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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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찌- 상카-라의 바른 의미

     

    원문: Key Dhamma Concepts 섹션의 ‘Correct Meaning of Vacī Sankhāra’ 포스트

     

    와찌- 상카-라(vacī sankhāra)는 띠삐따까에 따르면 말과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의식적인 생각에 수반됩니다.

     

    - 2016년 11월 8일 작성; 2018년 9월 25일 개정; 2020년 10월 16일 개정; 2024년 5월 8일 개정

     

    2021년 7월 12일: 상카-라(sankhāra)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필자는 사성제와 띨락카나(Tilakkhana) 및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사이의 관계를 논의하기 위해 ‘주요 담마 개념’ 섹션에 ‘붓다 담마의 기본 틀(Basic Framework of Buddha Dhamma)’이라는 새로운 서브섹션을 시작했습니다. 필자는 그 서브섹션에 이 포스트를 포함시킵니다.

     

    • * 와찌-(vacī), 위딱까(vitakka), 위짜-라-(vicārā) 같은 빠알리 낱말의 발음은 ‘Pāli Glossary – (L-Z)’ 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의식적인 생각도 또한 와찌 상카-라다

     

    1. 말하는 것만이 와찌- 상카-라(vacī sankhāra)에 관련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래에서, 우리는 와찌- 상카-라는 말로 이어질 수 있는 우리들의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볼 것입니다.

     

    • * ‘쭐라-웨달라 숫따(Cūḷavedalla Sutta (MN 44) )’에서, 와찌- 상카-라(vacī sankhāra)는 ‘위딱까 위짜-라- 와찌- 상카-라(vitakka vicārā vacī sankhāra)’로 정의되며, 이 정의는 와찌- 상카-라(vacī sankhāra)는 위딱까(vitakka)와 위짜-라-(vicārā)라는 의미입니다.

    • * 먼저, 생각이 일어나고, 그 다음에 ‘느낌’이 강해지면 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Cūḷavedalla Sutta (MN 44)’를 참조하세요.

    • * 그래서, 우리는 위딱까(vitakka)와 위짜-라(vicāra)가 무엇인지는 이해해야 합니다. 위딱까에 대한 간결한 설명은 ‘Vitakka Sutta (SN 56.7)’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위딱까는 상깝빠와 매우 유사하다

     

    2. 위딱까(vitakka)와 상깝빠(saṅkappa)는 밀접하게 관련된 낱말들입니다. 그것들은 특정한 생각 대상(아-람마나, ārammana)에 기반하여 일어나는 생각들입니다. [생각이] 일단 일어나면, 위짜-라(vicāra)는 마음을 그 생각 대상(아-람마나, āramman)에 계속 관여하게, 즉 그것에 대한 더 많은 생각을 생성하게 합니다. 아비담마에서는 다음과 같이, 벌이 특정한 꽃으로 날아가는 것은 위딱까(vitakka)와 같고(새로운 대상으로 감) 꿀을 먹는 중에 그 꽃 주위를 맴도는 것은 위짜-라(vicāra)와 같다(그 대상에 관여함)고 비유합니다.

     

    • * 예를 들어, 적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아꾸살라 위딱까(상깝빠)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악한(나쁜) 생각을 하는데 몇 분 또는 몇 시간도 보낼 수 있는데, 그것이 위짜-라(vicāra)입니다.

    • * 그 대부분은 마음 속에서 생각하고 속으로 말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실제 말로 밖으로 내뱉을 수도 있습니다.

     

    위딱까/위짜-라, 사위딱까/사위짜-라, 및 아위딱까/아위짜-라

     

    3. 보통 위딱까(vitakka)와 위짜-라(vicāra)는 아꾸살라 생각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접두어 ‘사(sa)’가 붙으면(즉, savitakka 및  savicāra), 위딱까와 위짜-라의 반대인 좋고 유익한 생각을 나타냅니다.

     

    • * 더욱이, 위딱까(vitakka)와 위짜-라(vicāra)가 없는 것은 아위딱까(avitakka)와 아위짜-라(avicāra)로 나타내지만, 이때에 사위딱까(savitakka)와 사위짜-라(savicāra), 즉 ‘좋은 생각’은 있습니다. 사실, 자-나를 논의할 때, 아위딱까(avitakka)와 아위짜-라(avicāra)는 사위딱까(savitakka)와 사위짜-라(savicāra) 있는 상태를 지칭합니다.

