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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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 ㅡ 더 미세한 세부사항들

 

원문: Elephant In The Room 섹션의 ‘Jhāna – Finer Details’ 포스트

 

자-나(jhāna)는 까-마 라-가(kāma rāga)를 제거하지 못한 루빠-와짜라 브라흐마(색계 범천)의 정신 상태입니다. 그것들은 세간/평범한(아나리야) 사마-디 유형입니다. 세간 자-나는 ‘그 자-나에 있는 중에’ 막가 팔라(magga phala)에 도달함으로써 아리야 자-나(Ariya jhāna)로 바뀔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 자-나에 있는 동안에’라는 것은 ‘그 자-나 사마-빳띠(jhāna samāpatti)에 있는 중에’를 의미합니다. 

 

2024년 4월 26일 작성

 

소개

 

1. 붓다께서는 소따빤나들이 아라한과(Arahanthood)로 끝나는 더 높은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를 위해 노력하기 위한 두 가지 접근 방식을 주로 권장하셨습니다.

 

  • * 한 가지 접근 방식은 4가지 자-나 중의 하나 이상을 길러 ‘흔들림 없는’ 색계 범천의 마음성향에 들어가는 ‘사마타 뿝방가마 위빠사나-(samatha pubbaṅgama vipassanā)’입니다(‘pubbaṅgama’는 ‘전에(before)’를 의미함). 일단 자-나에 들어가면, 위빠사나-(통찰 명상)를 기르고 사람을 재탄생 과정에 묶는 상요자나/아누사야에서 벗어나기가 더 쉽습니다. 그러나 ‘즐거운 선정 경험’에 갇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2. 다른 접근 방식은 소따빤나가 직접적으로 통찰 명상을 할 수 있는 ‘위빠사나 뿝방가마 사마타(vipassanā pubbaṅgama samatha)’입니다. 그것 또한 ‘마음을 고요하게’ 하지만, 선정 경험으로 이어지거나 이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를 기르는 것입니다. ‘Mahāsatipaṭṭhāna Sutta (DN 22)’ 또는 ‘Satipaṭṭhāna Sutta (MN 10)’에는 자-나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 * 두 가지 접근 방식 모두 ‘오염원 또는 윤회 족쇄(상요자나)를 불태우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 정신적 결박/족쇄를 불태우거나 끊는 것은 사성제에 대한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자-나’는 오염원/윤회 족쇄를 불태우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3. 자-나(jhāna)는 까-마 라-가(kāma rāga)를 일시적으로 극복하여 까-마 로까(kāma loka)를 일시적으로 초월한 ‘루빠 로까 브라흐마-(rupa loka Brahmā)의 정신 상태에 해당하는 특별한 유형의 사마-디(samādhi)이기 때문에 그 불태우는 과정을 가속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대부분의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는 까-마 로까(kāma loka)에서 행해집니다. 루빠 로까(rupa loka)의 유정체에게는 대부분의 아꾸살라 깜마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마음은 비교적 순수하고 명상에 도움이 됩니다. ‘사마-디, 자-나, 및 삼마- 사마-디’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붓다께서는 빅쿠들에게 자-나를 기르라고 권장하셨고, 많은 숫따들에서 그것이 논의됩니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재가자들이 성관계 또는 다른 유형의 감각적 즐거움을 삼가하기가 불가능하므로 재가자들에게는 자-나를 기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일부 재가자들은 최근의 전생에 자-나를 길렀기 때문에 (일상적인 재가 생활을 하면서) 자-나에 쉽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 * 네 가지 자-나-는 16가지 루빠-와짜라 브라흐마(rupāvacara Brahma) 영역에 있는 브라흐마의 정신 상태에 해당합니다.

 

자-나와 ‘자-나 사마-빳띠’ ㅡ 서로 다른 것

 

4. 요기(수행자)는 ‘자신의 의지대로 자-나에 들어가고’ 적어도 몇 분 동안 그 자-나에 머물 수 있을 경우에만 자-나를 육성했다고 합니다.

 

  • * 요기(수행자)가 일정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자-나 찟따-(jhāna cittā)를 생성할 수 있다면, 그 요기는 그 기간 동안 ‘자-나 사마-빳띠(jhāna samāpatti)’에 있다고 합니다.

