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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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 막가/팔라를 얻기 위한 4가지 조건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Four Conditions for Attaining Sotāpanna Magga/Phala’ 포스트

     

    [여기서는] 소따빤나 단계를 얻기 위한 4가지 조건이 논의됩니다. 붓다께서 드러내신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이 세상의 실제 본질’을 이해해야 합니다. 

     

    2016년 3월 22일 개정; 2022년 12월 16일 재작성; 2024년 7월 27일 재작성

     

    붓다 담마 ㅡ 세계관의 패러다임-변화

     

    1. 불교는 흔히 ‘또 다른 종교’로 취급됩니다. 그러나, 창조주에 기반한 전통적 종교와는 현저히 다릅니다. ‘붓다 담마(불교)는 종교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붓다께서 ‘나의 담마(가르침)는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주로 도덕적인 삶을 살고 의식을 따르는 평범한(세간) 불교 버전을 따릅니다. 그 대신에 그들은 고통이 가득한 존재로 재탄생을 수반하는 이 세상의 실제 본질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 * 소따빤나가 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자연(본질)에 대해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묘사’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 8가지 유형의 성자가 있는데, 아라한 단계가 가장 높습니다. 성자는 이 새로운 세계관을 어느 정도 이해함과 함께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소따-빤나 아누가-미 ㅡ 더 이상 사악처에 태어나지 않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성자는 아라한 단계에서만 새로운 세계관을 완전히 이해하고 (육체에 내장된) ‘왜곡된 산냐-’에 들러붙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견해’(딧티)와 ‘인식’(산냐-)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인식(산냐-) 이해를 통한 소따빤나 단계(Sotapanna Stage via Understanding Perception (Saññā))’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소따빤나 단계를 준비하기 위한 전제 조건

     

    2. 아래 포스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소-따빤나 아누가-미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평범한/세간(로-끼야, lōkiya) 팔정도를 완성해야 합니다. 성스런 팔정도는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 * ‘붓다 담마에서 독특한 것은 무엇인가?’ 포스트를 그곳에 있는 도표와 함께 보고,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필자는 적극 권합니다. 

    • * 필자가 많은 포스트에서 가리켜 보인 바와 같이, 평범한(세간) 길을 따르는 사람들은 나쁜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부도덕한 행위를 삼가합니다.

    • * 그러나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에서 사성제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 그 사람은 그런 행위가 부질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피합니다. 결국 어떤 지속적인 행복도 주지 못하는 감각적 즐거움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 뿐만 아니라, 그런 행위는 미래 생에 많은 괴로움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소따빤나 단계를 얻기 위한 네 가지 요건

     

    3. 소따-빳띠팔라 숫따( ‘Sotāpattiphala Sutta (SN 55.55)’ )와 두띠야 사-리뿟따 숫따( ‘ Dutiya Sāriputta Sutta (SN 55.5)’ )를 포함하여 많은 숫따에서, 닙바-나(Nibbāna)의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 도달하기 위한 4가지 요건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짯따-로메, 빅카웨, 담마- 바-위따- 바훌리-까따- 소따-빳띠팔라삿치끼리야-야 상왓딴띠. 까따메 짯따-로? 삽뿌리사상세오, 삿담맛사와낭, 요니소마나시까-로, 담마-누담맙빠띠빳띠”.

    (“Cattārome, bhikkhave, dhammā bhāvitā bahulīkatā sotāpattiphalasacchikiriyāya saṃvattanti. Katame cattāro? Sappurisasaṃsevo, saddhammassavanaṃ, yonisomanasikāro, dhammānudhammappaṭipatti”.)

     

    • * 처음 2가지 요건이 충족되려면 성자(아리야)와 교제하고(Sappurisasaṃsevo) 성자로부터 배우는(saddhammassavanaṃ) 것이 필요합니다. 부처님 시대에는 기록 문헌을 이용할 수 없었으므로, 배우기 위해서는 (saddhammassavanaṃ) 들어야 했지만, 요즘은 읽거나 들음으로써 배울 수 있습니다. 

