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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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정화의 중요성


원문 : Buddha Dhamma 섹션의 The Importance of Purifying the Mind 포스트


특정 상황에서 분석은 항상 그 상황에 따라 타당한 문맥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언급한 파인만 박사(Dr. Feynman)의 비디오를 다시 들어봅시다.


비디오 링크: https://youtu.be/KLoNA9lMb6A


파인만 박사가 말했던 것보다도 좀 더 깊이 보기 위해 얼음 바닥에 대해 논의해보는 것은 가치가 있습니다. 파인만 박사는 단지, 특히 아이가 질문을 계속할 때, 그런 종류의 질문에는 끝이 없다고 지적했을 뿐입니다. 각 (설명)단계마다 "그 이유는 무엇이예요?"로 질문할 수 있습니다."왜 미미 아줌마는 병원에 있어요?"에는 "얼음위에서 넘어졌단다."로 대답합니다. 그 다음, "왜 얼음위에서 넘어졌어요?"라고 묻는 질문에는 "얼음은 미끄럽기 때문이란다"라 대답합니다. 이 대답은 "왜 얼음(그리고 콘크리트가 아닌)은 미끄러운가요?"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지점까지는, 아이(또는 일반 성인)는 각 답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 삶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 모든 답변이 이치에 맞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물리학에 배경 지식이 없는 아이나 일반 성인에게는 마지막 질문에 '완전히 만족스럽게' 답변을 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다른 고체와 달리 얼음은, 물이 냉각될 때, 얼음으로 변하면서 팽창하는 특유의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미' 아줌마가 얼음 위를 걸었을 때, 체중에 의한 압력이 얼음을 수축하게 하고(즉, 물이 됨), 신발과 얼음 사이에 얇은 물층(수막)이 형성됩니다. 그것이 미끄러져 넘어지게 하는 원인입니다. 다른 고체는 압력이 가해질 때 더 단단해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런 특정한 원인에 의한 미끄러짐이 없습니다.


* 지금 얼음 위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그런 물리학 지식 일부를 알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얼음이 미끄럽다'는 것과 '필요한 예방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아는 '예리한 감각'을 지니는 것이었습니다.

* 아마 '미미' 아줌마는 마음이 동요된 상태에 있었고, 도로에 얇은 얼음판이 있었음을 알지 못한 채 서둘러 떠났을 것입니다. 술에 취했다면, 역시 같은 결과였을 것입니다. 차분하고 편안한 마음 상태였다면, 더 조심했었을 것입니다.

  • * 동요된 마음은 지나친 욕망뿐 아니라 증오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각자는 탐욕스럽고 증오하는 마음 상태 때문에 나쁜 판단을 했던 경우가 기억날 수 있습니다. '격한 언쟁에 빠지면 위험'할 수 있는 이유는 이것이며, 사람은 한 순간의 분노로 살인하기까지 합니다.


붓다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것은 '마음을 깨끗이 함'으로써 '이 세상'의 참된 본질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흐려지도록 하는 다섯 가지 장애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Key to Calming the Mind – Five Hindrances"포스트를 보세요. 이런 것들은 우리들이 무수한 생을 살며 길러왔던 나쁜 습관을 통해 축적되어 왔습니다. “The Law of Attraction, Habits, Character (Gati), and Cravings (Asavas)"포스트를 예시로 보세요.


  • * 각자는 다른 유형의 나쁜 습관을 가지지만, 우리 모두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약물을 남용하고 (화를 내거나 지나치게 욕망을 가짐으로써) 동요된 마음을 가지는 등의 행동으로 상황을 악화시키지만 않는다면, '기본선'(예를 들면, 얼음 위를 걷는 동안 넘어지지 않아야 함)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일반적으로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이 '기본선의 마음 상태'에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흐름에 따라 가는 것'이 좋은 생각인지, '삶을 더 잘 살려고 최선을 다하고, 결국 그 모든 삶의 분투가 그 끝에서는 부질없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죽는 것'이 좋은 생각인지를 자세히 살펴보려고 노력하지 않은 채, 그저 흐름에 휩쓸려 다닐 뿐입니다.


더 안좋은 것은, 이 이야기(삶)는 죽음에서 끝나지 않고, 정확히 똑같은 것을 다시 하게 될 또 다른 단계로 단지 넘어간다는 것(재탄생)입니다.


  • * 우리는 무수한 삶에 걸쳐 이 끝없는 과정을 겪어왔으며, 그 삶들 대부분은 현재 사람으로서의 삶보다 훨씬 더 나빴습니다. 본질적으로 행복을 줄 수 없는 '세상'에서 행복을 찾는 분투가 결실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붓다의 팔정도에 따라 '이 세상'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얻으려 할 것입니다.

  • * 이것이 붓다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다섯가지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마음을 깨끗이 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위 단락에서 말한 진실(즉,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How to Calm the Mind”포스트를 참조하세요).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먼저 붓다꼐서 지니신 '이 세상'에 대한 더 넓은 시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붓다의 그 '세계관'에 대한 아이디어(생각)도 가지지 못한 채 '담마를 실천하는 것'에 뛰어듭니다. 실천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그 목표는 세 가지로 나눠질 수 있습니다.


  1. 1. 이 생에서 어떠한 평화로운 마음 상태를 얻는 것

  2. 2. 더 긴 범위를 보고, 다음 생에서도 더 나은 삶을 확실히 가지도록 하는 것

  3. 3. 불만족스러움으로 가득찬 이 윤회의 굴레로부터 해방되고, 영원한 행복 즉, 닙바나(Nibbana, 열반)를 추구하는 것.


