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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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빠-나사띠는 호흡 명상인가?

 

원문: Bhāvanā (Meditation) 섹션의 ‘Is Ānāpānasati Breath Meditation?’ 포스트

- 2017년 6월 2일 작성; 2017년 9월 2일 개정; 2020년 4월 25일 개정

 

소개

 

1. ‘아-나-빠-나사티(Ānāpānasati)를 구글(Google) 검색하면, 검색된 거의 모든 웹 사이트가 이를 ‘불교 호흡 명상’ 또는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알아차림)’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띠삐따까의 숫따(Tipitaka sutta)들은 분명히 호흡 명상은 불교의 아-나-빠-나 바-와나-(Ānāpāna Bhāvanā)가 아니라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 * 호흡 명상은 부처님 시대에도 요기(수행자)들이 행하였습니다. 따라서 호흡 명상은 부처님의 아-나-빠-나 바-와나-(Ānāpāna bhāvanā)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붓다께서는 호흡 명상이 닙바-나(Nibbāna), 즉 ‘괴로움/고통에서 영구적인 벗어남’으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 * 띠삐따까(Tipitaka)에는 닙바-나(Nibbāna)가 아-나-빠-나 바-와나-(Ānāpāna Bhāvanā)로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는 숫따(sutta)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동적으로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 삿따 봇장가(Satta Bojjhaṅga), 및 깨달음의 37가지 요소 모두를 충족(완성)시킵니다. 그러므로,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는 단지 자신의 호흡(숨)에 집중하는 것보다 무한히 깊습니다(심오합니다).

  • * 필자는 아래에서 그 두 가지 진술에 대한 증거를 보이겠습니다. 먼저, 불교의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로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알아 봅시다.

 

아-나-빠-낫사띠만으로도 닙바-나를 얻기에 충분하다

 

2. 아-나-빠-낫사띠 숫따(Ānāpānassati Sutta, MN 118)에 따르면, “..아-나-빠-낫사띠, 빅카웨, 바-위따 바훌리-까따- 짯따-로 사띠빳타-네 빠리뿌-레띠. 짯따-로 사띠빳타-나- 바-위따- 바훌리-까따- 삿따 봇장게 빠리뿌-렌띠. 삿따 봇장가- 바-위따- 바훌리-까따- 윗자-위뭇띵 빠리뿌-렌띠.(..Ānāpānassati, bhikkhave, bhāvitā bahulīkatā cattāro satipaṭṭhāne paripūreti. Cattāro satipaṭṭhānā bhāvitā bahulīkatā satta bojjhaṅge paripūrenti. Satta bojjhaṅgā bhāvitā bahulīkatā vijjāvimuttiṃ paripūrenti.)”라고 합니다.

 

  • * 번역: “..빅쿠들이여,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를 사용(bhāvitā)하고 자주 사용(bahulīkatā)하면, 네 가지 유형의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를 완성한다(paripūreti). 짯따-로 사띠빳타-나(Cattāro satipaṭṭhāna)를 사용하고 자주 사용하면, 삽따 봇장가(Sapta Bojjhaṅga)를 완성한다. 삽따 봇장가(Sapta Bojjhaṅga)를 사용하고 자주 사용하면, 전체 해방(닙바-나 또는 아라한과)이 완료(완성)된다.

  • * 아난다 숫따(Ananda Sutta, SN 54.13)에서도 똑같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실, 아-나-빠-나 상윳따(Ānāpāna Saṃyutta, SN 54)에 있는 대부분의 숫따에는 “..아-나-빠낫사띠, 빅카웨, 바-위따 바훌리-까따- 마하-압팔라- 호띠 마하-니상사-(..Ānāpānassati, bhikkhave, bhāvitā bahulīkatā mahāpphalā hoti mahānisaṃsā)”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마하-압팔라-(mahāpphalā, ‘mahā’ + ‘pala’)는 4가지 성스런 단계, 즉 소따-빤나(Sotāpanna),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아나-가-미(Anāgāmi), 아라한뜨(Arahant) 단계를 의미합니다.