    • * 삽뿌리사(sappurisa)(‘sath + purisa’로 합성된 말이며, 성스런 친구, 즉 성자를 의미함)는 때때로 ‘깔야-나 밋따-(kalyāna mittā)’(산스크리트어로 ‘kalyāna mitrā’)라고 불립니다.

    • * 그러므로, 처음 2가지 조건은 아리야(Ariya)로부터 기본 개념을 파악하는 요건을 충족합니다. 이것은 또한 자-나또(jānato), 즉 ‘알게 되는 것’이라고 불립니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ami)’가 됩니다. 

     

    4. 일단 기본 개념이 파악되면, 소따빤나 아누가미는 자신의 마음에서 근본적인 견해를 숙고하고 확고하게 확립합니다. 그것은 마지막 2가지 조건을 수반합니다. 그것이 소따빤나 아누가미가 새로운 세계관을 완전히 파악하고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기 위해 충족해야 할 빳사또(passato) 단계입니다. ‘자-나또 빳사또와 아-자-니야 ㅡ 기억해야 할 결정적인 말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는 다양한 재탄생이 빠띳짜 사뭅빠-다에 따라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요-니(yōni)’는 ‘기원’을 의미하고, ‘마나시까-라(manasikāra)’는 ‘마음에 가라 앉는’ 것을 의미합니다.

    • * 마지막 조건인 담마-누담마 빠띠빠다-(dhammānudhamma)는 파악된 원리(담마)에 따라 생활하고 그 원리의 세부사항(아누담마)을 고찰하는 것을 수반합니다. 

    • * 소따빤나 단계의 성취(팔라 순간)는 숙고 중에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 * 우리는 마지막 진술을 확인하기 위해 띠삐따까에 있는 두 가지 기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꼰단냐(Koṇḍañña) 존자는 부처님의 첫 설법을 숙고하는 중에 소따빤나 팔라 순간에 이르렀는데, “Imasmiñca pana veyyākaraṇasmiṁ bhaññamāne āyasmato koṇḍaññassa virajaṁ vītamalaṁ dhammacakkhuṁ udapādi.”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고 이 법문이 설해지는 중에 꼰단냐 존자에게  담마에 대한 흠없고 티없이 깨끗한 비전이 일어났다.”로 잘못 번역되어 있습니다. ‘Dhammacakkappavattana Sutta (SN 56.11)’를 참조하세요. 올바른 번역은 “부처님의 말씀을 숙고하는 중에, 꼰단냐 존자에게 담마에 대한 흠없고 티없이 깨끗한 비전이 일어났다”(즉, 존자는 소따빤나 팔라를 얻었다).”입니다.

    • * 또다른 예는 Cittahattha 존자에 대한 기록입니다. “The Five Dullabha (Rare Things).” 포럼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 포럼 포스트의 ‘Venerable Cittahattha’s Account’ 아래의 설명과 다른 코멘트를 보세요.

     

    소따빤나 아누가-미 ㅡ 담마-누사-리- 또는 삿다-누사-리-

     

    5.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는 담마-누사-리-(dhammānusārī)거나 삿다-누사-리(saddhānusārī)입니다. 자세한 것은 ‘소따-빤나 아누가-미 - 더 이상 사악처에 태어나지 않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붓다 가르침의 독특함

     

    6. ‘붓다 가르침의 독특함’이라는 주제를 간단히 다루겠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더 넓은 세계관’을 (적어도 임시적으로) 받아들일 때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31영역과 깜마(산스크리트어로는 까르마)라는 자연 법칙에 기반하여 그 영역 내에서 재탄생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포함합니다. 필자는 그 가정/공리의 타당성을 ‘담마와 과학’ 섹션의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 서브 섹션에서 논의했습니다.

     

    • * 모든 뿌툿자나(붓다 담마를 이해하지 못한 자)들의 핵심 가정은 다음과 같은데, ‘세상에는 즐거운 것들이 있고 (그것을) 가능한 한 많이 획득하는 것이 목표다(그러면 행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많은 경우에 논리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삶을 즐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현대 경제는 마음을 즐겁게 하는 장치, 주거지(주택), 영화, 음악 등의 개발을 중심으로 구축됩니다.

    • *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가정에는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몇 가지를 논의해 보겠습니다.

