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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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찌- 상카-라’ ㅡ 상깝빠(의식적 생각)와 와-짜-(말)

 

원문: Dhamma and Science 섹션의 ‘Vacī Saṅkhāra – Saṅkappa (Conscious Thoughts) and Vācā (Speech)’ 포스트

- 2019년 11월 30일 작성; 2019년 12월 1일 개정; 2021년 7월 17일 개정; 2022년 9월 10일 개정(특히 #11)

 

소개

 

1.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는 아-람마나(ārammana)를 더 깊이(vitakka, 위딱까) 그리고 자세히(vicāra) 조사합니다. 이전 포스트(게시물)에서 소개했지만, 여기에서 좀 더 상세히 논의하겠습니다.

 

  • * 와-짜-(vācā)는 물론 ‘말’입니다. 상깝빠(saṅkappa)는 ‘생각 또는 의도’로 번역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상깝빠(saṅkappa)가 ‘의도있는 생각’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가 와-짜-(vācā)와 상깝빠(saṅkappa) 둘에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입니다.

  • * 성스런 팔정도의 처음 네 단계는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 삼마- 상깝빠(Sammā Saṅkappa), 삼마- 와-짜-(Sammā Vācā), 및 삼마- 까만따(Sammā Kammanta)입니다. 생각은 자신의 견해에 달려 있고, 말과 행동은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가 먼저 오는 이유이며 이 세상의 본질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갖는’것이 선두에 있는 이유입니다.

 

2. 다양한 유형의 상카-라(saṅkhāra)가 있습니다. 이전 포스트(게시물)에서는 상카-라(saṅkhāra)를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분류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 * 신체 행동, 말, 또는 생각으로 이어지는지 여부에 따라 까-야상카-라 (kāyasaṅkhāra), 와찌-상카-라 (vacīsaṅkhāra), 및 찟따-상카-라 (cittāaṅkhāra)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합니다.

  • * 미래의 위빠-까(vipāka)에 따라 뿐냐-비상카-라 (puññābhisaṅkhāra), 아뿐냐-비상카-라 (apuññābhisaṅkhāra), 아-넨자-비상카-라 (āneñjābhisaṅkhāra)라는 세 가지 유형이 더 있습니다. 이것은 아래 #14에서 논의됩니다.

  • * 첫 번째 범주를 간략히 검토한 다음,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에 집중하겠습니다. 최근 포스트(게시물)에서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와 찟따 상카-라(citta saṅkhāra) (또는 ‘마노- 상카-라, manō saṅkhāra)를 설명했습니다.

 

행동, 말, 생각의 원인이 되는 3가지 유형의 상카-라

 

3. 쭐-라웨달라 숫따(Cūḷavedalla Sutta, MN 44)에는 마음에 생성된 상카-라(saṅkhāra)의 유형에 대한 간결한 진술이 있습니다.

 

“ayome, āvuso visākha, saṅkhārā—kāyasaṅkhāro, vacīsaṅkhāro, cittāaṅkhāro”ti.

– 3가지 유형의 상카-라(saṅkhāra), 즉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 찟따 상카-라(citta saṅkhāra)가 있다.

 

“Katamo panāyye, kāyasaṅkhāro, katamo vacīsaṅkhāro, katamo cittāaṅkhāro”ti?

–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는 무엇인가,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는 무엇인가, 찟따 상카-라(citta saṅkhāra) (또는, 마노- 상카라, manō saṅkhāra)는 무엇인가?

 

“Assāsapassāsā kho, āvuso visākha, kāyasaṅkhāro, vitakkavicārā vacīsaṅkhāro, saññā ca vedanā ca cittāaṅkhāro”ti.

– 앗사-사 빳사-사-(assāsa passāsā)는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고, 위딱까 위짜-라(vitakka vicāra)는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며, 산냐-(saññā)와 웨다나-(vedanā)는 찟따 상카-라(citta saṅkhāra)를 이룬다.

