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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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간 자-나’ 대 ‘출세간 자-나’

     

    원문: Living Dhamma 섹션의 ‘Mundane versus Supramundane Jhāna’ 포스트

    2017년 10월 12일; 2018년 2월 9일 개정; 2022년 6월 17일 개정; 2022년 11월 16일 재작성; 2023년 1월 31일 개정[영문법 및 경미한 사항 개정임]

     

    여기에서는 세간(anariya, 아나리야) 자-나(jhāna)와 출세간(Ariya, 아리야) 자-나(jhāna)에 대한 논쟁점을 해결하기 위해 띠삐따까(Tipitaka, 삼장)의 세 가지 결정적인 숫따(sutta, 경)에 대해 논의할 것입니다.

     

    • * 흥미로운 점은 몇몇 숫따(sutta, 경)는 자-나(jhāna, 선정)를 특별히 아리야(Ariya) 또는 아나리야(anariya)로 표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자-나(jhāna)를 지칭하고 있는지 알아 내려면 주어진 숫따(sutta)를 주의 깊게 읽어야 하지만, 결론은 항상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가 막가 팔라(magga phala)를 얻기 위한 플랫폼(기반)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서는 쓸모없다는 것입니다. ‘사마-디, 자-나, 막가 팔라 - 소개’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빠타마 멧따 숫따’는 또한 아리야 자-나와 아나리야 자-나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숫따(sutta)에서는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는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를 계발하여(즉, ‘까-마 라-가’를 제거하지 않고 ‘아나리야 자-나’를 계발하여), 낮은 브라흐마 영역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없이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 세간 선정)에 이른 자들과는 달리, 그 소-따빤나(수다원)는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 * 4가지 자-나(jhāna, 선정)(아비담마 분석에 따르면 5가지)만이 띠삐따까(Tipitaka)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영어 문헌들은 더 높은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arupāvacara samāpatti)를 ‘제5 자-나’부터 ‘제8 자-나’로 잘못 표시하고 있습니다. 띠삐따까에서, 그것들은 아-까-사-난짜-야따나(ākāsānañcāyatana, 공무변처), 윈냐-난짜-야따나(viññāṇañcāyatana, 식무변처), 아-낀짜냐-야따나(ākiñcaññāyatana, 무소유처), 네와산냐-나-산냐-야따나(nevasaññānāsaññāyatana, 비상비비상처) 사마-빳띠(samāpatti)로 표시(규정)되어 있으며 자-나로 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1. 아리야(Ariya, 출세간) 자-나(jhāna)의 주된 특징과 목적은 자-나 숫따( ‘jhāna Sutta (Anguttara Nikaya 9.36)’)에 자세히 설해져 있습니다. 그 사이트의 영어 번역(Mental Absorption)이 좋지 않아서, 여기에 숫따(sutta)의 대부분을 번역하겠습니다. 그러나 싱할라어 번역(ඣානනිස්සයන සූත්රය)은 훨씬 낫습니다. 물론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는 싱할라어 번역에서도 잘못 번역되어 있습니다.

     

    • * 필자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빠알리 용어는 번역하지 않고 쓰겠습니다. 포스트를 보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읽기가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이제, 숫따(sutta)를 번역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래 번호(#)jhāna Sutta (Anguttara Nikāya 9.36)  빠알리 버젼(root text)의 단락번호입니다.

     

    #1. “빅쿠들이여, 첫번째 자-나(제1선정), 두번째 자-나(제2선정), 세번째 자-나(제3선정), 네번째 자-나(제4선정), 아-까-사-난짜-야따나(ākāsānañcāyatana, 공무변처), 윈냐-난짜-야따나(viññāṇañcāyatana, 식무변처), 아-낀짜냐-야따나(ākiñcaññāyatana, 무소유처), 네와산냐-나-산냐-야따나(nevasaññānāsaññāyatana, 비상비비상처), 산냐-웨다이따니로다(saññāvedayitanirodha, 상수멸)을 통해 아-사와(āsava, 번뇌)를 제거하는 것에 대해 설하리라.”

    (후반부 네 가지는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 상태입니다. 또한 필자는 단지 의미를 부여하면서, 단락을 짧게 하기 위해 문구를 최소화하였습니다.) 

