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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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압박 – 둑카 삿짜의 핵심


원문 :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The Incessant Distress (“Pilana”) – Key to Dukkha Sacca’ 포스트

- 2018년 7월 14일 개정


이 포스트는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해가 된 사람에게는 정말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괴로움)에 대한 첫 번째 성스런 진리가 육체적인 고통(괴로움)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즉, 그것을 웨다나 쩨따시까(vedana cetasika)와 관련시킵니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이 담마는 세상(보통 사람)이 보아 왔던 것과는 같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통(괴로움)에 대한 진짜 진리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에 감추어져 있는 고통(괴로움)입니다. 그것은 빤냐(paññā, 지혜) 쩨따시까(cetasika)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사실, 고통(괴로움)을 너무 많이 겪고 있는 사람이 고통(괴로움)에 대한 첫 번째 성스런 진리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누군가 질병으로 아플 때, 또는 누군가 그 마음이 노년기에 너무 약할 때는,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붓다의 심오한 메시지에 대해 숙고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둑카 삿짜(dukkha sacca)는 고통(괴로움)의 진리입니다. 삿짜(sacca)는 진리를 뜻합니다.


* 삐라나(pilana)는 압박 또는 어려움을 뜻하는 빠알리어 낱말입니다. 이것은 깨닫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겪는 괴로움의 부분입니다.

* 페리마(peleema)는 압박 또는 어려움을 뜻하는 싱할라어 낱말이며, 첫째 부분인 ‘페(pe)'는 [영어의] ‘펜(pen)’과 같은 운으로 발음됩니다.


이것은 ‘아리야 아나-빠-나사띠 바-와나-(Ariya Anāpānasati bhāvanā), 즉 [세간적인(평범한) 들숨 날숨 명상이 아니라] ‘열반을 목적으로 (선법을) 받아들이고 (불선법을) 버리는 수행 명상’을 시작하기 전에도 사람들이 [괴로움을 숙고하며] 처음에 해야 하는 명상(숙고함)의 종류입니다. 필자는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처음부터 붓다의 진정한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충분하게 강조할 수는 없습니다.


1. 몸과 6감각을 만족스럽게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우리는 항상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항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은 진실입니다. 이 진실은 좋은 명상 프로그램을 통해 이 끊임없는 압박(삐라나, pilana)을 일시적으로 제거한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것을 압니다. 그것은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라고 불립니다. ‘선정을 경험(jhānic experience)’할 수 있다면 이것을 훨씬 더 분명하게 압니다. 초점이 한 대상에만 맞추어져 있는 선정(자-나) 상태에 들어갔을 때에만, 사람들은 자신이 모든 일상 삶에서 끊임없는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역자 주: ‘니라미사 수카(감각적 즐거움을 초월한 즐거움)’는 ‘아미사 수카(감각적 즐거움)’에 대응하는 말이며, ‘선정의 즐거움’도 감각적 즐거운 느낌에 기반한 즐거움은 ‘아미사 수카’라고 하므로, 여기서 말하는 ‘니라미사 수카’의 경험은 범부 중생일 경우 4선정 이상의 경험을 말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함. 성자의 경우에는 1선정에서도 그것이 감각적 즐거움이라고 해도 일반 범부 중생처럼 그것을 즐기고자 하는 마음 상태가 아니므로 ‘니라미사 수카’라고 볼 수 있음]


* 이것(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은 존재의 기준선(안락대)이기 때문에 우리는 [보통 상태에서는] 이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그리고, 선정을 경험해도 그 선정을 즐기려고 하는 기준선을 가지는 ‘아미사 수카’가 되므로] 우리는 무수한 재탄생을 하여 왔습니다.

* 이 끊임없는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행복한 시간을 가져오는 방법에 대해 지속적으로 생각합니다. 더 나은 집, 자동차, 또는 행복을 주는 것으로 간주되는 다른 무수한 것들을 얻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생각합니다. 즉, 이 ‘기준 안락대’에 맞추기 위해 항상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더 큰 집으로 이사하고, 새로운 가구 세트를 사고, 더 나은 직업 등을 얻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합니다.

* 더구나, 현재의 ‘안락 수준’보다 약간 아래로 내려갈 때, 우리는 그것을 메꾸기 위해 일(상카-라, sankhāra)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배가 고플 때, 음식을 준비하거나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 또는, 식사 후에 만족하여 집에 앉아 있을 수 있으나, 그 다음에 갑자기 명백한 이유 없이 다시 ‘안락 수준’의 아래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곧 집에 앉아 있는 것이 따분하게 되고, 영화 보러 가기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동차를 타고 영화관으로 갑니다.

