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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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카-라'로 행해진 깜마 - '상카-라'의 유형


원문: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Kamma are Done with Sankhāra – Types of Sankhāra’ 포스트 (구제목 : Sankhāra and Kamma, Viññāna and Kamma Beeja)

2019년 5월 13일 및  2019년 5월 14일 전면개정(제목 변경 포함)


‘상카-라’와 ‘상사-라’라는 낱말의 기원


1. 모든 깜마(kamma, 업)는 상카-라(sankhāra)로 행해집니다. 그러나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만이 재탄생 과정(윤회)을 부채질할 수 있는 강한 깜마(kamma)로 이끕니다.


  • * 상카-라(sankhāra)는 31영역의 이 세상에 살기 위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숨쉬기, 걷기, 먹기, 등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마음의 복잡함 - 윈냐-나와 상카-라'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누구든지 하는 일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생각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다리를 들어 올리려면, 그 행위가 자동적으로 행해지는 것 같이 보이더라도 먼저 자신의 마음에서 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하는 어떤 일이라도 산(san)의 생각, 즉 '이 세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산(san)’ 서브 섹션과, ‘List of “San” Words and Other Pāli Roots’ 포스트를 보세요. 이 모든 것은 상카-라(sankhāra, ‘san’ + ‘khāra’)에 속합니다. 카-라(khāra)는 ‘행위’를 뜻합니다.

  • * 아라한 성자들까지도 빠리닙바-나(Parinibbāna), 즉 육체적 죽음 때까지 상카-라(sankhāra)를 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2. 상카-라(Sankhāra)는 탐함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행할 때 아비상카-라( abhisankhāra )가 됩니다. ‘닙바나는 이해하기 어려운가? 포스트를 보세요.


  • * 윤회 과정(재탄생 과정)은 아비상카-라(abhisankhāra)에 의해 추진됩니다. 접두사 ‘아비(abhi)’는 ‘강한’을 의미합니다.

  • * 아라한 성자는 아비상카-라(abhisankhāra), 즉 탐함, 성냄, 어리석음이 있는 생각(마음)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 * 아라한 성자는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nkhāra, puñña abhisankhāra)가 일어나지 않지만, 뿐냐 끼리야(puñña kiriya)를 행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Kusala and Akusala Kamma, Puñña and Pāpa Kamm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끼리야(kiriya)는 기본적으로 탐함, 성냄, 어리석음의 개입이 없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 * 띨락카나(아닛짜, 둑카, 아낫따)를 완전히 이해하면 뿐냐-비상카-라( puññābhisankhāra )는 뿐냐 끼리야(puñña kiriya)로 바뀝니다.


3. 그러므로, 윤회 과정(재탄생 과정)은 아비상카-라(abhisankhāra)에 의해 추진됩니다. 


  • * 상사-라(sansāra)라는 낱말은 ‘산(san)’ + ‘사-라(sāra)’에서 유래하며, 여기서 ‘사-라(sāra)’는 ‘유익한’을 의미합니다.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삼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 세상 대부분의 태어남이 고통(괴로움)으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한 ‘이 세상은 유익하거나 결실있다’는 인식을 갖게 될 것입니다.

  • * 비록 인간 영역, 데와(천신) 영역, 브라흐마(범천) 영역과 같은 일부 영역은 ‘즐거움’이 오랜 기간 계속될 수 있지만, 그것은 아빠야(apāya)(동물 영역을 포함하여 4가지 하위 영역)에서 오래 고통받는 것에 비하면 무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 * 윤회 과정은 (아비)상카-라에 의해 추진됩니다. 이것이 바로 아라한 성자가 31영역의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아라한 성자는 아비상카라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상카-라’와 ‘깜마-’ 사이의 연결


4. 깜마-(kammā)는 몸, 말, 생각(마음)을 통한 어떤 행위입니다(kāya kammā, vaci kammā, manō kammā). 이 3가지 유형의 깜마-(kammā)는 생각, 즉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 및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에 의해 시작됩니다.


  • * 우리는 깜마-(kammā)와 상카-라(sankhāra)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 붓다께서는 “쩨따나 항 빅카웨 깜마-앙 와다미(cetana ham Bhikkhave kammām vadami)”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빅쿠들이여, 깜마(kammā)는 의도(intention)라고 나는 말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 의도는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상카-라(sankhāra)에 있으며, 쩨따시까(cetasika, 마음 요소) 유형에 박혀 있습니다.

  • * ‘의도’는 생각(찟따, citta)에 있는 쩨따시까(cetasika)의 유형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탐하는 의도’를 가진 생각에서는 로-바 쩨따시까(lōbha cetasika)를 갖게 되지만, 잇사(issa, 질투)와 같은 다른 쩨따시까(cetasika)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5. 이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팔을 움직이면, 까-야 깜마-(kāya kammā), 즉 그 동작은 신체 부위를 움직이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에 생성된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 * 이제, 팔을 움직여 컵을 잡으면, 그것은 중립적인 행동(kammā), 즉 단지 상카-라(sankhāra)입니다. 그 사람은 도덕적이거나 부도덕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의도는 컵을 잡는 것이었고, 그것은 소-바나(sōbhana) 또는 아소-바나(asōbhana) 쩨따시까(cetasika)와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끼리야(kiriya, 산스크리트어로 kiriya)라고 합니다.

