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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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딱까, 위짜-라, 사위딱까, 사위짜-라, 및 아위딱까, 아위짜-라


원문 : Living Dhamma 섹션의 ‘Vitakka, Vicāra, Savitakka, Savicāra, and Avitakka, Avicāra’ 포스트

2019년 3월 7일


1. 위딱까(vitakka), 위짜-라(vicāra), 사위딱까(savitakka), 사위짜-라(savicāra), 및 아위딱까(avitakka), 아위짜-라(avicāra)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필자는 토론 포럼에서 만족스러운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는 많은 토론을 보았으며, 대부분의 경전 번역이 잘못되었음을 알았습니다. 특히, 사위딱까(savitakka)와 사위짜-라(savicāra)는 흔히 ‘위딱까(vitakka)와 위짜-라(vicāra)’로 잘못 번역되어 있습니다.


  • * 항상 그렇듯이 기본 사항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심오한 숫따(sutta)에서 그런 핵심 낱말의 의미를 추출하려고 하는 것은 역효과를 낳습니다.

  • * 해야 할 일은 기본 정의부터 시작해서 더 심오한 숫따(sutta)에 있는 구절의 의미가 이 기본 정의를 사용하여 파악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필자는 이 방법이 항상 띠삐따까(Tipitaka, 삼장) 내에서 효과가 있다는 것을 것을 보아 왔습니다.

  • * 실제, 띠삐따까(Tipitaka, 삼장)에서 이 포스트와 모순되는 숫따(sutta, 경)를 지적할 수 있으면 토론 포럼에서 코멘트를 해 주세요.

  • *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청정도론)와 같은 후기 주석서에 적합하도록 애써면 ‘가능성이 있는 모순(불일치)’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2. 딱까(takka), 위딱까(vitakka), 위짜-라(vicāra)라는 낱말(싱할라어로 각각 තර්ක, විතර්ක, විචාර 이고, 영어로 가장 가까운 말은 ‘think one way(한 방식으로 생각)’, ‘further/counter analysis(한층 더한/대응적 분석)’, ‘investigate in depth(심층적으로 조사)’라고 할 수 있음)은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생각 대상(ārammana, 아-람마나)에 대한 의식적 생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속에서 상황을 분석하면서 조용히 ‘자신에게 말하거나’ 밖으로 소리내어 말을 합니다.


낱말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아비담마의 이어지는 섹션 Dhātuvibhaṅga 에서 까-마 다-뚜(kāma dhātu), 브야-빠-다 다-뚜(byāpāda dhātu), 위힝사- 다-뚜(vihiṃsā dhātu), 넥캄마 다-뚜(nekkhamma dhātu), 아브야-빠-다 다-뚜(abyāpāda dhātu), 아위힝사- 다-뚜(avihiṃsā dhātu)에 대한 논의에 있습니다.


  • * 예를 들어, “땃타 까따마- 까-마다-뚜? 까-마빠띠상윳또 딱꼬 위딱꼬 상깝뽀 압빠나- 브얍빠나- 쩨따소 아비니로빠나- 밋차-상깝뽀 - 아양 윳짜띠 까-마다-뚜(Tattha katamā kāmadhātu? Kāmapaṭi­saṃ­yutto takko vitakko saṅkappo appanā byappanā cetaso abhiniropanā micchāsaṅkappo—ayaṃ vuccati kāmadhātu)”.


번역:까-마(kāma, 방종)의 요소는 무엇인가? 딱까(takka), 위딱까(vitakka), 상깝빠(saṅkappa), 압빠나-(appanā), 브얍빠나-(byappanā)이다(나머지는 위짜-라(vicāra)와 관련이 있음). 이것들은 잘못된 견해를 확립하는 것으로 이끈다. 이것은 욕망/방종의 요소라고 한다”.

즉, 끊임없이 그런 생각들을 불러 일으키면 까-마 라-가(kāma rāga)가 쌓입니다.


3. 그 반대인, 넥캄마(nekkhamma)의 요소는 “땃타 까따마- 넥캄마다-뚜? 넥캄마빠띠상윳또 딱꼬 위딱꼬, 상깝빠, … 뻬 … 삼마- 상깝뽀 - 아양 윳짜띠 넥깜마 다-뚜(Tattha katamā nekkhammadhātu? Nekkham­ma­paṭi­saṃ­yutto takko vitakko, saṅkappa, … pe … sammā saṅkappo—ayaṃ vuccati nekkhamma dhātu)”로 정의됩니다.