* 우리가 하루 종일 행하는 무수한 다른 일들에 대해 이와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 이 끝없는 압박은 둑카(dukkha)의 한 유형인 ‘둑카 둑카(dukkha dukkha, 직접적인 고통)’에 속합니다. 이 둑카는 우리가 받은 육체 때문입니다.


* 우리의 감각(기관)은 지속적으로 즐거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눈은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어 하고, 귀는 즐거운 소리를 듣고 싶어 하며, 코는 좋은 향기를 냄새 맡고 싶어 하고, 혀는 값진 음식을 맛보고 싶어 하며, 몸은 호사스러운 촉감을 원하고, 마음은 즐거운 생각을 하기를 좋아합니다.

* 그리고, 우리는 배고프게 되고, 목마르게 되고, 외롭게 되고, 따분하게 되는 등으로 압박받게 됩니다.


3.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을 해야 합니다. 즉, 상카-라(sankhāra)를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둑카(dukkha)의 두 번째 유형인 ‘상카-라 둑카(sankhāra dukkha, 행하는 고통)입니다.


* 식당에 가는 일, 영화를 관람하는 일 등 외에도 우리는 또한 그 모든 활동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일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일(상카-라, sankhāra)을 하는 것입니다.

*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하나의 충동적 일을 다른 것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먹고 마시기를 원할 수 있고, 영화를 보러 가기를 원할 수 있고, 또한 여럿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합니다.

* 우리는 이 압박을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은 최종 결과, 즉 모든 일을 한 후에 얻는 기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 사람들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인생살이란 이와 같은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존재의 ‘기준선(안락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무한한 시간동안 계속 반복하여 왔으므로, 이것을 ‘정상적인 것’이라고 지각하고 인식합니다.


4.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실제로는 노력을 통해 압박 수준이 낮아졌을 때 갖는 휴식으로부터 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끊임없는 ‘불균형’을 억제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은 다음 예로 설명됩니다.


* 우리는 자연적으로 배고프게 되고 목마르게 됩니다. 이것은 이 육체가 있는 한,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중요한 삐라나(pilana, 압박)입니다.

* 그러나, [배고프고 목마를 때] 먹고 마시면, 그것은 행복감으로 이끕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행복’이 실제로는 피할 수 없는 압박 때문에 생겼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 목마를 때, 물을 찾지 못하면 참으로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울 때, 한 잔의 물은 천국의 맛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 두 잔의 물을 마신 후에는,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게 될 것입니다.

* 그 ‘행복’은 실제로는 목마름에 의한 삐라나(pilana, 압박)를 제거했을 때 일어났습니다.


5. 감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무엇을 하더라도 그 만족스런 순간은 한정되어 있고, 주의 깊게 생각해 보면 그 만족은 삐라나(pilana, 압박), 즉 육체와 관련된 고유한 압박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진실입니다. 비록 오랜 시간 동안 그 감각 입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감각은 잠시 후에 피곤해지고, 다른 종류의 경험을 요구합니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 더운 지방에 있을 때, 우리는 냉방기가 설치된 방에 있는 것을 매우 기뻐합니다. 그러나 알래스카의 한 겨울에 냉방기가 설치된 방에 있고 싶지는 않으며, 당연히 방을 따뜻하게 하고 싶습니다. ‘행복’은 춥거나 더운 공기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주위 대기를 냉각시키거나 따뜻하게 함으로써 삐라나(pilana, 압박)를 제거할 때, 즉 신체에 대한 불편/압박을 제거할 때 행복을 느낄 것입니다.

* 우리는 가장 안락한 침대에 누워있을 수 있지만, 머지않아 더 나은 자세를 찾으려고 몸을 뒤척이기 시작합니다. 결국에는 더 이상 침대에 있을 수 없습니다.

* 가장 아름다운 풍경일지라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지루해 집니다. 섹스의 기쁨은 일단 만족한 후에는 사라지고, 그 충동은 한참 지난 후에 다시 생길 것입니다.


6. 그 다음, 위빠리나마 둑카(viparinama dukkha)라는 세 번째 유형의 고통(괴로움)이 있습니다. 그것 또한 육체와 관련이 있지만, 예기치 않은 변화, 즉 위빠리나마(viparinama) 때문입니다.


* 예를 들면, 사고로 부상을 당할 수 있거나, 암과 같은 큰 질병으로 [몸이] 무너져 내릴 수 있습니다.

