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google":["PT Serif","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Nanum Barun Gothic"]}

 

요니소 마나시까-라와 빠띳짜 사뭅빠-다

 

원문: Paṭicca Samuppāda 섹션의 ‘Yoniso Manasikāra and Paṭicca Samuppāda’ 포스트

 

요-니소 마라시까-라(yōniso manasikāra)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이해하고 그래서 이 세상은 아닛짜, 둑카, 및 아낫따라는 3가지 특성을 가진다는 마음 성향을 지니는 것입니다. 

 

2021년 11월 9일 작성; 2022년 12월 14일 개정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하려면 미래 괴로움이 일어나는 메커니즘, 즉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이해해야 합니다. 먼저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로서 빠띳짜 사뭅빠-다의 기초적인 측면을 이해함으로써 성스런 길을 시작합니다. 그 이해가 마음 속에 확고하게 자리잡을 때,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경전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여기서는] 그것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몇 개의 숫따를 논의하겠습니다.

 

소따빤나 단계를 얻는데 필요한 4가지 조건 

 

1.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4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소따-빳띠팔라 숫따( ‘Sotāpattiphala Sutta (SN 55.55)’ )와 두띠야 사리뿟따 숫따( ‘Dutiya Sariputta Sutta (SN 55.5)’ )를 포함하여 많은 숫따에서는, 닙바-나(Nibbāna)의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하기 위한 4가지 요건(요구 조건)이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Cattārome, bhikkhave, dhammā bhāvitā bahulīkatā sotāpattiphalasacchikiriyāya saṃvattanti. Katame cattāro? Sappurisasaṃsevo, saddhammassavanaṃ, yonisomanasikāro, dhammānudhammappaṭipatti ”.

 

  1. 1) 삽뿌리사(sappurisa)(sath + purisa, 성스런 친구, 즉 ‘아리야_Ariya’/성자)와 교류함(어울림). 삽뿌리사(sappurisa)는 때때로 ‘깔야-나 밋따-(kalyāna mittā)’(산스크리트어로 ‘kalyāna mitrā’)라고도 함.

  2. 2) 설법을 들음(‘소따-빤나- 아누가-미’에 이르는 데는 법문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설법을 듣는 것이 필요함).

  3. 3)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를 이해함(다양한 존재가 일어나고 그 모든 존재가 고통으로 끝나는 방식, 즉 빠띳짜 사뭅빠-다를 이해함).

  4. 4) 담마누담마 빠띠빠다-(Dhammanudhamma patipadā)를 따라 시작함(미래 괴로움이 어떻게 제거될 수 있는지를 본 후에). ‘붓다 담마에서 독특한 것은 무엇인가?’ 포스트를 참조.

 

성자는 처음 두 요건을 충족하는데 필요하다

 

2.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목적지에 어떻게 도달하는지를 아는 사람에게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요즘에는 닙바-나(열반)에 이르는 길(즉, 성스런 도에 대한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닙바-나(열반)에 이르는 길’을 모르는 누군가를 따른다면, 올바른/정확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최소한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했다면, 그 사람은 알 것입니다.

 

  • * 그것은 ‘소따-빤나 단계’ 포스트에서 자세히 논의했습니다.

  • * 다른 두 가지 요건은 성스런 친구(성자)를 통해서만 충족될 수 있습니다.  즉 빠띳짜 사뭅빠-다(담마 / 붓다 담마)와, 관련된 아누담마(틸락카나, 상요자나, 등)를 배움으로써만 충족될 수 있습니다. ‘소따-빤나 막가/팔라를 얻기 위한 4가지 조건’ 포스트의 #13을 참조하세요. 

