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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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란 무엇인가? 그것은 섹스만이 아니다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What is “Kāma”? It is not Just Sex’ 포스트

- 2017년 10월 31일 개정; 2018년 12월 18일 개정(#13, #14)

 

1. ‘까-마(kāma)’는 ‘먹다 또는 파괴하다’를 의미하는 ‘까-(kā)’에서 유래하였고, ‘아마(ama)’는 닙바-나(Nibbāna)를 의미합니다. 우리 인간계는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의 일부이고, 닙바-나(Nibbāna)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싶은 유혹은 5가지 육체적 감각에서 비롯됩니다.

 

  • * 어떤 사람들은 까-마(kāma)가 단지 섹스(성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떤 다른 사람들은 매력적인 감각 대상이 ‘까-마(kāma)’가 있는 대상이라고 믿고, 그것들이 오염을 가져온다고 믿습니다. 둘 다 정확하지 않습니다.

  • * ‘매력적인 감각 대상’이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 마음이 만든 즐거움)’를 가져올 수 있지만, 대상 자체에는 까-마(kāma)가 없습니다. 아라한(Arahant) 성자는 그런 어떤 대상에도 유혹되지 않습니다. 

  • *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 또는 감각적 즐거움은 5가지 육체적 감각을 통해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붓다께서는 특히 까-마(kāma)는 ‘만들어낸 즐거움(made up pleasure)’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 * 가장 낮은 11가지 영역을 모두 합하여 ‘까-마 로-까(kāma lōka)’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모든 ‘만들어낸 즐거움’은 그 영역의 모든 5가지 육체적 감각을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그 외부 감각 입력을 2가지 방식으로 경험합니다.

 

  • * 우리는 그것들을 직접 경험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사람을 보고, 노래를 듣고, 케이크 한 조각을 맛보고, 향기를 맡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키스를 합니다. 그것들은 실제 감각 접촉이고,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때문입니다.

  • * 놀라겠지만, ‘감각적 즐거움(까-마 앗사-다, kāma assāda)의 대부분은 마음이 만듭니다. 감각 접촉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오고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몇 시간 동안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합니다. 이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는 상카-라(saṅkhāra)를 통해 우리가 마음 속에서 생성하는 것입니다.

  • * 예를 들어, 몇 초 동안만 보더라도 감각적 즐거움을 주는 매력적인 제품이 상점에 진열된 것을 그냥 볼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그 다음 그것을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은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즐기고, 그것을 살 돈을 마련하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며칠 동안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갖고 이것에 대해 숙고해 보세요. 초기에 몇 초의 감각 접촉은 그것에 대해 몇 시간 동안 생각하고 ‘추가적인 즐거움’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그것이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입니다.

 

3. ‘나 산띠 숫따( ‘Na Santi Sutta, SN 1.34’ )에서, 붓다께서는 까-마(kāma)를 위에서 언급한 두 번째 것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하셨습니다. 

“나 떼 까-마- 야-니 찌뜨라-니 로께, 상깝빠라-고 뿌리삿사 까-모..(Na te kāmā yāni citrāni loke, Saṅkapparāgo purisassa kāmo..)”.

 

번역: "세상에 있는 예쁜 것은 ‘까-마(kāma)’가 아니다. 사람은 ‘마음이 만든 즐거움’을 만들어(라-가 상깝빠나-, rāga sankappanā) 자기 자신의 까-마(kāma)를 생성한다.."

 

  • * 붓다께서는 이 세상에는 매력적인 광경(그림), 소리, 맛, 냄새, 및 접촉이 많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까-마(kāma)’가 아닙니다. 초기 감각 경험은 즐거울 수 있지만, 그것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이며, 그 초기 감각 입력에는 생성된 상카-라(saṅkhāra)가 없습니다.

  • * 그런 감각 경험에 들러붙어 그것들을 계속 생각할 때, 그것에 대해 (와찌 상카-라 및 까-야 상카-라를 생성함으로써) 상깝빠 라-가(saṅkappa rāga, 싱할라어로 සංකල්පිත රාග)를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까-마(kāma)입니다. 각 사람은 자신의 가띠(gati) 또는 윤회 습관/갈망(samsāric habits/cravings)에 따라 자신의 까-마(kāma)를 생성합니다.

