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야마까 숫따(SN 22.85) ㅡ 아라한과는 단멸이 아니라 괴로움의 끝
원문: Sutta Interpretation 섹션의 ‘Yamaka Sutta (SN 22.85) – Arahanthood Is Not Annihilation but End of Suffering’ 포스트
- 2019년 5월 23일 작성; 2020년 3월 20일 개정; 2022년 8월 29일 개정
소개
1. 야마까 숫따(Yamaka Sutta)의 빠알리(Pāli) 버전은 ‘Yamaka Sutta (SN 22.85)’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숫따는 닙바-나(Nibbāna)가 무엇인지, 그리고 중생(living being)에 대해 붓다께서 어떻게 묘사하시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숫따입니다. 다섯 무더기(오온)에 대한 갈망이 있는 한(필연적으로 많은 고통/괴로움이 수반됨), 이 세상에는 중생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단멸되는 실제 사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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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때, 사리뿟따 존자가 사-왓티(Sāvatthi)에 머물고 있었는데, 아나타삔디까(Anathapiṇḍika)가 건립한 제따와나-라-마(Jetavanārama)에 계셨다. 그 때 야마까(Yamaka)라는 빅쿠(bhikkhu)에게 “내가 이해하기로는, 아라한과(Arahanthood)에 도달한 빅쿠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단멸될 것이다.”라는 그릇된 견해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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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빅쿠들이 야마까 빅쿠(bhikkhu Yamaka)에게 그런 그릇된 견해가 생겼다는 것을 들었다. 그들은 야마까 존자에게 가까이 가서 인사를 주고 받은 후, 한쪽에 앉아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마까 도반님, ‘세존께서 가르치신 담마를 내가 이해하기로는, 아-사와-(āsavā, 갈망/번뇌)가 소멸된 빅쿠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단멸될 것이다.’ 라고 하는 이와 같은 그런 견해가 도반님에게 일어났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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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그렇습니다. 도반들님, 세존께서 가르치신 담마를 저가 이해하기로는, 아-사와-(āsavā, 갈망/번뇌)가 소멸된 빅쿠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단멸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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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까 도반님,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세존(의 말씀)을 왜곡(와전)하지 마세요. 세존(의 말씀)을 왜곡(와전)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아-사와-(āsavā, 갈망/번뇌)가 소멸된 빅쿠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단멸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2. 다른 빅쿠들이 이런 식으로 훈계했지만, 야마까 빅쿠는 여전히 그 그릇된 견해를 고수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세존께서 가르치신 담마를 내가 이해하기로는, 아-사와-(āsavā, 갈망/번뇌)가 소멸된 빅쿠는 단멸되며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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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빅쿠들은 야마까 존자가 그 그릇된 견해를 가지지 않도록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갔다. 빅쿠들은 일어난 모든 일을 사리뿟따 존자에게 말하고, “사리뿟다 존자께서 야마까 존자에게 가셔서 연민으로 그에게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사리뿟따 존자는 침묵으로 승낙했다.
사리뿟따 존자의 분석 ㅡ 1
3. 그리고, 저녁이 되자 사리뿟다 존자는 은거처에서 나와서, 야마까 존자에게 가까이 가서 인사를 주고 받은 후, 한 쪽에 앉아서 말했다. “야마까 도반님, ‘세존께서 가르치신 담마를 내가 이해하기로는, 아-사와-(āsavā, 갈망/번뇌)가 소멸된 빅쿠는 단멸되며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하는 이와 같은 그런 그릇된 견해가 도반에게 일어났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도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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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까 도반님, 형상(루빠, rupa)은 닛짜(nicca,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유지할 수 있음)입니까, 아니면 아닛짜(anicca,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유지할 수 없음)입니까, 어떻게 생각합니까?” ㅡ “도반님, 아닛짜(anicca)입니다.” … “어떤 것이 아닛짜(anicca)라면, 그것은 수카(sukha)로 이어집니까, 아니면 두카(dukha)로 이어집니까? ㅡ “도반님, 그것은 두카(dukha)로 이어집니다.”
