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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닙바나는 존재하지만, 이 세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원문 :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Nibbāna “Exists”, but Not in This World’ 포스트

- 2016년 9월 2일, 2017년 4월 17일 개정


1. 닙바-나(Nibbāna, 열반)에 대한 오해는 닙바-나의 진정한 의미가 수백 년 동안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 시리즈(열반 시리즈)의 이전 포스트에서는 닙바-나(Nibbāna)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문은 “아라한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아라한이 죽으면 이 31영역 세상의 어디에도 재탄생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빠리닙빠-나(PariNibbāna, ‘Pari + Nibbāna’, 반열반, 완전한 열반)라고 합니다.

* 빠리닙빠-나(PariNibbāna)에 들 때까지, 아라한은 보통 사람처럼 살며 ‘깜마 위빠까(kamma vipaka, 업 과보)’를 받게 됩니다. 이 기간의 닙바나(열반)를 ‘사우빠디세사 닙바-나(saupadisesa Nibbāna, 유여열반)’라고 하며, 이때는 아직 닙바-나(열반)가 완결되지 않았습니다.


2. ‘이 세상’에 뿌리를 둔 용어 측면에서는 닙바-나(Nibbāna, 열반)를 묘사하는 것(더 정확하게 말하면, 빠리닙바-나 후에 일어나는 일을 묘사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세상) 용어’도 닙바-나(Nibbāna)가 무엇과 같은 지를 설명하는 데 사용할 수 없습니다.


* 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닙바-나(Nibbāna)에 관련된 어떤 데이터(정보)나 개념이나 용어를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열반은 완전히 이질적이고 낯선 것이기 때문입니다.

* 하나의 투박한 비유를 들면, 열반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물고기에게 물 밖의 삶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고기에게) 어떻게 물 대신에 공기로 호흡하는 것이 필요한지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고기는 공기로 호흡할 수 있는 육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또 하나의 투박한 비유는 수천년 전에서 현재로 시간여행을 한 사람에게 (처음부터) 라디오나 TV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람은 라디오나 TV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데이터(정보)를 갖고 있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닙바-나(Nibbāna)는 그것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31영역 세상으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 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aya)의 우다나(Udana) 섹션에는 닙바-나(Nibbāna)를 설명하는 4개의 숫따(sutta, 경)가 있습니다(Udana 8.1에서 8.4까지). 첫 번째는 ‘Paṭhama nibbāna paṭisaṃyutta Sutta’이며, https://legacy.suttacentral.net/pi/ud8.1 주소의 사이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위 주소의 사이트에서 숫따(sutta, 경)를 열고, 가장 왼쪽의 드롭 다운을 클릭하여 여러 언어 중에서 선택하여 보세요. 사이트에서는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유용하다고 생각하면 기부를 고려할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필자는 위 사이트의 운영 또는 운영자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 물론, [위 주소의 사이트도] 많은 사이트과 마찬가지로 주요 빨리(pali) 용어에 대해 그 번역이 빈번히 부정확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빨리(pali)판은 볼 수 있습니다.


3. 첫 번째 경인 ‘Paṭhama nibbāna paṭisaṃyutta Sutta’를 보겠습니다. 빨리(pali)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앗티, 빅카웨, 따다-야따남, 얏타 네와 빠타위-, 나 아-뽀, 나 떼조, 나 와-요, 나 아-까-사-난짜-야따남, 나 윈냐-난짜-야따남, 나 아-낀짠냐-야따남, 나 네와산냐-나-산냐-야따남, 나-얌 로꼬, 나 빠라로꼬, 나 우보 짠디마수-리야-..(Atthi, bhikkhave, tadāyatanaṃ, yattha neva pathavī, na āpo, na tejo, na vāyo, na ākāsānañcāyatanaṃ, na viññāṇañcāyatanaṃ, na ākiñcaññāyatanaṃ, n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nāyaṃ loko, na paraloko, na ubho candimasūriyā..”


