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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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답바가 사는 보이지 않는 세계: 하계(빠라로까)

 

원문: Abhidhamma 섹션의 ‘Hidden World of the Gandhabba: Netherworld (Paraloka)’ 포스트

- 2016년 2월 18일 작성; 2016년 4월 5일 업데이트; 2021년 7월 14일 개정

 

간답바는 인간이다

 

1. 유정체(중생)가 인간 바와(human bhava)를 얻는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인간 몸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필자는 논의했습니다. ‘바와 및 자띠 - 존재 상태와 거기로 태어남’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예를 들어, 사람이 죽어도 여전히 인간 바와의 깜마 에너지(kammic energy)가 남아 있을 때, 곧바로 인간 아기(human baby)로 잉태될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죽을 때, 미세한 몸으로 된 인간 간답바(human gandhabba)는 시체를 떠나 적절한 자궁을 사용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그 상태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적절한 자궁을 기다리고 있는 그런 인간 간답바(human gandhabba)는 많이 (셀 수 없이?) 있습니다.

  • * 이것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렇게 존경받을 만한 한 가지 이유입니다. 어떤 경우에 그들(부모)이 아무리 나쁘다 할지라도, 어떤 간답바(ganghabba)가 인간 몸을 가질 수 있게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그 간답바, 즉 자식로부터] 매우 존경받을 만하게 됩니다.

 

간답바는 육체가 없는 인간(또는 동물)이다

 

2. 존재(중생)는 인간의 몸과 관련된 감각적 즐거움을 갈망하기 때문에 인간으로 태어납니다. [그런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소중한) 것은 맛과 육체적 즐거움입니다. 간답바(gandhabba)는 0.01g보다 훨씬 작은 무게이며 우리가 볼 수 없는 에너지 몸(energy body)을 가지고 있습니다. ‘Manomaya Kaya (Gandhabba) and the Physical Body’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쭈띠-빠띠산디(cuti-patisandhi) 순간에 태어난 간답바(gandhabba)는 현대 과학의 원자보다 훨씬 작습니다. 일부는 향기(‘아로마_aroma’, ‘간다_gandha’)를 흡입하여 좀 더 조밀해질 수 있으며, 그래서 간답바(gandhabba, ‘gandha’ + ‘abba’)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 * 간답바(gandhabba)는 고형의 음식을 맛보거나 신체 접촉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주 잘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상적인 사람들이 ‘즐거운 활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그 활동을 하지 못하여] 비참합니다. 그 활동은 그들도 갈망하는 것이지만, 그들은 그 활동들을 경험할(즐길)  수 없습니다.

  • * 성관계의 결과로 자궁에서 접합자(zygote, 수정란)가 생성될 때(‘임신, 낙태, 및 피임에 대한 불교의 설명’ 포스트 참조), ‘그 접합자를 붙잡기’를 기다리는 간답바가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물론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아버지, 그리고 특히 어머니의 가띠(gati)에 매칭되는 간답바(gandhabba)만이 자궁으로 끌어당겨집니다.

 

3. 그러므로, 인간 ‘바와(bhava)’가 수천 년 동안 지속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사람 육체(물질적 몸)로 태어나는(인간 자-띠, human jāti)’ 실제 시간은 그 기간 중의 아주 적은 일부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왜 그렇게 소중하며 그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한  또 다른 이유입니다.

 

  • * 31가지 영역 중에서, 인간 영역과 동물 영역에서만 바와(bhava)가 계속되는 중에 물질적 몸이 때때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동물 바와(animal bhava) 내에서, 어떤 동물들은 알을 통해 태어나는 한편, 다른 어떤 동물들은 자궁을 통해 태어납니다. 어떤 주어진(특정) 시간에 [매칭되는] 적절한 자궁을 기다리는 ‘동물 간답바(animal gandhabba)’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간답바는 빠라로까에 산다

 

4. 인간 간답바(human gandhabba)와 동물 간답바(gandhabba)는 모두 ‘빠라로까(paraloka)’에 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밋차- 딧티, 간답바, 및 소-따빤나 단계’를 참조하세요. 그 빠라로까는 그곳의 간답바들은 우리를 볼 수 있어도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세계입니다. 물론, 그것에 대한 영어 낱말은 없지만, 'netherworld(하계)'나 'hidden world(숨겨진 세계)'라는 낱말이 그 의미를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 * 빠라로까(paraloka)는 31영역에서 별개의 영역이 아닙니다. 인간 영역과 동물 영역이 공존하는 것처럼, 빠라로까는 인간 영역과 동물 영역과 공존하지만, (신통력을 개발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일반적으로 빠라로까에 있는 그런 존재를 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인간 간답바와 동물 간답바가 있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 * 발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빠라로와(paralowa, පරලොව)는 빠알리(Pāli) 낱말인 빠라로까(paraloka)에 대한 싱할라어 낱말입니다.

