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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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레사 ㅡ 아꾸살라, 꾸살라, 및 뿐냐 깜마와 관계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Kilesa – Relationship to Akusala, Kusala, and Puñña Kamma’ 포스트

 

낄레사(kilesa)는 마음에 감춰진 오염원을 의미합니다. 그것들은 아누사야(anusaya), 상요자나(saṁyojana), 아-사와(āsava), 또는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의 면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2022년 8월 27일 재작성 및 제목변경; 2023년 1월 11일 개정; 2024년 5월 15일 개정

 

빠알리 낱말 분석(빠다 니룻띠)

 

1. 우리는 그 낱말의 빠알리 어근을 보면 다양한 용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빠알리 낱말이 어떻게 유래했는지(빠다 니룻띠, pada nirutti)를 아는 것은 통찰력을 줍니다.

 

  • * 꾸살라(kusala)는 ‘꾸(ku)’ + ‘살라(sala)’에서 유래하는데, 여기서 ‘꾸(ku)’는 ‘꾸누(kunu)’ 또는 낄레사(kilesa, 번뇌/오염원) 또는 ‘비도덕적인 것(악한 것)’을 나타내고, ‘살라(sala)’는 ‘제거’를 의미합니다.

  • * 아꾸살라(akusala)는 꾸살라(kusala)의 반대입니다. 그것은 낄레사(번뇌/오염원) 또는 비도덕적인 것(악한 것)을 축적합니다. ‘열가지 부도덕한 행위(다사 아꾸살라)’를 참조하세요.

  • * 깜마(kamma)는 업적 결과를 가지는 행위입니다.

  • * 끼리야(kriya)는 업적 결과가 없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면, 양치질을 하는 것은 끼리야 입니다.

 

낄레사(kilesa, 오염원)는 무엇인가?

 

2. 이것은 거의 논의되지 않은 매우 중요한 용어입니다. 이 오염원들은 어디에도 저장되지 않고 자신의 내부에 있습니다. 그것들은 뇌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마음의 자리)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자리:  ‘물질이 마음을 창조하는가/마음이 물질을 창조하는가?’ 참조)

 

  • * 그 오염원들(낄레사)은 다르게 표현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열 가지 유형의 상요자나(saṁyojana) 또는 7가지 유형의 아누사야(anusaya)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변합니다. 한 하다야 왓투가 죽으면, 그 실체들은 다음 하다야 왓투로 이전됩니다.

  • * ‘Yuganaddha Sutta (AN 4.170)’는 모든 유형의 아누사야(anusaya)와 상요자나(saṁyojana)를 제거하면 닙바-나(Nibbāna)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 * 소따빤나는 2가지 유형의 아누사야와 3가지 유형의 상요자나를 제거했습니다. 소따빤나가 성스런 길에서 진전함에 따라, 더 높은 각 단계에서 오염원이 감소합니다.  그래서, 아라한은 모든 낄레사(kilesa)에서 벗어납니다.

  • * 또한, ‘4단계의 닙바-나에 대한 조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낄레사 ㅡ 아꾸살라 깜마에 의해 강화되고 꾸살라 깜마에 의해 제거된다

 

3.  우리는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가 오염원을 강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는 숨겨진 오염원(아누사야/상요자나)에 먹이를 주는 깜마 에너지를 생성하고 재탄생 과정을 유지합니다.  ‘바와 - 존재를 작동시킬 수 있는 업 에너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는 아누사야/상요자나를 감소시키고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꾸살라 깜마는 마음을 정화하고 닙바-나(Nibbāna)로 이끕니다.

 

빠-빠 깜마와 꾸살라 깜마

 

4. 빠-빠 깜마(pāpa kamma)는 아빠-야-(apāyā)에 재탄생으로 이어지게 하는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의 가장 나쁜 형태입니다. 빠알리어 및 싱할라어에서 빠-빠(pāpa)는  명백한 악행 또는 벌 받을 만한 행위를 의미하는데, 사람을 죽이거나 동물을 상습적으로 죽이고, 성폭행하고, 확고히 자리잡은 잘못된 견해를 가지는 것은 빠-빠 깜마의 일부 예들입니다.

 

  • *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빠-빠 깜마(pāpa kamma)의 반대이며 인간 영역 이상의 선처에 재탄생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뿐냐(puñña)라는 낱말은 기쁨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싱할라 낱말인 ‘삐나(pina, පින)’는 ‘삐나위마(pinaveema, පිනවීම)’, 즉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만드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사람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차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 *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는 아누사야/상요자나를 줄이고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그 오염원들은 줄일 수는 있지만 제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논의하는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뿐냐 깜마(puñña kamma) 사이의 차이입니다.

