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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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 구나, 까-마, 까-마 라-가, 까-막찬다

 

원문: Three Levels of Practice 섹션의 ‘Kāma Guna, Kāma, Kāma Rāga, Kāmacchanda’ 포스트

- 2017년 11월 9일 작성; 2019년 9월 3일 개정; 2019년 10월 5일 개정

 

소개

 

1. 각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염 레벨은 까-마(kāma)에서 까-막찬다(kāmacchanda) 순서로 증가합니다.

 

 

2.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서 우리는 5가지 유형육체적 감각 입력을 경험합니다. 그 5가지는 시각 대상(루-빠 루-빠, rūpa rūpa), 소리, 냄새, 맛, 및 신체 접촉입니다. 이것들 각각은 ‘까-마 구나(kāma guna)’라고 하는 고유 성질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까-마 로-까(kāma lōka)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입니다. 그것들은 또한 바와(bhava)에 달려 있고, 그래서 사람부터 각 종류의 동물에 이르기까지 다릅니다. 아래를 참조하세요.

 

  • * 예를 들어, 우리 모두는 레몬의 신맛 또는 설탕의 단맛을 경험합니다(‘깜마 위빠-까’로 인해 어떤 사람들에게는 결함이 있을 수 있음).

  • * 우리 모두는 천둥의 불쾌함이나 음악의 유쾌함을 경험합니다.

  • * 경미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은 5가지 육체적 감각을 통해 동일한 기본 ‘성질’, 즉 ‘까-마 구나(kāma guna)’를 경험합니다. 아라한(Arahant)이 되어도 그것은 바뀌지 않습니다.

 

까-마 로-까와 2가지 브라흐마 로-까 영역

 

3. 31영역은 전생(주로 인간 영역)에서 행해진 (아비,abhi)상카-라(saṅkhāra)에 따라 다른 레벨의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주도록 당연히 존재합니다.

 

  • *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서 가장 낮은 4가지 영역(apāyā, 아빠-야-)에는 과도한 고통(괴로움)을 유발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까-마 로-까’의 상위 2가지 영역에는 [올라 갈수록]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즐거움을 주는 루-빠 루-빠(rūpa rūpa, 시각 대상), 삿다(sadda, 소리), 간다(gandha, 냄새), 라사(rasa, 맛), 및 뽓땁바(pottabba, 신체 접촉)가 있습니다.

  • * 루-빠와-짜라 브라흐마(rūpavācara Brahma, 색계 범천) 영역에서는  색계 선정의 즐거움을 가집니다. 그 범천들은 이전의 인간 생에서 까-마 라-가(kāma rāga, 감각적 욕구)를 그만두고 루-빠와-짜라 자-나(rūpavācara jhāna ,색계 선정)를 길렀습니다.

  • * 아루-빠와-짜라 브라흐마(arūpavācara Brahma, 무색계 범천) 영역에 있는 범천들은 이전의 인간 생에서 까-마 라-가(kāma rāga)와 루-빠 라-가(rūpa rāga)를 모두 그만두고 아루-빠와-짜라 자-나(arūpavācara jhāna, 무색계 선정)를 길렀습니다.

  • * 그렇기 때문에 루-빠와-짜라 브라흐마(rūpavācara Brahma, 색계 범천) 영역과 아루-빠와-짜라 브라흐마(arūpavācara Brahma, 무색계 범천) 영역에는 까-마 구나(kāma guna)가 없습니다. 그 영역에 태어난 자들은 선정의 즐거움을 위해 감각적 즐거움을 그만두었습니다.

 

‘까-마 구나’는 무엇인가?

 

4. 그러므로, 우리 까-마 로-까(kāma lōka), 즉 인간 영역에는 감각적 즐거움을 주도록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즐거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 바와(human bhava)가 ‘좋은 바와’이기 때문입니다. 데와(deva, 천신) 영역에서는 훨씬 더 많은 감각적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습니다.

 

  • * 그래서, 인간으로서 우리는 그 까-마 구나(kāma guna)를 자연스럽게 접합니다. 우리는 5가지 육체적 감각으로 즐거움을 주는 감각 대상을 자연스럽게 접합니다. 물론, 데와(deva, 천신)들은 훨씬 더 강한 까-마 구나(kāma guna)를 접합니다.

  • * 그러므로, 띨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러한 ‘즐거운 것들’에 들러붙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 것들, 특히 까-마 구나(kāma guna)가 있는 것들이 장기적인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갈망은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그 즐거움은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까-마 구나(kāma guna)가 있는 그런 것들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이용하거나 얻기 위해 부도덕한 행위를 하도록 동기를 부여합니다.

