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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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따와 야타부-따 ㅡ 그것들의 진정한 의미

 

원문 : Living Dhamma 섹션의 ‘Bhūta and Yathābhūta – What Do They Really Mean’ 포스트

- 2017년 12월 28일 작성

 

1. 아타-부-따(yathābhūta)는 일반적으로 (‘참된 의미’에 좀 가까운) ‘참된 본성(true nature)’으로 번역됩니다. 그것으로부터 부-따(bhūta)는 ‘본성/자연(nature)’으로 번역된 것 같습니다. 때때로 부-따(bhūta)는 형성/생성/되어짐(becoming)으로 번역됩니다. 둘 다 잘못되었습니다.

 

  • * 이 낱말들은 또한 야타-부-따 냐-나(yathābhūta ñāna)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논의가 끝날 때쯤이면 그 냐-나(ñāna, 지혜)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2. 부따(bhuta)는 빠알리어(Pāli) 낱말일 뿐만 아니라 싱할라어(Sinhala) 낱말입니다. 말 그대로 ‘유령(ghost)’을 의미합니다. 더 깊은 의미는 ‘사따라 마하- 부-따(satara mahā bhūta)’, 즉 빠따위(patavi), 아-뽀(āpo), 떼-조(tējo), 와-요(vāyo)와 관련이 있습니다.

 

  • * 그 ‘사따라 마하- 부-따(satara mahā bhūta)’를 개별적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것들 모두를 포함하는 가장 작은 단위는 숫다-쉬따까(suddhāshtaka)이며, 그 4 가지와 완나(vanna, varna), 간다(gandha), 라사(rasa), 오-자(ōja)로 구성됩니다. 따라서 숫다-쉬따까(suddhāshtaka)는 순수 옥타드(pure octad), 즉 ‘순수 8요소 단위체(pure unit of eight)’를 의미합니다. 숫다-쉬따까(suddhāshtaka)는 ‘숫다(suddha)’ + ‘아쉬따(ashta)로 합성된 낱말로서, 여기서 숫다(suddha)는 ‘순수한/기본적인’을 의미하고, 아쉬따(ashta)는 여덟(8)을 의미합니다. 숫다-쉬따까(suddhāshtaka)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는 ‘The Origin of Matter – Suddhāshtaka’ 포스트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 * 또한 사따라 마하- 부-따(satara mahā bhūta)는 근본 루-빠(primary rūpa)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완나(vanna, varna), 간다(gandha), 라사(rasa), 오-자(ōja)를 포함한 다른 모든 것들은 그것들로부터 파생되었으며, 우빠-다야 루-빠(upādaya rūpa)라고 불립니다.

 

3. 그 포스트(게시물)에서 언급했듯이, 부-따(bhūta)는 ‘가띠(gati)’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어떤 ‘가띠(gati)’를 기르고 그것들이 강해지면, 그것들은 자와나 찟따(javana citta)를 통해 부-따(bhūta)가 생성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 따라서, 이들 핵심 용어를 잘 이해하려면 이 사이트의 많은 포스트에서 논의된 가띠(gati)(gathi로도 쓰여 있음)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가띠, 바와, 및 자-띠’ 서브 섹션을 참조하세요.

 

4. 과학자들은 이제 아주 작은 규모로 물질의 환상적 본질을 확인했습니다. 톰슨(J.J. Thomson)이 전자를 발견한 1897년까지, 원자는 물질의 가능한 최소 단위로 여겨졌습니다. 그 다음, 원자가 더 작은 단위(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후 그것들도 [하위]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것들의 하위 단위(쿼크 등)는 개별적으로 감지될 수 없습니다.

 

  • * 양자 역학의 출현으로 물질과 에너지의 구분이 모호해졌습니다. 입자의 질량은 속도에 따라 달라지며, 정지 상태일 때의 질량이 가장 작습니다. 광자(빛의 입자)는 정지 상태에서 질량이 0입니다. 즉, 정지(휴지) 질량이 0입니다. 이제 에너지 단위로 기본 입자의 질량을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 모든 물질이 구성되는 ‘가장 작은 단위’를 파악하려고 할 때, 물질은 [잡히지 않는] 환상적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5. 게다가, 주어진(특정) 시간에 기본 입자(소립자)의 정확한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전자가 특정 공간 영역 내에 있을 수 있다고만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자는 유령과 같습니다. 전자는 특정 위치에 고정될 수 없습니다.