 

4. ‘상깝빠 라-가(saṅkappa rāga)’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논의해 봅시다. 상깝빠(sankappa)는 ‘생각’을 의미합니다. 라-가(rāga)는 상사-라(samsāra)에서 즐거움을 갈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바, 라-가’ 및 ‘까-맛찬다, 까-마라-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따라서 ‘상깝빠 라-가(saṅkappa rāga)’는 그런 감각 즐거움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들에 우선 순위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즐겼던 실제 감각 경험이나 미래에 경험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몇 시간 동안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 때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능력밖인 것처럼 보이는 특정한 감각 경험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에 대해서도 몇 시간 동안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경우에,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으로부터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 싱할라어로는 āsvāda)를 얻는데, 몇 시간이고 보낼 수 있습니다.

  • * 사실, 대부분의 경우 성적 즐거움은 단지 과거 경험이나 예상 경험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서 옵니다. 실제 접촉의 즐거움은 상대적으로 짧습니다.

 

5. 위의 # 2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실제 감각 접촉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해 일부 발생합니다(좋은 깜마 위빠-까는 좋은 감각 경험으로 이어지고, 나쁜 깜마 위빠-까는 나쁜 감각 경험으로 이어짐). 실제 감각 접촉은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습니다.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도, 우리는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없습니다. 가장 고급스러운 의자라도 너무 오래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모든 유형의 감각 경험에 대해 이와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으며, 그것들은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습니다.

 

  • * 아라한 성자들도 좋고 나쁜 것 모두의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해 그러한 감각 경험을 경험합니다. 아라한 성자들도 제공되는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고급 차를 타거나, 길을 가는 중에 눈길을 끄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아라한 성자들은 그 후 그런 감각 경험을 생각하는데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즉, 아라한 성자들에게는 상깝빠 라-가(saṅkappa rāga)가 없습니다.

 

6.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한 감각 즐거움과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로 인한 감각 즐거움을 구별하는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

 

  • * 예를 들어, 맛있는 식사 대접을 받았을 때, 그것은 이전의 좋은 깜마(kamma), 즉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식사가 얼마나 좋았는지 생각하기 시작하고 또 다른 그런 식사를 즐기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입니다.

  • * 같은 식으로,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 모든 종류의 호화로운 감각 접촉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입니다.

  • * 부유하든 가난하든, 새로운 감각 즐거움을 얻고 즐기는 것을 생각하거나 과거의 감각 즐거움을 회상하고 추억에 잠길 때,  그것은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입니다.

 

7. 이제 두가지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A. 자연스럽게 오는 직접적 감각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것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만든 정신적 즐거움’을 즐기는 것이 좋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느끼는 직접적 감각 즐거움도 무해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금 생각해 보면, 그런 예들이 상깝빠 라-가(saṅkappa rāga)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그것(감각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하려고 생각한 것입니다.)

 

B. 어떻게 하면 ‘즐거운 감각적 기쁨’을 경험하면서, ‘그것에 유혹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즉, 상깝빠 라-가(saṅkappa rāga)를 만들지 않을 수 있습니까?

 

8. 이 두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의 설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익숙한 것과는 다른 관점에서 상황을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에 알려진 적이 없는 담마..(붑베- 아나눗수떼-수 담메-수.., pubbē ananussutēsu Dhammēsu ..)"입니다.

 

  • *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 사이클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로 시작합니다. 그 ‘만들어진(형성된) 정신적 즐거움’, 즉 ‘까-마 앗사-다(kama assāda)는 바로 상카-라(saṅkhāra)입니다. 이것들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PS) 사이클의 나머지 부분,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 윈냐-나 빳짜야- 나-마루-빠, ….., 자-띠 빳짜야- 자라-, 마라나, 소-까, 빠리데-와, …(saṅkhāra paccayā viññāna, viññāna paccayā nāmarūpa, ….., jāti paccayā jarā, marana, sōka, paridēva,…)”을 통해 나쁜 결과, 즉 아-디-나와(ādīnava)를 낳습니다. 그래서, 끝점은 고통(괴로움, 시달림)입니다.

