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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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카-라와 그 진정한 의미


원문 : Living Dhamma 섹션의 ‘Sankhāra – What It Really Means’ 포스트

2017년 2월 25일; 2018년 1월 3일, 2018년 9월 23일, 2018년 11월 1일, 2019년 7월 25일 개정


1. ‘정신적 형성(mental formations)’과 ‘형성(formations)’은 상카-라(sankhāra)에 대한 일반적인 번역입니다. 확실히, 전자가 더 나은 번역입니다. 하지만 상카-라(sankhāra)의 개념을 파악하고 그 [빠알리]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필자는 산냐-(saññā)와 윈냐-나(viññāna)와 같은 대부분의 핵심 빠알리 용어에 대해서도 그와 같이 사용하기를 권합니다.


  • * 그러나 모든 상카-라(sankhāra)는 마음에 일어납니다. 그것들이 의식적인 사고나 말로 이어질 때,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라고 합니다. 신체(육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입니다. 마음에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입니다.

  • * 따라서, ‘산(san)’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거나 하고 있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 * 상카-라(sankhāra)는 현재의 삶(일상 생활)을 살기 위해 바로 그 일을 하는 것을 담당하고(책임지고) 있습니다. 상카-라(sankhāra)는 또한 미래의 삶에 과보를 가져올 수 있는 도덕적 /비도덕적 행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 후자(미래에 과보를 가져오는 행위)의 유형을 ‘강한 상카-라(아비상카-라, abhisankhāra)’라고 합니다.


2. 이제 몇가지 예를 보겠습니다.


  • * 화장실에 가려고 생각하는 것은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업적으로 중립임)입니다. 우리는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를 사용하여 몸을 화장실로 움직이게 됩니다.

  • * 사람을 죽이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업 결과(와찌 아비상카-라, vaci abhisankhāra)를 가지는 상카-라(sankhāra)입니다. 실제 살인은 까-야 아비상카-라(kāya abhisankhāra)로 이루어집니다. 그런 와찌(vaci) 및 까-야(kāya)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는 아뿐나 아비상카-라(apunna abhisankhāra, apunnābhisankhāra)입니다. 그것들은 아빠-야(apāya, 악처)에 태어남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 * 반면에, 뿐나 아비상카-라(punna abhisankhāra, punnābhisankhāra)(적절한 말과 행동의 원인이 되는 생각)는 좋은 업 결과를 가지며 ‘좋은 태어남’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들은 [열반에 이르는] 길에서 진전을 이루는데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 * 좋거나 나쁜 깜마-(kammā)는 이러한 타입의 상카-라(sankhāra)를 통해 행해집니다. 그것들은 이 생에서 또는 내생에서 즉각 결과(kamma vipāka, 깜마 위빠-까)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깜마-(kammā)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해서는 ‘What is Kamma? – Is Everything Determined by Kamm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3. 상카-라(sankhāra)라는 낱말은 ‘아윗자- 빳짜야- 아뿐나-비 상카-라(avijjā paccayā apunnābhi sankhāra)’ 또는 ‘아윗자- 빳짜야- 뿐나-비 상카-라(avijjā paccayā punnābhi sankhāra)’를 의미하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nkhāra)’에서와 같이 업 결과를 가지는 것들을 나타내는 데 일반적으로 사용됩니다.


  • * 여기서 ‘아비 상카-라(abhi sankhāra)’는 ‘강한 상카-라(strong sankhāra)’를 의미하며, ‘아뿐나-비(apunnābhi)라는 낱말은 ‘아뿐나(apunna) + 아비(abhi)’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뿐나-비(apunnābhi)로 운이 맞추어집니다. 여기서 ‘아뿐나(apunna)’는 ‘나쁜’ 또는 ‘부도덕적’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아뿐나-비 상카-라(apunnābhi sankhāra)’는 ‘강한 부도덕적 상카-라’를 의미합니다.

  • * 동일한 식으로, ‘뿐나(punna) + 아비(abhi) + 상카-라(sankhāra)’는 ‘강한 도덕적 상카-라’를 의미하는 ‘뿐나-비 상카-라(punnābhi sankhāra)’가 됩니다.