 

  • * 빛의 입자인 광자에 있어서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합니다. 광자가 방출되면 나중에 탐지기에서 멈춰야만 그 광자를 찾을 수 있습니다. 소스(방출 지점)에서 검출기에 이르는 광자의 정확한 경로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사이에서는 어디든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지 질량이 0이 아닌 전자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 * 이것을 양자 이상(quantum weirdness, 양자의 기이함)이라고 칭하여 왔습니다. 그 작은 입자들은 유령처럼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6. 그것이 바로 붓다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숫다-쉬따까(suddhāshtaka)는 광자보다 훨씬 작으며 붓다께서는 사따라 마하- 부-따(satara mahā bhūta)가 진정으로 ‘가장 작은 물질 단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붓다께서 그것들을 부-따( bhūta)라고 부르신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결코 그것들을 보거나 개별적으로 감지할 수 없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루-빠(rūpa)의 가장 작은 단위체인 숫다-쉬따까(suddhāshtaka)는 8 개의 하위 단위로 구성됩니다.

 

  • * 더욱이, 이 부-따(bhūta)들은 유정체(대부분은 인간 이상)의 가띠(gati)에서 생겨납니다. ‘The Origin of Matter – Suddhāshtak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거친 성격을 지닌 사람은 빠따위(patavi) 등의 비율이 높은 숫다-쉬따까(suddhāshtaka)를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7. 어느 누구도 가띠(gati)가 어떻게 부-따(bhūta) 또는 숫다-쉬따까(suddhāshtaka) 단계로 변모하는지 보거나 파악할(알아낼) 수 없습니다. 오직 부처님만이 그것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 * 수십 수십억의(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숫다-쉬따까(suddhāshtaka)가 결합되어 루-빠(rūpa)의 마하- 부-따(mahā bhūta) 단계가 됩니다. 브라흐마-(Brahmā)는 마하- 부-따(mahā bhūta)로 만들어진 몸을 지닙니다. 브라흐마-(Brahmā)만이 그런 미세한 루-빠(rūpa)를 볼 수 있습니다.

  • * 많은 마하- 부-따(mahā bhūta)가 결합하면 루-빠(rūpa)의 다-뚜(dhātu) 단계가 됩니다. 데와(deva, 천신)의 몸은 미세한 다-뚜(dhātu) 단계에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몸은 훨씬 더 조밀한 루-빠(rūpa)의 다-뚜(dhātu) 단계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8. 우리가 보는 모든 물질은 그런 조밀한 다-뚜(dhātu)로 만들어졌습니다. 바위는 대부분 빠따위(patavi)가 있는 다-뚜(dhātu)를 가집니다. 물에는 대부분 아-뽀(āpo)가 있습니다. 불에는 대부분 떼-조(tējo)가 있습니다. 바람에는 대부분 와요(vāyo)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 물, 불, 바람을 개략적으로 빠따위(patavi), 아-뽀(āpo), 떼-조(tējo), 와-요(vāyo)라고 합니다.

 

9. 누군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의 참된 본질에 대해 위에서 논의한 것을 이해할 때, 그 사람은 야타-부-따 냐-나(yathābhūta ñāna)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단지 읽는 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 냐-나(ñāna)는 더 세세한 부분을 이해함에 따라 자랍니다.

 

  • * 야타-(yathā)는 ‘참된 본질’을 의미합니다. 야타-부-따(yathābhūta)는 마음을 통해 일어나는 물질의 참된 본질, 즉 부-따(bhūta)의 참된 본질(true nature)을 의미합니다. 물론 더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비담마(Abhidhamma)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 *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위에서 논의한 대략적인 인식을 갖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더 배워감에 따라 세부 사항이 자동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10. 이것이 붓다께서 그 유명한 담마빠다(Dhammapada, 법구경) 게송(gāthā, 가-타-)에서 “마노- 뿝반가마- 담마-, 마노- 셋따- 마노-마야-(manō pubbangamā dhammā, manō settā manōmayā)”라고 말씀하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 *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에 그 기원이 있으며, 모두 마음에 의해 설정되고 마음에 의해 준비된다”는 의미입니다.

