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상카-라와 그 진정한 의미
원문 : Living Dhamma 섹션의 ‘Sankhāra – What It Really Means’ 포스트
상카-라(sankhāra)는 감각 입력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초기 반응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채 일어나며 그 순간의 끊어지지 않은 상요자나(saṁyojana)와 가띠(gati)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상카-라들은 상깝빠(saṅkappa) 범주에 속합니다. 의식적 반응은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에서 일어나는데, 여기서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 생성은 두 단계 모두에서 역할을 합니다.
2017년 2월 25일; 2025년 4월 19일 재작성
상카-라는 단지 부도덕한 행동, 말, 및 생각만을 지칭한다
1. 상카-라(sankhāra)라는 낱말은 ‘산(san)’ + ‘카-라(khāra)’, 즉 산(san)(라-가, 도사, 및 모하)을 수반하는 행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삼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모든 상카-라(sankhāra)는 마음에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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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 입력에 들러붙음은 라-가, 도사, 또는 모하가 함께 하는 생각을 생성하는 근본 원인입니다. 그런 생각은 또한 부도덕한 말과 행동으로 이어지며, 그것은 미래에 그 결과(위빠-까)를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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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도덕한 생각은 마노 상카-라 또는 와찌 상카-라일 것입니다.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는 더 강력하며 부도덕한 말과 행동을 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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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는 육체 행위를 통해 깜마를 축적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데, 여기서 까-야(kāya)는 육체를 지칭하지 않습니다. 예전 포스트들에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지만, 향후 포스트에서 이 부분을 설명하겠습니다.
2. 새로운 감각 입력이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일어날 때는 마노 상카-라만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일어나고, 해당하는 상요자나가 그대로 있으면 자동적입니다. 그 마노 상카-라는 특별한 명칭을 가지는데, 상깝빠(saṅkappa)입니다. 예를 들어, 까-마 라-가 상요자나(kāma rāga saṁyojana)가 끊어지지 않고 있는 한, 까-마 상깝빠(kāma saṅkappa)는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그것은 ‘Nibbedhika Sutta (AN 6.63)’에서 “Saṅkappa rāgo purisassa kāmo”로 언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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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 라-가 상요자나(kāma rāga saṁyojana)가 마음에서 제거되지 않았다면 까-마 상깝빠(kāma saṅkappa)가 자동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제거하는 것]은 순전히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한데, ‘왜곡된 까-마 산냐-’가 까-마 라-가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알라라 깔라마(Alara Kalama)와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amaputta) 같은 고대 요기(수행자)들은 까-마 라-가를 제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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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 입력이 강하면, 마음은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로 진전되는데, 여기서 와찌 상카-라와 함께 의식적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 의식적 생각은 마음, 말, 및 육체 행위를 통해 새로운 깜마 축적으로 이어집니다. 알라라 깔라마 같은 고대 요기들은 깊은 정글에 자신들을 고립시켜 나와 깜마 단계를 억제할 수 있었지만, 뿌라-나 깜마 단계가 멈출 때까지 ‘까-마 라-가 상요자나’는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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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 사항은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아라한들은 ‘순수한 상카-라’만 생성한다
3. 도과(magga phala)가 없는 모든 유정체는 삿따(satta)(빠알리어에서, 단수는 ‘satto’임)입니다. 더 높은 도과를 성취함에 따라 그의 마음은 ‘삿따 상태’에서 멀어져 벗어납니다. 아라한은 ‘삿따 상태’를 완전히 극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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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tta Sutta (SN 23.2)’ : “라-다여, 물질적 형상(rūpa)에 대한 바람(chanda), 라-가(rāga), 높은 가치로 인식함(nandī)이 있을 때, 형상에 대한 집착(satto)이 있고, 강한 집착(visatto)이 있으며, 그 때 무지한 유정체(satto)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웨다나-(vedanā) ... 산냐-(saññā) … 상카-라(saṅkhāra) … 윈냐-나(viññāṇa)에 대한 바람(chanda), 라-가(rāga), 높은 가치로 인식함(nandī)이 있을 때, 그 때 무지한 유정체(satto)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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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해, 빤짝칸다(pañcakkhandhā)에 대한 우빠-다-나(upādāna)가 있는 한(즉, 빤쭈빠-다-낙칸다-가 있는 한), ‘무지한 유정체’, 즉 삿따(satta)가 있습니다. 