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google":["PT Serif","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Nanum Barun Gothic"]}

 

 

깜마, 상카-라, 및 아비상카-라 ㅡ 의도란 무엇인가?

 

원문: Dhamma and Science 섹션의 ‘Kamma, Saṅkhāra, and Abhisaṅkhāra – What Is “Intention”?’ 포스트

- 2019년 11월 23일 작성

 

상카-라는 미래 괴로움(고통)의 원인을 만든다

 

1.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PS)는 미래 괴로움(고통)이 어떻게 아윗자-(avijjā)로 행해진 상카-라(saṅkhāra)로 인해 일어나는지를 설명합니다. 의도는 큰 역할을 하며 그것은 아윗자-(avijjā)의 레벨에 달려 있습니다.

 

  • * PS(연기) 사이클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로 시작하며 “자-띠 빳짜야- 자라-, 마라나, 소까 빠리데-와 둑카 도-마낫수빠-야사-삼바완’띠(jāti paccayā jarā, marana, soka-paridēva-dukkha-dōmanassupāyasā sambhavan’ti’)”로 끝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에와메땃사 께왈랏사 둑칵칸닷사사무다요- 호-띠(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ō hōti)”, 즉 “그것이 이 전체 괴로움(고통)의 덩어리가 일어나는 방식이다”라고 합니다.

  • * 그러므로, PS(연기) 사이클은 일반적으로 모든 유형의 미래 괴로움(고통)을 다룹니다. 그것은 주어진 삶 동안의 ‘나쁜 깜마 위빠-까(bad kamma vipāka)’와 또한 미래 재탄생으로 이어지는 ‘더 강한 깜마 위빠-까(stronger kamma vipāka)’를 포함합니다. 특히, 사악처(apāyā)에 재탄생하는 것은 최악의 괴로움(고통)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 * 이 모든 사실은 사-두 숫따(Sādhu Sutta, AN 10.134)로 시작하여 AN 10.236으로 끝나는(100개가 넘는 숫따!)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 Nikāya)(10)에 있으며, 짧은 숫따-(suttā)로 된 긴 목록(복수의 숫따-)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 * 그 숫따-(suttā)에 대한 영어 번역은 숫따 센트럴 사이트(Sutta Central site)의 다사까니빠-따(Dasakanipāta)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참조를 알려주신 독자인 ‘y not’님에게 감사드립니다. 

  • * 필자는 ‘Anguttara Nikāya – Suttā on Key Concepts’ 포스트에서 그것들 중 여러개를 번역하였습니다. 

 

괴로움(그리고 즐거움)은 ‘깜마 위빠-까’로 인해 일어난다

 

2. 그 숫따-(suttā)에 따르면, 괴로움(둑카, dukkha)은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 또는 아뿐냐 깜마(apuñña kamma)(간단히 ‘부도덕한 행위’로 번역됨)의 위빠-까(vipāka, 결과)로 인해 일어납니다.

 

  • * 같은 식으로, 즐거움(수카, sukha)은 꾸살라 깜마/뿐냐 깜마(kusala kamma/puñña kamma)(간단히 ‘도덕적 행위’로 번역됨)의 결과입니다.

  • * 꾸살라 깜마(kusala kamma)와 뿐냐 깜마(puñña kamma)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에 대해 논의한 후, 추후에 그 차이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

  • * 그때까지는, 꾸살라 / 뿐냐(kusala / puñña)와 아꾸살라 / 아뿐냐(akusala / apuñña)를 별 다른 구분없이 사용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는 ‘꾸살라/뿐냐 깜마(kusala/puñña kamma)’가 ‘좋은 것’이고, ‘아꾸살라/아뿐냐 깜마(akusala/apuñña kamma)’가 ‘나쁜 것’이라고만 가정하고 있습니다.

  • * 꾸살라/아꾸살라 깜마(kusala/akusala kamma)를 대략 ‘도덕적/부도덕한 행위’로 번역하더라도, 깜마-(kammā)는 신체 행동, 말, 또는 생각을 통해 행해집니다.