     

    • * 따라서 자-나(선정) 상태의 주된 목적은 통찰 명상을 하고 아-사와(āsava, 번뇌)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지, 선정의 즐거움(또는 안도감)를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닙바-나로 가는 방법 - 아-사와의 제거’ 포스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닙바-나(Nibbāna)는 아-사와(āsava, 번뇌)의 제거를 통해 달성됩니다.  

    • * 다음 단락에서 중요한 정보가 많이 있습니다.

     

    #2. “빅쿠들이여, [여래는] 첫번째 자-나(jhāna, 선정)을 통해 아-사와(āsava, 번뇌)를 제거한다고 선언한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하는가? 감각적 즐거움을 삼가고(vivicceva kāmehi) 아꾸살라를 삼가는 빅쿠는 첫번째 자-나(선정)의 부근에 이른다(upasampajja viharati). 래서 그는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의(rūpagataṃ vedanāgataṃ saññāgataṃ saṅkhārāgataṃ viññāṇagataṃ) 아닛짜 특성(aniccatō), 둑카 특성(dukkhato), 질병에 시달리는 특성(rogatō), 암같은 특성(gandatō), 화살같은 특성(sallatō), 고통스러움(aghatō), 위험에 시달림(ābādhatō), 이질적임(paratō), 파괴될 예정임(palokatō), 비어 있음(suññatō), 결실없고 난감하게 됨(anattō)을 숙고한다. 그는 마음을 그 현상에서 돌려 멀리하고, 그렇게 행하여, 마음을 닙바-나(Nibbāna)로 기울인다(‘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n’ti). 그리하여 그는 아-사와(āsava, 번뇌)를 제거한다. 그가 아-사와(āsava)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고 생각해보라. 그 경우에, 그는 처음(낮은 단계) 다섯 가지 상요-자나(samyōjana, 족쇄)를 제거하여 브라흐마 로까(색계)에 화생하여 거기서 빠리닙바-나(pariNibbāna)를 얻을 것이며,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No ce āsavānaṃ khayaṃ pāpuṇāti, teneva dhammarāgena tāya dhammanandiyā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opapātiko hoti tattha parinibbāyī anāvattidhammo tasmā lokā).”

     

    • * 그래서, 빤짝칸다(pancakkhandha, 오온)의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특성을 이해하지 않고는 아리야 자-나(Ariya jhāna)를 성취할 수 없습니다.

    • * 표준 구절인 “..(pathamam) jhānam upasampajja viharati..”는 보통 “(첫 번째) 선정에 들어가 머문다..”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우빠삼빳자 위하라띠(upasampajja viharati)’는 ‘산(san)’을 명료하게 하여 제거하는 부근에 머문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빠삼빳자(upasampajja)는 ‘우빠(upa)’ + ‘산(san)’ + ‘빳자(pajja)’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물론 ‘산(san)’은 ‘로-바(lōbha), 도-사(dōsa) 및 모-하(mōha)’, 즉 아-사와(āsava)를 의미합니다. 접두사인 ‘우빠(upa)’는 ‘가까운 또는 근접한’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우빠삼빠다-(upasampadā)’는 ‘우빠(upa)’ + ‘산(san) + ‘빠다-(padā)’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빅쿠가 진보하여 산(san)을 가려내어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에 가까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위 단락에 있는 세 가지 결정적인 단계를 다시 파악해 보겠습니다. 첫째, 세상을 구성하는 5가지 무더기인 루-빠(rūpa), 웨다나(vedana), 산냐(sañña), 상카-라(sankhāra), 윈냐-나(viññāṇa)의 ‘아-디-나와(ādīnava, 결함 또는 위험함)’를 길게 나열한 것을 숙고하여 자-나(jhāna, 선정)[의 부근]에 이릅니다. 5가지 무더기(오온)에 대해서는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다섯 무더기(오온)(The Five Aggregates (Pañcakkhandha))’ 서브섹션의 포스트들을 보세요.

    • * 둘째, 자-나(선정)의 부근에 이르면, 이미 보았던 안도함에 대해 숙고함으로써, 즉 “ ‘에땅 산땅 에땅 빠니-땅 야디당 삽바상카-라사마토 삽부-빠디빠띠닛삭고 딴학-카요 위-라고 니로도 닙바-난’띠(‘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n’ti.)”를 숙고함으로써, 그것을 강화하고 그것에 완전히 몰입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빤냐-위뭇띠(paññāvimutti) 길과는 대조적으로, 자-나(jhāna)를 기르는 것에 관련된 추가적인 노력입니다.

