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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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낫따 – 어느 앗따의 반대말일까?

 

원문: Key Dhamma Concepts 섹션의 ‘Anatta – the Opposite of Which Atta?’ 포스트

- 2017년 3월 17일; 2017년 11월 4일 개정; 2021년 6월 1일 개정

 

‘앗따(atta)'라는 낱말의 다른 사용법을 신중하게 검토함으로써, 어떻게 ‘아낫따(anatta)'라는 낱말이 ‘무아(no-self)’로 잘못 번역되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 * ‘앗따-(attā, 끝 글자가 장음)’와 다른 ‘앗따(atta)’가 있습니다. 아낫따(anatta)는 앗따-(attā)의 반대말이 아니라, 앗따(atta)의 반대말입니다.

  • * 산스크리트 낱말인 아나-뜨마(anātma)가 아낫따(anatta)로 잘못 해석되었습니다. 산트크리트 낱말인 아나-뜨마(anātma)는 무혼(no-soul)을 의미하지만, 붓다께서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유사하게, (‘무상_impermanence’을 의미하는) 아니트야(anitya)는 산스크리트 낱말이지만, 그것은 빠알리 낱말인 아닛짜(anicca)가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 * 이에 대해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1. ‘삭까-야 딧티는 '개성(나)'이라는 견해인가?’ 포스트에서, 쭐라웨달라 숫따(Culavedalla Sutta)의 핵심 구절에 있는 앗따(atta)라는 낱말이 잘못 해석될 때,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라는 용어가 어떻게 잘못 번역되는지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앗따(atta)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 * 하나의 의미는 ‘앗따- 히 앗따노- 나-토(attā hi attanō nātho, 나는 오직 나 자신이 구원할 수 있다)의 첫 번째 구절에서와 같이 ‘나’ 또는 ‘나 자신’이며, 이는 위의 절에 함축된 의미입니다.

  • * 앗따(atta)의 다른 의미는 '제어되는‘ 또는 ‘실체(본질) 있는’이며, 그 반대(na + atta)는 띨락카나(tilakkkhana, 삼특상) 중의 아낫따(anatta)입니다. 아낫따(anatta)는 ‘재탄생 과정(윤회)에서 마음대로 할 수 없다(어쩔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 * 이 두 가지 의미는 ‘앗따- 히 앗따노- 나-토-’ 포스트에 설명되어 있으며, ‘빠알리 사전들 ㅡ 그것들은 믿을 만한가?’ 포스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2.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용어의 정의를 암기하는 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해야 할 것은 산냐(saññā)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뿐입니다. 산냐(saññā)에 대해서는 ‘산냐-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앗따(atta)/아낫따(anatta)는 띨락카나(tilakkkhana, 삼특상)와 관련하여 중요한 빠알리(pāli) 용어이므로 정확한 산냐-(saññā, 개념)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후 포스트에서 앗따(atta)/아낫따(anatta)의 몇 가지 다른 중요한 사용법을 언급할 예정입니다.

 

A. 사람본질(진실)로 대비하여 본 앗따(atta)

 

3. ‘자아(self)’와 ‘무아(no-self)’에 관한 많은 오해는 빠알리어 단어인 ‘앗따(atta)’가 관습적인 의미와 더 심오한 의미(사용되는 곳에 따라 의미가 다름)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체계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이해될 수 있습니다..

 

  • * ‘앗따-(attā, 끝 글자가 장음)’는 사람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됩니다. 그 앗따-(attā)의 부정어(반대말)는 없습니다.

  • * 싱할라 문자로, 앗따-(attā)는 ‘අත්තා’로 표시되며, 그것이 싱할라어로 쓰여진 빠알리 삼장에 나타나는 방식입니다.

  • * 앗따-(attā)는 사람을 나타내는 이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아낫따(anatta)는 그 앗따-(attā)의 반대말로는 결코 사용되지 않습니다.

