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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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살라와 아꾸살라 깜마, 뿐냐와 빠-빠 깜마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Kusala and Akusala Kamma, Punna and Pāpa Kamma’ 포스트

-2018년 4월 27일; 2019년 8월 19일 개정


소개


1. 이 세상에 일어나는 것에는 6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로-바(lōbha), 도-사(dōsa), 모-하(mōha), 그리고 아로-바(alōbha), 아도-사(adōsa), 아모-하(amōha)가 그것입니다.


  • * 로-바(lōbha), 도-사(dōsa), 모-하(mōha)로 행해진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 부도덕한 행위)는 최하위  4개의 영역, 즉 아빠-야(apāya)에 태어나게 합니다.

  • * 아로-바(alōbha), 아도-사(adōsa), 아모-하(amōha)로 행해진 뿐냐 깜마(puñña kamma, 도덕적 행위)는 인간계와 더 높은(좋은) 영역에 태어나게 합니다.


2. 그러나, 좋은 세계에 태어나도 장기적으로 고통받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 * 그것은 여전히 감춰진 오염원(아누사야, anusaya)이 있고 그래서 아윗자-(avijjā, 무명)와 딴하-(tanhā, 갈애)로 행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 그러므로, 강한 감각적 즐길거리가 너무 유혹적이 될 때, 로-바(lōbha), 도-사(dōsa), 모-하(mōha)로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 부도덕한 행위)를 하고 아빠-야(apāya, 악처)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띨락카나에 대한 이해


3.  위 1번과 2번을 이해하면, 다음과 같은 아닛짜(anicca) 특성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어떤 영역에 존재한다고 해도 영원한 행복을 가져오지 못하고, 더 정확하게는 미래의 고통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 아닛짜(anicca) 특성을 깨닫기 시작하면, 재탄생 과정(윤회)를 계속하는 것의 위험을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해는 숨겨진 아누사야(anusaya, 잠재성향)의 점진적인 소멸(마멸)로 이어질 것입니다.


4. 뿐냐 깜마-(Puñña kammā)는 더 높은 영역에 재탄생할 수 있는 공덕 행위입니다. 그러나, 띨락카나(Tilakkhana)에 대한 어떤 이해가 없이 뿐냐 깜마(puñña kammā)를 할 때, 아소-바나 쩨따시까(asōbhana cetasika, 불선심소)가 관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어쩌면 그러한 행위에 대한 대가로 무언가를 바라는 것을 포함하여, 더 낮은 레벨의 탐욕.) 그러한 행위는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로 간주되지는 않지만, 여전히 뿐냐 깜마-(puñña kammā)입니다.


  • *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는 마음을 정화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재탄생 과정(윤회)를 멈추게 도우는 행위입니다.

  • * 모든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는 뿐냐 깜마-(puñña kammā)입니다. 그러나 모든 뿐냐 깜마-(puñña kammā)가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인 것은 아닙니다.


5. 그렇게 때문에 길(팔정도)은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길(팔정도)을 시작할 때는, 평범한(세간적) 팔정도에 따라, 뿐냐 깜마(puñña kammā)를 하게 될 것입니다.


  • * 탈라카나(Tilakkhana)를 이해하여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로 출세간 팔정도로 전환할 때, 그 행위에는 점점 더 많은 꾸살라 요소가 있게 됩니다.

  • * 뿐냐 깜마-(puñña kammā)에서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로 크게 도약하는 것은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했을 때입니다. 그러나 남아있는 아윗자-(avijjā)로 인한 모든 아꾸살라(akusala) 요소의 흔적은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에서만 완전히 제거됩니다. 그 시점에서 (아라한의 경우) 그러한 행위를 ‘끼리야(kriya, 행위만 있음)라고 합니다.

  • * 두 가지 길(팔정도)에 대한 논의는 ‘Mahā Cattārisaka Sutta (Discourse on the Great Forty)’ 포스트를 보세요.


세간 팔정도에서 출세간 팔정도로 전환


6. 평범한(세간적) 팔정도에 따르고 있을 때, 도덕과 부도덕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를 삼가하고 뿐냐 깜마-(puñña kammā, 공덕행)를 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 * 그것은 아빠-야(apāya, 악처)에 재탄생하는 것을 멀리하는데 도움이 되고, 인간계 이상의 선처에 재탄생하는 것으로 향하게 할 것입니다.


7. 틸락카나(Tilakkhana)에 대한 이해와 함께, 성스런(로-꼿따라, Lōkottara 출세간) 팔정도로 전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아닛짜(anicca) 특성은 둑카(dukkha)로 이어지고, 그것은 결국 아빠-야(apāya)에 태어났을 때 아낫따(anatta, 어쩔수 없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것입니다.