  • * 발음: https://puredhamma.net/wp-content/uploads/Paralowa.mp3

  • * ‘인간(또는 동물) 바와(bhava)’를 가진 이들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이 세계’나 ‘빠라로까(paraloka, 하계)’, 즉 ‘숨겨진 세계(netherworld)’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 * 많은 사람들이 ‘빠라로까(paraloka)’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간답바 개념과 마찬가지로)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청정도론)에서 그것이 논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테라와다(Theravada) 불교가 띠삐따까(Tipiṭaka, 빠알리 삼장)보다 (범부 중생에 의해 저술된) 위숫디막가(Visuddhimagga)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띠로꿋따 ㅡ ‘벽을 통과할 수 있음’

 

5. 쿳다까빠-타(Khuddakapāṭha)의 ‘띠로꿋따 숫따(Tirokuṭṭa Sutta, kp 7)’는 자신이 떠난 집 주위를 서성거리는 ‘띠로꿋따(tirokuṭṭa)’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숫따에 대한] 영어 번역은 Outside the Walls’에서 볼 수 있습니다.

 

  • * ‘띠로꿋따(tirokuṭṭa)’라는 낱말의 의미는 ‘두띠야사마나브라-흐마나(Dutiyasamaṇabrāhmaṇa Sutta, 51.17)에서 분명합니다. “띠로꿋땅 띠로빠-까-랑 띠로빱바땅 아삿자마-나- 아가맘수, 세이야타-삐 아-까-세(tirokuṭṭaṁ tiropākāraṁ tiropabbataṁ asajjamānā agamaṁsu, seyyathāpi ākāse)”라는 구절이 그 숫따(sutta)의 시작 부분에 있습니다. 그 의미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벽, 성벽, 산을 방해받지 않고 통과한다”입니다.

  • * 그러므로, ‘띠로꿋따(tirokuṭṭa)’는 벽을 방해받지 않고 통과하여 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잇디(iddhi, 신통)력을 가진 사람들은 두띠야사마나브라흐마 숫따(Dutiyasamaṇabrāhmaṇa Sutta)(51.17.)에 자세히 설명된 대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띠로꿋따 숫따(Tirokuṭṭa Sutta)(kp 7)는 특히 죽어서 자신들의 정식 집[이전에 살던 집]에 돌아와 집 주위를 서성거리는 사람들에 관한 것입니다. 이들은 간답바(gandhabba)나 쁘레따/뻬따(preta/peta, 아귀)일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간답바(gandhabba)는 쁘레따/뻬따(preta/peta, 아귀)가 아닙니다. 쁘레따(preta, 아귀)는 인간 간답바와 동물 간답바처럼 조밀한 몸을 만들지 않습니다.

 

쁘레따는 간답바와는 다르다

 

6. 사람이 죽은 후, 빅쿠(bhikkhu)들에게 특별 공양(다-나, dāna)을 하는 배후의 생각은 주로 간답바(gandhabba) (그리고 또한 ‘쁘레따_preta’)들의 이익/이득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 국가에서 행해지는 흔한 관습입니다. 보통 죽은지 7일, 3개월 후 등에 행해지는데, 그 특정 날짜에 대한 이유는 추후 포스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 모든 존재가 공덕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니라야(niraya, 지옥)에 있는 자들은 공덕을 받을 바른 마음가짐이 아니기 때문에(‘사마난따라 빠짜야-’가 없음), 공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난따라와 사마난따라 빳짜야-’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가장 혜택(이득/이익)을 볼 수 있는 자들은 간답바(gandhabba)와 쁘레따(preta, 아귀)입니다.