  • * 번역: “금욕의 요소는 무엇인가? 딱까(takka), 위딱까(vitakka), 상깝빠(saṅkappa), 압빠나-(appanā), 브얍빠나-(byappanā)이다(나머지는 위짜-라(vicāra)와 관련이 있음). 이것들은 올바른 견해를 확립하는 것으로 이끈다(오염물의 제거로 이끈다). 이것은 금욕의 요소라고 한다”. 즉, 끊임없이 그런 생각들을 불러 일으키면 까-마 라-가(kāma rāga)는 감소됩니다.

  • * 브야-빠-다 다-뚜(byāpāda dhātu), 위힝사- 다-뚜(vihiṃsā dhātu), 그리고, 그 반대인 아브야-빠-다 다-뚜(abyāpāda dhātu), 아위힝사- 다-뚜(avihiṃsā dhātu)는 위와 유사하게 정의됩니다.


4. 이제 까-마kāma(아빗자-abhijjā) 상깝빠(sankappa), 브야-빠-다(byāpāda, vyāpāda) 상깝빠(sankappa), 위힝사- 상깝빠(vihiṃsā sankappa)가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나쁜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입니다. 그것들은 탐함, 미워함, 미혹함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 * 그것들의 반대는 넥깜마(nekkhamma), 아브야-빠-다(abyāpāda), 아위힝사-(avihiṃsā) 상깝빠(sankappa)로서, 삼마- 상깝빠(Sammā Sankappa)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5. ‘Cūḷa­ve­dalla Sutta (MN 44)’에서, “위딱까 위짜-라 와찌- 상카-로(vitakka vicārā vacī saṅkhāro)”, 즉 “와찌- 상카-라는 ‘위딱까 위짜-라’다”라고 명확하게 정의된 것과 같이, 이제 또한 ‘와찌 상카-라’와 연결을 알 수 있습니다.


  • *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는  ‘말없이 생성하는 의식적인 생각’과, 또한 입술, 혀 등을 움직여 말을 하는 생각입니다. 미워하는 말은 아뿐나-비 와찌 상카-라(apunnābhi vaci sankhāra, 강성 부도덕적 와찌 상카-라) 때문입니다. 담마(Dhamma) 개념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뿐나-비 와찌 상카-라(punnābhi vaci sankhāra, 강성 도덕적 와찌 상카-라)입니다. 와찌 상카-라에 대해서는 ‘Correct Meaning of Vacī Sankhāra’ 포스트를 보세요.


6. 이것은 다른 중요한 숫따(sutta)인 ‘Mahā­cat­tārīsa­ka Sutta (MN 117)’ 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까따모 짜, 빅가웨, 삼마-상깝뽀 아리요 아나-사보 로꿋따로 막강고? 요 코, 빅카웨, 아리야찟땃사 아나-사와찟땃사 아리야막가사망기노 아리야막강 바-와야또 딱꼬 위딱꼬 상깝뽀 압빠나- 브얍빠나- 쩨따소 아비니로빠나- 와찌상카-로 - 아양, 빅카웨, 삼마-상깝뽀 아리요 아나-사오 로꿋따로 막강고..(Katamo ca, bhikkhave, sammāsaṅkappo ariyo anāsavo lokuttaro maggaṅgo? Yo kho, bhikkhave, ariyacittassa anāsa­va­cittassa ariya­magga­samaṅ­gino ariyamaggaṃ bhāvayato takko vitakko saṅkappo appanā byappanā cetaso abhiniropanā vacīsaṅkhāro—ayaṃ, bhikkhave, sammāsaṅkappo ariyo anāsavo lokuttaro maggaṅgo..)”


  • * 번역: “그리고 빅쿠들이여, 성스럽고, 아-사와(āsava)가 없고, 세간을 초월하고, 성스런 길의 요소인 삼마- 상깝빠(Sammā Saṅkappa)는 무엇인가? 그것들은 갈망이 없고(anāsa­va­cittassa), 딱꼬 위딱꼬 상깝뽀 압빠나- 브얍빠나- 쩨따소 아비니로빠나- 와찌상카-로(takko vitakko saṅkappo appanā byappanā cetaso abhiniropanā vacīsaṅkhāro)가 함께 하는 성스런 길에 속하는(ariya­magga­samaṅ­gino ariyamaggaṃ bhāvayato), 성스런 생각들(ariyacittassa)이다. 그것은 성스럽고 성스런 길의 요소인 삼마- 상깝빠(Sammā Saṅkappa)다”.


