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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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방식으로 일어나는 웨-다나-(느낌)


원문 :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Vēdanā (Feelings) Arise in Two Ways’ 포스트

- 2017년 2월 9일, 2017년 10월 17일, 2018년 11월 5일 개정


웨-다-나-(vēdanā, 느낌/괴로움)는 두가지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첫째, 이전 깜마(이전의 잘못된(오염된) 행위)의 결과, 즉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깜마(kamma)는 많은 삶 전에 행했을 수도 있습니다.

둘째, 현재 각자의 가띠(gati)로 인해 생성되는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 오염된 생각)의 직접적인 결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형태는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How Are Paticca Samuppada Cycles Initiated?’ 포스트와, ‘Avyākata Paticca Samuppāda for Vipāka Viññān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하에서, 이 두 가지 형태를 각각 다루어 보겠습니다.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부터 일어나는 웨-다나-(vēdanā)]

(역자주: ‘Vedana (Feelings)’ 포스트의 내용과 유사함)


1.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한 웨-다나-(vēdanā)는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수카 웨-다나(sukha vēdanā, 유쾌하거나 즐거운 느낌), 두카 웨-다나-(dukha vēdanā, 불쾌하거나 괴로운 느낌), 및 아둑카마 아수카 웨-다나-(adukkhama asukha vēdanā,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중립 느낌)가 그것입니다. ‘아둑카마 아수카 웨-다나-’는 흔히 우뻭카 웨-다나-(upekkha vēdanā)로 불립니다.


* 수카 웨-다나(sukha vēdanā)와 두카 웨-다나-(dukha vēdanā)는 몸으로만 느끼는 ‘웨-다나-’입니다. 나머지 다섯 감각기관을 통해 처음에 일어나는 모든 ‘웨-다나-’는 중립 느낌입니다.

* 그러나, 그 모두를 기반으로 하여, 우리는 ‘소-마나사 웨-다나-(sōmanassa vēdanā)’와 ‘도-마나사 웨-다나-(dōmanassa vēdanā)’라고 하는 ‘마음이 만든’ 더 많은 유형의 웨-다나-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이 유형의 ‘웨-다나-’는 아래 다음 섹션에서 다룹니다.


2.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는 아라한(Arahant)을 포함하여 모든 이들에게 일어나는 수카 웨-다나-(sukha vēdanā)와 두카 웨-다나-(dukha vēdanā)로 이끕니다. 각자는 필요한 예방 조치를 취하는 등으로 주의 깊게 살면 ‘두카 웨-다나-(dukha vēdanā)’의 일부를 피할 수 있지만,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것들도 있습니다.


* 예를 들어, 붓다께서는 생애 말에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서 신체 병이 있었습니다. 목갈라나 테로는 많은 전생에서 범한 나쁜 깜마(kamma) 때문에 맞아서 죽음에 이르러 반열반(빠리닙바-나)에 드셨습니다.

* 그러나,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는 열매 맺는 것이 반드시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일부는 힘이 약해질 수 있고( ‘Kamma, Debt, and Meditation’ 포스트 참조), 모든 깜마 삐자(kamma beeja)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힘이 줄어지고 91 마하 깔빠(Mahā kalpa, 대겁) 까지 열매 맺을 기회가 없는 일부는 결국 소멸됩니다.

* 그것들이 열매 맺을 조건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즉 요-니소- 마나시까-라(yōnisō manasikāra, 자기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아서 주의깊음)로 행하거나 단지 상식적으로 행함으로써, 많은 ‘깜마 위빠-까’를 피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불량배들의 근처에 밤에 외출하는 것은 과거의 나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가 열매 맺을 비옥한 토양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과거 삶에서 무수한 깜마(좋은 깜마와 나쁜 깜마)를 행했습니다. 상식에 따라 행동하면, 나쁜 깜마 위빠-까를 억제하고 좋은 깜마 위빠-까가 열매 맺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습니다.


깜마 삐자에 대해서는 ‘Sankhara, Kamma, Kamma Beeja, Kamma Vipaka’를 보세요.