 

까-마 라-가 - ‘상깝빠 라-가’를 통해 ‘까-마 구나’에 들러붙음

 

5. 이제, 어떤 사람이 까-마 구나(kāma guna)를 가진 감각 입력에 들러붙어 감각적 생각(즉, 와찌 상카-라)을 일으키기 시작하면, 그것은 ‘까-마(kāma)’ 또는 까-마 라-가(kāma rāga)로 이어집니다. 감각적 생각을 일으키는 것은 또한 상깝빠 라-가(saṅkappa rāga)라고 합니다. 그것은 윤회로 이어지는 상깝바를 생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련 숫따(sutta)는 아래  #15에 있습니다.

 

  • * 상깝빠 라-가(saṅkappa rāga)로 생각하는 것, 즉  그런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탐욕스런 생각을 하는 것은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를 일으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 즉 관련된 신체적 행위를 하기 시작하는 것으로도 이어지기 쉽습니다.

  • * 그것은 모든 보통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소따-빤나(Sōtapanna) 성자에게는 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감각적인 생각을 일으키는 다음 단계는 까-마 라-가(kāma rāga)와 함께 일어납니다. 그 경향은 사까다-가-미(Sakadāgāmi) 단계에서 한번 더 줄어들고,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서만 사라집니다.

  • * 까-마 라-가(kāma rāga)는 강제로 제거될 수 없습니다. 까-마 라-가(kāma rāga)는 아나-빠-나(Anāpāna)와 사띠빳타-나(Satipatthāna)를 기를 때, 자연적으로 줄어듭니다.

 

6. 아나-가-미(Anāgāmi) 성자는 까-마 라-가(kāma rāga)를 제거했지만, 여전히 까-마(kāma)가 있습니다. 즉, 그것들[‘까-마 구나’가 있는 것들]을 약간 좋아합니다.

 

  • * 그러나, 아나-가-미(Anāgāmi) 성자의 까-마(kāma)는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 재탄생할 정도로 강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 아나-가-미(Anāgāmi) 성자는 까-마 구나(kāma guna)가 있는 것들에 대해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 강한 상카-라)를 일으키지 않습니다(예를 들어, 성관계를 하려는 욕구가 없을 것입니다).

  • * 아비담마적 말로 하면, 아나-가-미(Anāgāmi)는 ‘잘못된 견해를 지닌 탐욕에 기초한 찟따(citta) 4가지’를 제거하였습니다. 여전히 ‘잘못된 견해가 없는 탐욕에 기초한 찟따(citta) 4가지’는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까-마(kāma)에서 까-마 라-가(kāma rāga)로 이동할 수 있는 잠재력을 많이 잃었습니다. ‘Akusala Citta and Akusala Vipāka Citta’ 포스트의  #3을 참조하세요.

  • 아라한 단계에서만 까-마(kāma)가 완전히 없게 됩니다.

 

까-막찬다 - 까-마 라-가에 의해 눈멀게 됨

 

7. 까-마 라-가(kāma rāga)는 의도적으로 통제되지 않으면 부도덕한 행위(타인이나 자신을 다치게 함)를 범하는 수준으로 강화될 수 있습니다. 까-마 라-가(kāma rāga)가 가장 높은 까-막찬다 수준으로 올라가면 통제력을 잃기 시작합니다.

 

  • * 그런 일은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 아래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즉, 까-마(kāma)에 의해 ‘눈이 멀게’ 되어, 그 결과 까-막찬다(kāmaccandha, ‘kāma’ + ‘icca’ + ‘andha’)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잇짜(icca)는 ‘좋아함’이고, 안다(andha)는 ‘눈 멈’이고, 따라서 ‘까-막찬다’는 ‘까마(kāma)에 대한 갈망으로 눈 멈’을 의미합니다.

  • * 보통 사람이 까-마(kāma), 까-마 라-가(kāma rāga), 또는 까-막찬다(kāmacchanda)를 생성할 것인지의 여부는 감각 입력의 강도와 보편적인 조건에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알코올 섭취로 인해 마음 가짐의 질이 낮게 되고 외딴 곳에서 매력적인 여성을 보면, 까-막찬다(kāmacchanda)로 통제가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까-막짠다는 아빠-야에 재탄생으로 이어진다

 

8. 까-막찬다(kāmacchanda)로 행해진 행위는 아빠-야(apāya)에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 소따-빤나 성자에게는 까-막찬다(kāmacchanda)가 아니라 까-마 라-가(kāma rāga)만 일어납니다. 그래서 소따-빤나 성자는 아빠-야(apāya)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서는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소따-빤나 성자는 어떤 감각적 즐거움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아빠-야가-미(apāyagāmi, 사악처로 향하는) 행위를 범할 수 없습니다.