    • * 셋째, 오온의 ‘아-디-나와(ādīnava, 결함 또는 위험함)’를 다시 숙고함으로써 더 높은 자-나(jhāna, 선정)에 이를 수 있습니다. 

     

    #3. “빅쿠들이여, 궁수 또는 궁수의 제자가 짚 인형 또는 흙 무더기로 활쏘기 연습한다고 생각해보라. 조금 지나서 장거리 활쏘기를 할 수 있게 되고, 빠르게 연속하여 정확하게 활을 쏠 수 있게 되어, 많은 화살을 [단 시간에] 목표물에 명중시킬 수 있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빅쿠는 감각적 즐거움(욕망)을 삼가고 아꾸살라를 삼가하여, 첫번째 자-나(제1선정)의 부근(upasampajja)에 이른다.”

     

    • * 나머지는 5가지 무더기(오온)의 아-디-나와(ādīnava, 결함 또는 위험함)을 숙고함에 따라 어떻게 아-사와(āsava, 번뇌)가 제거되는지에 대해 그 지점부터 단락의 끝에 있는 확인 선언문에 이르기까지 위 #2에 있는 것과 기본적으로 동일하며, 확인 선언문은 “빅쿠들이여, [여래는] 첫번째 자-나(제1 선정)를 통해 아-사와(āsava, 번뇌)를 제거한다고 확실히 선언한다.”로 강조하는 구절입니다.

     

    #4. 이 단락은 두번째 자-나(제2선정), 세번째 자-나(제3선정), 및 네번째 자-나(제4선정)에 대해 위 #2에 있는 내용을 반복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네번째 자-나(제4선정)에서도 아나-가미(Anāgami) 성자가 되는 것이 보장되기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2에서 언급한 것처럼,  모든 아-사와(āsava, 번뇌)가 제거된다면 첫번째 자-나(제1선정)에서도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으며,  물론 그것은 네번째 자-나(제4선정)까지 모든 자-나(jhāna, 선정)에 적용됩니다.

     

    #5. 이 단락은 두번째 자-나(제2선정), 세번째 자-나(제3선정), 및 네번째 자-나(제4선정)에 대해  #3과 동일한 구절로 반복되며, “빅쿠들이여, [여래는] 네번째 자-나(제4선정)를 통해 아-사와(āsava, 번뇌)를 제거한다고 확실히 선언한다.”로 끝납니다.

     

    #6 , #7. 여기서는 첫번째 자-나(제1선정)에 대한 #2 및 #3의 단락이  이제 첫번째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arūpavacara samāpatti)인 ‘아-까-사-난짜-야따나(ākāsānañcāyatana, 공무변처)’에 대해 반복됩니다.

     

    #8 , #9. 여기서는 첫번째 자-나(제1선정)에 대한 #2 및 #3의 단락이  이제 두번째 및 세번째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arūpavacara samāpatti)인 ‘윈냐-난짜-야따나(viññāṇañcāyatana, 식무변처)’와 ‘아-낀짜냐-야따나(ākiñcaññāyatana, 무소유처)’에 대해 반복됩니다. 다시, 흥미로운 점은 이 높은 아루-빠와짜라 자-나에서도 아나-가미(Anāgami) 성자가 되는 것이 보장되기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 “두 개의 ‘산냐-사마-빳띠 아-야따나(saññāsamāpatti āyatana)’인  네와산냐-나-산냐-야따나(nevasaññānāsaññāyatana, 비상비비상처), 산냐-웨다이따니로다(saññāvedayitanirodha, 상수멸)에 대해서는, 그것들은 아-사와(āsava, 번뇌)를 제거하고 닙바-나(Nibbāna)의 완벽한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 * 따라서, 가장 높은 ‘아루-빠와짜라 (아리야) 사마-빳띠(arūpavacra (Ariya) jhāna)’에 도달하면, 그 사람은 아라한과(Arahantship)를 얻을 것이고, ‘니로다 사마-빳띠(nirodha samāpatti)’, 즉  산냐-웨다이따니로다(saññāvedayitanirodha, 상수멸)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즉, 위 ‘자-나 숫따(jhāna Sutta (Anguttara Nikāya 9.36))’는 근본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숨겨진 많은 핵심 통찰력을 주는 완전한 숫따(sutta)입니다. 필자는 이 숫따를 처음 읽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현대 번역자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이 숫따(sutta)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4. 우리는 이 결정적인 숫따(sutta)에서 아리야 자-나(Ariya jhāna)의 핵심적인 면을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빤짝칸다(pancakkhandha), 즉 루-빠(rūpa), 웨다나(vedana), 산냐(sañña), 상카-라(sankhāra), 윈냐-나(viññāṇa)의 ‘아-디-나와(ādīnava, 결함 또는 위험함)’를 숙고하여 첫 번째 자-나(제1선정)의 부근(upasampajja)에 이른다는 사실에서 시작합시다. 일단 거기에 이르면, 같은 과정에 의해 아-사와(āsava, 번뇌)를 더 제거합니다.

