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google":["PT Serif","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Nanum Barun Gothic"]}

 

소따-빳띠 앙가 - 소따-빤나의 4가지 특질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Sotapatti Anga – The Four Qualities of a Sotāpanna’ 포스트

- 2018년 7월 8일 작성 

 

1. 소따-빳띠 앙가(Sotāpatti anga), 즉 소따-빤나(Sotāpanna)의 4가지 특질은 상윳따 니까-야(Samyutta Nikāya)의 ‘소따-빳띠 상윳따(Sotāpatti Saṃyutta)’와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 Nikāya)에 있는 많은 숫따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몇가지 예로, 브라흐마짜리요가다 숫따( ‘Brahmacariyogadha Sutta, SN 55.2’ ), 빠타마사-리뿟따 숫따( ‘Paṭhamasāriputta Sutta, SN 55. 4’ ), 웰루드와-레이야 숫따( ‘Veḷudvāreyya Sutta, SN 55.7’ ), 빠타마긴자까-와사타( ‘Paṭhamagiñjakāvasatha Sutta, SN 55. 8’ ), 난디야삭까 숫따( ‘Nandiyasakka Sutta, SN 55.40’ ), 기히 숫따( ‘Gihi Sutta, AN 5.179’ )가 있습니다.

 

  • * 필자는 소따-빤나(Sotāpanna)의 이 4가지 특질이 현재 문헌에서 별로 다루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2. 소따-빤나(Sotāpanna), 즉 소따-빤나 팔라(Sōtapanna phala)를 얻은 자의 4가지 특질은 소따-빤나 단계를 얻기 위해 충족되어야 하는 4가지 조건과 혼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 * 그 4가지 조건은 ‘소따-빤나 막가/팔라를 얻기 위한 4가지 조건’ 포스트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 * 소따-빤나 단계를 얻기 위한 그 4가지 조건은 때때로 소따-빳띠 앙가(Sotāpatti anga)라고도 합니다. 예를 들어, 두띠야사-뿟따 숫따( ‘Dutiyasāriputta Sutta, SN 55.5’ )를 참조하세요. 한편, 소따-빤나의 4가지 특질은 난디야삭까 숫따( ‘Nandiyasakka Sutta, SN 55.40’ )에는 소따-빳띠 앙가(Sotāpatti anga)로 열거되어 있기도 합니다. 

  • * 그러므로, 4가지 조건을 지칭하는지 아니면 4가지 특질을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는 소따-빳띠 앙가(Sōtāpatti anga)라는 말이 사용되는 문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3. 소따-빤나의 4가지 특질은 브라흐마짜리요가다 숫따( ‘Brahmacariyogadha Sutta, SN 55.2’ )에 간결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붓다께서는 다음과 같이 물으십니다.

“짜뚜-히, 빅카웨, 담메히 사만나-가또 아리야사-와꼬 소따-빤노 호띠 아위니빠-따담모 니야또 삼보디빠라-야노. 까따메히 짜뚜-히?”

(“Catūhi, bhikkhave, dhammehi samannāgato ariyasāvako sotāpanno hoti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ṇo. Katamehi catūhi?”)

 

번역: “빅쿠들이여, 아리야사-와까 소따-빤나(ariyasāvaka Sotāpanna)는 아빠-야(apāya)에서 벗어났으며, 4가지 특질이 있다. 4가지는 무엇인가?”

 

그 다음 붓다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이다, 빅카웨, 아리야사-와꼬 붓떼 아웩짭빠사-데나 사만나-가또 호띠: ‘이띠삐, 소 바가와- 아라항 삼마-삼붓도 윗자-짜라나삼마빤노 수가또 로까위두- 아눗따로 뿌리사담마사-라티 삿타- 데와마눗사-낭 붓도 바가와-’띠. 담메 아웩짭빠사-데나 사만나-가또 호띠… 뻬 … 상게 아웩짭빠사-데나 사만나-가또 호띠… 뻬 … 아리야깐떼히 실-레히 사만나-가또 호띠 아칸데히 … 뻬 … 사마-디상왓따니께히. 이메히 꼬, 빅카웨, 짜뚜-히 담메히 사만나-가또 아리야사-와꼬 소따-빤노 호띠 아위니빠-따담모 니야또 삼보디빠라-야노”띠.

