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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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따-빤나 아누가-미와 소따-빤나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Sotāpanna Anugami and a Sotāpanna’ 포스트

- 2017년 7월 27일 개정; 2018년 1월 15일 개정; 2018년 9월 26일 개정; 2019년 2월 13일 개정; 2020년 4월 13일 개정; 2021년 8월 11일 개정; 2022년 7월 18일 개정(#5 추가)

 

여기서는 ‘소따-빤나’와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기 위해 힘쓰는 자’ 사이의 차이에 대해 논의합니다. 후자는 올바른 길에 있습니다(소따-빤나 아누가-미, Sotāpanna Anugāmi).

 

상가에 속하는 자

 

1. 오늘날 ‘상가(sangha)’라는 말은 빅쿠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상가(sangha)는 ‘산(san)’ + ‘가(gha)’로 합성된 말이며, ‘산(san)’를 제거했거나 제거하는 길에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 정의에 따르면, 빅쿠(bhikkhu)가 되어야만 상가에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상가를 칭송하는 말에서, 그들을 ‘앗타 뿌리사 뿍갈라-(attha purisa puggalā)’라고 합니다. ‘붓다와 담마와 상가의 지고한 특성’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여기서, ‘앗타(attha)는 ‘여덟(8)’이고, ‘뿌리사(purisa)’는 ‘남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덕을 지닌 자’를 의미하며, ‘뿍갈라-(puggalā)’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상가에 속하는 8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8부류는 누구일까요?

 

  • * 성스런 길을 시작한 4부류와 닙바-나의 4단계 조건을 충족한 4부류가 있으며,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 소따-빤나(Sōtapanna), 사까다-가-미 아누가-미(Sakadāgāmi Anugāmi),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아나-가-미 아누가-미(Anāgāmi Anugāmi), 아나-가-미(Anāgāmi), 아라한뜨 아누가-미(Arahant Anugāmi), 및 아라한뜨(Arahant)입니다. 그 중 4부류는 아누가-미 단계(Anugāmi stage) (주어진 단계를 향해 진행)에 있고, 나머지 4부류는 각각의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 * 깜마(kamma)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의 특별한 경우는 (주어진 단계를 향해 노력하는) 성스런 깜마-(Noble kammā)에서 일어납니다. 일단 ‘해야할 일’이 충족되면, 그 위빠-까(vipāka)가 순간적으로 바로 다음 찟따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예를 들어,  어떤 자가 소따-빤나 막가 찟따(Sotāpanna magga citta)에 도달하면, 바로 다음 찟따(citta)에서 소따-빤나 팔라(Sotāpanna phala)를 받습니다. 따라서, 그 자는 두 개의 연속하는 생각(마음) 순간에 소따-빤나(Sotāpanna)가 됩니다.

  • * 그러나, 어떤 자가 띨락카나(Tilakkhana), 즉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파악하기 시작하면,  그 자는 소따-빤나 아누가-미(Sotāpanna Anugāmi,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는 길에 있는 자)가 되어 아빠-야(apāya, 사악처)에 떨어지는 것에서 벗어납니다. 후대 주석에서는 그들을 ‘쭐라 소따-빤나(Chula Sotāpanna, 작은 소따-빤나)’라고도 합니다.

 

아비담마의 설명

 

2.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의 찟따 위티(citta vithi, 인식과정)는 ‘찟따 위-티 ㅡ 감각 입력의 처리’ 포스트의 끝부분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인식과정: B B B “BC BU MD P U A G Pa Fr Fr” B B B

 

  • * 소따-빤나 아누가-미(Sotāpanna Anugāmi)는 ‘계보의 전환(G, 고뜨라부)’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역주: 계보의 전환 및 삭까야 딧티 제거 시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음, ‘수실라 테로 법문에 관한 포럼 토픽’ 참조]. 그 앞 단계인 P, U, A에는 점차적으로 도달됩니다. 일단 (띨락카나에 대한) 이해의 레벨이 완료되면, 계보가 전환되고(G), 로꼿따라 깜마(출세간 깜마)를 완성하고(Pa), 즉시 팔라(phala)를 받습니다(Fr).