     

    • * 따라서, 욕계 상태의 부적당함(결함)에 대한 통찰 명상(vipassana, 위빠사나)으로 자-나(jhāna, 선정)에 이르고, 자-나(선정)에 일단 이르면 그 상태를 초월하기 위해 그 자-나(선정) 상태의 부적당함에 대해 통찰 명상을 시작합니다.

    • * [숫따의] #1에서 [그 선정의] 그런 부적당함(결함, ādīnava)의 긴 리스트는 ‘아닛짜 특성(aniccatō), 둑카 특성(dukkhato), 질병에 시달리는 특성(rogatō), 암같은 특성(gandatō), 화살같은 특성(sallatō), 고통스러움(aghatō), 위험에 시달림(ābādhatō), 이질적임(paratō), 파괴될 예정임(palokatō), 비어 있음(suññatō), 결실없고 난감하게 됨(anattō)’입니다.

     

    5. 그러므로 어떤 주어진 아리야 자-나(Ariya jhāna, 출세간 선정)의 주된 목표는 그 상태의 모든 그 아-디-나와(ādīnava, 결함, 위험함)를 숙고하고, 다음 상위 상태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성자가 네 가지 루빠-와짜라 자-나 상태를 거치고 네-와 산냐- 나- 산냐-(nēva saññā nā saññā)까지 모든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arupāvacara samāpatti)를 거쳐 닙바-나(Nibbāna,)를 얻으면, 그들은 아꿉빠- 쩨또위뭇띠(akuppā cetovimutti)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니로-다 사마-빳띠, 팔라 사마-빳띠, 자-나, 및 자-나 사마-빳띠’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물론, 어떤 낮은 단계의 자-나(선정)에서 모든 아-사와(āsava, 번뇌)를 제거하여 닙바-나(Nibbāna, 열반)를 얻을 수 있습니다.

    • * 낮은 자-나(선정) 상태(가장 높은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의 아래 상태)에서 닙바-나(Nibbāna, 열반)를 달성하면, 빤냐-위뭇띠(paññāvimutti)를 달성한다고 말합니다.

    • * 자-나(jhāna)라는 용어가 흔히 사용되지만, 더 나은 용어는 드야-나(dhyāna)입니다. 드야-나(dhyāna)는 빠알리어로는 ඣාන이고, 싱할라어로는 දැවීම이며, ‘불타는’의 뜻입니다.

    • * 여기서는 드야-나(dhyāna) 대신에 흔히 사용되는 자-나(jhāna)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하겠습니다. 드야-나(dhyāna)는 의미의 출처를 알기 위해서만 유용합니다.

     

    6. 어떤 자-나(jhāna, 선정)에서도 분명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자-나(제2선정) 후에는 잡념으로 떠돌며 간간히 일어나는 위딱까/위짜-라(vitakka/vicāra)도 없을 것입니다. 즉, 두번째 자-나 후에는 아위딱까/아위짜-라(avitakka/avicāra, 나쁜 생각이 없는) 모드에 있게 될 것입니다. 장차 포스트에서 자-낭가(jhānanga), 즉 자-나 요소에 대해 논의할 예정입니다.

     

    • * 이것이 아리야 자-나(Ariya jhāna, 출세간 선정)가 통찰(위빠사나) 명상에 도움이 되는 이유입니다. 더 높은 자-나(jhāna)(그리고 사마-빳띠, samāpatti) 상태로 가면서 점점 더 많은 상 카-라가 제거될 때 마음이 청정해집니다.

     

    7. 아리야 자-나(Ariya jhāna)에서 경험한 안도감이 붓다께서 권장하신 유일한 ‘즐거움(행복)’이지만, 그것이 아리야 자-나의 주된 목적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나(jhāna)에 들러붙으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 세간 선정)에 도달하는 사람들이 주로 그 자-나에 들러붙습니다(하지만, 아나리야 자-나 또는 심지어 자-나가 없는 경우에도 막가 팔라의 어느 단계에나 도달할 수 있습니다). 아닛짜(anicca) 특성을 본다면, 자-나(jhāna)에 들러붙지 않을 것입니다.