  • * 자신의 의지대로 자-나 사마-빳띠에 들어갈 수 없는 많은 사람들도(명상하는 중에) 자-나 찟따-가 흐를 수 있습니다.

  • * ‘자-나를 육성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자-나 찟따를 생성할 수 있고 ‘자-나 사마-빳띠’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 * 그것을 이해하려면, 기본적인 아비담마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자-나 찟따는 알아채지 못하고 흐를 수 있다

 

5. 까-마 로까(kāma loka)에서, 5가지 육체 감각을 통한 감각 입력은 각각 17개의 찟따로 이루어지는 빤짜드와-라 찟따 위티(pañcadvāra citta vithi)와 함께 분석됩니다.  마음만 관련된 찟따 위티가 있으며(즉, 마노드와-라 찟따 위티), 그것은 더 짧습니다.

 

  • * 요기(수행자)가 까-마 로까(kāma loka)를 초월하여 ‘루빠 로까(rupa loka)’에 있는 브라흐마-의 마음 상태에 들어갈 때, 그 마음은 * 자-나 찟따-(jhāna cittā)를 생성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한 두개의 자-나 찟따-만 있는 짧은 마노드와-라 찟따 위티(manodvāra citta vithi)로 생성됩니다.

  • * 자-나 사마-빳띠(jhāna samāpatti)를 육성하는 것은 정식 좌선 명상을 포함하여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자-나 니밋따(jhāna nimitta)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환경에 있어야 하며 자-나 찟따-를 지속적으로 생성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 이것은 자-나 찟따-를 생성하는 마노드와-라 찟따 위티(manodvāra citta vithi)를 보면 분명해집니다. 찟따 위티(citta vithi)에 대한 소개는 ‘찟따 위-티 ㅡ 감각 입력의 처리’ 포스트에 있습니다.

 

자-나와 자-나 사마-빳띠

 

6.  초기의 자-나 찟따 생성 과정은 위 포스트의 #13 및 #14에 묘사되어 있고, 아래에 다시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B B B “BC BU MD P U A G Jh” B B B

 

  • * 사용된 기호에 대한 설명은 위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Jh’ 찟따는 ‘자-나 찟따(jhāna citta)’입니다.

  • * 거기에 설명된 바와 같이, 요기(수행자)는 자-나 찟따를 알아채지도 못할 수 있습니다.

  • * 요기(수행자)가 사마-디에 더 오래 머물게 되면, (아래에 보인 바와 같이) 더 많은 ‘Jh’ 찟따-가 일어날 수 있고, 요기는 자-나를 경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B B B “BC BU MD P U A G Jh Jh Jh Jh Jh Jh Jh Jh” B B B

 

  • * 요기(수행자)가 단 1초라도 자-나에 머문다면 수백만 개의 자-나 찟따(Jh)가 지나가게 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세요.

  • * 자-나를 육성함에 따라 그 수행자는 몇 분 동안 자-나 찟따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수행자가 자-나 사마-빳띠(jhāna samāpatti)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자-나가 더 길러짐에 따라, 그 수행자는 자신의 의지대로 자-나 사마-빳띠에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나의 레벨

 

7. 네 가지 자-나는 요기가 얼마나 재빨리 자-나에 들어가고 얼마나 오래 그곳에 머물 수 있는지에 기반하여 세 가지 레벨로 범주화됩니다.

 

  • * 따라서, 각 자-나에 대해 하위(히나, hina), 중위(맛지마, majjhima), 및 상위(빠니따, panita)라는 세 가지 레벨이 있습니다. 루빠 로까 브라흐마 영역에 재탄생은 그 레벨에 따라 일어납니다.

  • * 예를 들어, 그 세 레벨로 제1 루빠-와짜라 자-나를 기른 요기들은 (세 가지 가장 낮은 영역인) 브라흐마 빠-리삿자(Brahma Pārisajja), 브라흐마 뿌로히따(Brahma Purohita), 및 마하- 브라흐마(Mahā Brahma) 영역에 각각 재탄생할 것입니다.

  • *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를 육성한 자들은 네 가지 아루빠-와짜라 영역에 재탄생할 것입니다.

  • * ‘31 존재 영역’ 포스트의 #6을 참조하세요.