7. 간결한 설명은 ‘Vitakka Sutta (SN 56.7)’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숫따(sutta)의 기본 개념이 담긴 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 * “빅쿠들이여, 불건전하고(해롭고) 악한 생각, 즉 감각을 즐기는 생각, 나쁜 의도의 생각, 남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pāpake akusale vitakke vitakkeyyātha, seyyathidaṃ— kāma vitakkaṃ, ­byāpā­da­ vitak­kaṃ, vihiṃ­sā­ vitak­kaṃ).”

  • *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빅쿠들이여, 이 생각들은 정말로 본질적이지 않고(실속이 없고)(Nete, bhikkhave, vitakkā atthasaṃhitā), 성스런 삶의 근본과 무관하고, 감각 세계로부터 벗어남으로/ 들러붙지 않음으로/ 그침으로/ 평화로움으로/ 직접적 앎으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끌지 않는다. 빅쿠들이여, 마음이 그런 생각들을 하기 시작하면, ‘이것은 괴로움(고통)으로 이끌 것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 * “그 대신에, ‘이것들은 괴로움(고통)의 원인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금욕과 연민의 생각을 기르는 것이 괴로움(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 생각들은 감각 세계로부터 벗어남으로/ 들러붙지 않음으로/ 그침으로/ 평화로움으로/ 직접적 앎으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끈다.”


8. 많은 경우에, 위딱까(vitakka)와 위짜-라(vicāra)라는 낱말은 ‘나쁜 생각’이나 ‘오염된 생각’을 나타내기 위해 특별히 사용됩니다.


  • *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그것들은 ‘좋거나 나쁜 모든 유형의 생각들’을 가리키는데 사용됩니다.

* 그래서, 어느 의미로 사용하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위 예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그 낱말들이 사용된 문맥에서 분명할 것입니다.  


9. 특별히 까-마 라-가(kāma rāga) 또는 다른 아꾸살라(akusala)를 수반하지 않는 생각을 할 때, 그것들은 사위딱까(savitakka) 및 사위짜-라(savicāra)라고 합니다.  까-마 라-가(kāma rāga)와 아꾸살라(akusala)의 반대는 각각 넥캄마(nekkhamma) 및 꾸살라(kusala)라고 합니다.


  • * 그것은 위딱까/위짜-라(vitakka/vicāra)를 제거하거나 누르고 사위딱까/사위짜-라(savitakka/savicāra)를 길러서, 자-나(jhāna)에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10. 이것은 자-나(jhāna)를 묘사하는 어떤 숫따(sutta, 경)에서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Tapussa Sutta (AN 9.41)’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 소호 아항, 아-난다, 위윗쩨와 까-메히 위윗짜 아꾸살레히 담메히 사위딱깡 사위짜-랑 위웨까장 삐-띠수캉빠타망 자-낭 우빠삼빳자 위하라-미(.. soho ahaṃ, ānanda,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āmi)."


  • * 번역: “아난다여, 까-마 라-가(kāma rāga)와 아꾸살라(akusala)와 함께 하는 위딱까(vitakka) / 위짜-라(vicāra)를 멀리하고, 사위딱까(savitakka) / 사위짜-라(savicāra)를 기를 때, 첫번째 자-나(jhāna, 선정)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 * 그러나, [첫번째 자-나에서는] 까-마 라-가(kāma rāga) 및/또는 아꾸살라(akusala)와 함께 하는 위딱까(vitakka) / 위짜-라(vicāra)가 가끔 마음에 떠오를 수 있습니다.


11. ‘나쁜 생각’이 없는 것을 아위딱까(avitakka), 아위짜-라(avicāra)라고 합니다. 이 경우에는 사위딱까(savitakka), 사위짜-라(savicāra), 즉 ‘좋은 생각’만 있을 것입니다.


  • * 그것은 두번째 자-나(jhāna, 선정)에서 일어나며, 여기서는 사위딱까(savitakka) / 사위짜-라(savicāra)만 있습니다.