  • * 엄밀한 의미에서, 소따-빤나 아누가-미(Sotāpanna Anugāmi)보다는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Sotāpanna Magga Anugāmi, 막가 찟따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자)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 * 8부류의 성자(아리야, Ariya)는 ‘빠타마 뿍갈라 숫따( Paṭhama Puggala Sutta, AN 8.59 )’와 ‘뿍갈라 숫따( Puggala Sutta, AN 9.9 )에 열거되어 있습니다. 두 숫따(sutta) 모두에서, 소따-빤나 아누가-미(Sotāpanna Anugāmi)는 “소따-빳띠 팔라 삿치끼리야-야 빠띠빤노-(sotāpatti phala sacchikiriyāya paṭipannō)”입니다. 아나-가-미(Anāgāmi)가 되는 길에 있는 자는 “아나-가-미 팔라 삿치끼리야-야 빠띠빤노-(anāgāmi phala sacchikiriyāya paṭipannō)” 등입니다. 두 번째 숫따에서, ‘범부’는 ‘뿌툿자노- (puthujjanō)’입니다.

 

8부류의 성자

 

3. 따라서, ‘앗타 뿌리사 뿍갈라-(attha purisa puggalā)’는 #1에 열거된 8부류의 아리야(Ariya, 성자)로 구성됩니다. 그들은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 소따-빤나(Sōtapanna), 사까다-가-미 아누가-미(Sakadāgāmi Anugāmi),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아나-가-미 아누가-미(Anāgāmi Anugāmi), 아나-가-미(Anāgāmi), 아라한뜨 아누가-미(Arahant Anugāmi), 및 아라한뜨(Arahant)입니다.

 

 

막가 팔라의 단계

 

4. 소따-빤나(Sotāpanna)는 닙바-나(Nibbāna)를 본 사람인데, 완전히 본 것이 아니라 엿본 사람입니다. ‘31영역 이 세상’의 실제 상황에 대한 아윗자-(avijjā, 무지)를 제거할 때, 소따-빤나 아누가-미가 됩니다. 아래 #5를 참조하세요. 그 이해로, 그 마음은 사악처에 태어나게 할 수 있는 부도덕한 행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집니다. 그 뿐만 아니라 과거에 행한 그런 강한 부도덕한 행위에서 비롯되는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붙잡지 않습니다. 따라서, 소따-빤나 아누가-미 이상의 성자는 아빠-야(apāya, 사악처)에 더 이상 태어날 수 없습니다.

 

다른 세 단계는 유사한 [태어남의] ‘분계선(demarcation threshold)’을  갖습니다.

 

  • * 사까다-가-미(Sakadāgāmi)는 인간계나 ‘더 낮은 4영역(사악처)’에 더 이상 태어날 수 없습니다. 사까다-가-미 성자는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 속하는 데와 세계(deva world, 천신 세계)에는 여전히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데와(천신)들은 육체적 불편과 질병으로 이어지는 ‘살과 피로 된 몸’을 가지지 않습니다. 천신계(천상)에 있는 존재(유정체)는 늙거나 병들지 않는 미세한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 * 아나-가-미(Anāgāmi)는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 즉 ‘11가지 가장 낮은 영역’의 어떤 곳에도 태어나고자 하는 욕구를 극복했습니다. 아나-가-미 성자는 까-마 라-가(kāma rāga,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욕구)나 빠띠가(paṭigha, 미워함)가 없습니다.

  • * 아라한뜨(Arahant)는 31영역 어디에도 태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없으므로, 이 세상에 다시는 태어날 수 없습니다. 아라한 성자는 완전한 해방(벗어남)인 ‘완전한 닙바-나’에 도달했습니다.

