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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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뿟사 숫따(AN 9.41) ㅡ 아꿉빠- 쩨-또-위뭇띠

     

    원문: Sutta Interpretation 섹션의 ‘Tapussa Sutta (AN 9.41)– Akuppā Cētōvimutti’ 포스트

    - 2019년 2월 28일 작성; 2022년 7월 19일 개정; 2024년 1월 30일 개정

     

    1. 대부분의 숫따(sutta, 경)들은 문맥이나 기본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낱말별로 그대로 대응시켜 번역되었습니다. 이 숫따 번역이 필자의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전달되기를 희망합니다.

     

    • * 이 숫따(sutta, 경)는 아리야 자-나(Ariya jhāna)를 개발하고 싶다면,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을 줄이고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를 멀리하여 결국 그것을 제거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 * 감각적 갈망(까-마 라-가, kāma rāga)을 억제하는(억누르는) 것만으로도 자-나(jhāna)로 이끌 수는 있습니다. ‘선정 경험에 대한 상세 설명 - 사-만냐팔라 숫따(DN 2)’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나, 닙바-나(Nibbāna) (아꿉빠- 쩨또위뭇띠, akuppā cetovimutti)을 얻기 위해서는, 각 자-나 상태(jhānic state)에서 그 갈망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자-나를 통해 닙바-나로 가는 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 포스트에서는 단계별 과정을 논의합니다.

    • * 하지만, 감각적 갈망(까-마 라-가, kāma rāga)을 제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디-나와(ādīnava) (‘aadeenava’로 발음)라고 하는 그것들의 결점(및 위험)과, 또한 그런 갈망들을 포기할 때의 이점/이득(아-니삼사, ānisamsa)을 숙고하여 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간 자-나 대 출세간 자-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2. ‘Tapussa Sutta (AN 9.41)’을 보면서 빠알리(와 그곳의 영어 버전)을 따를(이해할) 수 있습니다(그 웹사이트에는 ‘Sinhala Translation’도 있습니다). 유용한 웹사이트이지만, 일부 주요(핵심) 빠알리 낱말에 대해서 번역이 정확하지 않으며, 숫따(sutta)들은 내재된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낱말별로 그대로 대응시켜 번역되었습니다. 그것은 현재 기본적으로 모든 영어 번역본에 해당합니다.

     

    • * 숫따(sutta)들은 매우 반복적이 되도록 설계되었고, 그것이 처음 500년 동안 충실한 구두 전승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문자로 기록된 형태에서는 그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전체 숫따를 낱말별로 그대로 대응시켜 번역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읽기에 매우 지루할 수 있습니다.

    • * 그래서, 필자는 장황한 번역으로 시작하고, 끝으로 가면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핵심 개념을 전달(희망 사항임)하기는 하지만, 짧게 줄이겠습니다.

    • * 우리는 또한 붓다께서는 깨닫기 전에 보디삿타(Bodhisatta, 보살)였을 때 다른 요기(yogi, 수행자)들로부터 모든 선정에 이르는 방법을 배우신 상태였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호흡 명상과 같은 아나-리야(anāriya, 평범한/세간) 기법으로 쩨또위뭇띠(cetovimutti)(가장 높은 자-나_jhāna)를 얻을 수 있지만, 그 자-나(jhāna)들은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아래에 기술된 바와 같이, 붓다께서는 깨지지 않는(안정된) 자-나(jhāna)를 기르는 방법을 찾아내셨고 아꿉빠- 쩨또위뭇띠(akuppā cetovimutti)로 붓다후드(Buddhahood, 붓다의 깨달음)를 달성하셨습니다.

    • *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이 숫따(sutta)에 기술된 과정입니다.

     

    3. 한 때, 세존께서는 우루웰라깝빠(Uruvelakappa)라는 말란(Mallan) 마을 근처의 말라(Malla)에 머물고 계셨다. 세존께서는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와 바깥가사(상가띠)를 지니시고 우루웰라깝빠(Uruvelakappa)로 탁발을 나가셨다. 우루웰라깝빠로 탁발을 가셔서 식사를 마치신 후, 돌아오시면서 붓다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아난다여, 내가 숲에 가서 쉬는 동안 여기 있도록 해라.”라고 말씀하셨다.

