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불자는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인가?
원문 : Living Dhamma 섹션의 ‘Is It Necessary for a Buddhist to Eliminate Sensual Desires?’ 포스트
(섹스, 음식에 대한 갈망 등을 포함하여)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는 것은 불자가 처음에는 필요하지 않으며 소따빤나(수다원) 단계까지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소따빤나는 여전히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2018년 9월 28일; 2021년 6월 1일 개정; 2021년 12월 13일 개정; 2023년 2월 19일 개정
소개
1. 필자는 최근에 (다른 제목으로) 토론 포럼에서 제기된 위의 질문을 보았습니다. 질문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재가 불자로서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불합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관계에 있거나 일(직장)에서 동기 부여를 하는 것을 계획한다면 특히 그렇습니다. "
-
*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붓다의 성스런 길을 순차적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
* 감각적 욕망(섹스, 음식에 대한 갈망 등을 포함)을 없애는 것은 처음에는 불필요하며 소-따빤나(수다원) 단계까지도 불필요합니다.
-
* 닙바-나(Nibbāna)(Arahanthood, 아라한과)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는 것은 단계적 과정입니다.
-
* 필자는 포스트들을 처음에 통독하기를 권합니다. 그 후에, 링크된 포스트들을 탐색하여 자세한 정보를 얻어보세요.
길을 따르는 것은 단계적 과정이다
2. 필요한 초기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도덕적이 되고, 세간적 오계(살생, 도둑질, 성적 비행, 노골적인 거짓말, 술/마약에 취함을 삼가함)를 지키고, 쓸데없는 말, 중상 모략하는 말, 거친 말을 피하는 것입니다. ‘2. 명상의 기본 ’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2) 붓다께서 가르치신 올바른 ‘광대 세계관(31존재계)’를 이해하고, 10가지 유형의 밋차- 딧티(micchā ditthi, 사견)을 없애는 것입니다. ‘잘못된 견해(밋짜- 딧티) - 더 간단한 분석’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런 잘못된 견해는 재탄생을 믿지 않고 마노마야 까-야(간답바)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3) 부처님의 더 깊은 세계관에 대해 배우는 것입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입니다. 틸락카나(Tilakkhana, 삼특상) (아닛짜, 둑카, 아낫따 특상/특성)는 붓다 담마에 기반된 이 세상의 특징을 묘사합니다. ‘붓다 담마 ㅡ 성스런 진리, 빠띳짜 사뭅빠-다, 띨락카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과학 지향적인 사람들은 ‘담마와 과학’ 섹션의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 서브섹션을 읽어보면 좋습니다.
-
* 그 단계들은 이 순서에 따라야 합니다.
3.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특성’(아닛짜는 ‘무상impermanence’ 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가짐)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 수다원도) 성자가 됩니다. ‘31영역의 이 광대 세계’에 대한 ‘올바른 시각’이 마음에 영구히 자리잡으면,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성자가 됩니다.
-
*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는 섹스나 어떤 다른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망을 제거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적 비행과 같은 부도덕한 행위를 삼가해야 합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끝(궁극)에서 시작하는 것의 헛됨
4.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먼저 감각적 욕망을 억압하려는 노력으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거나, 어떤 경우에는 ‘나’ 또는 ‘자기’라는 타고난(선천적) 감각을 제거하려고 노력합니다.
-
* 그러나, 덧셈 뺄셈을 하는 법을 배우지 않고 대수학이나 고급 미적분학을 배울 수 없다면, 그 사람들은 이렇다 할 진전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 더구나, 호흡 명상을 함으로써 ‘일상 활동의 스트레스’를 일시적으로 경감할 수는 있지만, 붓다께서 설명하셨던 괴로움(고통)으로부터 장기적 해방(벗어남)을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
* 띨락카나(Tilakkhana, 세가지 특성)에 대한 이해를 시작하기 전에는 결코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소따빤나도 감각적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5. 붓다 시대에도, 많은 재가 불자가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이르렀으며 가정 생활도 계속하였습니다. 그들은 결혼했고 정규 직업을 가졌습니다. 섹스를 포함한 감각적 즐거움을 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
* 예를 들어, 당시 선도적인 여성 재가 불자였던 위사-까-(Visākā)는 7살에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도달했고, 그 후 결혼하여 20명 이상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
*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도달하고 그런 식으로 계속 살았던 ‘가정을 가진 정규 재가 불자들’이 그 외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
* 물론, 닙바-나(Nibbāna)의 더 높은 단계를 바란 사람들은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섹스와 다른 감각적 즐거움을 삼가는 빅쿠(bhikkhu, 출가 불자)가 되었습니다.
아나-가-미 단계에서만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을 잃는다
6. 아나-가미가 된 후에야 감각적 즐거움을 금하게 됩니다.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사다함) 성자는 감각적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없기는 하지만,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사다함) 성자도 여전히 감각적 즐거움을 즐깁니다.
-
* 즉,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사다함) 성자는 어떤 감각적 욕망을 여전히 즐기지만, 집, 자동차 등 감각적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소유하려는 갈망은 없습니다.