 

11. 숫다-쉬따까(Suddhāshtaka) 자체는 비활성입니다. 그것들은 ‘깜마자 루-빠(kammaja rūpa)’의 형성 과정에서 마음에 의해 에너지가 생겨 생명을 얻습니다. 이 에너지는 회전/공전(paribramana, 빠리브라마나)과 스핀/자전(bramana, 브라마나)으로 내재됩니다. 내재된 에너지가 소진(고갈)되면, 회전(공전)과 스핀(자전)이 멈추고 다시 비활성 상태가 됩니다.

 

  • * 예를 들어, 새로운 존재(바와)를 위한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는 쭈띠-빠띠산디(cuti-patisandhi) 순간에 깜마자 루-빠(kammaja rūpa)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 수명 동안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는 자전과 공전을 계속합니다. 내재된 업 에너지(kammic energy)가 소진(고갈)되면 그 움직임은 멈추고 바와(bhava)가 끝납니다. 그 때, 새로운 바와(bhava)를 위한 새로운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가 업 에너지에 의해 형성됩니다.

 

12.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는 왓투 다사까(vatthu dasaka)로도 불리며, 여기서 다사까(dasaka)는 10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 또는 왓투 다사까(vatthu dasaka)가 비활성 숫다-쉬따까(suddhāshtaka)의 8부분 외에 추가로 두 가지 에너지 모드(자전 및 공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10 유닛으로 된) 다사까(dasaka)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 * 이 추가된 자전과 공전은 비활성 숫다-쉬따까(suddhāshtaka)에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그 에너지의 힘은 자와나 찟따(javana citta)(마음)에 의해 주어집니다. 깜마 비-자(kamma bīja)에 더 많은 에너지가 주어질수록, 그로부터 일어나는 바와(bhava)(하다야 왓투, hadaya vatthu)를 더 오래 지속시킬 것입니다.

  • * 쭈띠-빠띠산디(cuti-patisandhi)의 순간에 형성된 5가지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 즉 짝쿠(cakkhu), 소-따(sōta), 가나(ghana), 지와(jivha), 까-야(kāya) 루-빠(rūpa)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다사까(dasaka)인 2가지 바와 루-빠(bhava rūpa)와, 나와까(navaka)인 지위띤드리야 루-빠(jivitindriya rūpa (단지 ‘자전, bramana’만 있음)가 있습니다. 공전과 자전의 다른 모드가 어떻게 이들 9가지 생명 형성 기본 유닛을 일으키는지는 ‘세상을 감지하는 간답바 - 육체와 함께 그리고 육체 없이’ 포스트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 * 그런데, 깜마자(kammaja)라는 낱말은 ‘깜마(kamma)’ + ‘자(ja)’에서 유래하며, 여기서 ‘자(ja)’는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 9가지 깜마자 루-빠(kammaja rūpa)는 깜마 에너지(kammic energy)에 의해 생성됩니다.

 

13. 이제 우리의 무거운 육체 자체는 완전히 비활성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실제 생명은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와 5가지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를 가진 간답바(gandhabba)에 있습니다. 우리 몸의 움직임은 간답바(gandhabba)의 까-야 다사까(kāya dasaka)에 의해 제어되며, 그것은 온 몸에 걸쳐 매우 미세한 그물처럼 퍼져 있습니다.

 

  • * 육체가 죽을 때, 이 생명을 유지하는 간답바(gandhabba)는 몸을 떠나고 육체는 비활성이 되어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 * 유체이탈 경험(OBE, Out-of-body Experience)의 경우에는, 간답바(gandhabba)가 육체를 떠나더라도 (‘아스트랄 투사’ 용어인 ‘실버 코드_silver cord’에 의해) 여전히 육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육체가 부패하기 시작하지 않습니다. ‘Manomaya Kaya and Out-of-Body Experience (OBE)’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4. 그러므로, 31영역의 모든 유정체에서 실제 생명은 최대 5가지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가 수반되는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라는 초미세 생명 형태에 있습니다. 아루빠와짜라 브라흐마(arupavaccara brahma) 영역에는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만 있습니다. 루빠와짜라 브라흐마(rupavacara brahma) 영역에서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는 짝쿠(cakkhu) 및 소-따(sōta)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를 수반합니다. 다른 모든 영역에서는 5가지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가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와 함께 존재합니다.

