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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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따-빤나 아누가-미’와 ‘소따-빤나’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Sotāpanna Anugami and a Sotāpanna’ 포스트

- 2017년 7월 27일 개정; 2018년 1월 15일 개정; 2018년 9월 26일 개정; 2019년 2월 13일 개정; 2020년 4월 13일 개정

 

여기서는 ‘소따-빤나’와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기 위해 힘쓰는 자’ 사이의 차이에 대해 논의합니다. 후자는 올바른 길에 있습니다(소따-빤나 아누가-미, Sotāpanna Anugāmi).

 

상가에 속하는 자

 

1. 오늘날 ‘상가(sangha)’라는 말은 빅쿠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상가(sangha)는 ‘산(san)’ + ‘가(gha)’로 합성된 말이며, ‘산(san)’를 제거했거나 제거하는 길에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 정의에 따르면, 빅쿠(bhikkhu)가 되어야만 상가에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상가를 칭송하는 말에서, 그들을 ‘앗타 뿌리사 뿍갈라-(attha purisa puggalā)’라고 합니다. ‘붓다와 담마와 상가의 지고한 특성’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여기서, ‘앗타(attha)는 ‘여덟(8)’이고, ‘뿌리사(purisa)’는 ‘남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덕을 지닌 자’를 의미하며, ‘뿍갈라-(puggalā)’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상가에 속하는 8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8부류는 누구일까요?

 

  • * 성스런 길을 시작한 4부류와 닙바-나의 4단계 조건을 충족한 4부류가 있으며,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 소따-빤나(Sōtapanna), 사까다-가-미 아누가-미(Sakadāgāmi Anugāmi),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아나-가-미 아누가-미(Anāgāmi Anugāmi), 아나-가-미(Anāgāmi), 아라한뜨 아누가-미(Arahant Anugāmi), 및 아라한뜨(Arahant)입니다. 그 중 4부류는 아누가-미 단계(Anugāmi stage) (주어진 단계를 향해 진행)에 있고, 나머지 4부류는 각각의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 * 깜마(kamma)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의 특별한 경우는 (주어진 단계를 향해 노력하는) 성스런 깜마-(Noble kammā)에서 일어납니다. 일단 ‘해야할 일’이 충족되면, 그 위빠-까(vipāka)가 순간적으로(수십억분의 1초 내에) 바로 다음 찟따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예를 들어,  어떤 자가 소따-빤나 막가 찟따(Sotāpanna magga citta)에 들어가면, 바로 다음 찟따(citta)에서 소따-빤나 팔라(Sotāpanna phala)를 받습니다. 따라서, 그 자는 두 개의 연속하는 생각(마음) 순간에 소따-빤나(Sotāpanna)가 됩니다.

  • * 그러나, 어떤 자가 띨락카나(Tilakkhana), 즉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파악하기 시작하면,  그 자는 소따-빤나 아누가-미(Sotāpanna Anugāmi,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는 길에 있는 자)가 되어 아빠-야(apāya, 사악처)에 떨어지는 것에서 벗어납니다. 후대 주석에서는 그들을 ‘쭐라 소따-빤나(Chula Sotāpanna, 작은 소따-빤나)’라고도 합니다.

 

아비담마의 설명

 

2.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의 찟따 위티(citta vithi, 인식과정)는 ‘Citta Vithi – Processing of Sense Inputs’ 포스트의 끝부분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인식과정: B B B “BC BU MD P U A G Pa Fr Fr” B B B

 

  • * 소따-빤나 아누가-미(Sotāpanna Anugāmi)는 ‘계보의 전환(G, 고뜨라부)’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 앞 단계인 P, U, A에는 점차적으로 도달됩니다. 일단 (띨락카나에 대한) 이해의 레벨이 완료되면, 계보가 전환되고(G), 로꼿따라 깜마(출세간 깜마)를 완성하고(Pa), 즉시 팔라(phala)를 받습니다(Fr).