 

뿐냐 깜마(puñña kamma)와 꾸살라 깜마(kusala kamma) 사이의 차이

 

5. 뿐냐 깜마(puñña kamma)꾸살라 깜마(kusala kamma) 사이에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 *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더 높은 영역에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칭찬받을 만한/좋은 행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닙바-나(Nibbāna)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뿐냐 깜마(puñña kamma)와 관련된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는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에서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 단계의 요인이 됩니다.

  • *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를 행하면 닙바-나(Nibbāna)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그것은 모든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를 멈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지력으로 행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참된 본질을 이해할 대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뿐냐 깜마는 꾸살라 깜마가 될 수 있다

 

6. 사람이 (#5에 있는 위 2개의 링크에 설명된 바와 같이) 이 세상의 참된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뿐냐 깜마(puñña kamma)가 자동적으로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로 됩니다. 차이는 이 세상의 참된 본질을 이해하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재탄생 과정에 기꺼이 참여하는 이유는 ‘삶은 정교한 마술쇼’지만 괴로움이 가득한 재탄생이라는 나쁜 결과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이 점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 * 빅쿠에게 음식을 보시하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뿐냐 깜마(puñña kamma)입니다. 미래의 부나 좋은 태어남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깜마 위빠-까(good kamma vipāka)를 특별히 바라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런 기대는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아누사야/상요자나 (anusaya/saṁyojana)의 일부입니다.

  • * 소따빤나 단계에서 재탄생 과정에 머무르는 것의 위험함을 보기 시작할 때, 그것은 (‘삭까-야 딧티, 위찌낏차-, 실랍바따 빠라-마-사’라는 세 가지 상요자나와 함께) 딧티 아누사야(ditthi anusaya)의 제거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위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그 사람에게 꾸살라 깜마(kusala kamma)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남아 있는 오염원(아누사야/상요자나)을 제거하는 것을 돕습니다.

  • * 모든 좋은 행위는 뿐냐 깜마 또는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연기)/띨락카나(삼특상)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 꾸살라 깜마로 뻗어나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뿐냐 깜마를 행하는 것을 결코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 * 아라한 단계에 도달할 때, 더 이상 제거해야 할 아누사야/상요자나가 없습니다. 즉 아라한은 뿐냐 깜마도 꾸살라 깜마도 짓지 않습니다. 아라한의 모든 좋은 행위는 업적 결과가 없는 끼리야(kriya/kiriya)입니다.

 

보통 사람은 뿐냐 깜마, 아꾸살라 깜마, 빠-빠 깜마만 행한다

 

7. 붓다께서 출현할 때까지, 아무도 (i) 재탄생 과정, (ii) 그 대부분의 재탄생은 아빠-야-(악처/사악처)에 있음, 및 (iii) 그 재탄생 과정을 멈추는 방법에 대해 분명한 개념(생각)이 없습니다. 다른 요기(수행자) 또는 종교가 재탄생 과정을 가르치지만, 부처님 외에는 아무도 마음을 깨끗이 함으로써 재탄생 과정을 멈추는 방법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 * 대부분의 종교는 어떻게 도덕적인 삶을 사는지를 가르칩니다. 그들은 어떻게 뿐냐 깜마를 행하는지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최선의 노력을 하는 자들도 감각적 즐거움에 유혹되고 자발적으로 빠-빠 깜마를 행하게 됩니다.

  • * 사람들은 사성제를 이해함으로써 그런 유혹을 자동적으로 멈출 수 있습니다. 그 지점에서 사람들은 성스런 팔정도에 있습니다. 진전함에 따라 더 많은 뿐냐 깜마가 자동적으로 꾸살라 깜마로 됩니다.

