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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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마-’와 ‘상카-라’의 차이


원문: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Difference Between Dhammā and Sankhāra' 포스트

- 2017년 3월 22일; 2017년 4월 17일; 2017년 11월 5일; 2018년 7월 19일; 2019년 8월 9일 개정


상카-라(sankhāra), 상까따(sankata) 및 담마-(dhammā)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기에 제시된 설명 중 일부는 현재 테라와다의 많은 텍스트에 나와있는 의미와 일치하지 않지만, 삼장(Tipitaka)과 완벽하게 호환됩니다.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있으면 연락해 주세요(lal@puredhamma.net).


  • * 첫째, ‘담마(dhamma)'라는 용어가 다른 문맥에서 다소 다른 것을 의미 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이 극히 중요합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는 ‘붓다의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 * 담마-(dhammā, 끝이 a의 장음)는 주로 마음에 의해 생성된 에너지를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 그것은 또한 깜마 비자(kamma bija, 업 씨앗)라고 불립니다.

  • * 그러나 ‘삽베 담마- 아낫따-(sabbe dhammā anattā)’에서 삽베 담마-(sabbe dhammā)에는 31영역 이 세상에 속하는 모든 현상이 모두 포함됩니다. 닙바-나(Nibbāna)는 이 세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 * 포스트에는 다른 포스트로 많은 링크를 걸어 놓았습니다. 링크된 포스트를 반드시 읽을 필요는 없지만, 더 많은 정보나 설명이 필요하다면 읽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확실하게 개념이 잡힐 것입니다.


1. 담마빠다(Dhammapada, 법구경) 게송 277, 278 및 279에서, 상카-라(sankhāra)와 담마-(dhammā)라는 용어에 혼란이 있습니다. 그 세 게송의 첫 행은 각각 다음과 같습니다.


  • * (게송 277의 첫 행에는) ‘삽베- 상카-라 아닛짜-(Sabbē sankhāra aniccā)’가 있습니다. ‘모든 상카-라(sankhāra)는 아닛짜(anicca)다’는 뜻이며, [이 세상] 것들은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가 만족하는 대로 유지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더 적절하게 말하면,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 그러한 것들을 얻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것은 쓸데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 * (게송 278의 첫 행에는) ‘삽베- 상카-라 둑카-(Sabbē sankhāra dukkhā)’가 있으며, ‘모든 상카-라(sankhāra)는 결국 둑카(dukkha, 괴로움)로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 * (게송 279의 첫 행에는) ‘삽베- 담마- 아낫따-(Sabbē dhammā anattā)’가 있으며, ‘모든 담마-(dhammā)는 아낫따(anatta), 즉, ‘종국에는 실속이 없다(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2. 상카-라(Sankhāra)는 우리의 의도, 기대 및 꿈을 바탕으로 한 ‘생각하기’와 ‘말하기’와 ‘행동하기’입니다. 상카-라(sankhāra)는 사실 우리의 현재 생각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극히 중요합니다.


  • * 상카-라(sankhāra)는 어떤 행동, 말, 단지 생각으로 이어지는 세 가지 유형 모두를 포함합니다. 이 세 가지 유형은 각각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 및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입니다. 이 세 가지 유형은 모두 찟따(citta, 마음 또는 생각)에서 일어납니다.

  • * 우리는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로 누군가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마시기 위해 거실에서 부엌으로 걸어간다면, 그것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업의 과보)를 일으키지 않는 행이며, 업의 면에서 중성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욕하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강한 상카-라, 즉 아비상카-라(abhisankhāra)이며,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 * 상카-라(sankhāra)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은 ‘상카-라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를 보세요.


3. 우리가 생성하는 그 상카-라(sankhāra) 또는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는 비활성체 또는 생명체 형태의 발생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상까따(sankata)의 발생으로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 * 누군가 집을 만들고자 하면, 다음과 같은 단계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일에 대해 세심하게 생각하고(마노- 상카라, manō sankhāra, 및 와찌 상카-라, vaci sankhāra), 다른 사람과 그 일에 대해 의견을 나눌(와찌 상카-라, vaci sankhāra) 수 있습니다. 그 일을 하려고 결정한다면, 행동을 취하여(까야 상카-라, kāya sankhāra) 집이 생기게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 상카-라(sankhāra)가 집을 생기게 했고, 그렇게 만든 집이 상까따(sankata)입니다.


4. 우리가 몸(즉, 몸의 움직임)으로 무언가를 할 때, 그것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에 의해 제어됩니다.