     

    • * 그 맥락에서, 이전 포스트에서 모든 자-나(선정) 상태는 ‘이 세상’에 해당하는 정신 상태라고 논의되었습니다. ‘자-나를 통해 닙바-나로 가는 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8. 빤짜니-와라나(pancanīvarana, 5가지 장애)는 첫번째 아리야 자-나(제1출세간 선정)에서 또한 완전히 제거됩니다. ‘Mahāvedalla Sutta (MN 43)’에는 “.. Idhāvuso, paṭhamaṃ jhānaṃ samāpannāssa bhikkhuno kāmacchando pahīno hoti, byāpādo pahīno hoti, thinamiddhaṃ pahīnaṃ hoti, uddhaccakukkuccaṃ pahīnaṃ hoti, vicikicchā pahīnā hoti..”로 설해져 있습니다.

     

    • * 많은 숫따(sutta)들이 ‘첫번째 출세간 선정’을 위한 그러한 조건을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 * 이와 대조적으로, 5가지 상요-자나(samyōjana, 족쇄)나 빤짜니-와라나 (Pancanīvarana, 5가지 장애)는 어떤 세간 선정에서도 제거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명백합니다. 중립적인 대상을 아-람마나(ārammana, 명상 대상)로 삼아서는 어떤 낄레사(kilesa)(klēsha/오염원)도 제거할 수 없습니다.

     

    9. 이것이 붓다께서 삿따 존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Ājānīyajhāyitaṃ kho, saddha, jhāya; mā khaḷuṅkajhāyitaṃ..”.

    번역: “.. 삿다여, ‘칼룬까(khalunka, 잡종) 자-나’가 아니라 ‘아-자니-야(ajānīya, 순종) 자-나’를 길러라..”. ‘Saddha Sutta (Anguttara Nikāya 11.9)’ 참조.

     

    • * ‘Sutta Central translation’에서,  ‘칼룬까(khalunka)’는 어린 말(colt, 망아지)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번역은 ‘잡종 또는 잡종말(mule, 노새)’입니다. 숫따(sutta)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잡종말(노새)은 순종말에 비해 게으르고 유용하지 않습니다. 

    • * 숫따(sutta)에서 설명된 것처럼, 세간 자-나(jhāna)를 기르는 자는 세간 대상(까시나, 호흡)을 명상 대상으로 삼으며, 비록 자-나(jhāna)를 얻을 수 있지만, 그 명상 대상을 볼 수 있는 천신의 존경을 받지는 못합니다.

    • * 반면에, 천신은 아리야 자-나(Ariya jhāna)를 기른 자의 명상 대상(닙바-나)을 볼 수 없으며, 멀리서 그를 존경합니다.

     

    10. 그래서, 어떻게 자-나(선정)에 이르는가는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 * 아나리야(세간) 길을 가는 자는 이 세상에 속하는 세간 대상(예를 들어, 자신의 호흡이나 까시나)에 마음을 집중시키거나 세간의 도덕적 생각(자비로움, 친절함 등)을 숙고함으로써, 자-나(선정)에 이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에서 다루겠습니다..

    • * 반면에, 성스런 길을 가는 자는 닙바-나(Nibbāna), 즉 31영역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특성을 숙고함으로써, 자-나(선정)에 이릅니다. 

    • * 그러나, 자-나 수카(jhāna sukha, 선정의 즐거움)는 붓다께서 권장하신 유일한 수카(sukha)입니다. 왜냐하면, 감각적 즐거움은 까-마 로-까(욕계)에 묶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빤냐-위뭇띠(paññāvimutti) 아라한은 아라한과(Arahanthood)를 얻은 후, 자-나(jhāna)를 기른다고 합니다.

     

    11. 또한, 목갈라나 존자께서 소-따빤나 단계에 이른 후에 어떻게 첫번째 자-나(제1선정)을 길렀는지에 대해 논의한 이전 게시물, ‘자-나를 통해 닙바-나로 가는 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첫번째 아리야 자-나(제1 출세간 선정)에 완전히 몰입될 수 있는 자는 루-빠 로-까(색계)의 숫다-와-사(Suddhāvāsa) 영역에 태어나 까-마 로-까(욕계)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즉, 자-나 숫따(Jhāna Sutta)와 여러 다른 숫따(경)에 분명히 설해진 바와 같이, 그 자는 아-나가미(Anāgami) 성자입니다.

