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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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탄생(윤회)과 닙바-나(열반)가 없는 불교는?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Buddhism without Rebirth and Nibbana?’ 포스트

-2016년 8월 18일 개정


필자는 2013년과 2014년 일부에 걸쳐 ‘불교’에 관한 여러 인터넷 포럼에 참여했습니다. 분명히 눈에 띄는 것은 불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은 재탄생에 관한 큰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고 닙바-나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왜 우리는 재탄생 없이(재탄생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닙바-나(Nibbāna)없이(닙바-나는 너무 복잡해 보이기 때문에) 불교를 가질 수 없는가?


그들은 재탄생 개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닙바-나 개념으로 [불교를] 신비화합니다.


  • * 재탄생. 첫 번째 문제는 대부분의 주요 종교가 세 가지 레벨의 존재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삶과, 그 후에 영원한 두 삶 중의 하나입니다. 각자가 이 생에서 행하는 것에 따라 영원히 천국이나 지옥에 할당됩니다. 그 모델은 매우 간단합니다. [그 모델에서는] 많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로 구성된, 붓다께서 말씀하신 31가지 존재 영역은 얼토당토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동물로 다시 태어날 존재 가능성은 진화론 이전에 사람들이 ‘원숭이에서 진화한 것’에 대해 가졌던 것과 비슷한 끔찍한(혐오스런) 생각입니다.

  • * 닙바-나(Nibbāna). 두 번째 문제는 주로 마하야나(Mahayana, 대승) 교리 때문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마하야나(Mahayana) 종파는 나가르주나( Nagarjuna), 아상가(Asanga) 및 다른 마하야나(Mahayana) 선조에 의한 닙바-나(Nibbāna)에 대한 철학적 분석에서 기본적으로 발생했습니다. 그들은 닙바-나(Nibbāna)의 개념이나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이 반열반에 들었을 때 아라한에게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순야타(sunyata, 공) 또는 순냐타(sunnata, 공)와 같은 개념을 생각해 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What is Sunyata or Sunnata (Emptiness)’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는 두 가지 면이 공존합니다.


  • * 붓다께서는 “이 담마는 세상이 지금까지 보아온 그 어떤 것과도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붓다 세계관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정말 필요합니다. 핵심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 모든 선입견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 * 그러나 붓다께서는 또한 “나의 담마(Dhamma)는 처음에도 좋고, 중간에도 좋고, 끝에도 좋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방금 알게 된 사람들을 위한 붓다 담마로부터도 얻을 것이 있습니다. 필자가 포스트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사이트의 이 섹션(세 단계 실천)에 올린 것도 이 때문입니다.

  • * 빅쿠 보디(Bhikkhu Bodhi)의 저서 “In the Buddha’s Words”에는 ‘이 현생에서 볼 수 있는 행복’에 관한 장이 있는데, 여기에는 닙바-나(Nibbāna)에 도달하고자 하는 열망은 없지만 도덕적 삶을 추구하는데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설해진 붓다 법문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 * 재탄생과 닙바-나(Nibbāna)와 같은 개념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각자가 자신이 이해하는 것을 따라감에 따라, 이러한 개념은 명확해질 것입니다. 필자는 아래에 이 두 개념을 요약했습니다. 그러나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이해하는 데 정말로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은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하게 하고 더 많은 포스트를 읽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재탄생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재탄생 과정을 믿지 않고 시작할 수 있는 간단한 길이 있습니다. 필자는 다음 포스트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즉, ‘재탄생에 대한 믿음이 없어도 길을 가기 시작함’ 포스트입니다.


3. 그러나, 마지막에는 - 붓다 담마에서 완전히 이익을 얻으려면 - 그 핵심 메시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핵심 메시지는 이 생은 우리가 영겁부터 해왔던 재탄생(윤회)의 사이클에서 보면 보잘것 없이 짧은 시간일 뿐이며, ‘우리 세계’는 우리가 보는 두 세계(인간계와 축생계) 대신에 31영역으로 되어 있으며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많은 더 낮은 존재 영역에서 겪는 고통(괴로움)은 인간 영역이나 더 나아가 동물 영역에서 겪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 * 그것은 기본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많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1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비교하더라도 운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는 붓다께서 말씀하신 이 더 넓은 세계관을 뒷받침할 증거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Dhamma and Science – Introduction’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리고, 테라와다(Theravada) 불교뿐만 아니라 마하야나(Mahayana) 주요 종파들도 재탄생과 닙바-나(Nibbāna) 개념을 믿습니다. 불교에 관한 일부 인기있는 책을 쓴 ‘Stephen Batchelor’ 유형의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불교도들은 재탄생과 닙바-나(열반)를 믿습니다. 필자는 ‘세속 불교’라는 이름의 불교가 재탄생 및/또는 닙바-나를 반드시 믿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도덕적 삶과 명상이라는 불교의 다른 측면을 좋아하는 자들을 묘사하는 것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알고 있습니다).