이제, 상카-라를 통해 현재 순간에 시작하고 있는 고통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상카-라(sankhāra)로부터 일어나는 웨-다나-(vēdanā) -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a vēdanā)’]

(역자주: ‘Vedana (Feelings)’ 포스트의 내용과 유사함)


이 웨-다나-(vēdanā )들 각자의 가띠(gati)에 따라 그 순간에 탐함 또는 성냄을 통해 둘러붙음에 따라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Tanhā – How We Attach Via Greed, Hate, and Ignorance’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것들은 아라한들이 느끼지 않는 웨다나(vēdanā, 느낌)입니다. 아라한들은 나쁜 가띠(gati)를 가지지 않으므로, 어떤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도 저지르지 않으며 따라서 그 상카-라로 일어나는 어떤 유형의 느낌에서도 벗어납니다. 이 유형의 ‘웨-다나-’를 설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입니다.


1) 세 사람이 거리를 걷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극우 정치 성향의 사람(A)이고, 두 번째는 극좌 정치 성향의 사람(B)이며, 세 번째는 어느 누구에게도 특별한 느낌이 없는 아라한(C)입니다. 세 사람은 모두 ‘우파가 싫어하는 저명한 정치인’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정치인이 눈에 들어오자, A는 불쾌한 느낌을 가지고 B는 즐거운 느낌을 가집니다. 반면에, 아라한은 그 정치인이 눈에 들어와도, 어떤 즐거움이나 불쾌함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세 사람 모두 같은 정치인을 보았지만 서로 다른 유형의 느낌을 일으킵니다. (이 유형의) 느낌은 A와 B 각자가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두 친구가 보물을 찾으러 가서 보석을 발견했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너무 기뻐하였습니다. 그 보석은 매우 귀중해 보였고, 한 친구가 (보석을 팔아) 그 돈을 혼자 모두 가질 수 있도록 다른 친구를 죽였습니다. 하지만 그 ‘보석"을 팔려고 할 때, 그 친구는 그 보석이 그다지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기쁨은 즉시 슬픔으로 바뀝니다. 돌덩이인 물체에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물체는 색깔이 있는 돌 조각 그대로입니다. 바뀐 것은 그 물체에 대한 지각(saññā, 산냐-)이었습니다.

3) 아라한 성자가 길에 있는 보석을 보았다면 어떻게 할까요?(아라한 성자는 그것을 찾으러 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성자는 가치있는 목적에 기증하는 것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것이 별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그에 대해 전혀 걱정하는 마음이 없을 것입니다.

4) 사랑하는 부부는 몇 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살았으며, 함께 있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말다툼(이것이 깜마 위빠-까임) 중에 아내를 때렸습니다. 때렸을 때 육체적 아픔은 몇 분 이상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정신적으로 얼마나 오래 고통을 겪을까요? 그 느낌들은 상카-라(sankhāra), 즉 슬픔과 성냄으로 인해 생깁니다. 육체적 아픔을 느끼지 않았던 남편조차도 정말로 아내를 사랑한다면 며칠 동안 고통 받게 될 것입니다. 두 경우 모두 진짜 고통은 서로의 애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내의 발에 무언가 떨어진다고 할 때, 같은 정도의 육체적 아픔을 겪을 수 있지만, 남편에게 맞았을 때와 같은 정신적 고통은 잔존하지 않을 것입니다.

5) 위의 모든 경우에서, 처음 감각접촉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때문이었습니다. 이 감각 접촉의 순간에는 깜마(kamma)가 생성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처음 감각접촉을 기반으로 하여 우리는 마음으로(그 정치인이 좋고 나쁜 측면에 대해 생각하고, 보석의 가치를 생각하며, 남편과 아내 사이의 사랑을 재평가함) 그것에 따르기 쉽습니다. 따라서 동일한 인식과정(찟따 위티_citta vithi) 안에서 자동적으로 깜마(kamma)의 생성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Avyākata Paticca Samuppāda for Vipāka Viññāna’ 포스트를 보세요.


따라서, 위의 모든 예에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한 것 이외의 추가적인 행복 또는 고통은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싼하-(tanhā) (탐함이나 성냄을 통한 들러붙음)가 그 원인이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예를 들어 다룰 것이지만, 일상적으로 직면하거나 경험한 상황을 분석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담마짝까 빠왓따나 숫따(Dhammacakka Pavattana Sutta, 지혜로 존재의 진정한 특성을 보는 방식의 경)에서 둑카(dukkha)를 붓다께서 설명하셨을 때 그 실제 말씀을 더 자세히 분석하겠습니다.