    • * 어떤 사람들은 재산이 많지만 자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다른 문제로 인해 고통을 겪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유한 집에 태어났지만 질병으로 인해 고통을 겪습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노년에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빠띳짜 사뭅빠-다는 삶의 두 가지 주요 측면으로 이끈다  

     

    7. ‘부처님의 더 넓은 세계관’에서 보면, 그림은 매우 다릅니다. 주목해야 할 측면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i) ‘즐거운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부도덕한 생각과 말과 행동은 헤아릴 수 없을만큼 가혹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도덕적/부도덕적 생각과 말과 행동들은 재탄생 과정이 계속되게 합니다. 부도덕한 행위들은 가혹한 고통이 있는 아빠-야-(사악처)에 재탄생되게 합니다. 도덕적인 행위들은 좋은 영역(인간, 데와, 브라흐마 영역)에 재탄생되게 하지만, 그런 좋은 재탄생은 드뭅니다. ‘재탄생 ㅡ 제1성제의 괴로움과 관련’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빠띳짜 사뭅빠-다는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는데, 그 의미는 제목 자체에 박혀 있습니다(“어떤 것에 들러붙으면 해당하는 바와(그리고 따라서 자-띠)의 생성으로 이어진다”). 빠띳짜 사뭅빠-다 ㅡ '빠띠+이치차' + '사마+웁빠-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ii) 두번째 측면은 첫번째와 관련되어 있는데, “새로운 존재는 들러붙음의 유형에 따라 내장된 특성(특히 ‘왜곡된 산냐-’)을 가집니다”. 그것은 또한 빠띳짜 사뭅빠-다와 일치하고 (빠띳짜 사뭅빠-다에 의해) 설명됩니다. 그 측면은 들러붙음의 유형에 따라 ‘왜곡된 산냐-’를 내장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 탄생은 감각적 즐거움을 갈망하지만 부도덕한 행위를 수반하지 않는 것에 기반하는데, 따라서, 인간 몸은 그런 감각 경험이 마음을 즐겁게 하는 왜곡된 산냐-를 주는 업 에너지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반면에, 돼지로 태어남은 부도덕한 저열한 행위에서 기원합니다. 돼지의 몸은 썩은 고기 또는 배설물도 맛있다는 ‘왜곡된 산냐’를 주는 업 에너지에 의해 설계됩니다.

     

    사성제, 빠띳짜 사뭅빠-다, 띨락카나

     

    8. 그 두 가지 측면은 붓다께서 왜 “이 31영역으로 된 광대한 세상에는 많은 괴로움/고통이 있다”고 말씀하셨는지를 설명합니다. (내장된 ‘왜곡된 산냐-’로 인한) 환영의 감각 즐거움은 우리를 까-마 로까(kāma loka)에 묶이게 하고, 그리고 사악처에 자주 묶이게 합니다. 그것이 첫번째 성스런 진리(제1성제)입니다.

     

    • * 붓다께서는 또한 제1성제를 이해한다면, 자동적으로 나머지 세가지를 이해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필수적인 시각, 즉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에 대한 첫 감을 잡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 *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이해하는 것은 네 가지 성스런 진리(사성제)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빠띳짜 사뭅빠-다는 아빠-야-(apāyā)(동물영역을 포함하여 4가지 가장 낮은 영역)를 포함하여 다양한 존재의 재탄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설명합니다.

    • * 그것은 이 세상의 실제 끔찍한 본질, 즉 틸락카나(아닛짜, 둑카, 아낫따)를 이해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세부 사항은 ‘빠띳짜 사뭅빠-다(연기)’ 섹션의 ‘빠띳짜 사뭅빠다, 틸락카나, 사성제(Paṭicca Samuppāda, Tilakkhana, Four Noble Truths)’ 서브섹션에 있습니다.

     

    성자만이 그 개념들을 설명할 수 있다

     

    9. 이제, 붓다께서 왜 그 네 가지 조건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지 파악하기가 더 쉽습니다. 먼저, (위 #7에서 요약한 바와 같이) 부처님의 메시지는 독특하기 때문에, 그 메시지는 부처님에게서 또는 그 앎이 부처님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자에게서 나와야 합니다. 다음은 그것을 설명하는 비유입니다.