     

    • * “부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아난다 존자가 대답했다.

    • * 그리고, 세존께서는 숲으로 가셔서 나무 밑둥에 앉으시고 쉬셨다.

     

    4. 그 때, 재가자인 따뿟사(Tapussa)가 아난다 존자에게 갔다. 도착하자 아난다 존자에게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그곳에 앉아서 아난다 존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난다 존자시여, 우리는 육체 감각에 탐닉하여, 감각적 즐거움에 기뻐하고,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고, 감각적 즐거움에 환희하는 재가자입니다. 우리가 감각적 즐거움을 멀리하는(또는 포기하는) 것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같습니다(고려/숙고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붓다 사사나(Buddha Sāsana)에서 감각적 즐거움을 포기하고 마음을 평화를 얻고 괴로움에서 궁극적으로 벗어난 젊은 빅쿠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빅쿠들은 우리와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어떻게 다릅니까?”

     

    • * “이것은 사실입니다. 재가자님. 이에 대해 세존께 가서 여쭈어 봅시다.”

     

    5. 그리고, 아난다(Ananda) 존자는 따뿟사(Tapussa)와 함께 세존께로 가서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그 다음,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기 있는 재가자인 따뿟사가 저에게 와서, ‘우리는 육체 감각에 탐닉하여, 감각적 즐거움에 기뻐하고,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고, 감각적 즐거움에 환희하는 재가자입니다. 우리가 감각적 즐거움을 멀리하는(또는 포기하는) 것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만큼 매력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붓다 사사나(Buddha Sāsana)에서 감각적 즐거움을 포기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괴로움에서 궁극적으로 벗어난 젊은 빅쿠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빅쿠들은 우리와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어떻게 다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6. “그렇다. 아난다여. 그렇다. 나 자신도 붓다가 되기 전, 아직 깨닫지 못한 보디삿따(Bodhisatta) 였을 때, 나는 '감각적 즐거움을 삼가는 것(넥캄마, nekkhamma)이 좋고, 마음의 평화(위웨까, viveka)가 좋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감각적 갈망에서 벗어난 그런 생각(넥캄메 찟땅, nekkhamme cittam)이 내려앉지 않고(나 빡칸다띠, na pakkhandati), 내 마음을 정화하지 않으며(나 빠시다띠, na pasidati), 내 마음을 진정시키지 않고(나 산띳타띠, na santitthati), 그리고 내 마음은 해방되지 않는다(나 위뭇짜띠, na vimuccati).”

     

    • * 그때 나에게 [다음과 같은] 한 생각이 일어났다. “무슨 이유 때문에, 감각적 갈망에서 벗어난 그런 생각(넥캄메 찟땅, nekkhamme cittam)은 내려앉지 않고(나 빡칸다띠, na pakkhandati), 내 마음을 정화하지 않으며(나 빠시다띠, na pasidati), 내 마음을 진정시키지 않고(나 산띳타띠, na santitthati), 그래서 내 마음은 해방되지 않는(나 위뭇짜띠, na vimuccati) 것인가”

    • * 그리고 나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나는 감각적 즐거움의 위험/결점(아-디나와, ādinava)를 보지 못했다. 나는 감각적 즐거움의 위험/결점을 깊이 숙고해 보지 못했다(아바훌리까또, abahulikato). 나는 포기함에 따른 보상(넥캄메 아-니삼사, nekkhamme ānisamsa)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포기함에 따른 보상을 깊이 숙고해 보지 못했다(아나-세-위따, anāsēvita). 그것이 내 마음이 해방되지 못한(나 위뭇짜띠,  na vimuccati) 이유다.”

    • * 그리고 나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만일 내가 감각적 즐거움의 위험과 감각적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의 이점/이득을 본다면, 감각적 갈망에서 벗어난 그런 생각(넥캄메 찟땅, nekkhamme cittam)이 내려앉고(빡칸다띠, pakkhandati), 내 마음을 정화하며(빠시다띠, pasidati), 내 마음을 진정시키고(산띳타띠, santitthati), 그래서 내 마음은 해방될 것이다(위뭇짜띠, vimuccati).”