 

5. 삼장 주석 경전인 빠띠삼비다-막가의 (‘1.1. Ñāṇakathā’ 섹션의 끝 무렵에) 서브섹션 1.1.55. 아-사왁카야나-나닛데사(Āsavakkhayañāṇaniddesa)에서는 아라한과에 이르는 길에서 얻어진 세가지 유형의 냐-나(ñāṇa)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Anaññātaññassāmītindriyaṁ kati ṭhānāni gacchati, aññindriyaṁ kati ṭhānāni gacchati, aññātāvindriyaṁ kati ṭhānāni gacchati? Anaññātaññassāmītindriyaṁ ekaṁ ṭhānaṁ gacchati—sotāpattimaggaṁ. Aññindriyaṁ cha ṭhānāni gacchati—sotāpattiphalaṁ, sakadāgāmimaggaṁ, sakadāgāmiphalaṁ, anāgāmimaggaṁ, anāgāmiphalaṁ, arahattamaggaṁ. Aññātāvindriyaṁ ekaṁ ṭhānaṁ gacchati—arahattaphalaṁ.”

 

  • * 그것은 다음을 말합니다. 첫 번째 냐-나(ñāṇa)는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에서 얻어진 아난냐-딴냣사-미-띤드리야(Anaññātaññassāmītindriya)입니다. 두 번째 냐-나는 안닌드리야(Aññindriya)로서, 중간의 6단계(수다원과에서 아라한도까지)에서 얻어지고 최적화됩니다. 세 번째 냐-나는 안냐-따-윈드리야(Aññātāvindriya)로서, 아라한과 순간에 얻어집니다.

  • * 따라서,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에 도달할 때 어떤 결정적인 것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단계별 과정

 

6. 부처님의 진정한 메시지를 먼저 들어야만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를 얻는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간적 팔정도를 넘어서야 합니다. ‘붓다 담마에서 독특한 것은 무엇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특히,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는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또는 ‘31영역 이 세상의 참된 본질’에 대해 들었습니다. 물론 그 개념들은 기본 개념을 파악한 성자로부터 나온 것이어야 합니다.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는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까(Sōtapanna Magga Anugāmika) 또는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Sōtapanna Magga Anugāmi)라고도 합니다.

  • * 그렇기 때문에 ‘깔야-나 밋따(kalyāṇamitta)’ 또는 ‘깔야-나 미뜨라(kalyāṇa mitra)’ (기본적으로 ‘성스런 친구’, 즉 아리야, Ariya)와의 연관이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 전제 조건입니다. ‘소따-빤나 막가/팔라를 얻기 위한 4가지 조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일단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가 되면, 그 자는 성자(‘앗타 뿌리사 뿍갈라, attha purisa puggala’의 한 유형)고, 아빠-야(apāya, 사악처)에 태어나는 것에서 벗어납니다. ‘소따-빤나 아누가-미 - 더 이상 사악처에 태어나지 않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와 ‘소따-빤나’의 차이

 

7.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Sotāpanna Magga Anugāmi)와 소따-빤나(Sotāpanna) 사이의 이 분계(경계)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 * 진귀한 보물이 산꼭대기에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러나 그 산이 어디에 있는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대체로 붓다 담마 상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오늘날 제시된 많은 다양한 버전들 중에서 올바른 버전을 알지 못합니다.

  • * 붓다께서 첫 설법에서, “나의 담마는 이전에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따라서, 닙바-나(Nibbāna)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지를 보여줄 부처님 또는 부처님의 참된 제자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필수적이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입니다.

  • * 누군가 보물이 있는 올바른 산으로 가는 방향을 잡았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 다음, 그 사람은 어느 나라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나라의 어느 위치에 있는 산인지 압니다. 이 사람은 소따-빤나가 되는 길에 있는 자, 즉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Sotāpanna Magga Anugāmi)’와 같습니다. 그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확히 알며 상세한 지도를 가집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것을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참된 제자로부터 얻습니다. 부처님의 참된 제자는 정상(아라한뜨)까지는 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적어도 산을 본 자(소따-빤나)입니다.