  • * 그러므로,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는 그것만으로 아라한뜨까지 모든 단계로 이어질 수 있음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아나빠-낫사띠(Anapānassati)로 사마타(Samatha)에 이른 후 별도의 위빳사나-(vipassanā, 통찰) 명상’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호흡 명상으로 닙바-나를 얻을 수 있는가?

 

3. 다음 핵심 질문은 “호흡 명상 그것만으로 아라한과에 이를 수 있는가?”입니다. 그것은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를 호흡 명상으로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숙고해야 할 중대한 질문입니다.

 

  • * 닙바-나(Nibbāna)는 탐함(탐욕), 미워함(증오), 미혹함(무지)의 제거입니다. 즉, “라-각카요- 도-삭카요- 모-학카요- 이당 윳짜띠 닙바-난띠(rāgakkhayō dōsakkhayō mōhakkhayō idaṃ vuccati nibbānanti)”입니다. 이 구절은 예를 들어 닙바-나 빤하- 숫따(Nibbāna pañhā Sutta, SN 38.1)와 같은 많은 숫따에 있습니다.

  • * 만약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가 호흡 명상을 의미한다면, 어떻게 마음을 자신의 호흡(숨)에 유지하는 그것만으로 자신의 마음에서 라-가(rāga), 도-사(dōsa), 모-하(mōha)를 제거할 수 있을까요?

 

4. 오늘날 많은 문헌에서 전통적인(그리고 잘못된) 가르침은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로 사마-디(samādhi)에 도달해야 하고 그 다음 막가 팔라(Magga phala)를 얻기 위해 위빳사나-(Vipassanā) 또는 통찰 명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 그러나, 위에서 논의한 숫따(sutta)로부터,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 그것만으로 아라한과(Arahanthood)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분명합니다!

  • * 물론, 이 잘못된 해석, 즉 호흡 명상이 불교의 아-나-빠-나 바-와나-(Ānāpāna bhāvanā)라고 하는 것은 현재의 실천(수행)자들이  생각해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붓다고사(Buddhaghosa) 스님의 위숫디막가(Visuddhimagga)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Buddhaghosa’s Visuddhimagga – A Focused Analysis’을 참조하세요.

 

아릿타 숫따(Arittha Sutta)

 

5. 부처님 이전에도 잘못된 버전의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가 있었습니다. 아릿타 숫따(Arittha Sutta, SN 54.06)에서 붓다께서는 아릿타 빅쿠(Bhikkhu Arittha)가 호흡 명상을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로 이해하여 잘못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테사-, 아릿타, 아-나-빠-낫사띠, 네사- 낫티-’띠 와다-미. 아삐 짜, 아릿타, 야타- 아-나-빠-낫사띠 위타-레나 빠리뿐나- 호띠 땅 수나-히, 사-두깡 마나시 까로히; 바-싯사-미”띠(..Atthesā, ariṭṭha, ānāpānassati, nesā natthī’ti vadāmi. Api ca, ariṭṭha, yathā ānāpānassati vitthārena paripuṇṇā hoti taṃ suṇāhi, sādhukaṃ manasi karohi; bhāsissāmī”ti).

 

  • * 번역: “.. 아릿타여, 그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가 있다. 나는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짜(yathā)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를 설명할테니,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잘 듣도록 하라. 내가 [지금] 말하겠다.”