     

    필자의 코멘트: 붓다께서 위의 생각 과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에 대해 따뿟사(Tapussa)에게 설명하시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붓다후드(Buddhahood, 붓다의 깨달음)에 이르신 날 밤에야 정확히 그 방법을 알아내셨습니다.

     

    7.  “나중에, 아빠레나 삼에나(aparena samyena, 붓다의 깨달음에 이른 밤)에, 나는 감각적 즐거움의 결점을 보고 그 테마(주제)를 추구했다. 나는 감각적 즐거움의 결점을 숙고했고, [감각적 즐거움을] 포기함에 따른 보상을 이해했고, 갈망(아-사-와-, āsāvā)을 제거하는 해결책을 이해했다. 그때 내 마음은 그런 마음 가짐(심적 경향)에 확고하게 되었고, 마음이 가라앉고(진정되고), 그런 감각적 생각들에서 해방되었다.”

     

    • * 위 단락은 붓다께서 마침내 아-사왁카야 냐-나(āsavakkhaya ñāna), 즉 틸락카나(Tilakkhana)를 숙고하여 아-사-와-(āsāvā)를 어떻게 제거하는지를 깨달으셨을 때, 그 깨달음의 밤에 일어난 것을 설명합니다. ‘닙바-나로 가는 방법 - 아-사와의 제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알다시피, 붓다께서는 아-사왁카야 냐-나(āsavakkhaya ñāna)를 발견하기 위해 6년 동안 다양한 유형의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 * 이제 우리는 보디삿따(Bodhisatta, 보살)께서 첫번째 자-나(jhāna)를 깨지지 않고 안정되게 만들기 위해 그간 6년 동안 직면하셨던 어려움으로 돌아갑니다.

     

    8. “육체적 감각(오감)을 멀리하고(위윅짜 까-메히, vivicca kāmehi), 부도덕함(아꾸살라)에서 멀어져(위윅짜 아꾸살라 담메히, vivicca akusala dhammehi), 나는 사위딱까/사위자라(savitakka/savicara)(넥캄마/아위힘사 생각, nekkhamma/avihimsa thought)가 수반되어 평온함(위웨까장, vivekajam)에서 나오는 환희와 행복이 있는 제1자-나(first jhāna)의 부근에 들어가 머물렀다.”

     

    • * “그러나, 나는 여전히 육체적 감각(오감)이 되풀이되는 인식을 겪으며(까-마사하가따- 산냐-마나시까-라- 사무다-짜란띠, kāmasahagatā saññāmanasikārā samudācaranti) 시달렸다. 그것은 나에게 괴로움/고통이었다. 건강한 사람에게 고통이 질환/질병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그렇다 해도[제1자-나 부근에 들어가 머문다해도] 그 되풀이되는 감각적 생각이 나에게는 질환/질병이었다.”

     

    (보디삿따(Bodhisatta, 보살)께서 알라라 깔라마(Alara Kalama)와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amaputta)라는 초기의 아나-리야(anāriya, 세간) 스승으로부터 자-나-(jhānā)에 어떻게 이르는지를 배웠을 때 그 초기에 이 문제를 겪으셨다는 점에 주목하세요. 보디삿따께서는 그간 6년 동안 그 길을 개발했지만, 아-사왁카야 냐-나(āsavakkhaya ñāna)를 통해 깨달음에 이른 밤이 되어서야 그 구현에 성공하셨습니다.)

     

    9. “나중에(붓다의 깨달음에 이른 밤에), 나는 위딱까(vitakka)의 결점을 보고 그 테마(주제)를 추구했다. 나는 위딱까(vitakka)의 결점을 숙고했고, 아위딱카(avitakka)의 보상을 이해했고, 그때에 갈망(아-사-와-, āsāvā)을 제거함에 따른 이득/이익을 이해했다. 그때, 내 마음은 그런 마음 가짐(심적 경향)에 확고하게 되었고, 마음이 가라앉고(진정되고), 그런 감각적 생각들에서 해방되었다.”

     

    • * 이제 우리는 보디삿따(Bodhisatta, 보살)께서 깨달음에 이른 밤이 되기 전에 두번째 자-나(jhāna)와 마주하셨던 어려움으로 돌아갑니다.