“어떤 것이 아닛짜(anicca), 위빠리나-마(viparināma) 특성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유지될 수 없고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겪습니다. 그것을 나, 나의 것, 나의 앗따-(attā, 자아, 영어로 ‘self’)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할까요?” - “도반님, 그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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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까 도반님,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a), 윈냐-나(viññāna)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것들은 닛짜(nicca)입니까, 아니면 아닛짜(anicca)입니까?” ㅡ “도반님, 아닛짜(anicca)입니다.” … “어떤 것이 아닛짜(anicca)라면, 그것은 수카(sukha)로 이어집니까, 아니면 두카(dukha)로 이어집니까? ㅡ “도반님, 그것은 두카(dukha)로 이어집니다.”
“어떤 것이 아닛짜(anicca), 위빠리나-마(viparināma) 특성이 있다면, 그것을 나, 나의 것, 나의 앗따-(attā, 자아)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할까요?” - “도반님, 그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필자의 코멘트: 따라서 루빠(rupa),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a), 윈냐-나(viññāna)라는 다섯 가지 개체(entity) 중의 어떤 것 또는 모두를 나, 나의 것, ‘나의 앗따-(자아)’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리뿟따 존자의 분석 ㅡ 2
4. 이제 사리뿟다 존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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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까가 어떤 유형의 형상(루빠)이 있든, 과거나 미래나 현재이든, 내부나 외부이든, 거칠거나 미세하든, 열등하거나(싫어하거나) 우월하든(좋아하든), 멀거나 가깝든, 이것은 형상 무더기(루빡칸다, rupakkhandha)입니다. 그것들 중 어떤 것도 나, 나의 것, 나의 앗따-(자아)로 받아들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다른 4가지 무더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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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자가 이 야마카를 이해할 때, 그 다섯 가지 무더기 중 어느 것도 ‘나, 나의 것이나 나의 앗따-(자아)’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는 해방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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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까 도반님,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신은 몸(‘루빡칸다_rupakkhandha’의 일부)을 중생으로 여깁니까?" ㅡ “아닙니다. 도반님.” ㅡ “당신은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a), 또는 윈냐-나(viññāna)를 중생으로 여깁니까?” ㅡ ‘아닙니다. 도반님.”
(필자의 코멘트: 따라서 루빠(rupa),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a), 윈냐-나(viññāna)라는 다섯 가지 무더기(aggregate) 중의 어떤 것 또는 모두를 나, 나의 것, ‘나의 앗따-(자아)’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리뿟다 존자의 분석 ㅡ 3
5. 이제 사리뿟다 존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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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까 도반님,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신은 중생을 그 몸에 있는 것으로 여깁니까?” ㅡ “아닙니다. 도반님.” ㅡ “당신은 중생을 그 몸과 별개로 있다고 여깁니까?” ㅡ “아닙니다. 도반님.” ㅡ “당신은 중생을 그 웨다나-(vedanā, 느낌)에 있는 것으로 여깁니까?” ㅡ “아닙니다. 도반님.” ㅡ “당신은 중생을 그 웨다나-(vedanā)와 별개로 있다고 여깁니까? 그 산냐-(saññā)에? 그 산냐-(saññā)와 별개로? 그 상카-라(saṅkhāra)에? 그 상카-라(saṅkhāra)와 별개로? 그 윈냐-나(viññāna)에? 그 윈냐-나(viññāna)와 별개로?” ㅡ “아닙니다. 도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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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까 도반님,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신은 루빠(rupa),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a), 및 윈냐-나(viññāna)를 모두 합쳐서 중생으로 여깁니까?” ㅡ “아닙니다. 도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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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까 도반님,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신은 중생을 루빠(rupa)가 없고, 웨다나-(vedanā)가 없고, 산냐-(saññā)가 없고, 상카-라(saṅkhāra)가 없고, 윈냐-나(viññāna)가 없는 어떤 것으로 여깁니까?” ㅡ “아닙니다. 도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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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도반님, 중생이 바로 이 생에서 진짜로 실재하는 것으로 당신에게 이해되지 않는데, 당신이 ‘세존께서 가르치신 담마를 내가 이해하기로는, 아-사와-(āsavā, 갈망/번뇌)가 소멸된 빅쿠는 단멸되며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적절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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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리뿟다 도반님, 이전에 저가 무지했을 때, 저가 그 그릇된 견해를 지니고 있었지만, 이제 사리뿟따 존자님의 이 담마 가르침을 듣고, 그 그릇된 견해를 버리고 그 담마로 비약적인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필자의 코멘트들
6. 다음은 필자의 코멘트들입니다.