(Then the Buddha gives the answer: “Idha, bhikkhave, ariyasāvako budd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hoti: ‘itipi s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t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hoti… pe … saṅg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hoti… pe … ariyakantehi sīlehi samannāgato hoti akhaṇḍehi … pe … samādhisaṃvattanikehi. Imehi kho, bhikkhave, catūhi dhammehi samannāgato ariyasāvako sotāpanno hoti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ṇo”ti.)

 

번역: “소따-빤나(Sotāpanna)는 이 세상 것들에 대한 뿌리깊은 갈망을 잃는 것(아웩짜, avecca)에서 오는, 붓다, 담마, 상가에 대한 숭배/믿음(빠사-다, pasāda)을 지닌다. 따라서 그는 사악처로 향하는 행위(깜마, kamma)를 하게 [계를] 깨뜨릴 수 없는 아리야깐-따 실-라(ariyakānta sīla, 성자들의 도덕적 행위)에 확립되어 있다.  이것들이 4가지 특성이며, 사악처(아빠-야)에서 벗어난 소따-빤나(Sotāpanna)의 특성을 정의한다.”

 

  • * 먼저, ‘붓다와 담마와 상가의 지고한 덕성’이 이 숫따에 열거되어 있다는 것을 주목하세요. 위에서는 붓다의 9가지 덕성(특성)만 붉은 글씨로 인용되어 있습니다. 전체 숫따에서는, 담마와 상가의 덕성(특성)도 완전히 열거되어 있습니다. 

 

4. 소따-빤나(Sotāpanna)에 대한 이 묘사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2가지 핵심 용어인 아웩짭빠사-다(aveccappasāda)아리야깐-따 실-라(ariyakānta sīla)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 * 필자는 영어 문헌에서 아웩짭빠사-다(aveccappasāda)가 논의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언급된 곳에서, 그것은 ‘확고한 신뢰’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확고한 신뢰의 이유가 그 말 그 자체에 숨겨져 있습니다. 이것을 ‘빠다 니룩띠(pada nirukti) 라고 하는데, 즉 그 말의 의미가 그 말 자체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숨겨진 의미를 논의해 봅시다.

 

5. 아직 아리야(Ariya)가 아닌 사람은 감각적 즐거움에 높은 가치를 둡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더 많은 감각적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부도덕한 행위를 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도덕적인 사람들 조차도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않고 도덕적 수단으로 얻을 수 있는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는 것에 빠져 있습니다.

 

  • * 그러나 ‘도덕적 행위’는 [사람에게] 보장되지 않습니다. 가장 도덕적인 사람조차도 충분한 유인 또는 유혹 조건에서는 사악처로 가는 [나쁜] 행위를 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강한 감각 입력(유혹)이 있을 때, 띨락카나(특히 아닛짜 특성)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어느 시점에서(이 생이 아니라면 내 생에서) 사악처로 가는 행위를 하게 될 것입니다.

  • * 이 때문에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윤회 여정, 즉 괴로움(고통, 시달림)으로 가득한 재탄생 과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 *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믿기조차 힘듭니다. 그들은 자신의 도덕성이 ‘깨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그런 ‘도덕적인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기에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하는 극악한 행위를 저지른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 ‘깨질 수 없는 도덕성’은 오직 이 감각적 즐거움의 결실없음(실속없음)/위험함을 보아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 * 이것이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독특함입니다. (소따-빤나 단계에서) 사악처로 가는 행위를 절대로 저지르지 않고, 아라한뜨 단계에서는 단 하나의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도 행하지 않는 마음이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6. 더구나 붓다께서 우리에게 설명이 없다면, 31영역 이 넓은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괴로움(고통, 시달림)을 우리 스스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 사슴이 호랑이에게 산 채로 잡아먹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는(그리고 즐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슴에게는 그 경험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입을 찌르는 갈고리에 매달려 숨도 쉴 수 없는 물고기가 느끼는 고통이 얼마나 클까요?

  • * 문제는 우리 마음은 동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존재(유정체)가 아니라고 생각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유정체)는 우리가 하는 인식(지각)과 다른 많은 정신적 특성 뿐만 아니라 고통을 경험합니다.