  • * 엄밀히 말하면, 빠-빠 깜마(pāpa kamma)뿐냐 깜마(puñña kamma) 모두 ‘아윗자- 빳짜야- (아비)상카-라(avijjā paccayā (abhi)saṅkhāra)’로 시작하는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로 재탄생 과정을 유지하는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 범주에 속합니다. 그런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는 뿐냐 깜마(puñña kamma)를 수반하는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를 포함합니다. ‘빠띳짜 사뭅빠-다(연기)’ 섹션의 ‘상카-라 ㅡ 많은 의미(Saṅkhāra – Many Meanings)’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여러 유형의 아비상카-라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8. 그러므로,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그리고 뿐냐 깜마를 행하는 것)은 재탄생 과정의 미래 괴로움을 멈추는 것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 * 그것은 사비야 숫따(Sabhiya Sutta, Snp 3.6)에서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Kosāni viceyya kevalāni, Dibbaṁ mānusakañca brahmakosaṁ;(천국, 인간, 브라흐마 영역까지, 재탄생의 모든 가능성을 조사했더니;)                               Sabbakosamūlabandhanā pamutto, Kusalo tādi pavuccate tathattā.(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때만이 참으로 자유로워지는데, 그것은 ‘꾸살라’를 육성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꾸살라 깜마를 행하는 것은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에서 시작된다

 

9.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연기)/띨락카나(삼특상)을 이해할 때까지 아무도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를 알지도 못합니다.

 

  • * 많은 이들은 도덕적인 행위를 하고, 자-나를 개발하는 등을 함으로써 괴로움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것들은 좋은 영역에 태어날 때 일시적 경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빠리닙바-나에서) 재탄생 과정이 멈출 때까지, 괴로움은 멈추지 않습니다. 

  • * 아누사야 숫따(Anusaya Sutta, SN 18.21)는 닙바-나를 얻는 핵심은 다섯 무더기(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의 어떤 것도 내 것이라고 여겨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제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삭까-야 딧티 ㅡ '나'와 '내 것'이라는 잘못된 견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붓다께서는 닙바-나를 “라각카요 도삭카요 모학카요 ㅡ 이당 윳짜띠 닙바-난”띠(탐욕/탐함, 증오/화냄, 무지/미혹함의 끝을 닙바-나라고 한다)”라고 정의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Nibbānapañhā Sutta (SN 38.1)’를 참조하세요.

  • * 따라서, 열가지 상요자나/7가지 아누사야 등을 단계적으로 제거한 결과가 라-가(rāga), 도사(dosa), 및 모하(moha)의 제거에 해당합니다.

 

요약

 

10.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는 오염원을 자라게 합니다. 빠-빠 깜마(pāpa kamma)는 아빠-야-(악처/사악처)에 재탄생으로 이어지는 가장 강한 종류의 아꾸살라입니다.

 

  • *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빠-빠 깜마(pāpa kamma)의 반대이고 인간 영역 이상의 선처에 재탄생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 * 닙바-나로 이끄는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는 성스런 팔정도에 있는 자에 의해서만 행해질 수 있습니다.

  • * 성스런 팔정도로 시작하는 것은 빠띳짜 사뭅빠-다, 띨락카나, 사성제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빠띳짜 사뭅빠다(연기)’ 섹션의 ‘빠띳짜 사뭅빠다, 틸락카나, 사성제(Paṭicca Samuppāda, Tilakkhana, Four Noble Truths)’ 서브섹션 참조).

  • * 아라한은 끼리야(kriya)(업적 결과가 없는 행위)만 행합니다.

 

11. 마음에 있는 오염원(낄레사)은 다양하게 묘사될 수 있습니다. 아누사야(anusaya)와 상요자나(saṁyojana)는 두 가지 좋은 지표입니다.

 

  • *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에 아직 이르지 못한 사람들은 다양한 강도의 낄레사(kilesa)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들의 강도는 변화를 계속하지만,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에서 성스런 팔정도를 시작할 때까지 결코 제거되지 않습니다. 모든 오염원은 아라한 단계에서만 없습니다.

  • * 유정체는 대부분의 윤회 여정을 아빠-야-(악처/사악처)에서 보냅니다. 좋은 탄생이 일어날 때에도, 그것은 유한한 수명이며, 소따빤나 아누가-미에 이르지 못하는 한, 그 후에 아빠-야-에 재탄생하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 * 따라서, 미래 괴로움을 그치는 유일한 길은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띨락카나를 이해하고 성스런 팔정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빠띳짜 사뭅빠다(연기)’ 섹션의 ‘빠띳짜 사뭅빠다, 틸락카나, 사성제(Paṭicca Samuppāda, Tilakkhana, Four Noble Truths)’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12. (쩨따시까의 측면에서) 낄레사(kilesa)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낄레사(정신적 오염물)란 무엇인가? - 쩨따시까에 연결’ 포스트와 ‘쩨따시까 ㅡ 가띠에 관련’ 포스트에 있습니다. 

 

 

: 이 포스트는 구 포스트인 ‘꾸살라와 아꾸살라 깜마, 뿐냐와 빠-빠 깜마’를 교체(재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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