  • * 엄밀한 의미에서, 소따-빤나 아누가-미(Sotāpanna Anugāmi)보다는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Sotāpanna Magga Anugāmi, 막가 찟따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자)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 * 8부류의 성자(아리야, Ariya)는 ‘빠타마 뿍갈라 숫따( Paṭhama Puggala Sutta, AN 8.59 )’와 ‘뿍갈라 숫따( Puggala Sutta, AN 9.9 )에 열거되어 있습니다. 두 숫따(sutta) 모두에서, 소따-빤나 아누가-미(Sotāpanna Anugāmi)는 “소따-빳띠 팔라 삿치끼리야-야 빠띠빤노-(sotāpatti phala sacchikiriyāya paṭipannō)”입니다. 아나-가-미(Anāgāmi)가 되는 길에 있는 자는 “아나-가-미 팔라 삿치끼리야-야 빠띠빤노-(anāgāmi phala sacchikiriyāya paṭipannō)” 등입니다. 두번째 숫따에서, ‘범부’는 ‘뿌툿자노- (puthujjanō)’입니다.

 

8부류의 성자

 

3. 따라서, ‘앗타 뿌리사 뿍갈라-(attha purisa puggalā)’는 #1에 열거된 8부류의 아리야(Ariya, 성자)로 구성됩니다. 그들은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 소따-빤나(Sōtapanna), 사까다-가-미 아누가-미(Sakadāgāmi Anugāmi),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아나-가-미 아누가-미(Anāgāmi Anugāmi), 아나-가-미(Anāgāmi), 아라한뜨 아누가-미(Arahant Anugāmi), 및 아라한뜨(Arahant)입니다.

 

 

막가 팔라의 단계

 

4. 소따-빤나(Sotāpanna)는 닙바-나(Nibbāna)를 본 사람인데, 완전히 본 것이 아니라 엿본 사람입니다. ‘31영역 이 세상’의 실제 상황에 대한 아윗자-(avijjā, 무지)를 제거할 때, 소따-빤나가 됩니다. 그 이해로, 그 마음은 사악처에 태어나게 할 수 있는 부도덕한 행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집니다. 그 뿐만 아니라 과거에 행한 그런 강한 부도덕한 행위에서 비롯되는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붙잡지 않습니다. 따라서, 소따-빤나는 아빠-야(apāya, 사악처)에 더 이상 태어날 수 없습니다.

 

다른 세 단계는 유사한 [태어남의] ‘분계선(demarcation threshold)’을  갖습니다.

 

  • * 사까다-가-미(Sakadāgāmi)는 인간계나 ‘더 낮은 4영역(사악처)’에 더 이상 태어날 수 없습니다. 사까다-가-미 성자는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 속하는 데와 세계(deva world, 천신 세계)에는 여전히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데와(천신)들은 육체적 불편과 질병으로 이어지는 ‘살과 피로 된 몸’을 가지지 않습니다. 천신계(천상)에 있는 존재(유정체)는 늙거나 병들지 않는 미세한 몸만 지니고 있습니다.

  • * 아나-가-미(Anāgāmi)는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 즉 ‘11가지 가장 낮은 영역’의 어떤 곳에도 태어나고자 하는 욕구를 극복했습니다. 아나-가-미 성자는 까-마 라-가(kāma rāga,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욕구)나 빠띠가(paṭigha, 미워함)가 없습니다.

  • * 아라한뜨(Arahant)는 31영역 어디에도 태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없으므로, 이 세상에 다시는 태어날 수 없습니다. 아라한 성자는 완전한 해방(벗어남)인 ‘완전한 닙바-나’에 도달했습니다.

 

그것은 단계별 과정

 

5. 부처님의 진정한 메시지를 먼저 들어야만 소따-빤나 막가(Sotāpanna magga) 단계를 얻는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간적 팔정도를 넘어설 필요가 있습니다. ‘붓다 담마에서 독특한 것은 무엇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특히,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는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또는 ‘31영역 이 세상의 진정한 본성’에 대해 들었습니다. 물론 그 개념들은 기본 개념을 파악한 성자로부터 나온 것이어야 합니다.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는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까(Sōtapanna Magga Anugāmika) 또는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Sōtapanna Magga Anugāmi)라고도 합니다.

  • * 그렇기 때문에 ‘깔라나 밋따(kalana mitta)’ 또는 ‘깔야-나 미뜨라(Kalyāna Mitra)’ (기본적으로 ‘성스런 친구’, 즉 아리야, Ariya)와의 연관성이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 전제 조건입니다. ‘Four Conditions for Attaining Sōtapanna Magga/Phal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일단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가 되면, 그 자는 성자(‘앗타 뿌리사 뿍갈라, attha purisa puggala’의 한 유형)이고, 아빠-야(apāya, 사악처)에 태어나는 것에서 벗어납니다. ‘Sōtapanna Anugāmi – No More Births in the Apāyās’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와 ‘소따-빤나’의 차이

 

6.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Sotāpanna Magga Anugāmi)와 소따-빤나(Sotāpanna) 사이의 이 분계(경계)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 * 진귀한 보물이 산꼭대기에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러나 그 산이 어디에 있는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대체로 붓다 담마 상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올바른 버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다양한 버전이 많이 있습니다.