     

    • * 부처님은 우뚝 견고하게 서 있는 큰 나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위로 올라가기 위해 나무를 필요로 하는 덩굴 식물(climber)과 같습니다. 그런 덩굴 식물은 줄기가 튼튼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똑바로 설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서있기 위해 다른 나무나 막대기로 지지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식물들을 덩굴 식물(climber)이라고 합니다. 덩굴 식물은 지지 나무나 막대기를 잡기 위한 덩굴손이 있습니다. 다음 그림은 덩굴 식물의 몇가지 예(포도 덩굴_Grapevine, 완두콩 덩굴_Pea, 재물 덩굴_Money Plant)입니다.

     

    • * 덩굴 식물은 많이 있지만 나무 하나만 있고 막대기와 같은 다른 지지대가 없는 숲을 생각해 봅시다. 덩굴 식물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나무를 붙잡게 되는 것입니다.

    • * 그 나무에 가까이 있는 덩굴 식물들만 그 나무에 도달하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른 덩굴 식물들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더 많은 덩굴 식물들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함에 따라 접근 지역이 커집니다.

    • * 그러므로, 올라가는 덩굴 식물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항상 원래의 나무까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같은 식으로, 아리야(Ariya, 성자), 즉 소따-빤나(Sotāpanna),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아나-가-미(Anāgāmi), 또는 아라한뜨(Arahant)들은 항상 계보에서 부처님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 * 이 메시지는 독특하기 때문에, 그것은 부처님이나 그 계보가 부처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자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올바른 메시지를 접하지 않고는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 단계조차 얻을 수 없습니다. 아리야(Ariya, 성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다른 아리야(Ariya)로부터 그 담마를 배워야 합니다. ‘붓다 담마에서 독특한 것은 무엇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0. 이제, 우리는 처음 두가지 조건의 논리를 알 수 있습니다. 올바른 버전의 담마(Dhamma)를 배워야 하고, 따라서 그것은 아리야(Ariya, 성자)로부터만 배울 수 있습니다.

     

    • * 깔야-나 미뜨라-(Kalyāna mitrā)라는 구절은 산스크리트어입니다. 빠알리어로 그것은 ‘깔야-나 밋따-(kalyāna mittā)(miththā로 발음)이고, ‘오염을 제거하는 것을 돕는 친구’를 의미합니다(‘까-알라(kāla)’는 ‘더러운 물_dirty water’에서처럼 ‘더러운(dirty)’ 또는 ‘거무스름한(blackish)’을 의미하고, ‘나(na)’는 ‘제거’를 의미합니다).

    • * 많은 사람들이 ‘깔야-나 미뜨라-(Kalyāna mitrā)’를 평범한/전통적인 의미에서 ‘좋은 친구’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좋은 것’ 이상입니다. 부처님의 메시지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메시지를 알아야 합니다. 

    • * 그것은 이 올바른 메시지를 듣거나 그것에 대해 읽음으로써 가능하며, 이것이 처음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 근본 개념을 잠정적으로 파악/이해함(자-나또)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성스런 친구(깔야나- 밋따-)의 가치/중요성

     

    11. 오랜 기간동안 부처님의 마지막 시자였던 아난다 존자는 한번은 부처님께 다가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저는 붓다 사-사나(부처님의 가르침, 불교)의 미래는 깔야-나 밋따-(kalyāna mittā)에 적어도 50%는 틀림없이 의존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 붓다께서는 그것에 대해,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붓다 사-사나(Buddha Sāsana)는 깔야-나 밋따-(kalyāna mittā)에 100% 의존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Upaḍḍha Sutta (SN 45.2)’를 참조하세요.

    • * 그 계보가 깨지면, 그것은 ‘붓다 사-사나[불교]’의 끝입니다. 말(용어)은 여전히 있을 수 있지만,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포함한 핵심 용어의 참된 의미를 설명할 사람은 없습니다.

    • * 위나야 삐따까에서, 붓다께서는 붓다 담마가 500여년(사라질 것이라는 의미가 아님)만 번성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 Nuns (Bhikkhunī)’을 참조하세요. ‘Gotamī Sutta (AN 8.51)’에서도 동일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 그 후에, 가르침이 땅에 묻히는 시기가 있을 것인데, 가르침을 설명하는 아리야들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실제의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빠띠삼비다- 냐-나(paṭisambhidā ñāṇa)를 지닌 자-띠 소-따빤나(jāti Sōtapanna)가 때때로 태어나야 합니다. 

