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첫 숫따에 있는 불교의 에센스
원문: Sutta Interpretation 섹션의 ‘Essence of Buddhism – In the First Sutta’ 포스트
불교(붓다 담마)의 에센스(정수)는 붓다께서 설하신 첫 번째 숫따인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Dhammacakkappavattana Sutta)에 있습니다. [여기서는] ‘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구절을 자세히 논의합니다.
2018년 10월 23일 작성; 2023년 3월 3일 차트와 함께 재작성; 2024년 8월 26일 개정
제거될 수 있는 고통(괴로움)
영문 차트 다운로드/인쇄: ‘4. Dukkha – Future Suffering’
1. 이 숫따는 사성제를 요약 형태로 말합니다. 그것들을 이해하려면 단호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포스트는 첫번째 성스런 진리를 말하는 구절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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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우리는 이 구절이 일어나는 것을 멈출 수 있는 고통(괴로움)에 관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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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괴로움)을 나타내는 빠알리어는 (하나의 k 문자가 있는) ‘dukha’입니다. (두개의 k 문자가 있는) ‘dukkha’는 ‘제거될 수 있는 고통’(dukha + khaya)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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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항상 ‘dukkha’로 강조되기 때문에 많은 숫따에서 ‘dukha’라는 낱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Pātāla Sutta (SN 36.4)’에서, ‘dukha’는 아빠-야-(apāyā)(pātāla: 나락/구렁텅이)에서 겪는 고통스런 느낌을 묘사하는데 사용됩니다. 더 많은 예는 ‘첫번째 성스런 진리는 괴로움만 나타내는가?’ 포스트에 있습니다.
단 한 구절에 있는 제1성제!
2. 붓다께서 ‘Dhammacakkappavattana Sutta (SN 56.11)’에서 괴로움/고통에 관한 제1성제를 어떻게 요약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Idam kho pana, bhikkhave, dukkhaṃ ariya saccam:
jātipi dukkhā, jarāpi dukkhā, byādhipi dukkho, maraṇampi dukkhāṃ, appiyehi sampayogo dukkho, piyehi vippayogo dukkho, 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āṃ—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번역: “빅쿠들이여, 괴로움(고통)의 성스러운 진리란 무엇인가?
태어남은 괴로움(고통)이고, 늙는 것은 괴로움(고통)이며, 병드는 것은 괴로움(고통)이고, 죽는 것은 괴로움(고통)이다. 싫어하는 것과 관련(연관)되는 것은 괴로움(고통)이고, 좋아하는 것에서 떨어지는 것은 괴로움(고통)이다. 좋아하고/갈망하고/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면 그것은 괴로움(고통)이다. 요컨대, 괴로움(고통)의 근원은 루-빠(rūpa),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a), 윈냐-나(viññāna)라는 다섯 무더기에 대한 갈망(빤쭈빠-다-낙칸다, pancupādānakkhandha)이다.” 빤쭈빠-다-낙칸다 (pancupādānakkhandha) (‘빤쭈빠-다-낙칸다’에 대한 우빠-다-나, 즉 갈망/바람)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갈망하는 모든 것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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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빤쭈빠-다-낙칸다 (pancupādānakkhandha)가 이 세상을 나타낸다는 사실은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다섯 무더기(오온)(The Five Aggregates (Pañcakkhandha))’ 서브섹션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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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필자는 ‘우빠-다-나_upādāna’를 ‘갈망’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우빠-다-나_upādāna’라는 낱말은 단 한 낱말로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좋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연기)’ 섹션의 우빠-다-나와 우빠-다-낙칸다의 개념(‘Concepts of Upādāna and Upādānakkhandha’) 서브섹션에 있는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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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구절에는 네 부분이 있습니다. 아래의 4 부분의 각각을 설명하기 위해 그 부분에 번갈아 강조 표시를 했습니다.
괴로움/고통의 핵심 측면
3. 굵은 글씨로 표시된 첫 번째 부분은 우리가 괴로움(고통)의 형태로 간주하는 것, 즉 태어남, 늙는 것, 병드는 것, 그리고 죽는 것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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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태어남은 죽음으로 끝납니다. 그것이 재탄생은 괴로움(고통)인 이유입니다. 모든 태어남은 예외 없이 죽음으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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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또한 늙고, 병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죽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것들 중 하나를 경험해야 한다면 그것은 괴로움(고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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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젊음을 유지하고,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영원히 죽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 조건이 충족될 수 있다면, 우리는 영원히 행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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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붓다께서는 첫 법문에서 재탄생 과정과 관련된 괴로움(고통)에 초점을 맞추신 것이 분명합니다.