 

다사 아꾸살라 ㅡ 미래 괴로움(고통)의 씨앗

 

3. 근본적인 레벨에서, 붓다께서는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를 3가지 범주로 구분하셨습니다. 신체 행동으로 행한 것(까-야 깜마, kāya kamma)들은 살생, 도둑질, 성적 비행입니다. 로 행한 깜마(와찌- 깜마, vacī kamma)에는 4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것들은 거짓말, 비방(중상)말, 거친 말(욕설 등), 험담류의 잡담(입방아 찧는 말, 뒷 말 등)입니다. 마지막으로, 생각으로 행한 3가지 유형(‘마노- 깜마_manō kamma’ 또는 ‘찟따 깜마_citta kamma’)은 과도한 탐욕, 과도한 분노, 잘못된 견해)입니다.

 

  • * 빠알리어로 그 10가지 유형의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 (dasa akusala, 다사 아꾸살라)는 빠-나-띠빠-또(pāṇātipāto), 아딘나-다-낭(adinnādānaṃ), 까-메수밋차-짜-로(kāmesumicchācāro), 무사-와-도(musāvādo), 삐수나- 와-짜-(pisuṇā vācā), 파루사- 와-짜(pharusā vācā), 삼팝빨라-뽀(samphappalāpo), 아빗자-(abhijjhā), 브야-빠-도(byāpādo),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입니다.

  • * 그것들은 3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진 10가지 유형의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입니다.

 

모든 유형의 깜마는 마음이 기원이다

 

4. 10가지 유형의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를 살펴보면, 깜마(kamma,  업)가 단지 육체적 행위를 의미하지 않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은 미래에 위빠-까(vipāka)를 가져올 수 있는 깜마(kamma)를 축적하는 요인이 됩니다.

 

  • *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좋은 말을 하고 선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나쁜 의도/마음가짐을 가집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말을 잘하는 척 할 수도 있지만, 자신에게 나쁜 생각으로 상대방에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즉, 나쁜 생각의 말은 자신에게 나쁜 업이 될 뿐, 상대방에게 나쁜 업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임].

  • * 좋은 행동/말을 하는 움직임(동작)을 연습하는 것은 좋은 업 에너지(kammic energy)를 생성하는데 중요하지 않습니다. 

 

붓다께서는 이 점을 매우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닙베디까 숫따(Nibbedhika Sutta, AN 6.63)에서 “쩨따나-항(쩨따나- 아항), 빅카웨, 깜망 와다-미. 쩨따이뜨와- 깜망 까로띠ㅡ까-예나 와-짜-야 마나사-(Cetanāhaṃ (cetanā aham), bhikkhave, kammaṃ vadāmi. Cetayitvā kammaṃ karoti—kāyena vācāya manasā.)”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내가 말하건대, 의도가 업이다. 몸, 말, 생각을 통해, (마음에 있는) 의도로 깜마를 행한다.”는 의미입니다.

 

  • * 그래서, 10가지 유형의 모든 깜마(kamma)에 대한 업 에너지(kammic energy)는 마음에서 생성됩니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마음모든 10가지 유형의 깜마와 관련된 업 에너지생성합니다. 

  • * 이 결정적인(매우 중요한) 점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의도는 상카-라에 있다

 

5. 다양한 유형의 쩨-따시까(cētasika)를 사용하여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 또는 깜마 비-자(kamma bīja)를 만드는 것은 자와나 찟따(javana citta)에 있는 쩨-따나-(cētanā)입니다. 그런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 또는 깜마 비-자(kamma bīja)는 담마-(dhammā)의 일부분입니다.