 

더 높은 자-나와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를 육성

 

8. 요기(수행자)가 제1자-나의 상위 레벨에 일단 이르면, 제2자-나의 하위 레벨로 들어가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논의한 바와 같이 아리야와 아나리야 요기는 자-나를 다르게 기릅니다.

 

  • * 따라서, 제4자-나의 상위 레벨에 도달하려면, 특히 아나리야 요기(수행자)의 경우에는 많은 연습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 * 일단 제4자-나의 상위 레벨에 이르면, 요기는 아빈냐-(신통)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를 기를 수 있고 그 다음에 가장 높은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나리야 요기에 가능한 가장 높은 성취입니다. 

 

니로다 사마-빳띠 ㅡ 우바또위뭇따 아라한에게만

 

9. 반면에, 가장 높은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arupāvacara samāpatti)까지 모든 자-나와 사마-빳띠를 기른 아리야 요기는 우바또위뭇따 아라한(Ubhatovimutta Arahant)이 될 것입니다.

 

  • * 우바또위뭇따 아라한은 가장 높은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를 넘어서 니로다 사마-빳띠(nirodha samāpatti)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 니로다 사마-빳띠에서는, 찟따 위티의 흐름이 멈춥니다. 그것은 아라한의 빠리닙바-나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마치 아라한이 ‘이 세상에 살고’ 있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 * 그러나, 우바또위뭇따 아라한의 육체가 더 유지될 기간이 있는 한, 그 아라한은 7일까지 니로다 사마-빳띠에 머물 수 있습니다. 그 기간 중에, 업 에너지는 육체를 살아있게 합니다.

 

아빈냐-(신통 행위)를 할 능력

 

10. 아리야든 아나리야든, 제4자-나의 상위 레벨에 있는 요기(수행자)는 아빈냐-(신통)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현재 그런 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와하라까 테로께서는 아빈냐-의 일부를 육성하셨습니다.

 

  • * 물론, 목갈라나 존자는 부처님 다음으로 가장 높은 신통력을 가졌습니다. 

  • * 데와닷따도 아나리야 자-나와 함께 신통력을 육성하였습니다. 하지만, 데와닷따는 그 모든 힘을 읽고 아빠-야에 재탄생하였습니다.

  • * 일부 아리야들은 자-나, 사마-빳띠, 또는 신통력을 기르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하루에 그 모든 것을 달성했습니다! 예를 들어, 쭐-라빤타까 존자는 몇 달 동안 힘들게 노력하여도 단 한 가-타(구절)도 외울 수 없었습니다. 존자는 전생에 빠-라미따-를 거의 완성했지만, 강한 깜마 위빠-까가 진전을 막았습니다. 부처님의 도움으로, 존자는 하루 만에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었으며 동시에 자-나와 신통력도 얻었습니다. ‘Cūḷapanthaka’를 참조하세요. 

  • * 자-나라는 주제와 관련된 많은 복잡함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어떤 측면에 대해 추측만 할 수 있습니다. 자-나의 이 복잡함은 붓다께서 ‘jhānavisayo acinteyyo’, 즉 ‘자-나의 주제는 붓다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이유를 보여줍니다. ‘Acinteyya Sutta (AN 4.77)’를 참조하세요.

 

우리는 막가 팔라를 얻는데 집중해야 한다

 

11. 우리 모두는 먼 과거에 가장 높은 루빠-와짜라 자-나(rupāvacara jhāna)와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arupāvacara samāpatti)에 수없이 도달했습니다. 최근 전생에 그것들을 기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빨리 ‘그것들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 * 자-나는 루빠 로까에 재탄생으로 이어지는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 puñña abhisaṅkhāra)의 유형입니다. 이것은 데와 영역에 재탄생으로 이어지는 뿐냐 깜마를 행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동일한 식으로, 아-넨자-비상카-라(āneñjābhisaṅkhāra)를 기르면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arupāvacara samāpatti)에 이르고 아루빠 로까(arupa loka)에 재탄생합니다. ‘사마-디, 자-나, 및 삼마- 사마-디’의 #5를 참조하세요.