  • * 이제 그 사람은 그 나라와 그 산이 있는 지역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가는 길에 ‘친구(아리야, 성자)’가 말한 랜드 마크(landmark, 표지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Sotāpanna magga Anugāmi)는 새로 배운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등의 개념을 숙고하는 데 시간을 보냅니다.

  • * 따라서 확신을 가지고, 그 사람은 산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어느 순간부터 산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 시점에서 그 사람은 ‘경계를 넘어’ 소따-빤나(Sotāpanna)가 됩니다. 그 사람은 처음으로 닙바-나(Nibbāna)를 엿보았습니다. 이제 그 사람은 물리적 지도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즉, 내생에서도), 어떤 도움이 없이도 여행을 완전히 마칠 수 있습니다.

 

비유

 

8. 보물이 있는 산의 비유로 돌아가서, ‘불교(Buddhism)’의 다양한 버전은 다양한 지리적 위치에 있는 산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양한 산에 도달하기 위해 먼 거리를 여행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 모든 것들[다양한 산들]은 [닙바-나와는] 떨어진 외진 곳에 있으며, [그곳으로 가는] 여행도 힘듭니다.

 

  • *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산’을 목표로 하여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산’ 또는 버전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모순된 버전의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뽑아 제거하는 데 노력이 필요합니다. ‘순수한 붓다 담마를 찾아내는 것이 왜 결정적으로 중요한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 세상의 아닛짜 특성을 파악

 

9. 전문 용어로,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즉 이 세상의 세 가지 특성인 띨락카나(Tilakkhana)를 최소 수준으로 이해하면, 소따-빤나 막가/팔라(Sotāpanna magga/phala)에 도달하는데, 여기서 그 자는 이 세상에서 의미 있고 조건 없는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 * 이 개념을 볼 수 있는 정도로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할 때, 아눌로-마 냐-나(anulōma ñāna)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아누(anu)’는 ‘틸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함으로써’를 의미하고, ‘로(lo)는 ‘세상 것들에 대한 갈망’을 의미하고, ‘마(ma)’는 ‘제거’를 의미하며, 따라서, ‘아눌로-마(anulōma)’는 ‘틸락카나를 이해함으로써 세상 것들에 대한 갈망을 어느 정도 제거함’을 의미합니다.

  • * ‘아누빳사나-(anupassanā)’란 말에도 ‘아누(anu)’가 있습니다. ‘4. 이 모든 다양한 명상 기법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전 포스트에서, ‘로-바(lōbha)가 어떻게 ‘로(lo)’ + ‘바(bha)’에서 유래하는지, 즉 ‘세상 것들에 대한 갈망에 빠져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했습니다.

  • * 따라서 아닛짜(anicca)를 무상(impermanence)으로 그리고 아낫따(anatta)를 무아(no-self)로 잘못 해석하면, 그것은 엄청난 차이를 만듭니다. ‘아닛짜, 둑카, 아낫따 – 잘못된 해석’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0. 고통(괴로움, 시달림)은 사악처(아빠-야, apāya)에 만연합니다. 우리는 그 중 하나인 동물 영역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삶의 예를 사용하여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에 대해 숙고하는 한 가지 방법을 논의해 봅시다.

 

  • * 젊을 때는 열심히 일하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부모나 조부모 또는 유명한 사람들까지 노년에 여러가지 질병으로 시달리고 결국 어찌할 수 없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 * 그들은 많은 것들을 성취했을지 모르지만,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열심히 일했고, 그리고는 그 모든 것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합니다.

  • * 젊을 때는 아름다운 몸을 지닐 수도 있지만, 얼마나 오래 갈까요? 우리는 지금 그 예전 영화 배우의 나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세상에서 모든 관심(주목)을 받았던 ‘좋은 옛 시절’을 떠올리고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것에 낙담하고 우울하여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 그것이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세상에서 얻는 것은 (윤회 시간 척도로 볼 때) 짧은 시간밖에 지속되지 않고 결국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어쩔 수 없게 됩니다. 어느 순간,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고 당황하며 어쩔 줄 모릅니다.