  • * 따라서, 재탄생/닙바-나를 믿지 않는 불교도는 ‘모순된 말(oxymoron)’입니다. 빠알리어와 싱할라어에서 불교도는 ‘바웃다야(Baudhaaya)’로서, 재탄생 과정을 그치려는(Bhava + uddha) 노력을 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한 가지 의미는 ‘바와(bhava)’를 제거하여 재탄생 과정(윤회)을 멈추는 ‘길(path)’이나 ‘방법(method)’입니다. 붓다(Buddha)는 ‘바와(bhava)를 제거하고 닙바-나(Nibbāna)에 도달한 자’를 뜻합니다.

  • * 그러나, 재탄생을 억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재탄생은 윤회적 고통(괴로움)을 초래합니다. 각자는 이 생에서 숨겨진 다른 유형의 고통(괴로움)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지점에서 시작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지점을 찾아서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재탄생에 대한 믿음이 없어도 길을 가기 시작함’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4. 그러므로 각자는 [진정한] 불교도가 되기 전에 중간 상태에 해당하는 ‘세속적인 불교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을 ‘불교도’라고 선언하는(또는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 공식적으로 확립된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불교도인지 아닌지는 정말로 자신의 마음 속에 있습니다. 붓다께서는 분명히 각자는 자신의 [불교에 대한] 이해 수준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척할  필요가 없습니다. 각자가 믿는 것은 곧 그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충분히 알고 있는지 확실히 하는 것입니다.


  • * 계목을 암송하는 것으로 불교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붓다께서 말씀하신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이 세상의 참된 본질인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를 이해함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얻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리고 결국에는 재탄생 과정을 멈춤에 따라, 각자는 점진적으로 불교도가 됩니다.


5. 한편, 어떤 그릇된 견해는 붓다 담마에 따라 역효과를 낳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탄생 과정(윤회)이 없다는 확립된(견고한) 견해는 (강한)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중의 하나인 밋짜 딧티(micca ditthi)에 포함되며, 아빠야(apaya, 존재의 최하위 영역 4곳)에 태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재탄생을 반드시 확고하게 믿을 필요는 없으며, 최소한 재탄생도 가능하다는 것으로 여지를 남겨둘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니야따(niyata, 확립된) 밋짜 딧티(micca ditthi)를 갖지 않는 것입니다. 


  • *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 대한 믿음은 다른 종교와는 다릅니다. 재탄생(윤회) 또는 닙바-나(열반)에 대한 믿음은 신조(반드시 믿어야 하는 것)가 아닙니다. 어떤 자들은 그것들을 믿고 어떤 자들은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Is Buddha Dhamma (Buddhism) a Religion?’를 참조하세요. 사실을 살펴본 후, 특히 한 가지 고통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자신의 견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재탄생에 대한 믿음이 없어도 길을 가기 시작함’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6. 마지막으로, 현재 나와 있는 ‘불교’의 다양한 모든 버전을 자세히 살펴보려면 진정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붓다께서 열반에 드신 지] 2천 5백 년이 넘은 지금과 같이, 사람들은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자신들이 좋아하는 형태로 성형하려고 노력해 왔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 그렇게 많은 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었을 때, 붓다 담마의 독특함, 진짜 메시지가 사라집니다. 모든 사람이 당장 바로 그것(붓다 담마)을 파악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이해하면서, 이 독특한 메시지를 그대로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 * 핵심은 일관된 그림을 주지 않는 모든 버전 또는 측면을 버리는 것입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자연의 법칙을 설명하며 불일치(모순)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필자가 이 웹 사이트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웹 사이트에 일치하지 않는(서로 모순된)  내용이 보이면 필자에게 알려 주세요.