    • * 사위딱까(savitakka)와 사위짜-라(savicāra)의 더 높은 버전은 삼마- 상깝빠(Sammā Saṅkappa)로 표현됩니다. 사위딱까(savitakka)와 사위짜-라(savicāra)가 모든 사람들의 도덕적인 생각을 나타내지만, 삼마- 상깝빠(Sammā Saṅkappa)는 성자에게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마하-짯따리-사까 숫따(Mahācattārīsaka Sutta (MN 117) )에서, ‘삼마- 상깝빠(sammā saṅkappa)’는 ‘아-사와(āsava)가 없는, 생각, 재고, 성스런 생각(와찌- 상카-라)’로 정의됩니다. '와찌- 상카-라' ㅡ 상깝빠(의식적 생각)와 와-짜-(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4. 다음은 ‘Vitakka Sutta (SN 56.7)’의 기본 개념입니다.

     

    • * “빅쿠들이여, 감각적인 생각들, 악의의 생각들, 남을 해치는 생각들인, 악한 해로운 생각들을 하지 말라(pāpake akusale vitakke vitakkeyyātha, seyyathidaṃ— kāma vitakkaṃ, byāpāda vitakkaṃ, vihiṃsā vitakkaṃ).

    • * 무엇 때문인가? 빅쿠들이여, 이 생각들은 참된 본질이 없고(Nete, bhikkhave, vitakkā atthasaṃhitā), 성스런 생활의 근본과 무관하고, 이 세상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고 닙바-나로 이끌지 않는다. 빅쿠들이여, 마음에 그런 생각들이 시작되면, ‘이것은 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 * 그 대신에, ‘이것들은 괴로움의 원인이다’고 생각해야 하고, ‘괴로움의 그침으로 가는 길은 포기(출리)와 연민(자비)에 의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 생각들은 세상에서 벗어남, 갈망없음, 그침, 평화, 직접적인 앎, 깨달음, 닙바나로 이어지게 한다.”

     

    사위딱까/사위짜-라는 ‘좋은 생각’에 있다

     

    5. 자-나(jhāna)를 묘사할 때, 위딱까(vitakka)위짜-라(vicāra)는 구체적으로 까-마 라-가(kāma rāga), 브야-빠-다(vyāpāda) 또는 다른 아꾸살라(akusala)를 지칭합니다. 거기서, 아위딱까(avitakka)와 아위짜-라(avicāra)는 그것들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 * 구체적으로 까-마 라-가(kāma rāga, 감각적 욕망) 또는 다른 아꾸살라(akusala, 불선법)를 포함하지 않고 그 반대(넥깜마_nekkhamma_출리 또는 꾸살라_kusala_선법)의 생각들을 일으킬 때, 그것을 사위딱까(savitakka)와 사위짜-라(savicāra)라고 합니다.

    • * 그것이 자-나(jhāna, 선정)에 들어가는 방법인데, 위딱까(vitakka)와 위짜-라-(vicārā)를 제거하거나 가라앉히고 사위딱까(savitakka)와 사위짜-라(savicāra)를 기르는 것입니다.

    • * 이것은 자-나(jhāna, 선정)를 설명하는 모든 숫따(sutta)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따뿟사 숫다(‘Tapussa Sutta (AN 9.41)’)에서, “..소 코 아항, 아-난다, 위윗쩨와 까-메히 위윗짜 아꾸살레히 담메히 사위딱강 사위짜-랑 위웨까장 삐-띠수캉 빠타망 자-낭 우빠삼빳자 위하라-미(..So kho ahaṃ, ānanda,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āmi.)”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자-나(jhāna, 선정)에 있을 때, 까-마 라-가(kāma rāga, 감각적 욕망)/아꾸살라(akusala)를 동반하는 위딱까(vitakka) / 위짜-라-(vicārā)가 없고, 사위딱까(savitakka) / 사위짜-라(savicāra)만 나타난다’입니다.

    • * 위 인용문에서, ‘위윗쩨와 까-메히 위윗짜 아꾸살레히 담메히(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구절은 ‘자-나에 있을 때 마음에는 까-마 라-가(kāma rāga, 감각적 욕망)/아꾸살라(akusala)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깜맛타-나(명상 암송)는 소리내지 않고 할 수 있다

     

    6. 깜맛타-나(kammatthāna, 암송 명상)를 할 때, 구절을 소리 내어 말하거나 속으로 암송할 수 있습니다. 둘 다 ‘와찌- 상카-라(vacī sankhāra)’를 수반합니다.

