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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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꾸살라 찟따 - 소따-빤나는 어떻게 아빠-야가-미 찟따를 피하는가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Akusala Citta – How Does a Sotāpanna Avoids Apayagami Citta’ 포스트

 

1. 먼저 제목을 명확히 해야겠습니다. 물론, 찟따(citta)는 생각들입니다. 모든 깜마(kamma)는 마노 상카-라(mano saṅkhāra)로 시작합니다. 즉,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고, 그것은 휠링(wheeling, 굴리기) 또는 리야(riya) 과정에 의해 말과 몸 행위로 확대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닙바나’ 서브 섹션에 있는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 * (아비)상카-라를 완전히 그치는 것은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가 될 때만 일어납니다. 그러나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 도달한 후, 이 휠링(wheeling, 굴리기) 과정은 특정 유형의 초기 생각들(찟따, citta)에 대해서는 그칩니다.

 

2. 우리는 아빠-야(apāya)가 가장 낮은 4가지 존재 영역(사악처)을 흔히 지칭하는 용어라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붓다 담마’ 섹션의 ‘대통합 이론인 담마’ 서브 섹션에 있는 포스트들을 보세요. 아빠-야가-미 찟따(apāyagāmi citta)는 사악처에 재탄생하는 원인이 되는 강력한 깜마(kamma)로 이어지는 것들입니다. 아빠-야가-미(apāyagāmi)는 ‘아빠-야(apāya)’ + ‘가-미(gāmi)’로 합성된 말이며, 여기서 가-미(gāmi)는 ‘~로 향하게 하는’의 뜻입니다.

 

3. 그러면, 어떤 찟따(citta, 생각)가 휠링(wheeling, 굴리기) 또는 ‘생각 과정(thought process)’에서 시작되어 매우 나쁜 결과, 즉 아빠-야-(apāyā)에 태어남과 같은 결과가 되는 말이나 몸 행위로 이어질까요? 이것들은 ‘이 세상의 본질(특성)’, 즉 띨락카나(Tilakkhana)인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생각들입니다.

 

일어날 수 있는 89가지 찟따(citta) 중에서 12가지가 부도덕한 찟따(citta)입니다. (89가지 찟따는 ‘The 89 Types of Citt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로바(lobha, 탐함) 뿌리가 있는 8가지; 여기에는 모하(moha) 뿌리도 있음. 

  • * 도사(dosa, 미워함, 악의) 뿌리가 있는 2가지; 여기에는 모하(moha) 뿌리도 있음.

  • * 모하(moha, 무지함) 뿌리만 있는 2가지.

 

10가지 부도덕한 행위(다사 아꾸살라, dasa akusala)는 모두 이 12가지 유형의 찟따(citta)로 행해집니다.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에 대해서는  ‘10가지 부도덕한 행위(다사 아꾸살라)’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4. 우리는 ‘행복을 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갖고 싶어하기’ 때문에 탐욕스러운 생각을 일으킵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우리는 방해하는 자를 향하여 미워하거나 악의를 일으킵니다.

 

  • *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것으로도 영원한 행복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위 두 가지 유형의 행위를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러한 나쁜 행위를 함으로써 바로 현생에서나 내생에서나  미래에 나쁜 결과를 가져올 나쁜 깜마(kamma)를 축적(즉, 업 에너지를 축적)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 * 그래서,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특성)에 대한 무지는 탐함과 미워함으로 행해진 모든 나쁜 행위의 원인입니다. 이 때문에 그 모든 것에 모하(moha) 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지를 비교하는 것 등과 같이, 단지 무지에 기초해서만으로도 어떤 나쁜 행위를 합니다.

 

A. 무지를 뿌리로 하는 2가지 찟따(citta)는 다음과 같습니다.

 

  • * 하나는 위찌낏짜(vicikicca)와 관련된 것입니다. 위찌낏짜(vicikicca)는 ‘위치(vichi)’ + ‘끼(ki)’ + ‘이취차(ichcha)’로 합성된 말이며, 왜곡된 견해, 즉 딧티(diṭṭhi)를 바탕으로 좋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위찌낏짜(vicikicca)는 ‘진실한 세계관에 대한 의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심’으로 묘사됩니다. 갈고리를 보지 못하여 미끼를 무는 물고기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고 자신에게 해로운 그런 행위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세상 것들을 움켜 잡습니다.

  • * 또 하나는 웃닷짜(uddhacca, 안절부절못함 또는 동요)와 관련된 것입니다. 이것은 사마디(samadhi) 또는 집중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행위의 결과를 통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을 안다고 해도 웃닷짜(uddhacca)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작없는 상사라(saṃsāra)를 통해 축적된 모든 오염물의 누적 결과입니다. 이것은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에서만 완전히 제거됩니다.

 

12가지 유형의 찟따(citta)는 모두 무지를 뿌리로 하고 있습니다. 위 2가지 유형에서는 1차로, 나머지 10가지 유형에서는 2차로 무지를 뿌리로 하고 있습니다. 이 10가지 찟따는 다른 방식으로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즉, 그런 찟따(citta)가 위찌낏짜(vicikicca,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을 알지 못함으로 인한 의심)로 인해 주로 일어나는지,  또는 웃닷짜(uddhacca, 모든 축적된 오염물로 인한 마음의 동요)로 인해 주로 일어나는지를 바탕으로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B. 탐함을 뿌리로 하는 8가지 찟따 중에서 4가지는 잘못된 견해, 즉 이 세상의 참된 본질(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일어납니다. ‘이 세상’은 우리 감각으로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우리 삶은 여기서 끝나지 않으며, 우리가 하는 일은 미래에 매우 오랫동안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다른 4가지는 긴 윤회 여정을 거치면서 쌓인 모든 쓰레기들로 인한 마음의 동요 때문에,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더라도 어쨌든 행해집니다. 따라서 탐함에 기반한 8가지 찟따는 크게 두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 잘못된 견해(딧티, diṭṭhi)로 행해지는 4가지는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 * 4가지는 잘못된 견해와 관계없습니다(즉, 오염물이 여전히 마음을 산란하게 한다면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한 사람이라도 이 4가지를 행할 수 있습니다).