  • * 또한, 간답바(gandhabba)는 쁘레따(preta, 아귀)나 니라야(niraya)의 지옥 중생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간답바(gandhabba)만이 적절한 자궁을 기다리며 빠라로까(paraloka)에 삽니다. 쁘레따와 지옥 중생은 데와(deva, 천신)와 브라흐마(Brahma)와 마찬가지로 순간적으로 탄생(opapatika, 화생)합니다.

 

7. 붓다께서 깨달음을 이룬 날의 밤에 처음으로 쭈뚜-빠빠-다 냐-나(cutūpapāda ñāna)를 이해(성취)하셨을 때, 붓다께서는 인간 존재들이 생에서 생으로 방황하는 것을 어떻게 보셨는지에 대해 설명되어 있습니다. ‘쭈뚜-빠빠-다(cutūpapāda)’는 죽음을 의미하는 ‘쭈띠(cuti)’와 태어남을 의미하는 ‘우빠빠-다(upapāda)’에서 유래합니다.

 

  • * 따라서, 쭈뚜-빠빠-다 냐-나(cutūpapāda ñāna)는 재탄생 과정에 대한 앎입니다. 그러나 이 특정 설명은 하나의 인간 바와(human bhava)와 관련된 태어남과 죽음으로 한정되었습니다.

  •  

 

8. 부처님의 그 묘사는 31영역 전체에 걸쳐 윤회하는 일반적인 윤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 바와(human bhava)의 존재가 한 인간에서 다른 인간으로 태어나고 그 사이에 간답바 상태로 지내며 어떻게 떠돌아다니는지(즉, ‘우리가 볼 수 있는 이 세계’와 ‘우리가 볼 수 없는 다른 세계’인 ‘빠라로까_paraloka’ 사이를 왔다 갔다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 * 그 묘사(설명)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거리 교차로에서 건물의 상층에 있으면 아래 거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거리에서 왔다갔다하는(서성이는) 많은 사람들(왔다갔다하는 간답바)을 볼 수 있습니다. 가끔 어떤 사람이 어떤 집에 들어가 오랫동안 머물기도 합니다. 이것은 간답바(gandhabba)가 자궁에 들어가서 자신의 물질적 몸(육체)을 만드는 것에 비교됩니다. 그 집은 물질적 몸(육체)대한 비유입니다.

  • * 그리고 그 물질적 몸(육체)이 [제기능을 못하고] 죽을 때, 간답바(gandhabba)가 [육체에서] 나와서 다시 떠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거리를 걷는 사람에 비유됨). 그 사람(간답바)은 ‘또다른 집’에 들어가기 전에 (매칭되는 자궁에 들어갈 기회를 얻기 위해) 오랫동안 거리를 떠돌아다니고 있을 수 있습니다.

  • * 때로는 집에 들어갔다가 바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임신이 실패한 것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간답바(gandhabba)가 접합자(zygote, 수정란)를 붙잡고 있지만, 어떤 이유로 거기에 머물 수 없고 나와야 하는데, 이것은 대부분 잠재적 어머니의 ‘가띠(gati)’와 매칭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 * 따라서 그 숫따(sutta)는 ‘이 세상’과 ‘저 세상(netherworld, paraloka, 하계)’ 사이를 오가는 사람(간답바)을 묘사(설명)합니다. 인간 바와(human bhava)의 깜마 에너지가 고갈되면, 새로운 바와(bhava)가 붙잡아집니다.

  • * 만약 새로운 바와(bhava)가 사람이나 동물이 아니라면, 다른 영역(브라흐마, 데와, 아수라, 쁘레따, 또는 니라야)에 순간적으로 태어날 것입니다. 간답바(gandhabba)는 그 다른 영역들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 * 따라서 우리는 바와(bhava)와 자-띠(jāti)가 다른 모든 영역에서는 동일한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영역들에서 바와(bhava)는 자동적으로 자-띠(jāti)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데와(deva, 천신) 바와를 가진 자는 항상 데와(천신)입니다.

 

인간 몸으로 재탄생

 

9. 사람들(대부분 어린이들)의 재탄생 이야기를 묘사하는 진술을 연구하면, 태어남 사이에는 항상 ‘간격(틈)’이 있습니다. ‘재탄생(윤회)의 증거’ 포스트에 인용된 참고 문헌(도서)을 참조하세요. 예를 들어, 이안 스티븐슨(Ian Stevenson)의 ‘Children Who Remember Previous Lives: A Question of Reincarnation’(2000)을 참조하세요.