  • * 우리는 로봇이 아닙니다(대부분의 하등 동물은 로봇과 같습니다). 우리는 생각, 말, 행동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그냥 일을 자동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한다면 우리의 행동을 바꿀 수 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지금 바로 시도해 보세요.

  • * (누군가에게) 말하거나 혼잣말을 할 때, 그것은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를 포함합니다. 그것들은 또한 우리 마음속에서 생깁니다. 이에 대해서는 ‘와찌- 상카-라의 바른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는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업의 과보)로 인해 자동으로 발생하는 생각입니다.


5. 위 3번에서 언급한 집을 지을 때에 도덕적이거나 부도덕한 의도를 포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깜마 비자(kamma bija, dhammā에 속함)가 되어 미래에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업의 과보)를 가져올 수 있는 ‘강한 상카-라(아비 상카-라, abhisankhāra)’를 생성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집을 짓는 행은 단지 상카-라(sankhāra)이며, 업의 면에서 중성입니다.


  • * 그러나, 예를 들어 사람을 죽이려는 계획 등은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와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를 계획 단계에서 포함하고, 이에 따라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와 함께 그 일을 실행하게 됩니다.

  • * 이 경우, 모든 그 상카-라(sankhāra)는 아비상카-라(abhisankhāra)이며, 이는 미래에 동물영역(축생계)을 포함하여 아빠-야(apāya, 악처)로 재탄생하는 형태로 나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6. 아비상카-라(Abhisankhāra, 강성 상카-라)는 깜마 비자(kamma bija, 업 씨앗)를 발생시키며, 이 깜마 비자(kamma bija) 또한 담마-(dhammā)의 일부이며 자와나 찟따(javana citta, 속행 마음)가 만든 에너지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Javana of a Citta – The Root of Mental Power’ 포스트를 보세요. 그들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업의 과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어떤 담마-(dhammā)는 에너지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단지 과거의 메모리 기록인 ‘나-마 곳따(nāma gotta)도 또한 담마-(dhammā)입니다.

  • * 죽음의 순간에 그런 강한 깜마 비자(kamma bija) 또는 담마-(dhammā)는 ‘mananca paticca dhammē ca uppaddati manōviññnan’라는 과정으로 마음에 옵니다. 그 새로운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는 새로운 삶을 위한 빠띠산디 윈냐-나(patisandhi viññāna)입니다. 여기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은 “ '루-빠'란 무엇인가? – '담마-'도 '루-빠'다! ” 포스트를 보세요.

  • * 그래서 이제 그 아비상카-라(abhisankhāra)의 결과로 새로운 삶이 형성됩니다. 이 새로운 삶의 형태는 상카-라(sankhāra)로 인해 일어났기 때문에 상까따(sankata)라고도 합니다.


7. 그 상까따(sankata)는 부도덕한 행동을 하는 중의 아비상카-라(abhisankhāra, 강성 상카-라) 때문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아비상카-라)이 나중에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업의 과보)를 통해 생명체로 나타난 것입니다.


  • * 도덕적인 아비상카-라(abhisankhāra), 즉 뿐냐 아비상카-라(punna abhisankhāra, 공덕행)는 좋은 깜마 비자/담마-(kamma bija/dhammā)로 이어지고, 이 좋은 깜마 비자/담마-(kamma bija/dhammā)는 좋은 재탄생, 즉 인간이나 데와(dēva, 천신)나 브라흐마(brahma, 범천)로 이어질 것입니다.

  • * 부도덕한 아비상카-라(abhisankhāra), 즉 아뿐냐 아비상카-라(apunna abhisankhāra, 불공덕행)은 나쁜 깜마 비자/담마-(kamma bija/dhammā)로 이어지고, 이 나쁜 깜마 비자/담마-(kamma bija/dhammā)는 불행한 재탄생, 즉 아빠-야(apāya, 악처 또는 사악처)로 이어질 것입니다.

  • * 그것은 마음과 물질 사이의 연결 고리입니다. 마음에 일어난 아비상카-라(abhisankhāra, 강성 상카-라)는 (비활성 물질로 만들어진) 루-빠(rūpa)인 상까따(sankata)로 이어집니다.

  • * 위 3번에서 언급한 집은 (이와 같이 만들어져) 존재하는 루-빠(rūpa)를 사용하여 결합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통(abhiññā, 아빈냐-)력을 가진 자의 경우에는 새로운 루-빠(rūpa)를 창조하는 것 또한 가능합니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상까따(sankata)라고 합니다.


