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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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디, 자-나, 및 삼마- 사마-디


원문: Elephants in the Room 섹션의 ‘Samādhi, Jhāna, and Sammā Samādhi’ 포스트


삼마- 사마-디(Sammā Samādhi)는 사성제를 이해하는 성자(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 이상의 성자)에게만 가능합니다. 그에 비해, 다양한 유형의 사마-디(samādhi)와 자-나(jhāna)는 모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자-나'는 사성제를 이해함으로써 ‘아리야 자-나(Ariya jhāna)’로 변환될 수 있습니다.


- 2022년 6월 16일 작성; 2024년 3월 28일 재작성; 2024년 4월 21일 주요 개정


방 안의 코끼리


1. 2022년 2월 28일에, 필자는 ‘방 안의 코끼리’라는 새로운 포스트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그 목표는 붓다 담마에서 결정적인 개념에 대한 현재의 영어(및 다른 언어) 번역에 있어 모순을 강조/부각시키는 것입니다. 


  • * 필자는 이 명백한 모순이 이 모든 해 동안 간과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방 안의 코끼리’라고 부릅니다.

  • * 이 모순들 중의 일부는 그것을 알기 위해 빠알리어를 이해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입니다. 한 번 지적하면 어린아이조차도 이 모순들 중의 일부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 주된 문제는 대부분의 번역자가 붓다 담마의 근본적인 기본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일부 빠알리 핵심어의 잘못된/불완전한 번역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간단한 예로, 윈냐-나(viññāṇa)는 일반적으로 의식(consciousness)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그것은 많은 모순을 일으킵니다.  ‘첫 번째 코끼리: ‘방 1에 있는 코끼리 ㅡ 띠삐따까의 직역(Elephant in the Room 1 – Direct Translation of the Tipiṭaka)’을 참조하세요. 


  • * 필자는 오늘(2022년 6월 16일두 번째 코끼리, ‘방 2에 있는 코끼리 ㅡ 자-나와 까시나’에 대해 시작하고 있습니다.

  • * 세 번째 코끼리는 ‘방 3에 있는 코끼리 ㅡ 아-나-빠-나사띠(Elephant in the Room 3 – Ānāpānasati)’입니다.

  • * 자-나/까시나에 대해 많은 보편화된 오해(잘못된 생각) 때문에, 포괄적인(종합적인) 분석을 위해 띠삐따까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토론 포럼에 있는 “Discussion on ‘Cultivating Jhāna and Magga Phala – What Is the Difference?’”에 필요한 의견(코멘트)/질문을 개진해 주세요


수많은 사마-디 ㅡ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3. 사마-디(samādhi) (‘sama’ + ‘adhi’, ‘sama’는  ‘동일한’을 의미하고, ‘adhi’는 ‘우세/지배’를 의미함)는 마음이 하나의 아-람마나(ārammaṇa, 대상) 또는 니밋따(nimitta)에 집중되어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것에 단단히 주의가 집중될 때, 마음은 그 마음 성향에 기반하여 사마-디(samādhi)에 이르게 됩니다. 수많은 사마-디(samādhi)가 있는데, 어떤 것은 중립적이고, 어떤 것은 좋고, 다른 어떤 것은 나쁩니다.


  • * 폭탄을 조립하고 있는 자살폭탄 테러범도 실수를 하면 폭발할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전적으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도 사마-디에 들어가지는데, 그것은 사악한/부도덕한 사마-디의 예입니다.

  • * 법문을 듣거나 명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좋은 사마-디에 있습니다. 그 사람들도 그것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 * 사람이 흥미진진한 책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으면, 외부의 교란이 들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중립적인 사마-디(samādhi)입니다.

  • * 그러므로, 마음이 특정 아-람마나(ārammaṇa, 대상)에 집중되는 사마-디에는 무수한 유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나 ㅡ 루빠-와짜라 브라흐마 영역의 정신 상태


4. 숫따 삐따까(경장)에는 4가지 유형의 자-나(jhāna)만 있는데, 그것들은 다양한 루빠-와짜라 브라흐마(rupavacara Brahma) 영역의 정신 상태에 해당합니다. 그것들은 뿐냐 아비상카-라(puñña abhisaṅkhāra)에 기반하고, 그래서, '평범한(세간) 자-나'입니다. 그것들은 아래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아리야 자-나(Ariya jhāna)’로 변환될 수 있습니다.