  • * 그래서, 주어진 경우에 정확히 어떤 의미를 취해야 하는지 정말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4. 우리의 모든 생각, 말, 및 신체 행동은 마음에 일어나는 상카-라(sankhāra)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도 또한 마음에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극히 중요합니다. 사람은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 * 상카-라(sankhāra)는 생각입니다. 깜마-(kammā)는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한 행위입니다.

  • *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는 우리 몸을 움직이게 하는 ‘의식적인 생각’입니다. 살인, 도둑질, 및 성적인 부정 행위는 ‘아뿐나-비 까-야 상카-라(apunnābhi kāya sankhāra)에 기인합니다.

  • *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는 ‘우리가 소리없이 생성하는 의식적인 생각’이며 입술, 혀 등을 움직여 말로 이어지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증오적인 말은 ‘아뿐나-비 와찌 상카-라(apunnābhi vaci sankhāra)’ 때문입니다. 담마(Dhamma) 개념을 생각하는 것은 뿐나-비 와찌 상카-라(punnābhi vaci sankhāra)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와찌- 상카-라의 바른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반면에,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는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무의식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이 언제 나타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가띠(성향/습관) 때문에 일어나며 우리들의 모-하(mōha)와 아윗자-(avijjā)의 레벨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무거운(중대한) 업 결과를 가져오는 아비상카-라(abhisankhāra)일 가능성이 낮습니다.

  • * ‘까-야 산쩨따나- 까-야 상카-라(kāya sancetanā kāya sankhāra)’, ‘와찌 산쩨따나- 와찌 상카-라(vaci sancetanā vaci sankhāra)’, 및 ‘마노- 산쩨따나- 마노- 상카’라(manō sancetanā manō sankhāra)’라는 정의를 보면, 쩨따나-(cetanā)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명백합니다.


5. 이 세 가지 타입의 상카-라(sankhāra)를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 * 물질적 몸(육체)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마음(정신적 몸, 즉 간답바)이 먼저 육체를 움직이는 것에 대한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 다음, 그 생각은 예를 들어, 다리를 움직이기 위해 다리 근육에 필요한 신호를 보내는 뇌의 도움으로 실행됩니다.

  • * 그러므로, 그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는 다리를 움직이게 하는 책임이 있으며 그 움직임의 원인입니다. 이제, 육체를 움직이는 목적이 악행을 저지르기 위해 어딘가에 가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아뿐나 아비상카-라(apunna abhisankhāra)’가 됩니다. 이러한 생각에는 탐욕(로-바)이나 증오(도-사)와 같은 ‘아소-바나 쩨따시까(asōbhana cetasika)’가 들어 있게 됩니다.

  • * 그 목적이 좋은 행을 하기 위해 어딘가에 가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뿐나-비 상카-라(punnābhi sankhāra)’가 됩니다. 이러한 생각에는 믿음(삿다)이나 연민(까루나-)과 같은 ‘소-바나 쩨따시까(sōbhana cetasika)’가 들어 있게 됩니다.

  • * 그 목적이 화장실에 가는 것이라면(업적으로 중립), 아비상카-라(abhisankhāra)가 아닌 단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가 됩니다. 호흡은 신체 부분(폐, 허파)을 움직이는 것을 포함하며, 의식적인 생각없이 행해집니다. 하지만, 그것들도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입니다. 그 생각에는 소-바나 쩨따시까(sōbhana cetasika) 또는 아소-바나 쩨따시까(asōbhana cetasika)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 * 따라서,  행위의 업적 특성은 마음에 있는 의도, 즉 그러한 생각과 함께 일어나는 쩨따시까(cetasika, 정신 요소)의 타입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What is Intention in Kamm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6. 지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면,  신체 부분을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금 바로 이 사람을 때릴 수 있으면 좋겠다”와 같은 악한 생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것이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입니다. ‘와찌- 상카-라의 바른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가 에너지를 축적할 때, 그 사람을 그 말들을 밖으로 내뱉을 수 있습니다. 그것들도 여전히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라고 합니다.

  • * 누군가가 단지 혼잣말을 하고 있든 그런 악한 말을 내뱉든, 그것들은 모두 아뿐나 아비상카-라(apunna abhisankhāra)입니다.

  • * 물론,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는 뿐나 아비상카-라(punna abhisankhāra) 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 X가 사람 Y의 선행을 보고 Y에 대해 좋은 생각을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뿐나 와찌 상카-라(punna vaci sankhāra)입니다.