* 첫 부분인 ‘앗티, 빅카웨, 따다-야따남(atthi, bhikkhave, tadāyatanan)’을 검토해 봅시다. 여기서, ‘앗티(atthi)’는 ‘존재하다’를 의미하고, ‘따다-야따나(tadāyatana)’는 닙바-나(Nibbāna, 열반)의 또 다른 말입니다. ‘따다-야따나(tadāyatana)’는 ‘tath’와 ‘āyatana’를 합성해서 나온 말입니다. 여기서 ‘따스(tath)’는 ‘결점없이 완전한’을 의미하고 ‘아-야따나(āyatana)’는 ‘능력 또는 기능’을 의미합니다. 음성학적으로 결합된 말은 ‘따다-야따나(tadāyatana)’입니다.

* 따라서, 첫 부분의 번역은 ‘빅쿠들이여, 닙바나(열반)는 (모든 것이 결점없이 완전한 곳으로) 존재한다.’입니다.


4. 나머지 구절은 “거기에는 빠따위(pathavī, 지대), 아-뽀(āpo, 수대), 떼-조(tējo, 화대), 와-요(vāyo, 풍대) [이 4개를 사따라 마하-부-따, satara mahābhūta 라고 함]가 없다. 거기에는 아-까-사-난짜-야따나(ākāsānañcāyatana, 공무변처), 윈냐-난짜-야따나viññāṇañcāyatana, 식무변처), 아-낀짠냐-야따나(ākiñcaññāyatana, 무소유처), 네와산냐-나-산냐-야따나(nevasaññānāsaññāyatana, 비상비상처)가 없다. 또한, 거기에는 이 세상(우리가 경험하는 세상)도 없고, 빨라로웨아(간답바_gandhabba가 사는 곳, ‘Hidden World of the gandhabba: Netherworld (Paralowa)’ 포스트 참조)가 없다. 그리고 달이나 태양은 거기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입니다. 짠디마수-리야-(candimasuriya)는 ‘chandra(찬드라, 달)’과 ‘sūriya(태양, 수-리야)’를 합성한 말입니다.


*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자-나_jhāna’를 포함)은 위 #2에서 검토된 빠리닙바-나(PariNibbāna) 이후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가 쓰는 의미의 용어는 거기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5. 한 때, 이교도인 왓짜곳따(Vaccagotta)가 ‘아라한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으로, ‘아라한은 어디로 갑니까?’라고 붓다께 물었습니다. 상윳따 니까야(Samyutta Nikāya)의 왓짜곳따왁가(Vaccagottavagga)에 있는 일련의 숫따(sutta, 경)에서 문답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 붓다께서는 불꽃이 일어나는 불을 왓짜곳따에게 보여주면서, ‘이 불이 꺼지면, 이 불이 어디로 간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왓짜곳따는 이 물음의 의미를 이해했습니다. 불이 꺼지면 단지 그 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바로 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불의 비유와 같이, 아라한이 죽으면, 아라한은 다시 태어나지 않으므로 31영역의 어느 곳에서도 발견될 수 없습니다.

* 반면에, 쭈뚜-빠빠-다 냐-나(cutūpapāda ñāna)로 신통력을 가진 자는 보통 사람이 죽은 후에 재탄생하는 곳을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의 삶의 흐름은 31영역 중에서 어떤 한 곳에 계속됩니다.


6. 붓다께서는 이 세상의 불만족한 특성(아닛짜_anicca 특성)을 보고 세상 것에 대한 갈망을 포기함으로써 닙바-나(Nibbāna)를 얻는 방법만 단지 우리들에게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열반을 얻거나 얻지 않는 것은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 붓다께서는 ‘라-각카요 닙바-난, 도-삭카요- 닙바-난, 모-학카요- 닙바난(Rāgakkhayo Nibbānan, dōsakkhayō Nibbānan, Mōhakkhayō Nibbānan)’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우리 마음속의 라-가(rāga, 탐함), 도-사(dōsa, 성냄), 모-하(Mōha, 미혹함)을 제거하여 닙바-나(Nibbāna)를 얻습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닙바나(열반)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 그러나,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이를 때까지는 라-각카야(rāgakkhaya, 탐함 제거)‘를 시작하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라-각카야(rāgakkhaya)는 까-마 라-가(kāma rāga, 감각적 욕망)의 제거를 통해 아나-가미(Anāgami, 아나함, 불환에 자) 단계에서 부분적으로 달성되며, 루-빠 라-가(rūpa rāga, 색계에 대한 갈망)와 아루-빠 라-가(arūpa rāga, 무색계에 대한 갈망)의 제거를 통해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에서 완전히 달성됩니다.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는 도-사(dōsa)를 빠띠가(patigha) 수준으로, 모-하(Mōha)를 아윗짜(Avijja) 수준으로 줄였습니다. 빠띠가(patigha)는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서 제거되고, 아윗짜(Avijja)는 아라한뜨(Arahant)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 새로운 섹션인 ‘Living Dhamma(리빙 담마)’ 섹션에서, 이러한 점에 대해 언급하며, 재탄생과 같은 깊은 레벨의 개념을 언급하지 않고 기초 수준에서 시작합니다.