  • * 필자는 띠삐따까(Tipitaka, Pali Canon)를 기본으로 사용합니다. 이 띠삐따까(삼장)는 2,000여년 전에 (닙바-나를 경험하신 아라한에 의해) [문자로] 기록되었으며, 세 가지 주요 가르침, 즉 숫따(sutta), 위나야(vinaya), 및 아비담마(abhidhamma)를 아우르는 가장 오래된 문헌입니다.

  • * 필자는 띠삐따까(Tipitaka, 삼장)와의 불일치를 지적함으로써 마하야나(Mahayana)와 현재 테라와다(Theravada) 문헌에 있는 문제(결함)을 모두 문서화했습니다. 또한 필자는 모든 것이 자기 일관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이론의 타당성을 설명하는 과학적 근거입니다. 뉴턴의 중력에 대한 이론은 더 정밀한 측정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수정되어야 했습니다.

  • * 우리가 개인적으로 무엇을 믿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붓다께서 발견하신 진정한 자연법칙을 찾아야 합니다. 중력이나 운동 법칙과 같은 자연의 법칙은 우리가 믿는 것에 신경쓰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Why it is Critical to Find the Pure Buddha Dhamma’를 참조하세요.

  • * 순수한 형태의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지금까지 모든 시험(테스트)을 견디어 냈습니다. ‘Dhamma and Science – Introduction’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현재 마하야나(Mahayana)와 테라와다(Theravada)의 가르침은 모두 원래의 내용으로 다시 수정되어야 합니다. 붓다 가르침과 모순되는 것 외에도 두 분파 내에 자기 모순이 있음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Key Problems with Mahayana Teachings’ 포스트로 시작하여 이러한 ‘문제 영역’을 지적하는 일련의 포스트가 있습니다.


재탄생과 닙바나가 붓다 담마에서 ‘생명의 피(lifeblood)’이라는 것이 확립되면, 이제 우리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재탄생을 증명하는 어떤 증거가 있는가? 그렇게 심원하게 들리는 닙바나가 왜 그리 중요한 일인가?


A. 재탄생


필자는 재탄생에 대해 현재 나와있는 증거의 일부를 요약하였습니다. ‘재탄생(윤회)의 증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필자는 무엇이 증명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매우 분명합니다. 이로써 재탄생에 대한 강력한 사례가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많은 다양한 곳에서 나온 증거가 있으며, 그것은 부처님의 다른 가르침, 예를 들어 마노마야 까야(manomaya kaya)의 존재와 일치합니다. ‘Manomaya Kaya (Gandhabba) and the Physical Body’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어떤 사람이 거기에 제시된 단 하나의 증거만이라도 믿을 수 있다면, 그러한 두 생명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장거리로 서로 떨어져 있었던) 두 생명 사이에 육체적 연결이 없었기 때문에, 그 연결은 육체 영역의 밖, 즉 정신 에너지에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가정과 일치하는 ‘양자 얽힘’에서 새로운 증거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Quantum Entanglement – We Are All Connected’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하지만, 자신이 제4선정(자-나)을 개발하여 아빈냐 파워(abhinna power, 신통력)을 개발함으로써, 실제로 재탄생 과정을 검증(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전생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 마음의 힘 - 소개’ 포스트와, 이어지는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그런 신통력을 개발한 사람들이 일부 있으며, 그 사람들의 수가 증가할 수 있습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재탄생 과정을 확인할 수 있을 때, 그것은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자기 나라 밖으로 여행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그 모든 나라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들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설명을 믿기 때문입니다. 

  • * 그리고 최근의 증거는 적어도 이 생에서 실제로 끊기지 않는 기억 기록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이에 대해서는 ‘끊기지 않은 기억 기록(HSAM)에 대한 최근 증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B. 닙바나


1. 빠알리어와 싱할라어에서 ‘바-나(bāna)’는 ‘속박’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닙바-나(Nibbāna)는 (이 세상에) 속박됨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상요자나(sanyojana = san + yojana,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의 의미’ 참조)’라고 불리는 10개의 족쇄를 통해 끝없는 재탄생의 순환에 묶여 있습니다. ‘요자나(yojana)’는 ‘묶임’을 의미합니다. 상요자나(sanyojana)는 때때로 삼요자나(samyojana)라고도 합니다.


