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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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따-빤나 막가/팔라를 얻기 위한 4가지 조건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Four Conditions for Attaining Sotāpanna Magga/Phala’ 포스트

- 2016년 3월 22일 개정; 2017년 9월 22일 개정; 2019년 6월 28일 개정

 

1. 소따-빳띠팔라 숫따( ‘Sotāpattiphala Sutta, SN 55.55’ )와 두띠야 사리뿟따 숫따( ‘ Dutiya Sariputta Sutta, Samyutta Nikaya 55.5’ )를 포함하여 많은 숫따에서, 닙바-나(Nibbāna)의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 도달하기 위한 4가지 요건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짜따-로메, 빅카웨, 담마- 바-위따- 바훌리-까따- 소따-빳띠팔라삿치끼리야-야 상왓딴띠. 까따메 짯따-로? 삽뿌리사상세오, 삿담맛사와낭, 요니소마나시까-로, 담마-누담맙빠띠빳띠”.

(“Cattārome, bhikkhave, dhammā bhāvitā bahulīkatā sotāpattiphalasacchikiriyāya saṃvattanti. Katame cattāro? Sappurisasaṃsevo, saddhammassavanaṃ, yonisomanasikāro, dhammānudhammappaṭipatti”.)

 

  • * 간혹 ‘깔야나 미뜨라(Kalyana Mitra)’라고 하는 삽뿌리사(sappurisa)와 교제함(‘삽뿌리사, sappurisa’는 ‘sath + purisa’로 합성된 말이며, ‘뿌리사(purisa)’는 성스런 친구, 즉 성자를 의미함).

  • * 법문을 들음(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경전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려면 법문을 듣는 것이 필요함. 아래 #3 참조). 

  • *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로 행함(아닛짜, 둑카, 아낫따 및 ‘빠띳짜 사뭅빠-다’를 기본으로 생각하면서 행함). 

  • * 담마누담마 빠띠빠다-(Dhammanudhamma patipadā)(세간의 길을 넘은 성스런 길을 따름. ‘붓다 담마에서 독특한 것은 무엇인가?’ 포스트 참조). 

 

위의 조건을 충족하기 시작할 때,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Sotāpanna magga anugāmi)’ 또는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까(Sotāpanna magga anugāmika)’가 됩니다. ‘소따-빤나 아누가-미와 소따-빤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2. 먼저 붓다께서 (다른 붓다의 시대를 제외하고는) “나의 담마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붓다께서 의미하신 바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불교’라고 생각하는 것을 따릅니다. 다음 포스트들을 읽고 이 문제를 생각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기를 적극 권합니다.

붓다 담마란 무엇인가?

Buddha Dhamma – In a Chart’와 ‘붓다 담마에서 독특한 것은 무엇인가?’에 있는 논의 

 

  • * 그 포스트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세간(lōkiya, 로-끼야) 팔정도에서 진전을 이룬 후,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Sotāpanna magga anugāmi)가 됩니다. 그때가 바로 성스런 팔정도(출세간 팔정도)를 시작하는 때입니다.

  • * 필자가 많은 포스트에서 지적했듯이, 세간 팔정도에 있을 때 그 사람은 나쁜 결과에 대한 두려움에서 부도덕한 행동을 삼가합니다. 그러나 띨락카나(Tilakkhana, 즉, 아닛짜, 둑카, 아낫따)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러한 행위의 부질없음(헛됨)을 알기 때문에 부도덕한 행위를 피하기 시작합니다.결국 어떤 지속적인 행복도 주지 못하는 감각적 즐거움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부질없음을 압니다.

 

3. 2017년 9월 22일: 예전에 필자는 오늘날에는 [경전을] 읽음으로써 띨락카나(Tilakkhana)에 대해 배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사실이며, [경전을] 읽음으로써 소따-빤나 아누가-미(Sotāpanna anugāmi)가 될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최근 필자는 와하라까 테-로(Waharaka Thēro)의 데-사나(dēsana, 법문)에서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는 아리야(Ariya, 성자, 즉 적어도 소따-빤나 단계의 성자)로부터 법문을 듣는 동안에만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한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 분명히, (법문 중에) 아리야(성자)의 소-따드와-라 찟따 위티(Sōtadvāra citta vithi, 이문인식과정)는 트리거(trigger, 방아쇠)로 작용하는데 필요한 자와나(javana) 힘이 있습니다. 필자는 띠삐따까(Tipiṭaka)에서 언급된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정보가 있는 분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것을 찾으면 이 포스트를 편집하여 해당 부분을 참조로 포함시키겠습니다.