  • * 더욱이, 그 당시 요기(수행자)들은 더 높은 자-나(jhāna)를 얻기 위해 호흡 명상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나-리야 자-나(anāriya jhānā)들은 오염물/번뇌(껠레스, keles)를 단지 억제함으로써 얻어지며, 어떤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로도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아나-리야 자-나(anāriya jhānā)를 기르는 사람들은 또한 다음 생에 브라흐마(Brahma) 영역에 태어날 것이지만,  그 후에는 아빠-야(apāyā)에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앗사-사/빳사-사 및 아-나/아빠-나

 

6.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를 호흡 명상으로 잘못 해석하는 주된 이유는 많은 숫따(sutta)에서 그것이 일반적으로 무언가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 특히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앗사-사(assāsa)/빳사-사(passāsa)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 * 사실, ‘아-나(āna)/아-빠-나(āpāna)’ (ānāpāna로 운이 맞춰짐)는 또한 아래에서 논의하는 것처럼 받아들이거나 내놓는(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 * 그러나,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에 대한 숫따(sutta)들에서 앗사-사(assāsa)/빳사-사(passāsa) 또는 아-나(āna)/아-빠-나(āpāna)는 구체적으로 꾸살라(kusala)를 받아들이고 아꾸살라(akusala)를 버리는 것, 또는 이와 동일한 의미로 팔정도(Noble Eightfold Path)를 받아들이고 팔사도(micchā eightfold path)를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 * 그것은 닙바-나(Nibbāna)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를 제거함으로써 얻어진다는 것을 아는 누구에게나 분명할 것입니다.

 

띠삐따까(Tipitaka)에 있는 증거

 

7. 앗사-사 숫따(assāsa Sutta, SN38.5)에는, 받아들여야(앗사-사,  assāsa)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해져 있습니다.

 

  • * “까따모 빠나-우소 막고 까따마- 빠띠빠다- 에땃사 앗사-삿사 삿치끼리야-야-띠(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야메와 코 아-우소 아리요 앗탕기꼬 막고 에땃사 앗사-삿사 삿찌끼리야-야(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팔정도). 세이야티-당(즉):  삼마-딧티 삼마-상깝뽀 삼마-와-짜- 삼마-깜만또 삼마-아-지-오 삼마-와-야-모 삼마-사띠 삼마-사마-디”. (“Katamo panāvuso maggo katamā paṭipadā etassa assāsassa  sacchikiriyāyāti (what needs to be ‘taken in’). Ayameva kho āvuso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etassa assāsassa sacchikiriyāya (it is the Noble Eightfold Path that needs to be ‘taken in’). Seyyathīdaṃ (namely): 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sammākammanto sammāājīvo sammāvāyāmo sammāsati sammāsamādhi”.)

  • * 빠라마 앗사-사 숫따(Parama assāsa Sutta, AN38.6)에는 ‘빠라마(parama, 우월한)’라는 용어를 강조하는 동일한 표현이 있습니다.

  • * 그러므로, 앗사-사(assāsa)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어떤 혼동이 없어야 합니다.

 

8. 올바른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를 기르는 것이 어떻게 아리야 자-나(Ariya jhānā) 및 막가 팔라(magga phala)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디빠 숫따(Dipa Sutta)라고도 하는 빠디-뽀빠마 숫따(Padīpopama sutta, SN 54.8)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 * “소 사또-와 앗사사띠, 사또-와 빳사사띠(So satōva assasati, satōva passasati)”는 “그는 받아들여야 하는 담마(꾸살라, 즉 도덕적 담마)와  제거해야 하는(버려야 하는) 담마(아꾸살라, 즉 부도덕적인 담마)에 마음을 둔다”는 의미입니다.

  • * “ ‘빠띠닛삭가-누빳시- 앗사싯사-미-’띠 식카띠, ‘빠띠닛삭가-누빳시- 빳사싯사-미-’띠 식카띠(‘paṭinissagg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paṭinissagg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는 “도덕적인 것을 받아들이고(assasissāmi) 부도덕한 것을 제거함(버림)으로써(passasissāmi) 사람을 재탄생 과정에 묶는 결박을 제거함으로써(patinissaggānupassi) 훈육한다(sikkhati)”는 의미입니다.