  • * 자연스럽게 오는 ‘직접적 감각 접촉’을 경험할 때, 그것은 상카-라(saṅkhāra) 또는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가 아닙니다. 그것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입니다. 그것들은 미래의 고통(괴로움, 시달림)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 * 이것은 이해해야 할 매우 중요한 점이며, ‘Avyākata Paṭicca Samuppāda for Vipāka Viññāna’ 포스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다시 읽고 그 차이를 이해해 보세요. [내용이] 명확하지 않으면 알려 주세요.

 

9. 이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한 감각 접촉도 어떻게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로 이어질 수 있는지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예를 살펴 보겠습니다. 주어진 하루 동안, 우리는 수백만의 감각 입력으로 폭격을 받다시피 합니다. 그러나 그것들 모두가 우리의 ‘주의를 끌어서’,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다 구체적 말하면, 그것들 모두에 대해 ‘마음대로 즐길 수 있도록 어떻게 그것을 얻을 수 있을까’하며 그것을 더 얻을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

 

  • * 왜 특정한 감각 입력이 다른 감각 입력보다 우리의 관심을 더 끌까요? 주어진 감각 입력이 어떤 한 사람을 유혹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헤비메탈(heavy metal) 음악을 좋아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그것으로 짜증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많은 경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각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련의 감각 입력에 의해 유혹받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이 [일련의 감각 입력] 세트는 어느 정도 겹칠 수 있지만,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각 사람의 아-사와/아누사야(āsava/anusaya, 갈망)가 독특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주어진 사람이 바꿀 수 있지만, 주어진 때에 자신의 성격을 정의합니다. 습관(가띠, gati)을 바꾸면, 자신의 아-사와/아누사야(āsava/anusaya)를 바꿀 수 있습니다. ‘아-사와(āsava), 아누사야(anusaya), 가띠(gati), 습관(habit)’로 검색하여 관련 포스트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10. 아-사와/아누사야(āsava/anusaya)가 많을수록 많은 다양한 방식으로 마음이 끌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이 산만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런 마음은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것을 따-빠(tāpa, 마음의 열기)라고 합니다. ‘사띠빳타-나 숫따 - 이 삶의 괴로움과의 연관성’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아-사와/아누사야(āsava/anusaya)는 물 한 컵의 바닥에 있는 흙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흙이 많으면 조금만 교란시켜도 흙이 올라와 물이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흙이 조금뿐이라면 대부분의 작은 교란에 대해서는 더러워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 * 그와 꼭 같이, 아-사와/아누사야(āsava/anusaya)가 많이 있으면, 마음이 쉽게 동요(산만)하게 됩니다.

  • * 반면에, 컵 바닥에 흙이 없으면, 어떤 종류의 교란이 있더라도 물은 순수한 상태로 유지됩니다. 아라한 성자의 마음은 그와 같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유혹적인 감각 대상에 둘러싸여 있더라도 그것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아라한 성자에게는] ‘상깝빠 라-가(saṅkappa rāga)’ 또는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가 없습니다. 물론, 아라한 성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좋은/나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경험할 것입니다.

 

11.  이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글쎄, 내가 만드는 그런 상깝바 라-가(saṅkappa rāga)가 많을수록 더 좋다. 나는 마음이 주어진 시간에 그런 앗사-다(assāda)를 많이 얻어도 상관 없다.”

 

  • * 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이전 글머리표(불렛)에서 논의한 것처럼 마음이 여러 방향으로 밀리고 당겨지는 것[교란/동요되는 것] 말고도 그런 앗사-다(assāda)의 아-디-나와(ādīnava, 나쁜 결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 문제는 위 #8에서 보았듯이, 우리가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를 즐길 때마다 (아비)상카-라를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 사이클을 통해 미래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는 태어남에서 해왔던 것입니다.