  • * 2019년 7월 15일: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필자는 아직 명확하게 띠삐따까(Tipiṭaka)에서 언급된 부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소따-빤나 단계를 달성하기 위한 조건에 대해 모든 숫따(sutta)는 위 # 1에서와 같이 삿담맛사와낭(saddhammassavanaṃ)을 하나의 조건으로 들고 있습니다. 삿담맛사와낭(saddhammassavanaṃ)은 삿담마(saddhamma) + 사와낭(savanaṃ)로 합성된 말이며, ‘담마를 들음’을 의미합니다. 부처님 시대에는 기록된 문헌을 이용할 수 없었으므로, 이것은 조건으로서 결정적(확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 * 그러나, 와하라까 테-로(Waharaka Thēro)께서는 테로 자신의 의견으로서, 녹음된 데-사나(dēsana)를 듣는 것은 중요하다고 언급하셨습니다.

 

4. 위 내용에 대해 숙고할 때, 그 사람은 왜 붓다께서 ‘31영역 이 광대 세계’ 또는 ‘우리 존재(이 삶에 있는 존재 뿐만 아니라 31영역에 있는 모든 존재)’가 고통(괴로움, 시달림)으로 가득차 있다고 말씀하셨는지 먼저 알아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감각적 즐거움으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를 대부분 까-마 로까(kāma loka, 욕계)에 묶이게 하고, 아주 많은 경우에 사악처(apāya)에 묶이게 합니다. 그것이 첫번째 성스런 진리입니다.

 

  • * 붓다께서는 또한 첫번째 성스런 진리를 정말로 이해한다면, 자동적으로 나머지 세 가지를 이해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의 기본 시각(비전) 또는 감을 우선 잡는 것입니다.

  • * 이 시각(비전), 즉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에 대해 아주 대략적인 개념으로 성스런 팔정도에 들어갑니다. 이제 그 사람은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Sotāpanna Magga anugāmi)입니다. 그는 아리야(Ariya, 성자)가 설하시는 데-사나(dēsana, 법문)를 듣는 중에 우리 세계의 이 기본 특성을 이해하면, 소따-빤나 막가(Sotāpanna magga)와 소따-빤나 팔라(Sotāpanna phala)를 (동일한 찟따 위티에서) 거의 동시에 달성함으로써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 도달합니다.  ‘소따-빤나 아누가-미와 소따-빤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  도달하면, 첫번째 성스런 진리를 이해하고, 따라서 네가지 성스런 진리 모두를 어느 정도 이해합니다. 그 사람은 닙바-나(Nibbāna)를 보았습니다. 이제 그 사람은 (그것을 완전히 경험하기 위해) 닙바-나(Nibbāna)에 도달하는데 어떤 도움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전체 길을 보고, 거기에 가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5. 그것을 염두에 두면, 붓다께서 왜 그 네 가지 조건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지 파악하기가 더 쉽습니다. 먼저, 부처님의 메시지는 독특하기 때문에, 그 진정한 메시지는 부처님에게서 또는 부처님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자에게서 나와야 합니다. 다음은 숫따(sutta)에 있는 비유입니다.

 

6. 부처님은 우뚝 견고하게 서 있는 큰 나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위로 올라가기 위해 나무를 필요로 하는 덩굴 식물(climber)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 덩굴 식물은 줄기가 튼튼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똑바로 설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서있기 위해 다른 나무나 막대기로 지지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식물들을 덩굴 식물(climber)이라고 합니다. 덩굴 식물은 지지 나무나 막대기를 잡기 위한 덩굴손이 있습니다. 다음 그림은 덩굴 식물의 몇가지 예(포도 덩굴, 완두콩 덩굴, 재물 덩굴)입니다.

