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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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 구나 -  들러붙음(땅하-)의 기원

 

원문: Dhamma and Science 섹션의 ‘Kāma Guṇa – Origin of Attachment (Tanhā)’ 포스트(Is There a ‘Self’ 섹션으로 옮김)

 

까-마 구나(kāma guṇa)는 무지한 마음이 감각 입력(시각 대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담마-)에 할당하는 ‘잘못된, 마음이 만든 특성’을 말합니다. 까-마 구나(kāma guṇa)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세상 것에 들러붙습니다(땅하-, taṇhā). 아라한의 마음은 까-마 구나를 생성하지 않습니다.

 

2019년 10월 6일 작성; 2022년 10월 9일 개정; 2024년 1월 19일 재작성

 

대부분의 웨다나-는 마음이 만든 것이다

 

1.  ‘감각 사건에서 위빠-까 웨-다나-와 삼팟사 자- 웨-다나-’ 포스트에서, 우리는 먼저 웨다나-(vedanā)를 위빠-까 웨다나-(수카, 둑카, 및 아둑카마수카 웨다나-)와 삼팟사 자- 웨다나-(소마낫사와 도마낫사 웨다나-)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습니다. 후자의 범주는 마음이 만든(mind-made) 것이고 아라한에게는 없습니다

 

  • * 수카와 둑카 웨다나-는 육체에서만 느껴지는 데, 그것들은 사-리-리까 웨다나-(sārīrika vedanā) (‘sārīra’는 ‘육체’를 의미함)입니다. 사-리리까 웨다나-는 또한 ‘중립’, 즉 아둑카마수카 웨다나-(adukkhamasukha vedanā)일 수 있습니다. (아라한을 포함하여) 육체와 함께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그것들을 경험하는데, ‘Sakalika Sutta (SN 1.38)’에서는 특히 붓다께서 부상을 당하여 느끼신 육체 고통을 묘사하기 위해 사-리-리까 웨다나-(sārīrika vedanā)가 사용되었습니다. 

  • * 시각 대상, 소리, 맛, 냄새 및 기억(담마-)이라는 다른 모든 감각 입력은 아둑카마수카 웨다나-로 이어지기만 합니다.

  • * 그러나, 그 세 가지 유형의 초기 웨다나-에 기반하여, 마음은 ‘마음이 만든(mind-made)’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jā-vedanā)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 * 우리는 최근에 그런 ‘마음이 만든’ 삼팟사 자- 웨다나의 기원이 ‘왜곡된’ 산냐-(saññā)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시각 대상, 소리, 맛, 냄새, 및 기억이라는 감각 입력은 호감가는 또는 혐오하는 ‘왜곡된’ 산냐-를 생성하며, 마음은 그런 산냐-에 들러붙어 삼팟사 자- 웨다나-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 * 예를 들어, ‘설탕의 달콤함’과 ‘배설물의 나쁜 냄새’는 ‘왜곡된 산냐-’고 웨다나-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삼팟사 자- 웨다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더욱이, 사-리-리까 웨다나-(sārīrika vedanā)는 또한 마음이 만든 삼팟사 자- 웨다나-(mind-made samphassa-jā-vedanā)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상의 경우에, 육체적 고통 외에 보통 그 부상에서 회복하는 것을 근심할 때 정신적 고통이 있습니다.

 

삼팟자 자- 웨다나-는 ‘왜곡된 산냐-’에 그 기원이 있다

 

2. ‘왜곡된 산냐-’의 개념은 ‘세 단계 실천’ 섹션의 ‘인식(산냐-) 이해를 통한 소따빤나 단계(Sotapanna Stage via Understanding Perception (Saññā))’ 서브섹션에 자세히 논의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설탕의 달콤함’, ‘사람의 매력’, ‘장미의 냄새’ 등은 수카 또는 둑카 웨다나-가 아니라는 것을 보였습니다. 그것들은 ‘왜곡된 산냐-’입니다.