  • * 사람들은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 puñña abhisaṅkhāra)의 특별한 유형을 육성함으로써 그런 자-나 상태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의 마음은 [한 대상에] 집중되어 ‘까-마 상깝빠(kāma saṅkappa)’, 즉 감각적인 생각들에서 충분히 떨어집니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은 ‘까-마 로까(kāma loka)’를 초월하여 특정한 루빠-와짜라 브라흐마(rupāvacara Brahma, 색계 범천) 영역의 마음가짐(마음성향)을 붙잡습니다. 4가지의 자-나 상태만 있습니다.

  • * 그러나, 보통의 자-나 상태에서, 빤짜드와-라 찟따 위티(pañcadvāra citta vithi)가 간헐적으로 흐르기 때문에 마음은 완전히 집중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나 사마-빳띠(jhāna samāpatti)에서만 마음이 자-나 상태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습니다.

  • * 오늘날, 많은 영어 문헌에서 ‘상위 루빠-와짜라 사마-빳띠(higher rupāvacara samāpatti)’를 제5자-나(제5선정) 내지 제8자-나(제8선정)라고 잘못 표기하고 있습니다. 띠삐따까(Tipiṭaka)에서, 그것들은 아-까-사-난짜-야따나 (ākāsānañcāyatana), 윈냐-난짜-야따나 (viññāṇañcāyatana),  아-낀짠냐-야따나 (ākiñcaññāyatana), 및 네와산냐-나-산냐-야따나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 사마-빳띠(samāpatti)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제4자나 사마-빳띠(fourth jhāna samāpatti)를 초월할 때, 그것은 곧바로  아-까-사-난짜-야따나 사마-빳띠 (ākāsānañcāyatana samāpatti)로 갑니다. 아-까-사-난짜-야따나 자-나 (ākāsānañcāyatana jhāna)는 없습니다. 다른 세 가지 아루빠-와짜라(arupāvacara) 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자도 그 잘못된 용어를 사용했지만, 발견하는 대로 필요한 개정을 할 것입니다.) 

  • * 사람들은 아윗자(avijjā)로 두 가지 유형의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를 육성하여 자-나(jhānā)와 사마-빳띠(samāpatti)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간략히 다루어 보겠습니다.


자-나/사마-빳띠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를 통해 도달된다


5.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 단계에 작용하는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에는 세 가지 주된 유형이 있습니다. 그 세 가지 유형의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는 다음과 같이 31영역 중에 재탄생으로 이어집니다.


  • * 가장 나쁜 유형인 아뿐냐-비상카-라(apuññābhisaṅkhāra, apuñña abhisaṅkhāra)는 사악처(아빠-야-, apāyā)에 재탄생으로 이어집니다. 부도덕한 행위는 아뿐냐-비상카-라(apuññābhisaṅkhāra)로 일어납니다.

  • * 다음 더 높은 수준인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 puñña abhisaṅkhāra)는 까-마 로까(kāma loka, 욕계)의 높은 7가지 영역과 루빠 로까(rupa loka)의 16가지 영역에 재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인간 영역과, 까-마 로까(욕계)의 6가지 데와(천신) 영역에 재탄생하는 것들은 도덕적인 행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루빠-와짜라 자-나(rupāvacara jhāna)를 육성하는 것은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의 특별한 유형을 통해 일어납니다.

  • * 세 번째 유형인 아-넨자-비상카-라(āneñjābhisaṅkhāra, āneñja abhisaṅkhāra)는 아루빠 로까(arupa loka, 무색계)에 속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4가지 영역에 재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오늘날, 많은 교재들은 그것들을 상위 자-나(higher jhāna)라고 표기하지만, 그것들은 사마-빳띠(samāpatti)입니다. 위 #4를 참조하세요. 아-넨자-비상카-라 (āneñjābhisaṅkhāra)를 육성하면 아루빠와짜라 사마-빳띠(arupavacara samāpatti)로 이어집니다.