7. 요점은 닙바-나(Nibbāna, 열반)가 단계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가장 먼저 경험해야 할 단계는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이르기 전에도 경험할 수 있는 닙바-나(Nibbāna)의 첫 단계인 니웨-마(Niveema) 또는 ‘불이 사그라드는 것(cooling down)’입니다. 실제로, 이 단계를 건너뛰고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마음이 그 개념을 파악할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덮고 있는 거친 오염원, 즉 빤짜니와-라나(pancanivārana, 다섯가지 장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 이를 위해,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붓다 담마를 숙고하기 시작해야 하며, 그 결과로 일어나는 니웨-마(Niveema, 불이 사그라드는 것)를 경험해야 합니다.


8. 닙바-나(Nibbāna, 열반)가 무엇인지에 대한 심오한 개념을, 읽음으로써 닙바-나(열반)를 얻거나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니라-미사 숙카(nirāmisa sukha) 또는 쿨링 다운(cooling down, 불이 사그라드는 것) 조차 경험하지 못했을 사람들에 의해, 닙바-나(열반)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책들이 너무나 많이 출판되어 있습니다.


* 그들은 수냐따(sunyata, 공)와 보디찟따(bodhicitta, 보리심)와 같은 개념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What is Sunyata or Sunnata (Emptiness)?’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는 앞에서 보았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로 닙바-나(Nibbāna, 열반)를 기술할 수 없기 때문에 완전히 시간 낭비입니다.

* 그보다, 사람은 닙바-나(Nibbāna)를 단계적으로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사람은 도덕적 삶을 시작하고 단계적으로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행)를 버리기 시작할 때 나타나는 경감(사그라듬)을 경험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 더군다나, 아닛짜(anicca) 특성을 처음으로 이해하기 까지는 (해탈 열반에 이르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탈 열반에 이르는 길을 감에 따라) 아닛짜(anicca) 특성은 점차적으로 분명해질 것입니다.

* 붓다께서는 ‘마하 찻따리사까 숫따(Maha Chattarisaka Sutta)’에서 점진적인 길을 따르는 것의 중요성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Maha Chattarisaka Sutta (Discourse on the Great Forty)’ 포스트와 ‘Buddha Dhamma - In Chart’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재탄생을 믿지 않는 사람조차도 그 레벨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Living Dhamma(리빙 담마)’ 섹션의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9. ‘The Grand Unified Theory of Dhamma – Introduction’ 포스트에서,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4개의 궁극적인 요소(paramatta dhamma, 빠라맛따 담마)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4개의 궁극적인 요소(paramatta dhamma, 빠라맛따 담마)는,

1. 생각(찟따, citta)

2. 생각의 질 또는 정신 요소(쩨-따시까, cētasika)

3. 물질(루빠, rūpa)

4. 열반(닙-바나, Nibbāna)입니다.


처음 3개는 이 31영역 세상으로 존재합니다. 닙바-나(Nibbāna)는 31영역 내에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즉 닙바-나(Nibbāna)는 달성될 수 있습니다.