 

  • * 까-마 로까(kāma loka)에 태어난 모든 이들은 주어진 감각 대상에 대해 특정한 ‘까-마 산냐-(kāma saññā)’를 자동적으로 생성합니다. 따라서, 그런 ‘왜곡된 산냐-(distorted saññā)’는 보통 사람(뿌툿자나)뿐만 아니라 아라한에게도 일어납니다.

  • * 그러나, 뿌툿자나의 마음은 자동적으로 그런 ‘왜곡된 산냐-’에 들러붙지만, 아라한의 마음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 * 뿌툿자나의 마음이 그런 ‘왜곡된 산냐-’에 들러붙을 때, 그것에는 즉시 ‘마음이 만든 웨다나-, 즉 삼팟사 자- 웨다나-가 뒤따릅니다.

  • * 이 순차적(그리고 빠른) 들러붙음 과정은 여러 포스트에 자세히 논의되어 있는데, 그 마지막 포스트는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입니다.  

 

깜마 축적의 단계

 

3. 아-람마나(ārammaṇa)에 들러붙음은 '한 번(one-shot)'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외부 대상을 볼 때 우리 눈은 (카메라처럼) 한 번에 이미지를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으로 포착하는데, 각각은 불완전한 그림만 제공합니다. 그 과정은 ‘시각은 일련의 스냅사진 - 영화 비유’와 ‘보는 것은 일련의 스냅사진’ 포스트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 * 그러나, 그것은 너무 빨리 일어나므로 우리가 ‘한 번(one-shot)’에 대상을 보는 것같이 느낍니다. 붓다께서는 그 과정을 훨씬 더 빠른 시간 척도로 분석하셨습니다. 그것은 (수십억분의 1초 내에 일어나는) ‘초고속 과정’이며 오직 붓다의 마음으로만 식별할 수 있습니다. 먼저 붓다께서 여러 경(sutta)과 아비담마(Abhidhamma)에서 묘사하신 시간 순서를 살펴보겠습니다. 그것들은 최근의 과학적 발견과 호환되는 자기 일관성 있는 그림(self-consistent picture)을 제공합니다.

  • * 그 단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까-마 다-뚜(kāma dhātu)에서 까-마 산냐-(kāma saññā)로, 그리고 까-마 상깝빠(kāma saṅkappa)로, 그리고 까-막찬다(kāmacchanda)로, 그리고 까-마 빠릴라-하(kāma pariḷāha)로, 그리고 까-마 빠리예사나-(kāma pariyesanā)로 진행하면서, 마음, 말, 그리고 몸을 통해 깜마 축적, 즉 마노 깜마, 와찌 깜마, 및 까-야 깜마를 축적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이 단계들은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 포스트에서 아래 도표를 사용하여 간략히 논의했습니다. 

다운로드/인쇄:Purāna and Nava Kamma – 2(3)

 

깜마 축적의 단계는 아라한에게는 자동적으로 멈춘다

 

4. 도표는 마음이 아-람마나를 받을 때 ‘까-마 다-뚜’ 단계에서 시작함을 보여줍니다(주: 필자는 두 가지 유형의 아-람마나에 대해 ‘윈냐-나 확장’의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 이전 도표를 개정하였습니다.) 깜마 축적의 순서는 ‘Sanidāna Sutta (SN 14.12)’에 있으며 ‘우빠야와 우빠-다-나 ㅡ 들러붙음의 두 단계’ 포스트에서 상세히(특히 시작 단계) 논의했습니다. 필자는 그 포스트를 다시 읽어보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그것을 게시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아마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순서는: 

 

  • * “Kāma dhātuṁ, bhikkhave, paṭicca uppajjati kāma saññā, kāma saññaṁ paṭicca uppajjati kāma saṅkappo, kāma saṅkappaṁ paṭicca uppajjati kāmacchando, kāmacchandaṁ paṭicca uppajjati kāma pariḷāho, kāma pariḷāhaṁ paṭicca uppajjati kāma pariyesanā.” 즉 “까-마 다-뚜(kāma dhātu)에 들러붙음은 까-마 산냐-(kāma saññā)로 이어지고, 까-마 산냐-(kāma saññā)에 들러붙음은 까-마 상깝빠(kāma saṅkappa)로 이어지며, 까-마 상깝빠(kāma saṅkappa)에 들러붙음은 까-막찬다(kāmacchanda)로 이어지고.. 등으로 까-마 빠리예사나-(kāma pariyesanā)로 이어진다.”입니다.