 

 

6. 위 #4에서 논의한 것은 다음과 같이 붓다 담마의 용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마음은 마노- 상카-라(manō saṅkhāra),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라는 세 가지 유형의 상카-라(saṅkhāra)를 생성합니다. 세 가지 유형의 상카-라(saṅkhāra)는 모두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 * 그 의도들이 어떻게 말과 신체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 *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와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에 의도된 신체적 움직임과 말을 ‘실행’하는 것은 뇌입니다. 뇌는 근육과 신경계의 도움으로 신체 부위를 움직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말은 혀와 입 주변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생성되어 나옵니다.

  • * 따라서,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는 까-야 깜마(kāya kamma) (살생, 도둑질, 성적 비행)로 이어집니다.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는 와찌- 깜마(vacī kamma) (거짓말, 비방/중상, 거친 말, 험담류의 잡담)로 이어집니다. 마노- 상카-라(manō saṅkhāra) 또는 찟따 상카-라(citta saṅkhāra)는 마노- 깜마(manō kamma) 또는 찟따 깜마(citta kamma) (과도한 탐욕, 과도한 분노, 잘못된 견해)로 이어집니다.

 

조종사/비행기에 비유되는 마음/육체

 

7. 마음 자리(hadaya vatthu, 하다야 왓투)는 생각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는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āya, 정신적 몸 또는 간답바)의 일부입니다.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는 뇌와 지속적으로 접촉합니다.

 

  • * 즉, 마음은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고, 뇌는 그 권고를 실행합니다. 비유하자면, 비행기가 비행하는 방식과 같습니다. 조종사를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고, 내장 컴퓨터는 그 권고를 실행합니다.

  • * 그것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Brain – Interface between Mind and Body’ 포스트에 있습니다.

  • *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의 중요성에 대한 현대의 과학 증거는 단지 초기 단계에 불과합니다. 다음 구절은 ‘Exploring the Role of the Heart in Human Performance’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심장은 인체에서 전자기 에너지의 가장 강력한 원천으로, 신체 기관 중에서 가장 큰 리듬의 전자기장을 생성합니다. 심장의 전기장은 뇌에서 생성된 전기적 활성보다 진폭이 60배 정도 더 큽니다.”

  • * 그러나,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는 심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육체 심장 가까이에 있는 정신적 몸(간답바)에 있습니다.

 

모든 상카-라가 업 결과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8. 빠띳자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서 단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라고 말하지만, 모든 상카-라(saṅkhāra)가 업의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항상 아윗자-(avijjā)로 행하지는 않습니다.

 

  • * 예를 들어, 모든 신체 움직임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일어서기로 결정하면, 뇌는 다리 근육을 움직여서 그것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미래 위빠-까(vipāka)를 가져올 어떤 업적 에너지(kammic energy)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체적  행동이 업적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은 아닙니다.

  • * 업적 결과(kammic consequence)를 가지는 상카-라(saṅkhāra)는 ‘강한 상 카-라(strong saṅkhāra)’, 즉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입니다. 그것을 우선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좋거나 나쁜 쩨-따시까는 의도의 계기(의도에 대한 책임) ㅡ 쩨따나는 모든 찟따에 있다

 

9. 팔을 휘두르면 그것은 까-야 깜마-(kāya kammā)입니다. 왜냐하면 그 행동은 신체 부분을 움직이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행동은 마음에서 생성된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팔의 움직임을 제외하고는) 업적 결과가 없습니다.

 

  • * 이제, 컵을 잡기 위해 팔을 휘두르면, 그것도 또한 업적으로 중립 행동(kammā, 깜마-), 즉 단지 상카-라(saṅkhāra)입니다. 도덕적이거나 부도덕한 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의도는 컵을 잡으려는 것이었고, 그것은 어떤 소-바나 쩨-따시까(sōbhana cētasika) 또는 아소-바나 쩨-따시까(asōbhana cētasika)를 수반하지 않았습니다. 그 행동은 끼리야(kiriya)(산스크리트어로 kriyā, 싱할라어로 ක්රියා)입니다.