  • * 이제, 여러분은 이렇게 물을 수도 있습니다. “왜 저에게 올바른 길을 말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합니까? 그것(올바른 길)은 [말해주지 않더라도] 띠삐따까(Tipiṭaka, 삼장)에 기술되어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띠삐따까 번역이 대부분 올바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붓다 담마의 (질적) 저하와 그 왜곡된 버전의 부활

 

3. 아라한들에 의해 처음 4차례의 불교 모임(결집 회의)에서 결집/암송된 대로 우리가 원래의 띠삐따까(Tipitaka)를 가지고 있는 것은 행운입니다. 제4차 불교 모임(결집 회의)에 참석한 아라한들은 그 빠알리 띠삐따까(Pali Tipiṭaka)를 기록(즉, 기록완료 확인)했습니다. 그것은 2000여년 전 일입니다. ‘붓다 담마의 보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나, 핵심(주요) 개념의 왜곡은 제4차 불교 모임(결집 회의) 직후 시작되었습니다. 그 주된 이유는 약 2000여년 전에 인도에 도입된 마하-야-나(Mahāyāna, 대승) 불교의 평범한(세속적) 해석이었습니다.

  • * 인도에서 불교는 점차 사라졌고 적어도 500여년 전에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 마하-야-나(대승) 개념들은 스리랑카를 포함한 다른 많은 불교 국가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빠알리 띠삐따까(Pali Tipiṭaka)가 온전히 남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잘못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띠삐따까의 싱할라 번역(Buddha Jayanti 판)에는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가 무상(impermanence)과 ‘무아(no-self)’로 잘못 번역되어 있습니다.

  • * 유럽인들이 아시아 국가들에서 불교를 발견했을 때, 그 두 가지(그리고 더 많은)의 잘못된 해석은 모든 나라들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습니다. 필자는 ‘초기 유럽 학자들의 아닛짜 및 아낫따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라는 포스트에서 간략한 설명을 했습니다.

  • * 유럽인들이 그 나라들에 도착했을 때, 불교는 그 나라들에서 쇠퇴되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예불 장소는 열악한 상태였습니다. 그 유럽 학자들과 영국 정부는 그 장소들 중 많은 곳을 복구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원래의 빠알리 문헌들을 수집하고 보존했다는 것인데, 그것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국 박물관에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빠알리 띠삐따까(Pali Tipiṭaka)는 살아남았습니다.

  • * 유럽 학자들은 스리랑카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나라들에 뿌리내린 잘못된 해석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비록 그들은 ‘학술적 학자’였지만, 붓다 담마의 깊은 개념에는 훨씬 덜 알았습니다. 따라서, 그런 ‘평범한(세속적) 해석’은 그들에게 완벽하게 일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무렵에 발명된 인쇄기를 사용하여 그 잘못된 해석들을 널리 퍼뜨렸습니다. ‘붓다 담마의 보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평범한(세간) 해석은 파악하기 쉽다

 

4. 붓다 담마의 (질적) 저하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닛짜(anicca)를 무상(impermanence)으로 그리고 아나-빠-나사띠(Anāpānasati)를 호흡  명상(breath meditation)으로 이해하는 두 가지 예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 * 누구나 '어떤 것의 무상한 본질(impermanent nature)’을 보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영구적이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과학은 우리의 태양조차도 수십억 년 안에 파괴될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 * 마찬가지로, 아나-빠-나사띠(Anāpānasati)가 호흡 명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습니다. 더 심오한 의미는 ‘부도덕한 것을 버린다’와 ‘도덕적인 것을 받아들인다’라는 것인데도, 오늘날에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게다가, ‘숨(호흡)을 지켜보는 것’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진정시켜) 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으로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 * 비록 이 점진적인 (질적) 저하가 마하-야-나(대승)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개념들은 점차 테라와-다(Theravāda) 불교에 통합되었습니다. 전환점은 붓다고사(Buddhaghosa) 스님의 저술, 특히 그의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청정도론)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붓다고-사의 위숫디막가 ㅡ 집중된 분석’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거의 모든 불교 국가에서 빠알리 띠삐따까(Pali Tipiṭaka)는 제쳐두고 붓다고사(Buddhaghosa)의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청정도론)가 채택되었습니다. 받아들여진 이론은 띠삐따까(Tipiṭaka) 56권을 살펴볼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붓다고사(Buddhaghosa) 스님은 그 모두를 단 한 편의 주석으로 요약했습니다!