  • * 앗따-(attā)의 발음:

https://puredhamma.netlify.app/media/Attaa.mp3

 

4. ‘앗따(atta, 끝 글자가 단음)’라는 말은 ‘실체(본질)’ 또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 부정은 ‘아낫따(anatta)’입니다.

 

  • * 싱할라 문자로, 앗따(atta)와 아낫따(anatta)는 ‘අත්ථ’와 ‘අනත්ථ’로 표시되며, 그것이 싱할라어로 쓰여진 빠알리 삼장에 나타나는 방식입니다.

  • * 앗따(atta)와 아낫따(anatta)의 발음:

https://puredhamma.netlify.app/media/Atta-and-anatta.mp3 

  • * 위 두 번째 의미와 밀접하게 관련된 세 번째 의미도 있습니다. 세 번째 의미는 주로, 앗타(attha)로 쓰여졌을 때 마지막 부분을 강조(ta → tha)하는 말입니다.

  • * 앗타(attha)의 상할라어 낱말은 ‘진실’ 또는 ‘도리에 맞는 것’을 의미하는 ‘아르타(artha)’입니다. 싱할라어로 그 반대말은 ‘아나르타(anartha)’입니다. ‘아나르타(anartha)’는 ‘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 * 싱할라 문자로, 아르타(artha)와 아나르타(anartha)는 ‘අර්ථ’와 ‘අනර්ථ’로 표시됩니다.

  • * 아르타(artha)와 아나르타(anartha)의 발음:

https://puredhamma.netlify.app/media/Artha-and-anartha.mp3 

 

[이 낱말들의] 발음 차이를 파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 아낫따(anatta)는 두 번째(앗따, atta)와 세 번째(앗타, attha)의 부정어(반대말)이며, 'na' + 'atta' 로 합성되어 ‘anatta’로 운이 맞춰진 낱말입니다. 아낫따(anatta)의 의미는 실체(본질)가 없고, 궁극적으로는 진실되지 않다[실속이 없다]는 것입니다.

 

5. 아낫따(anatta) 또는 아나르타(anartha)인 것에 관여된 자는 나-타(nātha)의 반대인 아나-타(anātha, 어찌할 도리 없음)가 될 것입니다. ‘앗따- 히 앗따노- 나-토-’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나-타(nātha)’는 닙바-나(Nibbāna)를 의미하는 또 다른 말입니다.

 

  • * 이 세상에서 피난처를 찾으려하는 사람은 장기적으로 결국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게(난감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유일한 피난처(나-타, nātha)는 닙바-나(Nibbāna), 즉 재탄생 과정(윤회)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 * 그래서, 빠알리어에서 앗따(atta)/아낫따(anatta)는 싱할라어로 아르타(artha)/아나르타(anartha)로 번역될 수 있으며, 두 가지 사용법 모두 더 심오한 의미를 전달하며, 그 심오한 의미는 ‘본질/본질없음’, ‘진실/거짓’, ‘유용한/ 쓸모없는’ 등을 나타냅니다.

 

6. 반면에, ‘앗따-(attā, 끝 글자가 장음)’라는 말은 관습적인 의미에서만 ‘나’로서 사용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하기 위해, 우리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와 같은 말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사람’은 관습적인 의미에서만 존재합니다.

 

  • * 그 부정, 즉 앗따-아님('not attā')을 표현하는 단일의 빠알리 낱말은 없습니다. ‘비인간(non-person)’이라는 [그런 의미의] 낱말이 있다면, 정말 그런 식으로 사용될 수는 없습니다.

  • * 이 포스트의 #11과 #12에서 볼 수 있듯이, ‘나’ 또는 ‘자아’를 나타내는 다른 낱말은 ‘마마(mama), '아스미(asmi)' 또는 ‘메-(mē)’입니다.

 

7. 그래서, ‘사람’ 또는 ‘자아’의 관습적인 의미인 ‘앗따-(attā)’의 반대로서 아낫따(anatta)로 단지 번역하려고 함으로써 중대한 잘못이 생겼습니다.