 

아-나-빠-나에 깊이 새겨진 의미

 

9. 많은 빠알리(Pāli) 낱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나-빠-나(Ānāpāna)라는 낱말의 의미는 낱말 자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나(āna)’와 ‘아-빠-나(āpāna)’라는 두 낱말이 결합되어 아-나-빠-나(ānāpāna)로 운이 맞춰집니다. 그것에 대해 마음챙기는 의미로 사띠(sati)가 추가되면,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sati)가 됩니다.

 

  • * ‘아-나(āna)’는 ‘받아들임(수용함/취함)’이며, 싱할라어로 ‘아-나나야(ānanaya)’는 ‘수입(들임)’입니다. ‘아-빠-나(āpāna)’는 ‘버림’이며, 싱할라어로 ‘아빠-나나야(apānanaya)’는 ‘수출(내보냄)’입니다. 따라서 ‘아-나(āna)’ + ‘아-빠-나(āpāna), 즉 ‘아-나빠-나(ānapāna)는 ‘받아들임/버림’, 또는 ‘들임/내보냄’을 의미합니다.

  • * ‘앗사(assa)’는 ‘아-나(āna)’와 같고, ‘빳사(passa)’는 ‘아-빠-나(āpāna)’와 같습니다. 스리랑카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그들의 방을 청소하라고 할 때, “까-마라야 앗사 빳사 까라-간나(kāmaraya assa passa karāganna)”라고 말합니다.

  • * 방을 청소할 때, 아이는 잡동사니들을 제거해야(빳사, passa) 하지만, 꽃병과 같은 것들은 들여놓아(앗사 assa) 방을 쾌적하게 할 수 있고, 또는 의자들을 들여놓아 유용하게 할 수 있습니다.

  • *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거나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선택적으로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나쁜 것’을 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마음 챙김의 역할입니다. 그 마음챙김은 호흡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호흡 명상은 해로울 수 있다

 

10.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흡 명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웰빙(만족/행복) 상태에 들러붙어 있기 때문에 ‘호흡 명상’이라는 잘못된 실천 수행을 포기하기를 꺼립니다. 그러나 그 완화(경감) 상태는 일시적일 뿐입니다.

 

  • * 호흡 명상을 통해 아나-리야 자-나-(anāriya jhānā)에 도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자-나-(jhānā)도 또한 오염물(번뇌)이 억제되기만(억눌려지기만)한 상태이므로 일시적입니다. 그 반면에, 올바른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를 통해 얻은 아리야 자-나(Ariya jhānā)는 영구적입니다. 그것은 첫 번째 아리야 자-나(Ariya jhāna)에 이르는 것도 까-마 라-가(kāma rāga)를 단지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제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마-디, 자-나, 막가 팔라 - 소개’ 및 ‘세간 자-나 대 출세간 자-나’를 참조하세요.

  • * 호흡 명상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고요하게 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호흡 명상으로는 닙바-나(Nibbāna)를 향한 큰 진전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필자는 많은 사람들이 중독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에 ‘중독’되면 성스런 길(팔정도)을 따르는 것을 방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호흡 명상은 중독성이 있고 결국에는 해로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아-나-빠-나사띠 바-와나-는 정식 명상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11. 필자가 ‘바와나(명상)’ 섹션과 ‘숫따(경) 해석’ 섹션의 ‘Maha Satipaṭṭhāna Sutta’에서 강조했듯이,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 또는 사띠빳타-나 바-와나-(Satipaṭṭhāna bhāvanā)를 정식 (명상) 기간에 외딴 곳에 앉아 행하는 것으로 제한(한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 * 위 #2에 있는 바와 같이, 붓다께서 “..아-나-빠-낫사띠, 빅카웨, 바-위따 바훌리-까따-..(..Ānāpānassati, bhikkhave, bhāvitā bahulīkatā..)” 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가능한 어디서나 가능한 한 많이 하는 것을 의미하셨습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항상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행동, 말, 생각을 마음챙김하여 나쁜 것은 멈추고 좋은 것을 길러야 합니다.