1. 위 경에서, “자-띠 ‘삐 둑카-, 자라- ‘삐 둑카, 마라난 ‘삐 둑카....(jāti 'pi dukkhā, jarā 'pi dukkha, maranan 'pi dukkha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깊은 의미는 ‘태어나는 것은 괴로움이고, 늙는 것은 괴로움이고, 죽는 것은 괴로움이고, ....’입니다. ‘Essence of Buddhism – In the First Sutt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이 더 깊은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결국 모든 종류의 자-띠(jāti, 태어남)는 괴로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 붓다께서 그 경에서 전달하고자 하셨던 가장 중요한 점은 어느 곳에 태어나더라도 결국 괴로움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2. 그러나, 우리는 일상적인 의미에서 또 다른 의미를 볼 수 있습니다. ‘자-띠 ‘삐 둑카(jāti 'pi dukkha)’는 축약된 구절이며, 문맥에 따라 ‘자-띠 삐 둑카(jāti pi dukkha)’ 또는 ‘자-띠 아삐 둑카(jāti api dukkha)’를 나타냅니다. 다른 두 구절, 즉 ‘자라- ‘삐 둑카(jarā 'pi dukkha)’와, ‘마라난 ‘삐 둑카(maranan 'pi dukkha)도 동일한 방식으로 축약된 구절입니다.


* 빠알리어로 ‘삐(pi)’나 빠알리어 또는 싱할라어로 ‘쁘리야(priya)’는 ‘좋아하다’의 의미이고, 빠알리어로 ‘아삐(api)’나 싱할라어로 ‘아쁘리야(apriya)’는 ‘싫어하다’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자-띠 아삐 둑카(jāti api dukkha)’는 ‘싫어하는 무언가의 태어남은 괴로움을 야기한다’는 뜻입니다. ‘자라- 삐 둑카(jarā pi dukkha)’는 ‘좋아하는 무언가의 쇠퇴는 괴로움을 야기한다’는 뜻이고, ‘마라난 삐 둑카(maranan pi dukkha)’는 ‘좋아하는 자의 죽음은 괴로움을 야기한다’는 뜻입니다. 각각 경우를 보고 어느 것을 사용하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래 4번을 참조하세요.


3. 반대의 경우도 사실입니다. 좋아하는 무언가의 태어남은 행복을 야기하고, 싫어하는 무언가의 쇠퇴는 행복을 야기하며, 미워하는 자의 죽음은 행복을 야기합니다.


* 어떤 예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이것은 항상 사실입니다. 적대자의 재산이 손실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행복해 합니다. 빈 라덴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은 기뻐했고, 그의 추종자들은 슬퍼했습니다.

* 결국에는 모든 유형의 자-띠(jāti, 태어남)는  괴로움으로 이끕니다. 그러나 그것은 더 깊은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4. 붓다께서는 다음 구절에서 ‘삐예히 윕빠요고 둑코, 압삐예히 삼빠요고 둑코(piyehi vippayogo dukkho, appiyehi sampayogo dukkho)’로 ‘삐(pi)’와 ‘아삐(api)’를 더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이 구절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야 할 때 슬픔을 가져오고,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할 때도 슬픔을 가져온다’는 뜻입니다(‘삐야_piya’는 ‘삐_pi’와 동일하고, ‘아삐야_apiya’는 ‘아삐_api’와 동일합니다).


* 우리 모두는 이 진리를 직접 경험으로 압니다. 어떤 사람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으면 그 가족에게는 큰 괴로움을 안겨줍니다. 먼 친척에게는 괴로움이 덜합니다. 비공식적으로 그 망인을 단지 알기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괴로움이 덜합니다. 그리고 그 망인와 관련이 없는 나라의 다른 목적(취재 등)의 누군가에게는 그것은 단지 어떤 뉴스거리일 뿐입니다.


5. 따라서, 이러한 모든 감정적 느낌은 싼하-(tanhā), 즉 어떤 형태의 들러붙음인 탐함(갈망, 좋아함) 또는 성냄(싫어함)로 인해 일어납니다. 이 모든 것은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 때문입니다. 감정적 느낌(보다 정확히 말하면, 감정적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감정적 지각)은 자신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외부의 것을 사용하여 우리 자신의 의지로 행복이나 고통을 일으킵니다.