     

    • * 깜맛타-나(kammatthāna, 암송 명상)는 두 가지 중 하나로 행할 수 있으며, 둘 다 ‘와찌- 상카-라(vacī sankhāra)’를 수반합니다.

    • * 더욱이, 암송 명상 구절의 개념을 이해하면 할수록 자와나 찟따(javana citta)가 더 강력해지고, 따라서 암송 명상의 효과가 더욱 높습니다.

    • * 암송 명상을 시작할 때, 그 암송 대상에 마음을 두기가 쉽기 때문에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낫습니다. 암송 대상에 마음을 두는 것이 나아지면, 소리내지 않고 속으로 암송할 수 있습니다.

    • * 이것은 ‘와찌- 상카-라(vacī sankhāra)’를 수반하는 ‘뿐나-비 상카라(punnābhi sankhāra, 공덕행)’의 예입니다.

     

    소리내지 않고 행하는 와찌 상카-라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7. 이제 ‘와찌- 상카-라(vacī sankhāra)’를 수반하는 ‘아뿐나-비 상카라(apunnābhi sankhāra, 부도덕한 행)’를 언급해 보겠습니다. 이때에는 적 또는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악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합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도 내부에서 그러한 ‘와찌- 상카-라(vacī sankhāra)’를 많이 생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느낌이 강해지면 자와나 찟따(javana citta)의 힘을 제어할 수 없게 되어, 입 밖으로 말이 바로 나올 수 있습니다.

     

    • * ‘소리없는 와찌- 상카-라(vacī sankhāra)’에 수반된 자와나 힘(javana power)이 비록 ‘소리내어 하는 말’에 수반되는 것보다 약하더라도, ‘소리없는 와찌- 상카-라(vacī sankhāra)’를 훨씬 더 많이 일으킬 수 있으며, 따라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업보)를 더 많이 일으킬 수 있습니다.

    • * 앞 예에서와 같이, 와찌- 상카-라(vacī sankhāra)를 행하는 자와나 찟따(javana citta) 배후에 있는 ‘힘’은 그 사람과 관련된 미워함(증오)의 정도가 높을 때 더 높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을 상대할 때 자신을 제어하기 힘든 이유는 그것 때문입니다.

     

    삼마 상깝빠는 와찌- 상카-라를 수반한다

     

    8. 성스런 팔정도에서, 삼마- 상깝빠(Sammā sankappa)는 말이 없이 의식적인 생각인 ‘와찌- 상카-라(vacī sankhāra)’의 한 요소만을 다룹니다. 와찌- 상카-라(vacī sankhāra)를 제거하는 것은 삼마- 상깝빠(Sammā Sankappa)와 삼마- 와-짜-(Sammā Vācā) 둘 다를 포함합니다.

     

    • * 빠알리어(Pāli)의 상깝빠(Sankappa) 또는 싱할라어(Sinhala)의 상깔빠나-(sankalpanā)는 산(san), 즉 윤회 여정(재탄생 과정)의 요인이 되는 것을 수반하는 의식적인 생각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상깔빠나-(sankalpanā)는 '산(san) + 깔빠나(kalpana)'에서 유래합니다. 깔빠나(kalpana)는 ‘의식적인 생각’을 뜻합니다. 무언가에 대해 계속 생각할 때, 그 생각이 ‘상깔빠나-(sankalpanā)’입니다.

    • * 물론, 산(san)은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 매우 중요한 빠알리(Pāli) 용어입니다.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산 - 결정적인 빠알리 어원(San – A Critical Pāli Root)’ 서브섹션에 있는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삼마-(Sammā)는 같은 섹션에서 다룬 것처럼 ‘제거’를 의미합니다.

    • * 그러므로 삼마- 상깝빠(Sammā Sankappa)는 '의식적이고 고의적인 나쁜 생각'을 제거하고 ‘도덕적 생각‘을 함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삼마- 와-짜-(Sammā vācā)는 부도덕한 말을 멈추고 도덕적 말을 생성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9. 이 논의에서 알아야 할 요점은, 오랫동안 미워하거나 탐하는 의식적인 생각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매우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알게(알아차리게) 될 때, 멈출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나-빠-나 바-와나-(Anāpāna Bhāvanā)와 사띠빳타-나 바-와나-(Satipaṭṭhāna Bhāvanā)의 기본입니다.