     

    10. “그 다음, 나는 생각했다. ‘나는 부담되는 이런 생각들(위딱까/위짜-라, vitakka/vicāra)로부터 벗어난 ‘사마-디 생성(사마-디장, samādhijam) 두번째 자-나(second jhāna)에 도달해야 한다’.” 

    여기서, 위딱까(vitakka)는 마음을 오염된 생각 대상에 두는 것을 의미하고, 위짜-라(vicāra)는 그것을 거기에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 * “그러나, 두번째 자-나(second jhāna)에서, 위딱까(vitakka)에서 벗어난 그런 생각(즉, 아위딱까, avitakka)이 내려앉지 않고, 내 마음을 정화하지 않으며, 내 마음을 진정시키지 않고, 그리고 내 마음은 해방되지 않는다(아위딱께 찟땅 나 빡칸다띠 납빠시-다띠 나 산띳타띠 나 위뭇짜띠, avitakke cittaṃ na pakkhandati nappasīdati na santiṭṭhati na vimuccati).”

    • * 그리고 나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나는 위딱까(vitakka)의 위험/결점(아-디나와, ādinava)를 보지 못했다. 나는 위딱까(vitakka)의 위험/결점을 깊이 숙고해 보지 못했다(아바훌리까또, abahulikato). 나는 아위딱까(avitakka)의 보상(아위딱께 아-니삼사, avitakke ānisamsa)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아위딱까(avitakka)의 보상을 깊이 숙고해 보지 못했다(아나-세-위따, anāsēvita). 그것이 내 마음이 해방되지 못한(나 위뭇짜띠,  na vimuccati) 이유다.”

    • * “나중에(붓다의 깨달음에 이른 밤에), 나는 그런 오염된 생각(위딱까, vitakka)이 없고 삐띠(piti, 환희)와 수카(sukha, 행복)가 있는 제2자-나(second jhāna)의 부근에 들어가 머물 수 있었다.”

     

    11. 이것은 숫따(sutta, 경)의 나머지 부분에서 반복되는 테마(주제)입니다. 다음 구절부터 시작하여 각 자-나(jhāna, 선정) 레벨에서 마주치셨던 어려움과, 깨달음을 이루신 밤에 찾으신 해결책에 관한 것이 반복됩니다.

     

    • * 필자는 여기서 세 번째와 네 번째 자-나(jhāna, 선정)에 대해, 반복되는 몇 단계를 건너뛰겠습니다.

     

    12. “나는 삐띠(piti, 환희)가 없고 수카(sukha, 행복)가 있는 제3자-나(third jhāna)의 부근에 들어가 머물 수 있었다.”

     

    • * “그러나, 그때에도 나에게는 삐띠(piti, 환희)에 대한 인식이 계속 일어났다(삐띠사하가따 산냐-마나시까-라- 사무다-짜란띠, pitisahagata saññāmanasikārā samudācaranti). 그것은 나에게 질환/질병이었다. 건강한 사람에게 고통이 질환/질병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그렇다 해도[제3자-나 부근에 들어가 머문다해도] 그 되풀이되는 삐띠(piti, 환희)가 나에게는 질환/질병이었다.”

    • * “나중에(붓다의 깨달음에 이른 밤에), ~ ”. 여기 [제3자-나의 이하] 구절은 건너뜁니다. 

     

    13. “나는 수카(sukha, 행복)가 없지만 우뻭카(upekkha, 평정)가 있는 제4자-나(fourth jhāna)의 부근에 들어가 머물 수 있었다.”

     

    • * “그러나, 그때에도 나에게는 우뻭카 수카(upekkha sukha)에 대한 인식이 계속 일어났다(우뻭카수카사하가따 산냐-마나시까-라- 사무다-짜란띠, upekkhasukhasahagata saññāmanasikārā samudācaranti). 그것은 나에게 질환/질병이었다. 건강한 사람에게 고통이 질환/질병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그렇다 해도[제4자-나 부근에 들어가 머문다해도] 그 되풀이되는 우뻭카 수카(upekkha sukha)가 나에게는 질환/질병이었다.”