 

  • * 연속하여 인간으로 태어남 사이의 ‘간격(틈)’ 동안, 그들은 간답바(gandhabba) 상태, 즉 빠라로까(paraloka) 상태에 있었습니다.

  • * 특히 젊은 나이에 사고로 사망한 경우, 인간 바와(human bhava)의 업 에너지(kammaic energy)가 고갈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적절한 자궁을 기다리며 간답바 상태에 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 * 이 때문에, 대부분의 재탄생 이야기는 그 전생이 예상치 못한 사건(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함,  자연 재해 등)으로 끝난 경향이 있습니다.

  • * 이 '전생의 기억'은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사라지는데, 그 때문에 전생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어린이들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이 기억들은 점차 사라집니다.

 

10. 간답바(gandhabba)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합니다. 실제로 간답바가 위의 #6에서 언급한 공양(다-나, dāna)으로 공덕을 제대로 받으면 데와 바와(deva bhava) 또는 브라흐마 바와(Brahma bhava)을 얻어 그런 영역에 즉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 * 반면에, 이전의 인간 생에서 동물(예를 들면, 개)에 걸맞는 행위를 해왔던 또다른 인간 간답바(human gandhabba)는 그 간답바로서 그 ‘개 상카-라(dog sañkhāra)’를 길러서, 빠라로까(paraloka)에 있는 동안 서서히 개 간답바(dog gandhabba)로 변형할 수 있습니다.

  • * 이 가능성들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삶이 얼마나 복잡한지, 그리고 왜 우리가 행위의 결과에 유의해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기계적으로 행하는 것을 피하고 공양 보시(dāna, 다-나)와 같은 공덕행을 할 때도 그 이면의 이유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필자는 '파티를 하는 것과 같은' 분위기(즐기는 분위기)에서 공양 보시를 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간답바(gandhabba)를 염두에 두고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보시를] 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관련 문제

 

11. 추론으로 또다른 흥미로운 부분은 고대 힌두 요기(Hindu yogi)들이 어떻게 영혼 또는 아-트마(āthma) 개념을 확립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전생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하는 더 높은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네번째 자-나 이상)를 얻기 위해서도, 최근에 인간 생을 통해 자-나(jhāna)를 육성하는 가띠(gati)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강력한 아빈냐-(abhiññā, 신통) 력을 가진 수행자는 최근에 많은 인간 생을 가졌을 것으로 예상(추측)이 가능합니다.

 

  • * 따라서 그런 요기(yogi)는 수없이 인간으로 태어났을 수 있습니다(그 사이의 간답바 상태를 포함). 자신들의 전생을 보았을 때, 그들은 [육체적으로] 죽을 때마다 간답바(gandhabba)가 사체에서 나와서 머지 않아 또다른 인간 몸을 잡았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 간답바(gandhabba)가 파괴될 수 없는(불멸의) 아-트마(āthma), 즉 영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생을 뒤돌아보고 항상 그들이 인간으로 거듭 태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 따라서, 힌두 경전인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에서, 새로운 몸을 잡는 것은 낡은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입는 것에 비교됩니다. 그 요기(yogi)들이 볼 수 있는 것으로는, 다른 외모로 돌아온 동일한 간답바(gandhabba)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불변의 실체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환생(reincarnation)’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12. 우리 세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붓다께서는 오직 붓다만이 이 세상의 그 복잡함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4가지 ‘생각(상상)조차 할 수 없는, 즉 ‘아찐떼이야(acinteyya)’ 주제가 있습니다. ‘Acinteyya Sutta(AN 4.77)’를 참조하세요. 영어 번역은 ‘Unconjecturable’에서 볼 수 있습니다.

 

  • *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그리고 이해할 수 없지만), 이 개념들을 적어도 어느 정도 배우는 것은 유익합니다.

  • * 아닛짜(anicca)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심도있는 분석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특히 요즘 사람들은 아닛짜(anicca)를 바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담마(Dhamma)를 배우고 부처님의 비할 데 없는 앎을 인식(이해)하는 것은 자신감(확신, 신뢰)을 주어 끈기있게 노력을 계속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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