 

띠삐따까에 있는 개념들은 설명될 필요가 있다

 

5. 다행히도, 아라한이 준비한(작성한) 3개의 원 주석, 즉 빠띠삼비다막가(Patisambhidamagga)와 뻬따꼬빠데사(Petakopadesa) 및 넷띱빠까라나(Nettippakarana)가 띠삐따까(Tipiṭaka)의 일부로 남아 있습니다.

 

  • * 수백 년 동안 아무도 그것들을 읽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읽어도 성자(아리야-, Ariyā)가 설명해 주지 않으면 그 깊은 개념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런 성자들이 가끔 태어나서 올바른 가르침을 되살립니다. 그들은 전생에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한 ‘자-띠 소따빤나(jāti Sotapanna)들’입니다.

  • * 와하라까 테로(Waharaka Thero)님은 그런 자-띠 소따빤나(jāti Sotapanna)였습니다. 그의 법문에서, 테로님은 그 올바른 의미가 어떻게 자신에게 자연적으로 다가왔는지를 설명하셨습니다. 테로님은 성년이 되었을 때 띠삐따까(Tipitaka)를 자세히 검토할 수 있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그 원 주석 3개의 도움으로, 테로님은 올바른 해석을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각자가 (이 웹사이트에서 필자가 제공하는) 테로님의 해석과 다른 해석들을 비교함으로써 그것(테로님의 해석)을 확인/검증해야 합니다.

  • * 그 배경에서, 위 #1에서 언급한 소따빤나(Sotapanna) 단계를 위한 나머지 2가지 요건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 필자의 분석을 다른 현재 버전과 비교하여 어느 버전이 올바른지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니소 마나시까-라 ㅡ 빠띳짜 사뭅빠-다와 띨락카나에 관련 

 

6.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 도달하기 위한 세 번째 조건/요건은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를 지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요-니(yōni)’는 ‘기원(발생)’을 의미하고, ‘소(so)’는 ‘자기 자신’을 의미하며, 여기의 ‘마나시까-라(manasikāra)’는 ‘이것을 마음에(염두에) 두고’를 의미합니다.

 

  • * 미래 존재(bhava)의 기원(발생)과 그 ‘존재_바와’ 내의 태어남(자-띠, jāti)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연기)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논의한 바와 같이,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는 ‘성스런 진리에 대한 무지로 인해 지혜롭지 못한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항상 “바와 빳짜야- 자-띠, 자-띠 빳짜야- 자라-, 마라나, 소까, 빠리데-와, 둑카, 도-마낫수빠-야사- 삼바완’띠(bhava paccayā jāti, jāti paccayā jarā, marana, soka, paridēva, dukkha, dōmanassupāyasā sambhavan'ti)”, 즉 ‘전체 고통/괴로움 덩어리’로 끝납니다.

  • * 또 다른 식으로 말하면, 자신의 미래 태어남(그리고 관련된 고통/괴로움 또는 행복)은 자신의 행위에 따릅니다. ‘좋은 영역(선처)’에 태어나는 것은 대부분 행복으로 이어지고, ‘나쁜 영역(악처)에 태어나는 것은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 ‘나쁜 영역(악처)’에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더 깊은 레벨에서, 그 이유는 ‘요니소 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의 반대인 ‘아요니소 마나시까-라(ayoniso manasikāra)’로 행하는 경향에 있습니다.

 

7. 위방가빠까라나(Vibhangapakarana)(BJ edition Book 2, p. 234)는 아요-니소 마나시까-라(ayōniso manasikāra)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Tattha katamo ayoniso manasikāro? Anicce “niccan”ti ayoniso manasikāro, dukkhe “sukhan”ti ayoniso manasikāro, anattani “attā”ti ayoniso manasikāro, asubhe “subhan”ti ayoniso manasikāro, saccavippaṭikulena vā cittassa āvaṭṭanā anāvaṭṭanā ābhogo samannāhāro manasikāro—ayaṁ vuccati “ayoniso manasikāro”.