 

각자는 자기 자신의 미래 괴로움을 만듬

 

11. 이 세상의 참된 본질을 이해할 때, 그런 슬픈 생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길(팔정도)을 따르는 사람들과 전생부터 지혜를 가진(가띠, gati)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발생/파괴 과정을 겪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존재(Beings)는 생겨났다가 죽습니다. 그러나 그 존재는 자기 자신이 만듭니다. ‘생명의 기원 ㅡ 각자는 자기 자신의 미래 생을 만든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 이해 자체가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이 ‘마음 편안함’의 더 강한 버전이 ‘아눌로-마 냐-나(anulōma ñāna)’를 얻을 때 경험하는 ‘아눌로-마 샨-티(anulōma shānthi)’입니다.

  • * ‘아눌로-마 냐-나(anulōma ñāna)를 얻기 위한 열쇠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의 덧없는 특성(fleeting nature)을 깨닫는 것입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이에 대해 논의합니다.

 

‘아눌로-마 냐-나’와 ‘삼맛따 니야-마’

 

12. ‘아눌로-마 냐-나(anulōma ñāna)’로, 고통(괴로움, 시달림)을 영구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31영역의 어느 곳에서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것[고통의 영구적 제거]은 닙바-나(Nibbāna)를 얻어야만 성취될 수 있습니다. 이 때에(아눌로-마 냐-나를 얻은 때), 그 사람은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를 느꼈으므로, ‘에땅 산땅 에땅 빠니-땅…(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즉, 자신이 느낀 해방감, 그리고 닙바-나(Nibbāna)의 가치(중요성)를 배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다음, 진정으로 성스런 팔정도를 시작하고 삼맛따 니야-마(sammatta niyāma)와 소따-빤나 팔라(Sotāpanna phala)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 * 그러므로. ‘아눌로-마 냐-나(anulōma ñāna)’를 통해 이 세상의 결실없는(실속없는) 특성을 깨닫고, 닙바-나(Nibbāna)의 가치(중요성)와 쿨링 다운, 즉, ‘삼맛따 니야-마(sammatta niyāma)’를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 * ‘아눌로마 칸띠 및 삼맛따니야-마 ㅡ 소따빤나의 전제 필수 조건’ 포스트에 더 자세한 내용이 있습니다.

 

13. 그러므로 이 세상이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임을 깨달은 후에, 닙바-나(Nibbāna)가 ‘닛짜(nicca), 수카(sukha), 앗타(attha)’임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소따-빤나(Sotāpanna)는 두 가지를 모두 이해했습니다.

 

  • *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나마 곳따, nama gotta는 제외)은 상까따(sankata), 즉 원인에 의해 생겨나 한동안 존재하다가 필연적으로 파괴되는 것입니다. 상까따(sankata)의 일어남은 빠알리어로 우다야(udaya)라고 하며, 파괴는 와야(vaya)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다야와야 냐-나(udayavaya ñāna)’는 그 과정에 대한 앎입니다.

  • * 닙바-나(Nibbāna)만 아상까따(asankata)입니다. 모든 원인을 제거하면 닙바-나(Nibbāna)에 이릅니다.

  • * 많은 사람들이 ‘우다야와야(udayavaya)’ 또는 ‘아눌로-마(anulōma)’와 같은 이런 말을 실제로 듣지 않고서도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를 얻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개념에 대해 단지 읽는 것만으로는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정한 명상 또는 숙고를 하여 틸락카나(Tilakkhana)를 보아야 합니다. 즉 (‘상카라_saṅkhāra’를 통해 형성된) 상까따(sankata)를 갈망하는 것의 결실없음(실속없음)을 보아야 합니다.

  • * 그러므로 소따-빤나(Sotāpanna)는 우다야와야(udayavaya, 때로는 udayabbaya라고도 함) 냐-나(ñāna)가 있습니다. ‘세 단계 실천’ 섹션의 ‘우다야와야 냐-나(Udayavaya Ñāna)’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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