  • * 붓다께서 첫 설법에서, “나의 담마는 이전에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따라서, 닙바-나(Nibbāna)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지를 보여줄 부처님 또는 부처님의 진정한 제자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필수적이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입니다.

  • * 누군가 보물이 있는 올바른 산으로 가는 방향을 잡았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 다음, 그 사람은 어느 나라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나라의 어느 위치에 있는 산인지 압니다. 이 사람은 소따-빤나가 되는 길에 있는 자, 즉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Sotāpanna Magga Anugāmi)’와 같습니다. 그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확히 알며 상세한 지도를 가집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것을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진정한 제자로부터 얻습니다. 부처님의 진정한 제자는 정상(아라한뜨)까지는 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적어도 산을 본 자(소따-빤나)입니다.

  • * 이제 그 사람은 그 나라와 그 산이 있는 지역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가는 길에 ‘친구(아리야, 성자)’가 말한 랜드 마크(landmark, 표지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Sotāpanna magga Anugāmi)는 새로 배운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등의 개념을 숙고하는 데 시간을 보냅니다.

  • * 따라서 확신을 가지고, 그 사람은 산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어느 순간부터 산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 시점에서 그 사람은 ‘경계를 넘어’ 소따-빤나(Sotāpanna)가 됩니다. 그 사람은 처음으로 닙바-나(Nibbāna)를 엿보았습니다. 이제 그 사람은 물리적 지도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즉, 내생에서도), 어떤 도움이 없이도 여행을 완전히 마칠 수 있습니다.

 

비유

 

7. 보물이 있는 산의 비유로 돌아가서, ‘불교(Buddhism)’의 다양한 버전은 전 세계에 있는 다양한 지리적 위치에 있는 산을 나타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이 다양한 산에 도달하기 위해 먼 거리를 여행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다양한 산들]은 [닙바-나와는] 떨어진 외진 곳에 있으며, [그곳으로 가는] 여행도 힘듭니다.

 

  • *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산’을 목표로 하여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산’ 또는 버전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모순된 버전의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뽑아 제거하는 데 노력이 좀 필요합니다. ‘Why is it Critical to Find the Pure Buddha Dhamm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 세상의 아닛짜 특성을 파악

 

8. 기술적으로 말하면,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즉 이 세상의 세 가지 특성인 띨락카나(Tilakkhana)를 최소 수준으로 이해하면, 소따-빤나 막가/팔라(Sotāpanna magga/phala)에 도달하는데, 여기서 그 자는 이 세상에서 의미 있고 조건 없는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 * 이 개념을 볼 수 있는 정도로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할 때, 아눌로-마 냐-나(anulōma ñāna)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아누(anu)’는 ‘틸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함으로써’를 의미하고, ‘로(lo)는 ‘세상 것들에 대한 갈망’을 의미하고, ‘마(ma)’는 ‘제거’를 의미하며, 따라서, ‘아눌로-마(anulōma)’는 ‘틸락카나를 이해함으로써 세상 것들에 대한 갈망을 어느 정도 제거함’을 의미합니다.

  • * ‘아누빳사나-(anupassanā)’란 말에도 ‘아누(anu)’가 있습니다. ‘What do all these Different Meditation Techniques Mean?’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전 포스트에서, ‘로-바(lōbha)가 어떻게 ‘로(lo)’ + ‘바(bha)’에서 유래하는지, 즉 ‘세상 것들에 대한 갈망에 빠져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했습니다.

  • * 따라서 아닛짜(anicca)를 무상(impermanence)으로 그리고 아낫따(anatta)를 무아(no-self)로 잘못 해석하면, 그것은 엄청난 차이를 만듭니다. ‘아닛짜, 둑카, 아낫따 – 잘못된 해석’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9. 고통(괴로움, 시달림)은 사악처(아빠-야, apāya)에서 만연합니다. 우리는 그 중 하나인 동물 영역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삶 자체의 예를 사용하여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에 대해 숙고하는 한 가지 방법을 논의해 봅시다.