  • * 다른 한편으로, 팔을 움직여 누군가를 때린다면, 그것은 분노로 행했습니다. 그래서, 아소-바나 쩨따시까(asōbhana cetasika)인 도-사 쩨따시까(dōsa cetasika)가 그 사람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아뿐냐-비 상카-라(apuññābhi sankhāra)였습니다. 그것은 아꾸살라/아뿐냐( akusala/apuñña ) 깜마(kammā), 즉 부도덕적인  행위라고도 합니다.

  • * 만약 사원에서 양팔을 모아서 붓다께 경의를 표했다면, 그것은 소-바나 쩨따시까(sōbhana cetasika)인 삿다- 쩨따시까(saddhā cetasika)로 행해 졌으므로,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nkhāra)였습니다. 그것은 꾸살라/뿐냐 kusala/puñña ) 깜마(kammā), 즉 도덕적인  행위라고도 합니다.


6. 이제 우리는 모든 깜마(kammā)가 마음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상카-라(sankhāra)에 의해 시작됩니다.


  • *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는 감각 대상이 경험될 때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입니다.

  • * 그 다음, 그 대상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외부로] 말하지 않고 의식적인 생각(자신에게 말하기)을 생성하기 시작하고, 그리고 [외부로] 말합니다. 둘 다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입니다.

  • * 그 후, 신체 부위를 움직여 반응을 시작하면, 그것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 * ‘상카-라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와  ‘와찌- 상카-라의 바른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7. 따라서,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도 생각이라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들은 신체 움직임, 즉 까-야 깜마-(kāya kammā)의 원인입니다. 그것들은 또한 신체적인 몸짓(제스쳐), 즉 까-야 윈냣띠(kāya viññatti)의 원인입니다.


  • * 즉, 모든 상카-라(sankhāra)는 정신적 몸(간답바, gandhabba)에 의해 생성됩니다. 그것은 신체 부위를 움직이거나 입술과 혀를 움직여 말하도록 뇌에게 명령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의 정신적 몸 - 간답바’ 포스트와, 간답바에 관한 다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또한, 까-야 깜마-(kāya kammā), 와찌 깜마-(vaci kammā), 및 마노- 깜마-(manō kammā)는 각각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 및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라는 상카-라의 각 유형에 의해 시작됩니다.

  • * 이 항목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상카-라, 깜마, 깜마 삐-자, 깜마 위빠까’ 포스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상카-라’와 ‘깜마-’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8. 그러므로, 상카-라(sankhāra)는 생성된 그 유형이 자신의 생각에 있는 쩨따시까(cetasika, 정신 요소)의 유형으로 정의된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더 깊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 어떤 찟따(citta, 생각)는 좋은(소-바나, sōbhana) 쩨따시까나 나쁜(아소-바나, asōbhana) 쩨따시까가 없습니다. 이런 찟따는 업(kamma)적으로 중립적이고, 소-바나 카테고리도 속하지 않고 아소-바나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는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ā), 위리야(viriya) 등의 쩨따시까 유형만 수반합니다.

  • * 업과 관련된 상카-라(아비상카-라)는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 선업)와 관련된 소-바나 쩨따시까(sōbhana cetasika)나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ā, 불선업)과 관련된 아소-바나 쩨따시까(asōbhana cetasika)를 수반합니다.

  • * 그러므로 소-바나 쩨따시까(sōbhana cetasika)를 수반하는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는 뿐냐 아비상카-라(puñña abhisankhāra) 또는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nkhāra)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소-바나 쩨따시까(asōbhana cetasika)를 수반하는 것은 아뿐냐-비상카-라( apuññābhisankhāra )입니다. ‘Cetasika (Mental Factors)’를 참조하세요.


9. 아비담마(Abhidhamma)를 좀 아는 것은 특정 주요 담마(dhamma) 개념을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아비담마(Abhidhamma)는] 배우기가 힘들지 않습니다. 아비담마(Abhidhamma)는 붓다께서 빠리닙바-나(Parinibbāna, 반열반)에 드신 후에 최종 확정되었기 때문에( ‘Abhidhamma – Introduction’ 참조), 이러한 세부 사항은 숫따(Sutta)에 없습니다.


  • * 이제 우리는 ‘산(san)’의 면에서 제따시까(cetasika)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알고 있듯이, ‘산(san)’은 재탄생 과정(윤회)을 유지시키는 것입니다.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삼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우리는 그 아소-바나 쩨따시까(asōbhana cetasika)가 아뿐냐-비 상카-라(apuññābhi sankhāra)로 산(san)을 일으켜 나쁜 영역에 재탄생하게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 반면에, 소-바나 쩨따시까(sōbhana cetasika)는 뿐냐-비 상카-라(puññābhi sankhāra)로 산(san)을 일으켜 좋은 영역에 재탄생하게 합니다.