  

5. 가리켜 보여야 할 결정적인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까-마 상깝바(kāma saṅkappa)’는 ‘까-마 산냐-(kāma saññā)’ 단계 후에만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Nibbedhika Sutta (AN 6.63)’에 명시된 바와 같이, 까-마 라-가(kāma rāga)는 까-마 상깝빠(kāma saṅkappa)와 함께만 일어나는데, “Saṅkappa rāgo purisassa kāmo”, 즉 “까-마 라-가는 까-마 상깝빠로 정의된다(마노 상까-라는 라-가로 오염된다)”입니다.  

 

  • * 그런 마노 상카-라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수십억분의 1초 내에 일어납니다. ‘까-마 라-가 아누사야/상요자나(kāma rāga anusaya/samyojana)’가 그대로 있다면 까-마 라-가가 일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 * 아라한과 아나-가-미는 ‘까-마 라-가 아누사야/상요자나’를 제거했으므로, 그 두번째 단계는 그들에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마음은 까-마 산냐- 단계를 넘어서 나아가지 않습니다. [넘어서는] 나머지 단계는 아나가미 단계 아래에 있는 이들에게만 일어납니다.

 

6. 아라한의 마음이 까-마 산냐- 단계를 넘어서 나아가지 않는 이유는 ‘산냐- ㅡ 우리의 모든 생각은 왜곡된 산냐-와 함께 일어난다’ 포스트에서 다른 방식으로 논의했습니다. 그 포스트의 #9 ~ #12를 참조하세요. 다음은 간략한 개관입니다.

 

  • * ‘Upavāṇasandiṭṭhika Sutta (SN 35.70)’는 “Idha pana, upavāṇa, bhikkhu cakkhunā rūpaṁ disvā rūpappaṭisaṁvedī ca hoti rūparāgappaṭisaṁvedī ca” 라고 하는데, “우빠와나여, 눈으로 시각 대상을 보고, 또한 그 시각 대상에 대해 갈망을 생성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입니다.

  • * 구절에서, ‘rūpappaṭisaṁvedī’는 ‘rūpa paṭisaṁvedī’를 의미하고, ‘rūparāgappaṭisaṁvedī’는 ‘rūpa rāga paṭisaṁvedī’를 의미합니다. (들러붙음 없이, 그러나 여전히 ‘왜곡된 산냐-’와 함께) 단지 보는 것은  ‘rūpa paṭisaṁvedī’와 함께 발생하고, 들러붙음은 rūpa rāga paṭisaṁvedī’와 함께 발생합니다

  • * 따라서, 아라한은 ‘rūpa paṭisaṁvedī’ 단계만 거치고, ‘rūpa rāga paṭisaṁvedī’ 단계는 거치지 않습니다.  아라한/아나-가-미 단계 아래의 빅쿠는 위 구절의 단계를 모두 거칩니다. 여기서 루빠(rupa)는 다섯가지 모든 유형의 루빠가 까-마 로까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고, ‘루빠 로까’를 칭하지 않는다는 것에 유의하세요.

 

뿌툿자나의 경우에 깜마 축적의 단계

 

7. #3과 #4에서 처음 두 단계는 감각 입력을 받을 때, 즉 첫 찟따 위띠에서 뿌툿자나의 마음에 동시에 일어납니다. 따라서, ‘Sanidāna Sutta (SN 14.12)’의 “Kāma dhātuṁ, bhikkhave, paṭicca uppajjati kāma saññā” 단계에서, ‘루빠빠띠상웨디-(rupapaṭisaṁvedī)’과 ‘루-빠 라-가 빠띠상웨디-(rūpa rāga paṭisaṁvedī)’는 ‘까-마 라-가 아누사야/상요자나(kāma rāga anusaya/samyojana)’가 있는 모든 이들에게 모두 일어납니다.

