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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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복잡함 - '윈냐-나'와 '상카-라'

 

원문: Living Dhamma 섹션의 ‘Complexity of the Mind - viññāna and sankhāra’ 포스트

- 2019년 4월 28일; 2019년 11월 8일 개정

 

위빠-까 윈냐-나와 깜마 윈냐-나

 

1. 비록 과학이 물질 세계에 대한 이해에서 현저한 진전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정신 현상의 주제에 관해서는 거의 진보하지 못했습니다.

 

  • * 윈냐-나(viññāna)와 상카-라(sankhāra)라는 낱말은 영어로 상응하는 낱말이 없습니다. 윈냐-나(viññāna)를 단지 ‘의식(consciousness)’으로 번역하는 것은 불합리합니다. 두 가지 유형의 윈냐-나(viññāna)가 있습니다. 위빠-까 윈냐-나(vipaka viññāna)는 단지 의식입니다. 그러나,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ṅkhāra paccayā viññāna)’를 통해 일어나는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는 단순한 의식 그 이상입니다. 

  • * 의식(consciousness)의 정의를 찾아 보았는데, 보통 ‘깨어 있고 주위를 알고 있는 상태’ 또는 ‘사람이 무언가를 앎 또는 인식’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윈냐-나(viññāna)가 의미하는 바가 아닙니다.

 

2.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는 아윗자-(avijjā)로 행할 때에 일어납니다. 즉, [12연기에서]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nkhāra)’ 단계와,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nkhāra paccayā viññāna)’ 단계를 통해 일어납니다. 따라서,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는 아윗자-(avijjā, 어리석음/무지)로 행할 때에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 * 붓다께서는 붓다후드(Buddhahood)를 달성하신 후에는 윈냐-나(viññāna)로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즉 붓다후드를 달성하신 후에는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를 생성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완벽하게 좋은(순수한) 의식을 지니셨습니다.

  • * 윈냐-나(viññāna)는 매우 복잡한 [복합적 의미를 가지는] 낱말입니다. 비록 필자가 윈냐-나(viññāna)를 ‘오염된 의식’으로 단순화시켰지만, 그것도 또한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윈냐-나 - 미래 기대와 함께 하는 의식’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다양한 범주의 상카-라 

 

3. 빠띳짜사뭅빠-다 위방가( Paṭiccasamuppāda Vibhaṅga )에서, 괴로움(고통)으로 이어지는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ticca Samuppāda)’의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 항목은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tattha katame avijjā paccayā saṅkhāra? puññābhisaṅkhāro, apuññābhisaṅkhāro, āneñjābhisaṅkhāro, kāyasaṅkhāro, vacīsaṅkhāro, cittasaṅkhāro”.

 

번역: “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는 무엇인가? ‘뿐냐-비상카-로, 아뿐냐-비상카-로, 아-넨자-비상카-로, 까-야상카-로, 와찌-상카-로, 찟따상카-로(puññābhisaṅkhāro, apuññābhisaṅkhāro, āneñjābhisaṅkhāro, kāyasaṅkhāro, vacīsaṅkhāro, cittasaṅkhāro)다.” (여기서, 찟따상카-로(cittasaṅkhāro)는 마노-상카-로(manōsaṅkhāra)와 동일함.)

 

  • * 이 구절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로 단순화되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입니다.

  • * 거기에는 2가지 유형의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가 언급되어 있는데, 첫째 유형은 축적된 깜마(kamma)에 관련된 것입니다. 두번째 범주는 몸, 말 또는 단지 생각을 수반하는지를 말하는 유형입니다.

  • * 그러므로, 윈냐-나(viññāna)를 ‘의식(consciousness)’으로 번역한 것보다는 나은 번역이기는 하지만, 상카-라(sankhāra)는 단지 ‘정신적 형성(mental formations)’을 의미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 * 다음으로 그 2가지 유형에 대해 논의해 보겠습니다. 

 

마노-, 와찌, 및 까-야 상카-라

 

3-1. 먼저,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 및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부터 보겠습니다.

 

  • * 그것들은 모두 마음 속에서 일어나지만, 차이점이 있습니다. 마음 속에 자동적으로 생기는 생각은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입니다.

  • * 의식적으로 무언가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들은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 (소리내어 말하는 것도 물론 포함됨)입니다.

  • * 우리가 생각으로 몸을 움직일 때, 그 생각들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입니다.

  • * 물론, 그 상카-라(sankhāra)는 부도덕하거나 도덕적인 의도가 작용할 때 아비상카-라(abhisankhāra)가 됩니다. 그런 아비상카-라는 재탄생과 미래 고통으로 이어집니다(아래 #5를 보세요).

 

4. 달리 말하면,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ticca Samuppāda)’에서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에 있는 상카-라(sankhāra)는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비상카-라(abhisankhāra)입니다.

 

  • * 아라한(Arahant, 아라한뜨) 성자도 육체가 죽을 때까지는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 상카-라(sankhāra), 즉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와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 및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의 세 가지 유형 모두를 생성합니다.

  • * 그러나 아라한 성자는 어떤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도 생성하지 않습니다.

 

아뿐냐, 뿐냐, 및 아-넨자 아비상카-라

 

5.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는 아뿐냐 아비상카-라(apuñña abhisankhāra)와 뿐냐 아비상카-라(puñña abhisankhāra) 및 아-넨자 아비상카-라(ānenja abhisankhāra)라는 3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집니다.

 

  • * 아뿐냐 아비상카-라(apuñña abhisankhāra)는 아빠-야-(apāyā, 악처)에 태어남으로 이끄는 부도덕한 행위입니다.