  • * 반대로 팔을 휘둘러 누군가를 때렸다면, 그것은 성냄으로 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소-바나 쩨-따시까_asōbhana cētasika’인) 도-사 쩨-따시까(dōsa cētasika)가 생각(마음)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아뿐냐-비상카-라(apuññābhisaṅkhāra, apuñña abhisaṅkhāra)였습니다. 마음 속의 그 아뿐냐-비상카-라(apuññābhisaṅkhāra)가 아꾸살라/아뿐냐 깜마-(akusala/apuñña kammā), 즉 부도덕한 행위로 이어졌습니다.

  • * 두 팔을 모아 붓다께 경의를 표한다면, 그것은 뿐냐-비상카-라 (puññābhisaṅkhāra, puñña abhisaṅkhāra) 입니다. [그때에는] 삿다- 쩨-따시까(saddhā cētasika)(‘소-바나 쩨-따시까’임)가 그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그것을 꾸살라/뿐냐 깜마(kusala/puñña kammā), 즉 ‘도덕적 행위’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 * 그러므로, ‘좋거나 나쁜 쩨-따시까(cētasika)(정신 요소)는 생각(마음)에 의도를 불러오는 요소입니다. 쩨-따나- 쩨-따시까(cētanā cētasika)는 모든 생각(마음)에 있습니다. 쩨-따나- 쩨-따시까(cētanā cētasika)는 단지 주어진 생각(마음)에 ‘좋거나 나쁜’ 쩨-따시까(cētasika)를 포함시켜, 그 ‘의도’를 전달합니다.

 

앗사-사 빳사-사(호흡)은 ‘까-야 상카-라’다

 

10. 가장 기본적인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는 호흡에 관여합니다. 우리가 숨쉬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또한 가장 중요한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입니다.

 

  • * 모든 유형의 상카-라(saṅkhāra)는 쩨-따나-(cētanā)를 수반하므로 상카-라(saṅkhāra)는 찟따 위티(citta vithi)를 필요로 합니다. [보통] 우리는 의도적으로 숨쉬지는 않습니다. 그 때문에 호흡과 관련된 그 찟따 위티(citta vithi)에는 자와나 찟따(javana citta)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빠릿따-람마나 찟따 위티(parittārammana citta vithi)입니다. 그것은 그 찟따 위티가 ‘약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물론, 호흡은 업적 결과(kammic consequence)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신체 행위이지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아뿐냐-비 상카-라, 뿐냐-비 상카-라, 및 아-넨자-비상카-라

 

11. 우리는 위에서 업 에너지를 생성하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 아뿐냐-비상카-라(apuññābhisaṅkhāra)와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라는 두 개의 새로운 용어를 소개했습니다. 여기서, 아뿐냐-비 상카-라(apuññābhi saṅkhāra)는 아꾸살라(akusala, ‘아뿐냐_apuñña’ 또는 부도덕한) 깜마로 이어집니다. 업 에너지를 가진, 좋고 도덕적인 행동, 말, 또는 생각은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를 수반합니다. 

 

  • * 세 번째 유형의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로서, 아-넨자-비상카-라(āneñjābhisaṅkhāra, āneñja abhisaṅkhāra)가 있습니다. 이 세 번째 유형의 상카-라(saṅkhāra)는 가장 높은 4가지 자-나(jhāna)인 아루빠-와짜라 자-나(arupāvacara jhāna)를 개발한 자의 마음에 일어납니다.

  • * 아뿐냐-비상카-라(apuññābhisaṅkhāra)는 아빠-야-(apāyā, 악처)에 재탄생되게 합니다. 물론, 이것들은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로 이어집니다.

  • *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는 인간, 천신(deva), 및 색계 범천(rupāvacara Brahma, 루빠-와짜라 브라흐마) 영역에 재탄생되게 합니다.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그런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로 행해집니다. 루빠-와짜라 자-나(rupāvacara jhāna, 색계 선정)을 개발하는 것은 뿐냐- 깜마(puñña kamma)라는 점에 주목하세요.