  • * 요약하면, 아뿐냐-비상카-라(apuññābhisaṅkhāra)에 참여하면 직접적인 괴로움이 있는 재탄생으로 이어집니다.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 또는 아-넨자-비상카-라(āneñjābhisaṅkhāra)에 참여하면 괴로움이 적은 더 높은 영역에 재탄생으로 이어지지만, 그 생이 끝나면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즉, 더 낮은 영역에 재탄생합니다. 그것은 끝없는 윤회 여정입니다. 필자는 세부 사항/통찰을 위해 ‘재탄생은 아비상카-라에 따라 일어난다’ 포스트를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6. 그러므로, 사마-디(samādhi), 자-나(jhāna), 및 사마-빳띠(samāpatti)는 붓다 담마가 이 세상에 없을 때조차도 사람들이 얻을 수 있습니다.


  • * 고따마 부처님이 되신 우리 보디삿따(Bodhisatta, 보살)께서는 알-라-라깔-라마(Āḷārakālāma) 및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āmaputta)라는 두 요기(수행자)로부터 자-나(jhānā)와 사마-빳띠(samāpatti)를 기르는 것을 배웠습니다. 보살은 자-나와 사마-빳띠를 기르는 것만의 결실없음을 재빨리 깨닫고 그들에게서 떠났습니다.

  • * 자-나(jhānā)는 마음이 위빳사나(Vipassana), 즉 ‘통찰 명상’을 위한 최적의 상태가 되게 합니다. 아래의 논의와 같이, 위빳사나에 따르지 않고, 자-나(jhānā)만 기르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삼마- 사마-디는 막가 팔라를 얻는데 필수적이다


7. 삼마 사마-디(Sammā Samādhi)는 독특한 사마-디(Samādhi)입니다. 사람들은 ‘산(sañ)’ (라-가, 도사, 모하)를 어떻게 제거하는지를 이해함으로써 그것에 도달하는데, 여기서, ‘마-(mā)는 피함/제거를 의미하고, ‘산(sañ)’ + ‘마(mā)’는 ‘삼마-(sammā)’로 운이 맞춰집니다. 사람들은 닙바-나(Nibbāna)의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 단계에서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띨락카나를 이해하기 시작한 후에만 삼마- 사마-디(Sammā Samādhi)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이 끝없는 윤회 여정의 무익함과 위험함을 깨달을 때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즐거움에 들러붙는 것, 즉 ‘빤쭈빠-다-낙카다-(pañcupādānakkhandhā)’의 위험함을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아-람마나(감각 입력)는 결정적인 과정을 시작되게 한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 넓은 세계관이 마음에 자리잡을 때, 사람은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가 됩니다. 그것은 1+1은 2인 것을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후로는 [그 사실/진실을] 아무도 달리 설득할 수 없습니다.

  • * 그러므로, 삼마- 사마-디(Sammā Samādhi)는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띨락카나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 * 그 세계관을 보고 삼마- 사마-디/막가 팔라(Sammā Samādhi/magga phala)에 이르기 위해 자-나(jhāna) 또는 사마-빳띠(samāpatti)를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 * 사람은 우선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올바른 세계관)에 이르고 ‘괴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벗어나기위한 팔정도를 육성함으로써만 삼마-사마-디/막가 팔라(Sammā Samādhi/magga phala)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 * 그러므로, 팔정도에서 첫 단계는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 올바른 세계관으로, 미래에 아빠-야-(악처/사악처)에 재탄생하는 가능성이 그칩니다. 