 

 

‘윈냐-나 확장’의 두 단계

 

8.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음(윈냐-나)의 오염이 증가하는 것은 (위 도표에서 두 개의 ‘원뿔’로 나타낸) 두 개의 ‘확장’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i.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에서, 오염은 느리게 일어나는데, 우리는 아직 감각 입력조차 인지하지 못합니다.

ii. 오염은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에서 더 강해지며, 거기서 깜마 축적은 (자와나 찟따와 함께) 의식적으로 일어납니다.

  • * 확장의 둘째 단계는 그것이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마음성향(마음가짐)으로 의식적으로 아-람마나에 들러붙는 경우에만 일어납니다. 그것이 ‘까-마 구나(kāma guṇa)’가 작용하는 곳입니다.

  • * 먼저, 위 도표를 사용하여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에서 ‘바힛다 윈냐-나(bahidda viññāna)’와 ‘앗잣따 윈냐-나(ajjhatta viññāna)’가 일어나는 것을 명확히 하겠습니다.

 

‘바힛다 윈냐-나’와 ‘앗잣따 윈냐-나’의 일어남

 

9.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뿌툿자나의 마음은 맨 처음부터 까-마 로까(kāma loka)의 모든 감각 입력(아-람마나)에 들러붙습니다. 그 과정의 시작에서, 오염된 윈냐-나(defiled viññāna)는 바힛다 윈냐-나((bahidda viññāna)”로 일어나고 ‘마노 깜마(mano kamma)’인 ‘까-마 상깝빠(kāma saṅkappa)’만을 통해 ‘앗잣따 윈냐-나(ajjhatta viññāna)’로 강화됩니다. 이 단계에서는 자와나 찟따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 * ‘약한 들러붙음’의 처음에는 ‘바힛다 윈냐-나(bahidda viññāna)’와 함께 일어난다고 합니다.

  • * ‘kāma saññaṁ paṭicca uppajjati kāma saṅkappo’라는 다음 단계에서, 그 윈냐-나는 ‘앗잣따 윈냐-나(ajjhatta viññāna)’ 단계에서 조금 더 강해집니다.

  • * ‘앗잣따 윈냐-나(ajjhatta viññāna)’ 단계 직후에, 마음은 ‘외부 루빠의 그 버전’에 들러붙기 시작합니다(‘cakkhuviññeyyā rūpa’는 ‘짝쿠윈냐-나에 의해 준비된 루빠’를 의미함).

 

까-마 구나와 함께 ‘나와 깜마’ 단계로 전환

 

10. 만일 그 ‘짝쿠윈네이야- 루빠(cakkhuviññeyyā rūpa)’가 마음을 유혹한다면, 그것은 ‘마음이 만든 루빠’가 ‘까-마 구나(kāma guna)’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지, 즉 그것이 ‘충분히 매력적’인지를 조사할 것입니다. ‘까-마 구나’는 외부 대상에 있지 않다는 점에 유의하세요.

 

  • * ‘Kāmaguṇa Sutta (AN 9.65)’에서는  “Pañcime, bhikkhave, kāmaguṇā.”라고 합니다. 그것을 “다섯 가지 까-마 구나-가 있다.”라고 번역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 * 여기서, ‘pañca kāma guṇa’는 ‘다섯 가지 유형의 구나(guṇa)’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다섯은 까-마 로까에서 가능한 다섯 가지 유형의 까-마(다섯 가지 육체 감각과 함께 하는 감각적 즐거움)를 의미합니다. 여섯 가지 유형의 ‘구나(guṇa)’가 있습니다.

  • * 그 여섯 가지 유형은 “잇타-(iṭṭhā), 깐따-(kantā), 마나-빠-(manāpā), 삐야루-빠-(piyarūpā), 까-무-빠삼히따-(kāmūpasaṁhitā), 라자니-야-(rajanīyā)”입니다.

 

11. 까-마 구나(kāma guṇa)의 개념과 여섯 가지 유형은 ‘까-마 구나, 까-마, 까-마 라-가, 까-막찬다’ 포스트의 #10 ~ #13에 논의되어 있으며 아래에 인용되어 있습니다.