     

     

    닙바-나는 생각을 멈추는 것이 아니다

     

    10. 필자는 모든 생각을 멈추려고 노력하는 여러 불교 그룹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닙바-나의 아라한 단계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붓다께서 사람들에게 생각을 멈추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그 생의 45년을 보내셨다고 생각하며, 대승불자(Mahāyānist)들보다 닙바-나에 대해 훨씬 더 나쁘게 해석합니다.

     

    • * 깊은 잠을 자거나 의식을 잃었을 때, 우리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시간 중에 우리가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 * 붓다께서는 부도덕한 생각을 멈추고 도덕적인 생각을 육성하라고 충고하셨습니다. 그것이 마음을 정화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아-나-빠-나사띠 명상 중에도 하는 것입니다.  ‘7. 아-나-빠-나는 무엇인가?’ 포스트와,  ‘방 안의 코끼리’ 섹션의 ‘세 번째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 3 – Ānāpānasati)’ 서브섹션에 있는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 * 아라한들은 번뇌가 없으므로 사실 그 생각들은 수정처럼 맑고 순수합니다. 사실 아라한들의 기억력은 실제로 향상됩니다.

    • * 모든 생각을 멈추는 것은 인식과 기억을 상실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아산냐(asañña)를 육성하는 이들은 아산냐 영역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마노 상카-라는 우리의 가띠에 따라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11.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는 우리들의 가띠(gati, 성향)에 따라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가띠(gati)를 바꾸는 것으로만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를 제어할 수 있습니다.

     

     

    까-야 상카-라는 육체적 행위를 제어한다 

     

    12.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는 육체적 행위로 하는 깜마를 수반합니다. 따라서, 말하는 중에 신체 부분(혀, 입술 및 관련 안면 근육)이 움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말하기’도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라는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 *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체 부분이 생각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는 지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아비담마에 익숙하지 않다면, 이 포스트의 나머지를 건너뛰어도 됩니다.

     

    13. 신체 부분은 사실 기계적입니다. 간답바(gandhabba)가 신체를 조종하지 않으면 살아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간답바(gandhabba)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 필수적인 개념이지만, 붓다고사(Buddhaghosa) 스님의 오명이 난 위숫디막가(Visuddhimagga)와 다른 저작물에서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간단히 무시되었습니다. 붓다고사(Buddhaghosa) 스님은 단독으로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왜곡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잘못된 테라와다 해석 ㅡ 역사 연대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간답바(정신적 몸)는 물질적 몸(육체)을 제어한다

     

    14. 간답바(gandhabba)의 마음이 어떻게 육체를 제어하는지 간략하게 언급해 보겠습니다. 육체는 여러 부품으로 만들어진 로봇처럼 32가지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이 육체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은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원자보다 작은 아주 미세한 몸인 간답바(gandhabba)입니다.

     

    • * 간답바(gandhabba)는 ‘체중’이 무시할 정도로 작지만 미세한 망처럼 육체에 퍼지는 미세한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에너지 장(field)에 더 가깝습니다. 간답바(gandhabba)는 수십억 개의 신경 세포로 구성된 물리적 신경계와 겹쳐 있는 보이지 않는 신경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 * 간답바(gandhabba)는 또한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라는 ‘마음 자리’와, (뇌를 통해 다섯 감각기관으로부터 신호를 받는) 5가지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 감성 물질)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물리적 심장 근처에 위치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뇌 ㅡ 마음과 몸 사이의 인터페이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뇌의 역할

     

    15. 무시할 정도로 작은 체중의 간답바(gandhabba)가 어떻게 무거운 육체를 움직일 수 있을까요? 간답바(gandhabba)는 [컴퓨터에서] 적절한 명령을 주는 신호 소스(signal source)와 비슷합니다. (매우 정교한 컴퓨터인) 뇌는 그 명령을 실제 신호로 변환하여 물리적 신경계에 줍니다.

     

     

    16. 누군가가 팔을 움직이기로 결정할 때, 그 결정을 내리는 것(그리고 상응하는 와찌- 상카-라_vacī sankhāra를 생성하는 것)은 간답바(gandhabba)에 있는 마음입니다. 그 다음에 그 신호는 뇌로 가고, 뇌는 그 ‘정신 신호’를 화학 신호로 변환합니다. 그 다음에 그것들은 신경계를 통해 팔의 근육으로 전달되어 팔을 움직입니다.