 

“Kasmā panāyye, assāsapassāsā kāyasaṅkhāro, kasmā vitakkavicārā vacīsaṅkhāro, kasmā saññā ca vedanā ca cittāaṅkhāro”ti?

– 왜 세가지 유형의 상카-라(saṅkhāra)가 그런 식으로 분류되는가?

 

“Assāsapassāsā kho, āvuso visākha, kāyikā ete dhammā kāyappaṭibaddhā, tasmā assāsapassāsā kāyasaṅkhāro. Pubbe kho, āvuso visākha, vitakketvā vicāretvā pacchā vācaṃ bhindati, tasmā vitakkavicārā vacīsaṅkhāro. Saññā ca vedanā ca cetasikā ete dhammā cittappaṭibaddhā, tasmā saññā ca vedanā ca cittāaṅkhāro”ti.

– 앗사-사 빳사-사(assāsa passāsā, 들숨 날숨)은 몸(의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앗사-사 빳사-사(assāsa passāsa)는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다.

위딱까/위짜-라(vitakka/vicāra)는 말이 나오기 전에 일어난다. 그러므로, 위딱까/위짜-라(vitakka/vicāra)는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다.

– 산냐-(saññā)와 웨다나-(vedanā)는 모든 찟따(citta)와 관련(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산냐-/웨다나-(saññā/vedanā)는 찟따 상카-라(citta saṅkhāra)다. 

 

찟따(마노) 상카-라는 업적 결과가 없다

 

4. 찟따_citta(마노-_manō) 상카-라(saṅkhāra)는 재탄생을 초래할 수 있는 강한 업적 결과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위 #3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것들은 모든 찟따(citta)에 있는 웨-다나-(vēdanā)와 산냐-(saññā)를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위빠-까 찟따-(vipāka cittā)도 찟따(마노-) 상카-라(saṅkhāra)를 가집니다.

 

  • * ‘정말 놀라운 속도로 빠른 생각(찟따)의 순간적 진화’ 포스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모든 생각(마음)은 순간적으로 아홉 단계를 거칩니다. 초기 단계가 찟따(citta) 및 마노(manō) 단계입니다. 그 두 단계는 이미 웨-다나-(vēdanā)와 산냐-(saññā)를 지니고 있습니다.

  • * 나쁜(아소-바나, asōbhana) 또는 좋은(소-바나, sōbhana) 정신 요소(쩨-따시까, cētasika)는 그 아홉 단계의 후기 단계에서만 생각(마음)에 추가됩니다. 더욱이 그런 쩨-따시까(cētasika)는 들러붙음(땅하-, taṇhā)이 있고 아-람마나(ārammana)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에만, 그 후기 단계에 포함(추가)됩니다.

  • * 차착까 숫따(Chacakka Sutta)에서 설명된 그 여섯 단계는 순간적으로 일어납니다. 생각할 시간이 없으며, 그래서 어떤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나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래 #6을 참조하세요.

 

와찌- 또는 까-야 상카-라는 ‘아비상카-라’로 이어질 수 있다

 

5.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나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는 또한 업적 결과가 없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무해한’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 또는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는 재탄생을 포함하는 미래의 위빠-까(vipāka)를 가져올 수 있는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가 될 수 없습니다.

 

  • * 호흡하거나, 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걸어가는 것은 그런 ‘무해한’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가 관여합니다. 내일 일터에서 해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하거나, 저녁 식사 계획에 대해 배우자와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무해한]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가 관여합니다.