그 [무지한] 유정체는 이 세상의 참된 본질, 즉 ‘야타-부-따 냐-나(yathābhūta ñāṇa)’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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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 사항은 ‘다섯 무더기와 띨락카나 ㅡ 소개’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4. 그러나, 아라한도 웨다나-, 산냐- 등과 함께 감각 입력을 경험하므로, 아라한도 상카-라를 생성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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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은 ‘까-마 다-뚜(kāma dhātu)’ 단계의 찟따 상카-라(라-가, 도사, 모하가 없지만, ‘왜곡된 산냐-’가 함께 함)를 경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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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아라한의 마음은 마음이 그 ‘왜곡된 산냐-’에 들러붙어 찟따 상카-라(citta saṅkhāra)가 라-가, 도사, 모하가 함께 하는 마노 상카-라(mano saṅkhāra)로 바뀌는 까-마 바와(kāma bhava)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 포스트의 #6(및 #4) 도표 및 논의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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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에게 일어나는 그런 찟따 상카-라(citta saṅkhāra)를 ‘숫다(suddha) (순수한/오염되지 않은) 상카-라’라고도 부릅니다. ‘Vajirā Sutta (SN 5.10)’를 참조하세요. 이 숫따는 짧고 간결합니다. 영어 번역은 잘못되었는데, 특히 “Suddha saṅkhāra puñjoyaṁ, nayidha sattupalabbhati,” 구절이 잘못되었습니다. 올바른 번역은 “숫다 상카-라를 생성하는 자(아라한)는 삿따가 아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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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아라한에게 발생한 모든 상카-라는 업적으로 중성입니다. 다른 모든 상카-라는 업의 결과를 수반할 수 있습니다. 붓다 담마는 오직 업의 결과를 수반하는 상카-라에만 관심을 둡니다.
상카-라는 산쩨따나-와 함께 일어난다 ㅡ 업 에너지와 관련
5. ‘Nibbedhika Sutta (AN 6.61)’에서, 붓다께서는 “Cetanāhaṁ, bhikkhave, kammaṁ vadāmi. Cetayitvā kammaṁ karoti—kāyena vācāya manasā”라고 선언하셨는데, “내가 깜마라고 말하는 것은 오염된 의도다. 오염된 의도를 만든 후, 몸과 말과 마음으로 깜마를 짓는다.”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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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모든 경우에, 숫따에 있는 ‘쩨따나-(cetanā)’는 ‘산쩨따나-(sañcetanā)’, 즉 ‘오염된 의도’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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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쩨따나-(cetanā)’는 쩨따시까(cetasika)로 찟따(citta)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바나 쩨따시까(아름다운 정신 요소)라로 불리는 어떤 쩨따시까는 ‘도덕적/좋은’ 찟따로 이어집니다. 반면에, 아소바나 쩨따시까(아름답지 않은 정신 요소)는 ‘부도덕한/나쁜’ 찟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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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쩨따시까(정신 요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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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유형의 쩨따시까가 찟따로 병합되는지는 그 순간에 각자의 끊어지지 않은 상요자나와 가띠에 달려 있습니다.
산쩨따나-는 ‘왜곡된 산냐-’로 인해 일어난다
6. ‘Upādānaparipavatta Sutta (SN 22.56)’에서, 붓다께서는 상카-라(sankhāra)를 산쩨따나-(sañcetanā)와 동일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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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서, 붓다께서는 상카-라가 여섯가지 유형의 ‘오염된 의도’를 의미한다고 가리켜 보이셨는데, 루-빠 산쩨따나-(rūpa sañcetanā), 삿다 산쩨따나-(sadda sañcetanā), 간다 산쩨따나-(gandha sañcetanā), 라사 산쩨따나-(rasa sañcetanā), 뽓탑바 산쩨따나-(phoṭṭhabba sañcetanā), 담마 산쩨따나-(dhamma sañcetan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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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많은 포스트에서 논의했듯이 산쩨따나-(오염된 의도)가 ‘왜곡된 산냐’로 인해 발생한다는 사실과 일치합니다.(예를 들어, ‘왜곡된 산냐-(산자-나-띠)에 속음 ㅡ 들러붙음(땅하-)의 기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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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ūpasaññā Sutta (SN 25.6)’에 언급된 바와 같이, 여섯가지 유형의 ‘오염된 산냐-’는 여섯가지 유형의 감각 입력을 통해 일어나는데, 루-빠 산냐-(rūpa saññā), 삿다 산냐-(sadda saññā), 간다 산냐-(gandha saññā), 라사 산냐-(rasa saññā), 뽓탑빠 산냐-(phoṭṭhabba saññā), 담마 산냐-(dhamma saññā)를 통해 일어납니다. 