  • * 뿐냐 아비상카-라(puñña abhisankhāra)는 인간 영역이나, 천상(deva) 영역이나, 루빠-와짜라 자-나(rupāvacara jhāna, 색계 선정)의 계발을 통한 루빠-와짜라 브라흐마(rupāvacara brahma) 영역에 태어남으로 이끄는 도덕적인 행위입니다.

  • * 아-넨자 아비상카-라(ānenja abhisankhāra)는 아루빠-와짜라 자-나(arupāvacara jhāna, 무색계 선정)의 계발에 관련되어 있으며, 아루빠-와짜라 브라흐마(arupāvacara brahma) 영역에 태어남으로 이끕니다.

  • * 그러므로, 상카-라(sankhāra)를 단지 ‘정신적 형성(mental formations)’으로 번역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데 그다지 유용하지 않습니다. ‘상카-라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의식에 대한 현재의 과학 지식

 

6. 현대 과학은 정신 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부처님에 훨씬 뒤떨어져 있습니다. 이 문제의 엄중함을 이해하기 위해 철학자 ‘존 서얼(John Searle)’의  ‘Our Shared Condition – Consciousness’에 대한 발표(동영상 주소 참조)를 살펴 보겠습니다.

 

동영상 주소 : https://youtu.be/eqDgt12m26c

 

7. 필자 의견으로는, 존 서얼(John Searle)은 정신 현상의 이해에까지 근접하는 몇 안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일부 철학자/과학자들은 의식이 실재하는 것이라고 믿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과학은 객관적이고, 의식은 주관적이며, 따라서 의식의 과학은 있을 수 없다". 존 서얼(John Searle)이 지적한 것처럼, ‘의식의 과학’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의식은 실재하는 것입니다.

 

  • * 어떤 사람들은 ".. 의식이 존재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세상에 어떤 변화도 가져올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신이 어떻게 어떤 것(물질)을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라고 반대하는 말을 합니다. 이에 대해 존 서얼(John Searle)은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 내 팔을 의식적으로 들기로 결심하면, 이것(빌어먹을 것, the damn thing)은 위로 올라갑니다."

 

의식은 실재한다

 

8. 존 서얼(John Searle)이 ‘의식은 환상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또한 꽤 맞습니다. 그가 지적했듯이, 의식적으로 살아있는 존재(유정체)만이 (예를 들면, 손을 들어 올리는 것과 같이) 몸 부분을 움직이기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아주 정확하게 말하면, 의식이 [직접] 팔을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팔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즉, 손을 들어 올리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 생각이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인데, 의식적 생각은 몸 동작으로 이끕니다.

  • * 그러나 손을 들어 올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음은 그 과정을 시작하고, 뇌는 필요한 명령을 근육에 보내서 손을 들어 올립니다. 그러한 근육 운동을 위한 에너지는 우리가 먹는 음식에서  나옵니다.

  • * 내장(탑재) 컴퓨터가 비행기를 조종하는 조종사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처럼, 뇌는 컴퓨터처럼 작동하고 마음에 의해 주어진 명령을 수행합니다.

 

호흡은 기본적 까-야 상카라를 수반한다

 

9.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는 ‘앗사-사 빳사-사- 까-야 상카-라(assāsa passāsā kāya sankhāra)’, 즉 ‘들숨과 날숨은 까-야 상카-라’로 정의됩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를 일생 동안 행하며,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입니다.

 

  • * 비록 우리가 그것[호흡]을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호흡은 ‘가장 낮은 수준의 생각’, 즉 ‘아띠빠릿따-람마나 찟따 위티(atiparittārammana citta vithi)’를 수반합니다. 그 찟따 위티(citta vithi, 인식과정)에는 자와나 찟따(javana citta)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 * 제4자나 사마-빳띠(fourth jhāna samāpatti)에서, 호흡과 관련된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가 멈춥니다. 즉, 호흡이 멈춥니다.

  • *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는 신체 움직임으로 이끕니다. 그러한 신체 움직임이 업적 결과(좋거나 나쁜 결과, kammic effect)로 이끌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재탄생으로  이끄는 아비상카-라(abhisankhāra)가 되지 않습니다.

 

와찌 아비상카-라와 까-야 아비상카-라는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10.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도 (자기 혼자서 생각 또는 일상적인 활동에 대해 말하는) 단지 ‘상카-라(sankhāra)’이거나, 업적으로 결과(과보)가 있는 ‘아비상카-라(abhisankhāra)’일 수 있습니다. ‘와찌- 상카-라의 바른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와찌 아비상카-라(vaci abhisankhāra)와 까-야 아비상카-라(kāya abhisankhāra)는 모두 재탄생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 *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는 재탄생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일부 빠알리 낱말들은 번역하지 않아야 한다

 

11. 현대 과학은 상카-라(sankhāra ), 더 정확하게는 사람이 어떻게 신체 부위를 움직이거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말하는지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영어에는 상카-라(sankhāra)에 상당하는 낱말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의식(consciousness)’을 윈냐-나(viññāna)의 번역으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 * 그 빠알리(Pāli) 낱말(sankhāra와 viññāna)이 의미하는 바를 배우고 그 낱말을 그대로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 * 이렇게(그대로 사용) 하는 것은 싱할라어에서 관행이었습니다. 윈냐-나(viññāna)와 상카-라(sankhāra)는 그 동일한 낱말이 띠삐따까의 싱할라어 번역본에 있습니다. 영어와 마찬가지로 윈냐-나(viññāna)와 상카-라(sankhāra)에 할당된 싱할라어 낱말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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