 

  • * 아낫따(anatta)라는 낱말은 ‘진실 없음’ 또는 ‘본질 없음’이라는 깊은 의미로 항상 사용되었습니다. 아낫따(anatta)는 31영역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에서는 본질이나 진실이 없다는 것을 가르키는 사실입니다.

  • * 관습적 의미에서 ‘앗따-(attā, 끝 글자가 장음)’는 ‘사람’을 나타내는데 사용됩니다. 그것의 반대 의미를 가지는 낱말은 단일의 빠알리 낱말은 없습니다.

 

8. 띨락카나(Tilakkhana)에서 아낫따(anatta)와 관련하여, '앗따(atta)’는 또한 ‘궁극적 진리’(싱할라어와 산스크리트어에서는 ‘사트야_sathya')로 기술되어 질 수 있습니다. 그 진리는 아닛짜(anicca) 속성입니다. ‘이 세상 31영역의 어떤 곳에서도 (궁극적으로는) 행복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 * 그래서, 이 모든 세상은 본질이 없고 추구할 만한 것이 어떤 것도 없는, 아낫따(anatta) 속성(본질)입니다. 따라서, 그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하면 지치고 고통스럽게 될 뿐입니다.

  • * 이 불가능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은 정말로 난감합니다.

  • * 위에서 언급한 모든 것은 아낫따(anatta)라는 말의 의미를 전합니다. 사람들이 [이해하고] 흡수해야 하는 것은 그 산냐(saññā, 지각)입니다.

 

9. 그 속성이 닛짜(nicca, 행복으로 이끌 수 있는)라고 가정하고 이 세상에서 즐거운 것들을 추구할 때, 둑카(dukkha, 고통, 괴로움)를 받게 될 것이고, 그래서 아낫따(anatta, 어떻게 할 수 없이 난감함)입니다. 이것은 핵심 포스트인 ‘아닛짜, 둑카, 아낫따 - 잘못된 해석’ 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 * 세상이 닛짜(nicca)와 앗따(atta) 속성을 가진다고 가정하고 세상 것들을 추구할 때, 사람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행)를 하기가 쉽습니다.

  • * [세상의] 그 속성이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라는 것을 깨달을 때, 세상 것들을 추구하더라도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행)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이는 몸으로 행하는 3가지 종류의 불선행과 말로 행하는 4가지 종류의 불선행이 지니는 잠재적 문제를 쉽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이 바른길(세간의 팔정도)의 첫 단계입니다.

  • * 도덕적인 삶으로 세간의 팔정도에 따라 행할 때, 마음이 깨끗하게 되기 시작하여 많은 밋차- 딧티(micchā ditthi, 그릇된 견해, 사견)을 버리게 됩니다. 

  • * 그 단계(마음청정 단계)에서,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의 참된 의미에 대한 가르침을 접하게 될 때, 그것을 이해할 수 있고 로꼿따라(lokottara, 출세간)  (성스런) 길(팔정도)을 시작하게 됩니다.

  • *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에 이르러 출세간(성스런) 팔정도가 시작될 때, 마음에 의해 행해지는 아꾸살라(akusala, 불선행)와 진정으로 맞붙어 씨름하기 시작합니다.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행)는 아라한 단계에서만 모두 완전히 제거됩니다. 그 상태(10가지 불선행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가 앗따(atta), 즉 나-타(nātha) 상태이며, 더 이상 아낫따(anatta)가 아닙니다.

 

10.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행)에 이끌려서 ‘그것이 가치있다고 추구하는 것’이 실속없는 것이고 결실을 주지 않는 것임을 깨달을 때까지, 사람은 많은 둑카(dukkha, 고통, 괴로움)를 겪게 될 것입니다.

 

  • * 둑카 삿짜(dukkha sacca)의 성스런(고귀한) 진리는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행)을 거부하고 ‘선하고 도덕적인 생활’, 즉 다사 꾸살라(dasa kusala, 10가지 선행)를 행함으로써만 고통(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남을 보는 것입니다.