괴로움/고통의 근본 원인 ㅡ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함
4. 바라는/갈망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 괴로움(고통)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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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에 있는 구절의 두 번째 부분(검은색)은 ‘좋아하지 않는 것과 관련(연관)되는 것은 괴로움(고통)이고, 원하는 것에서 떨어지는 것은 괴로움(고통)이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모두에게 명백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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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2에 있는 구절의 세 번째 부분(갈색)에서 “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āṃ”라는 하나의 간결한 진술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얌삣창 나 라바띠 땀삐 둑캉-
5. “얌삣창 나 라바띠 땀삐 둑캉-(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āṃ)”는 [다음 전체 문장의] 구절이 (운이 맞게) 축약된 버전입니다. 전체 문장은 “얌 삐 잇창 나 라바띠 땀 삐 둑캉-(yam pi icchaṃ na labhati tam pi dukkhā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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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얌 삐 잇창(yam pi icchaṃ)’는 ‘좋아하거나 갈망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나 라빠띠(na labhati)’는 ‘얻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땀 삐 둑캉(tam pi dukkhaṃ)’은 ‘괴로움(고통)으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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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그 구절은 “좋아하고/갈망하고/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면, 그것은 괴로움(고통)으로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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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더 일반적인 진술이며 어떤 상황에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그것을 볼(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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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이, 무엇인가를 갈망할수록, 더 많은 괴로움(고통)을 감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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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잇차(iccha)’(및 ‘잇짜_icca’)는 ‘ichcha’로 발음됩니다. “ 초기 유럽 학자들이 채택한 '띠삐따까 영어' 규약 ㅡ 제1부 ”와 “ 초기 유럽 학자들이 채택한 '띠삐따까 영어' 규약 ㅡ 제2부 ”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6. 그래서, “yampiccham nalabhati tampi dukkhaṃ)”(“Yam pi icchaṃ na labhati tam pi dukkhaṃ”) 구절은 괴로움(고통)에 대한 첫 번째 성스런 진리의 더 깊은 의미에 우리가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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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잇짜(icca)와 잇차(iccha)(싱할라어로 ඉච්ච and ඉච්ඡ)는 띠삐따까(Tipiṭaka)에서 서로 교환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에 유의하세요. 마지막 음절이 강조된 ‘잇차(iccha)’라는 낱말은 ‘강한 잇짜(strong icca)’, 즉 ‘강한 들러붙음’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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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잇짜(좋아함)’라는 낱말은 ‘땅하-(taṇhā, 들러붙음)’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땅하-(taṇhā)는 잇짜(icca) 때문에 자동적으로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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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바라거나 갈망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은 ‘잇짜(icca)’의 반대, ‘나 잇짜(na icca)’ 또는 ‘아닛짜(anicca)’입니다. 그것은 ‘나 아-가미(na āgami)가 ‘아나-가-미(Anāgāmi)가 되는 것과 동일한 방식입니다(‘나 아-가미/na āgami’는 ‘돌아오지 않음’을 의미하지만, ‘아나-가-미/Anāgāmi’의 맥락에서 그것은 ‘까-마 로-까/kāma lōka’, 즉 가장 낮은 11가지 영역으로 돌아오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둘 다 빠알리 산디(Pāli sandhi)(두 낱말을 연결하는) 규칙의 예입니다.
아닛따 특성(본질)과 관계
7.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을 좋아하고/바란다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그런 기대가 충족되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는 적어도 죽을 때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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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이 세상의 본질(본성)은 아닛짜(anicca)인 이유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할 때 우리는 괴롭습니다. 그 괴로움(고통)은 다음 두 상황에서 피할 수 없습니다. (i) 죽을 때, 우리는 갈망하는 모든 것을 떠나야만 할 것입니다. (ii) 비록 우리가 ‘고통이 가득한 영역’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그곳은 대부분의 재탄생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그것이 세상은 아닛짜(anicca) 특성이 있고 둑카(dukkha)로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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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우리는 세상이 닛짜(nicca) 특성, 즉 우리가 바라고/기대하는 대로 얻을 수 있고 유지될 수 있다고 잘못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닛짜(anicca)를 ‘닛짜(nicca)’의 반대말로 설명하는 또 다른(관련된) 방식이 있습니다. ‘틸락카나 ㅡ 영어 법문’을 참조하세요.