  • * 10개의 상요자나(sanyojana, 또는 samyojana)는 닙바-나의 4단계를 통해 제거됩니다. 3개는 소따빤나(수다원) 단계에서 제거되고, 2개는 사까다가미(사다함) 단계에서 감소되어 아나가미(아나함) 단계에서 제거되고, 나머지 5개는 아라한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 * 상요자나 10개를 없애면, 탐욕, 증오, 무지도 우리 마음에서 없어집니다.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는 4단계 각각에서 단계적으로 증가하고, ‘쿨링 다운(cooling down)’ 또는 ‘니와나(nivana)’는 완성됩니다. ‘닙바-나를 맛보는 방법’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닙바-나(Nibbāna)와 동의어가 많이 있으며, ‘니와나(nivana)’ 또는 ‘니위마(niveema)’는 그 중 하나입니다. 산스크리트어 명칭인 ‘니르와나(nirvana)’는 이러한 의미를 전하지 않습니다.


2. 마음이 깨끗해지면, 간단히 말하여 존재는 31영역의 어느 곳에도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은 완전한 해방과,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라는 조건지어지지 않은 행복을 얻습니다. 따라서 닙바-나(Nibbāna)는 재탄생 과정을 멈추는 것이고, 고통(괴로움)이 멈춥니다. 그렇게 간단합니다. 그 마음은 ‘31영역’의 어디에 있는 미세한 형태의 물질적 몸(쇠퇴하고 죽게 되어 있는 몸)도 붙잡을 수 없습니다. 마음은 쇠퇴와 죽음(고통, 괴로움)을 당하는 몸에서 자유로워집니다. 그것이 닙바-나(Nibbāna)입니다.


  • * ‘이 세상’의 용어(말)로 열반 경험을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넘어서는 ‘초월적(로꼿따라, lokottara)’입니다. ‘닙바나는 존재하지만 이 세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또한, 아라한의 죽음시에 일어나는 것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라한은 31영역의 이 세상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더 이상의 고통(괴로움)이 없습니다. [아라한의] 그 마음은 그렇게 많은 고통(괴로움)을 초래하는 육체적 몸에 속박되는 것에서 벗어납니다.

  • * 많은 사람들이 “무슨 괴로움(고통)? 나는 그렇게 많은 괴로움(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짜 괴로움(고통)은 최하위 4개 영역에 있습니다. 그 때문에 ‘존재의 31 영역에 대한 완전한 그림’이 중요합니다. 또한, 특히 젊었을 때 가려지는(감추어지는) 많은 괴로움(고통)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 높은 수준의 고통(괴로움)을 경험하기 시작하고, 그 다음 죽음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기 이 점을 잘 보여주는 비디오가 있습니다.


비디오 주소: https://youtu.be/4qILUJo4eLE


3. 그러나, 요점은 이 필연성에 대해 우울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노년을 생각하면서 우울해지고, 그리고 붓다께서 말씀하신 길을 따라가기 위해 모든 것은 포기하려고 합니다.


  • *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아라한과(Arahanthood)를 얻는 일을 시작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으며, 또한 권하지도 않습니다. (붓다 담마에 대한) 이해와 함께 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길을 따라 가면서 담마를 배우면, 열반적 즐거움(니라미사 수카, niramisa sukha)의 초기 단계를 느끼기 시작하고, 그래서 재탄생과 닙바-나(Nibbāna)와 같은 개념에 대한 ‘사실에 근거한 믿음’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세가지 유형의 행복 – 니라-미사 수카란 무엇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우울해 하는 불교 승려를 본 적이 있으세요? 그들은 의기소침한(우울한) 사람의 마음가짐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세상의 즐거움을 포기했습니다. 우울(의기소침)은 증오로 이어집니다. 진정한 포기는 지혜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요약에 불과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뒷받침하는 증거와 함께 이 웹사이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핵심은 우리가 관찰하는 모든 것,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완전한 붓다 세계관’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며, 그것(세계관)의 필수적 토대가 재탄생과 닙바-나(Nibbāna)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마음의 평화만이라면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각자는 붓다께서 제시하신 도덕적 삶에 대한 기본 지침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핵심 메시지는 이 100여년의 삶은 고통(괴로움)으로 가득한 재탄생 순환인 ‘거대한 대양’에 있는 ‘물 한방울’에 비교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메시지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최소한 증거를 비판적으로 검토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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