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google":["PT Serif","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Nanum Barun Gothic"]}

 

[4] 이 모든 다양한 명상 기법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원문: Bhāvanā (Meditation) 섹션의 ‘4. What do all these Different Meditation Techniques Mean?’ 포스트

- 2020년 4월 11일 개정; 2022년 9월 4일 개정

 

이 섹션의 상위 10개 포스트는 불교 명상의 근본(기본) 사항을 설명합니다. 이 섹션의 나머지 포스트에서는 명상 주제에 대해 논의합니다. 그것들은 해결되지 않은 의문을 명확하게 하고 사마-디(samādhi, 삼매)를 얻는 데 도움이 됩니다. 처음 11개의 포스트는 적어도 초기에는 그 순서대로 따라야 합니다.

 

1.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탐함(탐욕), 미워함(증오), 미혹함(무지)의 마음을 정화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마음이 정화됨에 따라 처음부터 다양한 수준에서 경험될 수 있는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를 얻습니다. 사람들이 두어 달 동안 이 프로그램을 ‘고수’할 수 있다면, 되돌아보고 자신의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더 평화롭고 ‘열 내린(cooled down)’ 고요한(평온한)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 * 마음은 이 세상(31 영역)에 있는 것들이 자신의 만족대로 유지될 수 있다는 오해, 즉 닛짜(nicca)의 인식으로 이 세상 것에 들러붙어 있기 때문에 불순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보편적인 마음 가짐(사고 방식)은 행복(수카, sukha)이 [이 세상의] 어떤 수단을 사용하여 얻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일단 얻어지면 [그대로] 유지할 수 있고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들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앗따, atta)는 것입니다.

  • * 닛짜(nicca), 수카(sukha), 앗따(atta)라는 이 세 가지 오해는 우리를 31영역의 ‘이 세상’, 즉 끝없는 재탄생 과정(윤회)에 묶어 두는 세 가지 범인(원인)입니다. 붓다께서는 보여주신 것은 ‘이 세상’의 실제 실상은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라는 세 가지 특성으로 묘사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의 만족대로 세상 것을 유지할 수 없고(아닛짜, anicca), 그래서 어쩔 줄 모르게 괴롭게 되고(둑카, dukkha), 따라서 우리는 통제할 수 없고 동물 영역과 같은 나쁜 영역에 태어날 때 어찌할 수 없게 됩니다(아낫따, anatta).

  • * 더 자세한 내용은 ‘틸락카나 ㅡ 영어 법문’의 첫 번째 법문에 있습니다.

 

2.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 않는게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배 고프고 집이 없으면 마음이 평화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모든 세상 것의 성취가 일시적(한시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큰 재앙없이 이 생을 살더라도 우리는 죽을 때 모든 것을 남겨 두고 떠나야 합니다.

 

  • * 사람들은 [세상/세상것에 대한] 닛짜(nicca), 수카(sukha), 앗따(atta)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탐함(탐욕), 미워함(증오), 미혹함(무지)으로 행하고 마음이 오염됩니다. 그러면 그런 행위의 나쁜 결과를 분명하게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 부도덕한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세상것의] 실상(특성)(즉, 아닛짜, 둑카, 아낫따)를 진정으로 이해하면, 그런 부도덕한 행위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 * 그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좋은 것(선)’을 받아들이고 ‘나쁜 것(불선)’을 거부하도록 자신의 마음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나빠-나사띠_Ānapānasati’ 명상으로) 습관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은 명상을 위한 논리적 순서입니다.

 

3. 먼저, 무엇이 좋고 나쁜지, 그리고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의 결과를 분류/정리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비전(vision)인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가 성스런 팔정도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입니다.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에 도달하려면,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을 가려내야 합니다.

 

  • * 위빳사나-(vipassanā, vi + passa)는 ‘명확하게 보고’ 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위(vi)’는 ‘특별한(보통 이상의)’을 의미하고 ‘빳사(passa)’는 ‘보다’를 의미합니다. 위닷사나-(Vidassanā, vi + dassana)도 같은 의미이며, 선명한 시각으로 가려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닷사나(dassana)는 비전(시각)을 의미합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이해하고 비전(시각)을 얻기 위해서는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합니다.

  • * 위빳사나-(vipassanā) 또는 위닷사나-(vidassanā), 즉 통찰 명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올바른’ 비전(시각)이 없이는 평생동안 노력해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참된 본질(특성), 즉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와, 사성제, 그리고 성스런 팔정도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을 [단지]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이 통찰 명상을 통해 엄청난 양의 오염물(번뇌)이 마음에서 제거됩니다. 핵심은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본질’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먼저 필요한 종류의 명상입니다. 사람들은 아래에서 논의된 어떤 다른 유형의 명상을 하지 않고도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붓다께서는 한 때 손가락 끝에 약간의 흙을 올리신 다음, 빅쿠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소-따빤나(Sōtapanna)가 [앞으로] 제거해야 할 오염물(번뇌)의 양을 이 [손가락 끝에 있는] 흙의 양이라고 한다면, 보통 사람(범부 중생)이 제거해야 할 번뇌의 양은 대지(지구) 전체에 있는 흙의 양에 상당한다”.