상낏떼나 빤쭈빠-다-낙칸다- 둑카-
8. #2에 있는 구절의 마지막 부분인 “상낏떼나 빤쭈빠-다-낙칸다- 둑카-(saṃ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는 훨씬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기 시작하는데 만도 먼저 다섯 가지 칸다(khandha, 무더기) (루-빠_rūpa, 웨-다나-_védanā, 산냐_sañña, 상카-라_saṅkhāra, 윈냐-나_viññāna)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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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는 전적으로 정신적이고 각자의 세상을 정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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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 pañca upādāna khandhā)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갈망하는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갈망을 충족하기 위해 (아비상카-라를 통해) 나쁜 깜마를 축적하고 그것이 이 고통 가득한 재탄생 과정에 갇힌 이유라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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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사람들은 빤짝칸다(pañcakkhandhā)와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가 의미하는 것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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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개념은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다섯 무더기(오온)(The Five Aggregates (Pañcakkhandha))’ 서브섹션에 상세히 논의되어 있습니다. 이 시리즈인, ‘홈’ 섹션의 ‘도표로 본 불교(Buddhism – In Charts)’ 서브섹션에서 이것을 다시 자세히 논의할 것입니다.
9. 각자의 세상은 각자가 경험하는 것, 즉 루-빠(rūpa), 웨-다나-(védanā), 산냐(sañña), 상카-라(saṅkhāra), 윈냐-나(viññāna)로 된 다섯 무더기, 즉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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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경험(즉, 빤쭈빠-다-낙짝칸다-)의 일부는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며, 우리는 우빠-다-나 단계 후에 그것들에 더 들러붙습니다. 그런 더 강한 들러붙음은 (와찌 및 까야 깜마를 통해) 강한 깜마 생성으로 이어져, 재탄생과 더 많은 괴로움으로 이어집니다.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를 참조하세요. 따라서, 미래 괴로움은 이 과정(빠띳짜 사뭅빠-다, Paṭicca samuppāda)을 상세하게 이해할 때까지 멈춰질 수 없습니다. 그 이해(부처님은 스스로 붓다 지위에 도달했음)는 재탄생 과정의 끝과 미래 괴로움의 끝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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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가지 성스런 진리를 설명하신 후(우리는 첫 번째 성스런 진리에 대해서만 간단히 논의했음), 붓다께서는 숫따(sutta)의 중간에 “냐-난짜 빠나 메 닷사낭 우다빠-디: ‘아꿉빠- 메 위뭇띠, 아야만띠마- 자-띠, 낫티 다-니 뿌납바오’ 띠.”(“Ñāṇañca pana me dassanaṃ udapādi: ‘akuppā me vimutti, ayamantimā jāti, natthi dāni punabbhavo'” ti.”)라고 말씀하십니다.
번역: “나에게 앎과 시각(비전)이 일어났다. ‘나의 마음이 벗어난 것(해방된 것)은 흔들리지 않는다(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다. 더 이상의 새로운 존재는 없다(태어남은 없다).’ ”
둑카 삿짜(Dukkha sacca)에 대한 오해, 빤짝칸다-, 및 빤쭈빠-다-낙칸다-
10. 많은 사람들은 둑카 삿짜(dukkha Sacca)(첫 번째 성스런 진리, ‘dukkha sachcha’로 발음)가 ‘모든 것은 괴로움이다’라고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며, 이 세상에서 즐길 많은 즐거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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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에 있는 구절의 첫 세 부분은 첫 번째 성스런 진리를 요약하며 보통 사람이 볼 수 없는 숨겨진 괴로움이 이 세상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사람들이 생일을 축하하지만, 우리는 생일이 지날 때마다 죽음에 더 가까워집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같이 있고 싶지만, 적어도 죽음에서는 그들과의 이별은 피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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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절의 마지막 부분은 첫 번째 성스런 진리의 핵심 부분입니다. 그것은 괴로움의 유형이 아니라 (미래) 괴로움의 근본 원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어떤 루빠와 그런 루빠와 함께 상호 작용하여 일어나는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a), 및 윈냐-나(viññāna)에도 들러붙기 때문에 괴로움을 겪게 됩니다. 그것이 빤쭈빠-다-낙칸다- (pañcupādānakkhandhā, pañca upādāna khandhā)며, 개략적으로 빤쭈빠-다-낙칸다-(pañcupādānakkhandhā)에 들러붙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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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첫번째 성스런 진리는 괴로움만 나타내는가?’ 포스트 및 ‘제1성제는 고통인가? - 고통에 대한 신화’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우리는 감각적 즐거움에 숨겨진 고통을 보지 못한다