  • * 다른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와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는 업적 결과를 가져오는 행동과 말로 이어집니다. 즉, 그것들은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로 이어집니다. 그런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는 상까따(sankata)를 ‘준비하거나 일으킵니다’. 따라서 상까따(sankata)는 상카-라(saṅkhāra)를 통해 준비되거나, 상카-라(saṅkhāra)로 인해 일어나는 실체(개체)입니다.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는 그 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며, [공부를 해 감에 따라] 우리는 그것을 알게(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와찌- 또는 까-야 상카-라는 초기 감각 경험에는 관여되지 않는다

 

6. 일부 생각(마음)은 아홉 단계를 거치더라도 의식적인 사고를 수반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런 [의식적인 사고를 수반하지 않는] 생각(마음)에서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나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는 불가능합니다. 그것들은 짜착까 숫따(Chachakka Sutta, MN 148)에 기술된 위빠-까 찟따(vipāka citta)입니다.

 

  • * 최근 포스트(게시물)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의 여섯 단계는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해 일어납니다. 그 위빠-까(vipāka) 단계 중에, 먼저, 여섯 가지 유형의 윈냐-나(viññāna) 중의 하나가 경험됩니다. 그것들은 모두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이며, 짝꾸(cakkhu), 소-따(sōta), 가-나(ghāna), 지와-(jivhā), 까-야(kāya), 및 마노-(manō) 윈냐-나(viññāna)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웨다나- 빳짜야- 땅하-(vedanā paccayā taṇhā)’입니다.

  • * 그 모든 여섯 단계에서는 우리는 생각하게 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소-바나(sōbhana) 또는 아소-바나(asōbhana) 쩨-따시까(cētasika)로 의식적으로 와찌-(vacī) 또는 까-야(kāya) 상카-라(saṅkhāra)를 생성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 여섯 단계에서는 오직 (업적 결과가 없는) 마노- 상카-라(manō saṅkhāra)만이 생성됩니다.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는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사’로 시작한다

 

7. 이전 포스트(게시물)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사이클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가 아니라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사(salāyatana paccayā phassa)’로 시작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차착까 숫따(Chacakka Sutta, MN 148)를 논의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포스트들을 복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 관심을 끌기에 충분히 강한 아-람마나(ārammana)이어야 합니다[‘아-람마나’이어야 ‘위빠-까 윈냐-나’가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매력적이거나 혐오스러운 인물을 보거나, 맛 좋거나 쓴 것을 맛 보거나, 진정시키는 소리나 큰 소리를 듣는 것 등이어야 합니다.

 

8. 그런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는 차착까 숫따(Chachakka Sutta)에 따라 말하면, “짝쿤짜 빠띳짜 루-뻬 짜 웁빳자-띠 짝쿠윈냐-낭(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āti cakkhuviññāṇaṃ)”에서 “마난짜 빠띳짜 담메 짜 웁빳자-띠 마노윈냐-낭(mānañca paṭicca dhamme ca uppajjāti manoviññāṇaṃ)”에 이르는 것을 통해 발생합니다. 이전 포스트(게시물)에서 그 단계들은 빠띳짜 사뭅뺘-다(Paṭicca Samuppāda)의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소-, 팟사 빳짜야- 웨다-나-, 웨-다나- 빳짜야- 땅하-(salāyatana paccayā phassō, phassa paccayā vēdanā, vēdanā paccayā taṇhā)"단계와 동등하다고 논의했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 ㅡ 자아는 아윗자-로 인해 존재한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볼 수 있듯이, 위빠-까(vipāka) 단계 동안에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 단계에 이어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ṅkhāra paccayā viññāna)’ 단계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 * 새로운 아-람마나(ārammana)에 대한 초기 감각 사건으로 ‘웨다나- 빳짜야- 땅하-(vedanā paccayā taṇhā)’에 도달한 후, 빠띳자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사이클의 다음 단계가 시작됩니다. 다음 단계는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입니다. 그 때가 우리가 아윗자(avijjā)로 행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가 발생하는 때입니다.

  • * 일단 우리가 아-람마나(ārammana)에 들러붙게 되고 매이게 되면, 와찌-(vacī) 및 까-야(kāya) 상카-라(saṅkhāra)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이것이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ṇhā paccayā upādāna)’ 단계에 관련된 복잡한 과정의 시작입니다.