  • * 그러면 자동적으로 ‘좋은 탄생으로 보답받는 어떤 (감춰진) 기대도 없이 도덕행을 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것은 더 높은 영역에 탄생하는 것도 미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 * 다시 말해, 점점 더 많은 뿐냐 깜마(PUÑÑA kamma)가 자동적으로 꾸살라 깜마(KUSALA kamma)가 됩니다. 꾸살라 깜마(Kusala kamma)가 뿐냐 깜마(puñña kamma)보다 더 좋습니다.

  • *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8. 이런 식으로 진행할 때, 로-바(lōbha), 도-사(dōsa), 모-하(mōha)는 네 단계, 즉 소-따빤나(Sōtapanna),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아나-가-미(Anāgāmi), 아라한뜨(Arahant) 단계를 거치면서 제거됩니다.


  • *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에 도달할 때, 로-바(lóbha), 도-사(dōsa), 모-하(mōha)가  뿌리 뽑힙니다.

  • * 그 때, 아로-바(alōbha), 아도-사(adōsa), 아모-하(amōha)도 제거됩니다. ‘좋은 탄생’에 대한 어떤 기대도 없이 도덕행을 합니다. 그 이유는 좋은 영역에 태어나는 것도 무익하다(헛되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9. 그러므로, 모든 6가지 근본원인을 제거하면 닙바-나(Nibbāna) (아라한과, Arahanthood)에 이릅니다.


  • * 그러나,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는 여전히 살아있는 육체가 있으므로, 이전 깜마 위빠까(kamma vipaka는 부상이나 신체 통증 또는 질병과 같은 신체적 고통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정신적 고통도 사라집니다.

  • * 그 후, 아라한은 육체가 죽을 때 빠리닙바-나(Parinibbaāna, 완전한 열반에 도달합니다.

  • * 그 때, 완전한 닙바-나(Nibbāna)를 얻고, 더 이상 고통(괴로움)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10. 닙바-나(Nibbāna)는 어떤 원인으로 도달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닙바-나(Nibbāna)는 모든 6가지 원인이 제거될 때 그 결과로 발생합니다.


  • * 그렇기 때문에 닙바-나(Nibbāna)는 또한, 아상까따(asankata), 태어나지 않은, 만들어지지 않은, 조건지어지지 않은, 등으로 불립니다.

  • * 반면에, 상까따(sankata, 이 세상에 있는 것)는 그 6가지 원인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태어나고, 만들어지고, 조건지어진, 등의 말은 상까따(sankata)와 관련 있습니다.


빠알리어 분석(빠다 니룩띠)


11.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와 뿐냐 깜마-(puñña kammā) 사이의 차이는 그 낱말의 빠알리 어근을 검토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꾸살라(kusala)는 ‘꾸(ku)’+ ‘살라(sala)’에서 유래합니다. 여기서 ‘꾸(ku)’는 ‘꾸누(kunu, 오염, 악함)’를 의미하고, ‘살라(sala)’는 ‘제거’를 의미합니다. ‘아꾸살라(akusala)’는 ‘꾸살라(kusala)’의 반대입니다. 깜마(kamma)는 행위입니다.


  • * 빠알리(Pāli) 용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빠다 니룩띠, pada nirukti)을 아는 것은 항상 좋습니다.

  • * 그래서,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ā)는 마음을 훼손하거나 오염시키는 행위입니다(다사 아꾸살라 중의 하나). 모든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는 각자의 마음에서 악함 또는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를 제거하게 하는 활동을 수반합니다. ‘Ten Immoral Actions (Dasa Akusal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2. 뿐냐(puñña)라는 낱말은 기쁨과 관련이 있습니다. 싱할라어 낱말 ‘삐나(pina)’ 또는 ‘삔(pin)’은 ‘삐나위마(pinaveema, 심장을 즐겁게 함)’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 * 그러므로 뿐냐 깜마-(puñña kammā)는 각자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하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보통 삿다(saddha, 붓다와 담마와 상가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행위입니다. 그러한 활동은 반드시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부 뿐냐 깜마-(puñña kammā)도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입니다.

  • * 예를 들어, 기쁜 마음으로 빅쿠(bhikkhu) 또는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제공할 때, 그것은 즐거움으로 하기 때문에 뿐냐 깜마-(puñña kammā)입니다. 만약 띨락카나(Tilakkhana, 삼법인)를 정말로 이해했다면, [그 행위는]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일 것입니다.