그것은 그것들이 모두 ‘aniccā vipariṇāmī aññathābhāvī’이기 때문인데, 이는 ‘아닛짱 위빠리나-미 안냐타-바-위 ㅡ 결정적 구절’ 포스트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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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이 ‘왜곡된 산냐-’가 외부 대상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 어떻게 구축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아라한도 모든 여섯가지 감각 입력을 통해 그것을 경험하는 이유라는 것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라한들은 그것이 빠띳짜 사뭅빠-다를 통해 어떻게 발생하는지 이해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그것에 속지 않습니다. ‘담마와 과학’ 섹션의 ‘붓다의 세계관(Worldview of the Buddha)’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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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상호연관’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새로운 포스트를 읽으면서 그런 상호연관을 추가/수정할 수 있는 메모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더 많은 상호연관을 볼수록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산쩨따나-는 3가지 유형의 상카-라로 이어진다
7. 우리의 모든 오염된 생각들(찟따들)은 처음에 우리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웨다나-/산냐-에 기반하여 일어납니다. 그 마음은 ‘뿌라-나 깜마’ 단계라고 하는 이 초기 단계에서는 자동 기계(‘마음은 자연 법칙에 따라 기계와 같이 작용한다’을 참조)와 같습니다. 여기서, ‘뿌라-나(purāna)’는 ‘초기(initial)’를 의미하고 ‘뿌라-나 깜마(purāna kamma)’는 ‘깜마 생성의 기본 레벨’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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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일어나는 그런 초기 상카-라(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일어남)는 상깝빠(saṅkappa)라는 특별한 명칭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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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들이 충분히 강하다면, 우리는 ‘나와 깜마(nava kamma)’ 단계에서 더 강력한 와찌 상카-라를 의식적이고 기꺼이 생성합니다. 이 단계에서 강력한 업 에너지를 생성할 수 있는 자와나 찟따-(javana cittā)가 발생합니다. 바로 이 단계에서 우리는 마음, 말, 및 몸을 통해 의식적으로 깜마를 생성합니다(즉, 마노, 와찌, 및 까-야 깜마를 생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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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 사항은 ‘뿌라-나 및 나와 깜마 ㅡ 깜마 생성의 순서’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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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라-나 깜마’ 또는 ‘나와 깜마’ 단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유형의 상카-라는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입니다. 여기서, ‘아비(abhi)’는 ‘강한’을 의미하지만, ‘미묘하고 라-가, 도사, 또는 모하를 수반하는’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카-라는 아라한에게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아비상카-라의 정의를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8. ‘Khajjanīya Sutta (SN 22.79)’에서는 또다른 (관련된) 방식으로 상카-라(saṅkhāra)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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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ñca, bhikkhave, saṅkhāre vadetha?”는 “빅쿠들이여, 왜 그것들을 상카-라(saṅkhāra)라고 부르는가?”를 의미합니다. (많은 경우와 같이, ‘상카-라’를 ‘선택들’로 번역하는 것은 잘못인데,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우리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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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변: “Saṅkhatamabhisaṅkharontīti kho, bhikkhave, tasmā ‘saṅkhārā’ti vuccati.”. 빠알리 낱말은 대부분 한데 묶여 있습니다. ‘saṅkhatamabhisaṅkharontīti’에서 낱말을 ‘saṅkhatam abhisaṅkharontī ti’로 분리하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상카따(saṅkhata)’는 마음에 의해 준비된(형성된) 것이며 세상에 속합니다. 아라한은 어떤 ‘상카따’도 만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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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준비된(형성된) 것은 ‘오염된 찟따’입니다. 초기의 ‘오염된 찟따’는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일어납니다. 그것들은 ‘나와 깜마’ 단계에서 더 오염됩니다. 두 경우 모두, (라-가, 도사, 또는 모하가 함께 하는 아비상카-라 생성이 원인이고, 이는 자동적으로 일어나는지 또는 의식적으로 일어나는지 여부에 관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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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4에서 논의한) 아라한의 ‘숫다 상카-라(suddha saṅkhāra)’는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가 아니라는 것에 유의하세요.