 

  • * 덩굴 식물은 많이 있지만 나무 하나만 있고 막대기와 같은 다른 지지대가 없는 숲을 생각해 봅시다. 덩굴 식물이 땅에서 소멸하지 않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나무를 붙잡는 것입니다.

  • * 그 나무에 가까이 있는 덩굴 식물들만 그 나무를 잡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른 덩굴 식물들도 그것들(올라간 덩굴 식물)을 붙잡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점점 더 많은 덩굴 식물들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함에 따라 접근 지역이 커집니다.

  • * 따라서, 올라가는 덩굴 식물을 찾을 수 있다면, 항상 원래의 나무까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같은 식으로, 아리야(Ariya, 성자), 즉 소따-빤나(Sotāpanna),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아나-가-미(Anāgāmi), 또는 아라한뜨(Arahant)들은 항상 계보에서 부처님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 * 이 메시지는 독특하기 때문에, 부처님이나 부처님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자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진정한 메시지를 듣지 않고는 소따-빤나 단계조차 얻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성자] 단계를 얻었다면, 그 자는 그 진정한 메시지를 알고 있습니다. 아리야(Ariya, 성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다른 아리야(Ariya)로부터 진정한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Buddha Dhamma – In a Chart’를 참조하세요.

 

7. 이제 우리는 처음 두가지 조건의 논리를 알 수 있습니다. 올바른 버전의 담마(Dhamma)를 배워야 하고, 따라서 그것은 아리야(Ariya, 성자)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 * 깔야-나 미뜨라(Kalyāna Mitra)라는 구절은 실제로는 산스크리트어입니다. 빠알리어로 그것은 ‘깔야나 밋따-(kalyana mittā)이고, ‘오염을 제거하는데 돕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까-알라(kāla)’는 ‘더러운 물’에서 처럼 ‘더러운’ 또는 ‘거무스름한’을 의미하고, ‘나(na)’는 ‘제거’를 의미합니다.

  • * 많은 사람들이 ‘깔야-나 미뜨라(Kalyāna Mitra)’를 평범한 의미에서 ‘좋은 친구’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좋은 것’ 이상입니다. 부처님의 메시지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메시지를 알아야 합니다. 

  • * 물론 올바른 메시지를 듣거나 읽어야 하며, 그러면 그 메시지를 파악합니다.

 

8. 오랜 기간동안 부처님의 마지막 시자였던 아난다 존자는 한번은 부처님께 다가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저는 붓다 사-사나(부처님의 가르침, 불교)의 미래는 깔야나 밋따-(kalyana mittā)에 적어도 50%는 틀림없이 의존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 붓다께서는 그것에 대해,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붓다 사-사나(Buddha Sāsana)는 깔야나 밋따-(kalyana mittā)에 100% 의존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 * 그 계보가 깨지면, 그것은 ‘붓다 사-사나[불교]’의 끝입니다. 말(용어)은 여전히 있을 수 있지만,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포함한 핵심 용어의 진정한 의미를 설명할 사람은 없습니다.

  • * 그러나 붓다께서는 ‘붓다 사-사나(Buddha Sāsana)’가 5000년 동안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현재 겨우 그 절반만 지나갔습니다. 그 기간 중에 아리야(Ariya)가 거의 없는 ‘기근’ 시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붓다 사-사나(Buddha Sāsana)가 세상에서 많은 아리야(성자)와 함께 빛날 때도 있을 것입니다.

  • * 여기서, 핵심은 가끔씩 빠-라미따(pāramita)를 충족한 자-띠 소따-빤나(jāti Sōtapanna)가 태어나 부처님의 메시지를 되살린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약 600년 경에 마힌다 존자께서 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분들은 ‘자-띠 소따-빤나’일 뿐만 아니라,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및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와 같은 주요 빠알리 용어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내는 빠띠삼비다- 냐나(patisambhidā nana)도 지닙니다.