  • * 아-넨자-비상카-라(āneñjābhisaṅkhāra)는 아루빠-와짜라 브라흐마 (arupāvacara Brahma, 무새계 범천) 영역에 재탄생되게 합니다.

 

‘빠띳짜 사뭅빠-다’에서 ‘상카-라’는 ‘아비상카-라’다

 

12.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첫 단계에서, 비록 간단히 ‘아윗짜-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라고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는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ā)를 칭합니다.

 

빠띳짜사뭅빠-다 위방가(Paṭiccasamuppāda Vibhaṅga)에서, (괴로움으로 이어지는)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 중의 ‘아윗짜-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 항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즉, “땃타 까따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 뿐냐-비상카-로, 아뿐냐-비상카-로, 아-넨자-비상카-로, 까-야상카-로, 와찌-상카-로, 찟따-상카-로(tattha katame avijjā paccayā saṅkhārā? Puññābhisaṅkhāro, apuññābhisaṅkhāro, āneñjābhisaṅkhāro, kāyasaṅkhāro, vacīsaṅkhāro, cittāaṅkhāro)”로 설명합니다.

 

번역: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는 무엇인가?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 아뿐냐-비상카-라(apuññābhisaṅkhāra), 아-넨자-비상카-라(āneñjābhisaṅkhāra), 까-야상카-라(kāyasaṅkhāra), 와찌-상카-라(vacīsaṅkhāra), 찟따-상카-라(cittāaṅkhāra)이다”. (여기서, ‘찟따 상카-라_citta saṅkhāra’는 ‘마노- 상카-라_manō saṅkhāra’와 동일함).

 

  • * 그 (빠띳짜 사뭅빠-다, 연기) 구절에서 비록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로 단순화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모두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입니다.

  • * 상카-라(saṅkhāra)의 2가지 카테고리가 거기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한가지는 (‘뿐냐-비상카-라_puññābhisaṅkhāra’, ‘아뿐냐-비상카-라_apuññābhisaṅkhāra’, ‘아-넨자-비상카-라_āneñjābhisaṅkhāra’로) 축적된 깜마(kamma) 유형입니다. 

  • * 다른 한가지 카테고리는 몸(까-야 상카-라), 말(와찌- 상카-라), 또는 마음(찟따 상카-라 또는 마노- 상카-라)이라는 세가지 모드로 가리켜 보입니다.

  • * 이것은 또한 여러 숫따-(suttā)에서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기-띠 숫따(Saṅgīti Sutta, DN 33)에서는, “따요 상카-라ㅡ뿐냐-비상카로, 아뿐냐-비상카-로, 아-넨자-비상카-로(tayo saṅkhārā—puññābhisaṅkhāro, apuññābhisaṅkhāro, āneñjābhisaṅkhāro).”라고 합니다.

 

13. 그러므로, 상카-라(saṅkhāra)라는 말은 다른 문맥에서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카-라(saṅkhāra)를 단지 ‘정신적 형성(mental formation)’으로 번역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 * 상카-라(saṅkhāra)를 단지 ‘정신적 형성(mental formation)’으로 번역하는 것은 많은 통찰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위에서 논의한 기본 개념을 한 번 이해하면, 상카-라(saṅkhāra)의 다양한 유형에 대한 진짜 의미를 알기가 쉽습니다.

  • * 다음 포스트에서는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 및 마노- 상카-라(manō saṅkhāra)에 대해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그러면, 위딱까/위짜라(vitakka/vicara)와 와찌- 상카-라(vacī saṅkhāra)의 결정적인 연결고리가 명확해질 것입니다.

  • * 또한, ‘마음의 복잡함ㅡ윈냐-나와 상카-라'와, ‘상카-라로 행해진 깜마 - 상카-라의 유형’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모든 포스트는 이 ‘담마와 과학’ 섹션 중의 ‘생명의 기원’ 서브섹션에 있습니다.

{"google":["PT Serif"],"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google":["PT Serif","PT Sans"],"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Nanum Barun Gothic"]}
{"google":["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