 

  • * 유일한 예외는 아산냐(asaña) 영역으로, 그곳에서는 지위띤드리야(jivitindriya)가 까-야 다사까(kāya dasaka)만 유지됩니다(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하다야 왓투_hadaya vatthu’가 없음).

  • * 다음은 야타-부-따 냐-나(yathābhūta ñāna)의 또 다른 매우 중요한 인자입니다. 즉, 모든 유정체는 부-따(bhūta)(유령)와 같으며, 본질적으로 생명은 볼 수 없고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초미세 몸에 의해 유지됩니다. 모든 영역의 모든 유정체는 윤회 규모(samsāric scale)에서 보면 단명합니다. 윤회 규모(samsāric scale)에서 수조 년(trillion years)은 바다의 물 한방울과 같습니다.

 

15. 우리 몸의 참된 본질에 대한 이 야타부-다 냐-나(yathābhūta ñāna)는 또한 우리 몸에 대한 ‘가나 산냐-(ghana saññā)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람은 육체에 ‘자아(self)’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각자의 조밀한 몸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 * (대부분의 현재 과학자들과 철학자들과 같이) 웃쩨-다 딧티(uccēda diṭṭhi)를 가진 자들은 우리 육체(그리고 그것의 뇌)가 거기에 있는 전부라고 믿습니다.

  • * 사앗사따 딧티(sāssata diṭṭhi)를 가진 자들은 영원히 사는 정신적 몸이 있다고 믿습니다.

 

16. 붓다께서는 둘 다 잘못된 견해라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정신적 몸이 있지만, 그것은 바와(bhava)에서 바와(bhava)로 매우 크게 바뀝니다. 각자는 당분간 데와(deva, 천신)나 인간일 수 있지만 다음 바와(bhava)는 아빠-야-(apāyā)에 있을 수 있습니다.

 

  • * 우리 육체에는 ‘내 것’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 * 이 사실을 이해하면,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한 네 가지 조건 중의 하나인)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가 제거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제거하는 한 가지 방식일 뿐입니다.

  • * 이 측면은 그 중에서도 ‘Mūlapariyāya Sutta (MN 1)’, ‘Kaccānagotta Sutta (SN 12.15)’, 및 ‘Mahā Hatthipadopama Sutta (MN 28)’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17. 이제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물질에 대한 선구자인 ‘사따라 마하- 부-따(satara mahā bhūta)’가 마음으로 만들어졌으며 한시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부-따(bhūta)(유령)입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이 그것들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단단하고 만질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 모든 것은 정말로 ‘유령과 같습니다’.

 

  • * 이 진짜 ‘유령같은’ 본질에 대한 앎을 ‘야타-부-따 냐-나(yathābhūta ñāna)’라고 합니다. 그 앎을 지니고 있을 때, ‘아누 부-땅(anu bhūtam)’이라고 불리는 그 올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 * 이 참된 본질을 알지 못할 때, ‘나 아누 부-땅(na anu bhūtam)’이라고 하며, 그것은 ‘아나누부-땅(ananubhūtam)’으로 운이 맞춰집니다. 많은 핵심 빠알리(Pāli) 낱말이 그와 같이 운이 맞춰져 구성된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예를 들어, ‘아낫따(anatta)’는 ‘나(na)’ + ‘앗따(atta)’에서 운이 맞춰져 한 낱말로 된 것입니다. ‘아낫따 - 어느 앗따의 반대말일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아난따리야(anantariya)는 ‘나(na)’ + ‘안(an)’ + ‘안따라(antara)에서 운이 맞춰져 한 낱말로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낱말은 문법적으로 분석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빠알리어(Pāli) 전문가들이 그런 낱말들을 해석하는 데 잘못되고, 많은 핵심 용어들을 해석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 * 이 ‘아나누부-땅(ananubhūtam)’이라는 낱말은 위 # 16에서 언급된 숫따들을 포함하여 여러 핵심  숫따(sutta)에 나옵니다.

