야가-미 찟따(apāyagāmi citta)를 극복하기 위해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제거하여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를 줄이는가는 ‘아꾸살라 찟따 - 소따-빤나는 어떻게 아빠-야가-미 찟따를 피하는가’ 포스트에 논의되어 있으며, 12가지 아꾸살라 찟따 중에서 5가지가 어떻게 소-따빤나 단계 후에는 일어나지 않는지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 5가지는 아빠-야-(apāyā)에 태어남으로 이어지는 것들입니다.

 

6. 그것은 이해해야 할 중요한 점입니다.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제거하면 부도덕한 행동이 멈추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과 말로 행해진 오염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합니다. 그들은 심지어 실수로 곤충을 죽이거나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것조차 두려워합니다. 물론 도덕적인 행위(말과 행동)가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도 피할 필요가 있습니다.

 

  • * 그러나 니야따 밋차- 딧티(niyata micchā dihihi)를 갖는 것은 백만배 더 무겁습니다. 이것들과 다른 유형의 니야따 밋차- 딧티(Niyata Miccā Diṭṭhi , 견고하게 확립된 잘못된 견해)는 ‘10가지 부도덕한 행위(다사 아꾸살라)’ 포스트와 ‘Maha Chattarisaka Sutta (Discourse on the Great Forty)’에서 논의했습니다.

  • * 다양한 유형의 깜마(kamma)의 무게를 이해하는 것은 유익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깜마의 무게를 평가하는 방법’를 참조하세요.

  • * 물이 새는 용기가 있다면 먼저 작은 구멍을 막으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가장 큰 구멍을 먼저 막아야 합니다. 이 경우에는 (이 세상에 대한)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 잘못된 견해)를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 * 그것에 대해 여전히 일부 사람들은 납득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 결론이 띠삐따까(Tipitaka, 삼장)에 있는 어떤 것과도 모순되는지 살펴 보세요.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를 달성하기 위해 충족해야 할 모든 ‘요건’을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사실, 이것이 실제로 우리가 해야 할 전부라는 것이 분명해져야 합니다.

 

7. 그래서 우리는 ‘문제의 요점’에 도달했습니다: 어떻게 니야따 밋차- 딧티(niyata micchā diṭṭhi, 견고하게 확립된 잘못된 견해)를 제거할 수 있을까? 그것이 소-따빤나(Sōtapanna)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전부입니다.

 

  • * 그러나, 니야따 밋차- 딧티(niyata micchā diṭṭhi, 견고하게 확립된 잘못된 견해)를 완전히 제거하려면 띨락카나(Tilakkhana, 삼법인), 즉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합니다.

  • * 사람이 솔직히 말해(진짜) 믿지 않는 것을 믿는 척 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재탄생을 믿습니다” 또는 “저는 이 세상에는 이 인간계와 동물계를 제외한 다른 영역이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견고하게 확립된 잘못된 견해가] 제거되지는 않습니다.

  • * 그것은 법정에 가서 배심원들에게 자신의 무죄를 설득하려는 것과는 다릅니다. 자신의 마음이 ‘이 세상의 실상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 * 그리고 그것은 올바른 버전의 담마(Dhamma)를 배우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올바른 버전은 부처님께서 발견하시어, 성자(아리야, Ariya)들에 의해 세대를 거쳐 전해져 온 것입니다. 그것은 ‘소따-빤나 막가/팔라를 얻기 위한 4가지 조건’ 포스트에서 우리가 자세히 논의한 것입니다.

  • * 그것은 또한, 흔히 영어로 ‘perception’(한국어로, ‘인식’ 또는 ‘상’)으로 번역되는 산냐-(saññā)라는 용어를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8. 물론, 산냐-(saññā)는 52가지 쩨-따시까(cētasika) 중의 하나이고 빤짝칸다(pancakkhandha, 오온)의 한 요소입니다. 그것은 모든 찟따(citta)와 함께 일어나는 7가지 공통 쩨-따시까(universal cētasika) 중의 하나입니다. 

 

  • * 산냐-(saññā)는 마나시까-라(manasikāra)라는 또 다른 공통 쩨-따시까(cētasika)와 매우 밀접하게 작용합니다. 마나시까-라(manasikāra)는 옛 기억과 미래 희망을 찟따(citta) 내로 가져오는 쩨-따시까(cētasika)입니다. 쩨-따나(cētana)가 찟따(citta)를 합칠 때, 찟따(citta)는 피사체(saññā, 산냐-)를 인식하고 자동으로 그에 대한 웨-다나-(vēdanā, 느낌)를 생성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4가지 쩨-따시까(cētasika)가 맡은 중요한 역할을 즉시 볼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산냐-(saññā)는 ‘대상을 인식’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산냐-(saññā)는 모든 개념을 ‘내부적(내면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 * 예를 들어, fire(불)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즉시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바로 알아봅니다. 심지어 불의 모습까지 마음 속에 번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기(또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 낱말에 대한 산냐-(saññā)가 없습니다. 그 낱말은 그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아기 또는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낱말이 의미하는 바를 가르치면, 그들은 fire(불)이라는 낱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 * 자라면서, 우리는 무수한 산냐-(saññā)를 대부분 그것들과 친숙해져서 얻습니다. 우리는 먼저 ‘mother(어머니)’와 ‘father(아버지)가 누구인지 인식하고, 다양한 색깔, 다양한 사물 등을 압니다.