    • * 한편, 세간 제1선정을 기르는 자는 다음 탄생할 때에 루-빠와짜라 브라흐마(rūpavacara Brahma, 색계) 첫 영역에 태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의 재탄생에서는 아빠-야(apāya, 악처)에도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까-마 라-가(kāma rāga, 감각적 욕망)를 누르기만 하였을 뿐,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2. 호흡 명상이나 까시나(kasina) 명상을 통해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 세간 선정)에 들어갈 수 있으며, 세간 선정 상태에서 위빠사나(vipassana)를 할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문제는, 그 사람들은 그 상태에 중독되어 그것들의 아닛짜 특성(anicca nature)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13. 아리야 자-나(Ariya jhāna, 출세간 선정)에 대해 위 숫따(sutta)와 필자가 발견한 더 많은 숫따 외에도, 필자는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 세간 선정)에 대해 설명한 다른 숫따(sutta)들을 발견했습니다. 이 숫따(sutta)들 중 어떤 것에도 아리야 자-나(Ariya jhāna, 출세간 선정) 또는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 세간 선정)라는 특정 라벨(표시)이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텍스트)을 읽을 때 어느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 * 다음의 참조에서, 까-마 라-가(kāma rāga, 감각적 욕망)는 모든 루-빠와-짜라 자-나(rūpavācara jhāna, 색계 선정)와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arūpavācara samāpatti)에서 단지 억눌러지기(vikkhambhanato)만 한다고 분명히 설해져 있습니다. 한편, 까-마 라-가(kāma rāga, 감각적 욕망)는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를 통해 단계적으로 제거된다(samucchedato)고 설해져 있습니다.

     

    다음은 ‘쿳다까 니까야, 마하-니데사, 앗타까왁가(Khuddaka Nikaya, Mahāniddesa, Aṭṭhakavagga)’에 있는 ‘1. Kāmasuttaniddesa’ 에서 인용한 관련 구절 2개입니다. 링크 사이트에 영어 번역문은 없지만, 싱할라어 번역문이 ‘කාම සූත්ර නිර්දෙශය’에 주어져 있습니다.

     

    Paṭhamaṃ jhānaṃ bhāventopi vikkhambhanato kāme parivajjeti … pe … dutiyaṃ jhānaṃ bhāventopi … tatiyaṃ jhānaṃ bhāventopi … catutthaṃ jhānaṃ bhāventopi … ākāsānañcāyatanasamāpattiṃ bhāventopi … viññāṇañcāyatanasamāpattiṃ bhāventopi … ākiñcaññāyatanasamāpattiṃ bhāventopi …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māpattiṃ bhāventopi vikkhambhanato kāme parivajjeti. Evaṃ vikkhambhanato kāme parivajjeti.”

     

    • * 번역:까-마(감각적 욕망)는 첫번째 선정(제1선정)에서 억눌려지고(vikkhambhanato), … 네와산냐-나-산냐-야따나(가장 높은 무색계 사마-빳띠)에서 억눌려진다.” 위에서 보았듯이 까-마는 아리야 자-나(Ariya jhāna, 출세간 선정)에 도달하기 전에도 제거됩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 세간 선정)만 의미합니다.

    • * 다른 예로 ‘따뿟사 숫따(AN 9.41) ㅡ 아꿉빠- 쩨-또-위뭇띠’를 참조하세요.

     

    Kathaṃ samucchedato kāme parivajjeti? Sotāpattimaggaṃ bhāventopi apāyagamanīye kāme samucchedato parivajjeti, sakadāgāmimaggaṃ bhāventopi oḷārike kāme samucchedato parivajjeti, anāgāmimaggaṃ bhāventopi anusahagate kāme samucchedato parivajjeti, arahattamaggaṃ bhāventopi sabbena sabbaṃ sabbathā sabbaṃ asesaṃ nissesaṃ samucchedato kāme parivajjeti. Evaṃ samucchedato kāme parivajjetīti—yo kāme parivajjeti.”