 

  • * 그것은 잘못 적었거나 과장한 것이 아닙니다. 소-따빤나(Sōtapanna)는 최대 7번의 바와(bhava) 이내에 닙바-나(Nibbāna)에 도달하게 됩니다. 보통 사람(범부 중생)은 앞으로 수조 년 동안 재탄생 과정에 갇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셀 수 없는 엄청난 햇수 동안 재탄생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무한대 ㅡ 얼마나 클/많을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많은 사람들이 “나는 내 삶을 좋아합니다. 내가 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겠어요?”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미래에 인간으로 재탄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생에 무슨 행위를 했는지 전혀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가 [현생에서] 완벽하게 도덕적인 삶을 살더라도 좋은 재탄생을 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통찰 명상을 통해 깜마(kamma, 업), 재탄생 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5. 통찰 명상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법문을 듣고 담마 개념에 관한 글을 읽는 것이 올바른 정보를 얻는 두 가지 주요 형태입니다. 그러면, 앉아서 그 개념을 숙고하는 명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용한 시간에 담마 개념에 관한 글을 읽는 것 자체가 명상입니다. ‘아닛짜 산냐를 계발하는 방법-1’ 포스트와 후속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위빳사나-(vipassanā) 또는 위닷사나-(vidassanā) 바-와나-(bhāvanā), 즉 통찰 명상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가 이루어지면,  다음 두 가지 주요(핵심) 단계인, 멧따- 바-와나-(mettā bhāvanā) 및 다양한 형태의 아누빳사나- 바-와나-(anupassanā bhāvanā)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 * 31영역으로 된 이 광대 세계(the wider world)에 있는 것들의 실상을 이해하면, 숨겨져 있는 고통/괴로움의 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이해로, 우리가 다른 존재들에게 빚진 오래된 것을 갚는 탁월한 방법인 아리야 멧따- 바-와나-(Ariya mettā bhāvanā)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을 정화하는 두 번째 방법이기도 합니다.

  • *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숙고하는 통찰 명상만으로도 대부분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개념이 전달될 수 있기를 필자는 바랍니다. 그러나 다른 두 가지 유형의 바-와나-(bhāvanā), 즉 멧따- 바-와나-(mettā bhāvanā) 및 아-나빠-나사띠(Ānapānasati)를 행하면 통찰 명상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6. 마음을 정화하는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아누빳사나-(anupassanā)를 통한 것입니다. 아누빳사나-(anupassanā)는 ‘배운 원리에 따라 버림’을 의미합니다(‘아누_anu’는 ‘~에 따라’를 의미하고 ‘빳사나_passana’는 ‘보다(알다)’를 의미하며, ‘아누_anu’의 또 다른 의미는 자신의 오염을 볼 수 있는 ‘오염/번뇌’임). 아누빳사나-(anupassanā)는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습니다. 

 

  • *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apānasati bhāvanā)는 기초입니다. 위빳사나-(위닷사나-)로 일단 ‘아-나(āna)’와 ‘아-빠-나(āpāna)’를 분류하여 가려지면, 항상 아-나빠-나사띠(Ānapānasati)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하려고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마음 챙김하고) 그것이 ‘올바른 행’인지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아닛짜-누빳사나-(aniccānupassanā), 둑카-누빳사나-(dukkhānupassanā), 및 아낫따-누빳사나-(anattānupassanā)와 4가지 더 관련된 아누빳사나-(anupassanā)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 * (‘까야-누빳사나-’, ‘웨다나-누빳사나-’, ‘찟따-누빳사나-’, 및 ‘담마-누빳사나-’로 된) 사띠빳타-나 바-와나-(Satipaṭṭhāna bhāvanā)는 지금까지 논의한 모든 바-와나-(bhāvanā) 기법을 포함합니다. 그것은 스트레스를 경감/해소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결정판입니다. 그것으로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아-나빠-나사띠(Ānapānasati)(호흡 명상이 아님)는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그것은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하는 첫 걸음(단계)입니다. ‘방 안의 코끼리’ 섹션의 ‘세 번째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 3 – Ānāpānasati)’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7. 따라서 통찰 명상인, 아-나빠-나사띠(Ānapānasati) 및 멧따- 바-와나-(mettā bhāvanā)를 하는 것만으로 수행을 더 간단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더 나은 마음 상태’를 가지거나 소-따빤나(Sōtapanna)까지도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입니다.

 

8. 요즘 테라와다(Theravada) 불교에서도 가르치는 명상 기법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제가 있는] 그것들은 호흡 명상 또는 찬팅(chanting, 염송)입니다. 호흡만 지켜보면서 어떻게 번뇌를 제거할 수 있을까요? 비록 마음을 고요하게 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혜택(이익)은 없습니다. 호흡을 지켜보는 것으로는 마음(의 뿌리)에 있는 번뇌(오염)을 줄일 수 없습니다.

 

  • * 또 다른 일반적인 기법은 무상(impermanence)을 숙고하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 몸은 무상하고, 쇠퇴하고(늙고) 죽게 되어 있다”는 말을 계속 반복합니다. 20년, 30년 동안이라도 그렇게 해서 진전을 이룬 사람이 있을까요? 붓다께서 우리에게 그런 것을 말씀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종교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무상(impermanence)은 삶의 사실임을 압니다.

  • * 하지만 또 다른 일반적인 찬팅(chanting, 염송)은 몸의 더러움(불결함)을 숙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붓다께서 “빠띠꿀-라 마나시까-라 바-와나-(patikūla manasikāra bhāvanā)”에서 의미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사람은 우리 몸이 쇠퇴하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숫따(경) 해석’ 섹션의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Maha Satipaṭṭhāna Sutta)’에 있는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google":["PT Serif"],"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google":["PT Serif"],"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Nanum Barun Gothic"]}
{"google":["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