  • * 닙바-나(Nibbāna)에 이르게 되었을 때, 이 31영역 세상의 특성인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 상태의 반대인 닛짜(nicca), sukha(수카) 및 앗따(atta) 상태가 됩니다.

 

B. 아낫따 락카나 숫따(Anatta Lakkhana Sutta)에 대한 검토

 

11. ‘나의 것(mine)', '나(I)’, 및 ‘나에게(to me)'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여러 가지 빠알리(및 싱할라) 낱말(mama, asmi, mē)이 있습니다. 앗따-(attā)는 또한 관습적인 의미에서 ‘자기 자신’을, 그리고 더 심오한 의미에서 ‘실속 있음(본질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됩니다. 그 모든 사용에서 차이를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 이 낱말들은 ‘아낫따 락카나 숫따(Anatta Lakkhana Sutta)’에 있으며, 이 숫따(sutta)는 더 심오한 의미에서 앗따(atta)와 그 반대말인 아낫따(anatta)의 개념이 언급/논의된 핵심 숫따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검토하고자 하는 것과 관련된 핵심 구절이 있습니다.

 

“땅 낑 만나-따, 빅카웨, 루빵 닛짱 와- 아니짱 와- 띠?(tam kim mannāta, bhikkhave; rupam niccam vā aniccam vā ti?)”

의미: “빅쿠들이여; 루빠(물질 존재)는 닛짜(nicca, 계속 만족하게 유지될 수 있음)인가, 아닛짜(anicca, 계속 만족하게 유지될 수 없음)인가?

 

- “아닛짱, 반떼(aniccam, Bhante).”

의미: - “아닛짜(anicca, 계속 만족하게 유지될 수 없음)입니다. 부처님.”

 

“양 빤 아닛짱 둑캉 와- 숙캉 와- 띠?(yam pan aniccam dukham vā sukham vā ti?)”

의미: “그런 존재는 고통(괴로움)에 이르게 하겠는가, 행복(즐거움)에 이르게 하겠는가?

 

- “둑캉, 반떼(dukham, Bhante).”

의미: - “고통(괴로움)에 이르게 합니다. 부처님.”

 

“양 빤 아닛짱 둑캉 위빠리나-마 담마, 깔랑 누 땅 사마누빳시뚱; ‘에탄 마마, 에-소 하마스미, 에-소 메- 앗따 띠?’(yaṃ pan aniccam dukham viparināma dhamman, kallam nu tam samanupassitum: ‘etan mama, ēso hamasmi, ēso mē atta ti?’)”

의미: "계속 만족하게 유지될 수 없고 고통(괴로움)에 이르게 하고 위빠리나-마 담마(viparināma dhamma, 예기치 않게 변화하는 담마)인 그러한 존재를 ‘나의’ 또는 ‘나의 것’으로 마땅히 여기거나 나의 앗따(atta, 실속이 있음)로 취할 수 있을 것인가?

 

- “네헤뚬, 반떼(N’ hetum, Bhante).”

의미: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부처님.”

 

12. 그 마지막 구절은 붓다께서 ‘나를’, ‘나’, ‘나 자신’을 의미하는 데 사용하신 낱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 * 이 낱말을 가진 이 핵심 구절은 ‘에땅 마마, 에소항 아스미, 에소 메- 앗따-띠(Etam mama, eso'ham asmi, eso mē attāti)’입니다. 이 구절은 ‘그것은 나의 것이고, 그것은 , 또는 나의 앗따-(나의 본질)’라는 뜻입니다.