     

    12. 붓다께서는 (인간들 중에) 다음 세대로 가르침을 계속 전승하는 인간 중에서 적어도 소따빤나가 있는 한, 붓다 담마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 * 그것은 ‘Mahāparinibbāna Sutta (DN 16)’에 기술되어 있는데, “Yasmiṁ kho, subhadda, dhammavinaye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na upalabbhati, samaṇopi tattha na upalabbhati. Dutiyopi tattha samaṇo na upalabbhati. Tatiyopi tattha samaṇo na upalabbhati. Catutthopi tattha samaṇo na upalabbhati. Yasmiñca kho, subhadda, dhammavinaye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upalabbhati, samaṇopi tattha upalabbhati, dutiyopi tattha samaṇo upalabbhati, tatiyopi tattha samaṇo upalabbhati, catutthopi tattha samaṇo upalabbhati. Imasmiṁ kho, subhadda, dhammavinaye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upalabbhati, idheva, subhadda, samaṇo, idha dutiyo samaṇo, idha tatiyo samaṇo, idha catuttho samaṇo, suññā parappavādā samaṇebhi aññehi. –Ime ca, subhadda, bhikkhū sammā vihareyyuṁ, asuñño loko arahantehi assāti.”입니다. 그 의미는 “수밧다여, 성스런 팔정도가 없는 어떤 가르침과 실천에서도 참된 소따빤나, 사까다가미, 아나가미, 및 아라한이 없다. 성스런 팔정도는 이 가르침(붓다 담마)와 실천(위나야)에서 발견된다. ㅡ 빅쿠들이 아리야 계보를 유지하는 한, 이 세상에는 아라한들이 있을 것이다.”입니다. 

     

    빠띠삼비다- 냐-나를 지닌 자-띠 소-따빤나

     

    13. 따라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랜 기간 동안 땅속에 묻혀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씩 빠-라미따(pāramita)를 충족한 자-띠 소따-빤나(jāti Sōtapanna)가 태어나 부처님의 메시지를 되살린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약 600년 경의 마힌다 존자와 같습니다. 그분들은 ‘자-띠 소따-빤나’일 뿐만 아니라,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및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와 같은 핵심 빠알리 용어의 참된 의미를 알아내는 빠띠삼비다- 냐나(patisambhidā nana)도 지닙니다.

     

    • * 필자는 지금이 그런 시기라고 믿습니다. 순수한 붓다 담마는 와하라까 테-로(Waharaka Thēro)께서 드러내실 때까지 수백년 동안 감춰져 있었습니다. ‘와하라까 테로의 빠리닙바-나’를 참조하세요.

    • * 전세계적으로 많은 클라이머(climber)가 이미 클라이징(climbing up)을 시작했습니다. 필자는, 이 웹사이트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퓨어 담마(pure Dhamma)를 이해함에 따른 기쁨으로 보내주는 이메일로 격려를 받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에 대한 이해로 요-니소 마나시까-라

     

    14. 세번째 조건은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로 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요-니(yōni)’는 ‘기원(origin)’을 의미하고, ‘소(so)’는 ‘자기 자신’을 의미하며, ‘마나시까라(manasikara)’는 여기서  ‘이해’를 의미합니다.

     

    • * 사람은 자신의 행위(아비상카-라)를 기반으로 주어진 영역(존재)에 어떻게 재탄생할 수 있는지를 이해합니다. 사람이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로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를 생성할 때,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의 반대, 즉 아요-니소 마나시까-라(ayōniso manasikāra)로 행합니다. 그것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과정이 시작되게 합니다.

    • * 빠알리어와 싱할라어에서 ‘요-니(yōni)’는 산도(birth canal)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는 ‘기원에 대한 이해’를 의미합니다. 사람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이해함으로써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 즉 다양한 영역에 태어남으로 이어지는 원인을 파악합니다.