  • * 이것은 실천 수행에 대한 기본적인(근본적인) 접근 방식입니다. 재탄생이나 업과 같은 붓다 담마의 기본 교리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는 단계적  과정은 ‘리빙 담마’ 섹션을 참조하세요.

  • * 특히, ‘아-나빠-나사띠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영구히 제거함’ 포스트와 ‘아-나-빠나와 사띠빳타-나 - 기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잘못 번역된 구절

 

12. 어떤 사람들은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 또는 사띠빳타-나 바-와나-(Satipaṭṭhāna bhāvanā)는 정식 (명상) 기간에만 행하는 것이 좋다고 믿습니다. 그 믿음은 “이다, 빅카웨, 빅쿠 아란나 가또 와- 룩카물-라 가또 와- 순나-가-라 가또 와- 니시다띠 빨란깡 아-부지뜨와-, 우중 까-양 빠니다-야, 빠리무캉 사띵 우빳타뻬뜨와-(Idha, bhikkhave, bhikkhu aranna gato vä rukkhamüla gato vä sunnägära gato vä nisidati pallankaṃ äbhujitvä, ujuṃ käyaṃ paṇidhä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ä)”에서 유래합니다. 이 구절은 아-나-빠-낫사띠(Ānāpānassati)와 사띠빳타-나 바-와나-(Satipattāna bhāvanā)를 설명하는 많은 숫따(sutta)에 나타납니다.

 

  • * 대부분의 영어 번역에서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빅쿠가 황무지, 나무 밑, 또는 빈 건물에 가서, 다리를 교차시켜 접어 앉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그리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한다는 경우가 있다.

  • * 그러나, 이 구절에는 더 깊은(심오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룩카물-라(rukkhamūla)’라는 낱말에서, ‘룩카(rukkha)’는 ‘나무’이고 ‘물-라(mūla)’는 ‘뿌리’입니다. 그렇지만, 나무의 윗 부분은 바람이 불면 흔들리지만, 뿌리에 가까운 나무 줄기는 매우 안정적입니다. 따라서, “룩카물-라 가또- 와(rukkhamūla gatō vā)”는 안정된 마음 가짐(마음 성향)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평범한(보통) 해석에서는 ‘나무 밑으로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 * 이 전체 구절의 더 깊은(심오한) 의미는 ‘Prerequisites for the Satipaṭṭhāna Bhāvanā’에 자세히 논의되어 있습니다. 그에 따라 그 구절은 “탐함(탐욕), 미워함(증오), 미혹함(무지)가 없는 조용(침착)하고 안정된 마음 가짐(마음 성향)을 가지고, 우월감이 없이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고, 솔직하고 정직하며, 마음을 식히는 주된 대상에 마음을 유지하라.”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에서나 할 수 있으며 정식 (명상) 기간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지만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 * 정식 (명상) 기간에 평범한(보통) 의미로 명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물론, 정식 (명상) 기간에서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더 깊은(심오한) 의미입니다. 

 

단 3개의 주석서만 신뢰할 수 있다

 

13. 띠삐따까(Tipitaka, 삼장) 내에서 반대되는 증거를 본 사람이 있으면, "Discussion Forum"에 의견을 남겨주세요. 모든 그런 문제를 기꺼이 다루겠습니다.

 

  • * 신뢰할 수 있는 주석서는 3개(빠띠삼비다막가_Patisambhidamagga, 뻬따꼬빠데사_Petakopadesa, 넷띱빠까라나_Nettippakarana)뿐입니다. 그것들은 띠삐따까(Tipitaka, 삼장) 내에 있습니다. 후기의 모든 다른 주석서에는 많은 불일치와 명백하게 잘못된 해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Buddhaghosa’s Visuddhimagga – A Focused Analysis’ 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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