  • * 그것들은 또한 위의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에서와 같이 쩨따시까(cetasika)의 타입으로 구별됩니다.


7.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이든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이든, 그것들에 아소-바나 쩨따시까(asōbhana cetasika, 불선 정신요소)들이 있다면, 마음이 열 또는 스트레스를 잘 받습니다(빠알리어로 ‘타-빠, thāpa’임).


  • * 한편, 소-바나 쩨따시까(sōbhana cetasika)가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 또는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로 일어나면, 그것들은 마음이 가라앉는 경향을 보입니다.


8. 의식적인 생각없이 마음에 일어나는 다른 생각들은 모두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입니다.


  • * 예를 들어, 가령, 막대기에 맞으면 그와 관련된 고통을 느끼고, 막대기로 때리는 다른 사람이 그 고통을 야기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일어나는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에는 산냐-(saññā, 일어난 것을 인식)와 웨-다나-(vēdanā, 야기된 고통)라는 두 가지 쩨따시까(cetasika)가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는 위빠-까(vipāka, 과보) 단계에  속합니다.

  • * 그러나, 때리는 것의 ‘감각 입력’에 기초하여, 이제는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와 더 나아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를 생성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는 그 사람에 대해 단지 악한 생각을 가지거나 나쁜 말을 하는 것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통증이 심하면 나쁜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를 일으키기 시작하여 그 사람을 때릴 수도 있습니다.


9. 그래서, 자동적으로 생각하는 것(마노- 상카-라, manō sankhāra), ‘그냥 속으로 말하는 것’이나 ‘밖으로 말하는 것’(와찌 상카-라, vaci sankhāra), 몸의 움직임을 사용하는 것(까-야 상카-라, kāya sankhāra)이 모두 생각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극히 중요합니다.


  • * 이러한 생각은 간답바(gandhbba, 정신적 몸)에서 일어나며, 말하기와 신체 움직임을 수행하도록 뇌에 대한 명령이 됩니다. 그것이 간답바(정신적 몸)가 육체(신체)를 제어하는 방식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의 정신적 몸 - 간답바’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0. 그 초기의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는 각자의 가띠(gati)로 인해 마음에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그 다음, 이어서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가 생성되며, 우리는 그것들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예로서, ‘와찌- 상카-라의 바른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따라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씨앗은 가령, 각자의 주의를 끄는 것을 보거나 듣는 첫 번째 감각 입력의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 * 감각 입력이 상당히 강하다면(좋거나 싫어함을 통해 관심이 있는 경우),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그런 찟따 위티(citta vithi, 인식 과정)를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은 상응하는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로 이어져, 속으로 말하거나 밖으로 말하거나 신체 행동을 하게 합니다.


11. 세부적인 것에 들어가지 않고 [대략 설명하면], 말하기와 신체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의식적인 생각은 찟따 위티(citta vithi, 인식 과정)의 7개 자와나 찟따(javana citta)에서 일어납니다.


  • *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 또는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는 많은 찟따 위티(citta vithi)가 연이어 실행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엄청난(수십억 개의) 찟따 위티(citta vithi)가 순식간에 실행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Amazingly Fast Time Evolution of a Thought (Citt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이어지는 찟따 위티(citta vithi)의 자와나 찟따(javana citta)가 계속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을 생각하기 시작할 때 상황에 대해 점점 더 강한 느낌(감정)을 계속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 * 때로는 사람들이 시시각각으로 화를 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 말도 밖으로 하지 않고도 많은 와찌 상카-라(vaci sankhāeven)을 생성하고 있습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그 사람의 얼굴이 붉어지고 얼굴 표정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보여주며, 매우 동요(흥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2. 따라서,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를 생성하기 시작하더라도, 우리는 잠깐 동안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화를 내면 통제력을 잃을 수 있고 나쁜 상황에 처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 * 화를 내는 과정에서 ‘자신을 일찍 붙잡는 것’은 분노 조절의 관건입니다. 이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고 나쁜 상황으로 빠르게 확대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면,  다음 번에는 화를 더 빨리 붙잡으려고 할 수 있습니다.

  • * 그러한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를 빨리 붙잡아서 이 삶에서 많은 고통(괴로움)을 막을 수 있습니다.