 

12. 그 미래 고통은 현생과 내생 모두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의 힘’에 따라 다양한 레벨로 실현될 수 있습니다.

 

  • * 가장 극단적인 레벨에서 시작합시다. 누군가 “나는 이것을 가져야 한다. 나는 이것을 갖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다”라고 결심합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사람을 죽이고, 훔치고, 부도덕한 성행위를 하고, 취한 마음으로 그 밖의 부도덕한 행위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 * 물론, 현생 중에도 나쁜 결과는 많습니다. 붙잡혀 감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붙잡힐까봐 염려하며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을 것입니다.

  • * 그러나, 이자가 붙어서 더 강한 결과가 내생에서도 뒤따를 것입니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정상적인 사람은 그러한 강한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에서 아-디-나와(ādīnava)를 볼 수 있습니다.

  • * 그런 아-디-나와(ādīnava)를 숙고함으로써, 그런 행위를 자동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더 쉬워집니다. 이것이 닛사라나(nissarana)입니다. 결과에 대한 이해를 통해 그런 행위를 피하는 것입니다.

 

13. 그 다음 레벨에서는, 몸이나 말에 의한 부도덕한 행위를 전혀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함으로써 여전히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를 축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식적 생각(위딱까/위짜-라, vitakka/vicāra)이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에 포함됨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 ‘와찌- 상카-라’의 바른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 또는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의 문제는 그것들이 중독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미래 사건(특히, 섹스, 음식, 그리고 자신의 적에 대해서도 포함)을 인식(이해)하게 하는 과거의 감각적 사건을 즐기면서 몇 시간이고 보낼 수 있습니다.

  • * 그리고,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 또는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는 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도 그것들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관심있는 대상에 대해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를 결국 생성하는 데 몇 시간을 보내어 즐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에는 [나쁜] 결과가 따릅니다.

  • * 또한, 자신의 의지력에 의해 억압된 그 모든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와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는 마노- 상카-라(manō saṅkhāra, 단지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으로 시작되었고, 그 다음 보통 의식적인 고의성 있는 생각, 즉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를 생성함으로써 그 상태를 계속하여, 실제 말과 심지어 신체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 따라서 말과 신체 행동에 해당하는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는 피했지만,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 즉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로 인한 것들은 여전히 나쁜 깜마(kamma)로 간주됩니다.

  • * 그렇기 때문에 인습적인(전통적인) 오계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힘든  부분은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오계 – 붓다께서 의미하신 바’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4.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 또는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의 핵심 문제는 그것들이 나쁜 습관(가띠, gati)의 형성으로 이어지고, 이는 그 결과로 새로운 아-사와 / 아누사야(āsava/anusaya)의 형성 또는 이전 아-사와 / 아누사야(āsava/anusaya)의 강화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아-사와, 아누사야, 및 가띠’ 포스트 및 기타 관련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것은 악순환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재탄생 사이클을 유지하는 ‘리야(riya, 탈 것)’의 ‘바퀴 굴리기 과정’입니다. ‘닙바나는 이해하기 어려운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비록 그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 즉 아빗자(abhijja), 브야빠다(vyapada),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는 무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은 아빠-야-(apāyā)에 태어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 그러한 의식적 생각(vaci saṅkhāra, 와찌 상카-라)를 통제하기 시작하면, 자신의 가띠(gati)가 점차 변할 것이고, 그 다음에는 그 ‘자동적 나쁜 생각’ 또는 마노- 상카-라(manō saṅkhra)는 점점 빈도가 낮아집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사와/아누사야(āsava/anusaya)가 점차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 * 아-사와/아누사야(āsava/anusaya)를 바꾸는 가장 좋고 영구적인 방법은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장기적으로는 자신이 만족하게 유지될 수 없다(아닛짜, anicca)는 것을 깨달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은 자동적으로 그런 ‘형성된(마음이 만든) 즐거움’에 대한 생각을 멈춥니다. 다음 포스트에서 이것에 대해 더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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