그 목표가 위 세 가지 중 하나라면(특히 2. 또는 3.이라면), 붓다의 완전한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붓다 담마입니다.


붓다께서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광대한 세계관'에 관한 메시지를 선언하신 이후 2500여년이 흘렀습니다. 이 사이의 시간동안 이 메시지는 왜곡되어 왔으며, 필자의 목표는 '테라와다(Theravada) 버전에 기초한 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관점'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지 보고 있기'만 할 뿐이고, 이 세계관의 진실을 믿을 근거가 없으므로, 필자는 이론으로서 그것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이론)이 확립된 과학적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보기 위해 이 이론을 끊임없이 테스트할 것입니다. 그 일(테스트)이 필자가 과학자로서 익숙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 많은 사람들(특히 불교 초기의 사람들)은 그들이 길(팔정도)를 따르면서 얻은 '높은 (수준의) 체험'을 기초로 판단하였습니다. 길(팔정도)에 따라 높아질 때, 이 '체험'은 감각적인 경험을 초월하기 시작합니다. 감각적 경험에 기초한 '경험주의'(과학 혁명 초기의 존 로크(John Locke)를 비롯한 사람들에 의해 촉진된 철학적 교리)와, 정화된 마음에서 겪는 '매우 높은 수준의 경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 이 '광대한 세계관'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면, 존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끝없는 루프(순환)의 각 단계에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더 깊이 조사하려고 하는 것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이 생에서 그 모든 것을 배우기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 * 그보다 그것은 마음을 정화하는 문제일 뿐이므로, 마음은 길(팔정도)를 따르면서 얻은 각자의 고상한 경험을 통해 [그 해결책을] '알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붓다께서는 존재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을 '아는' 것임을 발견하셨습니다. 이것은 과학이 찾아내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 * 그러나 '전체적인 그림'을 알고, 어디에 태어나든지 '이 세상에서는' 영구한 행복을 결코 찾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을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본질적으로 '항상 변하는 본성(성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 *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지만, 우리는 마음이 다섯 가지 장애로 어수선하기 때문에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모든 진상을 알기 위한 다른 접근법을 살펴 보겠습니다. 이것은 과학적 접근법입니다 (다른 종교적 접근법도 있지만, 그 주제와는 거리를 둘 것입니다). 이 과학적 접근은 붓다께서 사셨던 때와 거의 동일한 시대에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 그래서, 우리는 두 가지 접근법을 가집니다. 전적으로 마음을 기반으로 하는 붓다의 접근법, 그리고 물질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적 접근법입니다.

  • * 현재,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매우 정교한 컴퓨터로 여겨지는 뇌' 작용의 면에서 이해하려 하고 있습니다. 붓다 담마는 과학의 물질적 측면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이에 대해 곧 다룰 것입니다). 하지만, 붓다 담마에서, 마음은 실제로 물질에 앞서고(선행하고), 물질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파인만 박사(Dr. Feynman)의 비디오에서 거론된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는 경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얼음 바닥에 대처하기 위해 모두가 알아야 할 것은 그러한 바닥에 관련된 이전의 '경험'과, 그 '경험'을 사용하여 그 상황에 대처하는 '깨어있는 마음(술, 화냄, 탐함 등으로 산만하지 않은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을 기반으로 하는] 접근법입니다.


  • * 붓다 담마의 '세계관'을 신중하게 검토할 때, 각 부분을 상세하게 검토하지 않고도, 존재의 문제가 세상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본질'을 이해하는 것으로 축소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일시적이므로, 결코 어떤 것도 긴 시간동안 각자가 좋아함에 따라 유지할 수 없습니다.

  • * 그것이 인지(그냥 아는 것이 아니고, 참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입니다. 이 간단한 일이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먼저 이 '세계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얼음이 미끄러운 이유, 물이 냉각될 때 팽창하는 이유, 화학적 결합의 본질, 전자와 양성자, 그런 양성자를 만드는 쿼크 등에 관해서 원인을 더 깊이 탐구하는 일련의 질문을 이어내려갈 수 있습니다.


  • * 이런 탐구가 오늘날 모두가 누리고 있는 많은 기술 발전으로 이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필자는 이 사이트에 글을 쓰고, 몇 분 만에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전해 줄 수 있습니다. 놀랍고 매우 유익합니다. 하지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이 모든 '더 깊은 탐구'가 존재 문제에 더 이상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과학은 이런 탐구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는 모든 물질이 단지 에너지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 * 그리고 우리가 기술 발전의 혜택을 누릴 수는 있지만, 그런 혜택은 윤회(sansaric) 시간 척도에서는 짧은 순간(약 100년)동안만 누릴 수 있습니다. 붓다 담마는 장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붓다께서 2500여년 전에 말씀하셨던 것은 '결국, 각 존재 문제에 관한 한, 물질적 속성을 더 깊이 탐구하는 것은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깨달을 필요가 있는 것은 오직 '무엇을 성취하더라도, 모두 일시적이며, 불안정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을 정화할 때에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 * 존재의 세가지 특성(“Anicca, Dukkha, Anatta – True Meanings"포스트를 참조하세요)을 참으로 이해하고 그래서 이 존재의 불만족스러운 본질을 참으로 이해할 때, '물질적인 것'을 얻으려 하지 않고, 닙바나(Nibbana, 열반)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의 정화만을 필요로 합니다. 외부 물질 세계를 자세히 조사하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 * 붓다 담마에 더 깊이 들어갈 때, 마음 에너지(정신 에너지)가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긴 이야기입니다. 먼저 시작해보고, 붓다의 '광대한 세계관'이 이치에 맞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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