 

  • * 젊을 때는 열심히 일하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부모나 조부모 또는 유명한 사람들까지 노년에 여러가지 질병으로 시달리고 결국 어찌할 수 없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 * 그들은 많은 것들을 성취했을지 모르지만,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열심히 일했고, 그리고는 그 모든 것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합니다.

  • * 젊을 때는 아름다운 몸을 지닐 수도 있지만, 얼마나 오래 갈까요? 우리는 지금 그 예전 영화 배우의 나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세상에서 모든 관심(주목)을 받았던 ‘좋은 옛 시절’을 떠올리고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것에 낙담하고 우울하여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 그것이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세상에서 얻는 것은 (윤회 시간 척도로 볼 때) 짧은 시간밖에 지속되지 않고 결국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어쩔 수 없게 됩니다. 어느 순간,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고 당황하며 어쩔 줄 모릅니다.

 

각자는 자기 자신의 미래 괴로움을 만듬

 

10.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할 때, 그런 슬픈 생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길(팔정도)을 따르는 사람들과 전생부터 지혜를 가진(가띠, gati)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발생/파괴 과정을 겪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존재(Beings)는 생겨났다가 죽습니다. 그러나 그 존재는 자기 자신이 만듭니다. ‘Origin of Life – One Creates One’s Own Future Lives’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 이해 자체가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이 ‘마음 편안함’의 더 강한 버전이 ‘아눌로-마 냐-나(anulōma ñāna)’를 얻을 때 경험하는 ‘아눌로-마 샨-티(anulōma shānthi)’입니다.

  • * ‘아눌로-마 냐-나(anulōma ñāna)를 얻기 위한 열쇠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의 덧없는 특성(fleeting nature)을 깨닫는 것입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이에 대해 논의합니다.

 

‘아눌로-마 냐-나’와 ‘삼맛따 니야-마’

 

11. ‘아눌로-마 냐-나(anulōma ñāna)’로, 고통(괴로움, 시달림)을 영구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31영역의 어느 곳에서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것[고통의 영구적 제거]은 닙바-나(Nibbāna)를 얻어야만 성취될 수 있습니다. 이 때에(아눌로-마 냐-나를 얻은 때), 그 사람은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를 느꼈으므로, ‘에땅 산땅 에땅 빠니-땅…(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자신이 느낀 해방감, 그리고 닙바-나(Nibbāna)의 가치(중요성)를 배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다음, 진정으로 성스런 팔정도를 시작하고 삼맛따 니야-마(sammatta niyāma)와 소따-빤나 팔라(Sotāpanna phala)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 * 그러므로. ‘아눌로-마 냐-나(anulōma ñāna)’를 통해 이 세상의 결실없는(실속없는) 특성을 깨닫고, 닙바-나(Nibbāna)의 가치(중요성)와 쿨링 다운, 즉, ‘삼맛따 니야-마(sammatta niyāma)’를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12. 그러므로 이 세상이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임을 깨달은 후에, 닙바-나(Nibbāna)가 ‘닛짜(nicca), 수카(sukha), 앗타(attha)’임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소따-빤나(Sotāpanna)는 두 가지를 모두 이해했습니다.

 

  • *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나마 곳따, nama gotta는 제외)은 상까따(sankata), 즉 원인에 의해 생겨나 한동안 존재하다가 필연적으로 파괴되는 것입니다. 상까따(sankata)의 일어남은 빠알리어로 우다야(udaya)라고 하며, 파괴는 와야(vaya)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다야와야 냐-나(udayavaya ñāna)’는 그 과정에 대한 앎입니다.

  • * 닙바-나(Nibbāna)만 아상가따(asankata)입니다. 모든 원인을 제거하면 닙바-나(Nibbāna)에 이릅니다.

  • * 많은 사람들이 ‘우다야와야(udayavaya)’ 또는 ‘아눌로-마(anulōma)’와 같은 이런 말을 실제로 듣지 않고서도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를 얻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개념에 대해 단지 읽는 것만으로는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정한 명상 또는 숙고를 하여 틸락카나(Tilakkhana)를 보아야 합니다. 즉 (상카라, saṅkhāra를 통해 형성된) 상까따(sankata)를 갈망하는 것의 결실없음(실속없음)을 보아야 합니다.

  • * 그러므로 소따-빤나(Sotāpanna)는 우다야와야(udayavaya, 때로는 udayabbaya라고도 함) 냐-나(ñāna)가 있습니다. ‘Udayavaya Ñāna’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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