 

18. 하나의 좋은 예가 유명한 ‘브라흐마니만따니까 숫따(Brahmanimantanika Sutta, Majjhima Nikaya 49)’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윈냐-낭 아니닷사낭 아난땅 삽바또 빠방, 땅 빠타위야- 빠타왓떼나 아나누부-땅, 아-빳사 아-빳떼나 아나누부-땅, 떼잣사 떼잣떼나 아나누부-땅, 와-얏사와-얏떼나 아나누부-땅, 부-따-낭 부-땃떼나 아나누부-땅, 데와-낭 데왓떼나 아나누부-땅, 빠자-빠띳사 빠자-빠띳떼나 아나누부-땅, 브라흐마-낭 브라흐맛떼나 아나누부-땅, 아-밧사라-낭 아-밧사랏떼나 아나누부-땅, 수바낀하-낭 수바낀핫떼나 아나누부-땅, 웨합팔라-낭 웨합팔랏떼나 아나누부-땅, 아비붓사 아비붓떼나 아나누부-땅, 삽밧사 삽밧떼나 아나누부-땅..”  

(“Viññāṇaṃ anidassanaṃ anantaṃ sabbato pabhaṃ, taṃ pathaviyā pathavattena ananubhūtaṃ, āpassa āpattena ananubhūtaṃ, tejassa tejattena ananubhūtaṃ, vāyassavāyattena ananubhūtaṃ, bhūtānaṃ bhūtattena ananubhūtaṃ, devānaṃ devattena ananubhūtaṃ, pajāpatissa pajāpatittena ananubhūtaṃ, brahmānaṃ brahmattena ananubhūtaṃ, ābhassarānaṃ ābhassarattena ananubhūtaṃ, subhakiṇhānaṃ subhakiṇhattena ananubhūtaṃ, vehapphalānaṃ vehapphalattena ananubhūtaṃ, abhibhussa abhibhuttena ananubhūtaṃ, sabbassa sabbattena ananubhūtaṃ..”)

 

번역: “윈냐-나(viññāna)는 보이지 않고, 무한하며, 모두에게 재탄생 과정으로 이끈다. 윈냐-나(viññāna)로는 빠따위(patavi), 아-뽀(āpo), 떼-조(tējo), 와-요(vāyo), 부-따(bhūta), 데와(deva), 빠자빠띠 브라흐마(pajapati brahma), 아밧사라 브라흐마(abhassara brahma), 수바낀하 브라흐마(subhakinha brahma), 웨합팔라 브라흐마(vehapphala brahma), 등과  이 세상 모든 것(삽바, sabba)의 참된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

 

  • * 각자는 아라한과(Arahantship)을 얻을 때까지 오염된 의식, 즉 윈냐-나(viññāna)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진정한 ‘유령같은’ 본질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즉, 각자의 야타-부-따 냐-나(yathābhūta ñāna)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 * 우리는 다음 포스트(‘아니닷사나 윈냐-나와 그 진정한 의미’)에서 “윈냐-낭 아니닷사낭 아난땅 삽바또- 빠방 ..(Viññāṇaṃ anidassanaṃ anantaṃ sabbatō pabhaṃ ..)” 구절의 첫 부분을 논의할 것입니다. 이 짧은 구절은 흔히 잘못 번역됩니다.

 

19. 그것(야타-부-따)이 나타나는 또 다른 주요 숫따(sutta)로서, ‘살라-야따나 위방가 숫따(Saḷāyatana Vibhaṅga Sutta, MN 137)’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루-빠낭 뜨웨와 아닛짜땅 위디뜨와- 위빠리나-마위라-가니로당, ‘뿝베 쩨와 루-빠- 에따라히 짜 삽베 떼 루-빠- 아닛짜- 둑카- 위빠리나-마담마-’띠 에와메땅 야타-부-땅 삼맙빤냐-야 빳사또 웁빳자-띠 소마낫상.”

(“Rūpānaṃ tveva aniccataṃ viditvā vipariṇāmavirāganirodham, ‘pubbe ceva rūpā etarahi ca sabbe te rūpā aniccā dukkhā vipariṇāmadhamm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passato uppajjāti somanassaṃ.”)

 

대략적인 번역: “존재하여 왔거나 지금 존재하는 모든 루-빠(rūpa)는 ‘유령과 같은 일시적인 본질’을 지니고 있다. 그 이유 때문은 그것들은 예기치 않게 변하고(viparinama, 위빠라나마), 아닛짜(anicca) 특성을 가진다. 이 참된 본질을 이해하면, 자신의 마음 속에 기쁨(소마낫사, somanassa)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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