11. 우리는 감각적 즐거움에 숨겨진 괴로움(고통)을 붓다께서 설명하실 때까지 보지 못합니다. 붓다께서는 인간이 볼 수 없는 숨겨진 괴로움(고통)을 다음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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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가 미끼를 물 때, 물고기는 그 행위에 숨겨진 괴로움(고통)을 보지 못합니다. 땅에서 보면, 우리는 전체 그림을 볼 수 있고 물고기가 미끼를 문다면 물고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지를 압니다. 그러나 물고기는 전체 그림을 볼 수 없으므로 숨겨진 괴로움(그 미끼에 감춰진 낚시 바늘)을 보지 못합니다. 미끼(맛있는 한 조각의 먹이)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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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일한 식으로, 우리가 (고통이 가득한 사악처를 포함하여) 31 영역으로 된 더 넓은 세상과 과거에 그 영역들에서 상상할 수 없는 괴로움(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여섯 감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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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비유는 ‘Baḷisa Sutta (SN 17.2)’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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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자세한 내용은 ‘괴로움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런 진리(첫번째 성스런 진리)'와 같은가?’ 포스트와 ‘첫번째 성스런 진리는 괴로움만 나타내는가?’ 포스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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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적인 참조가 재탄생 과정에 있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한 채) 모든 곳에서 ‘둑카(dukkha)’를 ‘괴로움(고통)’으로 어리석게 번역하는 것은 아라한이 살아 있는 동안에도 모든 괴로움(고통)에서 자유로운지 여부와 같은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또다른 혼란은 닙바-나(Nibbāna)가 의미하는 것입니다. 닙바-나는 단순히 ‘재탄생 과정의 끝’을 의미합니다. 아라한이 죽으면 [그 아라한의] 모든 괴로움은 끝납니다.
숫따는 고도로 응축된 요약이다
12. 어떤 사람들은 붓다께서 각 숫따를 띠삐따까(Tipitaka)에 나타난 대로 읊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번역자들이 숫따를 낱말별로 대응시켜 그대로 번역한 이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과는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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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Dhammacakkappavattana Sutta)는 (많은 숫따와 마찬가지로) 고도로 응축된 것입니다. 단 한 구절만도 많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 숫따에 대해 더 분석한 것은 ‘숫따(경) 해석’ 섹션의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Dhammacakkappavattana Sutta)’ 서브섹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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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Dhammacakkappavattana Sutta)를 며칠에 걸쳐 다섯 고행자들에게 설하셨습니다. “빅쿠 냐나몰리의 '붓다의 생애' ”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띠삐따까(Tipiṭaka)의 직접적인 설명은 ‘The Long Chapter (Mahākhandhaka)’에 있습니다. 링크 주소에서 ‘Section 6. The account of the group of five’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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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꼰단냐(Kondañña) 존자만이 첫날 밤에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그 다음, 붓다께서는 며칠에 걸쳐 그 내용을 설명하셨습니다. 다른 4명의 고행자는 며칠에 걸쳐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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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책(냐-나몰리 저)은 위냐야 삐따까(Vinaya Piṭaka, 율장)에 있는 많은 구절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들은 숫따(sutta, 경)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세부 사항들입니다. 그것은 또한 결정적으로 중요한 숫따(sutta)와 중요한 사건의 연대표(타임라인)를 제공합니다.
13. 그러므로, 붓다께서는 띠삐따까(Tipiṭaka)에 있는 그대로 경을 읊지(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랬다면, 그것은 15분 내로 암송이 끝날 것입니다! 대신에, 그 숫따에 대한 논의는 5명의 고행자 모두가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며칠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막가 팔라(도과)를 얻는 것은 마법의 과정이 아닙니다. 특히, 소-따빤나 단계는 부처님의 세계관에 대한 이해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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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Dhammacakkappavattana Sutta)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 한평생이 걸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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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띠삐따까(Tipiṭaka)의 모든 숫따(sutta)가 여러 세대에 걸쳐 구두로 전승되었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띠삐따까(Tipiṭaka)는 붓다께서 빠리닙바-나(Parinibbāna)에 드신 후, 약 500년 후에 기록되었습니다. ‘붓다 담마의 보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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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 각 숫따의 내용을 간결하게 구두 전달에 적합한(기억하기 쉬운) 제한된 수의 구절로 요약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숫따 해석 ㅡ 웃데-사, 닛데-사, 빠띠닛데-사’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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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된 구절은 그것들을 이해한 사람들에 의해 상세히 설명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아닛짜(anicca)’와 ‘둑카(dukkha)’와 같은 단 하나의 낱말들도 (단순히 ‘무상’과 ‘고통’이 아니라)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 낱말들은 다른 언어에서 단 하나의 낱말로 대응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의 의미를 이해함과 함께 그 빠알리 낱말들을 사용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