    • * “나중에(붓다의 깨달음에 이른 밤에), ~ ”. 여기 [제4자-나의 이하] 구절은 건너뜁니다.

    • * 이제 우리는 아루빠와짜라 자-나(arupavacara jhāna, 무색계 선정)에 이르렀으며, 그 단계들은 기본적으로 동일합니다.

     

    14. “나는 루빠(rupa)에 대한 인식을 초월하고 빠띠가(paṭigha)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고 다양한 아람마나(arammana, 생각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얀누-나-항 삽바소 루-빠산냐-낭 사마띡까마- 빠띠가산냐-낭 앗탕가마- 나-낫따산냐-낭 아마나시까-라-, yannūnāhaṃ sabbaso rūpasaññānaṃ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ṃ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ṃ amanasikārā), 무한한 공간을 생각함으로써 아-까-사-난짜-야따나(ākāsānañcāyatana, 공무변처)의 부근에 들어가 머물 수 있었다.” 

     

    • * 그러나, 아-까-사-난짜-야따나(ākāsānañcāyatana, 공무변처)의 부근에서도 나에게는 루빠(rupa)에 대한 인식이 계속 일어났고, 그것은 나에게 질환/질병이었다(..이미나- 위하-레나 위하라또 루-빠사하가따- 산냐-마나시까-라- 사무다-짜란띠. 사왓사 메 호띠 아-바-도; ..iminā vihārena viharato rūpasahagatā saññāmanasikārā samudācaranti. Svassa me hoti ābādho).

     

    15. “나중에(붓다의 깨달음에 이른 밤에), 나는 루빠(rupa)의 결점을 보고 그 테마(주제)를 추구했다. 나는 루빠(rupa)의 결점을 숙고했고, 아-까-사-난짜-야따나(ākāsānañcāyatana, 공무변처)의 보상을 이해했고, 그때에 갈망(아-사-와-, āsāvā)을 제거함에 따른 이득/이익을 이해했다. 그때, 내 마음은 그런 마음 가짐(심적 경향)에 확고하게 되었고, 마음이 가라앉고(진정되고), 그런 감각적 생각들에서 해방되었다.”

     

    16. “나는 ‘무한한 의식’인 윈냐-난짜-야따나(viññāṇañcāyatana, 식무변처)라고 생각했던 것에 들어갈 수 있었다.”

     

    • * “거기[윈냐-난짜-야따나, 식무변처]에 있는 동안, 나는 ‘무한한 공간의 차원(공무변처)’을 다루는 인식에 관심이 끌리며(아-까-사-난짜-야따나사하가따- 산냐-마나시까-라- 사무다-짜란띠, ākāsānañcāyatanasahagatā saññāmanasikārā samudācaranti) 시달렸다. 그것은 나에게 질환/질병이었다. 건강한 사람에게 고통이 질환/질병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그렇다 해도[‘윈냐-난짜-야따나’에 들어가 머문다해도] 무한한 공간의 차원을 다루는 인식에 관심이 끌리며 나를 시달리게 하는 것은  나에게는 질환/질병이었다.”

     

    17. “그래서 나중에, 나는 ‘무한한 공간의 차원(아-까-사-난짜-야따나, ākāsānañcāyatana, 공무변처)’의 결점을 보고 그 테마(주제)를 추구했다. ‘무한한 의식의 차원(윈냐-난짜-야따나, viññāṇañcāyatana, 식무변처)’의 보상을 이해하고 나서, 나는 그것에 익숙해졌다. 내 마음은 ‘무한한 의식의 차원(식무변처)’으로 뛰어올랐고, 그것(식무변처)을 평화로 보면서, 확신이 커지고 확고하고 굳건해졌다. 무한한 공간의 차원(공무변처)을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의식'을 [인식]하면서 나는 ‘무한한 의식의 차원’에 들어가 머물렀다.”

     

    • * 숫따(sutta, 경)는 아루빠와자라 자-나(arupavacara jhāna, 무색계 선정)의 나머지 단계를 거칩니다. 깨달음을 이루신 밤에 붓다께서는 각 단계에서 각 자-나(jhāna, 선정) 요소/요인을 제거하셨으며,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처럼 그 요소/요인을 [억눌러 나두면서] 그냥 지나치지는 않으셨습니다.