‘까-마 로까’를 초월함


8. 소따빤나 단계에 도달하면, 다음 단계는 ‘까-마 로까(kāma loka)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루빠와 루빡칸다 ㅡ 외부 물체가 아님’ 및 ‘위빠리나-마 ㅡ 두 가지 의미’라는 2개의 포스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아꾸살라 깜마는 까-마 로까에 있는 동안에 행해집니다. ‘까-마 로까를 초월’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i. ‘감각적 즐거움’(즉, ‘까-마 앗사-다’,  kāma assāda)에 들러붙음의 위험함을 숙고함으로써, ‘까-마 로까’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 있으며 자-나(jhānā)를 기를 수 있는데, 이것은 붓다께서 권장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호흡(‘호흡 명상’)이나 흙덩이와 같은 까시나 대상과 같은 그런 중립적인 대상에 집중함으로써 자-나를 육성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대부분의 아꾸살라 깜마가 까-마 로까(kāma loka)에 있는 동안에 행해지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까-마 로까를 초월하는 것도 유익합니다.

ii. 다음에 논의하는 바와 같이, 자-나에 있는 동안에 위빳사나-(Vipassanā) 명상을 함으로써 ‘까-마 로까’에서 영구적으로 벗어날(즉, '까-마 라-가 아누사야/상요자나'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자-나'를 '아리야 자-나'로 전환


9. 자-나에 있을 때, 마음은 동요하지 않고, 위빳사나- 명상을 육성하기가 더 쉽습니다. 


  • *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나의 즐거움’이 ‘열반(닙바-나)의 지복’과 같다고 생각하며 ‘속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나 산냐-(jhāna saññā)에 들러붙음’의 위험함을 숙고하는 대신에, 그들은 그것에 빠집니다(얽매입니다).

  • 하지만, 자-나에 들어가는 능력을 가진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틸락카나를 이해하고 그 자-나의 아닛짜 특성을 ‘지혜로 보기’가 쉬울 것입니다. 그러면, 막가 팔라를 얻음으로써, 그 ‘평범한(세간) 자-나’는 ‘아리야 자-나’가 됩니다.  “Jhāna and Magga phala – Very Different” 포스트(곧 게시될 예정)를 참조하세요.

  • * ‘자-나의 즐거움’은 ‘감각적 즐거움’과 같이 또한 ‘왜곡된 산냐-’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물-라빠리야-야 숫따 ㅡ 모든 것의 뿌리’와 ‘왜곡된 산냐-(산자-나-띠)에 속음 ㅡ 들러붙음(땅하-)의 기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붓다께서는 많은 숫따-에서 자-나에 있으면서 위빳사나-를 육성하는 방법을 설명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Aṭṭhakanāgara Sutta (MN 52)’를 참조하세요. 


자-나로 아라한 그리고 자-나없이 아라한


10. (자-나를 기르거나 자-나를 기르지 않고 위빳사나-를 하는) 그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 * (자-나 없이) 아나-가-미(아나함)는 위빳사나-를 하여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빤냐-위뭇따  아라한뜨(Paññāvimutta Arahant)입니다. 숫도다나 왕(King Suddhodana), 산따띠 대신(Minister Santati), 바히야 다루찌리야(Bahiya Dharuciriya)가 그 예들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도중에 자-나 상태를 잠깐 경험하지만 자-나를 완전히 경험하지는 않습니다. 자-나를 완전히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육성하여 ‘자-나 찟따’가 계속하여 흐르는 ‘자-나 사마-빳띠’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 * 네 가지 자-나 중의 하나와 함께 누구나 위빳사나-를 육성하여, 막가 팔라를 얻음과 동시에 그것을 아리야 자-나로 변환할 수 있습니다.

  • 일부 사람들은 아라한 단계에 이르는 중에 모든 ‘루빠 자-나’와 ‘아루빠 사마-빳띠’를 완성하여, 빤냐-위뭇띠(paññāvimutti)에 더하여 제또위뭇띠(cetovimutti)를 얻습니다. 그들은 ‘두가지 방법으로 해탈한’(‘ubhato’는 ‘양면’을 의미함) 우바또위뭇따 아라한(ubhatovimutta Arahant)들입니다. ‘Ubhatobhāgavimutta Sutta (AN 9.45)’을 참조하세요. 그들은 ‘니로다 사마-빳띠(nirodha samāpatti)’(saññāvedayitanirodha)에 들어가서 (한 번에 7일 동안) 살아 있는 중에 완전한 닙바-나의 지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saññāvedayitanirodha (saññā avedayita nirodha)는 ‘산냐-와 웨다나-가 모두 그침’을 의미합니다. 산냐-(saññā)와 웨다나-(vedanā)가 없으면, 찟따-(cittā)는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 11. 물론, 한 두가지 자-나를 기르고 아라한과에 도달한 빤냐-위뭇따 아라한(Paññāvimutta Arahant)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Jhāna Sutta (AN 9.36)’ 를 참조하세요. 단 하나의 자-나도 기르지 않았을 빤냐-위뭇따 아라한(paññāvimutta Arahant)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비담마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자-나가 없는 성자로 나누어, 전체 가능한 찟따는 89가지입니다. (다양한 레벨의 자-나로 나누어) 자-나를 고려할 때, 그 가능한 찟따는 121가지로 증가합니다. “Jhāna and Magga phala – Very Different” 포스트(곧 게시될 예정)를 참조하세요.