8.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시각 대상, 소리, 냄새, 맛 및 신체 접촉을 포함하여) 모든 루-빠(rūpa)는 상까따(sankata)이며, 모두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겪고 마침내 파괴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Root Cause of Anicca – Five Stages of a Sankat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요점은 자신의 행동, 말, 생각을 통해 자기 자신의 미래를 자신이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아비상카-라(abhisankhāra)입니다.

  • * 그러나, 이 새로운 상까따(sankata)는 어떤 것이라도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데-와(dēva, 천신)나 브라흐마(brahma, 범천)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그 업력은 언젠가는 소진될 것이고, 그 (소진) 시점에서 나타나는 가장 유력한(강한) 깜마 비자/담마-(kamma bija/dhammā)에 따라 다음 생을 시작할 것입니다.

  • * 단지 차이점은 아빠-야(apāya, 악처)에서는 많은 고통을 받게 되는 반면, 높은 영역에서는 ‘좋은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작을 가늠할 수 없는 때부터 31영역의 대부분을 거치면서 끝없는 윤회의 여정을 겪어 왔습니다.


9. 다른 매우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여러 영역을 거치는 여정’의 총체적인 결과가 괴로움(고통)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중에 더 많은 부도덕한 일을 하는 경향이 있고 대부분 아빠-야(apāya, 악처)에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 * 집이든 천신으로 태어나는 새로운 삶이든, 우리가 스스로를 위해 만드는 모든 상까따(sankata)는 결국 우리에게 만족스럽게 유지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집은 수리가 필요하며 화재나 홍수를 당할 수 있습니다. 천신의 삶도 언젠가 끝나고 사악처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 * 이것이 ‘삽베- 상카-라 아닛짜-(Sabbē sankhāra aniccā)’, 즉, ‘모든 상카-라(sankhāra)는 아닛짜(anicca)다’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로 인해 생성되는 모든 상까따(sankata)는 한정된 수명을 가지고 있으며, 더구나 그것이 존속하는 중에는 예상치 못한 변화(위빠리나-마, viparināma)를 겪을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10. 우리가 일을 만족스럽게 유지하지 못하면 고난을 겪습니다. 사람이 수십억 달러를 벌고 사랑스런 가족이 있다 하더라도, 죽을 때는 모든 것을 뒤에 남겨두고 떠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죽기 전에도 다른 많은 경우(친구나 가족의 죽음, 질병, 재산 손실 등)를 겪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닛짜(anicca) 특성 때문에 일어나는 위빠리나-마(viparināma, 예상치 못한 변화) 특성입니다.


  • * 그리고 그 고통의 근본 원인은 상카-라(sankhāra), 더 정확하게는 아비상카-라(abhisankhāra)입니다. 그것이 바로 ‘삽베- 상카-라 둑카-(Sabbē sankhāra dukkhā)’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 * 거듭 말하면, 상카-라(sankhāra)는 우리의 현재 생각입니다. 그 생각이 과거로 지나가자마자, 그들은 나-마 곳따(nāma gotta), 즉 메모리가 됩니다.


11. 파괴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나-마 곳따(nāma gotta, 메모리)입니다. 이것은 어떤 주어진 ‘삶 흐름’의 모든 사건(상카-라 및 아비상카-라)에 대한 기록일 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What Reincarnates? – Concept of a Lifestream’ 포스트를 보세요.


  • * 이 모든 다양한 용어는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나중에 결국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 용어는 모두 큰 퍼즐의 조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2. 월폴라 라훌라 테로 (Walpola Rahula Thero) 존자의 저서인 ‘What the Buddha Taught’는 유명하고 탁월한 책이지만, 앞에서 언급한 법구경의 게송을 해석할 때에는 담마-(dhammā)와 상카-라(sankhāra)의 차이를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고, 닙바-나(Nibbāna)를 담마-(dhammā)에 포함시켰습니다(1974년 판 ‘What the Buddha Taught’의 p. 57 참조). 그 저서에서는 담마-(dhammā)와 상카-라(sankhāra)의 차이를 닙바-나(Nibbāna)의 포함여부로 취하였습니다(구별하였습니다).


  • * 그러나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상카-라(sankhāra)와 담마-(dhammā)는 서로 다른 두 본질을 나타냅니다. 상카-라(Sankhāra)는 우리가 마음 속에 생성하는 것입니다.

  • * 강한 상카-라(sankhāra), 즉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는 업 에너지의 생성으로 이어지고, 그 생성된 업 에너지가 담마-(dhammā)에 속하는 깜마 비자(kamma bija, 업 씨앗)입니다.