‘뿐나-비상카-라’도 ‘아윗짜-’로 행해진다


10. 빠띳짜사뭅빠-다 위방가( Paṭic­ca­samup­pāda ­Vibhaṅga )에서, 고통(괴로움)으로 이끄는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ticca Samuppāda)의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 항목은 다음과 같이 설명됩니다:

“땃타 까따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 뿐냐-비상카-로, 아뿐냐-비상카-로, 아-넨자-비상카-로, 까-야상카-로, 와찌-상카-로, 찟따상카-로(Tattha katame avijjā paccayā saṅkhārā? Puññā­bhi­saṅ­khāro, apuññā­bhi­saṅ­khāro, āneñjā­bhi­saṅ­khāro, kāyasaṅkhāro, vacīsaṅkhāro, cittasaṅkhāro)”.


번역: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는 무엇인가? 뿐냐-비상카-라, 아뿐냐-비상카-라, 아-넨자-비상카-라, 까-야상카-라, 와찌-상카-라, 찟따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 apuññā­bhi­saṅ­khāra, āneñjā­bhi­saṅ­khāra, kāyasaṅkhāra, vacīsaṅkhāra, cittasaṅkhāra)다”. 여기서, 찟따상카-라( cittasaṅkhāra )는 마노-상카-라(manōsaṅkhāra)와 같습니다.


  • * 이 구절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로 간략화되어 있지만, 이것들은 모두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 * 거기에 언급된 상카-라에는 두 가지 범주가 있습니다. 하나의 범주는 축적된 깜마(kamma)의 유형을 나타냅니다. 다른 하나의 범부는 그것들이 몸, 말 또는 마음에 의해 행해졌는지를 나타냅니다.

  • * [상카-라(sankhāra)는  ‘정신적 형성(mental formations)’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그래서, 이 번역은 윈냐-나(viññāna)를 의식(consciousness)로 번역한 것보다는 낫다 하더라도, 상카-라(sankhāra)는 단순한 ‘정신적 형성(mental formations)’보다 훨씬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11.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 또는 공덕있는 생각이 어떻게 아윗자-(avijjā)와 함께 일어나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 * 간단한 대답은 자신이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즉, 31영역 이 세상 어디에서도 괴로움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때까지), 각자는 공덕행 조차도 이 세상에서 ‘좋은 결실/좋은 재탄생’을 기대하면서 행한다는 것입니다.

  • * 그러므로,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는 공덕행을 할 때에도 아윗자-(avijjā)를 갖게 됩니다.


좋은 상카-라(뿐냐 아비상카-라)를 피할 필요가 있는가?


12. 그러나 이것이 뿐냐-비 상카-라(puññābhi sankhāra)를 멀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나쁜 영역에 재탄생하지 않기 위해, 또한 도덕성을 키우기 위해, 또한 필요한 환경(특히 건강을 유지하고 빈곤하지 않는 환경)을 준비하기 위해,  뿐냐-비 상카-라(puññābhi sankhāra)를 행해야 합니다.


  • * 붓다께서는 많은 숫따에서 공덕행(뿐냐-비 상카-라)을 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Sumana Sutta (AN 5.31)’를 참조하세요.

  • * 닙바-나는 31영역 어느 곳에 재탄생하더라도 결실이 없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달성되며, 그것을 위해서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 뿐냐 깜마-(puñña kammā) 또는 뿐냐-비 상카-라(puññābhi sankhāra)를 행하여 올바른 심적 경향(마음 가짐, 사고 방식)을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완전히 이해하면(즉, 아라한이 될 때), 뿐냐-비 상카-라(puññābhi sankhāra)는 뿐냐 끼리야-(puñña kriyā)로 바뀔 것입니다. 이것은 미묘한 점입니다.


아라한은 ‘뿐나-비상카-라’ 대신에 ‘뿐나 끼리야-’를 행한다


13.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완전히 이해하면(즉, 아라한이 될 때), 뿐냐-비 상카-라(puññābhi sankhāra)는 업적 결과(과보)가 없는 뿐냐 끼리야-(puñña kriyā)로 바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기대도 없이 자비로운 행동을 할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윈냐-나 니로-도(vinññāna nirōdha)’를 의미합니다.


  • * 그러면 그러한 자비로운 행은 ‘좋은 영역’에도 재탄생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아라한(Arahant) 성자는 어떤 영역에도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31 영역의 ‘아닛짜 특성(본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미묘한 점입니다.

  • * 이 마지막 부분은 모든 사람에게 명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전에는 들어 본 적이 없는 담마”입니다. 이 구절은 붓다께서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에서 언급하신 “붑베 아나눗수떼수 담메수(pubbe ananussutesu dhammesu)”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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