    • * 각 자-나(jhāna) 요소/요인을 제거하는 것은 각 자-나(선정) 상태의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특성을 숙고함으로써 행해졌습니다.

     

    18. “그래서 나중에, 나는 ‘인식도 아니고 인식이 아닌 것도 아닌 차원(네와산냐-나-산냐-야따나,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 비상비비상처)’의 결점을 보고 그 테마(주제)를 추구했다. … ‘인식도 아니고 인식이 아닌 것도 아닌 차원(비상비비상처)’을 완전히 초월하여, 나는 ‘인식과 느낌의 소멸(산냐-웨다이따니로다, saññāvedayitanirodha)’에 들어가 머물렀다. 그리고, 내가 알아차린대로, 정신적 번뇌(아-사와-, āsavā)는 완전히 제거되었다.”

     

    • * 산냐-웨다이따 니로다(saññāvedayita nirodha, 상수멸)는 아나-리야 자-나(anāriya jhāna, 세간 선정)를 통해서는 얻을 수 없음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아라한(Arahant)이 경험하는 닙바-나(Nibbāna, 열반)입니다.

     

    19. “아난다여, 내가 이런 식으로 앞/뒤 방향으로 이 아홉 단계별로 머무는 성취에 도달하고 나오지 않은 한에서는, 나는 데와(Devā, 천신)들, 마-라-(Mārā)들, 및 브라흐마(Brahmā)가 있고 명상가들과 브라-만(brāhman)들이 있으며 왕족과 평민들이 있는 이 우주에서 가장 높은 붓다후드(붓다의 지위)에 도달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 * “그러나 내가 이런 식으로 앞/뒤 방향으로 이 아홉 단계별로 머무는 성취에 도달하고 나오자 마자, 나는 데와(Devā, 천신)들, 마-라-(Mārā)들, 및 브라흐마(Brahmā)가 있고 명상가들과 브라-만(brāhman)들이 있으며 왕족과 평민들이 있는 이 우주에서 올바른 자각의 최상 상태에 직접적으로 깨어났다(깨달았다)고 주장했다. ‘나의 해방은 확고하고(아꿉빠- 메 쩨또위뭇띠, akuppā me cetovimutti)’, ‘이 생은 나의 마지막 탄생이며, 이제 더 이상의 재탄생은 없다(아야만띠마- 자-띠, 낫티 다-니 뿌납바오’ ”띠, ayamantimā jāti, natthi dāni punabbhavo’ ”ti) 라는 앎과 비전이 내 안에 일어났다.”

     

    20. 그것은 연속적인 아리야 자-나 상태(Ariya jhānic state, 출세간/성스런 선정 상태)를 통해 이 31영역 세상에서 ‘완전히 멀어지는/분리되는 것’에 도달하는 단계별 과정입니다. 이런 식으로 얻어진 마음의 궁극적인 해방을 아꿉빠- 쩨또위뭇띠(akuppā cetovimutti)라고 합니다.

     

    • * 물론, 자-나(jhāna, 선정)를 거치지 않고 그와 동일한 궁극적 상태(아라한뜨후드, Arahanthood, 아라한과)에 도달할 수 있으며, 그것을 빤냐-위뭇띠(paññāvimutti)라고 합니다. ‘빤냐-위뭇띠 - 자-나없이 달성된 아라한과’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또한, 빤냐-위뭇띠 아라한뜨(paññāvimutti Arahant)는 생전에 산냐-웨다이따 니로다(saññāvedayita nirodha) 상태에 도달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21. 보디삿따(Bodhisatta, 보살)께서 6년 동안 ㅡ 주로 많은 육체적 고통을 가함으로써 ㅡ (‘까-마 라-가_kāma rāga’를 포함하여) 아-사와-(āsavā, 번뇌/갈망)를 제거하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하신 노력은 다음 두 개의 숫따(sutta), 즉 ‘Bodhirājakumāra Sutta (MN 85)’  및 ‘Mahāsaccaka Sutta (MN 36)’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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