* 이것은 쉽게 볼 수 있는 고통(괴로움)입니다.


7. 요약하면, 세 가지 유형의 고통 중에서, 우리는 실제로 위빠리나마 둑카(viparinama dukkha, 예기치 않은 변화의 고통)만 신경을 쓰고 근심 걱정합니다.


* 다른 두 유형의 고통(‘둑카 둑카’와 ‘상카-라 둑카’)을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 두 종류의 둑카는 고통 자체에 실제로 뿌리를 둔 ‘지각된 행복’에 의해 가려집니다(숨겨집니다). 특히, 적당한 수준의 부를 누릴 수 있는 가정에 태어난 우리들은 그 두 종류의 고통을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 정말로 배가 고파서 고통스러워지기 전에 우리는 먹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먹기 위해 사냥하러 가서 동물을 죽일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식당에 가서 맛있고 흡족한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유형의 고통(괴로움)은 실제로 우리에게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그러한 고통(괴로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고, 미래 생에서 우리도 그러한 고통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8. 더 나쁜 것은 사악처(가장 낮은 4개 영역)에서는 존재(유정체)가 정말로 어떻게 할 수도 없이 난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4개 영역에서는 끊임없는 ‘둑카 둑카(직접적인 고통)’의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행(상카-라, sankhāra)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 예를 들면, 야생 동물은 배가 고플 때 다른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음식을 찾지 못하면, 며칠 동안 많은 고통을 겪으며 배고프게 될 것이고, 그래서 힘없게 되면 결국 더 강한 동물의 먹이가 됩니다.

* 야생에서는 늙고 병든 동물을 볼 수 없습니다. 약해지면 곧바로 ‘더 크고 강한 동물’에 의해 잡아먹힙니다. 특히, 악처(사악처)에서는 정말로 어떻게 할 수도 없이 난감하게 되는, 이것이 아낫따(anatta)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9. 31영역 세상에서 둑카(dukkha)가 없는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3가지 유형의 둑카(dukkha)는 31영역 세상에 다양한 정도로 존재합니다.


* 가장 낮은 영역인 지옥(니라야, niraya)에서는 둑카 둑카(dukkha dukkha, 직접적인 고통)가 현저하게 나타납니다. 그곳에서는 고통(괴로움) 만이 있고, 상카-라(sankhāra)를 행함에 따라 고통(괴로움)을 경감시킬 방법이 없습니다. 동물(축생) 영역이라도 그곳에는 상카-라 둑카(sankhāra dukkha)가 비교적 적습니다. 동물들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직접적인 고통’을 많이 겪습니다.

[역자 주: 즉, 동물들은 상카-라를 행하는 ‘상카-라 둑카(행하는 고통)’로 ‘둑카 둑카(직접적인 고통)’를 경감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적습니다]

* 더 높은 영역(인간계보다 높은 영역)에서는, 공덕업에 의한 좋은 탄생이기 때문에 둑카 둑카(dukkha dukkha, 직접적인 고통)는 거의 없습니다. 이 ‘더 높은 영역’에서는, 거기에서 생을 마감하게 하는 위빠리나마 둑카(viparinama dukkha, 예기치 않은 변화의 고통)가 있습니다. 또한, 소따빤나(Sotapanna, 수다원 성자) 단계에 도달하지 않았다면, 어떤 브라흐마(brahma,범천)도 미래 생에 가장 낮은 4개 영역(사악처)에서 겪을 고통을 극복한 것은 아닙니다.

* 인간계(인간 영역)에서는 3가지 유형의 둑카가 모두 상당한 수준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여기서는 상카-라를 행하는 상카-라 둑카(행하는 고통)가 모든 31영역 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역자 주: 이것은 인간계만큼 선업 공덕 또는 불선업 공덕을 짓기 쉬운 곳이 없다는 의미이며, 업(선업 또는 불선업) 충전을 통해 앞으로의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영역이라는 의미이며, 중생들이 태어나기 어려운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영역은 거의 모두 이 인간계에서 행한 상카-라 둑카에 의한 업에 따라 그 과보를 받아 누리거나 겪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10. 이것이 첫 번째 성스런 진리인 ‘둑카 삿짜(Dukkha Sacca, 고통(괴로움)의 진리)’입니다. 이 고통(괴로움)의 진리는 겉으로 보이는 한 차례(한 바탕)의 행복에도 둑카(고통, 괴로움)가 감추어져 있다는 진리이며, 31존재(모든 세상) 영역 내에서는 어떤 곳에서도 영구적으로는 이 고통(괴로움)이 극복될 수 없다는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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