 

‘위딱까/위짜-라’는 ‘아비상카-라’를 시작한다

 

9. 특정 아-람마나(ārammana)에 매이게 되면, 그 아-람마나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위딱까(vitakka)와 위짜-라(vicāra) 정신 요소(쩨-따시까, cētasika)를 수반합니다. 그것은 그 아-람마나(ārammana)를 더 깊이(위딱까, vitakka), 그리고 자세히(vicāra, 위짜-라) 조사하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다음과 같은 예를 통해 개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차를 사기 위해 전시장에 간다고 가정해 봅시다. 특정 차에 관심이 생기면 자세하게 검토합니다. 판매원에게 질문을 하고 그 차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습니다. 같은 식으로, 어떤 아-람마나(ārammana)에 관심을 갖게 되면, 그것의 다른 측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 * 특히, 주어진 아-람마나(ārammana)를 좋아할 때(그 차라고 하면), 그 차를 진입로에 주차해 두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하기 시작합니다. 이웃들에게 얼마나 깊은 인상을 주게 될 것인지도 상상하기 시작합니다. 종종 그것으로 어떻게 즐길 것인지에 대해 ‘백일몽’을 시작합니다. 그것들은 모두 위딱까(vitakka)와 위짜-라(vicāra)가 있는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입니다.

  • * 물론,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이야기하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말하기에도 위딱까(vitakka) / 위짜-라(vicāra)를 수반합니다.

  • * 그런 생각의 어떤 것이 (탐욕과 같은) ‘나쁜’(아소-바나, asōbhana) 쩨-따시까(cētasika)를 포함한다면, 그런 의식적인 생각은 와찌- 아비상카-라(vacī abhisaṅkhāra)가 됩니다.

 

10. 우리가 아-람마나(ārammana)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사기 위한] 행동도 취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모델을 보고 가격을 비교하기 위해 다른 전시장으로 갈 지도 모릅니다. 그 지역의 자동차 판매상 등에 대해 인터넷을 검색할 지도 모릅니다.

 

  • * 그런 행동은 신체 일부를 움직이는 것을 수반합니다. 아래에서 보게 될 것처럼,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는 그 행동들로 이어집니다.

  • * 그 생각(마음)들이 ‘나쁜’(아소-바나, asōbhana) 제따-시까(cētasika)를 수반한다면, 그런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는 까-야 아비상카-라(kāya abhisaṅkhāra)가 됩니다.

  • * 더 많은 정보는 ‘위딱까, 위짜-라, 사위딱까, 사위짜-라, 및 아위딱까, 아위짜-라’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더 자세한 내용과 띠삐따까(삼장) 참조를 얻으려면 그 포스트(게시물)를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상깝빠는 생각을 의미하므로 와찌- 상카-라를 의미한다 

 

11. 마하-짯따-리-사까 숫따(Mahācattārīsaka Sutta (MN 117))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Katamo ca, bhikkhave, sammāsaṅkappo ariyo anāsavo lokuttaro maggaṅgo? Yo kho, bhikkhave, ariyacittāsa anāsavacittāsa ariyamaggasamaṅgino ariyamaggaṃ bhāvayato takko vitakko saṅkappo appanā (fixing of thought on an object) byappanā cetaso abhiniropanā (application) vacīsaṅkhāro—ayaṃ, bhikkhave, sammāsaṅkappo ariyo anāsavo lokuttaro maggaṅgo.”

 

번역: “빅쿠들이여, 성스럽고 순수하고 세간을 초월하며 성스런 길의 요소인, 삼마- 상깝빠(sammā saṅkappa)란 무엇인가? 자신의 마음이 성스럽고 그 마음에 번뇌(아사와, āsava)가 없고(아나사-오, anāsavo) 성스런 길에 있는 자에게 있어,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고, 아-사와(āsava)가 없는 성스런 생각이다. 그것이 성스럽고 [성스런] 길의 요소인 삼마- 상깝빠(sammā saṅkappa)다.”