띨락카나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한 후에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을 잃는다
7. 순전히 의지력으로 감각적 즐거움을 포기하고 아나-가-미(Anāgāmi, 아나함) 성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보다 높은 수준에서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해야 하고, 그러면 그 욕망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입니다.
-
*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망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사라지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한 번에 한 단계씩 순차적으로 길을 따라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
* 그런데, ‘나’ 또는 ‘자기’라는 감각은 아라한 단계에서만 사라질 것입니다! 소따빤나 단계 전에 그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감각적 탐닉(까-마수칼리까-누요가)의 해로운 결과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8. 그러나, 과도한 감각적 즐거움(까-마수칼리까-누요가, kāmasukhallikānuyoga)과 통상의 안락함을 완전히 멀리하는 극단적 고행 실천(앗따낄라마타-누요가, Attakilamathānuyoga)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또한 중요합니다. 붓다께서는 극단으로 가지 않고 소박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중간 길을 권하셨습니다.
-
* 그러므로, 감각적 즐거움을 만끽함, 즉 ‘플레이 보이 유형’의 생활 방식을 유지해서는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가 될 수 없습니다.
-
*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그 사람의 삶은 단순해질 것입니다.
-
*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도달하기 전에도, 이 단순한 삶의 스타일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스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를 느끼기 시작할 것입니다.
9. 물론, 감각적 즐거움을 포기함으로써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로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이 길을 택하는 사람들은 빅쿠(bhikkhu)가 됩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섹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감각적 즐거움을 포기합니다.
-
* 자-나(jhāna, 선정)을 얻으려면, 모든 감각적 욕망을 적어도 억눌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따뿟사 숫따(Tapussa Sutta (AN 9.41))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해져 있습니다. “..So kho ahaṃ, ānanda,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āmi."
-
* 이것은 자-나(jhāna, 선정)에 도달할 때는 ‘감각적 즐거움과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에 대한 모든 생각’이 마음에 떠오르지 않게 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
* 이 구절은 자-나(jhāna, 선정)를 묘사하는 모든 경(sutta)에 나타납니다.
더 넓은 세계관
10. 부처님의 가르침은 전통적인 의미의 종교보다 더한 ‘이전에 듣지 못한 세계관’입니다. ‘붓다 담마에서 독특한 것은 무엇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붓다께서 말씀하신 ‘광대한 세계관’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31개의 영역이 있습니다. 그 영역에서 괴로움(고통)은 가장 심한 곳인 ‘가장 낮은 4개의 영역 (아빠-야, apāya)’에서 인간 영역(고통과 행복이 모두 있는 곳)으로 감에 따라 감소합니다. 6개의 데와(deva, 천신) 영역과 20개의 브라흐마(brahama, 범천) 영역에서는 행복(또는 적은 스트레스)이 더 증가합니다. 그러나 그 존재들은 유한한 수명을 가집니다.
-
* 자-나(jhāna, 선정)에서 경험하는 평화로운 느낌은 해당 영역의 브라흐마(brahma, 범천)가 경험하는 감각 경험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자-나가 통찰 명상을 위한 더 나은 심적 경향(마음가짐)을 줄 수 있지만,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에 도달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
* 어떤 영역에서도 수명은 유한하기 때문에 그 어느 영역도 영원한 행복을 줄 수 없습니다. 브라흐마(범천) 영역은 수명이 매우 길지만, 결국에는 죽을 것이며 어떤 영역에 태어납니다.
-
* 목표가 영구적인 행복이라면, 결국은 닙바-나(Nibbāna)의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 할 수 있다면, 몇 번의 이어지는 탄생 후에 아라한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 보장됩니다.
다른 세상 종교들과 차이
11. 이것이 붓다 담마와 다른 종교들의 가르침 사이의 주된 차이입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데와(deva, 천신) 영역에서 영원한 행복을 약속하고(창조주를 만남), 힌두교는 브라흐마( brahma, 범천) 영역에서 항구적인 행복을 약속합니다.
-
* 그러나 붓다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전 우주에 있는 유정체와 무정체 모두에 적용됩니다.
-
* 과학자들(아인쉬타인을 포함하여)은 100년 전에만 해도 우주가 ‘안정 상태’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제 과학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유동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
* 그러므로, 어떤 영역에 태어난 사람은 거기에서 죽을 것이며 다른 영역에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고통이 끝나는 곳은 이 세상에는 없다(아닛짜 특성)
12. 위 소제목은 이 세상의 아닛짜 본질(특성/특상)을 요약합니다. 그것을 앎으로써 소따빤나 단계에 이릅니다. 이 세상의 아닛짜 본질(특성/특상)을 처음 깨달을 때,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를 행하는 것의 위험함을 즉시 볼 수 있습니다. 그 깨달음은 가장 낮은 4개 영역 (apāya, 아빠-야, 악처)에 태어나기에 적합한 아빠-야가-미 행위(apāyagāmi action)를 하는 것에 저항하는 마음을 만듭니다.
-
* 그 이해는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의 마음에 영구히 등록되며 깨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유혹을 받더라도 결코 그런(악처에 태어나게 하는) 부도덕한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
* 그때에 붓다, 담마, 상가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담마가 얼마나 귀중한지를 그때에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붓다께서 담마(Dhamma)를 발견하셨습니다. 그 담마는 성자에 의해서만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습니다.