  • * 아비담마 용어에서, 느낌(웨다나, vedana)과 지각(산냐-, saññā)은 모든 유정체의 모든 마음(생각)과 함께 일어나는 보편 정신요소(쩨따시까, cetasika)입니다.

  • * 고통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면, 사람들에게서도 너무나 많은 고통(괴로움, 시달림)을 볼 수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31 영역이라는 더 넓은 세계에서 겪는 고통의 많은 부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동물(축생) 영역 외에 다른 3가지 가장 낮은 영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7. 그러나 그런 고통의 이유(또는 원인)는 재탄생 과정을 필요로 하는 깜마(kamma)의 법칙을 조사(그리고 확신)하지 않고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 * 이 때문에 먼저 31영역 이 세상에 대한 10가지 유형의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 잘못된 견해)를 없애지 않고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더 깊은 면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 * 10가지 유형의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제거하지 않은 자는 가장 높은 레벨에서 아윗자-(avijjā)를 지내게 되는데, 그것을 모-하(mōha)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저명한 과학자조차도 모-하(mōha)를 지닐 수 있습니다. 그것은 ‘책으로 아는 지식’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것(모-하)을 제거하면, 아윗자-(avijjā) 레벨로 내려갑니다. 로-바, 도-사, 모-하’ 대 ‘라-가, 빠띠가, 아윗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8. 10가지 유형의 밋차- 딧티(micchā ditthi)를 제거하고 나면, 고통의 진짜 원인은 잇짜-(iccā, 감각적 즐거움을 좋아함)로 인해 일어나는 땅하-(taṇhā, 들러붙음)라는 것을 보기(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땅하-(taṇhā)는 잇짜-(iccā, 갈망)에서 유래되었습니다.

 

  • * 다시 말하지만, 이것이 붓다 담마의 독특함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감각적 즐거움이 없는 ‘행복한 존재’를 상상할 수 없지만, 아리야-(Ariya-, 성자)는  그 반대로, 즉 감각적 즐거움을 결실없음(실속없음)과 위험함으로 봅니다.

  • * 둑카 삿짜(dukkha sacca, 제1성스런 진리)와 띨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하는 열쇠는 숨겨진 감각적 즐거움인 고통(괴로움, 시달림)을 보는 것입니다. 가장 나쁜 종류의 고통(괴로움, 시달림)은 감각적인 즐거움을 즐기려고 부도덕한 행위를 할 때 일어납니다. 소따-빤나(Sōtapanna)가 먼저 깨닫는 것 그것입니다. 

 

9. 소따-빤나 아누가-미(Sotāpanna Anugāmi) 단계에서 진리를 깨닫기 시작하면, 다른 종류의 ‘행복’을 경험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입니다.

 

  • * 이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의 진짜 원인은 감각적 즐거움을 금욕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설명하기 어렵고 경험이 필요합니다.

  • * 그것과 함께, 부처님의 귀중함을 깨닫고, 부처님에 대해 깨지지 않는 믿음을 지니고, 부처님을 경배하게 됩니다. 이것을 부처님에 대한 아웩짭빠사-다 (aveccappasāda)라고 합니다.

 

10. 이제 우리는 아웩짭빠사-다(aveccappasāda)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아와(ava)’는 극복함을 의미하고, ‘잇짜-(iccā)’는 좋아함 또는 갈망함을 의미합니다. 이 두 낱말은 결합될 때, ‘아웩짜(avecca)’로 운이 맞춰집니다. 그리고, ‘빠사-다(pasāda)’는 경의/믿음을 의미합니다. ‘아웩짜(avecca)’와 ‘빠사-다(pasāda)’ 두 낱말이 결합되면, ‘아웩짭빠사-다(aveccappasāda)’로 운이 맞춰집니다.

 

  • * [붓다께서는] 이 세상의 고통(괴로움, 시달림)에 대해 그런 상상할 수 없는 원인을 발견하시고 (세속적 즐거움에 대한 ‘땅하-’ 또는 ‘잇짜-’를 제거함으로써)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으신 정말 예외적인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 * 세속적 즐거움에 대한 잇짜-(iccā)의 위험함을 이해함에서 오는, 부처님에 대한 이 깨질 수 없는 믿음/경의를 붓데 아웩짭빠사-다(Buddhe aveccappasāda)라고 합니다. 