  • * 이 모든 경우에, 미래 괴로움은 제거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아나리야 데와-와 브라흐마-들은 까-마 로까(욕계)에 돌아가고 아빠-야에 재탄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는 (아라한과에 이르는)  막가 팔라를 얻어 괴로움의 흔적조차 제거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 * 그것에는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띨락카나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빠띳짜 사뭅빠다’ 섹션의 ‘빠띳짜 사뭅빠다, 틸락카나, 사성제(Paṭicca Samuppāda, Tilakkhana, Four Noble Truths)’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 * 자-나를 얻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자-나 토대는 아리야가 육성하든 아나리야가 육성하든 동일하다

 

12. 마지막으로, 어떤 자가 육성한 자-나 상태를 묘사할 때 정확한 기본 문구로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ṁ savicāraṁ vivekajaṁ pītisukhaṁ paṭham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가 있습니다. 여기서,  ‘vivicceva kāmehi’’는 까-마 라-가 상요자사/아누사야를 제거/불태웠다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감각적 즐거움을 기꺼이 삼가함’을 의미합니다. 옛날에는, 요기들은 ‘유혹하는 감각적 대상’을 멀리하기 위해 정글 속으로 깊이 들어갔습니다. 

 

  • * 예를 들어, ‘Mahāsudassana Sutta (DN 17)’에서 그 정확한 구절은 마하-수닷사나라고 불리던 왕일 때 우리 보디삿따(보살)이 자-나를 육성한 것을 묘사합니다. 명백하게, 보살은 그때에 아나리야(anariya)였고 까-마 라-가 아누사야(kāma rāga anusaya)를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 * 따라서, 자-나(jhānā)는 그것들을 육성한 자에 관계없이 동일합니다. 그것들은 감각적 즐거움을 기꺼이 포기했지만 까-마 라-가 상요자나(kāma rāga saṁyojana)를 부수지/불태우지 않은 루빠-와짜라 브라흐마의 마음성향을 나타냅니다.

  • * 까-마 라-가 상요자나/아누사야(kāma rāga saṁyojana/anusaya)를 제거한 자들은 아나-가미와 아라한들입니다.

 

자-나를 얻는 두가지 방식

 

13. 아리야-들과 아나리야-들이 동일한 자-나에 이르지만, 서로 매우 다른 방식으로 자-나를 기릅니다. 아나리야 수행자는 (호흡이나 까시나 대상과 같은)  ‘로끼야 명상 주제’에 마음을 집중하는 반면에, 아리야-들은 닙바-나(Nibbāna)에 마음을 집중합니다. 특히, 아리야-들은 까-마 앗사-다(kāma assāda), 즉 감각적 즐거움의 결점/위험함을 숙고합니다. (아빠-야-에 재탄생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는) 우리의 부도덕한 행위는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기 위한 우리의 시도에 기반합니다. 

 

  • * 그것들을 얻는 방법에 상관없이, 자-나(또는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는 동일합니다. 그것들은 브라흐마의 정신 상태에 해당합니다. 그것들은 재탄생 과정에서 ‘더 나은 존재’에 해당하는 정신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세간(평범한) 자-나-라고 부릅니다. 그것들은 일어나지만 까-마 로까(kāma loka)로 후퇴할 수 밖에 없습니다. 

  • * 그러나, 그런 세간(평범한) 자-나는 그것에 있는 중에 성스런 진리(사성제)를 이해함으로써 아리야 자-나(Ariya jhāna)로 전환될 수 있는데, 그것이 막가 팔라로 이어질 때, 안정된 아리야 자-나가 되고, 그 아리야 자-나는 미래 생을 통해서도 결코 잃게 되지 않습니다.

  • * 그것은 다음 포스트에서 논의하겠습니다. 

 

아누세띠는 ‘기존 아누사야에 먹이를 준다’는 의미다

 

14. 아리야 자-나에 관한 많은 혼란은 ‘na anuseti’(‘nānuseti’)가 ‘아누사야(anusaya)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의미한다는 잘못된 개념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상황에서 “아비상카-라를 하지 않음으로써 아누사야에 먹이를 주지 않을 것이다”를 의미하기만 합니다. 뿌툿자나 요기(puthujjana yogi)는 자-나의 즐거움을 즐기지만, 아리야(Ariya)는 그 ‘자-나의 즐거움’에 들러붙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15. 다음은 아하라까 테로님의 법문 파일인데, 여기서 테로께서는 자-나-는 막가 팔라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를 나타내고 있습니다(법문은 싱할라어로 되어 있음).

 

ධ්යාන සහ සමාධි (ක්ෂණික, අර්පණා, උපචා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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