  • * 필자는 지금이 그런 시기라고 믿습니다. 세부 사항을 논의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스리랑카와 다른 나라에도 많은 아리야(Ariya)가 있으며 와하라까 테-로(Waharaka Thēro)에게 큰 감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Parinibbāna of Waharaka Thēro’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리고 그 확립된 클라이머(climber)의 도움으로 클라이징(climbing up)을 시작한 클라이머가 전세계에 있습니다. 필자는, 이 사이트를 보고있는 많은 사람들이 퓨어 담마(pure Dhamma)를 이해함에 따라 느끼는 기쁨으로 보내주는 이메일로 격려를 받습니다.

 

9. 세번째 조건은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로 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요-니(yōni)’는 ‘기원(origin)’을 의미하고, ‘소(so)’는 ‘자기 자신’을 의미하며, ‘마나시까라(manasikara)’는 여기서  ‘이것을 염두에 두고’를 의미합니다.

 

  • * 위방가빠까라나(Vibhangapakarana) 제2권 234페이지에서, 아요-니소 마나시까-라(ayōniso manasikāra)는 ‘아닛짜(anicca)를 닛짜(nicca)로, 둑카(dukkha)를 수카(sukha)로, 아낫따(anatta)를 앗따(atta)로 인식하는 것’으로 설명되었습니다. 따라서,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로 행하려면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 아주 간단히 말하면, 장기적으로 볼 때 행복을 줄 수 있는 것들이 이 세상에 있다고 믿는다면, 아요-니소 마나시까-라(ayōniso manasikāra)로 행하는 것입니다.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로 행하는 것은 ‘얻을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한 이러한 분투의 결실없음’을 보고, 따라서 이 생이 너무 짧기 때문에 적어도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를 향해 부지런히 일하는(행하는) 것입니다.

  • *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것은 ‘다양한 태어남(자티, jathi), 즉 재탄생의 기원’을 볼 수 있을 때 알 수 있습니다. 빠알리어와 싱할라어에서 ‘요-니(yōni)’는 산도(birth canal)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는 ‘기원에 대한 이해’를 의미합니다.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가 있는 사람은 다양한 영역에 태어남으로 이어지는 원인, 즉 ‘바와(bhava)’와 ‘자티(jathi)’가 자신의 가띠(gati)에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띠에서 바와로 그리고 자띠로 - 우리가 통제해야 할 것’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한 이해로, 자동적으로, 또는 적어도 그것에 대해 숙고함으로써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가띠(gati)를 기르는 동기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도덕성에 대해 더 나은 판단을 하고 빤나(지혜)로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더욱 중요한 것은, 아빠-야(apāyā)에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그런 행위들을 자동적으로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 따라서,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는 단순히 ‘적절한 주의 주목’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특히, 소따-빤나(Sotāpanna)는 ‘빠띠(pati) + 잇짜(icca)’가 ‘사마(sama) + 웁빠다(uppada)’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Paṭicca Samuppāda – ‘Pati+ichcha’ + ‘Sama+uppäda’ ”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0. 처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할 때, 네 번째 조건인 ‘담마누담마 빠띠빠다-( dhammanudhamma patipadā )’를 충족하도록 설정됩니다. 여기서 ‘담마누담마(dhammanudhamma)’는 ‘담마(dhamma) + 아누(anu) + 담마(Dhamma)’로 합성된 말이며, ‘아누(anu)’는 ‘~에 따라’를 의미합니다. 뒤에 있는 ‘담마(Dhamma)’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이고, 앞에 있는 ‘담마(dhamma)’는 사람들이 따르는 담마(dhamma)입니다. ‘빠띠빠다-(patipadā)’는 ‘절차’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참되고 순수한 붓다 담마로 마련된 절차에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성자(Ariya person)에게서 참된 담마(Dhamma)를 배우면, 다음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i)  정말로 괴로움(둑카, dukkha)이 의미하는 것, (ii) 그 괴로움은 아닛짜(anicca) 특성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 그리고 따라서 (iii) 31영역 어디에도 피난처가 없다는 것(아낫따, anatta).