 

11. 물론, 붓다께서 가르치신 담마(Dhamma)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인 ‘담메 아웩짭빠사-다(Dhamme aveccappasāda)’를 지니며, 그것은 아빠-야(apāya)에서 해방되게 했습니다.

 

  • * 더욱이, 지금까지 참되고 순수한 담마를 전해주신 아리야(Ariya)들인 상가(Saṅgha)가 없이는 부처님의 이 독특한 담마를 배울 수 없을 것입니다. 평생 ‘가짜 담마’를 배우며 보내고 부처님의 메시지를 파악하지 못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세월 동안 띠삐따까(Tipitaka)를 충실하고 바르게 전승한 상가(Saṅgha) 때문으로만 올바른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다행스럽게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 * 그 깨달음이 상가에 대한 경의/믿음인 ‘상게 아웩짭빠사-다(Sanghe aveccappasāda)'로 이어집니다.

  • 빅쿠(bhikkhu)들이 반드시 상가(Saṅgha.)에 포함되지는 않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여덟 부류의 성스런 사람(앗따 뿌리사 뿍갈라, attha purisa puggala)만이 상가에 포함됩니다.  ‘붓다와 담마와 상가의 지고한 덕성’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나 빅쿠(bhikkhu)들에게는 항상 존경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들은 붓다 사-사나(Buddha Sāsana)를 나타냅니다. 알다시피, 재가자로서 아나-가-미(Anāgāmi)라 해도 어떤 빅쿠(Bikkhu)에게도 절을 합니다.

 

12. 마지막으로, [소따-빤나 성자의] 현재 도덕적 행위는 미래 탄생에서도 영구히 깨지지 않습니다. 외부 감각 입력이 아무리 유혹적이라고 해도, [소따-빤나 성자는] 결코 ‘아빠-야로 향하는(apāyagāmi)  행위(깜마, kamma)’를 하지 않습니다.

 

  • * 소따-빤나의 이 깨질 수 없는 도덕적 행위를 ‘아리야깐-따 실라(ariyakānta sila)’라고 합니다. 깐-따(kānta, ‘ka’ + ‘anta’)는 붓다께서 거부하신 ‘과도한 감각 즐거움’과 ‘과도한 고행’이라는 두가지 극단(anta)을 제거함에 따라 얻어지는 ‘차분한 마음가짐(cooled mindset)’입니다.

  • * 아리야깐-따 실라(ariyakānta sila)는 부처님의 이 독특한 메시지를 이해한 성자(Ariya)에게만 확립되어 있습니다. 그 독특한 메시지는 31영역으로 된  이 광대한 세계에 어떻게 고통(괴로움, 시달림)이 일어나고, 어떻게 그 미래 고통이 멈춰질 수 있고, 고통이 없는 영구적인 상태(Nibbāna, 닙바-나)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13. 이것은 성스런 팔정도에서 독특한 비전, 즉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입니다. 소따-빤나(Sotāpanna)는 이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담마의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

 

  • * 따라서, 소따-빤나(Sotāpanna)가 이 세상의 실제 본질에 대한 이 ‘숨겨진 진리’를 이해할 때, 감각 즐거움에 들러붙게 될 경우의 위험함을 보기 시작합니다(그러나, 소따-빤나는 보통 정도의 감각적 즐거움에서는 멀어질 수 없고, 단지 감각 즐거움의 위험함에 대한 올바른 비전만 갖게 됩니다).

  • * 그 ‘비전(시각)의 급격한 변화’는 자동적으로 붓다, 담마, 상가에 대한 믿음과 경의를 일으키고, 그래서 [붓다, 담마, 상가에 대한] 아웩짭빠사-다(aveccappasāda)가 생깁니다.

  • * 이 때문에 붓다, 담마, 상가를 ‘삼보(Triple Gem)라 하며, 경배할 가치가 있습니다. ‘붓다와 담마와 상가의 지고한 덕성’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추후 포스트에서 이것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

{"google":["PT Serif"],"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google":["PT Serif","PT Sans"],"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Nanum Barun Gothic"]}
{"google":["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