  • * 그러나, 깜마 비자(kamma bija) 외에 많은 담마-(dhammā)가 있습니다.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만이 깜마 비자(kamma bija)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상카-라(sankhāra)와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는 모두 담마-(dhammā)인 나-마 곳따(nāma gotta), 즉 메모리 기록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담마(dhammā)는 개념과 붓다 담마(Buddha Dhamma)도 포함합니다.


13. 더구나, 닙바-나(Nibbāna)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닙빠-나(Nibbāna)가 아낫따(anatta)’라고 말하는 것은 엄청난 오류입니다. 생각(찟따, citta), 정신 요소(쩨-따시까, cētasika), 물질(루-빠, rūpa), 및 닙바-나(Nibbāna)라는 네 가지 궁극 실재(빠라맛타토-, paramatthathō)가 있습니다. 


  • *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처음 세 가지로 서술될 수 있습니다. 닙바-나(Nibbāna)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 * 더구나, 아낫따(anatta)는 또한 단지 ‘무아(no-self)’로 잘못 번역되었습니다.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과 관련한 문제는 ‘아닛짜, 둑카, 아낫따 – 잘못된 해석’ 포스트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14. 상카-라(sankhāra)의 강한 유형인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를 행할 때, 그것은 좋거나 나쁜 깜마 비자(kamma bija, 업 씨앗)인 담마-(dhammā)의 형성으로 이어집니다. 그 강한 깜마 비자(kamma bija)는 상까따(sankata)의 생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생성되는 상까따(sankata)는 유정체(활성체)일 수도 있고 무정체(비활성체)일 수도 있습니다.


  • * 그리고, 나마 곳따(nāma gotta)는 단지 생성된 것의 기록입니다. [역자 추가: 이 나마 곳따(nāma gotta)는 나마 로까(nama loka, 정신계)에 보존됩니다.]


15. 상카-라(sankhāra)와 깜마 비자(kamma bija)와 상까따(sankata)와는 달리, 나-마 곳따(nāma gotta)는 단지 기록이며 영구적입니다. ‘Najīrati Sutta (SN 1.76)’에는 다음과 같이 설해져 있습니다. “Rūpaṃ jīrati maccānaṃ, nāmagottaṃ na jīrati”, 즉 ‘물질적인 것은 쇠퇴하고 파괴되지만, 나-마 곳따(nāma gotta)는 쇠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 이 때문에 아빈냐-(abhiññā, 신통)력이 있는 자는 누구나 어떤 시점이든지 그 과거로 돌아가서 그 사건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Recent Evidence for Unbroken Memory Records (HSAM)’도 참조해 보세요.

  • * 우리가 어떤 것(상카-라, sankhāra)을 할 때마다 기록(나-마 곳따, nāma gotta)이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소정의 지각력 있는 존재(유정체)에 대해, 시작점이 없는 시간부터 행해진 모든 활동의 기록이 존속하고, 이 기록이 그 존재의 나-마 곳따(nāma gotta)입니다. 모든 이전의 삶과 이전 삶의 모든 활동은 영화 릴(물론, 물리적인 릴이 아님)처럼 ‘기록 흐름(record stream)’에 있습니다.

  • *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 세간 선정)를 통해 아빈냐-(abhiññā, 신통)를 개발한 사람은 여러 과거 생 동안의 나-마 곳따(nāma gotta)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 개발된 아빈냐-(abhiññā, 신통)력으로 훨씬 더 깊은 과거 기록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붓다께서는 놀라운 속도로 원하는 만큼 멀리 뒤로 추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떤 한 유정체의 나-마 곳따(nāma gotta)에서 그 시작점을 붓다께서는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윤회 과정에 대한 추적가능한 시작이 없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16. 이 나-마 곳따(nāma gotta)는 예로 설명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존 케네디 (John Kennedy)와 로널드 레이건 (Ronald Reagan)이라는 잘 알려진 미국 대통령 두 명을 예로 들겠습니다. 그들의 루-빠(rūpa) 또는 육체는 상까따(sankata) 였으며 오래 전에 부패하였고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두 명의 나-마 곳따(nāma gotta)는 어느 정도 우리와 함께 합니다. 그 두 명의 나-마 곳따(nāma gotta)가 어떤 사람에게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지는 어떤 사람이 그 두 명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지에 달려 있습니다. ‘존 케네디’ 또는 ‘로널드 레이건’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들의 그림이 우리 마음에 나타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두 명을 만난 사람들은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으며 아마도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 상황을 회상할 수 있습니다.