  • * 이 기본 개념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위 논리는 모든 5가지 육체적 감각 입력에 적용됩니다.

 

명확히 하기 위한 몇가지 예

 

9. 몇가지 예로서 명확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설탕은 사람들에게 달콤한 ‘까-마 구나(kāma guna)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반적 사람’부터 아라한 성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유효합니다.

 

  • * 아름다운 여성은 일반적 사람부터 아라한 성자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나 아름답게 보입니다.

  • * 일반적 사람은 그 여성을 보고 까-마(kāma)부터 까-막찬다(kāmacchanda)까지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 여성을 성폭행하는 사람은 까-막찬다(kāmacchanda)가 있습니다. 

  • * 소따-빤나(Sotāpanna) 성자는 까-마(kāma)부터 까-마 라-가(kāma rāga)까지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따-빤나 성자에게 까-막찬다(kāmacchanda)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 * 아나-가-미(Anāgāmi) 성자는 까-마(kāma, 낮은 레벨의 감각적 생각)만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나-가미 성자에게 ‘까-마 라-가 아누사야(kāma rāga anusaya)’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아-나-가미 성자는 어떤 성관계 욕구도 없습니다.

  • * 그러나, 아라한(Arahant, 아라한뜨) 성자는 까-마(kāma)도 일으킬 수 없습니다. 

 

10. 그런 여성이 보이는 것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입니다. (보통 사람부터 아라한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나, 인간계에 살고 있으면 여전히 그 여성은 아름답게 보입니다.

 

  • * (그 여성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 까-마 상깝빠(kāma Saṅkappa) 또는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가 생성됩니다. ‘와찌 상카라의 바른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러면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즉, 까-마 라-가(kāma rāga) 또는 까-막찬다(kāmaccandha)로 머리를 돌려 다시 그 여성을 바라볼 수 있는데, 그것은 새로운 깜마(kamma)입니다.

  • * 소따-빤나(Sotāpanna) 성자는 여전히 ‘까-마 라-가 아누사야(kāma rāga anusaya)’를 지니고 있으며, 이 때문에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로 돌아옵니다. 소따-빤나 성자는 미래에 인간이나 데-와(dēva, 천신)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 *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성자는 ‘소따-빤나’와 ‘아나-가미’ 단계의 중간입니다. ‘사까다-가-미’ 성자는 데-와 영역(천상계)에만 다시 태어납니다.

  • * 물론, 아나-가-미(Anāgāmi) 성자는 까-마 라-가(kāma rāga)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의 어디에도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다양한 존재에 대한 다양한 유형의 까-마 구나 

 

11. 인간계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그에 상응하는 ‘인간 상카-라’를 길렀기 때문에 비슷한 까-마 구나(kāma guna)를 지닙니다. 우리 모두는 같은 것을 좋아하고, 우리의 다양함은 그 ‘주 상카-라(인간 상카-라)’ 유형의 차이로 인한 것입니다.

 

  • * 그러나, 동물의 ‘까-마 구나(kāma guna)’는 인간에 비해 훨씬 더 다를 수 있습니다. 동물들 중에도 많은 다양함이 있습니다.

  • * 돼지는 대변을 포함하여 [우리에게는] 매우 달갑지 않은 것들을 먹습니다. 호랑이나 사자는 날고기를 즐겨 먹습니다. 소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고 풀을 좋아합니다. 다양함이 분명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들은 인간으로(인간일 때) 길러온 상카-라(saṅkhāra)에 부합합니다. 더구나, 각 바와(bhava) (그리고 자-띠_jāti)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를 통한 그런 상카-라(saṅkhāra)에 부합합니다. 여러분 중 일부는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중에 논의하겠습니다.

  • * 브라흐마(Brahma, 범천) 영역에는 까-마 구나(kāma guna)가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감각적 즐거움을 갈망하는 대신에 선정의 즐거움(jhānic pleasure)을 선호하고 길러왔기 때문에 그 영역에 태어났습니다.