1) 이것이 숫따(sutta, 경) 전체의 요점입니다. 진실로(진짜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 또는 중생이 파괴 또는 단멸(절멸)된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2) 우리는 일반적(인습적)으로 사람에 대해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사람’이 없으며,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 따라 매 순간 변화를 계속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의 집합일 뿐입니다. (‘빠띳짜 사뭅빠-다 ㅡ 개요’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3) 31영역 중의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건너뛰는 다섯가지 무더기의 끊임없는 연속을 생명흐름(lifestream)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붓다께서는 그런 생명흐름의 시작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추적할 수 없는 처음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그 대부분의 시간은 사악처에서 너무나 많은 고통/괴로움을 겪었습니다. 우리는 아라한의 죽음이 이 ‘생명흐름’의 끝(그리고 고통/괴로움의 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환생이란 무엇인가? - 생명 흐름의 개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사리뿟따 존자의 분석 ㅡ 4
7. 이제, 사리뿟따 존자(Ven. Sariputta)는 야마까 존자(Ven. Yamaka)가 완전히 이해했는지 확인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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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까 도반님, 도반들이 당신에게 ‘야마까 도반님, 어떤 빅쿠가 그의 아-사와(āsavā, 번뇌/갈망)가 소멸된 아라한일 때, 사후에 몸이 파괴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뭐라고 답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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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반님, 만일 도반들이 저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저는 다음과 같이 답할 것입니다. ‘도반들님, 형상은 아닛짜 특성이 있고, 아닛짜 특성이 있는 모든 것은 고통/괴로움과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같은 식으로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a), 윈냐-나(viññāna)는 모두 아닛짜 특성이 있으며, 아닛짜 특성이 있는 모든 것은 고통/괴로움과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게 대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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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두 사-두(Sādhu Sādhu,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야마까 도반님!”
요약
8. 숫따(sutta, 경)에는 더 많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점은 위 섹션에 있습니다.
이것이 붓다께서 현존하는 '자아'의 존재와, 존재의 부정이라는 두 가지 극단을 모두 거부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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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 순간마다 웨다나-(vedanā)(괴로움/즐거움)를 갖춘 존재가 있습니다. 그 웨다나-(vedanā)는 순간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앗따-(attā, 자아)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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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문제는 그 웨다나-(vedanā)가 진짜(실제)이며, 대부분의 경우 재탄생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볼 때(결국),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가 아니라 두카 웨다나-(dukha vedanā)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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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두카 웨다나-(dukha vedanā)가 일어나는 것을 멈추려면 반드시 다섯 가지 무더기(오온)의 일어남이 지속되는 것, 즉 재탄생 과정을 끝내야 합니다. 31영역의 어디에서도 수카 웨다나-(sukha vedanā)를 가지고 두카 웨다나-(dukha vedan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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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윗자-(avijjā, 무명)가 있는 한, 다섯 무더기(오온)가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아윗자-(avijjā)가 있는 한,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연기) 과정은 계속됩니다(그리고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집니다). 아윗자-(avijjā)를 제거하는 것은 빤냐-(paññā, 지혜)가 최적화된 아라한 단계에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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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적화된 빤냐-(paññā, 지혜)를 지닌 아라한(Arahant)에게 이 비전(vision)은 수정처럼 분명(명확)해집니다. 따라서 그 아라한은 쭈띠-빠띠산디(cuti-patisandhi, 죽음-재생연결) 순간에 새로운 바와(bhava)를 움켜잡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끊임없는 생명흐름의 연속(지속)은 끝이 납니다. 그것은 ‘사람’의 단멸/절멸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통/괴로움의 끝입니다!
9. 다섯가지 무더기(오온)의 순간적 변화는 ‘방 안의 코끼리’ 섹션의 ‘일생 중의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During a Lifetime)’ 서브섹션을 통해, (자신의 ‘가띠_gati’를 기반으로)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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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문에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배우고, 나쁜 가띠(bad gati)를 제거하고, 좋은 가띠(good gati)를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9] 아-나-빠-나사띠의 핵심 ㅡ 습관과 성향(가띠)을 바꾸는 방법’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러면 자신의 다섯가지 무더기(오온)는 닙바-나(Nibbāna)의 방향으로 진화(진전)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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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팔정도(삼마- 딧티, 삼마- 상깝빠, … 삼마- 사마-디)를 따라가는 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