     

    • * 번역: “까-마(감각적 욕망)는 소-따빤나(수다원), 사까다-가-미(사다함) 단계를 통해 단계적으로 제거되며(samucchedato), 아나-가-미(아나함) 단계에서 제거되고, 아라한 단계에서 그 자국(흔적)이 없이 제거된다.” 

     

    14. 다음 숫따(sutta)는 아리야 자-나(Ariya jhāna, 출세간 선정)과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 세간 선정) 간의 차이를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빠타마나-나-까라나 숫따 (Paṭhamanānākaraṇa Sutta (AN 4. 123)): “Idha, bhikkhave, ekacco puggalo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So tadassādeti, taṃ nikāmeti, tena ca vittiṃ āpajjāti. Tattha ṭhito tadadhimutto tabbahula-vihārī aparihīno kālaṃ kurumāno brahmakāyikānaṃ devānaṃ sahabyataṃ upapajjāti. Brahmakāyikānaṃ, bhikkhave, devānaṃ kappo āyuppamāṇaṃ. Tattha puthujjano yāvatāyukaṃ ṭhatvā yāvatakaṃ tesaṃ devānaṃ āyuppamāṇaṃ taṃ sabbaṃ khepetvā nirayampi gacchati tiracchānayonimpi gacchati pettivisayampi gacchati. Bhagavato pana sāvako tattha yāvatāyukaṃ ṭhatvā yāvatakaṃ tesaṃ devānaṃ āyuppamāṇaṃ taṃ sabbaṃ khepetvā tasmiṃyeva bhave parinibbāyati. Ayaṃ kho, bhikkhave, viseso ayaṃ adhippayāso idaṃ nānākaraṇaṃ sutavato ariyasāvakassa assutavatā puthujjanena, yadidaṃ gatiyā upapattiyā sati.”

     

    번역: “감각욕(까-마, kāma)에서 떠나고 아꾸살라(akusala, 불선)에서 떠난 자가 그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지향된 생각과 고찰’이 함께 하는 제1선정에 들어 머무는 경우가 있다. 그는 그것을 음미하고 열망하고 그것을 통해 만족하게 된다. 거기에 계속 남아 있으면, 즉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고 종종 거기에 머무르고 자-나(jhāna)를 잃지 않으면, 그는 죽을 때 브라흐마(Brahma, 범천)의 수행원인 데와(deva)로 태어난다. 빅쿠들이여, 브라흐마(Brahma)의 수행원인 데와는 겁에 이르는 수명을 가진다. 평범한 자(범부 중생)들은 거기에 머물러 그 수명이 모두 다하면,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계로 가게 된다. 그러나 성스런 자(성자)는 거기에 머물러 그 수명이 모두 다하면 빠리닙바-나(Parinibbāna, 반열반)를 얻는다. 빅쿠들이여, 이것이 가띠(gati)와 태어남에 있어서, 성스런 제자(성자)와 성스런 진리를 듣지 못한 평범한 자(assutavatā puthujjanena, 범부 중생)의 차이이고, 뚜렷한 구별이며, 구별 요소이다.”

     

    • * 첫번째 아리야 선정(제1출세간 선정)에 도달하면 아나-가-미(Anāgāmi) 성자가 됩니다. 아나-가-미 성자는 위 숫따에서 설해진 것처럼 그 브라흐마 영역에서 태어나서 거기에서 빠리닙바-나(Parinibbāna)를 얻습니다.

    • * 다시 말하면, 까-마 라-가(kāma rāga, 감각적 욕망)는 첫번째 아리아 자-나(제1출세간 선정)에 도달하기 위해 완전히 제거되어야 합니다. 까-마 라-가는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 세간 선정)를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억눌려지기만 합니다(vikkhambana pahana).

    • * 제1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에 도달한 소따빤나는 까-마 라-가(kāma rāga)를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따빤나는 까-마 로까(kāma loka)에 돌아오지 않습니다(브라흐마 로까에서 아나-가-미 팔라 순간에 이르고 거기서 닙바-나를 얻습니다). 따라서, 그 소따빤나는 여전히 아나-가-미(Anāgāmi)(‘na’ + ‘āgami’, 돌아오지 않음)입니다.

    • * 스리랑카에 있는, 와하라까 테-로(Waharaka Thēro)님의 일부 제자들조차도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와하라까 테-로(Waharaka Thēro)께서는 다음  짧은 법문(싱할라어)에서 이것을 분명하게 설명하셨습니다. 와하라까 테-로님의 법문은  ‘Ariya and Anariya Jhan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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