 

  • * 첫째 것인, ‘잇타-(iṭṭhā)’는 ‘충족에 대한 기대(희망)’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인식하는 ‘이 세상의 닛짜(nicca) 특성’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아닛짜 특성이며, 따라서 이 ‘잇타-(iṭṭhā) 특성’은 참된 본질에 대한 무지에 기반합니다.

  • * 깐따-(kantā), 마나-빠-(manāpā), 및 삐야루-빠-(piyarūpā)는 유사한 의미를 표현하는데, 매력적이고, 호감을 주고, 즐겁고(그리고 잇타- 특성을 강조함)입니다. 다섯 번째인  ‘까-무-빠삼히따-(kāmūpasaṁhitā)’는 ‘감각 욕망을 유발하는’을 뜻합니다. 마지막 것인, ‘라자니-야-(rajanīyā)’는 ‘오염/번뇌를 생성하고’ 따라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부도덕한 행위를 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 * 마지막 두 가지는 ‘까-마 구나(kāma guṇa)’가 주로 ‘까-마 로까(kāma loka)’를 지칭한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까-마 구나는 ‘앗잣따 윈냐-나’ 이후에 등장한다

 

12. ‘앗잣따 윈냐-나’ 단계에서, 특정 사람의 ‘가띠’가 나옵니다. ‘앗잣따(ajjhatta)’는 ‘자신의 것’을 의미합니다

 

  • * 바힛다 윈냐-나(bahidda viññāna)는 까-마 라가 아누사야/상요자나로 촉발되지만, 앗잣따 윈냐-나(ajjhatta viññāna)는 또한 그때 자신의 가띠에 따릅니다.

  • * 게다가,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조건에 따라 ‘까-마 가띠(kāma gati)’는 다른 수준으로 나타납니다. 에로틱 영화를 보는 동안 ‘까-마 가띠(kāma gati)’는 강화되지만 담마를 듣거나 읽는 동안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 * 감각 입력(아-람마나)을 위해 생성된 ‘까-마 구나(kāma guna)의 강도에 따라 윈냐-나(viññāna)는 더욱 오염됩니다. 이것은 위 도표에서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를 나타내는 ‘두 번째 원뿔’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마음은 ‘나와 깜마’ 단계에서 의식적으로 깜마를 축적하기 시작한다

 

13.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마음이 만든 루빠’에 들러붙음은 마음에 일어나는 ‘까-마 구나(kāma guna)’와 ‘까-막찬다(kāmacchanda)’(또는 까-마 찬다, kāma chanda)와 함께 강화됩니다

 

  • * 그것은 사람이 강하게 들러붙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제 마음은 ‘그것을 더’ 즐기려는 갈망이 충족될 때까지 ‘동요 상태’(까-마 빠릴라-하, kāma pariḷāha)에 있습니다. 따라서, 그 갈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방법을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즉 그 사람은 까-마 빠리예사나(kāma pariyesana)에 들어갑니다.

  • * 그것이 말과 행동으로 깜마를 행하기 시작하는 때인데, 즉, 이제 그 사람은 마노, 와찌, 및 까-야 깜마에 완전히 몰입합니다.

 

예(Example)

 

14. 예를 들어, 사람 X가 친구 집에 식사하러 가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X는 이전에 맛보지 못한 음식을 제공받고 그것이 아주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 * 음식의 맛은 까-마 산냐-(이 경우에, ‘라사 산냐-’)며, 그것은 자동적으로 까-마 상깝빠(kāma saṅkappa)를 촉발시킵니다(‘바힛다 윈냐-나’를 생성하는 첫 단계). 까-마 상깝빠가 더 일어남에 따라, 그 지와- 인드리야(jivhā indriya)는 두 번째의 앗잣따 윈냐-나(ajjhatta viññāna)에서 지와- ‘아-야따나(jivhā āyatana)’가 됩니다. 위 도표를 참조하세요.

  • * 그 요리가 유혹적이라면(즉, 그것이 강한 ‘까-마 구나’를 촉발시킨다면), X의 마음은 ‘맛있는 음식’에 의해 그의 마음 속에 생성된 ‘라사 루빠(rasa rupa)’에 들러붙을 것입니다. 그것이 도표에서 ‘까-마 찬다(kāma chanda)’ 단계입니다.