  • * 뿐냐 깜마-(puñña kammā)의 10가지 유형은 ‘Punna Kamma – Dāna, Sīla, Bhāvanā’ 포스트에서 논의됩니다.


빠-빠 깜마-란 무엇인가?


13. 꾸살라/아꾸살라 깜마-(kusala/akusala kammā)와 뿐냐 깜마-(puñña kammā)에 대해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뿐냐 깜마-(puñña kammā)의 반대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뿐냐 깜마-(puñña kammā)의 반대는 빠-빠 깜마-(pāpa kammā)입니다.


  • * 빠알리어(Pāli)와 싱할라어(Sinhala)에서 빠-빠(pāpa)는 명백한 ‘악’ 또는 ‘죄악’을 의미합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일상적으로 동물을 죽이는 것, 성폭행하는 것, 및 니야따 밋차 딧티(niyata micchā ditthi, 확고하게 확립된 사견)은  빠-빠 깜마-(pāpa kammā)의 일부 예입니다.

  • * 그렇다면,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ā)와 빠-빠 깜마-(pāpa kammā)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14. 그 차이를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빠-빠 깜마-(pāpa kammā)가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ā) 중 최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 보통 빠-빠 깜마-(pāpa kammā)는 아빠-야(apāyā, 악처 또는 사악처)에 재탄생되게 합니다. 아-난따라 빠-빠 깜마-(ānantara pāpa kammā)는 가장 강하며 인간 바와(bhava)에서 ‘바와 삭티(bhava shakthi, 바와를 유지시키는  에너지)를 깨뜨리기까지 합니다. 그것은 현 육체가 죽을 때, (현 인간 바와(human bhava)에 업력이 더 남아 있더라도) 악처에 재탄생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 * 가벼운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ā)는 빠윳띠 위빠-까(pavutti vipāka, 삶 중의 과보)만 가져올 수 있습니다. 즉, 인간 바와(human bhava)와 같은 ‘좋은 바와(bhava)’에서도 어려움과 고통(괴로움)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뿐냐 깜마의 일부 예


15. 어떤 도덕적 행위라도 하면 그것은 뿐냐 깜마-(puñña kammā)입니다. 꽃을 올리고 삐릿(pirith)/빠릿따(paritta) 찬팅을 하거나 삼보(붓다, 담마, 상가)에 경의를 표하는 것도 뿐냐 깜마-(puñña kammā)입니다.


  • * 그 중요한 이유는 뿐냐 깜마-(puñña kammā)를 할 때 빤짜니와라나(pancanivara), 즉, 까-막짠다(kāmaccandha), 브야-빠-다(vyāpāda), 띠나 밋다(tina middha), 웃닷짜 꾹꿋짜(uddacca kukkucca), 및 위찌낏짜-(vicikiccā)에서 일시적으로 자유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든 행위는 마음을 기쁘게 하고 심오한 담마를 받아들이는 상태가 되게 합니다. 앉아서 데-사나-(dēsanā, 법문)를 듣기 전에 그러한 행위(뿐냐 깜마-)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16. 토론 포럼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스뚜빠(stupa, 불탑)나 불교 유적 주위를 도는 것이 어떤 공덕을 가져다 주는지요? 시계 방향으로 도느냐, 반시계 방향으로  도느냐가 중요한지요?


  • * 스뚜빠(stupa, 불탑) 또는 불교 유적 주위를 도는 것(보통 게송이나 삼보의 덕성을 염송하면서 주위를 돔)은 뿐냐 깜마(puñña kammā)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꽃을 올리고 삐릿(pirith)/빠릿따(paritta) 찬팅을 하는 것과 같은 범주에 속합니다.

  • * 시계 방향으로 도느냐, 반시계 방향으로  도느냐에 따라 어떤 효과(차이)가 있는지 필자는 잘 모릅니다. 효과(차이)가 있더라도 그 효과(차이)는 적음에 틀림없다고 봅니다.

  • * 간단히 답변하면,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행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악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즉, 그것은 꾸살라 깜마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이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를 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할 수 있는 뿐냐 깜마-(puñña kammā)일 수는 있습니다.


17. 뿐냐 깜마-(punna kammā)는 닙바-나(Nibbāna, 재탄생 과정을 그침)에 이르는 성스런 팔정도를 기르는 데 적합한 조건을 조성하는 것에 필수적입니다.


  • * 사람들은 뿐냐 깜마-(puñña kammā)를 하는 것은 ‘실랍바따 빠라-마-사(silabbata parāmāsa)’의 일부라고 또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실립바따 빠라-마-사(silabbata parāmāsa)는 뿐냐 깜마-(puñña kammā)를 함으로써 닙바-나(Nibbāna)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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