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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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스트’ 또는 ‘바웃다야-’는?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A Buddhist or a Bhauddhaya?’ 포스트

2016년 8월 18일 개정; 2019년 4월 25일 개정


1. ‘부디즘(Buddhism)’과 ‘부디스트(Buddhist)’라는 용어는 19세기에 영국, 프랑스, 독일 역사가들이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처음 접했을 때 만들어졌습니다.


  • * 인도에서 ‘아소카 석주’가 발견되고 나서, [그들은] 스리랑카와 다른 나라(버마와 태국 등)에서 붓다 담마에 대한 빠알리 문헌을 (중국어 번역본과 함께) 발견하였습니다. 물론 인도에서는 불교를 따르는 사람도 없었고 어떤 불교 문헌도 없었습니다.


2. 다음은 용어 정의의 기초가 되어야 하는 두 가지 핵심 사항입니다.


  • * 그때까지는[역사가들에 의해 ‘부디즘’과 ‘부디스트’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그것은 ‘붓다 담마(Buddha Dhamma)’  또는 ‘담마(Dhamma, 붓다의 가르침)’이었습니다.

  • * ‘붓다(Buddha)’는 ‘바와(bhava)’ + ‘웃다(uddha)’로 합성된 말입니다. 여기서, ‘바와(bhava)’는 ‘(31영역에 있는) 존재’를 뜻하고, ‘웃다(uddha)’는 ‘제거’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붓다(Buddha)는 재탄생 과정을 멈추고 미래 고통을 끝내는 방법을 알아낸 자입니다.

  • * 붓다께서 권하신 길을 부지런히 따라가는 사람을 바웃다야-(Bhauddhayā)라고 합니다. 바웃다야-(Bhauddhayā)는 ‘바와(bhava)’ + ‘웃다(uddha)’ + ‘야-(yā)’로 합성된 말이며, ‘재탄생 과정(윤회), 즉 고통(괴로움)을 멈추기 위해 노력하는 자’를 뜻합니다.


3.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단지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지스러기(잡동사니)만 접해 왔습니다.


  • * 그들은 도덕적 행위 규범을 따르고,  현대 생활의 스트레스를 경감하기 위해 어떤 사마타 명상(호흡 명상)을 하고, 그것이 인도하는 곳을 보는 것으로만 행복할 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포럼에 있는 ‘Goenka´s Vipassana’ 토픽을 참조하세요.

  • * 그것은 적어도 시작하는 데는 완벽하게 좋은 접근입니다. 그러나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훨씬 더 깊으며, 고통(괴로움)이 전혀 없는 상태, 즉 닙바-나(Nibbāna)로 이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닙바-나’ 서브 섹션을 참조하세요.


4. 각 사람은 주로 ‘올바른 담마’를 접하는 레벨을 기반으로,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서로 다르게 이해합니다.


  • *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오해를 지니고 있습니다. (1)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육체적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 그것은 (호흡 명상에서 일시적 경감을 주는 것과 같이)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일시적 경감(‘니라미-사 수카’라고도 함)을 준다.


5. 그러나, 붓다께서는 인간이 알지 못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형태의 숨겨진 고통(괴로움)을 지적하셨습니다.


  • * 우리 모두가 느끼며(그러나, 대부분은 알지 못하며) 탐욕, 증오 및 무지로 인해 일어나는 끊임없는 압박과 동요.

  • * 이런 탐욕스럽고 증오스럽고 무지한 마음가짐(심적경향)으로 인해 저지르는 부도덕한 행위가 미래 재탄생에서(특히, 동물과 다른 하위 영역으로 재탄생에서) 이어지는 훨씬 더 높은 형태의 고통(괴로움).


6. 어떤 이들은 재탄생 과정(윤회)을 믿지 않기 때문에 재탄생 과정(윤회)와 관련된 두 번째 유형의 고통[을 지적하는 것] 으로는 실제로 견인(구제)될 수 없습니다.


  • *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지역에서 집중 명상(정규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순수한 담마를 배우고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그런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가 영구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재탄생에 대한 믿음이 없어도 길을 가기 시작함’ 포스트와, ‘불자는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아닛짜(anicca) 특성(본질)을 깨닫기 시작할 때만 위 2번의 의미에서 진정한 바웃다야-(Bhauddhayā)가 됩니다.


7. 바웃다야-(Bhauddhayā)는 31영역의 어느 곳에 머물더라도 무익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고 어느 시점에 닙바-나(Nibbāna)의 첫 번째 단계, 즉 소-따빤나(Sōtapanna)가 될 것입니다.


  • * 그 단계에서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가 영구적이 될 것입니다. 즉, 나머지 생 동안 어떤 명상도 하지 않더라도 그 니라-미사 수카를 유지(간직)하게 될 것입니다.

  • * 소-따빤나(Sōtapanna)는 또한 미래에 아빠-야(apāya, 최하위 4개 영역)에는 자동적으로 더 이상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 *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사이트의 다른 섹션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특히 ‘Sōtapanna Stage of Nibbāna’ 서브 섹션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8.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더 넓은 세상[광대한 세계]’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싶어 하거나, ‘장기 생존’, 즉 끝없는 재탄생 과정에 대해 숙고하거나, 행복감을 주는 도덕적 삶을 사는 것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부디스트(불교도)가 됩니다.


  • * 그러나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붓다께서 규정하신 길을 정말로 따라 바웃다야-(Bhauddhayā)가 되려면, 먼저 재탄생 과정(윤회)이 무엇인지, 그리고 재탄생 과정이 그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아닛짜, 둑카, 아낫따’ 서브 섹션을 참조하세요.


9. 부디스트(Buddhist)나 바웃다야-(Bhauddhayā)가 되는 의례 의식은 없습니다. 부처님의 세계관을 확신하게 되고, ‘이 세상’ 것들을 얻기 위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이 결실(실속)없다는 것을 알기 시작하면, 더 나은 부디스트(Buddhist)나 바웃다야-(Bhauddhayā)가 되기 시작합니다.


  • * ‘부디스트/바웃다야-’가 되면서, 자신의 성격을 억지로 바꾸려하지 않고도 성격이 변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하고 외부 일에 대해 다르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모두 ‘이 세상’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즉, 그것은 모두 정신적입니다.

  • * 이 때문에, 단지 의례 의식을 따르는 것으로는 ‘바웃다야-’는 물론이고 ‘좋은 부디스트’도 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이해가 진전됨에 따라 그 이득(혜택)을 경험함으로써) ‘좋은 부디스트/바웃다야-’가 됩니다.


‘담모 하 웨 락까띠 담마짜리(Dhammo ha ve rakkati Dhammacari), 즉 ‘담마(Dhamma)는 담마(Dhamma)에 따라 사는 자를 사람을 안내하고 보호한다’입니다. 정말로 ‘부디스트/바웃다야-’가 되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어떤 자들은 자신의 변화를 아는데 좀 더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자신의 취향과 어울림(모임)이 가장 먼저 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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