 

12. 그런 점에서, 인간이 생성한 (아비)상카-라는 높은 자와나(javana) 힘이 있으며 따라서 다양한 바와(bhava)와 자-띠(jāti)로 이어진다는 것을 우선  명심하세요. 동물은 불행한 탄생으로 인해 높은 자와나(javana) 힘을 가진 찟따(citta)를 생성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중요한 점입니다.Javana of a Citta – The Root of Mental Power’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대부분의 데-와(dēva, 천신)들도 그들의 까-마(kāma)를 즐기고 흐름에 따라 가며 (가능한 동안) 그것들을 즐깁니다. 브라흐마(Brahma)들 역시 그 탄생과 함께 오는 선정의 즐거움(jhānic pleasure)을 즐깁니다.

  • * 적어도 소따-빤나(Sotāpanna) 성자가 된 데-와/브라흐마(dēvas/Brahmā)만이 막가 팔라(magga phala)를 위해 노력하는 동기부여가 되어 있습니다.

 

‘아비상카-라’만이 미래 재탄생으로 이어진다

 

13. 그러므로,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두 가지 유형 모두)를 기를 수 있고 미래에 ‘좋은 탄생 또는 나쁜 탄생’을 위한 조건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인간일 때입니다. 그것은 악간나 숫따(Agganna Sutta)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입니다.

 

  • * 우리가 보는 모든 동물은 처음에 인간이었습니다. 한없이 먼 과거에 ‘나쁜 아비상카-라(bad abhisaṅkhāra)’를 통해 생성된 ‘나쁜 가띠(bad gati)’를 가진 사람들은 지구가 진화함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동물로 다시 태어 났으며, 동물의 삶을 위한 여건이 조성되었습니다.

  • * 악간나 숫따(Agganna Sutta)에 대한 소개는 ‘Buddhism and Evolution – Aggañña Sutta (DN 27)’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5가지 유형의 까-마 구나

 

14. 이제 관련이 있는 핵심 숫따를 간단히 논의해 보겠습니다. ‘닙베디까 숫따, Nibbedhika Sutta, AN 6.63’ 에는 다섯가지 까-마 구나(kāma guna)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빤찌메, 빅카웨, 까-마구나-짝쿠윈네이야- 루-빠 잇타- 깐따- 마나-빠- 삐야루-빠- 까-무-빠상히따- 라자니-야-, 소따윈네이야- 삿다- … 가-나윈네이야- 간다- … 지와-윈네이야- 라사- … 까-야윈네이야- 폿탑바- 잇타- 깐타- 마나-빠- 삐야루-빠- 까-무-빠상히따- 라자니-야-. 아삐 짜 코, 빅카웨, 네떼 까-마- 까-마구나-..”

(“..Pañcime, bhikkhave, kāmaguṇā—cakkhuviññeyyā rūp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sotaviññeyyā saddā … ghānaviññeyyā gandhā … jivhāviññeyyā rasā … kāyaviññeyyā phoṭṭhabb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Api ca kho, bhikkhave, nete kāmā kāmaguṇā..”).

 

번역: “..박쿠들이여, 관능 특성(까-마 구나, kāma guna)을 지니는 5가지 유형이 있다. 5가지는 어떤 것인가? 형색(형태)은 눈을 통해 인식가능하며, 기분좋고, 즐겁고, 매력적이고, 호감이 가고, 욕구를 유발하고, 유혹한다. 소리는 귀를 통해 인지가능하고, … 향기는 코를 통해 인지가능하고, …  은 혀를 통해 인지가능하고, …  신체 감각은 신체를 통해 인지가능하며, 기분좋고, 즐겁고, 매력적이고, 호감이 가고, 욕구를 유발하고, 유혹한다. 그러나, 빅쿠들이여, 이것들은 관능(kāma)이 아니다..”

 

  • * 필자는 ‘구나(guna)’를 특성(characteristic)으로 번역했으나, 성질(quality)로 번역해도 문제없습니다. 

 

‘까-마’는 ‘까-마 구나’와는 다르다

 

15. 그 다음, 숫따(sutta)에서 까-마(kāma)가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상깝빠 라-고- 뿌리삿사 까-모-, 네떼 까-마- 야-니 찌뜨라-니 로-께-..”

(“Saṅkappa rāgō purisassa kāmō, Nete kāmā yāni citrāni lōkē..”).

 

번역: “사람의 까-마(kāma)는 이 세상에 있는 즐거운 것들(찌뜨라-니 로-께-, citrani lōkē)에 들러붙게 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상깝빠 라-가, saṅkappa rāga)이다. 세상에 있는 그 아름다운 것들은 까-마(kāma)가 아니다.”