  • * 이제, X는 음식에 대해 더 많이 알기를 원하고 친구에게 그것을 만드는 방법이나 구입하는 곳을 묻기 시작합니다. 그것들은 까-야, 와찌, 및 마노 깜마로 이어지는 나머지 단계들을 수반합니다.

  • * X가 그 음식에 정말로 들러붙으면, 다음 날에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거나 자신이 그것을 만들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와찌 상카-라와 까-야 상카-라를 수반합니다. 그렇다면 그의 마음속에 일어난 윈냐-나(다시 음식을 즐기는 기대)가 강했습니다.

 

까-마 라-가는 ‘마음이 만든 웨다나-’에 들러붙는 것을 의미한다

 

15. 인간 세상에는 유혹적인 시각 대상, 소리, 맛, 냄새, 및 육체적 편의 설비가 풍부합니다. 그것들은 까-마(kāma)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이 육체와 함께 태어남에 의해 생성된 까-마 구나(kāma guna)인데, 이 태어남은 우리가 과거에 그런 몸을 갈망했기 때문에만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바와 빳짜야- 자-띠(bhava paccayā jāti)’가 어떻게 현재 육체의 태어남으로 이어졌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위빳사나-(vipassanā)입니다!

 

  • * 이 육체는 그 ‘왜곡된 산냐-’를 제공하는 업 에너지에 의해 생성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아라한조차도 ‘맛있는 음식의 달콤함’을 맛봅니다. 그러나 아라한의 마음은 그 왜곡된 산냐-가 어떻게 일어나고 그것이 ‘신기루’ 또는 ‘마술쇼’라는 것을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붓다께서는 ‘Pheṇapiṇḍūpama Sutta (SN 22.95)’에서 산냐-를 신기루라고 하셨고 윈냐-나를 마술사라고 하셨고, 우리는 그것을 ‘소따빤나 단계와 왜곡된/오염된 산냐-’ 포스트에서 논의했습니다.

  • * 그러므로, 까-마 상깝빠(kāma saṅkappa)를 생성하고 바힛다 윈냐-나(bahidda viññāna)에 이르는 그 다음 단계는 아라한에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 * 까-마 로까(kāma loka)에서 해방되지 않은 모든 이들은 바힛다 윈냐-나(bahidda viññāna)와 앗잣따 윈냐-나(ajjhatta viññāna)를 생성하는 첫 단계에 이릅니다. 즉,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 단계를 거칩니다.

  • * 네와 깜마(nava kamma)의 둘째 단계는 아-람마나(ārammaṇa)가 그 ‘마음이 만든 루빠’에 대한 의식적 들러붙음을 촉발시킬만큼 충분히 강할 경우에만 시작됩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표준 빠띳자 사뭅빠-다’ 과정은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 단계에서 시작되어, ‘윈냐-나의 빠르고 강한 확장’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위의 도표를 참조하세요.

 

까-마 라-가를 제거하기 위한 첫 단계는 까-마 구나를 제거하는 것이다  

 

16. 먼저, 사람들은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가 시작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각적 감각 사건’ 또는 ‘마음을 즐겁게 하는 아-람마나’에 들러붙지 않음으로써 까-마 구나를 제거해야 합니다.

 

  • * ‘Yogakkhemi Sutta (SN 35.104)’에서는 붓다께서는 까-마 구나(kāma guṇa)를 뿌리에서 잘라냈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그것은 아라한과 아나-가-미에게도 해당됩니다.

  • * 그것은 마음을 즐겁게 하는 모든 아-람마나는 #15에 설명된 것처럼 ‘가짜’ 또는 ‘마술쇼’라는 것을 깨달을 때 더 쉬워집니다.

 

관련 포스트들

 

17. 모든 관련된 포스트들은 ‘세 단계 실천’ 섹션의 ‘인식(산냐-) 이해를 통한 소따빤나 단계(Sotapanna Stage via Understanding Perception (Saññā))’ 서브섹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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