10. 마지막으로,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성자, 즉 닙바-나(Nibbāna, 열반)를 달성한 사람의 관련 특성에 대해 언급해 봅시다. 한 번에 최대 7일 동안 가능한 니로-다 사마빳띠(Nirōdha Samapatti)에 들지 않는 한, 아라한 성자는 열반의 행복(열반을 경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 아라한뜨(Arahant) 성자가 니로-다 사마빳띠(Nirōdha Samāpatti)에 있을 때, 그 성자의 마음을 통해 흐르는 찟따(citta, 생각)는 없습니다. 그 상태에서는 호흡이 없으며 사체(시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요점은 아라한뜨(Arahant) 성자가 우리에게 ‘닙바-나의 경험’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로, 그 성자가 우리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세상 생각들’도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뿐입니다.

* 다른 때에, 아라한뜨(Arahant) 성자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경험할 것이며, 그 성자는 사람 또는 사물, 소리, 냄새 등을 인식할 것입니다. 유일한 예외는 라-가(rāga, 욕망), 도-사(dōsa, 성냄), 모-하(Mōha, 미혹함)로 짐 지어진 생각은 발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 아름다운 정신요소)나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 아름답지 않은 정신요소)는 아라한의 생각(찟따)과 연합하지는 않습니다. ‘What Are Kilesa (Mental Impurities)? – Connection to Cetasik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그러나, 아라한 성자는 붓다의 행과 마찬가지로 뿐나 끼리야(punna kriya, 법을 설하는 것과 같이 중생에게 도움되는 행)로 활동합니다. 이 활동은 단지 ‘행위’일 뿐이며, 뿐나-비상카-라(punnābhisankhāra, 공덕행) 또는 뿐나 아비상카-라(punna abhisankhāra)는 아닙니다.


11. 여기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어떤 아라한은 육체가 죽을 때, 남아있는 ‘인간 바와(human bhava)의 업력이 일정기간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Bhava and Jati – States of Existence and Births Therein’ 포스트를 보세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아라한도 이 세상에 또 다른 재탄생을 하지는 않습니다.


* 그 이유는 ‘아라한 성품(Arahanthood)의 간답바 상태’는 그 (현생의) 조밀한 몸 외에 다른 몸을 지니거나 다른 몸으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인간으로 거듭나려면 ‘인간 간답바(human gandhabba)'는 죽은 사람의 육체에서 나와야 합니다(이에 대해서는 ‘gandhabba (Manomaya Kaya)’를 참조하세요). 그러나 육체에서 나온 간답바의 미세한 몸(trija kaya = kammaja kaya + cittaja kaya + utuja kaya)은 아라한과 관련된 에너지를 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식으로, 데와(deva, 천신)나 브라흐마(brahma, 범천)의 미세한 몸도 아라한과 관련된 에너지를 품을 수 없습니다.

* 우리는 (업력이 남아 있는 아라한의 육체가 죽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분명하게 알기 위해 다음과 같은 비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히터 코일이 물에 잠겨 있을 때, 물이 끓고 있을 때에도 히터 코일을 통과하는 전류를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에서 코일을 꺼내면 타버릴 것입니다. 히터 코일이 물 속에 잠기지 않는 한, 히터 코일을 통과하는 전류에 견딜 수 없습니다.

* 이와 같은 식으로, ‘아라한 성품(Arahanthood)의 간답바 상태’는 그 생의 ‘사람 몸’ 내에서만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일단, 아라한 성품이 된 간답바(gandhabba)가 그 ‘사람 몸’에서 나온다면(육체가 죽으면), 아라한 성품(Arahanthood)은 그 극도로 미세한 정신적 몸(아라한 성품의 간답바)으로 별도로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아라한 성품(Arahanthood)의 성자가 되면 7일 이상은 더 재가자로 살 수 없습니다. 일단 아라한 성품(Arahanthood)에 이르면 그 성자는 7일 내에 빅쿠(Bhikkhu, 출가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며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재가자의 그 재가생활은 아라한 성품의 성자에는 맞지 않아 재가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이 때문에 아라한의 육체적 죽음을 빠리닙바-나(pariNibbāna)라고 합니다. 빠리닙바-나(pariNibbāna)는 닙바-나(Nibbāna)의 완결(완성)입니다. 싱할라(Sinhala)어로는 삐리니와나(pirinivana)라고 합니다. 니와나(nivana)는 닙바-나(Nibbāna)를 의미하고, 삐리누(pirinu)는 ‘완전한’ 또는 ‘완결(완성)된’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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