 

  • * 그러므로, 삼마- 상깝빠(Sammā Saṅkappa)는 길[성스런 팔정도]에서 진전을 이루는데 초점이 맞추어진 생각을 생성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 * 그것들은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하고 그래서 닙바-나(Nibbāna)에 초점이 맞추어진 ‘성스런 와찌- 상카-라(Noble vacī saṅkhāra)’입니다. 

  • * 그런데, 그런 상카-라(saṅkhāra)는 ‘꾸살라ㅡ물-라 빳짜야- 상카-라(kusala-mūla paccayā saṅkhāra)’로 시작하는 ‘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Kusala-Mūla Paṭicca Samuppāda)에서 일어납니다.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로 시작하는 아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ūla Paṭicca Samuppāda)와 다른 점에 주목하세요. 이 시리즈에서 향후에 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Kusala-Mūla Paṭicca Samuppāda)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 그것은 ‘빠띳짜 사뭅빠다(연기)’ 섹션의 ‘꾸살라ㅡ물-라 빠띳짜 사뭅빠-다’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모든 상카-라가 아윗자-(및 땅하-)로 인한 것은 아니다

 

12. 이제 우리는 어떻게 땅하-(taṇhā)를 통해 들러붙을 때에만 아윗자-(avijjā)로 인해 상카-라(saṅkhāra)를 행하기 시작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사이클의 시작, 즉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nkhārā)’입니다.

 

  • * 그러나 모든 상카-라가 좋거나 나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가져올 수 있는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역시, 아-람마나로 인해) 목이 말라서 물 한 잔을 마시러 부엌에 가기로 (와찌 상카-라로)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부엌으로 걸어가는 것은 (신체를 움직이기 위한)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를 수반합니다. 그러나 그 의도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업적으로 중립입니다. 그것은 아윗자-(avijjā)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 * 호흡을 포함한 모든 신체 활동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로 행해집니다. 수행됩니다. 그러나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nkhārā)’는 나쁜 또는 오염된 의도가 마음에 있을 때에만 작동하게 됩니다. 호흡이나 위에서 언급한 활동과 관련해서는 아윗자-(avijjā)나 땅하-(taṇhā)가 없습니다(따라서, 그것들은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아뿐냐 아비상카-라-는 아윗자-(및 땅하-)로 행한 것이다

 

13. 이제 도둑의 행동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의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지갑을 떨어 뜨린 것을 봅니다. 지갑을 보는 순간, 그의 마음은 그것에 들러붙습니다(땅하-, taṇhā). 그 다음, 그는 지갑에 돈이 좀 있을 수 있고 공짜로 돈을 얻는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의식적인 생각은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입니다. 그 다음, 그는 그것을 집어 주머니에 넣습니다. 그 마지막 단계는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를 수반합니다.

 

  • * 여기서 그는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로 신체 행동을 했습니다. 그는 도둑질이 미래에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따라서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nkhārā)는 지갑을 집어 주머니에 넣는 나쁜 생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 * 그렇게 하는 동안, 그는 마음에 (나쁜 쩨따나를 가진) ‘나쁜 상카-라(bad saṅkhāra)’를 지녔습니다. 쩨따나(cetana, 의도)는 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나쁜 상카-라(bad saṅkhāra)는 아뿐냐 아비상카-라(apuñña abhisaṅkhāra)입니다. 이 예에서,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는 모두 아뿐냐 아비상카-라(apuñña abhisaṅkhāra)였습니다.

 

‘뿐냐 아비상카-라’ 역시 아윗자-(및 땅하-)로 행한 것이다

 

14. 이전 포스트(게시물)인 ‘깜마, 상카-라, 및 아비상카-라 ㅡ 의도란 무엇인가?’(#12)에서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와 아-넨자-비상카-라(āneñjābhisaṅkhāra)도 아윗자-(avijjā)로 행해진다는 점을 간략하게 가리켜 보였습니다.