  • * ‘사띠빳타-나 숫따 - 이 삶의 괴로움과의 연관성’ 포스트에 있는 법문(음성법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이것이 아-나-빠-나(ānāpāna)와 사띠빳타-나(satipatthāna) 바와-나-(bhāvanā)의 핵심입니다.


13. 이전 포스트인 '웨-다나-와 삼팟사 자- 웨-다나- – 단순한 느낌 이상의 것’에서,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ēdanā)가 어떻게 초기의 위빠-까 웨-다나-(vipāka vēdanā) 후에 마음에 일어날 수 있는지를 논의했습니다. 


  • * 그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ēdanā)는 초기 위빠-까 웨-다나-(vipāka vēdanā)의 결과로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를 생성할 때 발생합니다.

  • * 그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ēdanā)는 모두 우리가 의식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버젼의 사띠빳타-나(satipatthāna) 또는 아-나-빠-나(ānāpāna)를 기르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사실은 분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14. 마음챙김(사띠)이 있다면, 감각 입력에 대해 의식적으로 좋은 생각을 하거나 나쁜 생각을 하기 시작할 때 스스로를 볼 수 있습니다. 수행 실천을 함에 따라, 너무 많은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ēdanā)를 생성하기 전에, 즉 많은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 또는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를 만들기 전에 자신을 붙잡을(보고 그것을 멈출) 수 있습니다.


  • * 이 개념은 생각이 좀 필요할 수 있지만, 명확히 하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5. 우리는 먼저 부도덕한 생각, 즉 부도덕한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로 인해 일어나는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ēdanā)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 * 사람 X가 적 Y에게 언어 폭력을 당해서 나쁜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를 생성하기 시작한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는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ēdanā)를 통해 ‘나쁜 마음 상태(도마낫사,  domanassa)를 일으킵니다. 상황이 고조되면, 더 강한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 즉 Y를 때리는 생각이 일어날 수 있고 Y를 때리는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16. 반면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평범한 사람이든 아라한 성자이든 유쾌한 맛을 느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계와 관련된 ‘까-마 구나(kāma guna)’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Kāma Guna, Kāma, Kāma Rāga, Kāmaccand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것은 부도덕한 생각이 아닙니다.


  • * 차이점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 음식에 대한 갈망(tanhā, 딴하-)이 있지만, 아라한 성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 * 사람은 각자의 가띠(gati, gathi)를 바탕으로 자동적으로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를 생성합니다. 그 다음, 의식적인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가 중대한 우빠-다-나(upādāna, 기꺼이 묶음) 단계로 이끕니다. 이에 대해서는 ‘딴하-와 우빠-다-나 사이의 차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7. 이 모든 것은 윈냐-나(viññāna) 단계에서 합쳐져 완성됩니다. 윈냐-나(viññnana)에 대한 논의로 마음(정신적 몸, 간답바)과 관련된 4개의 무더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마무리할 것입니다. ‘Viññāna Aggregate’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 * 더구나, 웨-다나-(vēdanā, 삼팟사 자- 웨-다나- 포함)와 산냐-(saññā)는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것입니다.

  • * 그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에서 시작하여, 우리는 새로운 깜마를 시작하는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를 의식적으로 생성합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ēdanā)가 발생합니다.

  • *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가 차례로 새로운 깜마(kamma)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면(따라서 더 많은 깜마 위빠-까를 일으킴), 전체 과정이 자체로 거듭거듭 반복됩니다. 이것이 새로운 깜마(kamma), 특히 아뿐나-비(apunnābhi)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를 통한 강한 부도덕한 깜마의 시작을 멈추지 않는 한, 재탄생 과정(윤회)이 영원히 지속되는 방식입니다.


18. 필자는 최근에 인터넷에서 다음과 같은 ‘지혜로운 글’을 보았습니다.  


  • * 그대의 생각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그것들이 말이 된다.

  • * 그대의 말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그것들이 행동이 된다.

  • * 그대의 행동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그것들이 습관이 된다.

  • * 그대의 습관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그것들이 그대의 성향이 된다.

  • * 그대의 성향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그것이 그대의 운명이 된다.


이 구절들은 필자가 위에서 설명하려고 했던 것과, 또한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에 대한 포스트에 있는 것들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상카-라는 우리의 운명을 규정하고 인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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