  • * 그리고 또한 몇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쭐-라빤타까 존자(Ven. Cūḷapanthaka)와 산따띠 대신(Minister Santati) 같은 아라한들은 쩨또위뭇따(Cetovimutta)와 빤냐위뭇따(Pannavimutta)(즉, ‘Ubhatovimutta_우바또위뭇따’) 아라한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라한과(Arahanthood)에 도달하는 순간에 매우 짧은 시간내에 모든 자-나(jhāna), 사마-빳띠(samāpatti), 및 많은 종류의 잇디(iddhi, 신통력)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자-나(jhāna)도 기르지 않았습니다. ㅡ 예를 들어, 쭐-라빤타까 존자(Ven. Cūḷapanthaka)는 몇 달 동안 힘들게 노력해도 단 한 구절의 가-타-(gāthā, 게송)도 기억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존자는 전생에 거의 완성된 빠-라밋따-(pāramitā)를 가졌지만, 강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가 그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도움으로, 그 존자는 하루 만에 아라한과(Arahanthood)에 도달할 수 있었고 동시에 자-나와 신통력도 얻었습니다. ‘Cūḷapanthaka’ 를 참조하세요.

  • * 자-나의 이 복잡함은 붓다께서 ‘자-나위사요 아찐떼이요(jhānavisayo acinteyyo), 즉 ‘자-나의 주제는 붓다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이유를 보여줍니다. ‘Acinteyya Sutta (AN 4.77)’를 참조하세요. 부처님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네 가지는 “부처님의 앎 기반과 자-나의 주제, 깜마 위빠-까, 및 세상(우주)”입니다.


요약


12. 여기서 요점은 먼저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에 도달하여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를 얻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는 자동적으로 삼마- 사마-디(Sammā Samādhi)의 첫 단계로 이어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처님, 또는 부처님의 참된 제자(즉, 성자/아리야)로부터 붓다 담마의 올바른 버전을 배워야 합니다.


  • * 우선, 사람들은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 ) 단계를 얻는 것에 완전히 집중해야 합니다. 그 성취는 한 번만 일어나지만, 사악처(아빠-야)에 있는 상상할 수 없는 괴로움(고통)을 영구적으로 극복하는데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것은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 위찌낏차(vicikicchā), 및 실랍바따 빠라-마-사(silabbata parāmāsa)라는 세 가지 ‘잘못된 견해’를 부수는 것에 의해 일어납니다.

  • * 일단 소따빤나가 되면, 자-나와 함께 또는 자-나 없이 위빳사나-를 할 것인지를 탐색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자-나에 대해 애태우지 말고 위빳사나-에 집중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 * 최근의 전생에 자-나를 육성한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또는 신속히 자-나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왜곡된 자-나 산냐-’에 속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Aṭṭhakanāgara Sutta (MN 52)’에 설명된 바와 같이 위빳사나-를 해야 합니다. 그들은 막가 팔라를 얻으면서, 동시에 그 ‘평범한(세간) 자-나’를 ‘아리야 자-나’로 변환할 수 있습니다.

  • * 삼마- 사마-디(Sammā Samādhi), 자-나(jhāna), 및 까시나(kasina)의 어원은 ‘자-나, 자-야, 및 자-이 ㅡ 다른 의미들’ 포스트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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