     

    15.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는 자신의 가띠(gati)에 따라 ‘바와(bhava)’와 ‘자-띠(jāti)’가 일어나는 것을 설명합니다.  ‘가띠에서 바와로 그리고 자띠로 - 우리가 통제해야 할 것’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한 이해로, 자동적으로 또는 그것들을 숙고함으로써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가띠(gati)를 기르는 동기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도덕성에 대해 더 나은 판단을 하고 빤나(지혜)로 행할 수 있습니다.

    • * 아무도 개로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처럼 행하면, 개로 태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개는 부적절한 행위를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데, 그들은 아무곳에나 배변하고, 모든 암컷 개, 심지어 그들의 새끼들 등과도 성관계를 맺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이해하면, 우리는 어떤 유형의 행동/말/생각(아비상카-라)들이 어떤 유형의 태어남으로 이어지는지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띨락카나와 관계

     

    16. 위방가빠까라나(Vibhangapakarana)(제2권 234페이지)에서는 아요-니소 마나시까-라(ayōniso manasikāra)는 ‘아닛짜(anicca)를 닛짜(nicca)로, 둑카(dukkha)를 수카(sukha)로, 아낫따(anatta)를 앗따(atta)로 인식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로 행하려면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빠띳짜 사뭅빠-다의 추론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 * 그것을 간단히 말하면, 사람들은 이 세상 것들이 결국(장기적으로 볼 때) 행복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로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를 생성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체 고통(괴로움) 덩어리’로 끝나는 ‘바와(bhava)’와 ‘자-띠(jāti)’로 이어지기만 하기 때문에 아요-니소 마나시까-라(ayōniso manasikāra)로 행하는 것입니다.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로 행하는 것은 ‘얻을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한 이러한 분투의 결실없음’을 보는 것입니다. ‘요니소 마나시까-라와 빠띳짜 사뭅빠-다’ 를 참조하세요.

    • *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요-니소 마나시까-라로 행하는] 그 사람은 아빠-야(apāyā)에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비상카-라로 행해지는) 그런 행위들을 자동적으로 피할 것입니다.

    • * 따라서,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는 단순히 ‘적절한 주의 주목’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특히, 소따-빤나(Sotāpanna)는 ‘빠띠(pati) + 잇짜(icca)’가 ‘사마(sama) + 웁빠다(uppada)’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빠띳짜 사뭅빠-다 ㅡ '빠띠+이치차' + '사마+웁빠-다' ”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네 번째 조건 ㅡ 담마-누담마 빠띠빠다-

     

    17. 처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할 때, 네 번째 조건인 ‘담마-누담마 빠띠빠다-( Dhammānudhamma Paṭipadā )’를 충족하도록 설정됩니다. 여기서 ‘담마-누담마(Dhammānudhamma)’는 ‘담마(Dhamma) + 아누담마(anudhamma)’로 합성된 말이며, ‘담마(Dhamma)’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인 붓다 담마(Buddha Dhamma)입니다. 붓다께서는 “Yō Paṭiccasamuppādam passati, so Dhammam passati.”(즉, “빠띳짜 사뭅빠-다를 이해하는 자는 누구나 나의 담마를 이해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8. 아누담마(Anudhamma)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와 맞는 다른 담마’이고, ‘빠띠빠다-(Paṭipadā)’는 ‘따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띨락카나, 도덕적 행, 등과 같은) 붓다 담마의 다른 면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아누담마 숫따(‘Anudhamma Sutta, SN 22.39’)로 시작하여 4개의 숫따가 있는데, 그것은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와 같은 여러가지 ‘아누담마(anudhamma)를 묘사합니다.

    • * 그 숫따들은 빤짝칸다(pancakkhandha)(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의 아낫따, 둑카, 및 아낫따 특성(본질)에 대한 명확한 시각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담마-누담마 빠띠빠다-(Dhammānudhamma Patipadā)를 묘사합니다.

     

    19. 세번째 및 네번째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어떤 시점에서 ‘올바른 세계관’를 확고하게 파악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그것은 숙고하고 있는 중에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위 #4에서 언급한 ‘빠삿또(passato)’라는 두번째 단계입니다. 그것은 또한 소따빤나가 되게 만드는 소따빤나 팔라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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