     

    • * 우리가 먹는 음식물의 소화에 의해 생성된 에너지는 뇌에 활기를 불어 넣고 신체 부분을 움직입니다.

    • * 그래서, 간답바(gandhabba)는 신체 부분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에 비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에너지를 씁니다. 그것은 제트 전투기를 제어하는 컴퓨터가 소비하는 매우 적은 양의 에너지와 유사합니다. 제트기의 연료는 무거운 제트기를 움직이는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동일한 식으로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 육체를 움직이는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 * 아래에서 다루는 바와 같이, 우리는 자와나 찟따(javana citta, 속행 마음)를 통해 우리 생각에서 [간답바가 쓰는] 그 미소한 에너지를 생성합니다.

     

    까-야 및 와찌 윈냣띠 루-빠

     

    17. 간답바(gandhabba)의 명령은 신호 또는 미소량의 에너지이며, 이들은 ‘까-야 윈냣띠 루-빠(kāya viññatti rūpa)’와 ‘와찌- 윈냣띠 루-빠(vacī viññatti rūpa)’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이것들은 아비담마(Abhidhamma)에서 28가지 유형의 루-빠(rūpa) 중 2 가지입니다.

     

    • * ‘까-야 윈냣띠 루-빠(kāya viññatti rūpa)’는 신체 움직임을 제어하고, ‘와찌- 윈냣띠 루-빠(vacī viññatti rūpa)’는 말하는 것을 제어합니다.

    • * 자와나 찟따(javana citta)는 이들 루-빠(rūpa), 즉 ‘에너지 신호’를 생성합니다. 또한, 아비담마 섹션(카테고리)에서 더 많은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18. (‘와찌- 윈냣띠 루-빠(vacī viññatti rūpa)’로 행해지는) ‘말하기’는 신체 부분을 움직이는 것과는 다릅니다. ‘말하기’는 아직 과학이 이해하지 못하는 복잡한 근육의 움직임과 관련 있습니다. (‘까-야 윈냣띠 루-빠(kāya viññatti rūpa)’로 행해지는) 신체 부분을 움직이는 것은 더 간단합니다.

     

    • * ‘와찌- 윈냣띠 루-빠(vacī viññatti rūpa)’ 배후에 있는 것은 ‘말하기’의 원인인 자와나 찟따(javana citta)에 있는 위딱까(vitakka) 및 위짜-라-(vicārā) 쩨-따시까(cētasika, 마음 요소)입니다. 그러나 그저 혼잣말만 할 때 그 원인이 되는 자와나 찟따(javana citta)는 말할 때보다 약합니다. 그러나, 그 두 마음요소(위딱까와 위짜-라-)는 자와나 찟따(javana citta)의 두 가지 유형에 모두 있습니다.

    • * (팔을 올리거나 걷는 것과 같은) 육체적 행동의 원인이 되는 자와나 찟따(javana citta)는 ‘까-야 윈냣띠 루-빠(kāya viññatti rūpa)’를 수반하며, 그것들을 생성하는 자와나 찟따(javana citta)가 훨씬 더 강합니다.

    • * 따라서, 와찌- 상카-라(vacī sankhāra) (혼잣말 또는 내뱉는 말)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육체적 행동)는 자와나 찟따(javana citta)를 수반합니다. 우리가 직접 제어할 수 있는 모든 깜마(kamma)는 자와나 찟따(javana citta)를 통해 행해집니다. ‘정말 놀라운 속도로 빠른 생각(찟따)의 순간적 진화’ 포스트와, ‘찟따의 자와나 ㅡ 정신력의 근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옷따빠나 찟따 ㅡ 행하려는 결정

     

    19. 와찌- 상카-라(vacī sankhāra) 또는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를 일으키는 초기 결정은 총 17개의 찟따(citta)를 갖는 찟따 위띠(citta vithi, 인식과정)에서 7개의 자와나 찟따(javana citta) 직전에 오는 옷따빠나 찟따(vottapana citta)에서 일어납니다. 이에 대해서는 ‘찟따 위-티 ㅡ 감각 입력의 처리’ 포스트와, 아비담마 섹션(카테고리)의 관련 게시물을 참조하세요.

     

    • * 감각 입력에 대한 ‘초기 반응’은 옷따빠나 찟따(vottapana citta)에서 자동으로 생기며, 그 반응의 성질은 각자의 가띠(gati)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자동적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는 옷따빠나 찟따(vottapana citta)에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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