 

C. 미워함을 뿌리로 하는 2가지 찟따(citta)도 (소따-빤나 단계에서) 올바른 견해를  지니고 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행해집니다.

 

  • * 미워함을 뿌리로 하는 이 2가지 찟따(citta)는 잘못된 견해와 관계없지만 동요하는 마음(웃닷짜, uddhacca)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소따-빤나( Sotāpanna) 단계 이후, 아나-가-미(Anāgāmi) 단계까지 지속됩니다.

 

이제 우리는 넓은 시야를 볼 수 있습니다.

 

5. 5가지 찟따(위찌낏짜와, 잘못된 견해와 관련된 4가지 탐함을 뿌리로 하는 찟따)는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특징)인 띨락카나(Tilakkhana), 즉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모르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것들은 딧티 아사와(diṭṭhi asava) 또는 딧타-사와(diṭṭhāsava)라 불리는 4가지 유형의 아사바(asava) 중 하나의 요인이 됩니다.

 

이것들은 아빠-야가-미 깜마(apāyagāmi kamma)로 이어질 수 있는 것과 동일한 찟따(citta)입니다. 따라서 소따-빤나 단계에 이르렀을 때, 이 5가지 찟따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으며, 그 성자는 그런 심각한 깜마를 어떤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는 딧타-사와(diṭṭhāsava)로 인해 아사왁카야(asavakkhaya, 번뇌의 제거)가 현저한 수준으로 일어나는 매우 중요한 닙바-나(Nibbāna) 단계입니다.

 

  • * 소따-빤나(Sotāpanna)는 딧티(diṭṭhi, 잘못된 견해)를 없애는 것만으로 그 단계를 달성합니다. 삭까야 딧티(sakkaya diṭṭhi)는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추구함으로써 지속적인(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위찌낏짜(vicikicca)는 잘못된 세계관과 관련된 경향과 행동으로 이어지고, 실랍바따 빠라마사(silabbata paramasa)는 마음을 정화하는 것 없이 특정한 계/의식을 따름으로써 닙바-나(Nibbāna)를 얻을 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 * 다른 7가지 찟따(citta)는 제거하기 더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오랜 상사-라(saṃsāra) 동안 쌓아온 다른 오염(아-사와-,  āsavā)의 결과인 동요하는 마음 때문에 일어납니다. ‘닙바-나로 가는 방법 - 아-사와의 제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것들 중에서 미워함을 뿌리로 하는 2가지 찟따(citta)는 사까다-가-미(Sakadāgāmi) 단계에서 힘이 약해지고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 * 나머지 4가지 탐함을 뿌리로 하는 4가지 찟따(citta)(잘못된 견해가 없는 것)는 까-마라-가(kāmarāga, 까-마로까에 있는 것들을 탐함)의 요인이 됩니다. 까-마라-가(kāmarāga)는 사까다-가-미(Sakadāgāmi) 단계에서 약해지고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서 완전히 제거됩니다. 따라서 아나-가-미(Anāgāmi)는 증오하는 생각이나 음탕한 생각을 불러 일으킬 수 없고 까-마로까(kāmaloka, 욕계)의 어디에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나-가-미(Anāgāmi)는 아사와(asava)의 또 다른 부분인 까-마사와(kāmasava)를 제거했습니다.

  • * 마지막으로,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에서만 4가지 탐함을 뿌리로 하는 찟따(여전히 바와사와_bhavasava의 요인이 됨)와 웃닷짜 찟따(uddhacca citta, 여전히 아윗자-사와_avijjāsava의 요인이 됨)가 완전히 제거됩니다. 이때는 모든 오염(아-사와-, āsavā)이 마음에서 완전히 제거됩니다.

 

6.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서 제거되는 5가지 아꾸살라 찟따(akusala citta)는 모두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 즉 3가지 존재의 특성인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하지 못하여 일어나는 것이 분명합니다. ‘딧티(사견), 삼마 딧티(정견)’ 포스트도 참조하세요.

 

7. 올바른 견해를 깨닫는 이것은 단지 계에 따르는 것과 같은 의식(ritual)을 따르는 것으로는 달성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 31영역 세상의 진정한 본질(특질)인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아닛짜, 둑카, 아낫따’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그것은 다른 존재(유정체)를 해치면서 세속적 즐거움을 얻기 위한 그 어떤 유형의 활동을 하는 것은 결실이 없다는 이해입니다. 그런 이해는 자신의 마노마야 까야(manomaya kaya, 정신적 몸)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 미래 생에서도 그런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8. 여기서, 소따-빤나(Sotāpanna)는 가족을 돌보는 부모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성자는 일을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다른 모든 일상 업무를 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분명한 이해로, 이 모든 것을 행합니다. 일반적인 ‘재가자’로서 어떤 책임을 버리지 않고 소따-빤나(Sotāpanna)에 적합한 도덕적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실 빅쿠(bikkhu)가 되지 않고도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 시대에는 소따-빤나(Sotāpanna),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아나-가-미(Anāgāmi)단계에 도달한 ‘재가자’들이 많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얼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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