 

9. 우리가 [이번 생에서] 대부분의 사물과 사람들에 대한 산냐-(saññā)를 얻더라도, 일부 강한 산냐-(saññā)는 이전 생에서 전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형태를 취할 수 있습니다.

 

  • * 어떤 사람들은 이번 생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방문할 때, 이미 그곳에 대해 아주 자세히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과거 생을 기억하는 어린이들은 전생에 살았던 먼 도시의 여러 곳으로 [전생을 연구하는] 조사자들을 안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많은 어른들까지도 [이번 생에] 처음 방문한다는 확신으로 도시를 걸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 * 그리고 어린이로서,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숫따-(suttā, 경)를 암송하거나, 복잡한 수학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등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 중 일부는 ‘재탄생(윤회)의 증거’ 포스트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10. 우리는 대부분의 산냐-(saññā)를 먼저 가족을 통해 얻고, 그리고 나서 친구, 학교, 직장 등을 통해 얻습니다.

 

  • * 따라서, 우리의 ‘세계관들’ 또는 딧티(diṭṭhi)들의 대부분은 가족을 통해 얻습니다. 도덕 문제, 정치, 및 종교에 대한 우리의 첫 인상은 가족으로부터 나옵니다.

  • * 그 산냐-(saññā)들은 얼마나 강제로 그리고 자주 사용되었는가에 따라 변하기가(바꾸기가) 어렵습니다.

  • * 그러나, 인간 마음은 독특합니다. 실질적인(본질적인) 증거가 충분히 주어지면, 어떤 것 또는 어떤 개념에 대한 각자의 산냐-(saññā)는 영구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수(더하기와 빼기 등)를 올바르게 하는 법을 배우면, 그것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권위자(선생님)가 아무리 1 + 2가 4라고 주장하더라도, 어린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 어린이는 손가락으로 세어 정답이 3이라는 것을 선생님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11. 자라면서 우리는 더 전문적인 일을 위해 산냐-(saññā)를 얻습니다. 목수, 의사, 엔지니어 등이 되기 위해 배울 수 있습니다.

 

  • * 이 ‘배움(학습)’은 특정 일에 대해 산냐-(saññā)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단지 일을 어떻게 하는지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의사가 학습을 마치면 새로운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엔지니어가 새로운 구조물을 만들 때, 그것은 이전에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학습자는 ‘기술(스킬)’을 습득합니다.

  • * 한번 ‘기술’을 배우면 그것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적어도 ‘다시’ 하는 것은 쉽습니다. 어렸을 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사람은 30~40년 동안 자전거를 절대 만지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노령의 나이에도 그 사람은 처음에는 한 두번 넘어질 수 있지만 자전거를 [쉽게] 탈 수 있습니다.

 

12. 소-따빤나(Sōtapanna)는 ‘이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수준의 이해를 얻고, 그 ‘지식’ 또는 ‘이해’는 미래 생에서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 * 일단 누군가가 부처님의 핵심 메시지를 엿본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원함으로써 가질 수 있는 영원한 행복은 장기적으로는 없다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라는 말은 이 생이 끝났을 때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재탄생은 자신이 이 생을 어떻게 사는가뿐만 아니라 이전 생을 어떻게 살았는가에 의해서도 결정됩니다.

  • * 그 종류의 ‘시각(관점) 변화’는 이전 생부터 그에 대한 산냐-(saññā)가 있지 않다면 빠르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이전 생부터 그에 대한 산냐-가 있었던 사람들)은 이러한 개념들을 더 쉽게 파악(이해)할 수 있습니다.

  • * 그리고 이 산냐-(saññā)는 경을 암기하거나 빠띳자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사이클을 암송하는 방법 등을 통해 얻을 수 없습니다. 그 대신,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 * 파악해야 할 핵심 개념은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입니다.