* 외부의 어떤 것에도 내재된 고통이나 행복은 없습니다. 외부 것과의 감각 접촉이 우리의 가띠(gati, 성향) 및 아-사-와-(āsāvā, 번뇌)에 따라 고통 또는 행복을 초래합니다. 모든 아-사-와-(āsāvā)를 제거한 아라한(Arahant)은 그런 감정적인 반응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6. 그렇다고 하여, 이것은 ‘우리가 가족이나 친구들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이나 친구 등) 이들 관계는 아무런 원인 없이 맺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현재 삶의 원인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래 전에 행해진 원인입니다. 현재 우리는 과거의 원인에서 비롯된 의무(책임)를 이행합니다. 즉 우리는 가족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가족, 자녀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갚아야 할 부채(빚)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Kamma, Debt, and Meditation’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원인(즉, 갈애와 무명)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즉, 미래의 재탄생으로 형성되는 그러한 (갈애와 무명에 의한) 관계를 중단해야 합니다. 우리의 의무(책임) 이행을 확실하게 하면서 재탄생 과정을 멈추는 일을 해야 합니다.


7. 여기서 다시, 많은 사람들이 “내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재탄생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라고 하며 놀라서 기겁합니다. 우리는 삶(내생 포함)이 현재 자신이 누리는 삶보다 훨씬 더 나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심적 경향을 가집니다. 그러나 삶(내생 포함)은 확실히 너무나 훨씬 더 나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How the Buddha Described the Chance of Rebirth in the Human Realm’ 포스트를 보세요.


* 31 영역의 더 넓은 세계와 재탄생 과정(윤회)을 살펴봄으로써 붓다께서 말씀하신 ‘세계관’을 완전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재탄생 과정(윤회)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의문에 빠지지 않고도, 누구나 길(팔정도)을 실천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Living Dhamma’ 섹션(카테고리)를 참조하세요.


8.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를 통한 상카-라(sankhāra, 여기서는 ‘아비상카-라’)의 축적이 어떻게 그러한 다양한 감정적 느낌으로 이끄는지 또한 분명합니다. 좋아함 또는 싫어함으로 무언가에 들러붙으면, 그에 따라 어떤 심적 경향이 생깁니다. 이것이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입니다. ‘빠띠 + 잇짜(pati + icca)’는 ‘사마 + 웁빠-다(sama + uppāda)’로 이어집니다. 이에 대해서는 ‘Paticca Samuppada – Introduction’ 포스트를 보세요.


* 첫 번째 경우, 우리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심적 경향이 생깁니다. 따라서 모든 것이 대상과 잘 어울리면 행복하게 느껴지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슬프게 느껴집니다. 첫 만남에서 우리가 나쁜 인상을 받았던 대상에 대해서는 다른 방식으로 심적 경향이 생깁니다. 우리는 그 대상에 대해 부정적인 심적 경향을 만듭니다.

* 두 경우 모두 감정적 느낌의 강도는 '좋아함' 또는 '싫어함'의 강도에 비례합니다. 사마 웁빠다(sama uppada) 또는 사뭅빠-다(samuppāda)는 질적인 면과 양적인 면에서 모두 의미합니다. ‘빠띠 + 잇짜(pati + icca)’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사마 + 웁빠-다(sama + uppāda)’의 강도가 높아집니다.

* 우리가 습관(가띠, gati)을 형성하는 방식도 이와 같습니다. 한 무리의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맛보는 십대는 그 환경에 들러붙어 있으며, 같은 경험을 다시 기대합니다. 술 마시기를 반복하면 할수록 그는 그 환경에 더 들러붙어 술 마시는 습관을 갖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Habits and Goals’ 포스트와 ‘Sansaric Habits and Asavas’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9.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상호 관련된 여러 요인들의 복잡한 그물망(웹)에서 발생합니다. 오직 붓다만이 그 전체 그림을 볼 수 있고, 그것을 ‘동기가 부여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정말로 이해하고 싶다면,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등의 감탄스러울 만큼 사리에 맞고 내부 모순이 없는 여러 가지 핵심 개념에 대해 숙고하는데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습니다.


연기의 위빠-까(vipāka, 과보) 사이클은 ‘Akusala-Mula Paticca Samuppada’ 포스트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또한, ‘Tanhā – How We Attach Via Greed, Hate, and Ignorance’ 등의 주요 담마 개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 포스트는 ‘Feelings: Sukha, Dukha, Somanassa, and Domanassa’에서 연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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