  • * 그래서, 아위딱까(avitakka)/아위짜-라(avicāra)는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쁜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12. 이것은 ‘Upakkilesa Suatta (MN 128)’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아주 분명합니다.

“..소 코 아항, 아누룻다-, 사위딱깜삐 사위짜-랑 사마-딩 바-웨싱, 아위딱깜삐 위짜-라맛땅 사마-딩 바-웨싱, 아위딱깜비 아위짜-랑 사마-딩 바-웨싱, 삽삐-띠깜삐 사마-딩 바-웨싱, 닙삐-띠깜삐 사마-딩 바-웨싱, 사-따사하가땀삐 사마-딩 바-웨싱, 우뻭카-사하가땀삐 사마-딩 바-웨싱..(..So kho ahaṃ, anuruddhā, savitakkampi savicāraṃ samādhiṃ bhāvesiṃ, avitakkampi vicāramattaṃ samādhiṃ bhāvesiṃ, avitakkampi avicāraṃ samādhiṃ bhāvesiṃ, sappītikampi samādhiṃ bhāvesiṃ, nippītikampi samādhiṃ bhāvesiṃ, sāta­saha­gatampi samādhiṃ bhāvesiṃ, upekkhā­saha­gatampi samādhiṃ bhāvesiṃ..)”


  • * 번역: “아누룻다여, 나는 (체계적으로) 사위딱까 사위짜-라 사마-디(savitakka savicāra samādhi)를 길러, 아위딱까 위짜-라맛땅 사마-디(avitakka vicāramattaṃ samādhi, 위짜-라의 흔적이 남아 있고 위딱까가 없는 사마-디), 아위딱까 아위짜-라 사마-디(avitakka avicāra samādhi, 위딱까와 위짜-라가 없는 사마-디), 삽삐-띠깜삐 사마-디(sappītikampi samādhi, 삐띠가 있는 사마-디), 닙삐-띠깜삐 사마-디(nippītikampi samādhi, 삐띠가 없는 사마-디), 사-따사하가땀삐 사마-디(sātasahagatampi samādhi, 수카만 남아있는 사마-디), 우뻭까-사하가따 사마-디(upekkhāsahagata samādhi, 수카 또한 제거되어 우뻭까 상태에 있는 사마-디)에 이르렀다.”

  • * 붓다께서 위에서 묘사하신 것은 ‘사위딱까 사위짜-라(savitakka savicāra)’로 첫번째 자-나에 이르고, 그 다음 ‘위딱까’와 ‘위짜-라’가 없는(삐띠와 수카가 있음) 두번째 자-나에, 수카만 있는(삐띠가 제거됨) 세번째 자-나에, 그리고 수카 또한 제거되고 우뻭까만 있는 네번째 자-나에 이르러신 것입니다.

  • * 각 연속 단계에서 자-나-안가(jhānānga, 선정의 요소)가 제거되는 아리야 자-나(Ariya jhāna)에 대한 설명은 예를 들어, ‘Rahogata Sutta (SN 36.11)’를 보세요.


13. ‘Akusala Vitakka Sutta (SN 9.11)’ 는 다음과 같이 또 다른 예를 보여 줍니다.

“떼나 코 빠나 사마예나 소 빅쿠 디와-위하-라가또 빠-빠께 아꾸살레 위딱께 위딱께띠, 세이야티당 - 까-마 위딱깡 브야-빠-다 위딱깡, 위힝사- 위딱깡(Tena kho pana samayena so bhikkhu divāvihāragato pāpake akusale vitakke vitakketi, seyyathidaṃ—kāma vitakkaṃ, ­byāpā­da­ vitak­kaṃ, vihiṃ­sā­ vitak­kaṃ)”.


  • * 번역: “그 빅쿠는 쉬는 시간 동안 매우 부도덕하고(pāpa, 빠-빠) 해로운 위딱까(akusala vitakka)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것들은 감각적이고 악의 있고 잔혹한 것이다.”

  • * 같은 숫따(sutta, 경)에 있는 다른 구절로, “아요니소 마나시까-라-, 소 위딱께히 캇자시..(Ayoniso manasikārā, so vitakkehi khajjasi..)”가 있으며, 이는 “그릇된 심적 경향(아요니소 마나시까라, ayoniso manasikara)으로, 그런 오염된 생각을 일으켜 짐을 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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