  • * 오늘날에도 ‘나’ 또는 ‘나 자신’을 뜻하는 싱할라어는 마마(mama)이고, ‘아스미(asmi)는 ’아스미 마-나(asmi māna)’에 사용된 것과 같이 ‘나’ 또는 ‘나의 것’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아스미 마-나(asmi māna)는 아라한 단계에서 제거되는 마지막 상요-자나(samyōjana, 족쇄) 중의 하나입니다.  ‘빠알리 사전들 ㅡ 그것들은 믿을 만한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또한, ‘아낫따락카나 숫따 내의 아낫따-, 영혼이나 아-뜨마 없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3. 잘못된 딧티(diṭṭhi)의 첫 번째 유형, 즉 ‘나는 나의 육체다’(그리고, ‘나는 나의 웨다-나다’ 등)라는 생각은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를 제거함에 따라 도달되는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나’에 대해 훨씬 깊게 박혀있는 샨나-(saññā)는 아라한 단계에서만 제거됩니다. ‘삭까-야 딧티는 '개성(나)'이라는 견해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반면에, 아낫따(anatta)는 올바른 산냐-(saññā)입니다. 이는 (i) 31영역 세상은 어떤 실속(본질)도 없고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없고, (ⅱ) 그래서 이 세상에서 그러한 궁극적 진리를 찾으려고 애쓰는 자는 어찌할 수 없다는 산냐-(saññā)입니다.

  • * 이것이, 담마를 설명하는 법사는 숫따(sutta, 경)에서 사용된 핵심 용어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빠띠삼비다- 냐-나(patisambhidā ñāna, 분석적 지혜)가 최소한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삭까-야 딧티는 '개성(나)'이라는 견해인가?’ 포스트에서 또 다른 중요한 예를 살펴보았습니다.

  • * 빠알리 사전만 참조하여 거기에 있는 의미를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숫따 해석 - 웃데-사, 닛데-사, 빠띠닛데-사’ 포스트와 ‘빠알리 사전들 ㅡ 그것들은 믿을 만한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당연히, 그것이 앗따-(attā, 끝글자가 장음)의 (관습적) 의미를 잘못 선택하여 아낫따(anatta)를 무아(no-self)로 잘못 번역한 것의 기원인 것 같습니다.

 

C. 아-트마/아나-트마는 어떻게 되었는가?

 

14. 이 문제의 마지막 부분은 아-트마(āthma)/아나-트마(anāthma)라는 용어입니다. 이들은 산스크리트 낱말이고 빠알리어 낱말은 아닙니다.

 

아-트마(āthma)와 아나-트마(anāthma)의 발음

https://puredhamma.netlify.app/media/Aathma-and-anaathma.mp3 

 

  • * 사람들이 앗따(atta)/아낫따(anatta)를 산스크리트어와 싱할라어에서 사용되는 아-트마(āthma)/아나-트마(anāthma)로 번역하기 시작한 때부터 혼란이 일어났습니다.(산스크리트어의 많은 낱말이 싱할라어에서 채택되었는데, 이것은 용어 사용을 더 혼란되게 하였으므로 [담마의 이해면에서] 불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 싱할라 문자로, 아-트마(āthma)/아나-트마(anāthma)는 ‘ආත්ම’와 ‘අනාත්ම’로 표시됩니다.

  • * 산스크리트어에서, 아-트마(āthma)는 기본적으로 죽지 않고 ‘아브라함 계통 종교(Abrahamic religion)’의 창조주에 해당하는 마하- 브라흐마(Mahā Brahma)에 마침내 합체되는, 파괴될 수 없는 실체인 영혼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빠알리 용어인 앗따(atta)와 앗따-(attā)들과는 다릅니다.

  • * 앗따(atta)/아낫따(anatta)는 여러가지 근본 개념을 가진 심오한 개념입니다.  아낫따(anatta)의 한가지 의미는 변하지 않는 영혼/아-트마(ātma)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낫따(antta)는 아나-뜨마(anātma)(ātma의 반대)의 개념을 포함합니다. ‘ '아낫따락카나 숫따' 내의 아낫따-, 영혼이나 아-뜨마 없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행)와 아낫따(anatta) 사이의 관계는 ‘다사 아꾸살라와 아낫따 - 결정적인 연결’ 포스트에서 논의됩니다. 이로서 이 논의가 완결될 것이며, ‘아낫따 산냐-(anatta saññā)’를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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