  • * 그 다음, 닙바-나(Nibbāna)라는 유일한 피난처(atta, 앗따)를 얻으려고 하기 위해서는,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o manasikāra)로 행하고, ‘담마누담마 빠띠빠다-(dhammanudhamma patipadā)’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 * 일련의 4개의 아누담마 숫따(‘Anudhamma Sutta, SN 22.39’)를 보세요(링크 페이지의 아래에 있는 화살표를 사용하여 이어지는 3개 숫따로 이동할 수 있으며,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것도 볼 수 있음).

  • * ‘아누담마 숫따’에서, 담마누담마 빠띠빠다-(Dhammanudhamma patipadā)는 루빠(rupa), 웨다나(vedana), 산냐(sanna), 상카-라(saṅkhāra), 및 윈냐-나(viññāṇa)와 관련된 빤짝칸다(pancakkhandha)에 대한 아닛짜(anicca), 둑카(dukkha),아낫따(anatta) 특성을 명확하게 보며 살아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11.  ‘붓다 담마에서 독특한 것은 무엇인가?’ 포스트에서 지적했듯이, 담마누담마 빠띠빠다-(dhammanudhamma patipadā, 담마에 따라 가는 길)는 세간 삼마 딧티(mundane samma diṭṭhi), 즉 도덕적인 것에서 부도덕적인 것을 가려내는 방법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마음을 덮고 있는 모하(깊은 어리석음)를 제거하고, 마음은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파악할 준비가 됩니다.

 

  • * ‘도덕적 마음’이 참된 담마를 만나면, 두 번째 단계, 즉 소따-빤나 막가/팔라(Sotāpanna magga/phala)가 어느 시점에서 일어납니다.

 

12. 이 개념을 설명하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람은 의도적으로 자신을 베어 상처를 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위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식으로, 도덕적인 사람들은 부도덕한 행위의 결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부도덕한 행위를 멀리합니다.

 

  • * 그러나 드물지만 자신을 베어 상처내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하(moha, 어리석음) 때문에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 * 따라서 우리는 왜 세간 팔정도에 따르는 것이 비교적 쉬운지 알 수 있습니다.

 

13. 출세간 팔정도는 보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메시지를 배운 분들이 필요합니다.

 

  • * 파티가 있고 사람들이 독이 든 좋은 음식과 음료를 즐기고 있다면, 그 독은 치명적이지만 소화되어 나쁜 결과가 생기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모두들 음식을 즐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 * 그리고 누군가가 와서 “이 음식은 독이 들어 있으며, 음식이 더 맛있을수록 더 독이 된다”고 말합니다. 

  • *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메시지를 그냥 무시합니다. 그들은 ‘왜 이 사람이 파티를 망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를 요청하고, 이 사람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 내려고 노력합니다.

  • * 그와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기적 관점을 취하여, 이 세상의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는 것이 ‘결실(실속)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는 것이 정말 진실인지 조사하기가 어렵습니다.

 

14. 처음에는 이 메시지를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에 도달함에 따라) 이 메시지를 보기 시작할 때에도, 처음에는 절제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서 좋은 비유는, 긁는 것이 상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생각(행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지라도, 가려운 곳을 긁는 것을 참기가 더 힘들다는 것입니다. 성향은 ‘긁는 것을 즐긴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재탄생 과정(윤회)의 위험함을 보기 시작할 때에도 처음에는 여전히 그 감각적 즐거움을 거부하기가 어렵습니다.

 

  • * 해결책은 가려운 곳에 연고를 발라서 그 가려움을 진정시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식으로 담마(Dhamma)를 읽고/듣고 숙고(결과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그 강한 충동을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 * 그리고 처음에는 ‘큰 가려움’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모든 ‘작은 가려움’을 다스리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큰 가려움’에서 벗어남에 따라 그 이점을 볼 수 있고, 그리고 다른 가려움에 대해서도 또한 동일한 절차를 따르도록 동기가 부여됩니다. 마찬가지로, 길(팔정도)을 따라가는 것(특히 소따-빤나 막가 아누가-미 단계)은 점진적인 과정입니다. ‘더 큰 범행(가장 나쁜 습관, 가장 나쁜 가티)를 먼저 다스려야 합니다.

 

물론,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가 되기 위해서도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제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밋차- 딧티, 간답바, 및 소-따빤나 단계’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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