뿐냐-비, 아뿐냐-비, 및 아-넨자-비 상카-라
9.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에 의해 준비된(형성된) 상까따(saṅkhata)입니다. 그 준비의 첫 단계는 자와나 찟따에서 깜마 에너지의 생성과 함께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그다음 그런 깜마 에너지는 ‘선처’와 ‘악처’에 재탄생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그 깜마 에너지는 유정체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탱하는 환경도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부처님 가르침의 더 깊은 측면입니다. ‘담마와 과학’ 섹션의 ‘붓다의 세계관(Worldview of the Buddha)’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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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상카-라의 유형은 그 기초에 기반하여 3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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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악처(아빠-야-)에 재탄생으로 이어지게 하는 그 아비상카-라는 아뿐냐 아비상카-라(apuñña abhisaṅkhar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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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천상 및 루빠 로까 브라흐마 영역에 재탄생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들은 뿐냐 아비상카-라(puñña abhisaṅkhar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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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 네 가지 아루빠 로까 브라흐마 영역에 재탄생으로 이어지게 하는 세번째 범주가 있는데, 이를 아-넨자 아비상카-라(āneñja abhisaṅkhāra) (āneñjābhisaṅkhāra)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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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 사항은 ‘아비상카-라로 행해진 깜마 - 아비상카-라의 유형’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왜 좋은 상카-라도 아윗자-로 일어나는가?
10. ‘Paṭiccasamuppāda Vibhaṅga’는 “avijjā paccayā saṅkhāra” 단계를 “Tattha katame avijjā paccayā saṅkhārā? Puññābhisaṅkhāro, apuññābhisaṅkhāro, āneñjābhisaṅkhāro.”로 설명합니다.
번역: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는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 아뿐냐-비상카-라(apuññābhisaṅkhāra), 아-넨자-비상카-라(āneñjābhisaṅkhāra)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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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와 아-넨자-비상카-라(āneñjābhisaṅkhāra)가 좋은 상카-라(saṅkhāra)라면, 그것들이 어떻게 아윗자-로 인해 생성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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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매우 중요한 점은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과 ‘열반을 향해 노력하는 것’을 구분합니다.
아윗자-는 사성제에 대한 무지다!
11.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연기)/띨락카나(삼특상)을 이해하지 않고도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고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를 기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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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바로 현재 살고 있는 모든 유정체들이 (고통이 가득한 낮은 영역뿐만 아니라) 상위 영역에 셀 수 없이 많은 횟수로 태어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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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 일부는 현재 좋은 영역에 살고 있지만,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연기)/띨락카나(삼특상)를 이해할 때까지 우리는 미래에 아빠-야-(apāyā, 사악처)에 재탄생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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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이해해야 할 결정적인 점입니다.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방법
12. 위의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음은 상깝빠(초기 마노 상카-라)가 뿌라-나 깜마 단계에서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그칠 때까지 순수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성취될 때 아누 사야(anusaya)와 ‘오염된 가띠(gati)’는 마음에서 제거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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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항상 마음을 챙기고 명상의 세 가지 매우 중요한 단계를 따름으로써 달성됩니다. (1) 나쁜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를 멈추고, (2) 좋은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를 기르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3) 사성제(네 가지 성스런 진리)/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띨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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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성제(네 가지 성스런 진리)/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띨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하면 재탄생 과정의 위험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 이해와 함께, '삶을 즐기는 것'에서 '열반을 추구하는 것'으로 목표가 바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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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기 위해서는 감각적 즐거움에 있는 숨겨진 위험을 ‘보아야(알아야)’합니다. 그러면 ‘들러붙는 경향’이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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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 때문에 삼마- 딧티(부처님의 세계관을 이해함)가 첫 번째 단계입니다. 더 깊은 측면은 ‘담마와 과학’ 섹션의 ‘붓다의 세계관(Worldview of the Buddha)’ 서브섹션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13. 다음의 ‘지혜로운 말’은 ‘마음을 깨끗이 하는’ 기초를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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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의식적 생각(와찌 상카-라, vaci saṅkhāra)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ㅡ 그것들이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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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말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ㅡ 그것들이 부도덕한 행위/행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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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행동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ㅡ 그것들이 습관(가띠, gati)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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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습관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ㅡ 그것들이 그대의 성향(더 강한 가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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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성향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ㅡ 그것이 상요자나를 강화시켜 그대의 운명이 된다.
의식적인 생각(와찌 상카-라)을 통제하는 것을 어느 정도 달성하면, 부처님 가르침의 더 깊은 측면을 이해하고,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를 얻고, 소따빤나(Sotapanna)가 되기가 더 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