 

빠띳짜사뭅빠-다 위방가(Paṭiccasamuppāda Vibhaṅga)는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에서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라는 구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Tattha katame avijjā paccayā saṅkhārā? Puññābhisaṅkhāro, apuññābhisaṅkhāro, āneñjābhisaṅkhāro, kāyasaṅkhāro, vacīsaṅkhāro, cittāaṅkhāro”.

 

번역: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는 무엇인가?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 아뿐냐-비상카-라(apuññābhisaṅkhāra), 아-넨자-비상카-라(āneñjābhisaṅkhāra), 까-야상카-라(kāyasaṅkhāra), 와찌-상카-라(vacīsaṅkhāra), 찟따-앙카-라(cittāaṅkhāra)”. (여기서, ‘찟따 상카-라’는 ‘마노- 상카-라’와 같습니다). 아뿐냐-비상카-라(apuññābhisaṅkhāra)가 아윗자-로 인한 것임은 아주 분명합니다. 그러나 다른 두 가지가 왜 아윗자-로 인해 행해진 것이라고 할까요? 

 

  • *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는 물론, 도덕적이고 좋은 행위이며 또한 루빠와짜라 자-나를 육성하는 것입니다.

  • * 아-넨자-비상카-라(āneñjābhisaṅkhāra)는 아루-빠-와짜라 자-나(arūpāvacara jhāna, 무색계 선정)를 기르는 것과 관련됩니다. 

  • *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그 두 가지 유형의 ‘좋은 상카-라’를 할 때, 그들은 여전히 아윗자-(avijjā)로 행합니다! 그것은 재탄생 과정에 머무르는 위험을 아직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 기본 개념을 얻기 위해서, 간단히 아래 예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5. 이제, 다른 보통 사람으로 위 #13과 동일한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좋은 도덕적 가띠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항상 도덕적인 행위를 하려고 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 * 이 사람은 지갑을 주워서 접수 담당자에게 가져갈 것입니다. 지갑을 떨어뜨린 사람이 찾으러 올 수도 있습니다. 그 지갑에 운전 면허증뿐만 아니라 신용 카드와 돈도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한 사람(선한 사마리아인)은 지갑 주인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많은 [귀찮은] 일을 하지 않게 했습니다.

  • * 그것은 뿐냐 아비상카-라(puñña abhisaṅkhāra)입니다. 그러나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이면, 그것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nkhārā)를 통해 행합니다. 그가 ‘선한 행’을 했기 때문에 [‘아윗자-’로 행한 것은] 모순이 아닌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 *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평범한(세간) 팔정도와 성스런(출세간) 팔정도 사이의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2가지 팔정도 ㅡ 평범한(세간) 팔정도와 성스런(출세간) 팔정도

 

16. 붓다께서는 두 가지의 팔정도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하-짯따-리-사까 숫따, Mahācattārīsaka Sutta, MN 117). 하나는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에 대한 이해(야타-부-따 냐-나, yathābhūta ñāna)가 없이 선행을 하는 평범한(세간) 팔정도입니다. 먼저 10 가지 유형의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제거함으로써 평범한(세간) 팔정도에 이르게 됩니다. ‘붓다 담마에서 독특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포스트에서 두 가지 길(팔정도)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 * 10 가지 유형의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없애고 나면, 또 다른 중요한 단계는 성스런(출세간) 팔정도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라는 이 세상의 참된 본질을 성자로부터 배운 성자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그 계통은 부처님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소따-빤나 막가/팔라를 얻기 위한 4가지 조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오직 부처님만이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본질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성자(아리야-, Ariyā)에게서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한(세간) 팔정도에만 접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 *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단계들을 마치면, 향후 포스트(게시물)에서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본질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 물론,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아닛짜, 둑카, 아낫따(Anicca, Dukkha, Anatta)’ 서브섹션에서 논의되었습니다. 이 ‘담마와 과학’ 섹션에서 현재 진행 중인 이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 시리즈는 체계적으로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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