  • * 마찬가지로, 우리는 각자 삶의 많은 ‘사건들’ 또는 각자 ‘나-마 곳따(nāma gotta)’의 일부분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어떤 어린 아이들은 그들 전생의 나-마 곳따(nāma gotta)에서 어떤 사건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 * 신통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이와 매우 비슷합니다. 신통 능력은 나-마 곳따(nāma gotta)에서 기억력 또는 과거를 되돌아보는 능력을 엄청나게 늘립니다.


17. 우리는 상카-라(또는 계획)를 만들 뿐이므로 괴로움에 시달리고, 장기적으로 볼 때 그것들은 (좋은)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상카-라(sankhāra)는 결국 둑카(dukkha)로 이어지고, 그래서 장기적으로 볼 때 실속이 없고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아낫따, anatta).


  • * 그러나, 나-마 곳따(nāma gotta) 또는 기타 유형의 담마-(dhammā)는 괴로움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담마-(dhammā)에는 아닛짜(anicca)와 둑카(dukkha)의 특성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 * 그러나 담마-(dhammā)와 함께 하는 것도 실속이 없고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담마-(dhammā)도 또한 아낫따(anatta)입니다.


18. 붓다의 마지막 말씀은 ‘와야 담마- 상카-라, 압빠마-데나 삼빠-데-타(vaya dhammā sankhāra, appamādena sampādēta)’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상카-라를 포함)은 담마-(dhammā)입니다. 오직 상카-라(sankhāra)만이 와야 담마-(vaya dhammā), 즉 사람을 죽음으로 이끄는(즉, 나쁜 결과로 이끄는) 와야 담마-(vaya dhammā)입니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우리에게 지체하지 말고 ‘그러한 산(san)을 분류해 보라'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가르치셨습니다.(sampādēta = san + pādēta).


  • * 와야(vaya)는 파괴를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한 사람의 미래를 파괴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카-라(sankhāra)는 와야 담마-(vaya dhammā)입니다.

  • * 상카-라(sankhāra)는 상사-라(sansāra, 윤회)를 연장하는 산(san)으로 이끄는 이 세 가지 유형(마노-, 와찌, 및 까-야 상카-라)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삼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보세요.

  • * 그래서, 붓다께서는 빅쿠(출가 수행자)들에게 모든 상카-라(sankhāra), 즉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는 불리한 결과로 이끄는 와야 담마(vaya dhamma)라고 알려 주셨으며, 상카-라(sankhāra)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19. 나지라띠 숫따(Najirati Sutta, SN 1.76)‘에는 나-마 곳따(nāma gotta)가 어떤 성격을 가지는지 분명하게 설해져 있습니다.


  • * ‘루-빵 지-라띠 맛짜-낭, 나-마곳땅 나 지-라띠(rūpaṃ jīrati maccānaṃ, nāmagottaṃ na jīrati)’이라고 설해져 있습니다. 이는 ‘물질적인 것은 쇠퇴(부패)하고 결국 파괴(죽음)에 이르지만, 나-마 곳따(nāma gotta)는 쇠퇴하거나 파괴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 앞에서 언급한 두 미국대통령의 루-빠(육체)는 부패하여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두 명의 나-마 곳따(nāma gotta)는 우리와 함께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두 명의 나-마 곳따(nāma gotta)는 어떤 점에서 우리의 나-마 곳따(nāma gotta)와 섞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억으로 우리의 나-마 곳따(nāma gotta)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통력을 개발한 사람은 한 생뿐만 아니라 많은 전생에 걸쳐 나-마 곳따(nāma gotta)를 완전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나-마 곳따(nāma gotta)는 접근하든 접근하지 않든 시작이 없는 시간부터 거기에 있습니다.

  • * 담-마(dhammā)는 나-마 곳따(nāma gotta) 및 빤냣-띠(paññāti)을 포함하며 기본적으로 이 세상의 어떤 것이고, 본질적 실속이 없으며, 모두 아낫따(anatta)입니다. 그것들에 매달리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 * 닙바-나(Nibbāna)를 달성 할 수 있게 해주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 붓다의 가르침)조차도 (‘아라한과’ 시점에서) 궁극적으로 버려져야 합니다. 붓다께서는 그 가르침(붓다 담마)을 강을 건너는 데 사용하는 뗏목에 비유하셨습니다. 일단 강을 건너면 뗏목을 등에 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붓다 담마(Buddha Dhamma)조차도 닙바-나(Nibbāna)에 도달할 때까지만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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