 

  • *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 사이트에서, ‘Khuddakavatthuvibhaṅga’에 있는 ‘3. Tikaniddesa’ 섹션의 끝 무렵에서 그것(위 인용문)을  볼 수 있습니다.

  • * 많은 영어 번역에서, 아요-니소 마나시까-라(ayōniso manasikāra)는 ‘부적절한 주의(improper attention)’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숫따 센트럴(Sutta Central) 사이트에 있는 ‘translation of Mahāli Sutta (AN 10.47)’을 참조하세요.

  • * 그러나, 위 구절은 “아요-니소 마나시까-라(ayōniso manasikāra)아닛짜(anicca)를 닛짜(nicca)로, 둑카(dukkha)를 수카(sukha)로, 아낫따(anatta)를 앗따(atta)로 여긴다.”라고 말합니다.

  • * 간단히 말해서, 사람들이 이 세상의 것들이 장기적으로 행복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사람들은 아요-니소 마나시까-라(ayōniso manasikāra)로 행합니다.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로 행하는 것은 달성할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애쓰는(분투하는) 것이 결실없다는 것을 알고, 따라서 이 생이 너무나 짧기 때문에 최소한 소따빤나(Sotapanna) 단계를 향해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 * 많은 포스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이 세상은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본질/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붓다 담마를 이해하지 못한) 보통 사람은 이 세상을 닛짜(nicca), 수카(sukha), 앗따(atta) 본질/특성으로 인식합니다. ‘주요 담마 개념’ 섹션에 있는 ‘붓다 담마의 기본 틀(Basic Framework of Buddha Dhamma)’ 서브 섹션을 참조하세요.

  • * 빠띳짜 사뭅빠-다의 측면에서 아요-니소 마나시까-라(ayōniso manasikāra)에 대한 ‘다르지만 관련된 묘사’가 ‘소따-빤나 막가/팔라를 얻기 위한 4가지 조건’ 포스트에 있습니다.

 

결정적인(매우 중요한) 추론

 

8. #6과 #7에서 논의한 것은 다음 내용을 가리킵니다.

 

이제 세 번째 요건(요구 조건)은 처음 두 요건에 따른 자연스런 확장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성스런 친구(성자)가 없이는 세 번째 요건을 충족하는 것, 즉,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띨락카나_Tilakkhana’라는)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 * 그것은 또한 우리가 위 #5에서 논의한 세 개의 원 주석의 가치를 확인시켜줍니다. #7의 위방가빠까라나(Vibhangapakarana) 인용문에 있는 그 결정적인(매우 중요한) 구절은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를 명확히 합니다.

  • * 그러나 그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의 참된 의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 * 최근에, 그 의미들은 우리의 깔라야-나 밋따-(kalayāna mittā)인 와하라까 테로(Waharaka Thero)님으로 인해 분명해졌습니다. 테로께서 띠삐따까(Tipitaka)에 기반한 일관성 있는 그림을 제공하신 것은 실로 자-띠 소따빤나(jāti Sotapanna)로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 * 네 번째 요건인 담마-누담맙빠띠빳띠 (dhammānudhammappaṭipatti)와, 그것과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관계는 ‘담마-누담마 빠띠빳띠 ㅡ 빠띳짜 사뭅빠-다/띨락카나와 관계’ 포스트에 있습니다.

 

이전 포스트들은 ‘빠띳짜 사뭅빠다(연기)’ 섹션의 이 ‘빠띳짜 사뭅빠다, 틸락카나, 사성제(Paṭicca Samuppāda, Tilakkhana, Four Noble Truths)’ 서브섹션에 있습니다.

{"google":["PT Serif"],"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google":["PT Serif","PT Sans"],"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Nanum Barun Gothic"]}
{"google":["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