여기서, 찌뜨라-니 로-께-(citrani lōkē)는 ‘유쾌한 것들로 가득찬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강조점: 까-마 로-까(kāma lōka)에는 즐겁고, 유쾌하고, 유혹적인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단지 그것들을 경험하는 것은 까-마(kāma)가 아닙니다. 진정한 본질을 이해 한 자는 그것들에 들러붙지 않습니다. 그러나 까-마 로-까(kāma lōka)에 있는 것들의 진정한 아닛짜 본질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자들은 그것들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들은 그것들을 갈망하고 생각함으로써(까-마 상깝빠_kāma Saṅkappa, 또는 와찌 상카-라_vaci saṅkhāra를 생성함), 만족을 얻습니다(까-마 앗사-다_kāma assāda). 그것이 까-마(kāma)입니다.

 

  • * 의식적인 생각 또는 자기 자신에게 말하기는 와찌 상카-라(saṅkhāra)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와찌- 상카-라의 바른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와찌 상카-라를 행하는 자는 상깝빠 라-가(saṅkappa rāga)가 있습니다. 

  • * 그런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는 그다음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로 이어질 수 있으며, 여기서 사람들은 (‘까-마 라-가 아누사야_kāma rāga anusaya’가 있다면)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행위를 합니다.

  • * 어떤 사람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를 범하기도 합니다(그러면, 그것은 ‘까-막찬다_kāmacchanda’가 됩니다).

 

‘상깝빠 라-가’는 ‘까-마’다

 

16. 그래서,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 있는 모든 자는 까-마 구나(kāma guna)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 있는 존재의 자연적 결과입니다. 그것들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상깝빠 라-가(saṅkappa rāga)로 즐김에 따라 까-마(kāma) 수준으로 높아지는 경향입니다. 까-마(kāma)가 더 높은 수준이 되면, 그것이 ‘까-마 라-가(kāma rāga)’입니다.

 

  • * 그 갈망은 진정한 본성(아닛짜, 둑카, 아닛짜)에 대한 이해, 즉 그것들이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됨으로써 포기하게 됩니다. ‘앗사-다가 어떻게 둑카로 이어지는가’ 포스트와, ‘앗사-다, 아-디-나와, 닛사라나 - 소개’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 도달한다는 것은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의 위험함을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들을 갈망하는 한, 여전히 그것들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소따-빤나 성자는 그 감각적 즐거움을 얻기 위해 부도덕한 행위는 결코하지 않습니다.

  • * 소따-빤나 성자가 그런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에서 벗어나려면, 위 두 포스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까-마 앗사-다’의 위험함을 숙고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수바 바-와나-(asubha bhāvanā)’입니다.

 

‘아수바 바-와나-’는 무엇인가?

 

17. 많은 사람들이 ‘아수바 바-와나-(asubha bhāvanā)를 썩은 시체와 같은 역겨운 것들에 대해 숙고하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명상은 단지 빠띠가(paṭigha), 즉 ‘마음 속의 싫어함(마찰감)’으로만 이어질 뿐입니다.

 

  • * 그 대신, 미래 고통(괴로움)의 원인이 그 즐거운 감각적인 것들에 들러붙게 된 것 때문이라는 사실을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까-마 구나(kāma guna)가 있는 것들의 결실없는(아수바) 성질(특성)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짜 아수바(해로운) 것은 이 까-마 로-까(kāma lōka)에 있는 것들, 즉 눈을 통해 즐겁고, 귀를 통해 즐겁고, …. 몸(육체)을 통해 즐거운 것들입니다. ‘앗사-다가 어떻게 둑카로 이어지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므로, 소따-빤나(Sotāpanna) 단계에 도달하기 전에는 아수바 바와-나(asubha bhāvanā)를 바르게 하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그때서야(소따-빤나 단계가 되어서야) 비로소 감각적 즐거움을 갈망하는 것의 위험함을 보기 시작합니다.

  • * 그러나, 소따-빤나 단계를 향해 노력하는 중에도 감각적 즐거움을 줄이는 것은 언제나 좋습니다. 그것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더 심오한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합니다.

  • * 극도의 감각적 즐거움은 마음에 짐이 됩니다. 그것들은 지금 바로 피할 수 있습니다. ‘사띠빳타-나 숫따 - 이 삶의 괴로움과의 연관성’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모든 것을 [절제하여] 적당히 하면, 자연히 더 단순하고 건강하며 평화로운 삶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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