 

13. 올바른 산냐-(saññā)를 구축하는 유일한 방법은 부처님의 핵심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열심히 일함으로써 이 생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saññā vipallasa, 싱할라어로 vipareetha saññā)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탄생을 믿더라도 이 생을 넘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또한 ‘닛짜 산냐-(nicca saññā)’ 라고도 합니다. 즉, 열심히 일하거나 운이 좋으면, 자신이 만족스럽게 이 세상 것들을 달성하고 유지할 수 있다는 ‘산냐-’입니다.

 

  • *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은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에 관한 것입니다. 즉, 장기적으로 자신이 만족스럽게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닙바-나(Nibbāna)의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는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가 어느 정도 상당히 길러졌을 때 달성됩니다.

  • *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를 이 수준으로 개발하면 자신의 마음이 자동으로 ‘아빠-야가-미 찟따(apāyagāmi citta, 사악처로 향하는 찟따)를 차단합니다.

  • * 아비담마(Abhidhamma) 섹션에서 논의했듯이, 찟따(citta)는 매우 빠르게 흐르며, 우리는 그 초기 찟따-(cittā)를 제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분노나 엄청난 탐욕과 같은 극단적인 경우에는 그것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핵심은 (다른 것들 중에서 밋짜- 딧티를 제거함으로써) 부도덕한 가띠(성향)를 없애는 것입니다.

  • * 닙바-나(Nibbāna)의 더 높은 단계(사까다-가-미 및 아나-가미)에 도달하고 아라한 단계에서 정점에 도달함에 따라 자라는 것은 이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입니다. 아라한(Arahant) 단계에서는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 뿐만 아니라 모든 상카-라(sankhārā)의 아닛짜(anicca) 특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삽베- 상카-라- 아닛짜(Sabbē sankhārā anicca)”로 표현된 것이며, ‘기리마-난다 숫따(Girimānanda sutta)에서 붓다께서 아난다 존자에게 “아양 윳짜띠 아난다, 삽바 상카-레-수 아닛짜 산냐-(Ayaṃ vuccati Ananda, sabba sankhārēsu anicca saññā)”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요 경 몇 개에 따라본 아닛짜와 둑카와 아낫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4. 담마를 배우는 것(듣기 및 읽기)을 통해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를 계발하면,  극도의 압박을 받아도 부도덕하게 행동하는 경향이 서서히 줄어 듭니다.

 

  • * 몇 달 후(어떤 사람에게는 더 빠를 수 있음)에 돌이켜 보면, 그에 상응하는 쿨링 다운(cooling down)(스트레스 레벨의 감소)을 자신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점차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를 느끼고 담마(Dhamma)에 끌리게 됩니다. 그 사람은 자동적으로 담마(Dhamma)를 배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 * 필자가 위에서 논의한 내용을 읽고(그리고 듣고) 담마 위짜야(Dhamma vicaya) 삽봇장가(sabbojjanga)를 개발함으로써 그 내용을 검증하기 위한 초기 결심을 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강제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사이트와 다른 출처의 관련 게시물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습관을 가져 보세요. 그것이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를 달성하는 데 가장 좋고 직접적인  명상 기법입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을 배우는 것에 대한 모든 것입니다. 이것은 자동적으로 마음의 정화로 이어집니다. ‘마음 정화의 중요성’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자신의 마음을 정화시킬수록 주요 담마 개념을 파악하고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를 기르기가 더 쉬워집니다. 그리고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를 개발하는 것 자체가 마음의 정화로 이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어느 정도 견인이 되면(탄력을 받으면) 학습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집니다.

 

15. 니야따 밋차- 딧티(niyata micchā diṭṭhi)를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수의 오염 또는 번뇌(kilesa, 아누사야_anusaya)가 제거된다는 것이 아주 분명할 것입니다.

 

  • * 그것은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를 기르면 마음이 정화되고, 부처님의 결정적인 메시시를 보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가 없으면, 몇 년이고 아무런 이득도 없이 고군분투할 수 있습니다. 

  • * 20~30년 동안 ‘호흡 명상(breath meditation)’을 하고(그리고 아닛짜가 ‘무상함’을 의미한다고 믿는) 어느 누구에게도 유의미한(중요한) 진전이 있었는지 물어 보세요. 필자는 단지 일시적인(그리고 깨질 수 있는) 마음의 평온(또는 ‘세간 자-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아빠-야-(apāyā, 사악처)에 결코 태어나지 않을 정도로 로-바(lōbha), 도-사(dōsa), 모-하(mōha)를 줄였을 때, 알 것입니다.

 

물론,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 수다원도의 성자)가 되는 것에도 밋차-딧티(micchā diṭṭhi)를 제거할 필요가 있습니다. ‘밋차- 딧티, 간답바, 및 소-따빤나 단계’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는 ‘아닛짜 산냐를 계발하는 방법-1’ 및 

아닛짜 산냐를 계발하는 방법-2’ 포스트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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