-
* 그것이 붓다(Buddha), 담마(Dhamma), 상가(Sangha)에 대한 아웻짭빠사-다(aveccappasāda, avecca pasāda, 깨질수 없는 믿음)의 이유입니다. ‘소따-빤나 앙가 - 소따-빤나의 4가지 특질’ 포스트의 #4를 참조하세요.
-
* 또한,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는 ‘아리야까-안따 실라(Ariyakānta sila), 즉 ‘깨질 수 없는 지계’를 지닌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행)의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나, 아빠-야(apāya, 악처)에 재탄생을 가져오는 ‘강한 깜마 위빠까를 야기하는 다사 아꾸살라’를 다시는 행하지 않습니다. 소-따빤나는 그런 심적 경향을 영구적으로 제거하였습니다.
닙바-나의 더 높은 단계에는 아닛따 특성을 더 깊이 이해함과 함께 이른다
13.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는 그 다음에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망을 두 단계로 제거하면서,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사다함)와 아나-가-미(Anāgāmi, 아나함) 단계에 도달합니다. ‘4단계의 닙바-나에 대한 조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아윗자-(Avijjā, 사성제에 대해 모름)는 아라한 단계에서만 제거됩니다. 그때가 ‘나’라는 감각 또는 ‘자기’라는 감각이 제거될 때입니다.
-
* 그것은 체계적이고 긴 과정입니다.
-
* 필자가 말했듯이, 먼저 덧셈/뺄셈하는 법을 알고, 그리고 대수학을 하는 법 등을 알지 못하면, 고급 수학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
* 따라서, 도덕적 행위와, 10가지 유형의 밋짜 딧티(miccā ditthi)를 제거하는 것은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의 모든 단계에 대한 요구 사항입니다.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망(갈망)의 제거는 그 다음입니다.
감각적 즐거움을 갈망하는 것에는 위험이 있다
14.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이 해야할 것은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이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사람은 아빠-야(apāya)에 태어나는 것에서 자유로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진실입니다. 그러나,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이르면, 그 사람은 데와(deva, 천신) 영역을 포함하여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 있는 괴로움(고통)을 (지혜로) 보기만 합니다. 그것이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 즉 올바른 견해입니다. 먼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그리고 더 높은 단계를 염려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소따빤나 단계 전이라도 과도한 감각적 즐거움의 위험함을 최소한 알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은 삼마- 딧티(올바른 견해)에 이르는데 필요합니다. 그러면, 아나-가미(Anāgami) 단계에서 감각적 즐거움의 가치에 대한 잘못된 인식(산냐-)를 제거하게 될 것입니다. ‘위빨라-사(딧티, 산냐-, 찟따)는 상카-라에 영향을 미친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아래 ‘담미까 숫따(Dhammika sutta (Snp 2.14))’에 기술된 바와 같습니다.
아브라흐마짜리양 빠리왓자예이야,
앙가-라까-숭 자릿땀와 윈뉴-;
아삼부난또 빠나 브라흐마짜리양,
빠랏사 다-랑 나 아띡까메이야.
-
Abrahmacariyaṃ parivajjayeyya,
Aṅgārakāsuṃ jalitaṃva viññū;
Asambhuṇanto pana brahmacariyaṃ,
Parassa dāraṃ na atikkameyya.
번역: 현명한 사람은 불 구덩이에 떨어지는 것을 피할 것이므로, (섹스를 피하는) 독신 생활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감각적 즐거움을 삼가는 단계에 있지 않다면, 성적 비행을 삼가야 합니다.
-
* 더욱이, 감각적 즐거움은 성관계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모든 감각적 즐거움에 과도하게 들러붙는 것은 위 #8의 까-마수칼리까-누요가 (kāmasukhallikānuyoga)에 속합니다. 또한, ‘까-마란 무엇인가? 그것은 섹스만이 아니다’와 ‘음란물에 대한 갈망 ㅡ 그 경향을 줄이는 방법’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요약
15. 시작할 때에 감각적 즐거움을 삼가하려고 힘쓰는 것은 필요하지(또는 현명하지) 않습니다. 우선,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런 들러붙음이 (미래 재탄생의) 미래 괴로움으로 이어지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
* 물론, 재탄생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때문에 부처님의 세계관을 공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붓다께서 첫 설법인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DhammacakkappavattanaSutta (SN 56.11))에서 반복적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세계관’(pubbe ananussutesu dhammesu)입니다. 그곳(숫따센트럴 사이트) 번역에서, 그것은 “teachings not learned before from another(전에 다른 곳에서 배우지 못한 가르침)”으로 말합니다. 필자는 위 숫따의 링크에서 그 부분을 지시하도록 세팅하였으며, 그 구절은 거기에 여러번 나타납니다.
-
* 이 “새로운 가르침(세계관)”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특히 ‘빠띳짜 사뭅빠-다’를 이해함으로써), 재탄생 과정과, 업의 법칙의 타당성과 같은 다른 교의적 근본에 대해 확신을 가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